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어머니의 마음
본문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키우면서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어떤 말일까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 것이고 시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공부하라는 말은 세계의 모든 부모님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하는 말일 것입니다. 이 말을 빼고 무슨 말을 가장 많이 하는 것인가 여러분들은 어떤 말을 가장 많이 듣고 자랐습니까 저는 생각하기에 '커서 훌륭한 사람되거라. ' 그런데 요즈음 한국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야 너 밖에 나가서 기죽지 말어. ' 그래, 어린 자녀들이 가게에 가서 물건을 함부로 만지면, 가게 주인이 '야 그거 만지지 말라. 잘못하면 깨진다. ' 그러면, 우리 때의 어머니들은 '만지면 안돼!'하고 주인 입장이 되어 자녀들을 꾸중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젊은 어머님들은, '아니 그런거 가지고 뭘 그래요. 우리 애 기죽이지 말아요. 깨지면 물어주면 되잖아요. ' 기죽이지 않고 자녀를 키우고 싶은 욕심이야 모든 어머님들의 소망이지만,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기를 살리는 일이 되는 것인지 한국 사회에 요즈음 과외가 문제시되는 것은 자녀를 잘 길러서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목적이긴 하지만, 자녀 기죽이지 않게 하기 위한 부모님의 욕심이 더 앞선 것은 아닌가 나는 못 먹고 못 입어도 자녀를 기 죽일수 없다는 부모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이렇게 키운다고 해서 과연 자녀의 기가 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기만 살아있는 이런 자녀가 커서 뭐가 될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기만 살아 있으면 커서도 뭐든지 자기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별로 남의 입장에 설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다르게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 주장만 하게 됩니다. 그래서 회의를 할 때, 자기 의견이 통과가 되지 않으면 자기 인격이 무시당했다 생각하고 매우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인격하고 의견하고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격하고 의견을 동일시하는 것은 기만 살려 논 한국 교육의 잘못입니다. 가정 교육의 잘못입니다. 흔히 하는 말이 공주병 왕자병에 걸렸다고 말합니다. 아이고 우리 공주님, 우리 왕자님 하며 애지중지 키우다 보니까 그만 자기만 생각하는 깊은 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서에는 '자녀에게 초달을 아끼지 말라. ' 사랑의 매를 아끼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함부로 자녀를 때리는 일도 잘못된 일이지만, 너무 감싸는 일도 잘못된 교육입니다. 미국에서 병원같은 공공장소에 가보면 미국아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가만히 부모님 곁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아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그런데 부모가 이를 제재하지 않습니다. 제재를 하여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저는 제 아들 유대인 친구가 13살 되었을 때에 유대인 회당예배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예배가 거의 4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어린아이들이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겁니다. 몸도 비틀지 않습니다.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조용히 일어나서 갔다옵니다. 한달에 한번씩 저희 교회에서는 자녀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한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예배에 너무 방해가 되어서 어린이들은 중간에 나가게 합니다. 한국에 있으면서 느끼는 것 하나는 참을성이 너무 없습니다. 말이 너무 거칩니다. 전에는 우리 민족이 너무 힘들게 살아서 그렇다고 위안을 했습니다. 그런데결론은 가정 교육에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무엇이 참 성공인가
조기 유학봄이 IMF로 잠시 주춤하더니 요즈음 다시 일어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어렸을 때는 잘 먹이우고 장난감 많이 사주고 커서는 일류학교 보내는 것이 부모의 책임으로 생각합니다. 또 학교 교육이 교육의 전부 다라고 생각하는 부모님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미국에 보낸다고 자녀가 저절로 좋은 학생되는 거 아니고, 일류학교 들어갔다고 좋은 사람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학교 교육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신앙교육이고 이 신앙 교육도 교회가 미치는 영향은 5%밖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자녀의 성장에 제일 중요한 것은 가정 신앙교육입니다. 미국에 요즈음 일류학교 보내서 시집 장가 들여놓고 섭섭해하는 부모님들 많이 만납니다. 기껏 키워났더니 부모를 몰라본다는 겁니다. 그건 자녀의 잘못이 아니라 부모의 잘못입니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일류대학 졸업해서 연봉 높은 직업을 구하면 그게 성공이라고 가르쳐온 부모의 책임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을 위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세요. 