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효도는 머리가 아니라 기도로 하는것입니다
본문
오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제목은 "효도는 머리가 아니라 기도로 하는것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효, 공경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설교하는 날이라고 보면 됩니다. 어떤 분은 말합니다. 설교본문을 정하고 강해를 하면 되지 않는가 그러면 설교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분은 아직 설교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분입니다. 설교는 단순히 강해가 아니에요. 목사로서 그 말씀을 사모하며 생활하는 소위 Context가 있습니다. 소위 Context 자신의 적용이라는 이것이 없으면 설교 Text를 아무리 잘 강해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울리는 굉가리가 되기 쉽습니다. 설교는 Text와 Context의 대화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Text와 함게 우리가 처한 모든 환경들, 소위 Context의 대화입니다.
조금 딱딱할지 모르지만 잘 들으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집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Text에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반석과 같고, 마치 집을 짓게하는 설계도면과 같습니다. 설계도면이 없이 짓는 집은 사상누각입니다. 반듯이 Text 설계도면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설계도면을 성경을 통하여 줍니다. 그 다음에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Context로 주시는 것, 이것은 우리가 집에 쓸 나무를 고르고, 어떤 페인트를 칠하고, 어떤 가구를 들여놓고 이 모든 것이 Context입니다.
제가 Text와 Context를 말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받았지만 그것에 대한 적용이 너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제가 가장 힘든 설교를 들라고 하면 저는 오늘 부모님에 대한 설교, 어버지 주일에 설교, 효에 대한 설교라고 봅니다. 저는 효자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효도하지 못하는 목사가 효도에 대한 설교를 할려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말씀을 설교한다는 것이 도저히 양심에 꺼려져서 잘 못하겠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효자라고 보지 않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지도 않습니다. 부모님에게 제대로 전화 한번 하질 못합니다. 제대로 하는 것이 없어요. 여러분, 목사의 마음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오늘 어버이주일 부모님에 대한 공경을 이야기하고 효를 이야기해야 하니 저는 참 미칠 지경입니다. 여러분은 효자인지 아닌지 저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한번 물어봅시다. 이 중에 자신이 효자라고 생각되는 분이 있습니까 자신이 효녀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한번 눈을 감으십시오. 이 중에 자신이 효자라고 또는 효녀라고 생각되는 분은 오른손을 들어 주세요. (나는 내가 생각해 보아도 난 효자다 난 효녀다 ). 다시 묻겠습니다. 이 중에 솔직히 자나 자신이 효자가 아니다, 난 효녀가 아니라라고 생각되는 분은 한번 손을 들어 주세요. (나는 내가 생각해 보아도 난 효자가 아니다. 난 효녀가 아니다 감사합니다). 효자 효녀가 없군요. 효자 효녀가 없으니까 설교하는데 좀 염치가 없지만 용기를 내어서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앞에 부끄럽지만 저도 회개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귀한 심령의 밭에 떨어져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려는 귀한 큰 축복을 누리길 간절히 원합니다.
이제 카네이션을 달아야 하는 나이가 되다 보니 여러 생각들이 오고 갑니다. 과거에는 항상 자식이 입장에서 부모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상황이 바뀌어서 이제는 두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부모의 입장을 생각해 보지 않고 그저 아들의 입장에서, 자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는데 완전히 바뀌었어요. 자식의 입장보다는 부모의 입장에 서야 할때가 더욱 많아졌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효도를 가르쳐야 하는데 정말로 힘들어요. 여러분, 그런 것 아십니까
효도는 성경의 가르침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살펴보면 특별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할수 있습니다. 특별히 효에 대해서 성경이 가르치면서 효도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상, Prize을 걸어놓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효도 해라. 그러면 네가 네게 축복을 주는지 안주는지 보라" 여호와 하나님이 상급을 걸어놓고 말씀하는 대목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대목입니다. 성경에 이런 대목이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상을 걸어놓고, Prize를 걸어놓고 하는 말씀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요. 몇가지 중에 한번 살펴 봅시다. 물질에 대한 이야기를 중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면서 십일조라는 것을 말씀하면서 주님이 상급을 걸어놓고 말하셨어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0).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나로 시험까지 하라 말이에요. 내가 복을 쌓을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이에요. " 십일조에 대한것도 상이 걸려 있습니다. 물질를 잘 Manage 하셔야 합니다. 상이 있는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할때 상급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일, 조그마한 일이든 큰 일이든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일이라면 여러분 적극적으로 하셔야 합니다. 성경 마태복음 5:12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일은 억지로 하면 안됩니다.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감당해야 상이 큽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일들을 할때 주의 하셔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마십시오. 알아주는 안 알아주든 여호와 하나님이 아시면 되는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상급이 있는것이지 Show up하려는 그곳에는 상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오늘 말씀에 상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도 똑같이 내가 이런 상을 네게 줄테니 너는 효도해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어떤 상입니까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어떤 복을 말합니까 네가 땅에서 잘되고 형통하리라는 복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에베소서의 말씀은 십계명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다섯 번째 계명입니다. 구약과 신약이 동시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 과거와 현재 바로 지금까지 이 말씀을 붙들고 사는 자를 축복해 주시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 변함이 없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 효도하는 자에게,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축복하시겠다고 말씀하는 메시지입니다.
