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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졸업] 광야대학을 졸업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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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에 걸쳐 연속으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모세는 40년간 왕자로서 최상의 학문을 배우게 됩니다. 최고의 교육을 받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다른 교육 방법이 필요하셨던 같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인 줄 아세요 광야 교육입니다. 참으로 독특한 방법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리려 시면 광야 카페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본문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
시고 호위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그렇습니다. 바로 광야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임을 알려 줍니다.
그렇다면 광야는 무엇입니까 들판입니까 황무지입니까
먼저 광야의 본질적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입니다.
그런데 본 어간은 디바르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디바르의 뜻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말씀, 말하다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결국 광야라는 말은 '말씀 안에서' 라는 말입니다.
광야는 말씀을 만나는 것으로 히브리인들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말씀하십니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왜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
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처럼 이야기했을까
간단합니다. 광야대학을 다니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알죠. 우리는 가진 것이 많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긴 모습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잘못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돈을 벌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돈을 쓰는 것은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돈이 있을 때가 죄로 빠지기 쉽거든요.
여러분들은 돈을 쓰기 위한 기도를 할 수 있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거지 나사로와 부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자는 지옥에 갔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갔습니다 왜요
한 부자가 있었는데 매일 창고 지을 생각만 했다. 즉 간단합니다.
광야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매일 창고만 짓죠
그런데 거지 나사로를 보십시오, 그는 아무 것도 없는 거지입니다.
왜 천국에 갈 수 있었습니까 비유를 통해서는 어떤 이유도 안나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사로는 삶의 광야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광야에 있던 것으로도 신앙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광야에 있으면 믿음이 좋아집니까 고난을 당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고난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즉 광야는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입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도서관에 가면 공부를 집중할 수 있어요.
운동을 하려면 헬스 장에 가야 합니다. 집에 러닝머신이 있어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려면 교회에 와야 집중을 할 수 있습니다.
광야는 자신의 영성을 집중으로 훈련시킬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광야는 직접적인 여호와 하나님만을 체험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많은 성경의 인물들이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갖았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내게 고난이 없으면 은혜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고난에 빠지게 되면 얼마나 은혜가 큰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개인적으로는 광야에서 무엇을 배우게 될까요
실제적으로 모세는 왕자로서 40년을 훈련받았으면 되었지, 광야에서 40년을 무슨 훈련을 받
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구체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고난을 받아야 되는 이유입니다.
찰스 스윈돌이라는 사람은 모세가 광야에서 네 개의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1)무명에 대한 박사입니다.
광야는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부탁 할 일도 없는 곳입니다. 단지 사막의
들짐승과 양떼만이 친구였습니다. 우리가 수술하러 들어 갈 때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죽을 때 아무도 없습니다. 아마 모세는 광야에서 자기 존재를 알은 것 같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즉 무명박사입니다.
2)시간에 대한 박사입니다.
이스라엘을 가보신 분을 아시겠지만 한나절이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갈 수 있는 거리입니
다. 아마 당시로 보면 보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광야에서 헤매게 됩니다.
그리고 출애굽 하면서 3일만에 불평하고 짜증을 냈습니다.
모세는 광야 40년 동안 기다리는 것을 배웠습니다.
3)외로움에 대한 박사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광야에 가면 자기 혼자 밖에 없습니다.
정말 괴로운 일입니다. 한번은 제가 훈련을 하러 갔는데 5일 동안 아무 말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정말 힘듭니다. 그런데 나중에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자기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이 많으면 자기를 알 수 없습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광야로 여러분을 내 모셨겠습니까
고독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영혼을 보라는 것입니다.
4) 불편에 대한 박사입니다. 광야의 생활은 '불편'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광야에 나온다면 실제적인 문제가 부딪치게 됩니다.
화장실문제, 먹는 문제 자는 문제 등 의식주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불편하게 됩니다.
불편을 감사로 받아들이면 참으로 광야에서 훈련을 잘 받은 것입니다.
바울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는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능력 있게 행한 사람입니다.
빌4:12-13"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
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백한 것입니다.
광야생활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은 바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네 가지의 이해와 더불어 광야로 인도하시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잡초근성입니다.
광야에서 훈련을 받아 광야 박사가 되게 한 것은 잡초근성을 회복하기 원한 것입니다.
믿음 생활 이건 사회 생활이건 이대로가 좋사오니 하면 마귀에게 흔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잡초 근성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운동경기를 직접 경기장에서 보신 적이 계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아니! 축구경기를 텔레비전에서 보면 오죽 좋아
누워 보면 되지, 사람들도 없지, 게다가 해설도 해주지," 이런 분들은 이해 못합니다.
그러나 직접 가서 보는 것은 180도로 다릅니다. 말로 이해할 수 없는 힘이 있습니다.