그건 자녀들의 책임이 아닙니다. '심는대로 거둔다. '는 성경의 말은 특별히 자녀 교육에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우리 자녀들을 보면서 이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야 지금 네가 부족한게 뭐있냐 공부만 하면 되잖아'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하지 않고 무조건 공부하고 성적만 올라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무엇 때문에 자녀들이 일류대학 가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미국의 어떤 한국 부모님은 아들이 하버드 들어가는게 소원이라 태어날 때 이름을 하버드라고 지어습니다. 그런데 원래 하버드는 이름이 아니고 성입니다. 남의 성을 이름으로 부르는 일은 우스꽝스런 일입니다. 게가 하버드에 들어갔다면 더욱 웃기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는 직업의 종류가 만 5천종이 넘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원하는 직업은 딱 4개입니다. '의사 변호사 교수 비지니스맨' 요즈음 LA에서는 한국 의사들이 너무 많아 경쟁이 되어 진료비가 점점 싸지고 있습니다. 의술로 생명을 구하겠다는 분명한 목적 의식이 없이 의사가 되고 보니까 좁은 한인교포 사회로 오는 겁니다. 정말 돈이 없어 의술의 도움을 받지 못한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의사가 되고 힘이 없어 법의 보호를 받지는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판사 변호사가 되겠다면 적극 밀어줘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 이유가 돈이나 명예나 편안하게 사는 것이라면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건 성공이 아닙니다.
자식의 장래는 부모의 무릎에 달려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부모가 되는 것은 모든 직업 중에서 가장 좋은 일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론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요. 최고의 기쁨을 가져다 줄 때도 있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부모가 되는 것만큼 신나고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자녀 양육! 이말을 들으면 서로 모순되는 감정들이 표면으로 솟구쳐 칩니다. 이제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어느 정도 알겠다 하는 그 때 아이는 또 한 살을 먹고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어 부모에게 전혀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줍니다. 어떤 때는 순풍을 타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너무나 피곤하고 지쳐서 그만 포기하고 싶어지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부모들은 내 혼자 힘으로만 하는 것보다 언제나 우리의 영적 부모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 일이 잘 되어가지 않을 때 우리는 내가 무엇인가 잘못했기 때문인가 보다고 자책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부모가 되는 일이 아니라 기도하는 부모가 되는 일입니다. " 우리말에 슬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의 뜻은 무릎 아래라는 말이지만, 곰곰히 생각하면 이 말도 부모님들의 무릎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람있는 삶이 성공적인 삶입니다
사람이 힘써 일하고 사는 것은 행복 때문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보람된 일을 하였을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종일 일하고 '야 오늘은 참 보람있는 날이었다. ' 이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보람은 언제 생겨납니까 남을 위한 일을 하였을 때, 생겨납니다. 보람은 희생에서 나옵니다. 내 시간 내 물질 내 능력을 나를 위해 바쳤을 때는 보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남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바쳤을 때,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존재가치입니다. 남을 도와주고 남이 자기를 필요로 했을 때, 사람은 자기의 존재가치를 느끼는 것이고 이 때 가장 큰 인생의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아도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사람에게는 삶에 보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면 할수록 그 마음에 짜증이 일어납니다. 한국사람처럼 건강식품 정력제에 몰두하는 민족도 많치 않습니다. 그런데 암을 이기는 엔돌핀이라는 효소를 우리 몸안에서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제일 많이 나오는 때는 사람이 보람있는 일을 하였을 때입니다. 교우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목사가 교회를 위해 봉사하도록 권하는 것은 결코 목사님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위한 일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보람을 심어주고 참 기쁨을 얻도록 하기 위해 하는 일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일을 시킬 때, 부모가 할 줄 몰라서 시키는 겁니까 우리가 커서야 왜 부모님들이 우리를 그렇게 야단을 쳐가며 길렀는지를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요즈음 미국의 한인 2세들이 거의 교회에 나오지를 않습니다. 한인보다 이민 역사가 긴 일본교회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일본교회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결과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녀들에게 일류대학 일류기업 들어가서 의사 변호사 박사하면 성공이라고 가르쳤더니 모두 의사 변호사 박사해서 편안하게 살게 되니까 여호와 하나님 필요 없는 사람들이 다 되어 가지고는 교회를 다 떠나고 말았다는 겁니다. 최근 몇 년전부터 한국 교회 성장이 멈췄다고 말합니다. 가장 큰 원인은 예수 믿으면 잘산다. 이것만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제 잘살게 되니까 예수 믿을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서두르면 이스마엘 기다리면 이삭
