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TOP
DOWN

[어버이] 부모를 공경하라

본문

세상 여러 나라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애창곡 가운데 "홈 스위트 홈"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일세"라는, 우리가 잘 아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만든 존 하워드 페인은 한번도 가정을 가져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가 친구에게 쓴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상한 얘기 같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가정의 기쁨을 자랑스럽게 노래한 나 자신은 아직껏 내 가정의 행복을 모르고 지냈으며, 앞으로도 나는 그 행복을 모를 것이요. "
그는 이 편지를 쓴 뒤 1년 뒤에 사는 집도 없이 거의 길가에 쓰러지듯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뒤 고향의 공동묘지에 이장이 되어 비로소 안주할 땅을 얻었습니다.
사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 비극을 되풀이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차이가 있다면 하워드 페인은 집없는 떠돌이로 살았지만, 우리는 가정을 가진 독신자, 결혼한 독신녀, 부모님 계신 고아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사회지표를 나타내는 각종 통계는 이러한 가정의 위기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출 청소년이 늘어 나는가 하면 이혼율의 급증과 미혼모의 출산과 가정 폭력과 존속 살해가 날로 심각성을 더해 가고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신 제도는 성경을 보면 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가정과 교회입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완성이었으며,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정은 교회의 축소판이며 교회는 가정의 확대판입니다. 그래서 "가정을 교회처럼, 교회를 가정처럼" 만들 수 있을 때, 비로서 가정과 교회는 진정 작은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가정의 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우리가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부모의 권위, 부모 공경의 정신이 무너져 내린데 있다고 생각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이 계명의 권위를 사람들이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이유는, 부모는 자녀에게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어린 시절 절대 신뢰를 통해 성장합니다. 성장하는 동안 전적으로 부모의 은혜를 입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어린 시절 부모들이 보여주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맨 처음 갖게 되는 인간 관계는 바로 부모와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육적 출생을 통해서 부모와 관계를 갖게 되며 영적 출생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의 처음 관계가 부모와의 관계이기에 이 관계가 잘 되지 못하면 다른 모든 인간 관계가 잘 될 수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온전치 못한 사람이 사회에 나가 다른 사람들과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따라서 모든 관계의 중심이 되며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된 이들은 먼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말씀을 생활의 기본으로 여겨야 합니다.
신앙과 효도는 한 몸입니다. 효도는 신앙의 첫 열매입니다. 참 신앙은 먼저 부모를 공경하는데서 나타납니다.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습니다. "너희 의가 옛날 유교의 가르침에서의 부모 공경의 의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주님께서 경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란 말씀은, 네 부모를 공경하면 네 생명이 길리라는 십계명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네 생명이 길리라, 이 말씀은 부모 공경에 주어진 약속입니다.
이 약속에 개인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를 공경하는 가운데 수명을 연장 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습관과 성품을 소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분위기에서 형성된 성품에는 수명을 연장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평온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종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형성된 성품에는 수명을 단축시키는 경향이 있는 무모함과 조급함, 악랄함, 무정함과 흥분을 잘하는 기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이 진정으로 적용되는 대상은 민족 전체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민족이나 백성은 오래도록 안정된 문화를 이룩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권위를 존중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평화와 안정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진정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나 민족에게 큰 은혜와 축복을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나아가서 우리 부모님된 이들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말씀처럼, 자녀들을 주 안에서 양육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 안에서 양육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것은 먼저 부모된 이들이 삶의 가치와 목표를 성경의 표준에 맞추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가정에서 하는 부모의 행동, 태도, 판단, 생각과 이상은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표준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이 우리 생활을 지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장차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기준은 바로 부모님들의 무릎에서 배운다는 사실을 우리가 꼭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가 그들에게 해 준 말을 들을 수도 있고, 듣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 특별히 부모님들의 행동은 결코 잊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정말 사랑하는 부모라면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것입니다. 혹시 결혼하지 않았을 때는 자기 기분에 따라 활동하거나 지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생기면 그 때에는 달라져야만 합니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면 두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라 6명이 함께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신랑과 신부의 생각과 생활 태도에 그들 부모님들의 의식과 태도가 자기도 모르게 베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있는데도 과거와 달라진 점이 없는 부모라면 그는 이미 부모로서의 자격이나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안에서 양육한다는 말씀은 부모된 자신이 먼저 주님의 양육과 훈계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최악의 실패는 부모됨의 실패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잘 되려면 부모님부터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그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 해야합니다. 어른들은 자기 자신의 양심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르나, 자녀들의 눈은 결코 속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모들은 자녀들의 순결하고 고상한 삶을 위하여, 스스로 죄된 것들로부터 구별하여 진실로 거룩하기 위해 저 옛날 에녹이 했던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에녹을 보세요. 