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부모 공경과 정체성
본문
까리따스 노인학대상담센터와 한국재가노인복지협의회가 지난해 3월부터 올 3월까지 노인학대상담전화(1588―9222)를 통해 접수된 498건의 노인 학대 유형을 분석, 6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언어·심리적 학대가 174건으로 전체의 34. 9%이었고, 폭행 등 신체적 학대는 125건(25. 1%)이었고, 장기간 밥을 주지 않거나 노부모 부양을 거부하는 등 방임형 학대 120건(24. 1%)이었고, 경제적 학대 71건(14. 3%)이었습니다. 신체적 학대의 경우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심하게 구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가해자로는 아들이 189명(44. 1%)으로 가장 많았고, 며느리(112명,26. 1%)가 두 번째였고, 그 다음으로 딸(58명,13. 5%) 배우자(18명,4. 2%) 사위(13명,3. 0%) 손자(8명,1. 9%) 순이었습니다. 상담센터측은 “갈수록 상담 전화가 늘고 학대 정도도 거칠어지고 있다”면서 “자신이 학대받더라도 자식에게 불이익이 갈까봐 참고 지내는 경우가 많은 것을 고려할 때 노인 학대는 노출된 것보다 상당히 많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현대 문명의 발달로 인해 오는 폐단 가운데 하나는 부모공경의 퇴색입니다. 문명이 발달해감에 따라 핵가족 제도와 자녀 과잉보호와 물질 만능주의가 나타나면서 부모공경이 등한시 되고 있습니다. 극도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사회와 가정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오늘 우리 사회가 당한 경제적 환난으로 인해 부모에 대해 더욱 냉대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즘 매스컴을 통해 부모들을 슬프게 하는 자녀들의 행동을 많이 봅니다. 이제 우리의 부모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부모와의 바른 관계를 정립할 때인 것입니다.
1. 부모의 세계관을 이해해야 합니다.
제가 대구에서 목회를 할 때 일입니다. 교회 앞에 고급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우리 교회에 등록되지는 않은 상태였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우리 교회를 지속적으로 나왔습니다. 그 시어머니는 권사이고 며느리는 목사 딸입니다. 그 며느리에게는 어린아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두 분이 모두 신앙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어머니는 새벽예배만 나오고 며느리는 주일 오전예배만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같아서 하루는 그 집을 방문했습니다. 시어머니 혼자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듣고 보니 이해가 갔습니다. 그 두 분이 예배를 각기 다른 시간에 나오는 것은 서로 보기 싫어서였습니다. 그 집은 고부 갈등이 심한 가정이었던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제게 한 말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자신은 아들이 선볼 때 며느리 될 사람이 목사 딸이라고 해서 믿음이 좋을 것으로 생각해서 묻지도 않고 결혼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살다가 보니 믿음이 형편 없더라는 것입니다. 손자가 아프면 자기는 기도를 하는데 며느리는 감기만 걸려도 약을 먹이고 병원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불효는 우리가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부모들이 살아온 환경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①가난한 시대를 살면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살았다고 할 정도로 가난과 배고픔 속에서 살았습니다. 초근목피와 물로 허기를 채웠습니다. 오죽했으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속담과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속담가지 만들었겠습니까. ②전란을 겪으며 좌우익의 갈등 속에서 두려워 했습니다. 일제 침략과 6. 25 동란과 파르티쟌 운동으로 생과 사의 갈림길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생존 법칙을 가졌습니다. ③유교적 구조 속에서 속박되어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 결혼할 수 없었고 시부모에게 절대 복종해야 했고 아들을 낳지 못하는 이유로 갖은 핍박과 학대를 받았고 구타를 당하면서도 칠거지악이라는 정죄 때문에 함구했습니다. ④신앙적으로 흑백 논리의 교리 속에서 영적 자유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당시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교리를 세우는 것을 우선했기 때문에 다양한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토론과 배려와 포용과 협력과 연합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부모들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정상적으로 가질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가치관과 인생관과 신앙관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때는 부모를 이해할 수 없게 되고 갈등이 지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름대로 효도한다고 하지만 부모에게는 기쁨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몰두하기 전에 부모의 삶을 이해하려 해야 합니다.