우리가 자녀들에게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인생의 성공은 일류대학 의사 변호사에 있지 않고 무엇을 하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보람찬 인생을 살면 그게 성공이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돈 못 벌어도 보람찬 인생을 살면 그게 성공이고 그게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는 일이라고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우리는 자꾸만 빨리 갈려고 합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남을 앞질러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조급하면 실수를 만들어 냅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여 여종 하갈에게서 아들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결국은 이 아들로 인해 가정이 많은 아픔과 분란을 겪었습니다. 후에 이 이스마엘에게서 나온 자손들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이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들은 인내해야 합니다. 빨리 가는 것 같아도 늦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고, 늦게 가는 것 같아도 일찍 도착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언젠가 집을 찾아가면서 대강 어디쯤일 것이다 생각하고 같다가 아주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지도를 펴놓고 보는 2,3분을 아끼려다가 한시간을 빙빙 돈 적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필요하기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이라면 분명코 여호와 하나님의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는 분명한 믿음과 확신을 가져야 하는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홍해 앞 바다로 몰아 넣으셨습니다.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의 군사요. 양가초면의 이스라엘 민족은 울부짖으며 소리쳤습니다. '야 이 모세야 애굽에는 땅이 없어서 우리를 다 물 속에 수장을 시키려고 이리로 끌고 왔냐' 그때 들려진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은 '너희는 잠잠히 서서 나의 하는 일을 보라. '
어머님의 마음은 기다리는 마음
그래서 서두르면 이스마엘 기다리면 이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두르면 불행의 씨앗 이스마엘을 얻게 되고 기다리면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약속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성경에는 이때 어머니 사라의 얘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러 가면서 아내 사라하고 의논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하였을리는 만무합니다. 차라리 사라가 반대하고 울었다고 기록이 되어있으면 제 마음이 덜 아프겠는데 어머니 사라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으면 성경마저 입을 다물고 있겠나 생각하니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정말 고통스러우면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우면 눈물은 안으로 삼킵니다. 이 침묵하는 어머니 사라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저는 어머님의 상을 그려봅니다. 어머님 그러면 사랑이 생각이 나고 희생이 생각이 나지만, 더 깊게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기다림과 인고의 상징이다. 모든 아픔을 그냥 마음속에 묻어버리고 기다리는 분이 어머님이십니다. 모세의 어머니를 생각해 보세요. 갓난 모세, 이제 젖을 떼자말자 애굽 바로 왕의 딸의 아들로 왕궁에 들어보내야 했던 어머님의 마음.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만나기 어려운 이제 막 젖을 뗀 어린 모세를 떠나 보내야 했던 모세의 어머니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참고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미국 켈리포니아에서 심장병 전문의로 일하던 정동근의사께서 몇 년 전에 '제 3일의 약속'이란 책을 내었습니다. 6. 25 피난 때에 어머님과 헤어지면서 3일 후에 다시 오겠다고 한 약속을 의미합니다. 그리곤 한 10년 전에 북한에 있는 누님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을 하였습니다. 누님들과 함께 어머님 산소에 엎드려서 좀 더 일찍 오지 못한 안따까움을 갖고 울부짖습니다. 3일 후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하는 말을 하고 떠났다가 30년이 훨씬 지나 어머님 묘소 앞에 엎드린 그의 통곡과 눈물. 아직도 많은 이산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어머님을 보지 못한 아픔이 가장 크겠지요. 그런데 이보다 제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그의 누님들이 전해준 이야기 속에 나타난 어머님의 마음입니다. 남쪽으로 내려간 아들을 생각하며 이 어머님은 30년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식사를 차릴 때마다 밥상 위에 이 아들의 숟갈과 젓가락을 놓았다는 얘기입니다. 철조망으로 갈라서고 생사의 소식조차도 알 수 없는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빈자리에 숟가락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았던 이 어머님의 마음. 저는 이 마음에서 나 같은 죄인을 기다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읽습니다. 열 살까지 살았던 이곳 광주는 몇 가지의 추억이 있습니다만, 아직도 가끔 문득문득 떠오는 모습은 제가 골목길 전봇대 뒤에 숨어있고 그 안으로 머리에 피를 흘리던 젊은이들이 도망을 가는 모습입니다.
