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하나님의 선물(2)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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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8일은 서울 시내의 교통이 아주 혼잡스러웠습니다. 88 올림픽대로, 강변북도로, 남부 순환도로, 도시 외곽도로 등 차로 인해서 막히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병원을 다녀오면서 도로가 왜 이리 막히나 해서 교통방송을 들으니 서울 시내 곳곳에 도로가 혼잡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방송을 진행하는 앵커들이 '왜 이리 교통이 혼잡한가' 그 이유는 오늘이 어버이날이라서 부모님 선물을 사기 위해서 나온 차들로 백화점 주변의 혼잡과 또한 부모님을 모시고 모이는 모임이 있기에 거리가 이렇게 혼잡하다는 것입니다. 이날 평소 약 한시간 남짓하면 다녀오는 길을 거의 두시간 넘게 걸려서 다녀왔습니다. 길이 막혀서 기다리는 동안에 저는 차안에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역시 가정이 중요하긴 중요한가보다 이렇게 어버이날을 지키는 사람이 많으니... ' 그러면서 속으로 노래가사가 나왔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 집을 짓는 자니 반석 위가 아니면 모래 위에 짓네 우리 구주 오셔서 지은 상을 줄 때 세운 공력 따라서 영영 상 벌주리 잘 짓고 잘 짓세 우리 집 잘 짓세 만세 반석 위에다 우리 집 잘 짓세"
이 찬양대로 여러분의 집들이 잘 지어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서 어버이날만 이렇게 몰아서 하지말고 평상시에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과 그래도 참으로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서나마 이렇게 어버이 날이라도 있으니 부모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 어버이날을 지키는 것이 참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녀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양육할 수가 없어서 가정을 허락하셨고 그 가정에 부모를 주셔서 대신 양육을 한다고 어느 학자는 말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선물이기에 우리는 그저 받을 뿐입니다. 여기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내가 태어나서 보니 나의 부모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이것을 필연적인 만남 운명의 만남이라고 합니다. 나의 선택권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저 여호와 하나님이 알아서 주신 선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알아서 주신 선물이라면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나의 부모님에 대해서 신앙 안에서 우리가 부모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갖고 일평생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이것을 알아야 부모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늘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행복한 삶으로 축복을 하여주십니다. 그래서 부모를 잘 공경하는 가정이 행복하고 그 자녀가 잘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은 부모에게 효도를 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교(敎)'자는 '효(孝)'의 효자로 시작합니다. 아버지께 효도하는 자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교육(敎育)위 교(敎)자도 효(孝)자로 시작합니다. 아버지께 효도하는 법을 양육하는 것 그게 교육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부모에게 어떠한 태도로 효도하길 원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녀가 부모에 대해서 평생에 취할 태도는 감사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없으셨다면 오늘의 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이런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가 있음은 근본적으로 부모님께서 낳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두 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어찌 저와 여러분의 존재가 있었겠습니까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나 여러분들은 일평생 부모에게 감사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부모가 잘 났느냐 못났느냐 따지지 마십시오. 부모가 잘 양육했느냐 못했느냐 계산하지 마십시오. 부모가 나의 재능을 잘 키워주었느냐 못 키워 주었느냐 자녀 입장에서 따지지 마십시오. 단지 부모가 있음으로 인해서 오늘 나의 존재가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한 평생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님께 다른 이유 없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느 가정 사역자는 생일날 자식이 생일 선물을 사달라고 하면 왜 내가 사느냐 너희들이 오히려 아빠 엄마에게 선물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 하면서 자녀의 생일을 가족감사의 날로 지킨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교육을 해서 자녀의 생일날은 가족의 날이라 정하고 조그마한 케이크를 자르고 자녀들이 낳아 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글을 올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가정교육이라 생각을 합니다. 