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부모공경 어떻게 할 것인가
본문
한 아이가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어갔습니다. 5분 뒤, "아빠!" "왜" "목말라요. 물 한 컵 갖다 주실래요" "왜 아까 마시지 않았니 불도 꺼졌잖아. " 다시 5분 뒤, "아-빠!" "왜" "목마른데 물 한 컵 갖다 주시면 안 돼요" "아까 말했잖니 한 번만 더 물어 보면 매 맞는다. " 다시 5분 뒤, "아-빠!" "왜 그러니" "때리러 오실 때 물 한 컵 갖다 주시면 안 돼요" 참으로 부자간 건강한 관계입니다. 그런데 성장해 가면서 아내, 자식, 애완용 개만도 못하게 취급합니다.
부모는 우리를 낳아 주신 분들입니다.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 피를 서말 서되를 흘린다고 했고 기를 때 젖을 여덞섬 너말로 키운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먹지 못할 때에도 우리는 먹였고 입지 못하면서도 우리는 입혔고 자지 못하면서도 우리는 재웠습니다. 그들은 공부를 하지 못했으나 허리 띠를 졸라 매가며 우리에게 공부를 시켰습니다. 이런 은택을 입었으니 당연히 공경해야 합니다 (레20:9, 신21:18-21). 무엇보다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했으니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는 당연히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요일5:3, 4:20, 마15:4-6, 막15:10, 딤전5:8, 레19:32).
1. 물리적인 효행을 해야 합니다.
러시아 혁명이 있을 때 공산당들은 집들을 모두 태워 버리고 곡식들을 모조리 없애 버렸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모두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때 모스크바로 여행을 갔던 어떤 사람이 들판에 주저 앉아 어린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어머니를 본 일이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풀뿌리를 캐다가 어린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여행하는 사람은 그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하고 기운이 없어 보이기에 어린 아이를 품에서 떼어 냈더니 그 어머니의 젖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젖꼭지를 칼로 잘라서 피를 빨리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먹지 못해서 젖이 나지 않고 아기가 젖을 달라고 울 때 그 어머니는 젖꼭지를 잘라 피를 마시우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는 우리를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는 희생으로 우리를 길렀습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주려 했던 이들입니다. 그들이 고생을 하면서라도 우리에게는 편안하게 살게 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먹지 못하면서도 우리에게는 먹이려 했고, 입지 못하면서도 우리에게는 입히려 했고, 자지 못하면서도 우리는 재우려 했고, 공부하지 못하면서도 우리에게는 공부를 시키려 했습니다. 만일 그것들이 우리에게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부모에게 그럴만한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미워할만한 내용이 있을지라도 그들이 당한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환경과 개인적 형편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들을 오늘날 우리의 환경과 우리의 관념에서 판단하는 것은 부모에 대한 모독이요 폭력인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려면 물리적인 부분부터 도움을 드려야 합니다. ①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드려야 합니다. 먹는 문제, 입는 문제, 잠자는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아픈 곳이 있을 때 진료와 치료에 힘써야 합니다. ②용돈을 드려야 합니다. 늙어도 다른 사람 몰래 쓰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③필요로 하는 것을 사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자랑거리가 되어 기쁨이 배가 됩니다.
어느 작은 어촌에 어린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늘 바닷가에서 놀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은 물새알을 발견하여 집으로 갖고 왔습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물새알로 맛있게 반찬을 해주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소년은 바닷가에서 노는 것이 아니라 물새알을 찾아 헤맸습니다. 하루는 물새알을 줍지 못하고 돌아오는데 어느 집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만히 가서 보니 암탉이 알을 낳고 우는 소리였습니다. 소년은 달걀을 갖고 집으로 왔습니다. 어머니는 달걀을 삶아 주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소년은 바닷가도 나가지 않고 남의 집 닭이 알 낳는 것만 살폈고, 소년의 도둑질은 습관화되어 갔으며, 어른이 되어 갈수록 대담해지고 규모도 커졌으며, 결국 사형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 그가 어머니에게 한 말이다. "어머니 내가 어린 시절 물새알을 갖고 왔을 때 제자리에 갔다 놓고 오도록 올바르게 가르쳐 주셨더라면 이렇게 죽는 신세가 되진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형수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부모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 양심을 버리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시대를 살면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살았다고 할 정도로 가난과 배고픔 속에서 살았습니다. 초근목피와 물로 허기를 채웠습니다. 오죽했으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속담과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속담까지 만들었겠습니까. 그들은 우리를 잘 먹이면 당신들을 잘 봉양하리라는 기대감도 한편에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들의 필요를 채워 드려야 합니다.
