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주 안에서 부모를
본문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특별히 이렇게 이름을 붙여 해마다 되새기는 이유는 가정이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의 달 벽두에 가정폭력의 심각성이 보도되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끔찍한 모습을 보면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은 심정입니다. 거기에는 매 맞는 아내뿐만 아니라 아내로부터 학대받는 남편의 절규도 있습니다. 그들의 말은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라는 것입니다.
지난해 가정폭력으로 처벌된 1만2,983명 중 남편 학대로 형사 처벌된 아내가 347명(2. 4%)으로 전년도에 비해 59%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가정폭력의 최대 피해자는 아내일 것입니다. 전체의 85%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밖에 노인학대(2. 1%)와 아동학대(1. 1%)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모두 해마다 10% 이상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구지방경찰청은 금년 1/4 분기의 가정폭력이 전년도에 비해 74. 4% 증가했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습니다. 가정 폭력이 증가했다기 보다는 가정 폭력이 수면 위로 떠 올라오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기독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모 공경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야 겠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다 할지라도 그래도 선한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해이해 지는 부모 공경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번 일깨워지는 개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제목을 "주안에서 부모를 !"...
사람에 대한 계명 중에는 가장 첫 번째의 계명입니다. 가장 첫 번째의 계명이라 함은 사람에 대한 계명 중에 가장 큰 계명이라는 말입니다. 자신도, 배우자도, 자식도, 형제도, 이웃도 다 부모 다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부모 공경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모공경은 주안에서만 할 것이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1. 누가 나의 부모입니까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모친과 동생들이 찾아 왔었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12:48-50)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부모를 좁은 의미로만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님은 부모를 넓은 의미로 생각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모의 개념을 상당히 넓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부모 형제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웨스터민스트 요리문답(제124문)에는 부모는 "(1). 아버지와 어머니의 뜻은 비단 친부모 뿐만 아니라 연령에 있어서나(딤전5:1-2), 은사에 있어서나 모든 윗사람을 말한다(창4:20, 21, 45:8). (2). 특히 여호와 하나님의 법령에 의하여 되어진 가족(왕하5:13), 교회(갈4:19, 왕하2:12), 또는 나라에 있어서(사49:23), 권위로 위에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고 해석을 했습니다.
윌리아드(G. W. Williard)는 하이델베르그 문답 해석에서 가정교사, 교사, 교장들도 포함된다고 말했습니다.
2. 주안에서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되 주안에서 순종하고 공경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안에서라 함은 주님의 가람침과 범주안에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범해 가면서까지 부모에게 순종하거나 공경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치 않으면 조상 숭배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민족은 원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지라 살아 생전에 효도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아무리 부모에게 효도한 자식이라도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아쉬움이 남기 마련입니다. 행여나 돌아가신 부모가 원귀가 되어 떠돌아다니지나 않을까 하여 빈소를 설치하고 때마다 젯상 차려놓고 애곡을 합니다. 이것을 거상(居喪)이라고 하는데 형편에 따라서 기간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미풍양속이기는 하나 미풍양속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부모 공경이 전통과 형식에 매여 지나치다보니 성경과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부모를 하나의 신으로 만들어 버리는 범죄행위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효도가 못됩니다.
3.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공경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바드(kabad)"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무겁게 여기다. 열정적으로 대하다. 억지로 하게 하다. 오랫동안 계속하다. 괴로워하다. 성가심을 무릅쓰다. 감정과 마음을 완화시키다. "라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카바드"라는 말에서 "카베드(kabed)"라는 말이 파생되었습니다. 사람의 장기 중에 가장 무거운 장기가 간(liver)입니다. 간은 장기 중에 가장 무거우면서 사람의 생명과 직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건강하게 살려면 자기의 간을 소중하게 생각지 않으면 안됩니다. 독성이 강한 음식을 먹는다거나, 신경을 많이 쓰거나, 근심 걱정을 지나치게 하면 간이 약해져서 간에 병이 생깁니다. 간에 병이 생기면 치명적인 타격을 받습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말은 부모를 나의 간과 같이 신경을 쓰고 모신다는 말입니다.
1). 부모를 무겁게 여겨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부모를 무겁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잠언23:22절에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경고했습니다. 청종하라는 말은 귀담아 듣고 순종하라는 말이며, 경히 여기지 말라는 말은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모든 방백은 각기 권세대로 피를 흘리려고 네 가운데 있었도다 그들이 네 가운데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네 가운데서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네 가운데서 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도다"(겔22:6-7)라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방백들은 부모를 업신여겼고, 나그네를 학대했으며, 고아와 과부를 해롭게 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2).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베들레헴 사람 나오미는 며느리 둘을 보았습니다. 첫째는 오르바요, 둘째는 룻이었습니다. 나오미가 모압의 이민 생활을 청산하고 고국의 유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려고 했습니다. 두 며느리가 붙좇았습니다.