자녀들이 자기의 생일이면 의례히 부모로부터 생일 선물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오히려 무엇을 사달라고 당당히 요구까지 하고 그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면 씩씩거리는 이즈음의 시대 상황 속에서, 친구끼리 모여서 선물을 받는 것이 생일 잔치의 대부분으로 여겨지는 오늘날의 세태 속에서 참으로 본받을 교육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진실로 생일은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날이어야 합니다. 그 두 분이 계시지 아니하셨다면 오늘의 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형편을 따지지 말고 한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나의 부모님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부모를 창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창피하게 여깁니까 남과 비교를 해서 그렇습니다. 남의 부모와 비교를 해보니 나의 부모의 약점이 보입니다. 그 약점으로 인해서 부모의 약점이 밝혀지고 알려지면 내가 자존심이 상하니 그게 창피한 것입니다. 부모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존심 상하는 것이 창피해서입니다. 이게 불효입니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에 대한 은덕이 나의 자존심 상한 것과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몇 년 전에 드라마 '형제의 강'이 방영이 된 때가 있었습니다. 6. 25를 지난 때 참으로 어려울 때 한 밀양에 사는 농사꾼의 가정의 삶을 그린 드라마입니다. 그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던 것은 40대 후반의 한국인이면 누구나 다 그 당시에 겪었던 가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리고 그 후의 세대들에게는 가정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가정에 아들이 셋이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생각이 깊고 의리도 있습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이 아주 공부를 잘합니다. 수재입니다. 거의 전교 일등의 수준입니다. 셋째는 미술에 재질이 뛰어납니다. 그런데 늘 술에 취해 사는 그의 아버지는 그 따위 미술을 뭐 하러 하느냐 하면서 아주 못마땅해 합니다. 그토록 그리고 싶어하는 그림을 못 그리게 합니다. 결국 이 아이는 그의 재질을 살리지 못하고 죽습니다. 술만 먹으면 자녀들에게 폭행을 합니다. 늘 어머니는 그 아버지의 폭력 앞에서 눈물로 사는 전형적인 그 당시 한국 어머니의 상입니다. 오직 아버지의 희망은 공부를 잘하는 첫째 우리 준수입니다. 그저 그가 경기고등 학교를 들어가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래서 출세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결국 경기고등학교 들어갑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저는 이 첫째가 결국은 실패하는 삶을 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가 있습니다. 학교에 아버지가 온다고 하니까 한사코 못 오게 말리는 것입니다. 오히려 학교를 오지 말라고 아버지에게 큰소리칩니다. 그 이유인즉 농사꾼의 아버지의 모습이 초라한 아버지의 모습이 술 취한 아버지의 모습이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인격이 망가지는 인생을 살겠구나' '인성이 파괴적인 삶을 살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즈음의 말로는 IQ는 높아도 EQ 지수가 낮습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사람은 IQ 보다는 EQ 지수가 높은 사람들입니다. 나의 부모를 자랑으로 여겨야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1637년 이 아버지는 영국에서 이민 온 직공의 후예로서 신발을 만드는 일에 종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이 되자 그 사실을 알게 된 상원의원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됩니다. 대부분이 명문 귀족 출신이었던 상원의원들은 신발 제조공의 아들 밑에서 일한다는 게 여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된 그의 아들이 상원의원들을 상대로 연설을 하기 위해 단위에 서자 순간 어느 거만해 보이는 상원의원이 일어나 말합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다니 정말 놀랍소. 그러나 당신의 아버지가 신발 제조공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당신의 아버지는 우리 가족의 신발을 만들기 위해서 가끔 우리 집에 찾아오곤 했었소. 이 신발 역시 바로 당신의 아버지가 만든 것이오" 얼마나 무시를 당하는 말입니까 상원의원이 말이 끝나자 여기 저기서 킥킥거리는 웃음이 세워 나왔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은 조금도 흔들리지 아니했습니다.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눈물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단호히 말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의원님 덕분에 한동안 잊고 있던 내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났습니다. 