2. 정신적인 효행을 해야 합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한 리포터가 집을 나와 걸인이 된 어느 할아버지와 인터뷰한 일이 생각납니다. 그 할아버지는 자식에게 버림받아 방황하고 있었지만, 리포터가 그 아들의 이름과 주소를 묻자, 그 할아버지는 아들이 살고 있는 곳을 알면서도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아들의 명예에 해가 될까 염려해서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버렸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버리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부모는 당신들이 어떤 힘든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그 고통을 우리 앞에서 내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기쁘게 해주시려고 온갖 비위를 다 맞추어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고 즐겁게 해 드려야 합니다. 잠언23:25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잠15:20). 부모를 기쁘게 하려면 부모의 자존감을 세워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존감이 생기지 않으면 허탈해 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허무하게 생각합니다. 노인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 하는 심리적 부분은 외로움입니다. 소외감과 고독감입니다. 부모가 자존감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부모 위치를 세워 드려야 합니다.
한국적 상황을 고려하여 생각한다면 ① 말을 잘 들어드려야 합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 말을 잘 들어 드리는 것이 그 분들이 자존감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② 설명을 잘해 드려야 합니다. 부모는 무엇이든지 궁금해 합니다. 모를 때는 답답해 합니다. 그러므로 하찮은 것도 차근 차근 설명을 해 드려야 합니다. ③ 자주 물어 보아야 합니다. 아는 것도 부모에게 물어드릴 때 부모는 위치가 확인됩니다. ④ 결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부모가 원하는 것이라면 부모가 결정한 사안이라면 큰 문제가 없는 한 부모의 결정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 행동 요강들이 단 마음으로 실천 되려면 기본적으로 부모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불효는 우리가 부모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부모들이 살아온 환경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전란을 겪으며 좌우익의 갈등 속에서 두려워 했습니다. 일제 침략과 6. 25 동란과 파르티쟌 운동으로 생과 사의 갈림길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생존 법칙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유교적 구조 속에서 속박되어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 결혼할 수 없었고 시부모에게 절대 복종해야 했고 아들을 낳지 못하는 이유로 갖은 핍박과 학대를 받았고 구타를 당하면서도 칠거지악이라는 정죄 때문에 함구했습니다.
우리의 부모들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정상적으로 가질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가치관과 인생관과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부모의 생각과 행동이 이해되고 그 마음을 헤아려 드릴 수 있습니다.
3. 신앙적인 효행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는 우리를 가지기 전부터 기도로 시작하여 뱃속에 있을 때부터 성경을 읽어 주고 찬송을 불러 주었습니다. 주일학교 다닐 때는 어떻게든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자라나게 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게 하려고 아침 일찍 깨워서 동전 하나 손에 들려서 보냈습니다. 청년 시절에 다른 도시에 가 있으면 주일을 지키는지 확인했습니다. 지금도 새벽마다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 잘하고 교회에서 봉사 잘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기쁨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기도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을 얻으며 살아갑니다.
