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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순종하라 공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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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이정례 권사님께서 우리 교회에서 제일 연로하신 설순덕 권사님을 팔을 끼고 교회에 입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아름답고 귀하고 참 부럽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부모님을 모시고 팔짱을 끼고 또 자녀들의 팔을 의지해서 입장하신 분들도 여러 분 계셨습니다. 부모님께서 아직 생존해 계시고 또 내가 공경하고 봉양해야 될 부모님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다 아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님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아마 설 권사님께서는 60몇 년 전에 어린 이정례 권사 님의 손을 잡고 나들이도 했고 교회도 드나들었을 것입니다.
이제 거꾸로 되어서 이 권사님이 설 권사님을 그렇게 부축해서 이렇게 주님 앞에 나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연로하신 어른들께서는 정말 남은 생애 무병장수(無病長壽)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또 부모님들을 함께 모시고 살아가시는 우리 효부 효자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오늘은 우리 한국 교회가 지키는 어버이 주일입니다. 2부 예배가 끝나면 우리 교회 옆 갑천 고수 부지 잔디밭에 나가서 함께 애찬을 나누면서 귀한 교제의 시간을 가지고 또 어르신들에 대한 선물도 드리는 귀한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한 분도 빠지지 마시고 예배 마치는 대로 갑천 변으로 나가셔서 우리 모두 좋은 시간을 함께 가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에베소서 6장을 보면 1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그랬고 2, 3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순종하라 공경하라 복종하라 이런 표현들이 나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이 어버이 주간을 맞이해서 참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 부모님에게 공경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
1.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에베소서 6장1절에서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그랬는데 골로세서 3장20절에서는 사도 바울은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그랬습니다.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어떤 것은 순종하고 어떤 것은 순종하지 말고 가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저는 예배에 참석하신 우리 자녀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모든 일에 부모님들에게 순종하고 계십니까 상당히 많은 부분을 선택적으로 부모님에게 순종하고 계시리라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살아 계신 부모님께 모든 것이 순종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청개구리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습니다. 살아 계실 때 모든 것에 불순종했던 아들이 마지막 세상을 떠난 부모 청개구리를 위해서 마지막 순종한 것이 한평생 비만 오면 우는 꼴이 되었지 않습니까
여러분 살아 계실 때 생존해 계실 때 우리가 모든 일에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디이트리히 본훼퍼는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복종할 수 있는 사람만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이 복종할 수 있다. " 이 말의 의미를 바꾸면 "순종할 수 있는 사람만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이 순종할 수 있다" 여러분 사무엘은 사울을 향해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그랬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에 진정한 순종이 있는지를 여러분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유대인의 속담에 "눈에 보이는 아버지께 순종하지 않는 자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믿지도 않는다하는 말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교육 심리학자인 에릭슨은 부모를 존경하고 순종하는 사람만이 여호와 하나님도 신뢰하고 순종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옛날 어느 마을에 화목하기로 소문난 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래 사람들이 다 그 집을 부러워합니다. 그래서 한 화목하지 못한 집의 노인이 그 집에 방문해서 김영감 어떻게 해서 김영감 집은 그렇게 화목하다는 소문이 온 동네에 자자하냐고 물어 봤습니다. 김영감님은 "우리 가정이 왜 집안이 화목한지를 내가 보여주겠다"며 큰아들을 불렀습니다. 첫째 아들을 불러서 "얘야, 내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라" 그렇게 아버님이 나이가 40이 넘은 아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그대로 큰아들이 민망스러움도 다 물리치고 그 아버님 앞에서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는 겁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아들을 불러서 "뒷마당에 나가서 감을 따오너라" 하고 말씀을 하였습니다. 