4. 19 때의 모습입니다. 또 한가지의 모습은 미국에서 본 5. 18 광주민주항쟁 사건 기록 영화의 장면입니다. 한 15년 전 이름 없는 민주열사들이 묻혀 있던 묘소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하얀 소복을 입은 나이든 어머님 한 분이 사람들을 붙잡고 '내 아들을 돌려달라'고 울부짖는 모습이 선합니다. 그분은 매일 그곳에 그렇게 오셔서 울부짖는다는 것입니다.
성경 누가복음에는 흔히 탕자의 비유로 잘 알려진 얘기가 있습니다. 유산을 미리 받아서 집을 떠나간 둘째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 사실, 성경에는 어머니의 얘기는 없고 아버지 얘기만 나옵니다. 그런데 저는 성경에 문자로는 아버지로 씌어져 있지만, 그 마음은 어머님의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아버지도 기다리지만, 정말 말없이 기다리는 분은 어머님이십니다. '좋은 생각' 5월호 권두시에 '오해'라는 시가 실려 있습니다. 자녀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첫사랑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친구가 한사람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님 몸은 절대 아프지 않는 어떤 특별한 몸인줄 알았습니다. 어머님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드는 것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얼굴이 고와지고 몸매가 날씬해지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좋게 받아들이고 아무 불만도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전화를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
부모님을 뜻하는 한자글 친(親)짜의 글자를 분석해 보면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설 립(立) 밑에 나무 목(木)짜를 그려 놓고 그 옆에다 볼 견(見)짜를 부쳐 놓았습니다. 이 말의 뜻은 자녀들이 성장하여 집을 떠나면 마당에 나와 서서 보다가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면 나무 위에 올라가서 그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을 그린 글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어머님이 살아 계신 분도 계시고 이미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가신 분도 계십니다. 어머님이 살아 계시든지 하늘나라 가셨든지, 우리의 뒷 모습을 버선 발로 발돋음하시며 바라는 모습에는 변함이 없으십니다. '나 하나 잘 되기를 바라는 모습, 어디 가서 굶지나 않는지, 어디 가서 어려운 일은 당하는 것은 아닌지' 어머님이 하늘나라 계시는 분, 지금 이시간 여러분의 어머님은 저 하늘나라에서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이 땅에서 편안히 그리고 기쁘게 보람있게 살다가 승리하는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현재 저를 비롯해서 어머님이 살아 계신 분들, 우리 살아계시는 동안 열심히 효도하십시다. 옛 말에 '까마귀는 얻은 음식을 갚을 줄 알고 비둘기는 삼지의 예절이 있다. ' 삼지의 예절이라고 하는 말은 비둘기도 자라면 부모님의 은덕을 알아 부모님이 앉아 있는 가지보다 세 가지 아래에 앉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 나이가 많다고 무시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모르면 가만히 계세요. '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어떤 자녀들은 나이 많아 병든 부모님 보살피기 귀찮다고 길에다가 내버리는 철면피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한시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친구 집에 갔더니 먹으라고 내어주는 쟁반에 담긴 홍시를 보니까 홍시 좋아하시던 어머님 생각이 나서 좋은 것 하나를 골라 갖다 드리려고 생각하니까 어머님 돌아가신 것이 문득 생각이 납니다. 어머님을 생각하는 옛 시인 정철의 따뜻한 효심과 더불어서 살아 계실제 잘 섬기라는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어머님 아니 계실 때에 열 번 후회하는 것보다 지금 한번 따뜻한 마음으로 공경하는 것이 지혜있는 사람의 도리입니다.