이제는 우리가 신앙적인 배려를 해 드려야 합니다. 그들이 신앙 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도와 드려야 합니다. ①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②교회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 드려야 합니다. ③신앙관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들이 지켜온 신앙의 형태를 함부로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신앙적으로 흑백 논리의 교리 속에서 영적 자유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당시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교리를 세우는 것을 우선했기 때문에 다양한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토론과 배려와 포용과 협력과 연합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제가 대구에서 목회를 할 때 일입니다. 교회 앞에 고급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우리 교회에 등록되지는 않은 상태였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우리 교회를 지속적으로 나왔습니다. 그 시어머니는 권사이고 며느리는 목사 딸입니다. 그 며느리에게는 어린아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두 분이 모두 신앙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어머니는 새벽예배만 나오고 며느리는 주일 오전예배만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알고보니 그 두 분이 예배를 각기 다른 시간에 나오는 것은 서로 보기 싫어서였습니다. 그 집은 고부 갈등이 심한 가정이었던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제게 한 말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자신은 아들이 선볼 때 며느리 될 사람이 목사 딸이라고 해서 믿음이 좋을 것으로 생각해서 묻지도 않고 결혼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살다가 보니 믿음이 형편 없더라는 것입니다. 손자가 아프면 자기는 기도를 하는데 며느리는 감기만 걸려도 약을 먹이고 병원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신앙관과 우리의 신앙관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신앙관은 바뀌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신앙관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분들의 신앙관을 이해하고 인정해 드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목회자 아들은 아버지가 자기 학생 때 다른 아이들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자기에 대해서는 그런 따뜻한 사랑을 주지 않았다고 하여 그 상처가 닫힌 의식으로 자리하고 있고 그런 영향으로 지금도 아버지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부모 세대의 신앙과 신학과 목회 카테고리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만일 부모가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면 않고 예수를 믿도록 도와 드려서 구원 받고 천국 가도록 해 드려야 합니다. 많은 효행를 했을지라도 내세에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한다면 효행을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날 죽었습니다. 그 영혼이 음부로 내려갔습니다. 음부의 고통 중에 눈을 들어보니 자기 집 대문에서 헌데를 앓으며 개에게 주는 음식을 주어 먹던 거지 나사로가 아브라함 품에 평안히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소리질렀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눅16:19-25). 예수를 믿지 않고 죽으면 지옥이라고 일컫는 유황불못에서 밤낮 세세토록 고통을 당합니다 (계21:8,10). 벌써 죽을 때 두려워 합니다. 아무리 부모에게 잘해 주었어도 그들이 마지막 죽을 때 지옥의 사자들이 그를 붙들어 갈 때 가지 않으려고 발부둥 치는 모습을 본다면 장례 잘 치루어 드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죽은 이후 지옥에서 영원토록 고통 당하게 한다면 매년 제사 밥을 차려 드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평생 효도 제대로 못했어도 그들을 예수 믿게 하여 천국가게 한다면 가장 큰 효도가 될 것입니다.
結言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부모를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부모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해야 하며 필요를 채워 드려야 합니다. 친부모뿐 아니라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와 장인과 장모와 그리고 모든 연로자에게 그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전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속히 해야 합니다.
부모는 우리를 낳아 주신 분들입니다.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 피를 서말 서되를 흘린다고 했고 기를 때 젖을 여덞섬 너말로 키운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먹지 못할 때에도 우리는 먹였고 입지 못하면서도 우리는 입혔고 자지 못하면서도 우리는 재웠습니다. 그들은 공부를 하지 못했으나 허리 띠를 졸라 매가며 우리에게 공부를 시켰습니다. 이런 은택을 입었으니 당연히 공경해야 합니다 (레20:9, 신21:18-21). 무엇보다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했으니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는 당연히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요일5:3, 4:20, 마15:4-6, 막15:10, 딤전5:8, 레19:32).
1. 물리적인 효행을 해야 합니다.
러시아 혁명이 있을 때 공산당들은 집들을 모두 태워 버리고 곡식들을 모조리 없애 버렸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모두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때 모스크바로 여행을 갔던 어떤 사람이 들판에 주저 앉아 어린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어머니를 본 일이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풀뿌리를 캐다가 어린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여행하는 사람은 그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하고 기운이 없어 보이기에 어린 아이를 품에서 떼어 냈더니 그 어머니의 젖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젖꼭지를 칼로 잘라서 피를 빨리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먹지 못해서 젖이 나지 않고 아기가 젖을 달라고 울 때 그 어머니는 젖꼭지를 잘라 피를 마시우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는 우리를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는 희생으로 우리를 길렀습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주려 했던 이들입니다. 그들이 고생을 하면서라도 우리에게는 편안하게 살게 하려 했습니다. 그들은 먹지 못하면서도 우리에게는 먹이려 했고, 입지 못하면서도 우리에게는 입히려 했고, 자지 못하면서도 우리는 재우려 했고, 공부하지 못하면서도 우리에게는 공부를 시키려 했습니다. 만일 그것들이 우리에게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부모에게 그럴만한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미워할만한 내용이 있을지라도 그들이 당한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환경과 개인적 형편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들을 오늘날 우리의 환경과 우리의 관념에서 판단하는 것은 부모에 대한 모독이요 폭력인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려면 물리적인 부분부터 도움을 드려야 합니다. ①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드려야 합니다. 먹는 문제, 입는 문제, 잠자는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아픈 곳이 있을 때 진료와 치료에 힘써야 합니다. ②용돈을 드려야 합니다. 늙어도 다른 사람 몰래 쓰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③필요로 하는 것을 사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자랑거리가 되어 기쁨이 배가 됩니다.