아직도 감은 하나도 익지도 않고 이제 꽃이 떨어지고 감 열매가 겨우 맺히기 시작하는데 둘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서 감 열매를 따왔습니다. 셋째 아들을 불러서 "막내야 지금 외양간에 있는 소를 몰아다가 지붕에 몰고 올라가라"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그런데 셋째 아들은 "어떻게 소를 몰고 지붕위에 올라갑니까" 이렇게 말을 하지 않고 소를 몰아 지붕에 몰아 올리기 위해서 사다리를 놓고 야단법석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김노인이 "보시게 우리 집에 화평은 바로 우리 자녀들에 순종에 있다네" 하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가정에 정말 화평하지 못하고 가정이 은혜롭지 못한 이유가 많은 경우에는 자녀가 부모에게 전적으로 순종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순종하지 않는 자식은 자기가 순종하지 않는 자식이라는 것을 잘 모릅니다. 언제 깨닫게 되는지 아십니까 자기가 자식을 낳아서 순종하지 않는 아들딸을 둘 때에야 비로소 "아하, 내가 순종하지 않는 자식이었구나" 이렇게 깨닫는 답니다. 어떤 심리학자의 조사에 의하면은 사람이 태어나서 어릴 때는 전적으로 부모님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부모를 영웅시합니다. 이제 철이 들어가면서 부모가 점점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면 외소 해 집니다. 그러면서 부모를 무시합니다. 20대 까지는 부모의 말씀을 잘 안 듣고 순종을 잘하지 않습니다. 30대 40대 가서는 "그래도 어르신네 말씀이 일리가 있고 인생에 경험이 많으시니까 합리적인 타당성이 있는 말씀이다. "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40대 50대 60대가 되면서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인생의 후반전 게임을 살면서 "아, 우리 부모님 말씀이 다 맞았구나. 내가 순종했어야 됐는데"고 말합니다. 그때는 이미 우리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시고 내 곁에 계시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불효자는 웁니다.
여러분 가슴속에 부모님에게 효를 다하지 못한 회한(回翰)이 남아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저 자신도 외국에서 10년동안 공부를 한다고 마지막 가시는 어머님에게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린 못난 아들입니다. 한 6개월만 먼저 귀국을 했더라도 어머님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할 수 있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10년에 걸쳐서 공부한 이 박사 학위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어머님 한 분조차 제대로 전도하지 못한 이 못난 아들이다라는 겁니다. 그것이 저의 마음속에 평생 회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어머니이라는 말 만해도 눈물이 날 때가 많습니다.
집사람이 저를 보고 "당신은 다른 때는 안 우는 참 독한 사람인데 어머니라는 말만 나오면 그렇게 왜 잘 우느냐"고 말합니다. 한번은 우리 구역장 성경 공부를 하다가 304장 이 찬송을 부르다가 너무나 목이 메어 한참 동안 찬송을 못 불렀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실 304장 이 찬송을 부르면은 저희 어머님은 예수 님을 몰랐던 분이지만 '그 어머니라는 그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가슴에 와 닿아서 눈물이 날 때가 참 많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부모님이 생존에 계신다면 후회 없는 자식의 도리를 다 하시기를 바랍니다. 왜 우리가 부모님께 순종해야 됩니까 이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라고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이 약속 있는 계명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라고 그랬습니다.
'순종하라', '공경하라', '청종하라', '기쁘게 하라. ' 이 모든 부모와 관련되어 있는 성경 말씀은 다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듯이 부모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거기에 '왜요' 조건과 이유를 달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순종만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내가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부모님 말씀일 때는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은 복종이라도 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순종하지 못하는 며느리들은 부모님들에게 복종하시기를 바랍니다. 복종은 순종보다 차원이 낮습니다. 복종은 억지로 자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때라도 해야 됩니다.
그러나 순종은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하는 믿음의 아들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순종하지 않는 자식을 어떻게 했냐 하면 잠언 30장 17절에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얼마나 엄하게 말합니까. 신명기 21장 18-21절에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부모가 잡아 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이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여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그 성읍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라.