2. 우리의 자존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어느 작은 어촌에 어린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늘 바닷가에서 놀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은 물새알을 발견하여 집으로 갖고 왔습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물새알로 맛있게 반찬을 해주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소년은 바닷가에서 노는 것이 아니라 물새알을 찾아 헤맸습니다. 하루는 물새알을 줍지 못하고 돌아오는데 어느 집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만히 가서 보니 암탉이 알을 낳고 우는 소리였습니다. 소년은 달걀을 갖고 집으로 왔습니다. 어머니는 달걀을 삶아 주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소년은 바닷가도 나가지 않고 남의 집 닭이 알 낳는 것만 살폈고, 소년의 도둑질은 습관화되어 갔으며, 어른이 되어 갈수록 대담해지고 규모도 커졌으며, 결국 사형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 그가 어머니에게 한 말이다. "어머니 내가 어린 시절 물새알을 갖고 왔을 때 제자리에 갔다 놓고 오도록 올바르게 가르쳐 주셨더라면 이렇게 죽는 신세가 되진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형수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목회를 하다 보면 다양한 교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 가운데는 부모에 대한 분노로 가득차 있는 있는 사람들을 봅니다. 제가 보기에 인성에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어느 집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역반응을 자주 일으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제가 보기에 어떤 공동체에서도 적응하기 힘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홀어머니에게서 형과 함께 자라났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나서 실업 축구팀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절망하고 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갔다 오기도 했습니다. 하는 일이 안될 때마다 자신이 실업 축구 팀에 들어가 계속 축구를 했으면 성공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 잡혔습니다. 그런데 실업 축구팀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어머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실업팀에 들어갈 수 있는 돈을 마련해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부모의 상한 자존감을 이해하는 동시에 우리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지 못할 때 부모에 대한 오해와 원망과 증오와 갈등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고 그런 상태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그 어떤 효도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부모와의 관계를 바로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사랑의 대상자로 선택하시고 영광을 나타낼 목적을 가지신 가치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모를 통해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성장하게 하시므로 그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적 축복의 관계를 이루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부모를 원망할 만한 일이 있다 해도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가장 완전한 여호와 하나님의 선택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모도 당시 상황들 속에서 최선의 선택과 노력을 한 것입니다.
3.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를 조건없이 공경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본문 2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저주하시고 공경하는 자에게는 친히 후대에까지 복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레위기20:9에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했습니다. 신명기21:18-21에는 아비나 어미의 말을 순종하지 않는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고, 잠언30:17에는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공경하는 자에게는 친히 후대에까지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20:12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했고, 신명기5:16에도 "너는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라고 했고, 본문 2-3절에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5:3에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고 순종하는 양으로 부모를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잠15:20, 23:25). 마태복음15:4-9에 보면 예수님은 부모에게 드릴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하면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고르반 사상을 가진 자들에게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여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고 책망했습니다 (막7:11).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말하는 자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기를 원합니다 (골3:20). 구체적인 필요를 채워 주기를 원합니다. 요셉은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을 바라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 흉년으로 궁핍을 당한 부모형제에게 양식을 보내주었고 그들을 청하여 애굽 고센 땅에서 살게 했습니다 (창45:9-11, 47:12). 룻은 시어머니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과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과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에 와서 이삭을 주워 봉양했고 그의말을 순종하여 보아스와 결혼하였습니다 (룻1:18, 2:3, 11). 예수님도 운명하시면서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요19:27).
結言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부모를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부모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해야 하며 필요를 채워 주어야 합니다. 친부모뿐 아니라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와 장인과 장모와 그리고 모든 연로자에게 그리해야 합니다. 레위기19:32에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했습니다.
현대 문명의 발달로 인해 오는 폐단 가운데 하나는 부모공경의 퇴색입니다. 문명이 발달해감에 따라 핵가족 제도와 자녀 과잉보호와 물질 만능주의가 나타나면서 부모공경이 등한시 되고 있습니다. 극도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사회와 가정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오늘 우리 사회가 당한 경제적 환난으로 인해 부모에 대해 더욱 냉대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즘 매스컴을 통해 부모들을 슬프게 하는 자녀들의 행동을 많이 봅니다. 이제 우리의 부모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부모와의 바른 관계를 정립할 때인 것입니다.
1. 부모의 세계관을 이해해야 합니다.
