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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부모를 공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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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자식들에게 받으신 것이 있으십니까
저는 두 명의 청년들로부터 두 개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너무나 예쁘게 생긴 빵, 그위에 정성어린 감사카드였습니다. “베푸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라고 적힌 카드와 맛있는 미니케익! 그 안에 고마움이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굳게 생각했습니다. ‘이 빵 혼자만 먹어야지~’
또 하나는 편지봉투에 담긴 가슴뭉클한 편지 한통과 사진 한 장이었습니다. 힘내시라는 위로와 사랑고백()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 사진의 청년은 그야말로 꽃미남()였습니다. 예찬이였습니다. 두 청년의 마음에 기분이 Up!됨은 당연한 일이었지요.
자식으로부터 받는 보답! 그것은 곧 부모의 영양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와 가장 추한 이야기는 아마도 부모님께 대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하나는 효도요 또 다른 하나는 불효일 것입니다.
7일 어버이날 기념식에서 나봉덕(羅鳳德58여전남 무안군 몽탄면)씨는 국민훈장 목련상을 받았습니다. 105 세 된 시어머니를 40여년 가까이 모시고 살아온 나씨는 19세에 결혼했습니다. 그는 33세에 남편과 사별한 뒤 당시 69세였던 시어머니와 12, 9, 6세였던 세 아들의 생계를 떠맡아야 했고, 농사 행상 막노동을 했습니다. 나씨는 고단한 인생이었지만 세 아들 모두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키웠습니다. 그러던중, 시어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왔습니다. 그분은 시어머니의 대소변 받아내면서도 "그래도 몸은 건강하시니다행"이라고 말합니다. 그분은 수줍게 수상소감을 말씀하십니다. "부모에게 자식이 잘하는 게 뭐가 큰 일이냐"고...
그런가하면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강변에 버린 50대 아들이 있었고, 자기가 사놓은 김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9차례나 흉기로 찔러 죽인 20대가 있었으니...... 말세아닙니까! ‘인간 끝자락’인 것입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 부모를 거역하며”(딤후 3:2) ... 마지막때를 알려주는 모습입니다. 자기!, 돈!에 그만 부모를 져버리는 때! 그 때가 세상의 끝이요 인생의 끝인 것입니다.
“자기의 부모를 섬길 줄 모르는 사람과는 벗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첫걸음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쏘크라테스)
한자의 孝자는 자식이 부모를 머리에 이고(모시고) 산다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어떤이들이 잘못 알고있습니다. 기독교가 ‘효’에 대하여서 소극적이라고~ 그러나 이는 성경을 잘못 안 것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쩌면 신앙을 잘못 가르치고 또 잘못 배워서인지도 모릅니다. 먼저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잘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부모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듯! 또한 부모를 섬기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주께 하듯하라!” 부모님이던지, 자식이던지, 교우던지, 벗이던지... “주께하듯하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듯 부모를 섬기라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섬기라”
“주안에서 내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그렇습니다. 부모공경은 착한일이 아닌 ‘의’ 마땅한 정의라는 것입니다. 효를 ‘정의로운 일’이라고 가르친 종교는 기독교뿐입니다. 10계명가운데 인간에 관계한 계명중에 첫 번째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도적질하지말라’, ‘살인하지말라’ 보다도 더 앞에 있는 계명입니다. 뿐만아닙니다. “부모를 친자는 돌로치라”고 하셨습니다! 살려두지말라!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부모에 대한 깍듯함(!)을 강하게 주장한 종교가 이 땅에 또 있습니까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신앙의 척도를 부모 공경을 보면 안다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28~30에서는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자는 부모를 거역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효는 곧 신앙의 증거란 것입니다. ‘효를 가늠하는 것이 곧 신앙의 가늠’이란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부모공경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할 것”까지 보장, 약속하셨을까요! (부모공경에 경품()거신 여호와 하나님!)