제가 사람을 보는 원리 중에 하나는 "그 사람이 자신의 부모를 사랑하는가 자신의 부모에게 효도하는가"라는 것을 참 중요하게 봅니다. 그래서 가끔씩 청년들에게도 부모님에 대해서 묻습니다. 묻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에요. 네가 부모를 사랑하는가 네가 부모에게 효도하는가 이런 것을 살피려고 그러는 거에요. 여러분, 자신을 낳아준 부모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두 번째 계명인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고요 이것이 말이 될 것 같습니까 절대로 안됩니다. 두 번째 계명인 이웃에 대한 계명보다 첫 번째 영적인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과 육신의 아버지를 부모님을, 자신을 길러주고 사랑해주고 똥과 오줌을 받아주며 길러준 부모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도 생각합니다. 부모를 배신하는 사람이 누굴 배신하지 못하겠습니까 오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이 약속있는 첫계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가 아니라 첫 번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 이것은 약속이 있는 여호와 하나님께 상을 받는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소위 이것을 오늘 말씀에는 첫계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약속있는 첫 번째 계명이라는 것은 나를 이땅에 보내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를 통한 영적인 원리이기도 하지만 나를 나아 주시고 길러주신 육신적인 부모와의 관계를 통하여 축복의 원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자신을 낳아준 육신의 부모도 사랑하지 않는자가 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하는 사람이, 부모를 배신하는 사람이, 여전히 사람도 배신한다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손가락질하면서 사는 사람이, 자신의 부모를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자기 부인에게, 자기 남편에게, 자기 자녀에게 손가락질 안 하겠습니까 자신의 이웃에게 손가락질 안 하겠어요 똑 같습니다. 두 번째를 보지 말고 약속있는 첫 번째 계명을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형통하는 축복을 누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부모에게 효도하면 복을 받는 다는 것을 믿습니다. 아니 복을 떠나서 효도하는 것은 옳은 일이고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아요.
여러분은 인터넷 서치에서 이런 것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인터넷에서 자녀라는 말을 치면 수없이 나오는 것이 무엇이냐면 한국의 가정문제가 나옵니다. 한국에는 가정의 큰 문제중에 문제가 3가지인데 첫 번째는 "아내를 구타하는 폭력"이 참 많대요. 한국 남자들 종로에서도 막 여자를 때리잖아요. 미국에서 이랬다가는 그 사람 그냥 끌려갑니다. 한국은 그래요. 여자를 구타하는 문화가 여전히 산재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자녀를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학대하거나 구타하는 요소들이 참 많데요. " 제가 주보에도 자녀학대에 대한 문화일보의 글을 올렸습니다. 읽어보세요. 심각합니다. "내가 저 사람의 자식이라느게 저주스러워요" 자녀와 부모의 갈등이 참 심각합니다. 조금이라도 얼굴을 치켜 세우고 말하면 이 자식이 어른을 하면서 손부터 나가요. 자녀에 대한 구타가 심합니다. 세 번째로 "부모를 학대한대요" 나이가 들어 힘없는 부모님, "엄마 오늘 우리 애좀 봐줘요" 막하는 거에요. 막대한답니다.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한국이 유교사회라고 해서 부모에 대한 효가 더욱 많을 것 같지만 문제가 심각한것입니다.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효자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폐단도 참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서슴없이 서양사람들은 효도 모른다고, 효에 대한 책도 없다고! 제가 성균관 대학을 나왔는데 거기에서 강의를 이렇게 하더라구요. 서양은 효에 대한 책이 없다고! 그런데 맞습니다. 서양은 효에 대한 책은 별로 없어요. 하지만 여러분, 이렇게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동양사람들이 효를 잘한다고 말하는데 뒤집어 놓고 보면 서양에는 사실 효자도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불효자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양에는 효자도 많지만 부모와 원수가 된 사람도 참 많습니다. 서슴없이 부모를 죽이는 일까지도 벌어집니다. 도데체 이것을 어떻게 하냐말이에요. 효를 잘 교육하면 됩니까 유교교육, 사서삼경, 효행편을 더욱 읽게 합니까 그렇게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결할수 있습니까
다른 것이 없어요. 성경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인간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정하기 싫어하는 원죄적인 본능이 있어요. 이것이 원죄에요. 이것이 발달하여서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고 섬기기 싫어하는 본능으로 계속 발달하고 발전됩니다. 처음 살인이 가인이 자신의 친동생을 쳐 죽이는 일, 가족살인이 일어났습니다. 이게 다 어디서 왔는가면 죄에서 왔습니다. 성경의 아버지와 아들의 문제들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요! 한국만이 아니에요. 성겨에도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이삭과 야곱, 야곱과 요셉, 압살롬과 다윗등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원죄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어떻게 해결할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목놓아 외치는 것은 아름다운 가정, 화목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잘 믿어야 한다는 거에요. 여호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통하여 죄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16:3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정이 복받는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잘 믿는 가정이 화목한 가정인것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예수 잘믿어 화목한 가정을 이룹시다"
가정 상담학자분이 쓰신 글을 읽었는데 효자 뒤에는 효부가 있다는 말을 하더라구요. 효는 반듯이 혼자가 아니라 자식이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도움이 있어야 한데요. 이것이 무슨 말인가면 혼자서는 효자가 될 수 없데요. 다른 말이 아니에요. 효자뒤에는 효자 부모가 만든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목사님, 불효자는 다 부모탓인가요" 이렇게 반문할수도 있어요. 아닙니다. 효도는 부모의 도움이 있어야 하지만 불효는 다 자기탓입니다. 가정 상담학자가 말하는 것은 진정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들은 그 부모가 자식이 마음 놓고 효도할수 있도록 하고 있답니다. 참 생각해 볼만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하는 말이 있어요. 어버이날에 부모님들은 생각하면서 으레 부르는 노래 있잖아요. "어머님의 은혜" 노래 가사중에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부모의 희생을 느끼는 대목입니다. 모두가 다 찡합니다. 그런데 이 분의 분석에서 이런 분석을 하는거에요. 이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이런 것을 너무나도 지나치게 말하다가 보니까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고,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는 분석이에요. 한국부모들이 꼬박하면 자녀에게 "네가 너를 어떻게 길렀는데!" 이 말만 하면 자녀들은 할말이 없어지는 거에요.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시고 손발이 다닳도록 내가 어떻게 길렀는데, 이렇게 나오면 백이면 백 다 할말을 잃어버립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 부모에게 항복해야 합니다. 옳고 그르건 간에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준 희생의 댓가를 해야 하는데 자녀들이 그것을 못하니까 부담이 되고 스트레스로 바뀐답니다. 한국자녀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중에 "내가 너를 어떻게 길렀는데" 이것을 툭하면 써 먹는데요. 이것은 굉장히 아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두번은 몰라도 그것이 누적되면 자녀에게 상처를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상당학자가 말하는 내용중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자녀들이 알때까지 절대로 부모입에서 그것을 말하지 마십시요"
어떤 리서치를 보니까 한국 젊은이 100명에게 물었더니 70명이 자신의 부모를 미워한다는 보고가 있었어요. 굉장히 깜짝 놀랐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가장 사랑해야 할 관계가 상처가 많은 관계로 변하게 되었다는 거에요. 미국의 아이들은 18살 성인만 되면 훌쩍 떠납니다. 참 대단해요. 그런데 한국의 자녀들은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서적으로 이게 될 수가 없다는 거에요.
