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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은 자녀 위한 계명

본문

오늘은 이 말씀을 통해서 특히 부모님들보다는 자녀들의 장래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좋은 기업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 기업들이 쇠약하여지거나 쉬이 파산되지 아니하고 기업에서 오래도록 생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그런 복을 말씀을 통해 드리기 위해서약속 있는 첫 계명은 자녀 위한 계명이라는 제목으로 본문의 말씀을 생각하겠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 한 것이 혹 출애굽기 20장 1절로 17절 사이에 있는 열 계명 중에 첫 계명이라니 혹 제 일 계명이겠거니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계명은 십계명 중에 제 5계명입니다.
또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는 이 말씀 때문에 첫 계명인줄 알고 그러면 약속 있는 두 번째 계명도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도 해 보실 수 있겠으나 열 계명 중에 약속이 조건부로 종결되어 있는 계명은 이 5계명 하나뿐입니다. 그런 뜻으로서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첫 번째 계명' 하면 두 번째를 기대할 수 있으나 이 '첫 계명' 혹은 '첫 사랑' 이런 것은 그 자체로서 하나밖에 없다 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첫 계명을 우리말로 '유일한 계명' 또 영어로 말할 것 같으면 'Only Law' 이렇게 썼더라면 번역을 했더라면 더 이해가 쉽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열 계명을 다 읽어봐도 약속이 조건부로 붙어 있는 복이 약속되어 있는 계명은 이 한 계명밖에 없다 라는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이라고 했으니 그리하면 공경하면 이제 약속된 복이 소개 될 것 같은데 그 복은 부모님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들에게 한 약속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 제 5계명을 보면 부모님들을 위한 계명인 것처럼 우리가 쉽게 생각하지만 사실상 이것은 자녀들을 위한 계명이 되고 또 이 계명의 조건부로 붙어 있는 복이라는 것이 부모님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공경하는 자식들에게 약속되어 있다 라는 것을 먼저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에베소서에 나타난 이 내용만 보면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그저 총괄적으로 잘되고 또 오래 사는구나. 장수하는구나. 오래 살려면 부모 잘 섬기라' 이렇게 아마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그러나 실질적으로 가보면 십계명을 내린 출애굽기에 가서 보면 조금 다른 내용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것도 오늘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이 열계명 중에 복이 약속되어 있는 이 유일한 제 5계명 그래서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 이렇게 말씀했는데 그러면 약속 있는 첫 계명은 그렇다 치고 약속이 없는 다른 아홉 계명은 그러면 어떻다는 것이냐
우리가 대체적으로 알기로 계명을 지키면 잘 살고 계명을 어기면 벌받는 줄 알고 있는데, 다른 아홉 계명은 어떠하냐 이와 같습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남자로 태어났으면 정년기에 이르면 병역의 의무를 다하라. " 이것은 아주 국가적인 명령입니다.
또 "소득을 가진 대한민국 백성이면 다 납세의무를 하라. " 또 "시내에 가서 빨간 신호등에는 가지 말고 섰다가 녹색신호등으로 바뀔 때 가야한다. " 이것 다 규범으로 법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이 빨간 신호에 가지 아니하고 세금을 잘 내고 또 남자들이 군대에 가서 병역의 의무를 다 지켰다 라고 한다 라고 해서 복이 조건부로 붙어 있지 않습니다. 군대 갔다 왔다 라고 해서 몇천 만원 보상금을 준다 이런 조건이 없습니다. 세금을 잘 내었다 라고 해서 상을 주지 않습니다. 녹색 신호등에 걸어가고 또 빨간 신호등에 철저히 서 있었다 라고 해서 그 신호 지킨 사람에게 사이다라도 한 병 주면서 목을 축이라고 보상을 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법들을 이러한 국가가 만든 법들을 잘 지키면 국민으로서 국민의 권리를 가지고 당당하게 국민처럼 살아갑니다. 달리 보상이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법들을 지키지 아니하게 될 때에는 어김없이 큰 벌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십계명을 대할 때 안 지키면 벌받는다 라는 그런 느낌은 강합니다. 그러나 잘 지키면 뭐가 있을까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잘 지키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내신 법을 따라 여호와 하나님 주신 축복 속에서 그저 그렇게 잘 살게 되는 것이다 그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이 열 계명 중에 단 한 계명에만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여호와 하나님이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렇게 큰 보상이 보장되어 있는 유일한 계명입니다. 