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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효도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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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회자되는 우스개 말 가운데 쌍둥이 형제가 서로 바라보며 ‘야! 세대 차이 난다’고 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이런 말이 나왔습니까 모든 것이 너무도 빨리 그리고 엄청나게 변하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모든 것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현기증이 날 정도입니다.
얼마나 자주 바뀌고, 빨리 바뀌는지 어제의 지식이나 가치는 오늘에 와서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교육을 관장하는 정부 부처가 어느 부처냐고 물으니 교인들 대부분이 ‘교육부’라고 답합니다. 몇 년 전까지는 옳은 답이었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교육인적자원부”입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다던 말은 옛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초고속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것을 따라 살다 보니 숨을 돌이킬 여유가 없습니다. 요즘은 젊은이들은 밥 한 그릇을 여유롭게 먹지 못하고 빠른 것, 패스트푸드(fast food)를 찾고, 햄버거를 손에 들고, 뛰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여유롭고 한가로운 목가적인 풍경은 이제 그림 속에서나 감상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인생관도, 가치관도 다 변해 공동체적 문화와 가치관이 사라지고 이제는 개인을 중시하는 문화와 리기주의적인 가치관으로 바뀌어, 콩 한 쪽이라도 나누어 먹든 미덕은 찾아 볼 길이 없고, 자신만 좋으면 되지, 이웃을 배려하는 일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인심도 변하고, 삶의 양식도 변하고, 모든 것이 다 변했고, 지금도 계속 변해가고 있습니다.
변화에는 긍정적인 면도, 부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변해서는 안 되는 것까지 변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상대적인 것은 변해도 괜찮습니다. 부자가 가난해지거나 가난한 자가 부해지거나, 여성의 치마 길이가 짧아지거나 길어지거나, 이런 것들은 하나의 현상이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절대적인 것, 근본적인 것, 즉 변해서는 안 되는 것까지 변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변해서 안 되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소위 부모란 사람들이 자녀에 대한 의무를 포기하고 자식을 버립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부부가 이혼을 하면 자식만은 서로 자기가 맡아 기르겠다고 싸웠는데 요즘은 서로 아이를 맡지 않겠다고 외면하므로 버려지는 아이들이 수도 없이 늘어가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있습니다. 그게 부모입니까
반면에 부모를 마다하는 자식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신들에게 도움을 될 경우는 몰라도 섬겨야 할 경우면 싫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젊은이들의 대체적인 경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섬기는 일, 연로한 부모를 봉양하는 일은 인간의 기본적 사명입니다. 그것은 도덕적 또는 신앙적 견지에서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사명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이 관계가 변질될 때 가정이 무너지고, 이웃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사회질서가 문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효가 필수적이요, 절대적이며, 변해서는 안 되는 덕목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구시대의 유물인 것처럼 여기는 풍조가 만연되어가고, 핵가족 시대다 뭐라 해서 노부모까지 외면하는 이 비정한 풍토 속에서 어버이 날이라도 정하고, 어버이 주일이라도 지키면서 부모 공경을 일깨워 주는 일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닙니다.
이 뜻 깊은 날, ‘효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교훈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존경하는 것’이 효 입니다.
그러기에 엡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공경하라”의 ‘공경’은 헬라어로 티마(τμα)로 값 가치 존경 공경 사례 등의 뜻을 가진 말입니다. 그런고로 “공경하라”는 가치를 인정하라 사례하라 존경하라 공경하라 는 의미입니다.
세상 사람이 보기에 아무리 부족해 보이는 부모라 할지라도 그 자녀에게만은 존경을 받고, 공대를 받고, 사례를 받을 가치가 있는 분인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근원이요, 자녀 위해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희생을 지불하여 오늘의 나를 존재케 한 분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 뱃속에 있을 때부터 희생하기를 쉬지 않으셨고 즐거이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해 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존경하기 보다 오히려 부모를 원망하고 무시하는 자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부모는 자식들이 설령 원망을 해도 서러워하기보다는 좀 더 잘 해주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가슴 아파하고 눈물짓는 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근사하게 닮은 사랑이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부모를 존경하지 않고 무시하는 자는 스스로 인간되기를 포기한 자입니다. 인면수심이란 말이 있습니다. 부모 존경하지 않는 자는 인간이라 부르기 부끄러운 존재입니다.