제 이야기를 한번 할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겟지만, 지난주에 우리 전도사님이 우스개소리로 목사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신라시대 골품제도를 들어 유머로 말씀하셨지요. 성골, 진골 이런 말을 들으면서 나에게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자산이 있다는 감사도 있었지만 목사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이것으로 인해서 나는 굉장히 아파했습니다. 정말 수없이 멍이 들었어요. 이런것들이 부모님과 나 사이도 안좋게 만들었던때가 참 많았어요. 비근한 예로 저의 자식들 아직 일주야 뭘 모르니까 그렇다지만 신실이만해도 뭘 아는가봐요. 이 애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거에요. "아빠 나 왜 그 집사님이 안 나오는줄 안다" 애가 무엇을 안다고요! 마음이 아팟어요. 이 신실이와 같은 것들이 저에게 너무나 많았고, 또 그것을 수없이 보고 자라났어요. 제가 정말로 우리 아이들에게 참 미안해요. 제 이야기를 할까요. 처음 개척할 때 우리 부부에게는 기쁨이 있었어요. 사람이 없어도 기뻤어요. 그런데 신실이가 그러는거에요. "아빠, 왜 우리 교회는 사람들이 없는 거야. " 내 안에 기쁨이 있지만, 주의 일을 하면서 기쁨은 있지만 이 녀석에게는 이것이 아픈거에요. 어떻게 답을 해 줘야 하나 참 고민했습니다. 쪼그만 녀석이 기도할 때 들어보면 "우리 교회 백명되게 해 주세요" 이런 기도를 들을 때 마다 마음이 좀 그래요.
목사의 아들이라는 것은 저의 목회 강점이기도 합니다. 일단 다른 분보다 본 것이 많아요. 못볼 것도 보고, 볼 것도 보고. 강점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이 약점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이 저를 축복해 주시는 그 이유중에 하나는 제가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목회를 하고 있는 것, 좀 실패를 한다 할지라도, 좀 늦게 간다고 할지라도,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면 실천하려고 했던 것을 다른 목사님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제적으로 해보니까 축복해 주시는 것 같아요. 목사 아들에게는 대부분의 경험이 있습니다. 신학교 시절 친구들 중에 목회자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참 비슷한 경험들이 있지만 이상하리만큼 서로가 자신의 부모님 이야기를 안하는 거에요. 저도 안했어요. 이것이 무엇입니까 "나 상처 있으니 끄내지 마라. " 이런거에요. 그런데 목사 자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로 자녀들에게도 있더라구요. 장로자녀들도 또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거에요. 누가 그러더라구요. 목사와 장로 자녀들은 두가지로 나뉜다. 잘못되면 망나니, 잘되면 목사라고! 그냥 하는 이야기이겠지만 한번쯤 살펴볼만합니다. 목사이면 항상 목사딸이 입에 달고 다니는 거에요. 우리 딸을 보고 누가 그래요. 얼굴에 써 있데요. "목사딸" 여러분의 자녀에게도 써 있어요. "장로딸" "목사아들" "누구 누구 집사딸, 아들"
다른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은 마음속에 상처가 있습니다. 효도하는 사람들에게도요 상처가 있데요. 부모를 안모시는 분도 상처가 있지만 부모를 모시는 자녀들도 상처가 있데요. 잘 못해드리니까 그냥 미안하고 그것이 상처가 되는 거에요. 여러분, "부모를 공경하라"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십계명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런 것 아십니까 다른 9가지 계명은 잘도 지키면서 가장 쉽게 어기는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라는 거에요. 공경하라, 효도하라, 부모님에게 잘 해라 이것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우선되는 것이 무엇인가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 첫 번째 말하였듯이" 부모에게도 정말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는 이것이 있어야 합니다. 공경보다, 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부모 공경중에서 돈이 선물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공경입니다. 부모가 무슨 돈을 바라겟어요. 무슨 선물을 바라겠습니까 마음이에요. 마음없이 행하는 모든 선한일은 위선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마음을 드리는 일을 선행해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부모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청년들은 오늘 돌아가서 부모님에게 한번이라도 더 전화하세요. 그리고 부모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으로 하셔야 합니다.
