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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두번째 돌판의 약속 있는 첫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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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두 번째 돌판의 첫 번째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그동안 소홀할 수도 있었던 부모님의 은혜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그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땅에 많은 종교와 윤리와 철학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들 모두는 이구동성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만큼 부모님에 대한 효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효가 살면 윤리도 살고, 종교도 살고, 철학도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이 나라는 불륜뿐만 아니라 패륜의 상태로 치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것이 마지막 때의 징조인 것입니까
놀랍게도 로마서 1장 30절 '비방하는 자요 여호와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의 말씀은 말세의 특징 중 하나가 자식들이 부모를 거역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2004년 4월 17일 오후 광주 남구 봉선동의 한 아파트. 시장기를 느낀 이모씨(54)는 무언가 먹을 것이 없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씨는 아들의 방 안에서 아내가 만들어놓은 김밥을 발견, 그것을 먹었습니다. 오후 8시 30분쯤, 아들 이모군(17-고등학교 3년)이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아버지에게 왜 자신의 김밥을 먹었느냐고 따졌습니다. 기가 막혔던 이씨는 "이놈아, 가족끼리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 그런 것 가지고 뭘 그러느냐"며 "그럴거면 나가버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화가 치민 이군은 부엌에 있는 식칼을 들고 와, 이씨를 9차례나 찔렀습니다. 단순 충동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흉기를 드는 경우, 대개 한 번 찌르고 맙니다. 하지만 이군은 식칼로 이씨를 9차례나 찔렀습니다. 죽일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경찰에서 이군은 "평소에도 아버지 이씨를 죽일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군은 2004년 4월 19일 존속살해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전인 2004년 3월 3일 오후 8시쯤 인천 부평구 청천동의 한 주택에서 38세의 이모씨(여)는 남편과 술을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활비문제로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술이 몇 잔 들어가자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고, 이씨는 안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걸어잠갔습니다. 남편이 문을 걷어차고 안방으로 들어서자 이씨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습니다. 이씨는 주변을 살펴보다 옆에서 자고 있는 생후 5개월인 자신의 아이 다리를 양손으로 잡아 남편을 향해 던졌습니다. 남편과 부딪힌 아이는 병원에 실려갔지만 이튿날 사망했습니다.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자신의 아이를 숨지게 한 이씨는 2004년 4월 20일 폭행치사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사람이 사는 세상입니까 자식은 부모들 버려도 부모는 자식을 버리지 못한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그런 시대가 된 것입니다.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만들었겠습니까
적신(赤身)으로 와서 적신(赤身)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 나그네같은 인생길에 이들은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패악하며, 자신의 이익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까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두 개의 돌판을 기록하여 주셨습니다. 첫 돌판은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된 수직적 계명이며, 둘째 돌판은 사람과 관계된 수평적 계명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개의 돌판에는 분명히 나그네같은 인생들이 지켜야 할 생명의 길들이 적혀 있습니다. 이 두 개의 돌판이 하나될 때 비로소 완전한 신앙의 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은 먼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로 출발하여 이웃과의 바른 관계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돌판의 계명을 먼저 확실하게 깨닫고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 돌판의 계명을 지키지 못한 사람은 둘째 돌판의 계명을 지킬 수는 없는 일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 하산할 때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 자신의 얼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씀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3,000년 전에 이 땅에 주어진 십계명이 오늘 이 시대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며 의문을 제기하시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십계명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오늘 지금 이시간에도 살아서 역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3000년 전에 십계명을 주신 바로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2000년 전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십계명은 3000년 전이나 2000년 전이나 지금 이 시점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인륜과 도덕이 뒤집어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하는 말씀이며, 준행하여야 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When the Lord gave us Ten Commandment, He did not mention amendments. ", 곧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에 십계명을 개정하신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음을 명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십계명은 오늘도 살아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야말로 십계명을 다시 찾아야 할 때입니다. 십계명 속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일 때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이 귀한 사랑의 선물을 다시 붙들어야 할 때인 것입니다. 도덕과 윤리가 흔들리는 이 시대는 반드시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시대가 변하고 철학이 변하고 윤리가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시대가 암울하고 인륜이 땅에 떨어질수록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은 더욱더 살아 역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열매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은 어떠한 패악한 시절에도 결코 흔들리지도 않으며, 단 한점의 오염됨도 없이 똑바로 준행하고 행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배하신 면류관을 얻는 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뵈올 때(계22:4) 그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내어놓을 열매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열매인 것입니다. 곧 회개에 합당한 열매(마3:8), 좋은 열매(마3:10), 아름다운 열매(마7:17),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롬6:22), 의의 열매(고후9:10), 성령의 9가지 열매(갈5:22-23), 빛의 열매(엡5:9), 평강의 열매(히12:11), 선한 열매(약3:17), 귀한 열매(약5:67) 등인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교회에 새로 입교하는 새신자들의 학습 중에는 사도신경과 주기도문과 십계명이 꼭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신경이 "무엇을 믿는가" 라는 신앙의 내용을 가르쳐 주며, 주기도문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라는 기도생활에 대해서 가르쳐 주며, 십계명은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를 일깨워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인 것입니까