사람만을 전문적으로 찾아다니던 직업을 가졌던 세이더란 사람이 쓴 책 가운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한 중년부인이 전화를 걸어 12년 전에 헤어진 딸을 찾고 싶다는 것입니다. 딸 아이가 8살 때 고아원에 맡기고 자기는 재혼을 했다고 하면서 그 아이가 컸으면 20살이 되었을 것이고, 그리고 이 딸은 아주 노래를 잘했다고 하는 얘기를 전하면서 고아원 이름을 말하면서 꼭 찾아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몇 달을 수소문한 끝에 결국 이 딸을 찾았습니다. LA의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이더란 사람이 이 딸에게 가서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을 찾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 이 딸이 차가운 목소리로 거절을 합니다. "나는 맹인입니다. 자기 딸이 맹인인 것을 알면서도 딸을 버리고 재혼한 어머니를 나는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 그러나 딸이 있는 곳을 안 이 어머니는 딸이 보고싶어 딸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곤 이 딸을 만나서 얼굴을 더듬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동안 많이 자랐구나 목소리도 예뼈지고 이제는 네가 어디에 있든지 너를 알아볼 수 있겠구나. " 놀랍게도 어머니도 맹인이었습니다. 딸은 비로소 어머니를 껴안고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십여년동안 마음 속에 담고 있던 한이 한순간에 풀어져 나갔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다는 말도 이와 같습니다. 나와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버리신 줄 알았는데 한순간도 나를 잊지 않으시고 나와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 이 은혜를 깨닫는 순간이 구원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오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말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
기만 살아 있으면 커서도 뭐든지 자기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별로 남의 입장에 설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다르게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 주장만 하게 됩니다. 그래서 회의를 할 때, 자기 의견이 통과가 되지 않으면 자기 인격이 무시당했다 생각하고 매우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인격하고 의견하고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격하고 의견을 동일시하는 것은 기만 살려 논 한국 교육의 잘못입니다. 가정 교육의 잘못입니다. 흔히 하는 말이 공주병 왕자병에 걸렸다고 말합니다. 아이고 우리 공주님, 우리 왕자님 하며 애지중지 키우다 보니까 그만 자기만 생각하는 깊은 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서에는 '자녀에게 초달을 아끼지 말라. ' 사랑의 매를 아끼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함부로 자녀를 때리는 일도 잘못된 일이지만, 너무 감싸는 일도 잘못된 교육입니다. 미국에서 병원같은 공공장소에 가보면 미국아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가만히 부모님 곁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아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그런데 부모가 이를 제재하지 않습니다. 제재를 하여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저는 제 아들 유대인 친구가 13살 되었을 때에 유대인 회당예배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예배가 거의 4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어린아이들이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겁니다. 몸도 비틀지 않습니다.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조용히 일어나서 갔다옵니다. 한달에 한번씩 저희 교회에서는 자녀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한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예배에 너무 방해가 되어서 어린이들은 중간에 나가게 합니다. 한국에 있으면서 느끼는 것 하나는 참을성이 너무 없습니다. 말이 너무 거칩니다. 전에는 우리 민족이 너무 힘들게 살아서 그렇다고 위안을 했습니다. 그런데결론은 가정 교육에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무엇이 참 성공인가
조기 유학봄이 IMF로 잠시 주춤하더니 요즈음 다시 일어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어렸을 때는 잘 먹이우고 장난감 많이 사주고 커서는 일류학교 보내는 것이 부모의 책임으로 생각합니다. 또 학교 교육이 교육의 전부 다라고 생각하는 부모님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미국에 보낸다고 자녀가 저절로 좋은 학생되는 거 아니고, 일류학교 들어갔다고 좋은 사람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학교 교육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신앙교육이고 이 신앙 교육도 교회가 미치는 영향은 5%밖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자녀의 성장에 제일 중요한 것은 가정 신앙교육입니다. 미국에 요즈음 일류학교 보내서 시집 장가 들여놓고 섭섭해하는 부모님들 많이 만납니다. 기껏 키워났더니 부모를 몰라본다는 겁니다. 그건 자녀의 잘못이 아니라 부모의 잘못입니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일류대학 졸업해서 연봉 높은 직업을 구하면 그게 성공이라고 가르쳐온 부모의 책임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을 위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세요. 그건 자녀들의 책임이 아닙니다. '심는대로 거둔다. '는 성경의 말은 특별히 자녀 교육에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우리 자녀들을 보면서 이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야 지금 네가 부족한게 뭐있냐 공부만 하면 되잖아'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하지 않고 무조건 공부하고 성적만 올라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무엇 때문에 자녀들이 일류대학 가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미국의 어떤 한국 부모님은 아들이 하버드 들어가는게 소원이라 태어날 때 이름을 하버드라고 지어습니다. 그런데 원래 하버드는 이름이 아니고 성입니다. 남의 성을 이름으로 부르는 일은 우스꽝스런 일입니다. 게가 하버드에 들어갔다면 더욱 웃기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는 직업의 종류가 만 5천종이 넘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원하는 직업은 딱 4개입니다. '의사 변호사 교수 비지니스맨' 요즈음 LA에서는 한국 의사들이 너무 많아 경쟁이 되어 진료비가 점점 싸지고 있습니다. 의술로 생명을 구하겠다는 분명한 목적 의식이 없이 의사가 되고 보니까 좁은 한인교포 사회로 오는 겁니다. 정말 돈이 없어 의술의 도움을 받지 못한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의사가 되고 힘이 없어 법의 보호를 받지는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판사 변호사가 되겠다면 적극 밀어줘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 이유가 돈이나 명예나 편안하게 사는 것이라면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건 성공이 아닙니다.