저는 평생동안 아버지께서, 어머니께서 할머니에게 하시는 것을 보면서 자라났습니다. 저의 아버님이 5남매이신데 고모님 한분, 그리고 모두가 큰아버님, 작은아버님이 모두 합쳐서 4명이 있습니다. 저의 할머님이 20대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20대에 과부가 되셨어요. 70년을 자식을 위해서 고생하신 분이에요. 94세에 돌아가셨는데 저의 아버님이 셋째이신데도 언제나 할머님이 저의 집에서 생활하셨어요. 그냥 잘은 모르지만 할머니께서 저의 집이 편하시데요. 잠시 큰아버님댁도 가고 작은 아버님댁도 가고 그려셨지만 오래 계시지 않으셔요. 그래서 항상 저는 할머님의 품에서 자라났어요.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저는 효자가 아니에요. 그냥 너무 너무 부족한거에요.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한번도 저의 아버님과 어머님이 할머님에게 불효자라고 생각해 본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어머니가 며느리로서 목회하면서 잘 모시지 못하는 것가지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기 았지만 그래도 아버님, 어머니께서 할머님을 극진히 모시고 사셨서요. 효자에게서 효자난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제대로 잘못된 것 같아 죄송하기만 합니다. 저의 아버님, 어머님은 효자라고 저는 단언합니다. 부모님이 하신 것은 제가 여전히 스크린처럼 지나갑니다. 얼마나 아버님이 효자이셨는가면 저의 아버님이 60년대, 70년대, 지금의 조용기목사님, 이만신목사님 알만한 목사님들은 다 아는데 한국 기독교 부흥사이셨습니다. 지금 한국 부흥은 젊은 주역이 어쩌니, 새시대에는 새로운 부대가 맞다느니 하지만 나는 한국 교회의 부흥은 바로 위의 세대에서 십자가를 향한 뿌린 피와 땀과 눈물의 결실이라는 것을 저는 확실히 압니다. 한국이 지금 잘 사는 것은 우리가 잘 해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바로 위의 세대에서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여러분, 열심히 뿌린 댓가에요. 한국교회의 부흥도 똑같습니다. 아무렇게나 치부하면 안됩니다. 부모없는 자식이 없는 것처럼 뿌린 씨앗없이 결실은 없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그랬어요. 목사님들마다 특징이 있어요. 신유에 대한 은사를 하시는 분도 있고, 말씀에 대한 은사가 있는 분도 있고, 여러 특징들이 있습니다. 저의 아버님을 지금도 특징짓는 것이 있습니다. 찬양 사역을 참 잘하셨는데 특히 찬양곡들을 참 많이 작사하셨습니다. 300곡정도를 작사하셨어요. 그 중에서도 모든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곡이 한곡이 있는데 아버님이 주로 부흥회에서 설교하고 부르는 그 효도가가 나중에 철들고 나니 아버지의 이야기였어요. 그것이 바로 효도하는 설교 목사님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효도를 강조하셨는가면 부흥회 3일동안 효도하라 말이에요. 항상 하시는 설교가 그래요. "여호와 하나님앞에 십일조를 하시면 반듯이 육신의 부모님에게도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 여호와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하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적인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앞에 십일조하는 물질만이 아니라 장수하는 복과 더불어 여호와 하나님의 큰복을 받습니다. " 이렇게 설교하시는 거에요. 영의 여호와 하나님 앞에만 십일조를 하지 마시고 육신의 부모에게도 십일조를 하십시오! 동일하게 투명하게 깨끗하게 하십시오. 이 말을 설교하는 본인이 그렇게 하셨어요. 여러분, 평생에 여호와 하나님앞에 정결하게 십일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부모에게 십일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아무것도 해 드리질 못하고 있어요. 한번 오시라고 그래도 "네 목회 혹시 방해할까봐 난 안갈란다. " 그러셔요.
아버님이 제 나이에 작사하셔서 수많은 부흥회를 통하여 은혜를 끼친 찬양곡이 이삼백곡이 되는데 그 중에 최고로 치는 노래가 바로 주보에 올려 놓은 "지성으로 효도하세"라는 곡입니다. 찬송가에 곡조를 따서 가사를 넣은것입니다. 우리 다 함께 이곡을 부르면서 마음속에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며 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음이 일어나길 간절히 원합니다.
나의찬미 들어보소 효도하라 외칠때에
마음속의 찔리는자 회개하고 결심하라
여호와 하나님께 영혼받고 부모피로 육신되어
이세상에 태어나서 자란몸이 아니련가"
날기를때 오줌똥을 양손으로 주무르며
많은자식 하나같이 애태우며 길렀건만
많은형제 어이해서 한부모를 못섬기나
늙은부모 기쁘시게 치성으로 효동하세"
좋은방과 좋은이불 자식들이 차지하고
늙은부모 입은옷과 이부자리 살펴보소
필요없는 담배술은 빨고먹고 하면서도
부모위해 쓰는돈은 인색하게 계산하네
"효도못한 형제들아 복받을줄 생각마라
네자식을 낳아보라 자식나면 알 것이다
요셉축복 부모위해 칠일동안 효성눈물
형제간의 우애눈물 성도들아 본받으라
살아생전 효도하세 죽은후에 후회말고
살았을땐 지성으로 효도생활 하여보세
내가부모 못섬기면 내 자식도 내게 불효
내가효도 하고보면 내 자식도 효도하네
천마가지 죄악중에 불효죄가 제일크고
효자후손 수천대에 길이길이 축복일세
위에로는 여호와 하나님께 아래로는 부모님께
효도하세 효도하세 치성으로 효도하세
마지막으로 효도는 마음으로 하는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효도는 마음이나 머리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효도는 기도로 한다는 것입니다. 자식 때문에 상처받는 부모님도 있어요. 하지만 부모 때문에 상처를 받는 자식도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만나요. 그런데 여러분, 부모는 자식에게 상처를 받아도 자식을 용납하고 용서해요. 그러니까 자식들도 역시 부모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내가 부모에게 상처를 준 것을 우리 부모님이 용서해 준것처럼 우리도 우리도 부모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네가 부모에게 효도 못하는 것도 아실거에요. 그렇다고 여호와 하나님은 불효를 용납하시지는 절대로 않습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상처 상처 상처만을 이야기 하지 말고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것은 부모를 향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하여 용서하는 부모님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부모님이 있어요.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효도는 머리가 아니라 기도로 하는 것입니다. " 부모에게 효도할수 있도록, 공경할수 있도록 기도하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잘되고 장수합니다. 형통하는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잘 하셔야 합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효, 공경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설교하는 날이라고 보면 됩니다. 어떤 분은 말합니다. 설교본문을 정하고 강해를 하면 되지 않는가 그러면 설교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분은 아직 설교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분입니다. 설교는 단순히 강해가 아니에요. 목사로서 그 말씀을 사모하며 생활하는 소위 Context가 있습니다. 소위 Context 자신의 적용이라는 이것이 없으면 설교 Text를 아무리 잘 강해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울리는 굉가리가 되기 쉽습니다. 설교는 Text와 Context의 대화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Text와 함게 우리가 처한 모든 환경들, 소위 Context의 대화입니다.
