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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약속 있는 첫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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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모 일간지에 소개된 박옥랑 할머니의 모정이 저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광주시에 있는 주공 임대 아파트에서 사시는 박옥랑 할머니는 올해 나이 101살입니다. 그 나이면 자손들의 보살핌 속에 살아도 몸조차 가누기 어려울 때입니다. 그런데 전신마비로 누워있는 68세 된 딸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있습니다. 자그마치 50년 동안 말입니다.
그녀에게 불행이 찾아든 것은 1939년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였습니다. 박씨가 출근한 사이에 가정부가 업고 있던 네 살배기 딸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머리와 목을 심하게 다쳐, 그 후로 천장만 바라보며 살아야 했습니다. 고개조차 가누지 못하는 딸을 들쳐업고 용하다는 병원을 다 찾아다녔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엎친데 덥친격으로 남편마저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갔습니다. 박씨는 생활고 때문에 30년 동안 교편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딸을 혼자 놔두는 것이 너무 불쌍해서 학교를 그만두고 딸에게 글공부를 시켰습니다. 종이에 글을 써서 한글과 한문을 가르쳐주고 문학작품도 읽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 글을 깨우치고 말도 조금씩하게 되었습니다. 딸이 조금씩 뱉어내는 시구를 어머니가 받아 적었습니다. 그 제목은 얄미운 행복입니다.
얄미운 행복 / 어느 곳에 숨었는지 / 저 산 넘어 숨었을까
바다 건너 숨었을까 / 저마다 너를 찾아 헤매어도
얄미운 행복은 이리저리 피해다니고…'
딸의 손발 노릇을 하느라 늙을 틈도, 아플 여유조차 없었던 朴씨도 얼마 전부터 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기억력도 크게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저 세상으로 간 뒤 딸이 어떻게 살지를 생각하면 아득하다고 말합니다.
"어미로서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되겠지만 내가 세상을 등질 때 딸애도 함께 갔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아요. " 라고 말합니다. 평생을 누워서 어머니의 은혜로 살고 있는 딸은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 나의 어머니입니다. 오늘까지 사살아온 하루 하루가 모두 어머니의 덕입니다. "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101살된 박옥랑 어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불쌍한 딸을 위해서도 오래 살아야지, 내가 세상을 뜨면 혼자서 어떻게 살겠어. " 이것이 101살 되신 어머님의 욕심입니까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들은 부모님이 조금만 누워 계셔도 힘들어하고, 짜증을 부립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50년 동안 전신마비가 된 딸을 돌보면서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워있는 딸을 걱정합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어머니는 역시 위대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과 헌신의 결과입니다. 펠리컨이 사랑하는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심장을 꺼내주듯 우리의 부모님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일년 365일 당연히 부모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섬겨야 하는 것이 마땅한 자식의 도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기에 이렇게 날까지 정해 놓고 이날만큼이라도 효성을 다하자는 것 아닙니까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부모님 공경의 모습을 살펴보고, 부모님 사랑하는 마음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자녀들을 향하여 어떻게 부모님을 섬길 것인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그 시대에도 오늘 이 시대 못지 않은 급격한 윤리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이 전 세계를 정복하며 가져온 Pax-Romana의 식민지 문화는 기존 전통윤리에급격한 변화를 주었습니다. 부부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부모와 자녀사이의 전통윤리에도 상당한 의식과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돈을 찾아, 자유를 찾아 부모를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떠나가는 일이 일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소아시아의 수도와 같았던 에베소에는 아테미의 신전을 중심으로 음란과 타락이 있었습니다.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밀려 사회의 짐스러운 존재로 점차 소외되고 있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성도들이 영적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특별히 에베소 교회에서 3년 동안을 머물면서 눈물과 정성으로 사역한 교회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가정을 바로 세우고, 영적 혼란을 해결하기 위하여 펜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포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 이것은 결코 부모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주 안에서 순종하라"라고 했습니다. 부모에 대한 순종이 여호와 하나님께 불순종이 될 때에는 더 높은 권위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말씀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부모님이 "너희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예수를 믿으면 안된다. " 말씀하셨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앙생활을 중단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분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부모님이 그렇게 반대하시는데 돌아가시고 나면 다시 믿으면 되지 여러분 어떻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 신자라면 결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히9:27)"고 말씀하십니다. 심판이 있다는 것은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자신도 신앙생활을 중단하고, 그 부모님도 예수를 믿지 않는다면 결과는 무엇입니까 너무나 분명합니다. 반드시 기억할 것은 세상적인 모든 요구나 지시에 대해서는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절대로 양보나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 안에서 순종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육신적으로 마음 편하게 잘 모셨다 할지라도 그 영혼이 지옥에 간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믿음 안에서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마땅한 도리입니다. 이것은 자연법(Natural Law)입니다. 자연법은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에 새긴 양심의 법입니다. 어떤 문화권에도 부모 순종을 가르치지 않는 문화는 없습니다. 부모에 대한 순종은 양심의 명령인 것입니다.