부모공경은 먼저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를 거역치말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부모는 구원의 통로이기에 공경해야하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은 그 부모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선천적() ‘전도자’입니다. 또 한, 인간사의 첫계명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100여년전, 미국 버지니아주 웹스터 마을에 사는 자비스라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어렸을 적에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무덤 주위에 평소에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카네이션을 심었습니다. 항상 어머니를 잘 모시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느날 한 모임에 참속했는데 흰 카네이션을 달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잘 모시자는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그후부터 어머니가 살아계신 분은 빨간 카네이션을, 그리고 돌아가신 사람은 희 카네이션을 달게된 것입니다. 그것이 어머니날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어떻게 부모님을 공경할까요
1. 주안에서 순종하라
그렇습니다. 먼저는 주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째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렇습니다. 자녀가 주안에서 순종하면,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이런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진리안에서 행할 때,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케 되리라” (요3:2)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십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장 행복해지는 길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사람이 불행해 지는 이유는 성경을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거스르기 때문에 다툼이 일고 마음이 상하고 원수를 맺고 병들고 좌절하고 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면 ‘기뻐하는 인생’이 됩니다.
말씀안에는 좋은 관계를 맺는 비결이 담겨져 있습니다. 좋은 가정을 만드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건강에 이르는 길이 그려져 있습니다. 성공할 수 있는 이유들이 가득합니다. 즐겁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온갖 진리들이 있습니다! 성공 메뉴얼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자녀가 잘되는 것! 그것이 부모의 기쁨아닙니까! 부모의 행복은 자녀의 잘됨에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자녀가 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는 기뻐하십니다. 그 비결이 바로 말씀대로 사는삶! 순종하는 삶에 있는 것입니다. 자녀가 신앙안에서 살면 부모가 기쁩니다.
어느 소년의 癌 투병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백혈병의 일종인 말초 T세포 임파종으로 현재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치료중인 유호연(18한성과학고 2)군은 어머니를 비롯한 주위 환자와 가족들에게 카네이션꽃 대신 그 동안 써온 ‘사모곡’과 시편 말씀을 읽어주며 위로하고 있습니다. 호연군의 일기에는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짙게 배어 있어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3월30일-응급실에 도착해서 피검사를 하더니 백혈병이란다. 그래, 백혈병이구나. 하하. 엄마가 운다. 내가 아픈 것보다 엄마가 우는 게 더 마음 아프다. 그래서 내 앞에서 다시는 울지 말라고 했다. ”
“4월19일-장기전이다. 골수 이식을 해야 완치된단다. 재발 위험이 높다고 한다…다시 과학고에서 공부할 수 있을까. 힘들 것 같다. 주님께 맡기는 수밖에…. 기도해야지. ”
“4월21일-조금 지나니까 머리가 아프다. 새벽에 진통제 맞으니 살겠더라. 휴-. 너무 오래 자서 머리가 아프다. 난 이겨낼 수 있다. 주님께서 지켜주시므로…. 병이 나를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호연이가 일기를 쓰는 이유는 이것이랍니다. 병든 자녀들을 둔 가슴앓이 하시는 어머니, 아버지들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지 못함 대신에 맘속의 꽃,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기위함이라고...
호연이의 부모님은 그의 일기를 보면서 신앙으로 이기고 있습니다.
자녀들이여 잘믿을 것입니다. 더 잘 믿을 것입니다. 열심히 주를 섬기며 예배하며 주의 말씀에 순종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마침내 강건케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부모님은 기뻐할 것입니다! 주안에서의 순종, 그것은 부모님께는 최고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2, 먼저(!) 부모님을 생각하라 .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2)
부모공경이 약속있는 첫계명이라 하셨습니다. 이는 십계명에서, 인간 계명중 첫 계명임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즉 인간사에서 가장 먼저, 첫 번째로 지킬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 인간사에 있어서 가장 먼저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은 ‘부모님’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난 후, 부모님을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부모님을 위한 기도를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좋은곳이 있으면 부모님을 먼저 구경시켜드리라는 것입니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부모님께 먼저 드리라는 것입니다. (몰래 미리 먹고 싹 치우는 인간이) 기쁜일이 있을 때던지 재밌는 일이 있을 때던지 먼저 부모님을 떠올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하십니까 대부분 자기 자식은 끔찍이 생각하지만 부모님은 쉽게 잊습니다. 스스로 다 챙기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말하더군요 “자식을 생각함만큼 부모님을 생각한다면... 세상은 벌써 변했을 거라고!”