조금 딱딱할지 모르지만 잘 들으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집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Text에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반석과 같고, 마치 집을 짓게하는 설계도면과 같습니다. 설계도면이 없이 짓는 집은 사상누각입니다. 반듯이 Text 설계도면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설계도면을 성경을 통하여 줍니다. 그 다음에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Context로 주시는 것, 이것은 우리가 집에 쓸 나무를 고르고, 어떤 페인트를 칠하고, 어떤 가구를 들여놓고 이 모든 것이 Context입니다.
제가 Text와 Context를 말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받았지만 그것에 대한 적용이 너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제가 가장 힘든 설교를 들라고 하면 저는 오늘 부모님에 대한 설교, 어버지 주일에 설교, 효에 대한 설교라고 봅니다. 저는 효자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효도하지 못하는 목사가 효도에 대한 설교를 할려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말씀을 설교한다는 것이 도저히 양심에 꺼려져서 잘 못하겠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효자라고 보지 않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지도 않습니다. 부모님에게 제대로 전화 한번 하질 못합니다. 제대로 하는 것이 없어요. 여러분, 목사의 마음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오늘 어버이주일 부모님에 대한 공경을 이야기하고 효를 이야기해야 하니 저는 참 미칠 지경입니다. 여러분은 효자인지 아닌지 저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한번 물어봅시다. 이 중에 자신이 효자라고 생각되는 분이 있습니까 자신이 효녀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한번 눈을 감으십시오. 이 중에 자신이 효자라고 또는 효녀라고 생각되는 분은 오른손을 들어 주세요. (나는 내가 생각해 보아도 난 효자다 난 효녀다 ). 다시 묻겠습니다. 이 중에 솔직히 자나 자신이 효자가 아니다, 난 효녀가 아니라라고 생각되는 분은 한번 손을 들어 주세요. (나는 내가 생각해 보아도 난 효자가 아니다. 난 효녀가 아니다 감사합니다). 효자 효녀가 없군요. 효자 효녀가 없으니까 설교하는데 좀 염치가 없지만 용기를 내어서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앞에 부끄럽지만 저도 회개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귀한 심령의 밭에 떨어져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려는 귀한 큰 축복을 누리길 간절히 원합니다.
이제 카네이션을 달아야 하는 나이가 되다 보니 여러 생각들이 오고 갑니다. 과거에는 항상 자식이 입장에서 부모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상황이 바뀌어서 이제는 두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부모의 입장을 생각해 보지 않고 그저 아들의 입장에서, 자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는데 완전히 바뀌었어요. 자식의 입장보다는 부모의 입장에 서야 할때가 더욱 많아졌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효도를 가르쳐야 하는데 정말로 힘들어요. 여러분, 그런 것 아십니까
효도는 성경의 가르침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살펴보면 특별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할수 있습니다. 특별히 효에 대해서 성경이 가르치면서 효도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상, Prize을 걸어놓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효도 해라. 그러면 네가 네게 축복을 주는지 안주는지 보라" 여호와 하나님이 상급을 걸어놓고 말씀하는 대목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대목입니다. 성경에 이런 대목이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상을 걸어놓고, Prize를 걸어놓고 하는 말씀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요. 몇가지 중에 한번 살펴 봅시다. 물질에 대한 이야기를 중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면서 십일조라는 것을 말씀하면서 주님이 상급을 걸어놓고 말하셨어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0).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나로 시험까지 하라 말이에요. 내가 복을 쌓을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이에요. " 십일조에 대한것도 상이 걸려 있습니다. 물질를 잘 Manage 하셔야 합니다. 상이 있는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할때 상급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일, 조그마한 일이든 큰 일이든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일이라면 여러분 적극적으로 하셔야 합니다. 성경 마태복음 5:12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일은 억지로 하면 안됩니다.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감당해야 상이 큽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일들을 할때 주의 하셔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마십시오. 알아주는 안 알아주든 여호와 하나님이 아시면 되는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상급이 있는것이지 Show up하려는 그곳에는 상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오늘 말씀에 상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도 똑같이 내가 이런 상을 네게 줄테니 너는 효도해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어떤 상입니까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어떤 복을 말합니까 네가 땅에서 잘되고 형통하리라는 복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에베소서의 말씀은 십계명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다섯 번째 계명입니다. 구약과 신약이 동시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 과거와 현재 바로 지금까지 이 말씀을 붙들고 사는 자를 축복해 주시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 변함이 없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 효도하는 자에게,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축복하시겠다고 말씀하는 메시지입니다.