시어미 나오미의 만류로 첫째 며느리 오르바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둘째 며느리 룻은 끝까지 시어미를 붙좇았습니다.
룻이 시어미 나오미에게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1:16-17)라고 말했습니다.
룻이 시어미를 끝까지 따라 나선 것은 룻 자신의 장래를 생각지 않고 시어미 나오미의 장래를 생각했습니다. 룻은 시어미 나오미를 자기가 돌보지 않으면 돌볼 사람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룻은 낮에는 보아스의 보리밭에 가서 보리 이삭을 주어다가 시어미 나오미를 공양했습니다. 며느리 룻의 정성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그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며느리 룻의 시어미에 대한 정성은 보아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결국은 보아스의 부인이 되어 다윗 왕의 증조 할머니가 되었습니다(룻4:21-22).
3).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부모 공경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공경하고 싶을 때는 즐거운 마음으로, 공경하고 싶지 않을 때는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것이니라"(딤전5:4)고 말했습니다.
헌금을 하고 싶을 때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기 싫을 때에는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지로라도 보답하는 마음으로 공경할 때에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상달된다는 말씀입니다.
4). 오래 오래 계속해야 합니다.
모세는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라고 인생의 년한을 말했습니다.
부모의 년한은 굼벵이 기어가는 것같이 느리게 가는 듯 하고, 자신의 년한은 마치 새가 날아가듯, 뜬구름이 날아가듯함을 느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부모의 년한이나 자기 자신의 년한이나 속도는 같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일에 너무 조급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조만 간에 부모는 세상을 떠날 것이요, 자신의 늙고 병들 때가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5). 괴로움을 나누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도 괴로우실 수 있으십니다. 부모도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자식이 철이 없을 때는 모르지만 자식이 철이 들고나면 반드시 부모의 괴로움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부모가 어떤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지 조차도 관심이 없다면 자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현대판 네피림들은 노부모들에게 폭력을 서슴없이 행사한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① 심적, 정신적으로 ② 언어적으로 ③ 신체적으로 ④ 방치해 둠으로 ⑤유기함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과거에도 노부모에 대한 자식들의 폭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에 그러한 통계가 나오는 것은 자식들의 폭력이 서서히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늙은부모가 과거에는 자식들에게 폭력을 당해도 참고 숨겨 왔지만 지금은 참지 않고 폭로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모에 대해 심는 것은 반드시 자녀들을 통하여 거두게 됩니다. 공경을 심으면 공경을 거두고, 구박과 박대를 심으면 그대로 거둘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의 원리인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의 초 자연적인 섭리입니다.
6). 성가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자식을 키우자면 성가실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 사랑으로 참고 견딥니다. 자라나는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말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어릴때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장성한 후의 부모는 때로는 성가신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늙고 병든 부모, 치매와 망령에 사로잡힌 부모는 자식들에게 더욱 귀찮은 존재, 성가신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성가심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치매에 걸리면 이미 때가 가까워왔다는 증거입니다. 부모의 마지막 때에 잘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여호와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며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드리기를 허락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막7:10-13)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부모 공경을 피해 갈 수 있는 고르반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천만 다행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실때에 유대인들의 고르반 전통은 귿르의 구세주가 못되고 그들에게 올무와 덫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에는 아무리 성가시다 할지라도 핑계를 댈 수는 없습니다. 핑계가있을 수 없습니다. 성가시고 ,귀찮더라도 끝까지 참고 견디며 공경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식된 도리입니다.
7). 마음과 감정을 진정시켜야 합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창6:9-10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를 따르는 생활을 했습니다. 부인과 아들들과 자부들을 다 구원했습니다. 그도 인간인지라 어느 날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고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아비를 보았던 함은 마음과 감정을 진정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함은 아비를 공경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아비를 흉보고 비난하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함의 그러한 태도는 아비를 부끄럽게 했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받으실만한 것이 못되었습니다.
