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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자녀들아! 부모를 공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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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머니가 세 아들을 훌륭하게 잘 키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느 덧 세월은 흘러 어머니는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늙어버렸습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성장한 세 아들은 한 자리에 모여서 '누가 가장 효자인지 증명해 보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큰아들은 방이 열 다섯 개나 되는 큰집을 어머님께 사 드렸습니다. 둘째 아들은 1억 원 가까운 우리나라 최고급 승용차를 선물로 드리면서 운전수까지 딸려 보냈습니다. 막내아들은 15년 동안이나 잘 훈련시킨 끝에 성경책을 모두 외우는 신기한 앵무새를 어머님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 앵무새는 "시편 1편" 그러면 시편 1편을 줄줄줄 외웠습니다. 그 신기한 앵무새를 어머님께 선물로 드린 것입니다.
마침내 세 아들이 모였고, 어머님께서 누구의 선물이 제일 좋은지 결정을 내리는 날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큰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아들아, 네 선물은 고맙다마는, 나는 네 선물을 받을 수 없구나. 이 늙은이에게 그 큰집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나는 그저 방 한 칸이면 족하단다. " 그러면서 큰아들의 선물을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둘째 아들에게도 말했습니다. " 둘째야, 나는 네 선물도 받을 수 없구나. 눈이 어두워 앞도 못 보는 내가 그 차를 타고 어디를 다니겠느냐" 그러면서 둘째 아들의 비싼 승용차 선물도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셋째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막내야, 나는 네 선물이 제일 좋았단다. 네가 보내 준 닭은 정말 맛있었다. "
효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효도하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됩니다. 효도하는 것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 효도하는 것을 본문에서는 두 단어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순종하는 것"과 "공경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주일은 내일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의 가치를 존중해주고, 어린이들에게 좀더 많은 관심을 갖자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흔히 '어린이날'이나 '어린이주일' 그러면 어린이들이 자기들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날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권리를 주장하기 앞서 어린이로서, 자녀로서의 의무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생일을 맞으면 생일을 맞은 당사자가 축하를 받고 선물을 받아야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러나 생일에 진짜 선물을 받아야 할 사람은 생일을 맞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님이어야 합니다. 나를 낳으시느라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을 하셨습니까 그러니 당연히 부모님께 미역국을 대접해 드려야 하고, 부모님께 고맙다는 선물을 드려야 합니다. 그게 정말 생일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입니다.
'어린이주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에서 오늘은 어린이주일을 맞아, 자녀된 사람들의 신앙적인 도리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 부모님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유복자(遺腹子)라 하더라도 부모님이 계셨기에 태어난 것입니다. '부모님 없이 태어난 사람이 없다'는 말은 '자녀가 아닌 사람이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비록 지금 연세가 많아서, 나를 낳아준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셨다 하더라도, 또 자녀를 두고 있고, 손주를 둔 노년기를 살아가는 분들이라 하더라도, 부모님에게 우리는 영원한 자녀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80먹은 할머니가 60먹은 아들이 밖에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걱정스러워서 "얘야, 길 조심하거라" 그런다고 하지 않습니까 5살을 먹었든, 스무 살을 먹었든, 아니면 50-60이 되었든 상관없이 자식은 영원히 자식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에서 "자녀들아!" 그러면서 자녀들에게 부모님께 순종하고 부모님을 공경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신 것은 어린아이들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자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신 분들은 부모님께,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분들은 나보다 연세가 많아 부모님과 같은 분들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에서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진짜 부모님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태어나신 모든 어르신들을 다 포함한 것으로 이해하고 오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부모님을 공경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옳으니라"하신 말씀은 '마땅히 해야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인륜의 도리'라고 말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반드시 해야할 일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그게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모님께 효도하고,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보다 우리 신앙인들이 부모님을 섬기는 일에 더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을 단순히 인륜의 도리이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성경의 정신은 다른 두 가지 의미가 더 있습니다.
하나는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은 두 돌판에 새겨져 있습니다. 첫 번째 돌판에는 1계명부터 4계명까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계명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돌판에는 5계명부터 10계명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위한 계명입니다. 그 두 번째 돌판에 가장 먼저 쓰여진 말씀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인간관계를 맺는 첫 번째 단계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기록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나와 피가 섞이지 않는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이웃을 사랑하려고 한다면, 가장 먼저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해 줍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딤전 5:8)
성경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곧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사랑의 첫걸음은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보다도 더욱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신앙인들 가운데 효도에 관해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서는 때로 부모님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하고 남은 시간에, 남은 열정과 남은 정성으로 부모님께 효도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마 15:5-6) 이것을 소위 '고르반 사상'이라고 하는데,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목으로 마땅히 해야 할 부모님 공경을 게을리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시면서 예수님께서 대단히 분노하시면서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증스러운 사람이라는 책망의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사랑과 부모님 공경은 따로 구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동시에 해야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고 어떻게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신약 본문 1절에서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순종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하면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 모시고 살아도, 아무리 많은 용돈을 드린다고 해도,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만들어 드린다 해도,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가난한 살림 때문에 제대로 대접해 드리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말씀을 잘 순종하면 그게 부모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 잠언 23:26절에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마음을 내게 달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마음을 다해 그 말씀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게 효도하는 것이고, 그게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23:25절 말씀에서도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고 즐겁게 해 드리는 것보다 더 큰 효도는 없습니다.