제가 사람을 보는 원리 중에 하나는 "그 사람이 자신의 부모를 사랑하는가 자신의 부모에게 효도하는가"라는 것을 참 중요하게 봅니다. 그래서 가끔씩 청년들에게도 부모님에 대해서 묻습니다. 묻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에요. 네가 부모를 사랑하는가 네가 부모에게 효도하는가 이런 것을 살피려고 그러는 거에요. 여러분, 자신을 낳아준 부모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두 번째 계명인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고요 이것이 말이 될 것 같습니까 절대로 안됩니다. 두 번째 계명인 이웃에 대한 계명보다 첫 번째 영적인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과 육신의 아버지를 부모님을, 자신을 길러주고 사랑해주고 똥과 오줌을 받아주며 길러준 부모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도 생각합니다. 부모를 배신하는 사람이 누굴 배신하지 못하겠습니까 오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이 약속있는 첫계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가 아니라 첫 번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 이것은 약속이 있는 여호와 하나님께 상을 받는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소위 이것을 오늘 말씀에는 첫계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약속있는 첫 번째 계명이라는 것은 나를 이땅에 보내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를 통한 영적인 원리이기도 하지만 나를 나아 주시고 길러주신 육신적인 부모와의 관계를 통하여 축복의 원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자신을 낳아준 육신의 부모도 사랑하지 않는자가 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하는 사람이, 부모를 배신하는 사람이, 여전히 사람도 배신한다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손가락질하면서 사는 사람이, 자신의 부모를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자기 부인에게, 자기 남편에게, 자기 자녀에게 손가락질 안 하겠습니까 자신의 이웃에게 손가락질 안 하겠어요 똑 같습니다. 두 번째를 보지 말고 약속있는 첫 번째 계명을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형통하는 축복을 누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부모에게 효도하면 복을 받는 다는 것을 믿습니다. 아니 복을 떠나서 효도하는 것은 옳은 일이고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아요.
여러분은 인터넷 서치에서 이런 것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인터넷에서 자녀라는 말을 치면 수없이 나오는 것이 무엇이냐면 한국의 가정문제가 나옵니다. 한국에는 가정의 큰 문제중에 문제가 3가지인데 첫 번째는 "아내를 구타하는 폭력"이 참 많대요. 한국 남자들 종로에서도 막 여자를 때리잖아요. 미국에서 이랬다가는 그 사람 그냥 끌려갑니다. 한국은 그래요. 여자를 구타하는 문화가 여전히 산재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자녀를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학대하거나 구타하는 요소들이 참 많데요. " 제가 주보에도 자녀학대에 대한 문화일보의 글을 올렸습니다. 읽어보세요. 심각합니다. "내가 저 사람의 자식이라느게 저주스러워요" 자녀와 부모의 갈등이 참 심각합니다. 조금이라도 얼굴을 치켜 세우고 말하면 이 자식이 어른을 하면서 손부터 나가요. 자녀에 대한 구타가 심합니다. 세 번째로 "부모를 학대한대요" 나이가 들어 힘없는 부모님, "엄마 오늘 우리 애좀 봐줘요" 막하는 거에요. 막대한답니다.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한국이 유교사회라고 해서 부모에 대한 효가 더욱 많을 것 같지만 문제가 심각한것입니다.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효자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폐단도 참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서슴없이 서양사람들은 효도 모른다고, 효에 대한 책도 없다고! 제가 성균관 대학을 나왔는데 거기에서 강의를 이렇게 하더라구요. 서양은 효에 대한 책이 없다고! 그런데 맞습니다. 서양은 효에 대한 책은 별로 없어요. 하지만 여러분, 이렇게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동양사람들이 효를 잘한다고 말하는데 뒤집어 놓고 보면 서양에는 사실 효자도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불효자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양에는 효자도 많지만 부모와 원수가 된 사람도 참 많습니다. 서슴없이 부모를 죽이는 일까지도 벌어집니다. 도데체 이것을 어떻게 하냐말이에요. 효를 잘 교육하면 됩니까 유교교육, 사서삼경, 효행편을 더욱 읽게 합니까 그렇게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결할수 있습니까
다른 것이 없어요. 성경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인간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정하기 싫어하는 원죄적인 본능이 있어요. 이것이 원죄에요. 이것이 발달하여서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고 섬기기 싫어하는 본능으로 계속 발달하고 발전됩니다. 처음 살인이 가인이 자신의 친동생을 쳐 죽이는 일, 가족살인이 일어났습니다. 이게 다 어디서 왔는가면 죄에서 왔습니다. 성경의 아버지와 아들의 문제들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요! 한국만이 아니에요. 성겨에도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이삭과 야곱, 야곱과 요셉, 압살롬과 다윗등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원죄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어떻게 해결할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목놓아 외치는 것은 아름다운 가정, 화목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잘 믿어야 한다는 거에요. 여호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통하여 죄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16:3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정이 복받는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잘 믿는 가정이 화목한 가정인것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예수 잘믿어 화목한 가정을 이룹시다"
가정 상담학자분이 쓰신 글을 읽었는데 효자 뒤에는 효부가 있다는 말을 하더라구요. 효는 반듯이 혼자가 아니라 자식이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도움이 있어야 한데요. 이것이 무슨 말인가면 혼자서는 효자가 될 수 없데요. 다른 말이 아니에요. 효자뒤에는 효자 부모가 만든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목사님, 불효자는 다 부모탓인가요" 이렇게 반문할수도 있어요. 아닙니다. 효도는 부모의 도움이 있어야 하지만 불효는 다 자기탓입니다. 가정 상담학자가 말하는 것은 진정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들은 그 부모가 자식이 마음 놓고 효도할수 있도록 하고 있답니다. 참 생각해 볼만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하는 말이 있어요. 어버이날에 부모님들은 생각하면서 으레 부르는 노래 있잖아요. "어머님의 은혜" 노래 가사중에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부모의 희생을 느끼는 대목입니다. 모두가 다 찡합니다. 그런데 이 분의 분석에서 이런 분석을 하는거에요. 이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이런 것을 너무나도 지나치게 말하다가 보니까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고,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는 분석이에요. 한국부모들이 꼬박하면 자녀에게 "네가 너를 어떻게 길렀는데!" 이 말만 하면 자녀들은 할말이 없어지는 거에요.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시고 손발이 다닳도록 내가 어떻게 길렀는데, 이렇게 나오면 백이면 백 다 할말을 잃어버립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 부모에게 항복해야 합니다. 옳고 그르건 간에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준 희생의 댓가를 해야 하는데 자녀들이 그것을 못하니까 부담이 되고 스트레스로 바뀐답니다. 한국자녀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중에 "내가 너를 어떻게 길렀는데" 이것을 툭하면 써 먹는데요. 이것은 굉장히 아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두번은 몰라도 그것이 누적되면 자녀에게 상처를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상당학자가 말하는 내용중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자녀들이 알때까지 절대로 부모입에서 그것을 말하지 마십시요"
어떤 리서치를 보니까 한국 젊은이 100명에게 물었더니 70명이 자신의 부모를 미워한다는 보고가 있었어요. 굉장히 깜짝 놀랐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가장 사랑해야 할 관계가 상처가 많은 관계로 변하게 되었다는 거에요. 미국의 아이들은 18살 성인만 되면 훌쩍 떠납니다. 참 대단해요. 그런데 한국의 자녀들은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서적으로 이게 될 수가 없다는 거에요.
