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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졸업] 고난 신학교 졸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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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은 인류역사상 최대의 어려운 고난을 통과한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고난을 주셨습니다. 욥은 잘 통과하였습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고난신학교를 졸업하여 신앙의 차원을 달리하고 새로운 축복을 열어 길이 누리며 장수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다듬으시고 새롭게 하실 때는 고난이란 신학교를 통과하게 하십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고난신학교를 잘 졸업하여야 한다는 결론부터 말씀드리고 고난에 대한 주제로 은혜받고자 합니다.
1. 고난이 무조건 저주요 불행은 아닙니다.
고난이 없는 것이 축복이고 고난은 저주이며 불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고난이 와도 몹시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서 축복을 받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간증들을 들어보면 다 지난 날의 고난을 얘기합니다. 고난을 통해 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이 무조건 저주가 아니며, 불행은 아닙니다.
2. 고난이 다 죄값은 아닙니다.
모든 고난이 다 죄값으로 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작은 어려움이 돠도 곧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치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보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떠나신 것은 아닐까” 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조금만 고난이 와도 금방 힘을 잃고 낙심합니다.
죄로 인해 오는 고난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생각하면 우리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영적 유익을 얻기 어렵습니다. 고난이 무조건 죄 때문에 오는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은 더욱 많습니다. (시34:19)
3. 나 혼자만 고난을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땅에 살면서 고난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고난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당해보면 나만 이런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나는 왜 이럴까, 참으로 나는 복이 없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다윗을 마음들어 하셨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다윗은 사울 때문에 많은 고통에 시달리게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빛도 어두움도.. 환난도 창조하십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 45:7)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2장에는 죄로 인해 매를 맞게 되는 고난과, 애매하게 당하는 고난과, 선을 행함으로 받게 되는 고난이 있다고 했습니다(벧전 2:19-20).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한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을 다 알겠습니까 너희를 향한 생각은 내가 안다고 하셨습니다. (렘29:11-14) 여호와 하나님만이 아실 일입니다.

고난에 유익이 많습니다.
1. 고난으로 경건해집니다.
죄의 뿌리는 너무나 깊어서 뽑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겪으면 죄를 끊어내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4:1-2절을 보면 육체의 고난을 받는 자가 죄를 그쳤음이여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고난은 경건생활에 유익합니다. 고난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줍니다. 고난 가운데 있을 때 회개하며 죄를 끊어내게 됩니다. 특별히 기도하게 됩니다. 거룩하게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제마음대로 살았는데, 고난을 통하여 이제는 말씀대로 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고백입니다.
2. 고난중에 여호와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출애굽기2장에..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여호와 하나님이 그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고난 중의 기도는 깊은 기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애굽고역에 시달리며 탄식하며 기도하는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고난은 여호와 하나님을 간절해 찾게 합니다. 고난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은 고난 중에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도 대부분은 병든 사람, 문제가 많은 사람,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환난도 없고, 아무런 문제도 없는 사람들은 좀처럼 예수님 앞으로 나오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사는 것이 힘들고 문제가 많은 사람들은 복음을 잘 받아들이고 예수님 앞으로 나오기가 쉽습니다.
3. 고난중에 은혜를 받습니다.
고난 중에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나... 제가 돌이켜 보면 그래도 몸부림치고 고생하는 중에 설교가 깊어지고 그래도 그릇이 좀 다듬어진다는 것입니다.
고난 때문에 생각이 깊어지게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내 죄와 허물이 깨닫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도 생깁니다.
나의 할 일이 무엇인지,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변하여 새 사람이 됩니다. 암을 고치는 것보다 새사람 되는 것이 더 큰 기적입니다.
믿음이 강해지고 온전해집니다. 성품이 변화되고 가치관의 변화가 옵니다. 행복관이 달라집니다. 전에는 물질적이고 세상적이었는데 달라집니다. 예수믿고 사는 것이 행복하게 됩니다.
이런 깨달음들이 충성스럽고 온전한 성도가 되게 합니다.
4. 고난중에 성숙한 인격이 됩니다.