" 성경은 그렇게 엄하게 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다윗 왕의 아들 압살롬은 정말 멋쟁이였습니다. 미스터(Mr. ) 이스라엘 정도가 되었습니다. 머리도 두발도 대단하고 신장도 다른 사람보다 장대하고 그렇게 잘생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비를 배신했습니다. 아버지를 배신해서 쿠데타를 일으켰고 결국은 비참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세상에 부모들은 자식을 이용하는 경우가 없지만 자식들은 부모를 이용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아셔야 될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하듯이 부모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축복이 비결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될 줄 믿습니다.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두 번째로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그랬습니다. 출애굽기 20장이나 신명기 5장에서 십계명의 5계명으로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레위기 19장 3절에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자키라. 나는 너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니라. "그랬습니다. 여기 공경하라. 존경을 표하고 부모를 귀하게 여기고 명예롭게 여기고 존중하라고 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이 '공경'이라는 말을 사실 '키베드' 라는 단어로 썼습니다. 이것은 '무겁다' 라는 그런 뜻인데 부모를 중하게 여겨라. 무거운 것을 들 때 허리를 굽히는 자세, 무거운 것을 들 때 자세를 낮추는 것 이것에 바로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공경이라는 말은 부모 앞에 머리를 숙이고,
부모 앞에 내 몸을 낮추고 허리를 굽히고 자세를 낮추는 그래서 부모를 높이는 그런 모습을 공경이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부모를 공경해야 됩니까 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됩니까 이것은 천륜(天倫)이고 인륜(人倫)이기 때문이며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에 명령이요, 이것은 이 세상에 첫째 되는 계명이기 때문에, 또 인간의 도리이기 때문에, 그리고 부모님은 나의 삶에 원천이요 뿌리이기 때문에, 부모님은 내 인생의 축복의 그릇이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를 더욱더 귀하게 공경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홀대(忽待)하고 부모를 함부로 대하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식이 축복 받는 경우는 결단코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자 어떻게 우리 부모를 공경해야 되겠습니까 부모님에 말씀에 순종하고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 공경의 첫 번입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부모를 기쁘게 하라"그랬습니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여러분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그런 믿음의 아들딸들이 되셔야 될 줄 믿습니다. 두 번째 부모님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필요한 것이 젊을 때보다 훨씬더 많아진다고 합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잔소리, 설움, 노여움, 갖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이 많아지고 나이가 많아지면 몸도 자주 가렵다고 합니다. 여러분 부모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아들딸이 되어서 지금 부모님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헤아려서 그것을 충족시켜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노인이 되면 정말 서글프고 고달픕니다. 인간의 상실감을 경험을 합니다. 고독감을 경험합니다. 물질적인 궁핍을 경험합니다. 육신의 질병을 경험합니다. 부모님을 잘 공경하는 아들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요즘 21C를 살아가는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현찰이라고 합니다. 마음으로 이렇게 해 드리고 저렇게 하는 것 보다 정확하게 여호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듯이 부모님에게 십일조를 드리는 아들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큰 소리로 '아멘' 하십시오. 부모님에게 십일조를 드리는 아들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했습니다. 다음달부터 제대로 부모님에 대한 십일조가 안 드려지면 저에게 신고하십시오. 그러면 전부다 집사 직분을 떼어 버려야 한다던 지 무얼 해야 될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십일조를 제대로 안 하는 사람은 부모님에게 십일조를 제대로 할 수 없고 부모님에게 제대로 안하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님을 잘 공경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마가복음 7장을 보면 고르반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허위 허식을 강하게 지적한 장면이 나옵니다.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여호와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 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여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이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다 하면은 거기에 대해서 부모님에게 효를 다하지 않아도 그것을 가지고 부모님을 공양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잘못된 고르반 제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자녀들이 부모 공경하기를 소홀히 하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한밭 교회에는 참 효자 효부들이 많습니다. 