게다가 직접 운동을 해보면 그냥 운동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치열함이 있습니다.
경쟁이 있고, 몸싸움이 있습니다. 너무나 다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잡초 근성을 원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광야로 내모신 것입니다.
온실 속의 모세가 광야 속에 잡초근성을 지닌 모세로 바뀝니다.
결국 우리는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합니다. 믿음은 단순한 것입니다.
광야에 있으면 다른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종이를 찢는 버릇이 있습니다. 항상 불안해하면서 주보도 찢고 책도 찢습니다.
그래서 상담을 하게 됩니다. 내담자 중심 상담법, 정신분석학, 내적치유, 상관관계 방법 등을
활용합니다. 그러나 차도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목사님과 이야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
러자 잡초근성으로 자란 목사님! 하시는 말씀 "종이 찢지마!"라고 말하자 그후부터 종이를
찢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인생은 단순합니다. 단순한 곳 그곳이 광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야생활은 힘이 듭니다.
왜 그럴까요 모든 사람이 잘못된 점이 있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로에게 가라고 합니다. 그러자 모세는 핑계를 댑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생활이 더욱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신학교에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제가 들어갈 때도 쉽지 않았습니다. 8수하여 들어오신 분도 계셨습니다.
그때 제가 한 기도를 잊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건방진 기도였는지….
"여호와 하나님! 합격 안 시키시면 저는 목사 안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합격 시켰을까요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잘 못되었는지 모든 수험생들이 그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얼마나 피곤하시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설득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힘들어 집니다.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께 설득 당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철저하게 도구로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에게 조언을 구한 이야기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왜냐하면 삶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평범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출애굽 하는데 있어서 주인공은 모세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그런데 모세는 도구로 쓰임 받은 사실을 모릅니다. 그래서 되묻지요
출3:11을 보세요.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
까" 모세는 몰랐습니다. 자기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니 힘이들지요.
내가 전도할 수 있다고요 기도할 수 있다고요 돈을 벌 수 있다고요 공부 할 수 있다고
요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다고요 천만예요, 어렵습니다.
참 재미있는 것은 은혜를 경험한 많은 청소년기의 학생들이 선교사를 자원합니다.
그런데 선교사!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도 잘해야 합니다. 성격도 좋아야 합니다. 실력도 있어야 합니다. 건강해야 합니다.
선교사를 나가려다 탈락한 분들이 많습니다.
저희교단 목사님들 중 4500분이 무임으로 쉬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성령이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마귀는 항상 나를 주목하게 만듭니다. 무엇을 요 나의 약함, 한계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 니가 그 모양인데 전도를 한다고 어쭈! 말씀도 모르면서 산다고"
그렇게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그래서 정신차려야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무엇을 보십니까 우리의 가능성! 가능성을 봅니다.
우리의 미래를 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도구임을 알게 하십니다.
고후 4:7을 보십시오, "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있
고 여호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함이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잘 떠나야 합니다.
모세가 왕자로만 또는 광야에만 살았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떠나는 것입니다. 떠남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압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웁니다.
떠날 때 그리고 확신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구정입니다. 제사를 드릴 것인가 말 것인가 이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확실히 떠났는가 라고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가족, 친지, 배를 떠났습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전에 잘 떠나야 합니다.
왜 떠남이 필요한 줄 아십니까
그것은 떠남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확신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본인이 원하지 않았지만 로마로 가야 한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3:11을 보면 '네가 로마에서도 증거 하여야 하리라' 는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
다. 왜 바울이 그렇게 능력이 있었겠습니까
바로 로마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음을 증거하라고 하는 확신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 확신을 가지십시오, 믿음은 확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택해 주셨다는 확신! 이 확신보다 강한 힘은 없습니다.
마귀의 유혹은 무엇입니까 확신을 작게 만듭니다. 그리고 어려움은 크게 보이게 만듭니다.
이것이 우리가 넘어야 할 고비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애굽으로 돌아갑니다. 그때 부딪친 사건은 바로의 저항과 유대인들
의 원망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고해서 간 것인데 어려움과 고난이 있습니다.
고난을 벗어날 수 있습니까 여전히 고난은 있을 것입니다.
광야학교를 졸업하는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지난주 한 분 집사님에게 평범한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한 주간 동안 제 마음에 있었습니다.
"정말 고난에 빠져있으면 힘이 들어요"
"그래요 저는 힘이 들 때 여호와 하나님 사랑해요" 혼자 읊조립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 사랑해요. 고백할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암초를 만났을 때 암초를 보면 해결 할 수 없습니다.
모세가 광야대학에서 바로에게 어려움을 당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에게 간절히 구합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바로를 제거하지 않습니다.
대신 다섯 번에 걸쳐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문제에 있습니까 광야에서 해 메고 계십니까
여호와 하나님만이 해결책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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