제 이야기를 한번 할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겟지만, 지난주에 우리 전도사님이 우스개소리로 목사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신라시대 골품제도를 들어 유머로 말씀하셨지요. 성골, 진골 이런 말을 들으면서 나에게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자산이 있다는 감사도 있었지만 목사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이것으로 인해서 나는 굉장히 아파했습니다. 정말 수없이 멍이 들었어요. 이런것들이 부모님과 나 사이도 안좋게 만들었던때가 참 많았어요. 비근한 예로 저의 자식들 아직 일주야 뭘 모르니까 그렇다지만 신실이만해도 뭘 아는가봐요. 이 애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거에요. "아빠 나 왜 그 집사님이 안 나오는줄 안다" 애가 무엇을 안다고요! 마음이 아팟어요. 이 신실이와 같은 것들이 저에게 너무나 많았고, 또 그것을 수없이 보고 자라났어요. 제가 정말로 우리 아이들에게 참 미안해요. 제 이야기를 할까요. 처음 개척할 때 우리 부부에게는 기쁨이 있었어요. 사람이 없어도 기뻤어요. 그런데 신실이가 그러는거에요. "아빠, 왜 우리 교회는 사람들이 없는 거야. " 내 안에 기쁨이 있지만, 주의 일을 하면서 기쁨은 있지만 이 녀석에게는 이것이 아픈거에요. 어떻게 답을 해 줘야 하나 참 고민했습니다. 쪼그만 녀석이 기도할 때 들어보면 "우리 교회 백명되게 해 주세요" 이런 기도를 들을 때 마다 마음이 좀 그래요.
목사의 아들이라는 것은 저의 목회 강점이기도 합니다. 일단 다른 분보다 본 것이 많아요. 못볼 것도 보고, 볼 것도 보고. 강점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이 약점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이 저를 축복해 주시는 그 이유중에 하나는 제가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목회를 하고 있는 것, 좀 실패를 한다 할지라도, 좀 늦게 간다고 할지라도,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면 실천하려고 했던 것을 다른 목사님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제적으로 해보니까 축복해 주시는 것 같아요. 목사 아들에게는 대부분의 경험이 있습니다. 신학교 시절 친구들 중에 목회자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참 비슷한 경험들이 있지만 이상하리만큼 서로가 자신의 부모님 이야기를 안하는 거에요. 저도 안했어요. 이것이 무엇입니까 "나 상처 있으니 끄내지 마라. " 이런거에요. 그런데 목사 자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로 자녀들에게도 있더라구요. 장로자녀들도 또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거에요. 누가 그러더라구요. 목사와 장로 자녀들은 두가지로 나뉜다. 잘못되면 망나니, 잘되면 목사라고! 그냥 하는 이야기이겠지만 한번쯤 살펴볼만합니다. 목사이면 항상 목사딸이 입에 달고 다니는 거에요. 우리 딸을 보고 누가 그래요. 얼굴에 써 있데요. "목사딸" 여러분의 자녀에게도 써 있어요. "장로딸" "목사아들" "누구 누구 집사딸, 아들"
다른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은 마음속에 상처가 있습니다. 효도하는 사람들에게도요 상처가 있데요. 부모를 안모시는 분도 상처가 있지만 부모를 모시는 자녀들도 상처가 있데요. 잘 못해드리니까 그냥 미안하고 그것이 상처가 되는 거에요. 여러분, "부모를 공경하라"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십계명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런 것 아십니까 다른 9가지 계명은 잘도 지키면서 가장 쉽게 어기는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라는 거에요. 공경하라, 효도하라, 부모님에게 잘 해라 이것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우선되는 것이 무엇인가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 첫 번째 말하였듯이" 부모에게도 정말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는 이것이 있어야 합니다. 공경보다, 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부모 공경중에서 돈이 선물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공경입니다. 부모가 무슨 돈을 바라겟어요. 무슨 선물을 바라겠습니까 마음이에요. 마음없이 행하는 모든 선한일은 위선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마음을 드리는 일을 선행해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부모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청년들은 오늘 돌아가서 부모님에게 한번이라도 더 전화하세요. 그리고 부모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으로 하셔야 합니다.