오늘 이 시대의 문제는 오히려 이 십계명이 퇴색하고 잃어가는 데 있는 것입니다. 1950년 육이오 전쟁 이후 이 나라의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생활이나 문화가 놀라울 정도로 부요하고 편안해 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만큼 행복해 지고 있는 것입니까 또한 도덕적으로 그만큼 건강해 지고 있는 것입니까
놀라운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위하여 3천년 전에 두 개의 돌판, 곧 십계명을 주셨으며, 그로부터 천년 후에 오늘 신약성경 본문 에베소서 6장 1절로 3절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의 말씀을 통하여 계명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바로 두 번째 돌판의 약속 있는 첫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질서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 상하로 나뉘는 질서를 정하여 주셨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질서를 침범하지 말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위에 두신 사람들을 존경하며 경의와 복종과 감사로 대하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본문 '너는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의 말씀은 바로 이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골든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신명기 5장 16절과 에베소서 6장 1절로 3절의 '네 부모"는 누구를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먼저 육신의 아비의 뜻합니다. 부모의 몸이 없었으면 어떻게 우리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자녀된 자들은 내적으로, 곧 마음으로 공경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외적으로도, 언행이나 채도에 있어서도 정중하고 공손한 태도로 언제나 봉양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구약 잠언 1장 8절로 9절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신약 골로새서 3장 20절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의 말씀과 같이 순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의 명령에 따르지 않다가 멸망한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일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이사야 49장 23절 '열왕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의 말씀과 같이 왕들을 "아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의 지도자들은 사회의 정의를 수호하고 악을 처벌하고 선을 장려하여 과부와 고아의 아버지가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라를 평화와 풍요로 지켜야 하며, 백성들을 선한 법과 모범으로 훈련시켜야 하는 책임을 가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땅의 모든 권세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서 13장 1절로 2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여호와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의 말씀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딤전2:1~2)의 말씀과 같이 그들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순복하고 존경하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구약에 나오는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종들은 그들의 주인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마태복음 8장 6절에서 백부장이 부른 종은 원어로 'paheece : 파이스'이며, 이것은 아들의 뜻입니다. 이렇게 구약시대의 종들과 주인의 관계는 부자간의 관계로 표현이 되었으므로 동시대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주인과 종의 관계도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로 말하면 바로 직장의 상급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직장의 상급자에게도 순종하며 존경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영적 아버지를 부모라 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말씀을 선포하는 증거자인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인격적으로는 평신도와 다름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그 사람들의 지위때문에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들의 사역 때문에" 순복하고 존경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목회자들이 부당한 중상과 비방이 닥쳐 올 때 목회자들을 위한 옹호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악한 세력들은 교회를 넘어뜨리기 위해 중상과 비방을 하는데, 특히 목회자들을 먼저 넘어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까지 비방하며 모략하여 십자가에 못박은 마귀 무리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성직자들을 같은 방법으로 괴롭히고 핍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중상과 모략을 당하는 법입니다.
중요한 것은 목회자들이 주는 교훈에 순종함으로 공경하는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성경은 목회자들에게 물질적으로 공경하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성직자가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눅12:34)의 말씀을 인용하며 물질로 헌신하라는 목회자가 있다면 순도 백퍼센트 이단으로 생각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물질로 그것을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 교회의 큰 결점입니다. 참 목자는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자신의 양에게 주어야 하며, 양으로부터 물질을 약탈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필요한 물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필요한만큼 언제나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목자를 공경하는 자세는 목자가 선포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목자들이 악한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이길 수 있도록 성령께서 보호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두 번째 돌판의 약속 있는 첫 계명'은 네 부모, 곧 국부, 나라의 아버지, 육적 아버지, 영적 아버지를 주 안에서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나라의 아버지, 육적 아버지, 영적 아버지라 할 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어기거나 우리에게 법을 어기게 한다면 순종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합니다. 물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말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내리 사랑, 그 가장 꼭대기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는 자녀를 여호와 하나님께 인도하는 사랑의 통로입니다. 그 통로의 중심에 가정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정을 통해서, 곧 부모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소망이 함께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믿음과 사랑을 통하여 그 마음 속에 소원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나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가 없다면, 거기에는 진정한 행복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에서 오는 진정한 행복은 영원한 것입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히 영원히 누리게 될 저 영원한 천국에 속한 것이 진정한 행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통해서, 가정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 사랑을 깨달아 알 수 있어야 하며, 그 믿음과 사랑을 통하여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어버이 주일에 우리는 다시 한번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두 번째 돌판의 약속 있는 첫 계명을 기억하고 또 계속해서 행하여야 하겠습니다. 또한 그 계명을 행하는 이들에게 주시는 모든 신령한 축복의 약속들을 얻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분이신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옵기는 안심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각 사람 모두가 믿으시기를 소원합니다. 이 자리에 앉으신 각 사람 모두가 생명의 말씀과 약속을 굳게 잡고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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