제가 볼 때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여기서 한 분 한 분 다 거론할 수는 없지만 참 효자 효부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봤을 때 저러면 안 되는데, 저 자식이 저러면 안 되는데, 저 부모를 향해서 저러면 안 되는데, 저 아들딸이 저러면 안 되는데 싶은 사람이 가끔 있습니다. 제가 오늘 오전 1부 예배 시간에 호통을 치니까 고개를 푹 숙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보고 안 그랬는데 양심에 가책이 되니 고개를 떨굽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라도 여호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내가 온전히 효를 다한다는 확신이 없는 사람은 부끄럽게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이후로 부모님에게 효를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부모님의 권위를 지켜 드리는 아들딸이 될 때 진정으로 부모를 공경합니다. 여러분 창세기 9장을 보면 노아가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둘째 아들 함이 자기 아버지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옷을 취하여 뒷걸음쳐서 자기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 주고 자기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했습니다. 그때 잠에서 깨어났던 노아가 함을 저주하고 셈과 야벳을 축복한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부모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부모님을 귀하게 높여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네 부모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데 어떻게 남이, 다른 사람이 내 부모를 귀하게 여기겠습니까 부모님을 귀하게 여기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아버지가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담배를 피웠다가 선생님께 들켜서 학교에 호출되어 갔습니다. 왜 아들을 잘못 지도했느냐 하면서 선생님이 물으니까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 아이는 뱃속에 회충이 많아서 담배를 피워야만 됩니다
' 하면서 자식의 허물을 덮더라는 겁니다. 이게 부모의 심정인 것입니다. 하물며 더덕욱 자식이 부모의 허물을 덮고 부모를 존 귀히 여기고 받드는 그런 믿음의 자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교역자들은 흔히 경험을 합니다만 심방을 가보면 자식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제가 전도사로 거제 교회에 있을 때 돌잔치 갔습니다. 젊은 부부가 목사님과 여러 교역자를 모시고 식사를 하는데 아이가 소변 마렵다고 야단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막 찾다가 얼른 소변 누일 때가 없으니까 밥그릇을 사내 소변을 밥그릇에 받아 내는 거예요. 우리가 생각했을 때에는 "더럽다.
" 이렇게 생각이 들지만 부모는 하나도 안 더러운 겁니다. 자식을 밥그릇에 소변을 누이는 것은 하나도 안 더러운 거예요. 그러나 자식들은 부모가 약간만 어떤 문제가 있어도 얼굴을 찡그리고 잔소리를 하고 부모님을 오히려 책망하고 하는 그런 일들을 우리는 흔히들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을 바꾸어야 됩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나에게 했던 십분의 일 만해도 아마 효자라는 말을 듣고 효녀라는 말을 다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향해서 원망하지 말아야 됩니다. 원망하는 자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저런 이유로 원망이 많습니다. 나이가 어릴 때는 "왜 나를 낳으셨나요.
차라리 부잣집 남들처럼 떳떳하게 뒷바라지는 못해 줄 것 같으면 왜 나를 낳으셨나요. "고합니다. 여러분 시집갈 때 부모님 속 많이 상하게 해 놓고 시집간 사람 잘 살지 못합니다. 딸이 시집갈 때 부모님이 충분하게 해주지 않을 것 같으니까 "왜 나를 낳았냐"고 그렇게 때 쓰는 딸들도 있습니다. 자식들이 "왜 나를 들창코로 낳으셨나요. 왜 나를 숏 다리로 낳으셨나요. 왜 나를 이렇게 낳으셨나요. " 하면서 청소년 시절에 부모를 원망한 적이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만드셨지 부모님이 나를 만드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사실을 알면 부모님에게 감사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받아서 나를 만드셨을 뿐입니다. 책임을 부모님께 돌리지 말고 자신의 존귀함을 부모님이나 여호와 하나님을 통해서 감사할 수 있는 그런 자녀들이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 서울 종로구에 가면 효자동이라는 동이 있다고 합니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효자동이라는 것이 왜 생겼냐고 하면 옛날에 한 노인이 잠을 자다가 뒤척뒤척 몸부림을 치다가 옆에 누워 자고 있던 손자를 깔아뭉개 죽였습니다. 그래서 며느리가 깜짝 놀라서 그 죽은 손자를 안고 밭에 나가서 일하는 아들에게 달려가서 "아버님께서 주무시다가 지금 우리 아이를 깔아뭉개 죽게 만들었다. "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아들이 "세상에 이런 일들이 어떻게 있나. 아버지께서 노망을 했지. " 이렇게 하지 않고 "이놈의 자식이 잘못했다고 왜 아버님께서 주무시는 그 옆에 누워 있다가 아버님 밑에 깔려 죽느냐" 하면서 자기 아들을 한 대 쥐어박으면서 손찌검을 했는데 아이가 깜짝 놀라 아이가 깨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동네 이름을 효자 동이라고 불렀답니다. 효자 동의 유례는 그렇답니다.