흔히 어른들은 좀 덜 된 사람보고 고생을 좀 해야겠다. 아직 고생을 안해봐서 그렇다고 합니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사람을 채용할 때 분명한 기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너무 빨리 출세한 사람,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채용을 꺼렸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너무 쉽게 그리고 빨리 출세한 사람은 독선적이기 쉽습니다. 실패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남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말은 맨몸으로 달릴 때보다 등에 적당한 짐을 실을 때 더욱 빨리 달린다고 합니다. 사람도 적당한 시련을 만날 때 도전함으로 인생의 가속이 붙게되는 것입니다.
애벌레가 고치 속에서 나올 때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몸부림을 치는지 차마 애처로워서 볼 수가 없습니다. 어떤 분이 보고 있다가 애처로워 고치 구멍을 가위로 좀 찢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나온 , 쉽게 빠져 나온 그 애벌레의 나방은 날개를 단 뒤에도 날 수 없는 나비가 된 것입니다. 이게 여호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힘들게 딱딱한 껍질을 뚫고 나오는 나방, 고난의 과정을 겪은 나방만이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하찮은 벌레 한 마리에게도 그렇게 섭리하시 이유와 목적이 있는데 하물며 구원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에게 고난이 올 때 우연히 오는 법이 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좋으신 계획이 있으시기 때문에 고난을 주신 줄 믿습니다.
이와같이 고난은 누구에게나 있고 유익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에 어떻게 반응하느냐, 고난의 신학교에서 어떻게 수업하느냐 이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좋은 학점으로 졸업해야 합니다. 낙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낙제는 다시 수강해야 합니다. 일평생 신학교만 다니다가 그렇게 인생을 마쳐서 되겠습니까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는 그 고난속에서 적극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은 어려움이 오면 반응하게 되어있습니다. 요즘 황토사우나라고 있지요, 계란이 익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계란은 익혀도 사람은 익히지 않습니다. 사람은 들어가면 즉시 반응합니다. 땀을 줄줄줄 흘리어 체온을 조절합니다. 체온조절이 안되면 익혀 죽는겁니다.
천하태평으로 살면 안됩니다. 그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몸부림치라고고난이 왔는데 천하태평으로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더 큰 고난이 와야 되겠습니까
고난때에는 부르짖어야 합니다. 몸부림쳐야 합니다.
바울은 육체를 찌르는 가시라는 고난 때문에 특별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귀한 원리를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가시가 방해되는 것인줄 알았는데 응답을 받고 보니 그것 때문에 약해지고 겸손해지고 그것 때문에 주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되고 그래서 주님의 큰 능력으로 사역할 수 있게되는 비밀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제 약함을 자랑하고 주만 의지하면서 능력있게 사역하게 되었으니 고난신학교를 최우수상을 받고 졸업한 것입니다.
다윗은 고난신학교를 잘 수학하여 깊고 큰 은혜의 체험으로 훌륭한 왕이 되었습니다.
욥은 완벽을 추구하는 신앙에서 의존하는 신앙, 입을 막는 신앙으로 졸업하고 여러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직 그릇이 안될 때는 고생하고 있는것이 축복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목사님들을 뵙는 중에 강력한 영적 파워를 가진 분, 어디서 저런 영적 파워가 생겼을까 생각되는 분이 두분입니다. 저는 유심히 살펴 보았습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매달리고 기도한 것입니다. 한분 목사님은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하다보니 하루에 세번씩 기도하고 그래도 모자라 때때로 철야기도, 금식기도, 산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가 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게 고난이 있게 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 고난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고난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고난때문에 매달리다 보니 은혜를 많이 받아 강력한 영적 능력의 목사님이 된 것이고 큰큰 목회를 하는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중에 있습니까 과정 중에 있습니까 졸업을 했습니까
일평생 고생만 하면서 세월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고난은 일평생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시간은 너무나 짧습니다.
우리에게도 고난이 지나가는 한 과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좋은 학점 받고 졸업하여 새로운 축복을 열고
주님과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에 좋은 일꾼으로 쓰임받는 생애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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