자녀된 여러분, 부모님의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을 양육하느라 가슴 졸이며 힘들게 사셨던 부모님께 보답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는 졸였던 그 가슴에 기쁨을 드리는 것입니다. 자식 걱정 때문에 숯덩이처럼 새까맣게 타버린 부모님의 가슴에 즐거움으로 보답하는 것이 가장 큰 효도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뿐만 아니라, 부모님과 같은 모든 어른들을 섬기며 그분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려야하는 책임도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어르신들은 우리의 믿음의 부모님들입니다. 그분들의 기도와 그분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의 자녀된 우리들은 교회의 어른들을 섬기고 공경하는 일에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죄송한 이야기입니다만, 간혹 교회에 어떤 행사를 하려고 할 때 연로하신 분들을 기피하는 경향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젠가 우리도 그렇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얼마만큼 부모님께 효도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자식들이 우리에게 그대로 해 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우리 교회의 어른들을 얼마만큼 섬기느냐에 따라서 나중에 우리가 늙었을 때 우리도 그런 대우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실되게 어른들을 섬기면, 우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 우리도 그런 섬김을 받게 됩니다.
부모님을 섬기는 일이나 교회의 어른을 섬기는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소홀히 하거나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신앙적인 삶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두 번째 모습은 부모님의 가르침을 기쁘게 받는 것입니다. 잠언 4:1절에서 이렇게 말씀해 줍니다.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 잠언 13:1절에서도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자식을 나쁘게 가르치는 부모는 없습니다. 아무리 배우지 못한 부모님이라 하더라도, 그 부모님께는 인생의 경험이 있고, 인생의 지혜가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과 가르침 속에서 우리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과 아직 깨닫지 못한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부모님의 가르침을 기쁘게 받아야 합니다.
특별히 신앙을 가진 부모님을 둔 자녀들은 부모님에게서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아야 합니다. 신앙적인 가르침을 잘 받아야 합니다. 그게 그 어떤 가르침보다 귀중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믿음의 청년 디모데는 어머니로부터 순수한 믿음을 물려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합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딤후 1:5) 디모데는 어머니로부터, 그리고 어머니는 또 당신의 어머니로부터 아름다운 신앙을 전수 받았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신앙이 디모데로 하여금 순수하고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도록 한 힘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가르침 받기를 거부하는 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님은 이 세상에 파송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인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된 젊은이들은 우리보다 인생을 많이 사신 어르신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고리타분하다고 귀를 막아서는 안됩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부모된 기쁨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요삼 1:4)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보다 더 큰 효도는 없는데, 어떤 때에 부모님이 가장 크게 기뻐하는가 "자녀들이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아 진리 안에서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자녀를 키워보신 부모님들! 그렇지요 자녀들이 바르게 자라는 것을 볼 때 가장 기쁘지 않습니까
부모님께 효도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세 번째 모습은 '함께 있어주는 것'입니다. 현대 노인문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주장 가운데 하나는 '노인들이 가장 참기 어려운 문제가 고독'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노인들 중 75%가 심각한 고독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내일 모레가 어버이날입니다. 다음 주에 제가 너무 바쁠 것 같아서, 지난 주에 자그마한 선물을 들고 우리 교회 어른들을 찾아뵈었습니다. 병으로 인해서 오랫 동안 교회에 나오지 못하시고 혼자 사시는 집사님을 찾아뵈었을 때, 그 집사님께서 저를 맞으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이 오실 때가 되었는데'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오셨군요. " 그 말을 듣고 제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여러 명의 자식들을 키워놓아도 지금은 다 뿔뿔이 흩어지고 곁에 아무도 없습니다.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좋지 않으신 데도, 밥해서 드셔야지, 연탄 갈아야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가시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정작 더욱 힘든 것은 불편한 몸으로 밥을 해 드시고 연탄을 갈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다는 고독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오실 때가 되었는데... ' 하고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뵐 때마다 '좀더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데' 하고 생각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아서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들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게 사시는지 모릅니다. 그런 모습으로 부모님을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자주 전화도 드리고, 자주 찾아뵙고, 늘 돌보아 드려야 합니다.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아무리 울어봐도 소용이 없습니다. 살아 계실 때에 한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한번이라도 더 자주 전화를 해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 보면 외롭고 고독하게 사시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자식들이 있다 하더라도 돌보지 않는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의 바램은 우리 교회가 그런 어른들에게 자식이 되어주는 일을 좀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찾아가서 말벗이 되어주고, 식사를 차려드리면서 같이 식사도 하는 그런 일들을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멀리 계신 부모님, 먼저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께 해드리지 못한 이런 일들을 가까운 내 이웃의 어른들께 해 드린다면 그게 바로 내 부모님께 하는 효도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십계명 가운데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계명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너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는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효도하며, 어른들을 잘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형통의 복과 장수의 복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가장 오래 산 사람이 사도 요한입니다. 사도 요한은 90세가 넘도록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요한은 자기의 친어머니도 아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모셨습니다. 요한이 90세가 넘도록 살게 된 것이 바로 그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극진히 모시고 섬겼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엽전에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돈이 눈앞을 가린다 하더라도, 그 엽전 구멍으로 부모님이 보이고 형제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돈에는 구멍이 없습니다. 그래서 돈에 눈을 가리게 되면 부모도 안보이고 형제도 안보입니다. 오직 돈만 보일 뿐입니다.
현대인들은 부모님을 모시는 효도하고 공경하는 것도 자기들에게 유익이 되어야만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부모님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공경하고 섬기고 효도해야 합니다. 어르신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교회의 어르신들이 섬김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분들이 계셨기에 오늘 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20절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 현대어 성경에서는 이 말씀을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자녀들은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 부모님께 순종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단순히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까지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자녀된 여러분, 부모님을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이 가까이 계시지 않는 분이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신 분들은 교회의 어른들을 내 부모님처럼 섬기며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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