끝맺는 말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한 부모님 이시십니다. 육친은 평생의 부모님 이십니다. 스승은 한시적인 부모님 이십니다. 성직자는 신앙 생활의 부모님 이십니다. 부모는 순종의 주체시오, 공경의 대상이십니다. 어릴 때에는 순종으로, 장성하여서는 공경으로 섬겨야 합니다. 반드시 주안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의 달 벽두에 가정폭력의 심각성이 보도되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끔찍한 모습을 보면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은 심정입니다. 거기에는 매 맞는 아내뿐만 아니라 아내로부터 학대받는 남편의 절규도 있습니다. 그들의 말은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라는 것입니다.
지난해 가정폭력으로 처벌된 1만2,983명 중 남편 학대로 형사 처벌된 아내가 347명(2. 4%)으로 전년도에 비해 59%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가정폭력의 최대 피해자는 아내일 것입니다. 전체의 85%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밖에 노인학대(2. 1%)와 아동학대(1. 1%)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모두 해마다 10% 이상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구지방경찰청은 금년 1/4 분기의 가정폭력이 전년도에 비해 74. 4% 증가했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습니다. 가정 폭력이 증가했다기 보다는 가정 폭력이 수면 위로 떠 올라오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기독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모 공경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야 겠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다 할지라도 그래도 선한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해이해 지는 부모 공경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번 일깨워지는 개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제목을 "주안에서 부모를 !"...
사람에 대한 계명 중에는 가장 첫 번째의 계명입니다. 가장 첫 번째의 계명이라 함은 사람에 대한 계명 중에 가장 큰 계명이라는 말입니다. 자신도, 배우자도, 자식도, 형제도, 이웃도 다 부모 다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부모 공경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모공경은 주안에서만 할 것이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1. 누가 나의 부모입니까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모친과 동생들이 찾아 왔었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12:48-50)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부모를 좁은 의미로만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님은 부모를 넓은 의미로 생각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모의 개념을 상당히 넓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부모 형제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웨스터민스트 요리문답(제124문)에는 부모는 "(1). 아버지와 어머니의 뜻은 비단 친부모 뿐만 아니라 연령에 있어서나(딤전5:1-2), 은사에 있어서나 모든 윗사람을 말한다(창4:20, 21, 45:8). (2). 특히 여호와 하나님의 법령에 의하여 되어진 가족(왕하5:13), 교회(갈4:19, 왕하2:12), 또는 나라에 있어서(사49:23), 권위로 위에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고 해석을 했습니다.
윌리아드(G. W. Williard)는 하이델베르그 문답 해석에서 가정교사, 교사, 교장들도 포함된다고 말했습니다.
2. 주안에서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되 주안에서 순종하고 공경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안에서라 함은 주님의 가람침과 범주안에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범해 가면서까지 부모에게 순종하거나 공경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치 않으면 조상 숭배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민족은 원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지라 살아 생전에 효도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아무리 부모에게 효도한 자식이라도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아쉬움이 남기 마련입니다. 행여나 돌아가신 부모가 원귀가 되어 떠돌아다니지나 않을까 하여 빈소를 설치하고 때마다 젯상 차려놓고 애곡을 합니다. 이것을 거상(居喪)이라고 하는데 형편에 따라서 기간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미풍양속이기는 하나 미풍양속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부모 공경이 전통과 형식에 매여 지나치다보니 성경과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부모를 하나의 신으로 만들어 버리는 범죄행위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효도가 못됩니다.
3.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공경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바드(kabad)"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무겁게 여기다. 열정적으로 대하다. 억지로 하게 하다. 오랫동안 계속하다. 괴로워하다. 성가심을 무릅쓰다. 감정과 마음을 완화시키다. "라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카바드"라는 말에서 "카베드(kabed)"라는 말이 파생되었습니다. 사람의 장기 중에 가장 무거운 장기가 간(liver)입니다. 간은 장기 중에 가장 무거우면서 사람의 생명과 직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건강하게 살려면 자기의 간을 소중하게 생각지 않으면 안됩니다. 독성이 강한 음식을 먹는다거나, 신경을 많이 쓰거나, 근심 걱정을 지나치게 하면 간이 약해져서 간에 병이 생깁니다. 간에 병이 생기면 치명적인 타격을 받습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말은 부모를 나의 간과 같이 신경을 쓰고 모신다는 말입니다.
1). 부모를 무겁게 여겨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부모를 무겁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잠언23:22절에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경고했습니다. 청종하라는 말은 귀담아 듣고 순종하라는 말이며, 경히 여기지 말라는 말은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모든 방백은 각기 권세대로 피를 흘리려고 네 가운데 있었도다 그들이 네 가운데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네 가운데서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네 가운데서 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도다"(겔22:6-7)라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방백들은 부모를 업신여겼고, 나그네를 학대했으며, 고아와 과부를 해롭게 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2).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베들레헴 사람 나오미는 며느리 둘을 보았습니다. 첫째는 오르바요, 둘째는 룻이었습니다. 나오미가 모압의 이민 생활을 청산하고 고국의 유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려고 했습니다. 두 며느리가 붙좇았습니다.