어느 작은 어촌에 어린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늘 바닷가에서 놀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은 물새알을 발견하여 집으로 갖고 왔습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물새알로 맛있게 반찬을 해주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소년은 바닷가에서 노는 것이 아니라 물새알을 찾아 헤맸습니다. 하루는 물새알을 줍지 못하고 돌아오는데 어느 집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만히 가서 보니 암탉이 알을 낳고 우는 소리였습니다. 소년은 달걀을 갖고 집으로 왔습니다. 어머니는 달걀을 삶아 주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소년은 바닷가도 나가지 않고 남의 집 닭이 알 낳는 것만 살폈고, 소년의 도둑질은 습관화되어 갔으며, 어른이 되어 갈수록 대담해지고 규모도 커졌으며, 결국 사형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 그가 어머니에게 한 말이다. "어머니 내가 어린 시절 물새알을 갖고 왔을 때 제자리에 갔다 놓고 오도록 올바르게 가르쳐 주셨더라면 이렇게 죽는 신세가 되진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형수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부모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 양심을 버리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시대를 살면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살았다고 할 정도로 가난과 배고픔 속에서 살았습니다. 초근목피와 물로 허기를 채웠습니다. 오죽했으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속담과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속담까지 만들었겠습니까. 그들은 우리를 잘 먹이면 당신들을 잘 봉양하리라는 기대감도 한편에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들의 필요를 채워 드려야 합니다.
2. 정신적인 효행을 해야 합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한 리포터가 집을 나와 걸인이 된 어느 할아버지와 인터뷰한 일이 생각납니다. 그 할아버지는 자식에게 버림받아 방황하고 있었지만, 리포터가 그 아들의 이름과 주소를 묻자, 그 할아버지는 아들이 살고 있는 곳을 알면서도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아들의 명예에 해가 될까 염려해서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버렸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버리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부모는 당신들이 어떤 힘든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그 고통을 우리 앞에서 내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기쁘게 해주시려고 온갖 비위를 다 맞추어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고 즐겁게 해 드려야 합니다. 잠언23:25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잠15:20). 부모를 기쁘게 하려면 부모의 자존감을 세워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존감이 생기지 않으면 허탈해 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허무하게 생각합니다. 노인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 하는 심리적 부분은 외로움입니다. 소외감과 고독감입니다. 부모가 자존감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부모 위치를 세워 드려야 합니다.
한국적 상황을 고려하여 생각한다면 ① 말을 잘 들어드려야 합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 말을 잘 들어 드리는 것이 그 분들이 자존감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② 설명을 잘해 드려야 합니다. 부모는 무엇이든지 궁금해 합니다. 모를 때는 답답해 합니다. 그러므로 하찮은 것도 차근 차근 설명을 해 드려야 합니다. ③ 자주 물어 보아야 합니다. 아는 것도 부모에게 물어드릴 때 부모는 위치가 확인됩니다. ④ 결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부모가 원하는 것이라면 부모가 결정한 사안이라면 큰 문제가 없는 한 부모의 결정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 행동 요강들이 단 마음으로 실천 되려면 기본적으로 부모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불효는 우리가 부모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부모들이 살아온 환경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전란을 겪으며 좌우익의 갈등 속에서 두려워 했습니다. 일제 침략과 6. 25 동란과 파르티쟌 운동으로 생과 사의 갈림길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생존 법칙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유교적 구조 속에서 속박되어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 결혼할 수 없었고 시부모에게 절대 복종해야 했고 아들을 낳지 못하는 이유로 갖은 핍박과 학대를 받았고 구타를 당하면서도 칠거지악이라는 정죄 때문에 함구했습니다.