다른 계명에는 이런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자녀들로 하여금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이 젊은 자식들이 훗날과 그의 또한 후손들이 잘 살게 되는 이런 약속 걸려 있는 복을 이 5계명에 주신 것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한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매우 비중있게 다루신 계명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보장된 복의 정확한 내용은 출애굽기 20장 12절에 이 5계명이 나와 있는데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줄 땅에서, 혹은 이미 주었으면)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렇게 복이 조건부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부모를 공경하면 다른 계명들과 같이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계명에 관한 한 이대로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을 주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렇게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땅이라는 것은 단순히 그저 토지만을 말하는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이 계명을 내실 때에는 그때에 생업의 터전이 되는 것은 땅밖에 없었습니다. 농사도 땅에서 지어야 되고 그리고 짐승을 먹여도 초지가 있어야 되는 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땅뿐만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종류의 산업들이 있어서 직장들이 있고 또 그 소득원이 어떻게 많은지 그것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써 여호와 하나님께서 네게 주시는 땅이라고 하는 것을 오늘날 굳이 풀이를 한다면 농부에게는 역시 농토가 되겠고, 사업가에게는 기업이 되겠고 그리고 직장인이면 좋은 회사가 되겠고, 남편에게는 아내가 될 것이고 그리고 아내에게는 남편이 될 것이며, 부모에게는 좋은 자식이 나겠고, 좋은 자식에게는 좋은 부모가 있는 겁니다.
자식들에게도 그 부모가 자기 생활의 터전이 되고 공부도 할 수 있고 다 도움을 받게 되는데 부모가 잘되면 아주 편안하고 복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마는 부모가 잘되다가도 실패하게 되면 참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네게 주는 땅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 여러분이 소득의 원으로 갖고 계시는 그리고 앞으로 받게 되실 모든 직장이면 직장 또 사업체이면 사업체 또 친구면 친구, 남편이거나 아내거나 부모이거나 자식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실 보장된 복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에 이런 좋은 것을 주시느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게 좋은 직장을 줄 것이다. 좋은 사업체를 줄 것이다. 그리고 좋은 남편을 줄 것이다. " 물론 결혼할 때에는 좋은 남편을 만났는데 그 남편이 곧 병들거나 사업에 실패하거나 하게 되면 또 생명이 길지 않지요. 그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게 이 좋은 것들을 줄 것이다. "라고 말씀했고 그리고 그 준 것에서 거기서 네 생명이 길리라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꼭 장수한다는 의미보다는 이 땅에 나서 부모를 공경해서 '부모 공경한 자식들은 오래 산다' 그런 의미보다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의 현장에서 그 복이 떠나가지 아니하므로 그 복이 쇠하여지거나 파산되지 아니하므로 거기에서 네가 사는 날이 길리라" 그랬다 그겁니다.
평생 직장이라고 잡은 것이 시작하면 실패하고 남이 잘된다고 해서 붙잡았더니 자기가 붙잡고 나니 전부 손해 보고 이렇게 해서 옮기고 옮기고 해서 일생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말하자면 소득의 근원이 되는 현장이 복되어서 거기에서 네가 오래도록 살고 네 평생을 살뿐만 아니라 네 자손들도 살게 될 것이라 라고 하신 이 복이 어디에 조건부로 보장되어 있는 복이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그 기업이 네게 오래도록 부요와 행복과 넉넉함을 제공할 것이요, 너는 거기에서 너와 네 가족의 삶이 길리라. " 바로 그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젊은 세대에 계신 우리 형제 자매들께서는 오늘 이 제 5계명에 보장된 축복은 보장된 복은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부모를 공경할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니 그저 '부모에게 공경하고 순종해서 좋다. 이것이 좋은 일이다' 막연히 그리 생각하지 마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장래에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과 좋은 배우자와 좋은 집터와 그리고 행복한 모든 여건들, 이것을 주실 것이니 이 약속을 여러분은 믿고 그 약속은 부모를 공경한다는 조건만 충족시키면 여호와 하나님의 열 계명 중에서 유일한 약속의 첫 계명이니 내게 이루어질 것이다 라는 기대를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실망함이 없을 줄로 믿습니다.