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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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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가 되면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노인문제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연장되기는 했으나 많은 사람들이 정년퇴직 후의 공허함 속에서 무료한 세월을 보내야 합니다. 더욱이 가정들은 날이 갈수록 핵가족화하면서 노인 공경의 정신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고 했는데 오늘날은 영화의 면류관은 고사하고 천대의 면류관이 된 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성경은 노인을 지혜자라고 예찬하지만 현실적으로 아무도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라고 비웃기가 일쑤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회 유치부에 다니는 어린아이가 어느 날 집에 돌아와서 무엇을 열심히 외우고 있어요. 부모가 뭐를 외우고 있나 가만 들어보니 십계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아이가 제5계명을 외우는 "네 부모를 공격하라 네 부모를 공격하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빠가 "이놈아 공격이 아니고 공경이야 공경하라고 했어. " 그러자 아이는 이상하다는 듯이 "아버지 공경하고 공격하고 뭐가 달라요. 똑같은 것 아니에요. " 그 어린아이는 공경이라는 말이 너무 어려워 이해되지 않았지만, 가정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대하는 아빠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아 공경이라는 말의 뜻은 바로 공격하라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가정이 파괴되어 가는 시대입니다. 어느 자녀도 부모를 모시기 싫어해서 결국은 길거리로 나앉는 노부모도 있다고 합니다. 노부모님에게 효도 관광시켜드리겠다고 하면서 외국에 모시고 가서는 그냥 버리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몇 년 전 미국 LA에 버려진 교포 노인을 교민회가 주선하여 우리 나라 양로원에 들여 보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어떤 경우는 부모를 학대하고 괴롭혀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는 아주 잔인한 자녀들도 있습니다. 오늘 세대는 자신들의 삶을 위해 자기 부모를 서슴없이 버리는 세대입니다.
사실 노인에 대한 홀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예전에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잇던 아주 나쁜 습관이 고려장입니다. 고려장은 늙은 부모를 자식이 등에 업거나 지게에 짊어진 후 인적 드문 산 속에 버리는 반윤리적 악습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아들이 연로하신 어머님을 지게로 지고는 고려장을 하기 위하여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기 때문에 길이 제대로 나 있지도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에 뒤를 돌아도 보았습니다. 그것은 지게 위에 있는 어머니가 손에 닿는 나뭇가지들을 꺽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왜 그러시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 말씀이 "네가 나를 저 깊은 산 속 어느 곳에 버리고 돌아갈 때 길을 잃을까봐 네가 돌아가는 길을 위해 나무 가지를 꺾는다"고 하였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버리기 위하여 가건만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갈 아들의 길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바로 이러합니다.
어떤 어머니도 자녀에게 내가 이만큼 했으면 부모로서 할 일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언제나 부족하게 생각하여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무엇이나 좋은 것이 생기면 자기가 쓰지 않고 자녀를 생각하여 자녀에게 주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자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주시고도 더 주시려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여러분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인간이나 동물이 다 자식을 사랑하는데 있어서는 공통점이 잇습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이뻐한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호랑이건, 사자건 어느 동물이건 자기 새끼는 사랑합니다. 새끼도 자기가 필요할 때에는 어머니를 따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크면 어머니를 떠나 독립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받은 은혜와 사랑에 대하여 반드시 갚으려고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비록 다 갚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이나마 성의 표시라도 해야 마음이 편한게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부모가 얼마나 자녀를 사랑하고 아끼고 길러 주셨습니까 굳이 어버이날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자녀를 키우시면서 다 느끼시고 계실줄 압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의 사랑에 대하여 백분의 일,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이라도 갚는 것이 마땅한 도리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이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군말 할 필요 없이 이것은 옳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거창하게 윤리 도덕을 들출 것도 없고, 종교의 율례를 들것도 없이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효는 선행도 아니요 공로도 아닙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당연히 해야될 일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하기는커녕 도리어 부모를 홀대하고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며 싸운다면 그게 어디 인간의 도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의 사랑을 받고 컸건만 부모를 공경하기는커녕 도리어 부모를 공격하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심성이 아니요 짐승의 마음이요 동물의 마음인 것입니다. 