그는 아들을 낳은 후에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했습니다. 창 5:21-22에 보면,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에녹이 65세가 되기까지의 그의 생활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 간은 분명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의 이 기록은 아주 특수합니다. 왜 에녹이 아들을 낳기 전까지는 아무런 말이 없다가 자녀가 생긴 후부터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자기가 부모로서의 책임을 지기에는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에녹이 자녀가 생기면서부터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최초로 하늘로 들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깊이 새길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을 여호와 하나님께로 인도하려면 내 스스로가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먼저 앞에서 행하고, 자녀들로 하여금 내 뒤를 따르게 해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생활이 실패하는 이유는 부모들이 자기들의 자녀들에게는 죄와 불의와 가까이 말고 주님과 함께 동행할 것 기대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 자녀를 잘되게 하려면 부모된 이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 부모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또 우리의 자녀들이 잘되기를 열심히 빌고 기도하면서도 실상은 우리의 자녀 교육을 모두 세상에 맡겨 버렸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만을 터득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듯이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이 세상에 살아남는 법만을 배우도록 요구하고 있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제대로 가르친 적이 별로 없는 것은 아닌지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자녀에게 누구를 가장 무서워하게 할 것이냐를 꼭 가르쳐야 합니다. 구약의 나훔서 1:2-4에 보시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리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 발의 티끌이로다.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우시며 모든 강을 말리우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여 레바논의 꽃이 이우는도다. "
성경이 여호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말씀하고 있습니까 진노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심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꾸짖고 책망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무섭게 채찍을 들고 혼 내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이 이토록 무섭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누구를 두려워해야 정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여러 성도 여러분은 뭐가 제일 무섭습니까 세상입니까 권세와 명예와 돈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닥달을 하면서 자녀들을 공부를 시키는 이유도 깊이 들여다 보면 바로 이 세상이 요구하는 돈과 권세와 명예가 그토록 소중하고 또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진정 부모된 이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시면 절대 자녀를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실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정말 두려웠다면 먼저 신앙교육을 시킬 것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네가 몰라서 그렇지, 이 공부는 꼭 해야 된다"라고 눈에 불을 켜고 가르치듯이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가르쳤을 겁니다.
자, 우리 자녀가 학교를 안 가서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댁의 자녀가 학교에 안 왔는데요. " "아니에요. 선생님! 아침에 도시락 싸들고 갔는데요. " 그러면서 속으로는 "이 녀석 들어오기만 해 봐라" 하면서 대낮부터 심장이 콩 튀듯 팥 튀듯 안 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주일날 아이가 교회에 안 나와서 전도사님이 "집사님! 집사님 댁의 아이가 주일날 예배당에 안 나왔습니다"고 집에 전화를 합니다. 그러면 "아휴, 우리 아이는 이상하게 교회가 재미 없대요"하고 맙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안 무서운 겁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가정의 실패의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이유를 멀리 가서 찾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 우리 가정생활의 신앙에 실패했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힘, 내 능력이 자녀를 감화시키는데 못 미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저는 바른 신앙 교육을 못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제 자녀의 마음에 오셔서 간섭해 주십시오. 부모된 나를 통하여 험한 이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복된 신앙을 전달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진정 성도 여러분의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십니까 우리 자녀 늙어도 청정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진정으로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부모된 내가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린 사람임을 보여주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을 가장 두려워해야 할 분임을 부모된 내가 생활 속에서 보여주십시오.
우리의 자녀를 세상에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자녀의 마음을 그의 본성과 세상의 타락한 원리에 내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고 여호와 하나님 손에 붙잡힌 바 되게 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공경받는 부모가 될 것이며, 우리 자녀 또한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길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회에 처음 나와서 당황하게 된 첫 말은,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란 말이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의 아버지는 알코홀 중독자요, 술취해 엄마를 때리고 아이들 내쫓고 미워하고 가정을 망친 장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버지같은 분이라면 나는 그런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오랜 세월을 방황하다가 겨우 신앙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부모의 잘못됨이 가정을 무너뜨리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의 삶과 인격도 무너뜨리고, 나아가서 신앙에 까지 장애물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한번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은 자녀들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공경받는 부모가 되어라, 이것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지름길입니다. 이런 가정,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와 공경받는 부모가 세워 나가는 우리 가정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여호와께서 시온의 복을 내리시고, 또 우리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과 평강을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