진정한 효는 부모 존경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한 것입니다.
2. ‘듣는 것’이 효 입니다.
잠23:22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라 하였습니다. 여기 “청종하라”는 말씀 쉐마( )는 들으라는 뜻입니다. 듣지 않고, 어떻게 부모의 중심을 헤아릴 수, 그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듣지 않고는 부모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부모님을 만족하게 해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선 “듣는 것이 수 양의 기름 보다 나으니”(삼상15:22)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주님을 대접하려고 동분서주하는 마르다(Μρθα) 보다, 주님의 무릎 아래 앉아서 말씀을 듣던 마리아(Μαριμ)가 더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0:38-42). 음식으로 대접하는 것보다는 말씀 듣는 편이 더 좋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위하여 무엇인가 해드린다고 할 때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을 헤아리지 못하고 내 뜻대로, 내 좋은 대로 해드리는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자기 과시나 자기 만족일 뿐입니다. 모양은 부모님을 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의 만족을 채우는 일일뿐이란 말입니다.
 출가한 딸이 부모님을 찾아 뵙기 위해서 길을 나섰습니다. 정성것 선물도 준비해 가지고 가다보니 기쁘기도 하고 발걸음도 가벼웠습니다. 고향근처에 오니 그렇게도 정초에 내리는 눈이며 산천이 그렇게도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멀리 언덕에 낯익은 모습이 보입니다. 아이들이 먼저 알아채고 “외할머니”를 부르며 뛰어갑니다. 손자들를 얼싸안으신 어머니는 반가와 어쩔 줄을 몰라 하셨고, 딸은 준비한 선물을 자랑스럽게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선물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딸의 손을 잡고 “얼굴이 왜 이렇게 야위었니 살기가 힘들었던 모양이구나” 하시는데, 붙잡은 어머니의 손이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
딸은 안타까워 “얼마나 오래 나와 계셨어요 손이 얼음장같네요” 하고 여쭈었더니, “오늘은 두어 시간밖에 안 기다렸다. 지난 성탄절에는 밤 12시가 되도록 기다리다가 얼음 장군이 되었단다. 이렇게 네 얼굴 한 번 보고 싶어서”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간 딸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분주한 탓에 련락도 드리지 못 했는데, 어머니는 무심한 딸을 그토록 그리워하며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이런 어머니에게 선물 보따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주 찾아 뵙고, 항상 의논드리고, 위로해드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선물이요, 효도이지, 어쩌다 선물 하나 들고 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참 효도는 진정으로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부모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말씀 속에는 언제나 바라시는 바와 기뻐하시는 것이 담겨져 있음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듣고 그 심정을 헤아려 흐뭇하게 해 드리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순종하는 것’이 효 입니다.
엡 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잠 6:20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라 하였습니다.
여기 “순종하라”는 헬라어로 휘파쿠에테( )는 잘 듣는다 순종한다 복종한다 따른다 응한다 이런 뜻입니다.
잠언의 “명령을 지키라”는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말씀을 귀기울여 듣고 부모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헤아렸으면 그 뜻에 따르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효입니다.
공경에는 전제가 없습니다. 무조건 공경입니다. 그러나 순종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 안에서” 헬라어로 '엔 퀴리오'( )입니다. 엔 퀴리오( )란 주님의 뜻 안에서 주님의 품안에서입니다. 주님의 품을 떠나면서까지 순종하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거슬리면서 까지 순종하란 말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신앙생활을 포기하라고 명하거나, 우상 숭배를 요구할 때는 주님의 뜻과 배치되기 때문에 순종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한 절대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효도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효는 부모님을 존경하는데서 시작 됩니다. 부모님은 여러분에게 존경받으실 가치가 있는 분이십니다.
효는 부모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되는 것입니다. 들을 때 부모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효는 부모님께 순종하므로 완성됩니다. 죄 되지 않는 한 절대 순종하여 효성스러운 자녀가 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 대로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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