제가 대구에서 목회를 할 때 일입니다. 교회 앞에 고급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우리 교회에 등록되지는 않은 상태였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우리 교회를 지속적으로 나왔습니다. 그 시어머니는 권사이고 며느리는 목사 딸입니다. 그 며느리에게는 어린아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두 분이 모두 신앙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어머니는 새벽예배만 나오고 며느리는 주일 오전예배만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같아서 하루는 그 집을 방문했습니다. 시어머니 혼자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듣고 보니 이해가 갔습니다. 그 두 분이 예배를 각기 다른 시간에 나오는 것은 서로 보기 싫어서였습니다. 그 집은 고부 갈등이 심한 가정이었던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제게 한 말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자신은 아들이 선볼 때 며느리 될 사람이 목사 딸이라고 해서 믿음이 좋을 것으로 생각해서 묻지도 않고 결혼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살다가 보니 믿음이 형편 없더라는 것입니다. 손자가 아프면 자기는 기도를 하는데 며느리는 감기만 걸려도 약을 먹이고 병원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불효는 우리가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부모들이 살아온 환경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①가난한 시대를 살면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살았다고 할 정도로 가난과 배고픔 속에서 살았습니다. 초근목피와 물로 허기를 채웠습니다. 오죽했으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속담과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속담가지 만들었겠습니까. ②전란을 겪으며 좌우익의 갈등 속에서 두려워 했습니다. 일제 침략과 6. 25 동란과 파르티쟌 운동으로 생과 사의 갈림길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생존 법칙을 가졌습니다. ③유교적 구조 속에서 속박되어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 결혼할 수 없었고 시부모에게 절대 복종해야 했고 아들을 낳지 못하는 이유로 갖은 핍박과 학대를 받았고 구타를 당하면서도 칠거지악이라는 정죄 때문에 함구했습니다. ④신앙적으로 흑백 논리의 교리 속에서 영적 자유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당시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교리를 세우는 것을 우선했기 때문에 다양한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토론과 배려와 포용과 협력과 연합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부모들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정상적으로 가질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가치관과 인생관과 신앙관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때는 부모를 이해할 수 없게 되고 갈등이 지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름대로 효도한다고 하지만 부모에게는 기쁨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몰두하기 전에 부모의 삶을 이해하려 해야 합니다.
2. 우리의 자존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어느 작은 어촌에 어린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늘 바닷가에서 놀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은 물새알을 발견하여 집으로 갖고 왔습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물새알로 맛있게 반찬을 해주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소년은 바닷가에서 노는 것이 아니라 물새알을 찾아 헤맸습니다. 하루는 물새알을 줍지 못하고 돌아오는데 어느 집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만히 가서 보니 암탉이 알을 낳고 우는 소리였습니다. 소년은 달걀을 갖고 집으로 왔습니다. 어머니는 달걀을 삶아 주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소년은 바닷가도 나가지 않고 남의 집 닭이 알 낳는 것만 살폈고, 소년의 도둑질은 습관화되어 갔으며, 어른이 되어 갈수록 대담해지고 규모도 커졌으며, 결국 사형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 그가 어머니에게 한 말이다. "어머니 내가 어린 시절 물새알을 갖고 왔을 때 제자리에 갔다 놓고 오도록 올바르게 가르쳐 주셨더라면 이렇게 죽는 신세가 되진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형수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목회를 하다 보면 다양한 교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 가운데는 부모에 대한 분노로 가득차 있는 있는 사람들을 봅니다. 제가 보기에 인성에 상당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어느 집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역반응을 자주 일으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제가 보기에 어떤 공동체에서도 적응하기 힘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홀어머니에게서 형과 함께 자라났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나서 실업 축구팀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절망하고 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갔다 오기도 했습니다. 하는 일이 안될 때마다 자신이 실업 축구 팀에 들어가 계속 축구를 했으면 성공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 잡혔습니다. 그런데 실업 축구팀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어머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실업팀에 들어갈 수 있는 돈을 마련해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부모의 상한 자존감을 이해하는 동시에 우리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지 못할 때 부모에 대한 오해와 원망과 증오와 갈등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고 그런 상태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그 어떤 효도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부모와의 관계를 바로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사랑의 대상자로 선택하시고 영광을 나타낼 목적을 가지신 가치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모를 통해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성장하게 하시므로 그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적 축복의 관계를 이루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부모를 원망할 만한 일이 있다 해도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가장 완전한 여호와 하나님의 선택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모도 당시 상황들 속에서 최선의 선택과 노력을 한 것입니다.
3.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를 조건없이 공경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본문 2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저주하시고 공경하는 자에게는 친히 후대에까지 복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레위기20:9에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했습니다. 신명기21:18-21에는 아비나 어미의 말을 순종하지 않는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고, 잠언30:17에는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공경하는 자에게는 친히 후대에까지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20:12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했고, 신명기5:16에도 "너는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라고 했고, 본문 2-3절에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5:3에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고 순종하는 양으로 부모를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잠15:20, 23:25). 마태복음15:4-9에 보면 예수님은 부모에게 드릴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하면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고르반 사상을 가진 자들에게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여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고 책망했습니다 (막7:11).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말하는 자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기를 원합니다 (골3:20). 구체적인 필요를 채워 주기를 원합니다. 요셉은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을 바라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 흉년으로 궁핍을 당한 부모형제에게 양식을 보내주었고 그들을 청하여 애굽 고센 땅에서 살게 했습니다 (창45:9-11, 47:12). 룻은 시어머니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과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과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에 와서 이삭을 주워 봉양했고 그의말을 순종하여 보아스와 결혼하였습니다 (룻1:18, 2:3, 11). 예수님도 운명하시면서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요19:27).
結言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부모를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부모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해야 하며 필요를 채워 주어야 합니다. 친부모뿐 아니라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와 장인과 장모와 그리고 모든 연로자에게 그리해야 합니다. 레위기19:32에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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