내 아버지는 신발 제조공으로 완벽한 솜씨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능가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위대함을 따르려고 할 뿐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많은 귀족들의 신발을 만드셨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 모인 분들 가운데 내 아버지가 만든 신발을 신은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만일 신발이 불편하시면 저에게 말씀을 하십시오 아버지의 기술을 옆에서 보고 배웠기 때문에 조금은 손봐 드릴 수가 있을 겁니다. 내 아버지가 만드신 신발을 최선을 다해서 고쳐드리겠습니다. 물론 저의 솜씨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비교 할 수가 없습니다만" 이 말이 끝나자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이토록 의회 앞에서도 아버지를 부끄러워 아니했던 아들인 대통령이 에이브라함 링컨입니다. 성경은 부모를 무시하거나 멸시를 하면 그의 삶을 여호와 하나님이 행복한 삶으로 만들어 주지 아니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대리자이기에 우리는 부모님의 직업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들이 못 배운 일자 무식이라도 힘이 없는 노인이라도 자부심을 가질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게 효도입니다. 잠언에서 말합니다.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 여기에서 늙었다는 표현은 연약하고 힘이 없고 볼품 없는 배움이 없는 그런 뜻을 다 내포하는 의미입니다. 그런 부모를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인 부모를 기쁘시게 해드리라고 합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 23:25) 부모의 가장 즐거움은 어디에 있습니까 자식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큰 부자가 아니더라도 서로 우애 있게 화목하게 사는 것이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출가한 자식이 남편하고 자식과 함께 걱정 없이 잘 사는 게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출가한 가정이 자꾸 다투거나 문제가 있으면 부모의 걱정을 심하게 만듭니다. 또한 건강하게 살아야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관리도 잘하셔야 합니다. 부모님의 살아 생전에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는 것 그게 가장 큰 효도입니다. 부부간의 다투고 싶습니까 늙으신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으로 참으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의 마음은 다 똑같습니다. 자녀들에게 피해를 안끼치고 그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아 주는 것 그게 효도입니다. 그게 부모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서세원의 '좋은세상 만들기'란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였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는 특히 부부의 삶과 부모의 마음을 읽게 됩니다. 그 프로그램을 간혹 보면 한결같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남편이 아내에게 꼼짝을 못합니다. 방송에 나와서 아내가 하라는 대로 합니다. 특히 남편이 한 때 바람을 피웠거나 노름이나 술로써 아내 마음을 아프게 한 자들은 방송에 나와서 아주 꼼짝을 못합니다. 왜 저렇게 꼼짝을 못하나 한 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힘을 다 잃어버립니다. 그저 젊었을 때 돈이나 있고 힘도 있고 겉멋도 있어서 큰소리 치지만 늙으면 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때는 다 아내에게 의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아내가 돌봐 주지 아니 하면 정말 어디 가서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한끼 따스한 식사를 얻어먹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젊었을 때 속 썩인 이야기를 해도 그저 말없이 꿔다놓은 보리자루 마냥 옆에 앉아서 다 당합니다. 과거의 수치를 다 당합니다.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 갈 데가 있어야지요. 그러니 당합니다. 그래서 뭐니 뭐니해도 조강지처밖에 없습니다. 우리 남자분들 힘이 있을 때 아내들에게 잘 해주시기 바랍니다. 딴 생각을 하지 마시고 아내에게 잘 해주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노년이 밝아집니다. 결국은 조강지처입니다.
그 프로그램 가운데 늙으신 부부가 자녀에게 보내는 말이 영상으로 보내집니다. 그런데 그 부모들이 하는 말은 다 한결 같습니다. '우린 다 잘 있다. 그러니 아이 엠 에프다 뭐다 해서 힘든가 본데 여기 걱정하지 말고 너희들 행복하게 잘 살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노부부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옆집에는 태양열이라든지 뭘로 해서 보일러 놓고 한다고 하더라마는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뭐 그럴 처지도 없고 그만 고생이고 그러니 그대로 해서 우리 극복하고 살자. 느그들 행복하게 살면 우리는 그만이다"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아주는 것이 우리를 낳아 주고 길러준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잘 봉양해드리는 일이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바로 부모의 마음에 그래도 내가 내 자식을 제대로 키웠구나하는 자부심의 마음을 부모의 마음에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가 부모를 생각하는 그 사랑을 간직하고 싶어합니다. 그게 다 부모의 마음입니다.