시어미 나오미의 만류로 첫째 며느리 오르바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둘째 며느리 룻은 끝까지 시어미를 붙좇았습니다.
룻이 시어미 나오미에게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1:16-17)라고 말했습니다.
룻이 시어미를 끝까지 따라 나선 것은 룻 자신의 장래를 생각지 않고 시어미 나오미의 장래를 생각했습니다. 룻은 시어미 나오미를 자기가 돌보지 않으면 돌볼 사람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룻은 낮에는 보아스의 보리밭에 가서 보리 이삭을 주어다가 시어미 나오미를 공양했습니다. 며느리 룻의 정성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그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며느리 룻의 시어미에 대한 정성은 보아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결국은 보아스의 부인이 되어 다윗 왕의 증조 할머니가 되었습니다(룻4:21-22).
3).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부모 공경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공경하고 싶을 때는 즐거운 마음으로, 공경하고 싶지 않을 때는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것이니라"(딤전5:4)고 말했습니다.
헌금을 하고 싶을 때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기 싫을 때에는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지로라도 보답하는 마음으로 공경할 때에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상달된다는 말씀입니다.
4). 오래 오래 계속해야 합니다.
모세는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라고 인생의 년한을 말했습니다.
부모의 년한은 굼벵이 기어가는 것같이 느리게 가는 듯 하고, 자신의 년한은 마치 새가 날아가듯, 뜬구름이 날아가듯함을 느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부모의 년한이나 자기 자신의 년한이나 속도는 같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일에 너무 조급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조만 간에 부모는 세상을 떠날 것이요, 자신의 늙고 병들 때가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5). 괴로움을 나누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도 괴로우실 수 있으십니다. 부모도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자식이 철이 없을 때는 모르지만 자식이 철이 들고나면 반드시 부모의 괴로움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부모가 어떤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지 조차도 관심이 없다면 자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현대판 네피림들은 노부모들에게 폭력을 서슴없이 행사한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① 심적, 정신적으로 ② 언어적으로 ③ 신체적으로 ④ 방치해 둠으로 ⑤유기함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과거에도 노부모에 대한 자식들의 폭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에 그러한 통계가 나오는 것은 자식들의 폭력이 서서히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늙은부모가 과거에는 자식들에게 폭력을 당해도 참고 숨겨 왔지만 지금은 참지 않고 폭로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모에 대해 심는 것은 반드시 자녀들을 통하여 거두게 됩니다. 공경을 심으면 공경을 거두고, 구박과 박대를 심으면 그대로 거둘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의 원리인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의 초 자연적인 섭리입니다.
6). 성가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자식을 키우자면 성가실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 사랑으로 참고 견딥니다. 자라나는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말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어릴때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장성한 후의 부모는 때로는 성가신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늙고 병든 부모, 치매와 망령에 사로잡힌 부모는 자식들에게 더욱 귀찮은 존재, 성가신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성가심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치매에 걸리면 이미 때가 가까워왔다는 증거입니다. 부모의 마지막 때에 잘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여호와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며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드리기를 허락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막7:10-13)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부모 공경을 피해 갈 수 있는 고르반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천만 다행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실때에 유대인들의 고르반 전통은 귿르의 구세주가 못되고 그들에게 올무와 덫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에는 아무리 성가시다 할지라도 핑계를 댈 수는 없습니다. 핑계가있을 수 없습니다. 성가시고 ,귀찮더라도 끝까지 참고 견디며 공경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식된 도리입니다.
7). 마음과 감정을 진정시켜야 합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창6:9-10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를 따르는 생활을 했습니다. 부인과 아들들과 자부들을 다 구원했습니다. 그도 인간인지라 어느 날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고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아비를 보았던 함은 마음과 감정을 진정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함은 아비를 공경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아비를 흉보고 비난하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함의 그러한 태도는 아비를 부끄럽게 했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받으실만한 것이 못되었습니다.
끝맺는 말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한 부모님 이시십니다. 육친은 평생의 부모님 이십니다. 스승은 한시적인 부모님 이십니다. 성직자는 신앙 생활의 부모님 이십니다. 부모는 순종의 주체시오, 공경의 대상이십니다. 어릴 때에는 순종으로, 장성하여서는 공경으로 섬겨야 합니다. 반드시 주안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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