오늘 부모님들은 소외당하고 있습니다. ‘첫’번째의 존재에서 저만치 밀려나 있습니다. 자식들의 마음밖의 존재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자식들은 자기사는 재미에 젖어서, 자기 자식들만 챙기는일로 인하여서 부모님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엔 온통 자식이 있는데 자식의 마음엔 부모가 안계십니다!’ 마음에 부모님을 두십시오!
요즘 사회문제로 확대되는 것중에 하나가 “노인학대문제‘입니다. 몇 년후면 인구의 14%가 노인사회가 될 것인데 그렇기에 이는 더더욱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시 60세 이상의 노인 6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조사(1995)에 의하면 17. 3%의 노인들이 자식으로부터 없어져 주었으면 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서글프셨을까! 또한 폭언이나 묘한() 모욕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17%), 또 2몇일간 혼자 내버려진 일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답니다. 몇일이 지나도 자식들의 전화 한 통도 받지 못하는 부모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언어 심리적 학대, 경제적 어려움,방임, 심지어 폭련까지 당하는 노인들이 있습니다. 가장 많은 상처를 받는 대상은 며느리와 아들이랍니다! 가장 보호받아야할 자녀로부터 가장 슬픔과 마음상함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약한(!) 존재인 노인들은 말못하고 참고 살 뿐입니다. 의자할 것이 없습니다. 그 마음이 어떠하실런지요...
그런데, 자녀의 학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참는 이유는 ‘자녀이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해결방법이 없어서’, ‘창피하고 자존심 상해서’ 의 순입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말을 함부로 하지만 부모는 누가 알까봐, 힘없어서, 수치심, 자존심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넘기는 것이지요. 자식들은 때로는 말못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림이 필요합니다. 그분들의 마음을.... 말 한마디도 조심스레...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잠23:22)
부모님을 ‘첫자리’에 올려드리라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가르치심입니다.
反哺之孝(반포지효)란 말이 있습니다. 까마귀가 자란뒤 늙은 어미를 위해 먹이를 물어다준다는 말에서 유래된 효이야기입니다. 한자의 ‘孝’ 그것은 자식의 머리에 (가장 소중한 부분) 바로 부모님을 이고 있는 것입니다. ‘첫(!)’, ‘ 머리에’ 부모공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하신 첫 계명입니다. 부모님을 부모님 되게 하여야할 것입니다. 그분은 그렇게 오래 기다려주시질 않습니다.
어떤 중년의 아저씨가 후회를 합디다. 왜 젊었을 때는 그렇게 속만썩혀드렸는지, 그리고는 자기아버지가 좋아하셨던 노래를 부릅니다.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물결” 그리고는 “아버지~” 합니다. 그다음엔 어머니가 잘쓰시던 이북 사투리를 외칩니다. “영철아, 니 배고프디않네 에미는 배부르다” 그리고는 웁니다. 나이도 잊은채로. 펑펑! 전국에 방송되는건 알고나 그러는지. “아버지, 어머니”란 이름앞에는 자식은 언제나 ‘아이’인가봅니다. 아니,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아이처럼 되는가 봅니다. 혹시, 부모님께서 편찮으시지는 않습니까 부모공경, 이제 가장 우선적 일로 삼읍시다!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하신 “첫”계명입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사람이 부모라는 말씀입니다.
3.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얻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과연 그런가요 부모님을 공경한다고 해서 다~ 잘되고 장수하나요 저는 그렇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은 성취됨을 믿습니다! 또 한가지는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님을 공경하는 그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이 어찌 마음이 건강하지 않겠습니까! 사랑의 마음을 갖고 사는데 어찌!.. 진정 사랑과 공경의 마음으로 부모를 섬기면 어찌 건강해지지 않겠습니까 공경하지 않으려니 병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님께서 계신 것은 분명 복입니다. 효를 받아주시니 감사하고요, 효를 행할 마음을
주시니 감사하고요, 그러다보니 범사가 잘되니 감사하고요... 네! 계심이 감사한일입니다....