우리의 부모들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정상적으로 가질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가치관과 인생관과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부모의 생각과 행동이 이해되고 그 마음을 헤아려 드릴 수 있습니다.
3. 신앙적인 효행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는 우리를 가지기 전부터 기도로 시작하여 뱃속에 있을 때부터 성경을 읽어 주고 찬송을 불러 주었습니다. 주일학교 다닐 때는 어떻게든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자라나게 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게 하려고 아침 일찍 깨워서 동전 하나 손에 들려서 보냈습니다. 청년 시절에 다른 도시에 가 있으면 주일을 지키는지 확인했습니다. 지금도 새벽마다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 잘하고 교회에서 봉사 잘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기쁨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기도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을 얻으며 살아갑니다.
이제는 우리가 신앙적인 배려를 해 드려야 합니다. 그들이 신앙 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도와 드려야 합니다. ①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②교회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 드려야 합니다. ③신앙관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들이 지켜온 신앙의 형태를 함부로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신앙적으로 흑백 논리의 교리 속에서 영적 자유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당시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교리를 세우는 것을 우선했기 때문에 다양한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토론과 배려와 포용과 협력과 연합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제가 대구에서 목회를 할 때 일입니다. 교회 앞에 고급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우리 교회에 등록되지는 않은 상태였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우리 교회를 지속적으로 나왔습니다. 그 시어머니는 권사이고 며느리는 목사 딸입니다. 그 며느리에게는 어린아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두 분이 모두 신앙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어머니는 새벽예배만 나오고 며느리는 주일 오전예배만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알고보니 그 두 분이 예배를 각기 다른 시간에 나오는 것은 서로 보기 싫어서였습니다. 그 집은 고부 갈등이 심한 가정이었던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제게 한 말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자신은 아들이 선볼 때 며느리 될 사람이 목사 딸이라고 해서 믿음이 좋을 것으로 생각해서 묻지도 않고 결혼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살다가 보니 믿음이 형편 없더라는 것입니다. 손자가 아프면 자기는 기도를 하는데 며느리는 감기만 걸려도 약을 먹이고 병원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신앙관과 우리의 신앙관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신앙관은 바뀌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신앙관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분들의 신앙관을 이해하고 인정해 드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목회자 아들은 아버지가 자기 학생 때 다른 아이들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자기에 대해서는 그런 따뜻한 사랑을 주지 않았다고 하여 그 상처가 닫힌 의식으로 자리하고 있고 그런 영향으로 지금도 아버지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부모 세대의 신앙과 신학과 목회 카테고리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만일 부모가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면 않고 예수를 믿도록 도와 드려서 구원 받고 천국 가도록 해 드려야 합니다. 많은 효행를 했을지라도 내세에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한다면 효행을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날 죽었습니다. 그 영혼이 음부로 내려갔습니다. 음부의 고통 중에 눈을 들어보니 자기 집 대문에서 헌데를 앓으며 개에게 주는 음식을 주어 먹던 거지 나사로가 아브라함 품에 평안히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소리질렀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눅16:19-25). 예수를 믿지 않고 죽으면 지옥이라고 일컫는 유황불못에서 밤낮 세세토록 고통을 당합니다 (계21:8,10). 벌써 죽을 때 두려워 합니다. 아무리 부모에게 잘해 주었어도 그들이 마지막 죽을 때 지옥의 사자들이 그를 붙들어 갈 때 가지 않으려고 발부둥 치는 모습을 본다면 장례 잘 치루어 드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죽은 이후 지옥에서 영원토록 고통 당하게 한다면 매년 제사 밥을 차려 드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평생 효도 제대로 못했어도 그들을 예수 믿게 하여 천국가게 한다면 가장 큰 효도가 될 것입니다.
結言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부모를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부모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해야 하며 필요를 채워 드려야 합니다. 친부모뿐 아니라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와 장인과 장모와 그리고 모든 연로자에게 그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전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속히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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