신상언 씨가 엮은당신에게 오늘 행복이라는 편지를 씁니다란 책이 있습니다. 교우 한 분이 한 3년 전에 선물을 해 주셔서 읽은 책입니다. 이 책은 인생을 살면서 겪었던 사실을 편지로 쓴 것을 엮은 책입니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책입니다. 그리고 역시 행복은 큰데 있지 않고 지극히 적은 사랑에 있음을 발견케 하는 책입니다. 그 책에 부서진 멜빵이란 글이 있습니다. 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선물한 멜빵에 관한 글입니다. 한 막내아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맞은 아버지의 생일날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고민 합니다. 고민 끝에 멜빵을 선물을 했습니다. 이 아들의 아버지는 목수였습니다. 이 아들은 늘 아버지의 몸에서는 나무냄새가 났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일을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면 늘 나무냄새가 났는데 이 아들은 아버지가 들어오실 때 나는 그 나무냄새를 맡으면서 아버지의 향취를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은 아버지로부터 맡는 나무냄새를 맡아야 오늘도 아버지가 목수일을 하면서 무사고로 일을 하셨다는 안도의 표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목수일을 하다 보면 사고도 많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게 무슨 선물을 할까 고민하던 중 문득 몇 년 전에 군에서 휴가 차 집에 들렸을 때 아버지를 도와서 지붕에 기와를 이는 작업을 도운 적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가 자그마한 망치를 가지고 기와를 두드리면 모서리가 기가 막히게 잘라지면서 아주 질서정연하게 맞추어 지는 것을 아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일을 하면서 허리가 헐렁대는 바지를 자꾸만 끌어올리시는 모습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래서 그 멜빵을 선물로 했습니다. 이제 생일날 가족들이 선물을 하는데 자기 것이 가장 초라했습니다. 그러니 가족들이 웃는데 아버지께서 "웃기는 왜 웃냐 병준이가 가장 좋은 것을 했다 제일 애비를 생각하는 효잔데.. ". 이 아들은 후회도 했습니다. 너무 초라 한 것을 샀나 그래도 이 멜빵을 하면서 일하시면 참 편하실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날은 지나갔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부모님을 뵐 겸 고향을 찾은 이 아들은 아버지를 봅니다. 그런데 자기가 해 드린 멜빵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아주 마음이 뿌듯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멜빵 끈이 옷하고 바느질로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이게 왜 이래요 하고 물으니 아버지께서 하시는 대답이 이러합니다. '자식이 해준 것이 너무 좋아서 그 다음날 그것을 메고 작업을 하다가 피곤해서 옷을 입은 채 잠시 누웠는데 그만 멜빵 끝에 옷을 조이는 부분이 밑에 깔려서 납작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멜빵 끝을 바지하고 바느질로 묶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 얼마 안 되는 것인데 제가 하나 새로 사 드리지요" 하니까 "이게 값으로 계산이 되냐 그리고 이것은 막내 네가 생일 선물로 사 준 것이 아니냐 처음 이것을 매고 나가니 사람들이 손자 것을 빼앗았느냐 놀리기도 했으나 막상 써보니 참 편하더라 사실 오늘 네가 온다기에 네 어머니에게 억지로 꿰매어 달라고 해서 매고 나왔단다" 아들이 자세히 보니 떨어진 멜빵이 바지와 직접 꿰매어져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편지는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나는 올해도 아버지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면서 다른 선물도 샀지만 빠뜨리지 않고 멜빵 파는 가게에도 들렸다 "아가씨 이번에는 아주 튼튼한 걸로 주세요. 누워 뒹굴어도 될 만큼 튼튼한 것으로"
왜 부모를 봉양해서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까 그만큼 부모들은 자녀의 삶을 위해서 희생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희생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느끼게끔 해 드려야 합니다.