기독교인은 부모를 잘 공경해야합니다! “이것이 옳으니라!”, “잘되고 장수하리라!”
부모님, 그분은 늙어서 볼품이() 없을는지 모릅니다만... 계신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저의 어머님, 장인 장모님.. 우리교회의 어버이들,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시길 기도드립니다.
참 이상합니다. 나이가 들었는데도 저보다도 힘이 약하신 어머니께 기대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아버지’란 이름을 간절히 부르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 안타까운 맘이 더하거든요. 살아계셨으면 내 아이들의 장성함을 보여드렸을텐데...
안타깝게도 부모님은 그렇게 오래도록 기다려만주시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이는 가속도가 붙는다고 합니다. 10대는 시속10K, 20대는 시속 20, 30대는 40, 50대는 50, 60대는 60K... 기다려주시질 않습니다.
한, 글을 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4세 때-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 때-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 때-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 때-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아.
14세 때-우리 아버지요 세대 차이가 나요.
25세 때-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세 때-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 때-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前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 때-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었어.
60세 때-아버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꼭 助言을 들었을 텐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後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가사문학의 거봉인 정철은, “어버이 살아신제 섬길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이면 애달프다 어찌하랴 평생에 고쳐못할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평생에 후회될 일이란 효를 다하지 못함이란 이야기입니다. 상고할수록 애닯음이 있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나십니까 네, 그렇겠지요. 어버이 날만되면 우울해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자식들로부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게되지만 아마도 맘은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생각에 울적하실 것입니다. 네, 당연하지요... 살아실제 왜 그리 섬김을 다하지 못했을꼬! 왜 이리 두고 두고 이날이면 이리도 안타까움이 메오는것인지...
“아버지, 어머니” 하고 불러보십시오....
“누가 내 형제요 내 부모냐 주 안에 있는 자들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형제요 자매요 아비요 어미입니다. 바울 사도는 제나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교우들간에 서로 아비에게, 어미에게, 그리고 형제와 자매에게 하듯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린 다 그런 사이입니다. 어르신들은 젊은이를 자식처럼 여기시고 젊은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청년들을 자식처럼 여기고.. 청년들 역시 내 형님, 아버지 어머니로 여기며.. 그렇게 지내는 것입니다. 직분이란 것은 사역을 위함인 것이지만 부모, 자식은 그보다 더 우선적인 이름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또한 가정이기도 합니다. “교회같은 가정, 가정같은 교회”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가족입니다. 이제, 모두가 다함께 ‘주안에서 살며’, ‘공경하며’, ‘건강한 사랑을 나누며 삽시다’
어미 -지연-
내 배 속에 자식 품은 날부터 나를 잊고 살았네라
네 행복에 내가 더 기쁘고 네 아픔에 내가 더 아팠네라
걸음마 하는 날 내가 서 있었고 책가방 메는 날 내 어깨에 메었네라
시험 볼 때 마다 내 가슴이 시험을 치렀고 대학생이 된 날 내가 대학생이 되었네라
다만 네가 결혼 하는 날 어미는 없었네라
네가 버린 어미는 홀로 남아 네 삶이 아닌 어미의 삶이 되었네라
이제야 내가 누구인지 알았네라 난 네 어미가 아니고 나였네라
다만 내 가슴에 촛불 하나 켜 있어 생명 다하는 날까지 네 뒤에서 불 비추는 일은 멈출 수 없네라
일본의 소설가 미우라 아야꼬 여사는 ‘어버이 친(親)’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습니다. “부모란 떠나가는 자식의 등 뒤를 바라보다가 보이지 않으면 동산 위에 올라가서 보고, 그래도 보이지 않으면 나무(木)위에 올라서서(立) 바라본다(見).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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