부모의 존재는 어쩌면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모의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의 고통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고통을 느낄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의 눈물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눈물을 볼수 있어야합니다. 부모의 사랑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수 있어야 합니다.
2절에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 보장된 계명입니다.
공경이라는 말은 헬라어로는 '티마오'(timao)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가치를 지니는 대상에 대한 부드럽고도 친밀한 반응'을 뜻하는 말입니다. 순종이 외적행동을 강조하는 말이라면, 공경은 내적태도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행동으로뿐 아니라, 마음으로 부모님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그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본래 두 개의 돌 판에 나뉘어 쓰여졌습니다. 첫 돌판에는 1-4계명이, 둘째 돌판에는 5-10계명이 기록 되었습니다. 둘째 돌판의 첫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부모공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법입니다. Divine Law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은 자연의 명령 혹은 양심의 명령을 넘어섭니다. 따라서 우리는 순종 이상으로 공경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신 27:16에“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했습니다. 또 출 21:15-17에는“그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는 자로서의 마땅한 도리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잘 섬길 수 있을까요
 첫째, 효도는 부모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그림자라고 말합니다. 자식을 위해 아낌없이 남김없이 다 주시는 사랑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주고 또 주어도 마냥 행복한 것이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자녀에게 어떤 것을 주는 것이 아깝습니까 무엇을 해주면서 너 나중에 다 갚아야 한다는 각서를 받는 분이 있습니까 조건없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계속 주는 것이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부모는 아무리 더러운 똥오줌이라도 더럽지 않습니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는 깔끔을 떨고, 비위가 약한분도 자식이 똥을 싸면 냄새도 맡아보고, 자세히 살펴봅니다. 혹시 아이에게 이상이라도 있을까봐서 그렇게 합니다.
아무리 자존심이 강한 여자라도, 수줍음이 많은 여자라도 아이가 울면 돌아서서 젖을 물리는 것이 바로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늙어도 부모입니다. 80살 된 아버지가 출근하는 환갑 넘은 아들에게 "얘, 차 조심해라" 말씀합니다. 부모는 자식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혹시 무슨 사고라도 날까봐 노심초사하는 것입니다. 결국 부모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 줍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자식에게 먼저 먹이는 것이 부모입니다. 몇일전 잡지에서 본 재미있는 기사입니다.
제목은 순대 허리띠였습니다.