올 초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눈이 많이 내릴 때면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납니다. 어린 시절에 놀이가 없을 때는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는 게 놀이입니다. 개구쟁이 시절에 온 종일 놀다 보면 운동화가 다 젖습니다. 발이 시린 것도 모르고 놉니다. 노는 일이 끝나야 운동화가 다 젖은 것이 생각납니다. 그러면 어머니들이 어떻게 합니까 간혹 아버지들은 혼을 내시기도 합니다. 운동화가 그렇게 젖을 때까지 놀면 어떻게 하느냐 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 번도 혼을 내지 아니하셨습니다. 바로 젖은 운동화를 부뚜막 위에다 얹혀 놓습니다. 빨리 말라서 뜨뜻하게 해서 신기기 위함입니다. 간혹 밤새 눈이 내려서 길이 눈길이면 새벽에 일어나셔서 아침을 준비하는 어머니는 모든 자녀의 신발을 부뚜막에 얹혀 놓습니다. 다 따뜻하게 발 시리지 않게 학교를 보내기 위함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그렇게 우리를 키운 것입니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그런 어머니가 생각이 납니다. 언젠가 눈이 내린 날에 학교를 가는 딸의 신발을 가스 불을 켜서 따뜻하게 하는 제 처를 보면서 역시 당신도 엄마이군요. 어떻게 가스 불을 켜서 딸의 운동화를 따뜻하게 할 생각을 했을까 엄마 화이팅입니다. 아빠인 나보다 훨씬 낫군요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이뿐입니까 지금이야 보온 밥통이 있지만 저희들이 자란 시절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늘 어머니는 안방 아랫목에 밥을 담은 그릇을 넣어서 국방색 담요로 잘 덮어두십니다. 그래서 늘 따뜻한 밥을 먹게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녀를 잘 키울까 건강하게 키울까하는 사랑에서 지혜가 오는 것입니다. 어찌 이런 부모를 봉양하지 아니 할 수가 있습니까 더구나 자식들을 잘 키워 보려고 우리의 아버지들은 얼마나 힘겹게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 오셨습니까 6. 25 4,19 5. 16을 거치면서 얼마나 힘든 세월을 살아 오셨습니까 이런 사랑을 먹고 자란 우리가 자란 우리가 어찌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니 이런 사랑이 아니더라도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십니까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여서 잘 봉양 하셔야합니다.
중국 속담에 비둘기는 3지의 예가 있고 까마귀에는 반포의 효가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둘기는 가지에 앉았을 때 어미새 보다 3단 아래 가지에 앉아서 예를 표하고 까마귀는 늙은 어미를 공양한다는 뜻입니다. 동물도 이러한데 구약에는 이런 부모의 은덕을 모르고 술 취하거나 방탕하거나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패역한 자식은 돌로 쳐죽여서 본보기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 등불이 유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 (잠 20:20) 삶이 완전히 망한다는 말입니다.
공자가 이 나라 저 나라를 유랑할 때의 일입니다. 한 곳에 이르니 몹시 슬피 우는 남자를 보고 왜 그리 슬피 우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남자가 하는 말이 "저는 세 가지 큰 허물을 저질렀습니다. 저는 젊어서 글 배우기를 좋아하여 스승을 찾아 천하를 두루 다니다가 고향에 와보니 이미 양친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었습니다. 이것이 첫째의 죄를 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일자리를 얻어 주인을 위해 정성껏 일을 보려 했으나 주인이 하도 교만해서 저는 거기를 뛰쳐나오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둘째의 실패입니다. 그 다음에는 저에게 아주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마지못할 사정이 있어 그 친구와 절교를 했습니다. 이것이 세 가지 허물입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나무는 고요하려 해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부모를 모시려 해도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아니하니 세월은 가고 못 오는 것 가신 어버이를 다시 뵈올 길이 없습니다. 이제 더 살 생각이 없습니다. 하면서 그 남자는 물 속에 목숨을 던져버렸습니다.
공자는 마음에서 깊이 느낀 바가 있어서 제자들에게 일렀습니다. "이 일을 적어 두어라. 계명으로 삼을만 하니라"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제자 중 열 세 명이 그 당장에서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어디로 갔습니까 부모에게 효도하러 간 것입니다. 인생은 좀처럼 인간의 생각대로 되지가 않고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돌아가시어서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럼으로 생전에 봉양하기를 힘써야지 돌아가신 후에는 후회하며 탄식 할 뿐이다 . 이 글에서 '풍수지탄 풍목지비' 란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봉양을 하여서 부모를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세월이 그리고 부모가 우리의 효도를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부모를 기다려 주지 아니합니다.
한 3주전에 양가 부모님의 산소를 다녀왔습니다. 한식에 찾아뵙지 못하고 마음에 아픔이 있어서 정말 부모님을 보고 싶었습니다. 산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그 앞에서 들면서 속으로 '아버지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뵈면 제 마음을 이야기하고 한 수 지혜도 얻고 어리광도 피우고 싶었습니다. 문득 살아 생전에 찾아간다면 오지 말라 하시면서도 도착할 시간이 되면 집 앞에 나와 계시던 모습이 생각이 났습니다. 살아 계시면 품에 안겨서 어리광을 피고 싶은데 세월이 효도를 기다려 주지 아니합니다.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하여 돌보고 키우라고 보내 주신 분입니다. 그래서 이 선물은 필연적인 선물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런 섭리를 알면서 부모님께 대한 태도를 잘 하셔야 합니다. 부모님을 주신 것을 늘 감사하길 원하십니다. 나의 부모는 나의 형편에 잘 맞는 분을 보내 주셨는가 하고 고백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늘 지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부모를 부끄러워하거나 업신여겨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을 늘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잘 봉양하셔서 그들이 자녀를 키운 데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특히 부모님이 살아 생전에 잘 공경을 하시기 바랍니다. 효도는 세월을 기다려 주지 아니합니다.