자식의 장래는 부모의 무릎에 달려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부모가 되는 것은 모든 직업 중에서 가장 좋은 일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론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요. 최고의 기쁨을 가져다 줄 때도 있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부모가 되는 것만큼 신나고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자녀 양육! 이말을 들으면 서로 모순되는 감정들이 표면으로 솟구쳐 칩니다. 이제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어느 정도 알겠다 하는 그 때 아이는 또 한 살을 먹고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어 부모에게 전혀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줍니다. 어떤 때는 순풍을 타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너무나 피곤하고 지쳐서 그만 포기하고 싶어지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부모들은 내 혼자 힘으로만 하는 것보다 언제나 우리의 영적 부모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 일이 잘 되어가지 않을 때 우리는 내가 무엇인가 잘못했기 때문인가 보다고 자책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부모가 되는 일이 아니라 기도하는 부모가 되는 일입니다. " 우리말에 슬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의 뜻은 무릎 아래라는 말이지만, 곰곰히 생각하면 이 말도 부모님들의 무릎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람있는 삶이 성공적인 삶입니다
사람이 힘써 일하고 사는 것은 행복 때문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보람된 일을 하였을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종일 일하고 '야 오늘은 참 보람있는 날이었다. ' 이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보람은 언제 생겨납니까 남을 위한 일을 하였을 때, 생겨납니다. 보람은 희생에서 나옵니다. 내 시간 내 물질 내 능력을 나를 위해 바쳤을 때는 보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남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바쳤을 때,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존재가치입니다. 남을 도와주고 남이 자기를 필요로 했을 때, 사람은 자기의 존재가치를 느끼는 것이고 이 때 가장 큰 인생의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아도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사람에게는 삶에 보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면 할수록 그 마음에 짜증이 일어납니다. 한국사람처럼 건강식품 정력제에 몰두하는 민족도 많치 않습니다. 그런데 암을 이기는 엔돌핀이라는 효소를 우리 몸안에서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제일 많이 나오는 때는 사람이 보람있는 일을 하였을 때입니다. 교우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목사가 교회를 위해 봉사하도록 권하는 것은 결코 목사님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위한 일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보람을 심어주고 참 기쁨을 얻도록 하기 위해 하는 일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일을 시킬 때, 부모가 할 줄 몰라서 시키는 겁니까 우리가 커서야 왜 부모님들이 우리를 그렇게 야단을 쳐가며 길렀는지를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요즈음 미국의 한인 2세들이 거의 교회에 나오지를 않습니다. 한인보다 이민 역사가 긴 일본교회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일본교회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결과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녀들에게 일류대학 일류기업 들어가서 의사 변호사 박사하면 성공이라고 가르쳤더니 모두 의사 변호사 박사해서 편안하게 살게 되니까 여호와 하나님 필요 없는 사람들이 다 되어 가지고는 교회를 다 떠나고 말았다는 겁니다. 최근 몇 년전부터 한국 교회 성장이 멈췄다고 말합니다. 가장 큰 원인은 예수 믿으면 잘산다. 이것만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제 잘살게 되니까 예수 믿을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서두르면 이스마엘 기다리면 이삭