아들을 호주에 유학을 보냈습니다. 어렵게 공부를 마칠무렵 아들은 부모님을 호주로 초청했습니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만나는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까 생각한 끝에 아들이 좋아하는 순대를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출입국 심사에서 반입이 금지되었습니다. 비행기 시간은 다되고, 아무 통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할 수 없이 어머니는 정성껏 준비한 순대를 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어머니 머릿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길고 통통한 순대 하나를 골라 허리에 둘러 맸습니다. 그리고 웃옷으로 덮고 통과를 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는 혹시 순대가 터질까봐 8시간이나 걸리는 긴 시간동안 의자에 등도 기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어머니는 보란 듯이 순대를 썰어 놓으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부모님들의 자식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자식의 먹거리를 위해 순대로 허리띠를 매시고, 8시간이 넘도록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모습, 이런 어머님의 사랑을 먹고 우리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중국의 총통이었던 장개석은 평생동안 자기의 생일에는 음식도 안먹고 물도 한모금 안 마셨답니다. 한 번은 오문기라는 장군이 생일상을 차렸습니다. "내 생일은 기쁜 날이 아니라 어머님의 고난 날이다. 어머님이 날 낳기 위해 얼마나 고생한 날인데 뭘 먹고 마시겠는냐"라고 말했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데서 효성이 시작됩니다. 어머니의 은혜를 잘 표현한 우리나라 동요가 있습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 더 높은 것 같아
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넓은게 또 하나 있지
사람되라 이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바다 그보다 더 넓은 것 같아
오늘의 나를 위해 베풀어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항상 간직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효도는 부모님을 기쁘고 즐겁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잠언 23:25절에 보면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 역시 부모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고,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효도하는 길입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요
자주 찾아 뵙는 것이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비결입니다. 나이가 들면 사람이 그리워진다고 합니다. 주변에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자꾸 세상을 떠나면 점점 쓸쓸해집니다. 그럴 때 자식들이 자주 찾아오면 무엇보다 기뻐하십니다.
사실은 저 자신도 여든 한 살이 되신 어머님이 계시지만 일년에 고작 두 번 정도 밖에 찾아 뵙지 못하는 죄송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어버이 날에는 큰 맘먹고 온 가족이 어머님께 갔습니다. 가기 전에 전화드렸습니다. 그런데 바쁘고 힘든데 쉬지 뭐하러 오느냐고 한사코 말리셨습니다. 그러나 도착하기 몇 시간 전에 따뜻한 밥상을 준비해 놓으시고, 뛰어 나오는 어머님이십니다. 거친손으로 손을 잡으시며 너무 반가워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전화도 자주 드리지 못하고, 찾아 뵙지도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여러분! 할수만 있으면 자주 찾아 뵈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은 함께 있어만 주어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대화를 나누는 것이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비결입니다.
어린이는 발목힘으로 살고, 청년은 허리힘으로, 나이가 들면 입의 힘으로 산다고 합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힘이 입으로 갑니다. 그래서 말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자식들이 볼 때는 잔소리처럼 들리기 쉽습니다. 한 소리를 자꾸 반복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뇌세포가 파괴되서 금방 하신 말씀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처음 듣는 것처럼 잘 들어주시면 그것이 효도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저희 어머님도 한번 입을 여시면 계속 말씀하십니다. 한참 듣다보면 그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그래도 잘 들어주면 너무 좋아하십니다.
부모님의 필요를 채워드리는 것이 기쁘게 하는 비결입니다.
조사에 의하면 부모님들이 가장 받기를 원하는 것은 용돈이었습니다. 자칫 노인분이 무슨 돈 쓸일이 있을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돈이 필요합니다. 경로당에 가면 금방 돈이 있는 분과 없는 분을 알 수 있습니다. 얼굴이 환하고, 어깨가 올라가 있으면 주머니가 두둑한 분입니다. 주머니가 비어 있으면 항상 남의 신세를 져야합니다. 눈치를 봐야합니다.
여러분의 부모님들이 눈치를 보지 않도록 용돈을 좀 넉넉히 드리시기 바랍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몇십만원씩 아낌없이 투자하면서도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하신 부모님께는 용돈 조금 드리는 것도 인색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저희 가정에서는 생활비를 받으면 먼저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따로 떼어 놓습니다. 그리고 양가 부모님의 용돈을 아예 구분해 놓습니다.