요즈음 교육방송에서 유태영 박사의 이스라엘 교육법을 통해서 다시 한번 우리의 교육을 생각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저는 두 번을 들었는데 참 유익했습니다. 그 분이 지은 책이 아주 최근에 국민일보사에서 천재를 만드는 유태인의 가정교육법 유태영 박사의 현지 체험이란 부제가 달린 책입니다. 저희 교회 청년인 백남승 군이 이 책을 편집에 관여를 했습니다. 제가 한 권을 선물로 받아서 읽고 있는데 내용이 쉽고 아주 좋습니다. 한번 구해서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특히 젊은 부부들은 꼭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이 분이 한번은 이스라엘 한 아이에게 "너는 왜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거니" 하고 물어 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 아이의 대답이 "예, 저를 위해서 효도합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부모를 위해서 합니다" 라고 할 것 같은데 자기 자신을 위해서 효도를 한다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아니해서 다시 물었다고 합니다. "너를 위해서 효도를 한다니 그게 무슨 뜻이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효도를 하면 큰 축복을 내린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잖아요 그리고 사람과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효도라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를 제대로 공경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에 대한 대답을 통해서 유박사는 어떻게 보면 지나치다 할 정도로 현실 적인 면을 강하게 나타나 보이기는 한 것 같지만 행여라도 그릇된 관념에 빠져서 막연히 생각하는 것을 봉쇄하고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자신과 자녀를 위해서라도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잘 사는 게 효도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 집을 짓는 자니 반석 위가 아니면 모래 위에 짓네 우리 구주 오셔서 지은 상을 줄 때 세운 공력 따라서 영영 상 벌주리 잘 짓고 잘 짓세 우리 집 잘 짓세 만세 반석 위에다 우리 집 잘 짓세"
이 찬양대로 여러분의 집들이 잘 지어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서 어버이날만 이렇게 몰아서 하지말고 평상시에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과 그래도 참으로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서나마 이렇게 어버이 날이라도 있으니 부모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 어버이날을 지키는 것이 참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녀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양육할 수가 없어서 가정을 허락하셨고 그 가정에 부모를 주셔서 대신 양육을 한다고 어느 학자는 말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선물이기에 우리는 그저 받을 뿐입니다. 여기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내가 태어나서 보니 나의 부모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이것을 필연적인 만남 운명의 만남이라고 합니다. 나의 선택권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저 여호와 하나님이 알아서 주신 선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알아서 주신 선물이라면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나의 부모님에 대해서 신앙 안에서 우리가 부모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갖고 일평생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이것을 알아야 부모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늘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행복한 삶으로 축복을 하여주십니다. 그래서 부모를 잘 공경하는 가정이 행복하고 그 자녀가 잘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은 부모에게 효도를 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교(敎)'자는 '효(孝)'의 효자로 시작합니다. 아버지께 효도하는 자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교육(敎育)위 교(敎)자도 효(孝)자로 시작합니다. 아버지께 효도하는 법을 양육하는 것 그게 교육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부모에게 어떠한 태도로 효도하길 원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녀가 부모에 대해서 평생에 취할 태도는 감사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없으셨다면 오늘의 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이런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가 있음은 근본적으로 부모님께서 낳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두 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어찌 저와 여러분의 존재가 있었겠습니까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나 여러분들은 일평생 부모에게 감사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부모가 잘 났느냐 못났느냐 따지지 마십시오. 부모가 잘 양육했느냐 못했느냐 계산하지 마십시오. 부모가 나의 재능을 잘 키워주었느냐 못 키워 주었느냐 자녀 입장에서 따지지 마십시오. 