우리가 자녀들에게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인생의 성공은 일류대학 의사 변호사에 있지 않고 무엇을 하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보람찬 인생을 살면 그게 성공이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돈 못 벌어도 보람찬 인생을 살면 그게 성공이고 그게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는 일이라고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우리는 자꾸만 빨리 갈려고 합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남을 앞질러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조급하면 실수를 만들어 냅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여 여종 하갈에게서 아들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결국은 이 아들로 인해 가정이 많은 아픔과 분란을 겪었습니다. 후에 이 이스마엘에게서 나온 자손들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이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들은 인내해야 합니다. 빨리 가는 것 같아도 늦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고, 늦게 가는 것 같아도 일찍 도착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언젠가 집을 찾아가면서 대강 어디쯤일 것이다 생각하고 같다가 아주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지도를 펴놓고 보는 2,3분을 아끼려다가 한시간을 빙빙 돈 적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필요하기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이라면 분명코 여호와 하나님의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는 분명한 믿음과 확신을 가져야 하는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홍해 앞 바다로 몰아 넣으셨습니다.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의 군사요. 양가초면의 이스라엘 민족은 울부짖으며 소리쳤습니다. '야 이 모세야 애굽에는 땅이 없어서 우리를 다 물 속에 수장을 시키려고 이리로 끌고 왔냐' 그때 들려진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은 '너희는 잠잠히 서서 나의 하는 일을 보라. '
어머님의 마음은 기다리는 마음
그래서 서두르면 이스마엘 기다리면 이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두르면 불행의 씨앗 이스마엘을 얻게 되고 기다리면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약속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성경에는 이때 어머니 사라의 얘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러 가면서 아내 사라하고 의논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하였을리는 만무합니다. 차라리 사라가 반대하고 울었다고 기록이 되어있으면 제 마음이 덜 아프겠는데 어머니 사라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으면 성경마저 입을 다물고 있겠나 생각하니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정말 고통스러우면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우면 눈물은 안으로 삼킵니다. 이 침묵하는 어머니 사라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저는 어머님의 상을 그려봅니다. 어머님 그러면 사랑이 생각이 나고 희생이 생각이 나지만, 더 깊게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기다림과 인고의 상징이다. 모든 아픔을 그냥 마음속에 묻어버리고 기다리는 분이 어머님이십니다. 모세의 어머니를 생각해 보세요. 갓난 모세, 이제 젖을 떼자말자 애굽 바로 왕의 딸의 아들로 왕궁에 들어보내야 했던 어머님의 마음.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만나기 어려운 이제 막 젖을 뗀 어린 모세를 떠나 보내야 했던 모세의 어머니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참고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미국 켈리포니아에서 심장병 전문의로 일하던 정동근의사께서 몇 년 전에 '제 3일의 약속'이란 책을 내었습니다. 6. 25 피난 때에 어머님과 헤어지면서 3일 후에 다시 오겠다고 한 약속을 의미합니다. 그리곤 한 10년 전에 북한에 있는 누님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을 하였습니다. 누님들과 함께 어머님 산소에 엎드려서 좀 더 일찍 오지 못한 안따까움을 갖고 울부짖습니다. 3일 후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하는 말을 하고 떠났다가 30년이 훨씬 지나 어머님 묘소 앞에 엎드린 그의 통곡과 눈물. 아직도 많은 이산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어머님을 보지 못한 아픔이 가장 크겠지요. 그런데 이보다 제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그의 누님들이 전해준 이야기 속에 나타난 어머님의 마음입니다. 남쪽으로 내려간 아들을 생각하며 이 어머님은 30년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식사를 차릴 때마다 밥상 위에 이 아들의 숟갈과 젓가락을 놓았다는 얘기입니다. 철조망으로 갈라서고 생사의 소식조차도 알 수 없는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빈자리에 숟가락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았던 이 어머님의 마음. 저는 이 마음에서 나 같은 죄인을 기다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읽습니다. 열 살까지 살았던 이곳 광주는 몇 가지의 추억이 있습니다만, 아직도 가끔 문득문득 떠오는 모습은 제가 골목길 전봇대 뒤에 숨어있고 그 안으로 머리에 피를 흘리던 젊은이들이 도망을 가는 모습입니다.
4. 19 때의 모습입니다. 또 한가지의 모습은 미국에서 본 5. 18 광주민주항쟁 사건 기록 영화의 장면입니다. 한 15년 전 이름 없는 민주열사들이 묻혀 있던 묘소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하얀 소복을 입은 나이든 어머님 한 분이 사람들을 붙잡고 '내 아들을 돌려달라'고 울부짖는 모습이 선합니다. 그분은 매일 그곳에 그렇게 오셔서 울부짖는다는 것입니다.