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 과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어떤 것이며 공경치 못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오늘 이미 제시해드린 인용성구 창세기 9장의 사건으로써 한번 살펴볼 수가 있겠습니다. 창세기 제 9장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제 9장 20절부터 27절 사이에 말씀을 제가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셈과 함과 야벳의 아비 노아라는 노인에 대하여 말씀을 드려 볼까 합니다. 이 노아라는 분에 대하여는 창세기 6장 8절로 9절에 소개하고 있는데 그 소개를 빌려본다면 "여호와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여서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한 위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많은 인물들이 있으나 이 노아처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은 사람이 가히 또 있겠는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노아는 어떤 때에 이처럼 의인이었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며 당세에 완전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가
당시에 세상은 죄가 관영했습니다. 온 세상에 죄가 넘쳐서 여호와 하나님이 그 지으신 사람들을 인하여 차라리 사람을 창조한 것을 한탄하시면서 물로써 다 쓸어버렸습니다. 그러한 시대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요 여호와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로서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을 했으니 그는 대단한 인물입니다.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 8절로 9절에는 그에 대하여 이처럼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이때는 그가 가히 젊었을 때요, 이제 창세기 9장에 나타난 이때는 상당히 늙었을 때입니다. 자기 가족만 구원을 받고 땅에 내려와서 농사를 지었더니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이제 긴장이 풀리고 포도주를 만들고 보니 한 잔 두 잔 처음에는 맛보자 하고 먹게 되었는데, 이 포도주를 마시다 마시다 너무 과음을 해 가지고서 이 노인 노아께서 몸에 열이 나니까 포도주도 잘 익었으면 좀 덜하겠지만 새 술이었던 모양이지요.
그래서 열이 나니까 자기 자신도 모르게 윗껍데기 하나 벗어 던지고 우리 자다가 더우면 이불 차버리고 추우면 잠 깨지도 않았는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끌어다 덮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듯이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열이 온 몸에 차고 넘치니까 윗껍데기 하나 겉껍데기 벗어 던지고,
또 꿈틀거리고 자다가 그래도 열이 나니까 속껍데기 벗어 제끼고, 상체만 그랬으면 그래도 괜찮았는데 열이 나면 상체만 납니까 아랫도리도 열이 나니까 바지 훌러덩 벗어 던지고 다 깊은 잠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했으니까 벗었습니다. 그 정도만 벗어도 되는데 속옷까지 홀라당 다 벗어버리고 쭉 날개를 펴고 그것도 밤도 아닌 낮 시간이었던 모양인데 그냥 깊이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치는 가려야되지 드러내어서는 안되는 겁니다. 당시에나 지금이니 가정의 어른이 숨겨야 될 부분을 윗도리 다 벗고 아랫도리 다 벗고 속옷까지 다 벗고서 국부를 내어놓고 쭉 뻗고 드러누웠다는 이것은 큰 허물이며 큰 수치입니다.
그러나 이 수치를 드러내지 말고 오히려 드러날 형편에서라도 감추어야 되는 것이 기본인데, 나이가 많으니 주량도 조절하지 못하고 또 술 좀 잡수시고 나니까 이제는 몸도 가누지 못하고 그저 자연 그대로 훌러덩 벗어서 그리 할 수 없는데 수치를 드러내었다 그겁니다.
자기 부인만 있는 집도 아니요 아들들도 있고, 자기에서 난 아들들이야 또 그렇다 치더라도 자부가 셋이나 있는데 이렇게 훌러덩 벗고 뻗었으니 이것은 어디에 기인했느냐 이 노아가 팔팔할 때에는 소개했던 그대로 완전한 자라 그랬습니다. 실수가 없는 자다 그겁니다. 제어할 능력이 다 있었다 그겁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지니까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한 자로서 의인이고 젊어서 완전한 자였지만 나이 많아지면 그 완전함이 지속될 수가 없는 겁니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지요. 기력도 약해지고 판단력도 줄어지고 절제력도 없어집니다. 그래서 아니 내어놓을 것을 내어놓고 나 몰라라 하고 깊이 잠이 들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서 이것을 성경에 담기게 하신 성령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으로 과연 무엇을 우리에게 말해주려고 이 사건을 기록하셨느냐 그겁니다. 노아가 술에 대취해 가지고서 온몸에 옷 하나 걸치지 아니하고 다 벗어버린 수치를 드러낸 이것에 대하여 초점이 있지 않습니다. 의인이던 사람이 은혜 입은 사람이 홀라당 벗고 있어서야 되느냐 하고 책망한 내용이 한 마디도 없습니다. 그가 드러내지 말아야 될 수치를 드러내었다 라고 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노아에게 책망을 했거나 혹은 그러지 말라고 말씀한 내용도 단 한 마디가 없습니다.