저는 평생동안 아버지께서, 어머니께서 할머니에게 하시는 것을 보면서 자라났습니다. 저의 아버님이 5남매이신데 고모님 한분, 그리고 모두가 큰아버님, 작은아버님이 모두 합쳐서 4명이 있습니다. 저의 할머님이 20대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20대에 과부가 되셨어요. 70년을 자식을 위해서 고생하신 분이에요. 94세에 돌아가셨는데 저의 아버님이 셋째이신데도 언제나 할머님이 저의 집에서 생활하셨어요. 그냥 잘은 모르지만 할머니께서 저의 집이 편하시데요. 잠시 큰아버님댁도 가고 작은 아버님댁도 가고 그려셨지만 오래 계시지 않으셔요. 그래서 항상 저는 할머님의 품에서 자라났어요.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저는 효자가 아니에요. 그냥 너무 너무 부족한거에요.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한번도 저의 아버님과 어머님이 할머님에게 불효자라고 생각해 본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어머니가 며느리로서 목회하면서 잘 모시지 못하는 것가지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기 았지만 그래도 아버님, 어머니께서 할머님을 극진히 모시고 사셨서요. 효자에게서 효자난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제대로 잘못된 것 같아 죄송하기만 합니다. 저의 아버님, 어머님은 효자라고 저는 단언합니다. 부모님이 하신 것은 제가 여전히 스크린처럼 지나갑니다. 얼마나 아버님이 효자이셨는가면 저의 아버님이 60년대, 70년대, 지금의 조용기목사님, 이만신목사님 알만한 목사님들은 다 아는데 한국 기독교 부흥사이셨습니다. 지금 한국 부흥은 젊은 주역이 어쩌니, 새시대에는 새로운 부대가 맞다느니 하지만 나는 한국 교회의 부흥은 바로 위의 세대에서 십자가를 향한 뿌린 피와 땀과 눈물의 결실이라는 것을 저는 확실히 압니다. 한국이 지금 잘 사는 것은 우리가 잘 해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바로 위의 세대에서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여러분, 열심히 뿌린 댓가에요. 한국교회의 부흥도 똑같습니다. 아무렇게나 치부하면 안됩니다. 부모없는 자식이 없는 것처럼 뿌린 씨앗없이 결실은 없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그랬어요. 목사님들마다 특징이 있어요. 신유에 대한 은사를 하시는 분도 있고, 말씀에 대한 은사가 있는 분도 있고, 여러 특징들이 있습니다. 저의 아버님을 지금도 특징짓는 것이 있습니다. 찬양 사역을 참 잘하셨는데 특히 찬양곡들을 참 많이 작사하셨습니다. 300곡정도를 작사하셨어요. 그 중에서도 모든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곡이 한곡이 있는데 아버님이 주로 부흥회에서 설교하고 부르는 그 효도가가 나중에 철들고 나니 아버지의 이야기였어요. 그것이 바로 효도하는 설교 목사님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효도를 강조하셨는가면 부흥회 3일동안 효도하라 말이에요. 항상 하시는 설교가 그래요. "여호와 하나님앞에 십일조를 하시면 반듯이 육신의 부모님에게도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 여호와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하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적인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앞에 십일조하는 물질만이 아니라 장수하는 복과 더불어 여호와 하나님의 큰복을 받습니다. " 이렇게 설교하시는 거에요. 영의 여호와 하나님 앞에만 십일조를 하지 마시고 육신의 부모에게도 십일조를 하십시오! 동일하게 투명하게 깨끗하게 하십시오. 이 말을 설교하는 본인이 그렇게 하셨어요. 여러분, 평생에 여호와 하나님앞에 정결하게 십일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부모에게 십일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아무것도 해 드리질 못하고 있어요. 한번 오시라고 그래도 "네 목회 혹시 방해할까봐 난 안갈란다. " 그러셔요.
아버님이 제 나이에 작사하셔서 수많은 부흥회를 통하여 은혜를 끼친 찬양곡이 이삼백곡이 되는데 그 중에 최고로 치는 노래가 바로 주보에 올려 놓은 "지성으로 효도하세"라는 곡입니다. 찬송가에 곡조를 따서 가사를 넣은것입니다. 우리 다 함께 이곡을 부르면서 마음속에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며 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음이 일어나길 간절히 원합니다.
나의찬미 들어보소 효도하라 외칠때에
마음속의 찔리는자 회개하고 결심하라
여호와 하나님께 영혼받고 부모피로 육신되어
이세상에 태어나서 자란몸이 아니련가"
날기를때 오줌똥을 양손으로 주무르며
많은자식 하나같이 애태우며 길렀건만
많은형제 어이해서 한부모를 못섬기나
늙은부모 기쁘시게 치성으로 효동하세"
좋은방과 좋은이불 자식들이 차지하고
늙은부모 입은옷과 이부자리 살펴보소
필요없는 담배술은 빨고먹고 하면서도
부모위해 쓰는돈은 인색하게 계산하네
"효도못한 형제들아 복받을줄 생각마라
네자식을 낳아보라 자식나면 알 것이다
요셉축복 부모위해 칠일동안 효성눈물
형제간의 우애눈물 성도들아 본받으라
살아생전 효도하세 죽은후에 후회말고
살았을땐 지성으로 효도생활 하여보세
내가부모 못섬기면 내 자식도 내게 불효
내가효도 하고보면 내 자식도 효도하네
천마가지 죄악중에 불효죄가 제일크고
효자후손 수천대에 길이길이 축복일세
위에로는 여호와 하나님께 아래로는 부모님께
효도하세 효도하세 치성으로 효도하세
마지막으로 효도는 마음으로 하는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효도는 마음이나 머리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효도는 기도로 한다는 것입니다. 자식 때문에 상처받는 부모님도 있어요. 하지만 부모 때문에 상처를 받는 자식도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만나요. 그런데 여러분, 부모는 자식에게 상처를 받아도 자식을 용납하고 용서해요. 그러니까 자식들도 역시 부모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내가 부모에게 상처를 준 것을 우리 부모님이 용서해 준것처럼 우리도 우리도 부모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네가 부모에게 효도 못하는 것도 아실거에요. 그렇다고 여호와 하나님은 불효를 용납하시지는 절대로 않습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상처 상처 상처만을 이야기 하지 말고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것은 부모를 향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하여 용서하는 부모님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부모님이 있어요.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효도는 머리가 아니라 기도로 하는 것입니다. " 부모에게 효도할수 있도록, 공경할수 있도록 기도하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잘되고 장수합니다. 형통하는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잘 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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