성경 누가복음에는 흔히 탕자의 비유로 잘 알려진 얘기가 있습니다. 유산을 미리 받아서 집을 떠나간 둘째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 사실, 성경에는 어머니의 얘기는 없고 아버지 얘기만 나옵니다. 그런데 저는 성경에 문자로는 아버지로 씌어져 있지만, 그 마음은 어머님의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아버지도 기다리지만, 정말 말없이 기다리는 분은 어머님이십니다. '좋은 생각' 5월호 권두시에 '오해'라는 시가 실려 있습니다. 자녀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첫사랑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친구가 한사람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님 몸은 절대 아프지 않는 어떤 특별한 몸인줄 알았습니다. 어머님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드는 것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얼굴이 고와지고 몸매가 날씬해지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좋게 받아들이고 아무 불만도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전화를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
부모님을 뜻하는 한자글 친(親)짜의 글자를 분석해 보면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설 립(立) 밑에 나무 목(木)짜를 그려 놓고 그 옆에다 볼 견(見)짜를 부쳐 놓았습니다. 이 말의 뜻은 자녀들이 성장하여 집을 떠나면 마당에 나와 서서 보다가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면 나무 위에 올라가서 그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을 그린 글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어머님이 살아 계신 분도 계시고 이미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가신 분도 계십니다. 어머님이 살아 계시든지 하늘나라 가셨든지, 우리의 뒷 모습을 버선 발로 발돋음하시며 바라는 모습에는 변함이 없으십니다. '나 하나 잘 되기를 바라는 모습, 어디 가서 굶지나 않는지, 어디 가서 어려운 일은 당하는 것은 아닌지' 어머님이 하늘나라 계시는 분, 지금 이시간 여러분의 어머님은 저 하늘나라에서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이 땅에서 편안히 그리고 기쁘게 보람있게 살다가 승리하는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현재 저를 비롯해서 어머님이 살아 계신 분들, 우리 살아계시는 동안 열심히 효도하십시다. 옛 말에 '까마귀는 얻은 음식을 갚을 줄 알고 비둘기는 삼지의 예절이 있다. ' 삼지의 예절이라고 하는 말은 비둘기도 자라면 부모님의 은덕을 알아 부모님이 앉아 있는 가지보다 세 가지 아래에 앉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 나이가 많다고 무시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모르면 가만히 계세요. '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어떤 자녀들은 나이 많아 병든 부모님 보살피기 귀찮다고 길에다가 내버리는 철면피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한시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친구 집에 갔더니 먹으라고 내어주는 쟁반에 담긴 홍시를 보니까 홍시 좋아하시던 어머님 생각이 나서 좋은 것 하나를 골라 갖다 드리려고 생각하니까 어머님 돌아가신 것이 문득 생각이 납니다. 어머님을 생각하는 옛 시인 정철의 따뜻한 효심과 더불어서 살아 계실제 잘 섬기라는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어머님 아니 계실 때에 열 번 후회하는 것보다 지금 한번 따뜻한 마음으로 공경하는 것이 지혜있는 사람의 도리입니다.
사람만을 전문적으로 찾아다니던 직업을 가졌던 세이더란 사람이 쓴 책 가운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한 중년부인이 전화를 걸어 12년 전에 헤어진 딸을 찾고 싶다는 것입니다. 딸 아이가 8살 때 고아원에 맡기고 자기는 재혼을 했다고 하면서 그 아이가 컸으면 20살이 되었을 것이고, 그리고 이 딸은 아주 노래를 잘했다고 하는 얘기를 전하면서 고아원 이름을 말하면서 꼭 찾아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몇 달을 수소문한 끝에 결국 이 딸을 찾았습니다. LA의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이더란 사람이 이 딸에게 가서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을 찾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 이 딸이 차가운 목소리로 거절을 합니다. "나는 맹인입니다. 자기 딸이 맹인인 것을 알면서도 딸을 버리고 재혼한 어머니를 나는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 그러나 딸이 있는 곳을 안 이 어머니는 딸이 보고싶어 딸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곤 이 딸을 만나서 얼굴을 더듬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동안 많이 자랐구나 목소리도 예뼈지고 이제는 네가 어디에 있든지 너를 알아볼 수 있겠구나. " 놀랍게도 어머니도 맹인이었습니다. 딸은 비로소 어머니를 껴안고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십여년동안 마음 속에 담고 있던 한이 한순간에 풀어져 나갔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다는 말도 이와 같습니다. 나와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버리신 줄 알았는데 한순간도 나를 잊지 않으시고 나와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 이 은혜를 깨닫는 순간이 구원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오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말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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