사단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성마저도 공격하여 사람들을 짐승만도 못한 인간, 동물만도 못한 사람으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여기 본문을 보십시오. 부모 앞에 너희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주 도덕적이고 훌륭한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 부모이기 때문에 순종하고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나를 아주 잘 길러주고 경제적으로 잘 뒷받침해주고 교육을 잘 시켜 줬으니 순종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요 비록 실수가 있고 잘못이 있지만 나를 지금까지 키워주신 부모님이기에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부모님을 공경하는데 어떤 도덕적인 조건, 경제적인 조건, 사회적인 조건, 문화적인 조건 때문에 순종하라고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너희 부모이기 때문에 순종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성장한 자녀가 보는 늙은 부모는 여러 면에서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있을 것입니다. 공군 조종사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천천히 낮게 비행하라고 권면합니다. 물론 어리석은 권면이지만 그것은 자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주는 권고입니다. 부모의 어리석음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륜의 도를 저버리는 것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것은 인륜의 도덕이요 마땅한 바라서 효를 행해야 할뿐만 아니라 나아가 한가지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 2,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효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법칙일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특별히 정하는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을 지으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 우리를 잘 아십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복되고 즐거운 삶, 평안한 삶을 살수 있는가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 안 계십니다. 그러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십계명을 주셔서 그것을 지키고 살도록 하셨습니다. 최소한 이것을 따르고 살 때 인간사의 문제가 해결되어지고 각자는 복되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축복의 계명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마음에 효도할 마음이 있다면 혹은 오늘 생긴다면 그것은 이미 여러분이 복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한번 예를 들어봅시다. 여러분 어머니하고 친하십니까 할말 못할 말 소곤소곤 나누면서 정을 나누십니까 아니면 만나기만 하면 뭔가 꼬부라져 눈길 하나도 곱지 않습니까 시어머니하고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참 어렵죠. 그런데 여기서 누가 잘 했느냐 잘못했느냐를 따져 가지고는 여러분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무조건 지기로 작정하시면 당장 평안이 옵니다. 단 고통스럽고 참 힘듭니다. 그러나 고통스럽고 때로는 자존심도 상하지만 여러분에게는 평안이 옵니다. 만일 여러분이 시어머니한테 이기면 평안은 없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윗사람에게 대들어서 편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죄에 물들어도 크게 물들어 있는 것입니다. 때린 사람보다 맞은 사람이 발쭉 펴고 편히 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특별히 웃어른에게 대들어 이겨봐야 발펴고 편히 주무실수 없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속이 불편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정을 위하여서 아니 최소한 자기 마음의 평안을 위하여서도 지기로 작정하시면 그때부터 여러분에게 복이 되는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하신 행복의 법칙입니다.
행복은 누구와 싸워 이겨서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행복해 보려고 아둥바둥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참 복락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죽으라고 열심히 일해서 제법 큰돈을 벌었다고 합시다. 30도 되기 전에 52평 아파트 하나 가지게 되고 고급 승용차를 몰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고생하지 않아도 정말 잘 살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 다음날 죽었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우리는 그런 사람을 향해서 이제 살만하니 죽었구먼 복도 지지리 없는 사람이야 탄식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돈이 많아서 복이 아니요 지식이 많아서 복이 아닌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을 누리도록 하셔야 복이 복되는 것입니다.