이 사건을 왜 기록했느냐 노아가 이러한 실수를 했다 하여 노아의 이 사건을 다루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나이 많아진 부모가 이러한 일을 저질렀을 때 그 자식들이 어떻게 했느냐를 이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진정한 핵심적인 뜻은 실수한 노아에게 무엇을 요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또 무엇을 어떻게 하시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런 실수를 하게 된 노인 부모가 있을 때 그 자식이 과연 이 부모에 대하여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한 경우는 복을 받고 한 경우는 저주받는 것을 이 성경을 통해서 알려주려고 하는 것이니, 이 창세기 9장에 나타난 노아의 사건은 노인들을 위한 성경이기보다는 젊은 자식들을 위한 젊은 자식들에게 깨우침을 주려하고, 그들의 장래에 진정 복을 받는 길을 제시하기 위해서 이 사건을 기록한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이 같은 사건이 있은 후에 과연 어떻게 되었는가 아비의 수치를 세 아들 중에 함이 발견한 것 같습니다. 함이 아버지의 홀랑 벗은 것을 보고 가까이 가서 좀 들여다 본 것 같습니다.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하면 곧바로 자기가 확인한 것을 바깥에 나가서 그 사실을 이웃들에게 소문을 내었습니다.
셈과 야벳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 전해주는 것이 걱정스러워서 형제들과 의논하고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라는 느낌은 주지 않습니다. 다만 자랑삼아 소문내고 싶은 그런 입들처럼 소문을 낸 것입니다. 이 소문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소문꺼리가 발생하면 멀리서 보지 않고 가능한 한 확인을 하고 싶고 확인을 해야 말꺼리가 많아지지요.
그래서 이 형제들에게 가서 자기 아비의 수치를 보았노라고, 우리 아버지가 홀라당 벗고 지금 두 팔과 두 다리를 벌리고 드러누웠다고 이렇게 소문을 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어떻게 하면 이 수치를 가리겠느냐' 그런 생각 없습니다. 이 함은 아비의 수치를 확인하고 싶었고 확인된 수치를 혼자만 안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전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셈과 야벳은 충격을 받습니다. 아버지의 하체가 드러났다는 소식을 이 함으로부터 전해 듣고는 충격을 받고서 별 말 하지 않습니다. 말이 필요 없습니다. 두 형제가 스스로 자기 아버지 현장으로 갑니다. 형제의 말을 듣고 보니 함이 내는 소문을 듣고 보니 아버지가 수치를 드러내었다는 것은 충분히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 형제는 옷을 취해 가지고서 아버지에게로 접근해 갑니다. 마주보고 가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눈들이 아버지의 그 하체를 보게 될까봐 뒷걸음질쳐서 들어갔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아버지의 발이 보였을 테고, 그 다음에 무릎이 모였을 거고, 무릎 위에 몇 뼘쯤 올라가면 그야말로 수치가 있을 위치가 이제 확인이 될 만 하니까 자기들이 그 현장에 눈을 고정시키기 아니하고 그 현장을 보지 아니하려고 오히려 피해서 옷으로써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드렸다 그것입니다. 함과 셈의 행한 행동은 전혀 그 출발에서부터 벌써 마음이 다른 겁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드리고 그 수치를 덮어드리고 그대로 바로 서서 걸어 나왔습니다. 이 사람들이 아버지에게로 접근해 간 것은 함이 소문을 내기 위해서 접근해 간 것 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아버지의 부족한 면을 아버지의 수치스러운 면을 가리워드리기 위해서 접근해 갔던 것이지요.
