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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약속있는 첫 계명

본문

우리는 그저께 5월 8일에 어버이날로 지켰으며 우리 교회로서는 오는 5우러 14일 주일을 어버이 주일로 지키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부모님들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자식된 우리들이 행해야 할 도리, 즉 효도(孝道)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은 에베소서 6장 1-3절의 말씀입니다.
"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2절에 있는 말씀, '약속 있는 첫 계명'을 오늘 우리의 설교제목으로 정하였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효도(孝道)를 으뜸으로 하는 종교임을 아는 사람이 불신자들 중에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유교사상에 젖어 있는 사람들일수록 기독교인을 조상도 섬길 줄 모르는 불효(不孝)하는 자들이라고 정죄를 합니다.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조상을 섬기는 제사 지내는 일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따지고 보면 기독교만큼 효를 강조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기독교는 "네 부모를 순종하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신명기에 보면 "너는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신5:16)고 합니다. 이같은 명령은 10계명 중의 제 5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인간이 만든 계명이 아닙니다. 이 계명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명령하신 것입니다. 즉 이 계명은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 명령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지켜도 되고 안지켜도 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마땅히 지켜야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명령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 중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열심 때문에 그 핑계로 부모 공경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부모님에게 드려야 할 재정적 지원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자기 부모님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전통을 따르는 일로 인하여 부모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고로반'이라고 합니다. 마가복음 7장 10절 이하에 보면,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고, '어미나 아비를 우습게 여기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부모에게 '미안합니다. 저는 부모님을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부모님께 드려야 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입니다. '하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면서 진정으로 부모에게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하게 하고 있지 않느냐 이것이 바로 너희들 인간이 만든 전통을 지키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냐" (현대어 성경 막 7:10-13)
이같은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 당시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이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고 사람이 만들어 놓은 유전(전통)을 따르면서 "부모 공경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있음을 책망한 말씀입니다. 사람이 만든 유권이란 '고르반'이라고 하는 서약을 말합니다. '고르반'은 유대인이 어떤 물건을 여호와 하나님께 예물로 바쳐(드려) 다른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서약문입니다. '고르반'의 뜻은 "여호와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다든지 어떤 이유에서든지 부모님께 재정적 지원을 할 의사가 없으면 '고르반' 즉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라는 말을 하게 되면 부모님께 해야 할 책임을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고르반'은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이 아니라 인간들이 만든 전통인데 그 당시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유전을 따라 행함으로 부모님을 봉양하는 일을 져 버리는 일을 쉽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같은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특히 그 당시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이같은 바리새인들의 행위는 어쩌면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로 특히 목사가 되어서(선교사가 되어서) 선교한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에 소홀히 하고 있는 우리자신들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보이는 부모님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처럼 '고르반' 즉 "부모님, 부모님께 드려야 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께 드릴 것이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라는 말을 함으로써 "부모를 공경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계명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6장 2절의 말씀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는 이 말씀 속에서 '약속 있는 첫 계명'이란 말이 있는데 이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이 말씀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두 가지의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는 "네가 잘 되리라"는 약속이고 도 다른 하나는 "네가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약속입니다. 이렇게 부모를 공경하는 일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계명은 10계명 중에 제 5계명에 속합니다. 그런데 이 5계명이 어떻게 '약속있는 첫 계명'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10계명 중 제 2계명 즉 형상금지 명령에서 이미 약속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약속이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을 수천대에 이르기까지 복을 받게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제 5계명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은 '첫 계명'이란 '으뜸 가는', '제일 가는' 참으로 중요한 계명이란 뜻으로 해석을 합니다. 