누가 이런 복을 받습니까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자식들이 그 복을 받게 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창9장에 보면 어느날 노아가 술이 취해 하체를 드러낸 채 자고 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 함이 아버지 장막에 그 장면을 보고 뛰쳐나와 형제들에게 떠벌립니다. 그러나 큰아들 셈과 막내아들 야벳은 그러는 함을 나무라면서 아버지의 옷을 취해 뒷걸음질쳐 들어가 덮어드렸습니다. 여러분 이 자녀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가서 아버지의 허물을 떠벌리고 조롱하던 함은 결국 저주를 받아서 평생 종노릇하도록 하였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말하기를 함의 후예가 바로 흑인들이라고 말합니다. 함은 자기만 종노릇하는 처지에 빠진 것이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함의 후손들이 노예생활을 하면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형제 셈과 야벳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축복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노인네를 골방에 모셔놓고 밥그릇이나 들여놓는 것으로 효도가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여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효자의 가문에 효자가 난다고 합니다. 효의 축복은 대를 이어가면서 자녀 손들에게 내려가는 것입니다. 율곡 선생이 네 살때 일입니다. 율곡 선생이 강릉에 있는 외가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어머니 신사임당이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자 온 집안 식구들이 간호에 매달렸습니다. 아침부터 의원을 모셔오랴, 약을 지어오랴 정신없이 서둘던 날이었는데 어린 율곡이 어디로 사라진 것입니다. 율곡이 없어진 것을 안 것은 어머니 신사임당이 고비를 넘기고 한숨을 돌릴 즈음에야 알아차린 것입니다. 언제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다들 경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는 어느새 대관령을 넘어 어둠이 몰려 왔습니다. 날은 어두워가는데 어디로 갔나 누가 데려갔나. 외할머니가 혼잣말을 하면서 뒷동산 사당으로 알라갔습니다. 그런데 거기 사당 섬돌 앞에 시커먼 것이 웅크리고 앉아서 중얼중얼 대는 것입니다. 가까이 가보니 율곡이었습니다. "율곡아 너 여기서 무엇을 하니" "할머니 어머니 병이 나으라고 빌고 있었어요" "기특한 것 이것이 꼭 제에미를 닮아서"
외할머니는 문득 옛날 사임당의 어렸을 때가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사임당 어렸을 때 이름이 인선이었습니다. 어느 날 율곡의 외할머니가 잠들기 전에 "몸살이 오려나 몸이 찌뿌듯한데" 혼자 말했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 사임당의 어머니가 아침을 지으려고 등잔에 불을 켜는데 사임당이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인선이를 찾으러 옆방, 부엌, 뒤뜰 안을 뒤졌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대문 빗장이 열려진 것을 보고 밖으로 나가보니 이른 새벽 멀리에서 사임당이 걸어오는 것입니다. "인선아 어디 갔다오니" "약수를 뜨러 갔어요" "약수는 왜" "어머니 드리려고요" "나 내가 약수를 왜 먹어 누가 너더러 약수를 떠오라고 했니" "어머니도 그렇게 하시지 않았어요. 그전에 할머니께서 몸살을 앓으시면 어머니께서 새벽에 약수를 떠다 드리셨잖아요"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효의 집안은 대를 이어가며 효하게 되고 그러니 자연 그 집안이 형통하고 복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정하신 계율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한가지 더 부모에게 효도해야 할 이유를 본문에서 찾을 수 잇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효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대로 오늘날 이 세대는 가정의 질서와 윤리가 무너져가는 시대입니다. 특별히 이러한 현상의 뒤에는 분명 사단이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사단은 처음부터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을 할 수만 있으면 파괴하려고 했습니다. 사단이 특별히 역점을 두고 공격하는 목표는 바로 우리의 가정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정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피붙이로서 서로 돕고 행복하게 살도록 율례와 규례를 주시고 거기에 놀라운 축복,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사단은 바로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을 파괴하기 위하여 가정 생활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죄에 물들어 가정이 깨어지고 갈라지는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부부간에, 형제간에, 부자간에 불신과 다툼과 상처가 곪고 곪아서 서로 갈등 반목하도록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위를 살펴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이혼, 별거, 부활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 그리스도인들 마저도 이러한 사단의 농간에 놀아나서 가정의 윤리가 파괴된다고 한다면 이것보다 더 큰 일은 없는 것입니다.
최소한 그리스도인의 가정만은 가정의 윤리가 회복되고, 여호와 하나님이 원래 우리를 향하여 계획하신 바 복되고 아름다운 가정을 꾸며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이 불신 세계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떳떳하고 당당하게 내놓고 자랑할만한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에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강조하여 말하기를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 주 안에서라는 말이 가지는 뜻이 무엇입니까 부모가 주님을 바로 믿고 주님 뜻대로 살 때 부모님께 순종하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부모님이 주 안에 있건 없건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 안에 있어서 새로운 복된 삶을 개척해야 할 사람은 바로 오늘 이 자리 예배에 참석하신 저와 여러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안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부모님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단의 궤계를 물리치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축복의 도리를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면, 주님 안에 있다면 우리는 분명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 안에 있는 증거요 표본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을 살펴보면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대행자 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녀를 돌보며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권위를 위임하시고 자녀로 하여금 부모에게 순종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부모의 권위 앞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날 예배에만 열심히 참석하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설령 여러분이 십일조를 열심히 바치고, 교회에서 충성스럽게 봉사한다 할지라도 만일 여러분이 부모님에게 효도를 드리지 못한다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축복은 기대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이단들의 특성중 하나가 무엇입니까 가정을 무시하라고 가르치며, 나아가 가정을 배반하고 떠나도록 강요합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부모님을 공양하기가 싫어서 여호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서는 고르반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부모님께 공양해야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바쳤으니 이제 부모님을 공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그러므로 만일 어떤 과부에게나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교회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성도 여러분 신앙의 이름으로 불효하지 마십시다.