그리고 얼마나 이 셈과 야벳이 그 아버지에 대하여 존경심이 강했던지 "우리도 저 형제 함처럼 혹 보게 되면 바깥으로는 소문을 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 눈으로 보아서 아버지의 그 수치가 자꾸 머리에 떠오르면 어떡할까 내가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적어지면 어떡할까 차라리 보지 않겠다. " 하고서 뒤로 돌아서서 아버지에게 접근해서 그 수치를 가려 주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과연 이 세 아들 중에 두 가지의 모습이 드러났는데, 누가 부모를 진심으로 공경하며 누가 부모를 불경으로 대했느냐 셈과 야벳은 진심으로 그 아비의 권위를 인정해 드렸고 그 아버지를 공경하는 마음에서 이같은 행동을 했지만, 함은 부모의 수치가 나타나게 되니까 부모의 약점이 드러나게 되니까 그 약점을 더 확인하고 싶고,
혹 아닌가 싶어서 수치가 더 수치인 것처럼 확인을 하고 싶어서 확인을 하고 그리고 확인된 수치를 바깥에 나가서 선전함으로써 아버지의 명예를 그 부모의 부끄러움을 바깥 사람에게까지 전파하였으니 이 사람의 행동을 보고 부모를 공경한다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같은 성경 사건에서 에베소서 6장에 나타난 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땅에서 잘 되고 거기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신 이 약속 있는 첫 계명, 이 첫 계명 앞에 서게 된 우리들 자신이 이 성경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한번 살펴보고 우리의 앞날에 다가올 이런 일들을 미리 예측하면서
우리들을 낳아서 키우고 공부시키고 우리가 다칠까봐 어찌될까봐 그 부모들은 제대로 잡숫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용돈 받아서 요즘 나온 저 외국에서 들어온 음식도 사 먹을 수 있고, 영화도 보러 가고, 재미난 책도 사서 읽고 이렇게 하는데, 정말 그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대해서 사랑을 많이 베풀었는가 이처럼 우리를 길러주시고 우리에게 대해서 헌신적 사랑을 하셨으니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노아처럼 부모님들이 젊었을 때에는 완전에 가깝고 또 여호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을 수도 있고 또 의인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젊어서 의인이요 완전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서 여호와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데도 여호와 하나님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한 그런 인물 노아라도 나이가 많아지면 수치를 가릴 수 없게 된다 그겁니다. 판단력도 줄어들고 기억력도 없어지고 그리고 조절 능력도 없어져서 이제 그만 자기의 험한 수치를 전에는 가렸는데 나이가 많아지면 못 가리게 된다 그겁니다.
이 역사상의 노아 같은 위인도 나이가 많아지면 이렇게 되는데 오늘날 우리들의 부모님인들 연세가 많아지면 천국 갈 거리가 짧아져 가면 젊어서 당당한 것처럼 완전하고 힘이 넘치고 절제력이 강하고서야 천국 어디 가겠습니까 그것이 영원히 간다면 이 세상에 평생 살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기회를 다 지나고 그러한 세월을 다 지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가기에 가까워지는 분들은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노아의 말년 현상과 같이 수치들이 드러나는데 이것을 커버할 능력이 없게 됩니다.
노인이 되면 몸에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매일 매일 씻어도 연세가 많아지면 냄새가 난다는데 누가 씻겨주지도 않고, 혼자서 씻을 수도 없고, 매일 목욕탕 간다면 자녀들이 또 불평할 것이고 그러다 보니 냄새가 나기도 하고 투정이 심해집니다.
연세가 많아지면 거꾸로 어린아이처럼 되어 간다 라는 말도 있지요.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생각할 능력이 없어집니다.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 뇌의 세포가 줄어들기 때문에 단순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집이 강해집니다.
유들유들하고 온유한 그런 것은 살이 빠지면서 함께 빠져가버리고 딱딱한 뼈만 끝까지 버티고 남는 것처럼 고집과 잔소리가 더 심해지는 것도 사실인데, 젊어서는 이런 것이 절제가 되지만 연세가 많아지면 절제가 잘 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쉬 잊어버립니다. 자녀들이 나가면서 "오늘 뭐해 드십시오. 몇시 되면 전기밥솥 코드를 좀 꽂아주십시오. 보일러를 틀어주십시오. " 해도 그것을 젊어서는 다 온 살림을 다 하던 분들이더라도 연세가 많아지면 그것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했던 말씀을 또 하고 그 말 좀 그만 하라 해도 또 하고,
그것뿐입니까 용변을 보시고서 손에다가도 묻히고 옷에다가도 묻히고 변기에다도 묻히고, 가끔 젊은 사람도 실수를 하기 때문에 용변 다녀오면 반드시 다들 손을 씻어라 하는데 연세가 많으신 분이야 그것이 젊은 사람같이 젊을 때처럼 되지 않지요.