그리고 제 5계명이 첫 계명이라고 한 것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말하는 계명 중에 첫째 가는 계명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사람에게 해야 할 도리 중에 부모공경이 가장 으뜸 가는 계명이란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첫 계명'이란 가장 탁월하고 가장 중요하고 가장 귀한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인데 "공경하라"는 말은 무슨 뜻이며 구체적으로 공경하는 일이 어떤 것인가 즉 효도의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원래 '공경'이란 말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쓰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삼가서 예(禮)를 차려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즉 불손하게 말하거나 행동거지를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업수이 여기지 않고 충심으로 존경하는 것, 이것이 '공경'이란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대하듯이 두려움으로 삼가 예를 차려 높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업수이 여기거나 무시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지 않고 존경하는 일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노아의 세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함'은 저주를 받았고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저주받은 함은 술취한 아버지를 무시했습니다. 함이 벌거벗은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 고했다는 것은 아비의 일을 남의 일처럼 눈여겨 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곧 아비의 존재를 무시(無視)하는 일입니다. 아비의 벌거벗음은 수치스러운 일이고 체면이 깎기는 모습인데 그것을 무시햇다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셈과 야벳은 아비의 실수를 덜어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술취하여 하체를 드러내놓고 잠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아버지의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버지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았습니다. (창 9:18-23) 이같은 셈과 야벳의 모습에서 그들 두 아들이 아버지를 얼마나 공경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행동거지를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삼가 예를 차려 아버지를 높혔습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수치를 덮어주고 부끄러운 부분을 가려주는 일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아들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부모님들의 실수를 덮어주는 일입니다. 나이가 들게 되면 젊었을 때보다 추한 모습이 드러나기가 쉽습니다. 나이가 들면 주름살도 생기게 되고, 젊었을 때보다 추한 모습이 됩니다. 냄새도 납니다. 수전증으로 손이 떨리게 됩니다. 그러면 식사하는 일도 지저분해집니다. 잔소리도 많아 집니다. 특히 치매(노망)가 들면 어려운 일들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병들어 누워 있으면 대소면을 가리지 못하게 되어 냄새 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가까이 가기가 싫어집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이렇게 나이들어 냄새나고 추한 모습을 하고 있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이 바로 우리들의 부모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똥 오줌을 갈아주며 우리를 키워준 부모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를 품에 안아 길러준 부모님들이며 우리가 병들었을 때 가슴 조이며 우리를 돌봐준 분들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들의 실수를 덮어주고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자식들은 부모님들을 가까이 하기를 싫어합니다. 우리들은 부모님들의 추한 모습을 덮어주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의 실수를 부끄러워하며 오히려 자식들이 속상해하며 못마땅해 합니다.
여러 해 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만 충북 보은군 서산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던 정재모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가 아버니와 함께 외갓집에 다녀오는데 갑자기 눈보라가 휘몰아쳤습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눈 위에 드러누워 일어나지를 못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너무 불쌍해서 자기옷을 벗어 아버지를 덮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들 정군은 추위를 견디기 못해 그만 얼어죽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같은 정군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하나의 비석을 세웠습니다. 비석에 이렇게 썼습니다. "아! 아버지의 영혼을 덮어주던 그 맑은 효행은 뭇 사람의 심금을 울려 길이 후세에 흐르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덮어주는 일! 이것이 사랑입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일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죄인을 의롭다고 칭해주는 일입니다. 우리 인간이 죄인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義)로 옷입혀 주시고 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자기의 옷을 벗어 눈 위에 쓰러진 아버지를 덮어 줌으로 아버지를 살리고 자신은 얼어 죽은 정재모군의 감동적인 이야기와는 역할 분담이 다른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국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떤 어머니가 어린 아들을 업고 산 언덕을 올라가는 중에 갑자기 눈보라가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에 더 이상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주저 앉아 다시 일어나지를 못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결국 동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에게 업혀있던 그 아들은 살아있었습니다. 그것은 엄마의 옷으로 싸고 또 싸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커서 제 1차 세계대전기간 영국 수상이 되었는데 그가 바로 David Loyd George(데이비드 로이드 죠지)수상입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우리들의 어머님들은 모두가 David Loyd George의 어머니처럼 뜨거운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 주었습니다. 우리들은 이같은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을 먹고 자랐습니다.
어버이의 사랑을 감사하며 어버이의 은공을 기리는 이 5월에 다시금 새롭게 우리들의 효심(孝心)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약속있는 첫 계명!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으뜸이 되고 가장 중요한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잘 지킴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큰 축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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