 여러분 조금만 하면 우리는 막 원망을 합니다. 요즘 젊은 며느리들 젊은 아들들 힘없는 부모님 양팔이 떨어지도록 손자들 맡겨 놓고 자기들은 온데 돌아다니다가 와 가지고 손자들이 자기가 벽에다 이마를 박아 가지고 혹이 났다든지 책상 모서리에 박아서 찢어지면 자기 아이 별난 것은 모르고 부모들이 아이 잘못 봐서 그렇다고 원망을 해대는 못 땐 며느리들 많습니다. 항상 원망하지 말고 감사해야 됩니다. 정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고 넘치듯이 부모님의 은혜가 나에게 족하고 넘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저는 10남매 가운데 아홉 번째로 태어났기 때문에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참 좋아하면서 외웠던 시조가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 이조 선조 때 유명한 학자였던 '박인로'라는 사람이 지었다는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니 품어가 반길이 없어니 유자이 아니라도 품어가 반길이 없어니 이를 설워하노라' 하는 그 시조를 많은 분들이 다 기억할 줄 압니다. 어느 친구 집에 갔더니 쟁반에 벌겋게 잘 익은 홍시를 선물로 내 놓았습니다. 얼마나 탐스럽고 먹음직한지 모릅니다. 저것이 유자가 아니라도 정말 저것을 가져다가 부모님에게 드렸으면 참 좋겠는데 내가 이것을 가져다가 드릴 리가 없으니 내가 이것을 서러워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부모님이 지금 생존해 계시고 지금 옆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님을 못 모시고 있는 며느리들은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다른 며느리를 보고 부러워하시는 며느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안 하시네. 먼저 세상을 떠나 보내고 나면 얼마나 그립고 아쉬운지 모릅니다. "어머니" 그 한마디만 내뱉어도 가슴이 찡해지는 말이 바로 어머니인 것입니다. 유명한 조선시대 송강 정철이 강원도에 관찰사로 지금으로 치면 도지사로 부임을 했습니다. 그때 강원도에 가서 훈민가라는 강원도 도민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지은 훈민가 16수중에 효도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버이 살아계실제 셤긴일란 다하여라 디나간 후면 애닯다 엇디하리 평생에 곳텨 못 할 일이 잇분인가 하노라" "부모님 살아 계시는 동안에 섬기기를 다하여라 부모가 돌아가셔서 지나간 후면 애닯다고 하여도 어찌할 것인가 평생에 두 번 다시 고쳐서 못할 일은 잇분인가 하노라. " 여러분 부모님은 내 삶의 뿌리입니다. 뿌리가 강해야 내가 강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내 삶에 축복의 그릇입니다. 축복의 그릇이 든든하고 커야만 내 삶에 축복이 넘칩니다.
3.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오늘 성경 본문에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부모님에 효를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님께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님을 올바르게 공경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부모님의 효를 다하시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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