그러면 그런 것을 묻히기도 하지요. 전화를 받기는 받았는데 그 다음에 또 전화를 하니까 하루 종일 통화중이라, 전화를 받고 수화기를 딴 데다 내려놓았다 그겁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다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연세가 많아지시면 젊은 시대에 이렇게 훌륭하던 분들도 아마 최고의 인물이었다 라고 할 수 있는 노아도 이렇게 되는데 누군들 이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같은 일들이 집밖으로 나가는 집안이 있고 이같은 부모님들의 가리지 못한 수치가 집안에만 머무는 집이 있다 그겁니다. 오늘 이 단에 서서 목사인 제가 어떻게 그런 일들을 여러분께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면 기억력이 없어지는 문제며 쉬 잊어버리고 배설물을 손등에 묻히고 혹은 옷에 묻히고 하는 것을 제가 부모님을 모시고 있지도 않은데 어찌 다 알겠습니까 아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함들이 많아서 그렇다 그겁니다.
어떤 함은 부모님의 손등에 보니까 뭔가 누리끼리한 게 묻었는데 그게 무엇인가 확인하고 싶었다 그겁니다. 그러나 이 할머니는 자식들이 나간 후에 된장 담아놓은 독(도가지)에 가서 그것을 꾹꾹 눌러야 또 되니까 그것을 누르고 또 뭡니까 깻잎으로 눌려서 된장 국물이 올라오게 하느라고 그렇게 해서 손등에 된장이 묻었는데,
함같은 자식이 그 된장을 보고 된장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뒷처리를 잘못해서 묻은 줄로 알고 가까이 가 가지고서 그 할머니 손을 땅겨서 맡아보았다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냄새가 그 냄새가 안 나니까 실망을 해 가지고서 "늙으니까 냄새도 없어졌네" 이런 분들까지 있다는 그겁니다.
이 함은 어떤 사람이냐 자기 아버지의 수치가 있을 때에 가려줄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소문을 내고 싶어서 가까이 가서 확인까지 한 사람이다 그겁니다. 이 소문이 집밖으로 나갔다 그겁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어찌 했느냐 부모에게 실수가 있음직하니 자기가 스스로 확인하는 것마저 싫어했다 그겁니다. 소문을 안 내어야 되고 덮어드려야 되지만 내가 혹 보고 나면 뭔가 마음속에 꿈에라도 헛소리를 할까봐 차라리 안 보려고 했던 셈과 야벳 그는 뒤로 들어가서 그의 노인의 그 아비의 수치를 가려드렸다 그겁니다.
이 집에 함이라는 아들이 없고 셈과 야벳만 있었으면 이 노아의 사건은 우리가 성경에서 읽어 볼 수가 없을 겁니다. 연세가 많아지면 다 이런 실수가 있지요. 있지만 실수를 가리는 자들이 있고 이것을 바깥에 드러내어 그 부모의 명예를 손상시키고 그 부모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그의 약점을 더 드러내기 위해서 오히려 보태기까지 하는 이런 경우의 자녀를 둔 가정도 찾아볼 수가 있어요.
저는 목사로서 이 말씀 좇아 평가들을 해 보았어요. 참 어느 어느 집에도 노인이 오래 사셨는데 그 노인이 어찌 그리 깨끗하게 늙으셨고 곱게 늙으셔서 깨끗하게 주님 앞에 가셨을까 할 만큼 아무 불평이 나오지 않았어요. 좋은 얘기만 나왔어요.
그러나 어떻게 좋을 수만 있겠습니까. 노아 같은 사람도 실수가 있는데 연세가 많고서 실수가 없다면 그게 거짓말이지요. 문제는 그러한 부모님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부모님들을 모시는 자녀들에게 달렸다 그겁니다. 그래서 부모들의 허물스러운 것이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대문 밖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감추어지고 덮어주었던 그 집에 후손들이 어떻게 되느냐 정말로 약속 있는 첫 계명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철저하시다는 것을 저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입니다.