자식들이 매달 조금씩이라도 통장에 입금을 시켜드리면 그것이 바로 부모님에게는 힘이 됩니다. 결국 그 돈은 다 어디로 갑니까 여러분의 자식들에게로 되돌아갑니다.
자기의 위치를 지키며 성실하게 노력하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기뻐하십니다.
세상에서 크게 부자가 되지는 못해도, 출세하지는 못해도 성실하게 자기 위치를 지키며 행복하게 살면 부모님을 기뻐하십니다. 자식이 잘되면 누가 제일 기뻐하십니까 바로 부모님입니다. 자기 삶의 목표를 가지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효도는 시간적인 제한이 있습니다.
다른 일은 내가 살아 있는 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효도는 내가 살아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살아계실 때 잘 섬기지 못하다가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가 됩니다. 돌아가신 후에 아무리 울어본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樹慾靜而風不止 子慾養而親不待.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살아계실 때 잘 섬기는 것이 지혜입니다.
또한 자신의 부모님 뿐만 아니라 다른 어르신들도 존경하고, 공경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 있는 어르신들을 잘 모셔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어른들을 잘 모시지 못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잘 섬길 수 있겠습니까 교회 안에 계신 어르신들이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도록 전화를 드리고, 찾아뵙는 일들을 힘써 주시기바랍니다. 청년들이 벌이고 있는 사랑의 25시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시는 어른들을 방문해서 함께 시간을 나누고, 봉사하는 좋은 운동입니다.
그리고 화요일 날 효도관광이 있습니다. 65세 이상된 어르신들을 모시고 하루 동안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내 부모님이 돌아가셨어도 또 다른 부모님을 섬긴다는 마음으로 좋은 일에 적극 협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3절에 보면 "네가 잘되고 장수하리라" 약속하고 계십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형통케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생명 주신 날 동안 기쁘게 살아가는 축복을 주십니다.
삼국유사에 손순매아(孫順埋兒)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의 집에 품을 팔아 곡식을 얻어 늙으신 어머니를 봉양하는 손순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렵게 노모를 봉양하는데 어린 자식이 항상 음식을 빼앗아 먹었습니다. 손순을 이를 민망히 여기어 그의 아내에게 말하였습니다.
"아이는 다시 얻을 수 있으나 어머니는 다시 얻기 어렵지 않소. 아이가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니 어머니의 굶주림이 심하오. 차라리 이 아이를 묻어 버리고 어머님이 배부르시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
그리고 아이를 업고 나가 땅을 팠다고 합니다. 그런데 땅 속에서 기이한 석종(石鐘)을 얻었습니다. 부부가 놀라고 이상히 여겨 잠깐 나무 위에 걸고 두드려 보았더니 그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이에 부부는 아이의 복이라 생각하고 아이를 업고 종을 가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부부는 종을 들보에 달고 두드리니 그 소리가 대궐에까지 들렸습니다. 어느날 왕이 그 종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손순의 어머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왕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왕은 어머니를 편히 모시도록 집 한 채를 주고 해마다 메벼 오십 석을 주어 지극한 효성을 기리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네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장수하리라. "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다시한번 어버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시고, 실천하셔서 형통케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박은수라는 분이 쓴 어머니라는 시를 함께 나누며 말씀을 마칩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좋은 옷이 필요치 않으신 줄 알았습니다.
예쁜 그릇도 갖고싶지 않으시고
맛있는 음식에도 마음이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빛깔 고운 립스틱이나
꽃무늬 화려한 양산품
눈 여겨 보시지도 않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집와서 마흔 고개에 다다르며
이제사 깨달아 집니다.
어머니도 여자이셨음을
어머니의 가슴에도 무지개가 있고 파랑새가 있고
사파이어 같은 꿈이 있음을
이제사 알아 봅니다.
어머니
언제나 귀한 이름입니다.
언제나 우리맘속에 별처럼 살아있는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이날에 어머니를 그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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