만일 여러분의 부모님이나 남편이 우리더러 교회 나가지 말라고 말하면 우리는 그 말의 진짜 뜻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말라는 것이면 우리는 그 말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에게 권위를 위임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상과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하지만 만일 그것이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것이면 그것에 단호히 거부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가정의 질서를 세우시고, 가정의 복을 내려 주시기 위한 모든 법을 제정하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신앙을 버리라는 것은 곧 가정을 버리라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에 그 말을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말이 우리가 가정을 돌보지 않고 오직 교회에만 매달려서 남편의 마음이 상하고 부모의 마음이 상한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생활을 심각하게 제고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현대판 바리새인이 되지 않았나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당신은 어쩌면 목사한테는 그렇게 잘하면서 나한테는 이럴수 있는거야"하면 우리는 정말 심각하게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목사님 보다 먼저 여러분의 부모, 여러분의 남편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복받고 가정이 잘되는 비결입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 안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위협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양보하고 이해하고 사랑을 베풀고 부모를 공양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믿는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바로 믿을 때에 가정이 잘되고 교회가 잘되는 것입니다. 성장하는 교회,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회에 소속된 가정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화목하고 온전하게 서갈 때 그 교회가 진정한 교회요 성장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복을 받아야 교회가 복을 받고 잘되는 것입니다. 나라의 근간도 가정이요 교회의 근간도 가정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한번 각자 우리 가정의 모습을 살펴보십시다. 특별히 우리가 부모님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가, 아니 부모님이 우리를 보실 때 정말 우리 자녀는 우리 며느리는, 우리 사위는 효자야 하는 소리를 듣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미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있는 것이요, 앞으로도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복이 계속해서 여러분의 가정에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만일 여러분의 가정에 남이 알지 못하는 문제가 잇고, 불화가 있고, 싸움이 있고, 긴장이 있고, 갈등이 있습니까 우리 집안이 안되는 것은 내가 전에 불효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계십니까 효자 집안에 효자 난다고 했는데 우리 가정은 애초부터 틀렸다고 생각하는 분 계십니까 아닙니다. 전에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주님을 몰랐을 때는 우리는 이게 운명이거니 세상 물결에 휩쓸려 되는대로 살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바로 그와 같은 불행과 고통 속에 신음하는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의 짐에 짓눌려 마음속에 불평과 짜증만 가득차 잇는 우리를 건지시기 위하여, 사단의 계략에 말려서 가정의 화목이 깨어지고, 불화와 분쟁이 있는 우리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짐을 짊어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던 것입니다. 마침내 십자가에서 그 보혈을 쏟아 주심으로 저와 여러분은 이제 죄에서 해방되고, 사단의 눌림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새생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새로운 힘과 새로운 능력이 주어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선행에 열심있는 친백성 삼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전에 죄 아래 있을 때 함부로 행동하던 우리가 아닙니다. 현실 앞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던 무기력자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이제 주님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날마다 공급해 주시는 은혜와 사랑과 새로운 힘과 능력으로 사단의 궤계를 끊어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하시고자 하는 아름다운 가정을 꾸며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정에 화목이 없고 불신과 싸움과 분냄이 가득했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 가정은 불효의 집안이요 나는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더 이상 자존심의 종이 아니요, 죄의 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순간 우리의 모든 죄를 털어 버립시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멸망시키고, 우리 가정을 파괴시키려는 사단의 속임수에서 벗어납시다. 우리는 그럴만한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 뒤에는 강력한 후원자이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주안에서 불효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효자의 집안, 축복받는 집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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