"너와 네 자손들이 여호와 하나님 주시는 좋은 직장과 좋은 사업과 좋은 배필과 좋은 부모와 좋은 자식 얻어서 거기에서 네가 누리는 행복이 길 것이라"라고 하는 이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복을 주어 네게 좋은 기업을 줄 것이며, 그 기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라고 하는 열 가지 계명 중에도 약속이 붙어있는 복이 보장된 이 유일한 첫 계명,
이 계명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철저하신 것을 저는 그의 종 목사로서 발견하고 다른 여러 이유로도 여호와 하나님이 여전히 살아계신 것을 믿지만 각 가정마다에 셈 종류 야벳과 셈같은 자녀들의 현실과 장래와 그리고 함같은 자의 현실과 장래가 극명하게 달라지는 것을 보고 약속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과연 이 사건이 창세기 9장 20절로 27절에 있는데 다시 한번 읽으면서 같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제 9장 20절 이하를 읽습니다.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로되 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하고 그 후에 곧 노아는 죽었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25절 이하에 보면 아비의 수치를 가리워드리지 못하고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소문을 낸 사람은 함인데 왜 가나안이 등장하고 있는가 이것은 22절에도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라고 했습니다. 놀랍게도 저주를 받았던 이 함은 그 자식이 날 때에 지금 이 지구촌에 까만 자로서 모든 다른 대륙과 다른 민족의 종의 종이 되어 있는 그 가나안을 낳게 되었다 그겁니다.
그래서 이 가나안의 아비 함이라고 그랬어요. 어찌 본인만 저주를 받고 말겠는가 본인이 저주를 받으니 본인의 아들과 후손이 영원토록 셈 족속과 야벳 족속의 종이 되었다 그겁니다.
셈 족속이면 누구겠습니까 오늘 저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 족속에서 태어나는 탄생하는 그 족속이 되겠고, 야벳은 누구겠습니까 저 서양에 잘사는 부요한 나라들, 온 세상을 다 점령하여 해지는 시간이 없다 라고 하는 나라들 그게 야벳족인데,
이 야벳족은 부요만 한 것이 아니라 셈의 집안에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도 섬겨서 복을 받으면서 창대 하게 살고 또 셈의 집안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대를 이어 큰복을 누릴 것이라 했는데, 함의 후손 가나안은 셈의 집안에도 종이 되고 야벳의 집안에도 종이 될 것이라 라고 노아가 말하였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노아의 말대로 다 그대로 되게 하셨던 것을 그때로부터 지금에 이르러 우리들이 확인하고 있는 바입니다.
열 계명 다 중요하지만 그 중에 제 5계명에 대하여서만 약속 있는 계명으로 유일하게 특별취급을 한 것은 이것이 중요하다 그것입니다. 자녀들의 장래를 위하여 중요하고, 나이 많은 분들의 보호를 위하여 중요하고 그래서 각 가정마다 봄철이 되든지 여름철이 되든지 가을철이 되든지 겨울철이 되든지 항상 수치는 덮어주고 가족들의 좋은 것만 칭찬하여 담 밖으로 흘러나가게 되면 훈훈한 봄바람이 계속 불 것이 아닌가 바로 그것입니다.
아마 노아의 포도주 먹고 옷을 다 벗고 있었던 그날 그 집은 상당히 살벌했을 겁니다. 옷이 입혀지지 않고 덮여져있는 것을 보고 술이 거의 깬 노아가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했어 내가 옷을 벗어 이렇게 덮혀져 있는가" 내용을 알게된 노아는 함에 대하여 진노를 했습니다.
그래서는 저주를 받았고 아비의 수치를 직감한 두 아들 셈과 야벳은 자기가 차라리 보지 않으면 소문 낼 것도 없고 자기 마음속으로도 아버지의 권위를 떨어뜨릴 그럴 이유가 없겠다 싶어서 뒤로 들어가서 옷을 덮어드렸던 두 아들로 구분이 되는데,
그러나 이날에 노아가 화가 나서 함에 대하여 저주는 했겠지만 그후에 함의 아들 가나안으로 나게 되고 가나안의 조상이 되어,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남들의 종이 되도록 태어났으니 종이 되려면 무엇을 갖춰야 됩니까 머리가 없어야 됩니다. 머리 좋은 사람은 종 되지 않습니다. 머리가 좋으면 민족 위에 뛰어납니다. 남의 머리될지언정 꼬리 되지 않습니다.
꼬리가 되려니 태어나는 자식들이 덩치는 큰데 누가 봐도 인정을 못 받을 것만큼 색이 변하고 그리고 머리가 없어졌다 그겁니다. 바보들만 나게 되었다 그겁니다. 그렇게 되니 이 세상에서 경쟁력이 없어지니 어떻게 승리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되는 것을 이 노아는 그 후에도 상당한 기간동안 살면서 보았을 테니 성이 났을 때에는 저주를 했지만 그 자식의 후손들이 계속 저주를 받아 머리 없는 자식이 나고, 남의 집 머슴이나 살아 마땅할 그런 자식들이 계속 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좀 상하지 않았겠는가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화가 났을 때에는 쓸어 없애지만 그리고 나중에는 한탄하시고 다시는 물로 멸하는 일이 없겠다 라고 여호와 하나님도 하셨고, 우리가 그 형상과 그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으니 오늘날 부모님들이 막상 자녀가 잘못되는 것을 보고 좋아하실 리가 없겠지요.
그래서 자녀들이 부모에게 대하여 잘못해도 축복만 하는 그런 부모님들이 계십니다마는 부모가 축복만 한다고 그 자녀에게 복이 될 수 없는 것은 부모의 축복보다 더 위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된 첫 계명이 있어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서야 복을 빌어 준다고 해서 복이 될 수 없는 것이 이 계명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엄밀히 따져서 보면 함이 이처럼 저주를 받은 원인이 어디에 있었느냐 부모에게 있었습니다. 부모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함이 소문 낼 일도 없고 저주받을 일도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노아가 저주는 해 놓고서 자식이 잘못되는 것을 보면서 "아이고 내가 잘못이야. 내가 잘못해야. 무엇 때문에 포도주를 그렇게 많이 먹었던가" 아마 후회도 있었을 것인데 혹 이런 후회를 하시고 싶지 아니한 부모님들 계시면 또 자녀들이 잘못되는 꼴을 아무래도 보시기 싫으실 부모님들께서는 오늘 에베소서 6장 1절부터 4절에 있는 본문 가운데 4절만 한번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님들께 드리는 말씀이니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하신 이 말씀을 기억하고 가능한 한 자녀들이 함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어르신들께서도 할 수만 있으면 자녀들이 슬픔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잘 양육하라는 이 말씀도 한번 기억에 담아 두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당부합니다.
찬송합시다. 305장 찬송 부르시겠습니다.
오늘 이 가사를 보면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라고 되어 있는데 사철에 어찌 봄바람 있겠습니까. 봄에는 봄바람이요 여름에는 여름바람이요 가을에는 가을바람 겨울에는 겨울바람일텐데 사철에 봄바람이 계속 불어서 이어진다 라고 되어 있고 또 이런 집에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했어요.
이것은 여러분이 살다보면 봄기운 나는 그런 때도 있겠지만 무더운 여름도 있고 또 가을도 있고 가지만 앙상한 겨울도 여러분 가정에 발생할 겁니다. 그러나 어떠한 사건이 있다 하더라도 셈과 야벳같은 마음만 가진다면 언제든지 겨울이라도 봄바람이 울타리 밖으로 나갈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봄바람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즉 부모가 큰 실수를 하더라도 또 형제가 큰 실수를 하더라도 더 나아가서 교구의 교구장이 실수를 하더라도 담임목사가 실수를 하더라도 샘과 야벳 같은 마음을 가져서 허물을 덮어주기를 열심한다면 함같이 드러내기를 열심하지 아니하고 덮어주기를 열심한다면 그 집과 그 현장에 어떤 계절이 온다할지라도 봄바람이 이어질 줄을 믿습니다.
이리 봄바람이 이어지는 곳에 약속하신 첫 계명 5계명의 약속을 보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러한 집과 그러한 교회와 그러한 현장은 즐거운 동산 될 줄 믿습니다. 함께 찬송합시다. -찬송-
여호와 하나님의 내신 열 계명 가운데 약속 있는 첫 계명, 유일한 계명 제 5계명은 자녀들을 위한 계명이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가 주는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했습니다.
그동안 부모님들을 잘 모셔오는 자녀 여러분, 그 부모님들 연세 많으셔서 더러 허물이 드러났겠지만 바깥에 그 누구도 그 부모의 허물을 모르도록 셈과 야벳처럼 덮어드린 자녀 여러분, 그래서 여러분께 여호와 하나님이 좋은 직장과 거기서 오래 즐기고 부요할 수 있는 좋은 자리를 허락해 주셨으며 또한 주실 겁니다. 거기에서 여러분의 생명이 길고 거기에서 여러분의 후손까지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도록 약속 있는 첫 계명을 잘 헤아려 지켜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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