단지 부모가 있음으로 인해서 오늘 나의 존재가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한 평생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님께 다른 이유 없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느 가정 사역자는 생일날 자식이 생일 선물을 사달라고 하면 왜 내가 사느냐 너희들이 오히려 아빠 엄마에게 선물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 하면서 자녀의 생일을 가족감사의 날로 지킨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교육을 해서 자녀의 생일날은 가족의 날이라 정하고 조그마한 케이크를 자르고 자녀들이 낳아 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글을 올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가정교육이라 생각을 합니다. 자녀들이 자기의 생일이면 의례히 부모로부터 생일 선물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오히려 무엇을 사달라고 당당히 요구까지 하고 그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면 씩씩거리는 이즈음의 시대 상황 속에서, 친구끼리 모여서 선물을 받는 것이 생일 잔치의 대부분으로 여겨지는 오늘날의 세태 속에서 참으로 본받을 교육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진실로 생일은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날이어야 합니다. 그 두 분이 계시지 아니하셨다면 오늘의 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형편을 따지지 말고 한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나의 부모님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부모를 창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창피하게 여깁니까 남과 비교를 해서 그렇습니다. 남의 부모와 비교를 해보니 나의 부모의 약점이 보입니다. 그 약점으로 인해서 부모의 약점이 밝혀지고 알려지면 내가 자존심이 상하니 그게 창피한 것입니다. 부모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존심 상하는 것이 창피해서입니다. 이게 불효입니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에 대한 은덕이 나의 자존심 상한 것과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몇 년 전에 드라마 '형제의 강'이 방영이 된 때가 있었습니다. 6. 25를 지난 때 참으로 어려울 때 한 밀양에 사는 농사꾼의 가정의 삶을 그린 드라마입니다. 그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던 것은 40대 후반의 한국인이면 누구나 다 그 당시에 겪었던 가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리고 그 후의 세대들에게는 가정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가정에 아들이 셋이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생각이 깊고 의리도 있습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이 아주 공부를 잘합니다. 수재입니다. 거의 전교 일등의 수준입니다. 셋째는 미술에 재질이 뛰어납니다. 그런데 늘 술에 취해 사는 그의 아버지는 그 따위 미술을 뭐 하러 하느냐 하면서 아주 못마땅해 합니다. 그토록 그리고 싶어하는 그림을 못 그리게 합니다. 결국 이 아이는 그의 재질을 살리지 못하고 죽습니다. 술만 먹으면 자녀들에게 폭행을 합니다. 늘 어머니는 그 아버지의 폭력 앞에서 눈물로 사는 전형적인 그 당시 한국 어머니의 상입니다. 오직 아버지의 희망은 공부를 잘하는 첫째 우리 준수입니다. 그저 그가 경기고등 학교를 들어가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래서 출세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결국 경기고등학교 들어갑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저는 이 첫째가 결국은 실패하는 삶을 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가 있습니다. 학교에 아버지가 온다고 하니까 한사코 못 오게 말리는 것입니다. 오히려 학교를 오지 말라고 아버지에게 큰소리칩니다. 그 이유인즉 농사꾼의 아버지의 모습이 초라한 아버지의 모습이 술 취한 아버지의 모습이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인격이 망가지는 인생을 살겠구나' '인성이 파괴적인 삶을 살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즈음의 말로는 IQ는 높아도 EQ 지수가 낮습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사람은 IQ 보다는 EQ 지수가 높은 사람들입니다. 나의 부모를 자랑으로 여겨야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1637년 이 아버지는 영국에서 이민 온 직공의 후예로서 신발을 만드는 일에 종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이 되자 그 사실을 알게 된 상원의원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됩니다. 대부분이 명문 귀족 출신이었던 상원의원들은 신발 제조공의 아들 밑에서 일한다는 게 여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된 그의 아들이 상원의원들을 상대로 연설을 하기 위해 단위에 서자 순간 어느 거만해 보이는 상원의원이 일어나 말합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다니 정말 놀랍소. 그러나 당신의 아버지가 신발 제조공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당신의 아버지는 우리 가족의 신발을 만들기 위해서 가끔 우리 집에 찾아오곤 했었소. 이 신발 역시 바로 당신의 아버지가 만든 것이오" 얼마나 무시를 당하는 말입니까 상원의원이 말이 끝나자 여기 저기서 킥킥거리는 웃음이 세워 나왔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은 조금도 흔들리지 아니했습니다.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눈물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단호히 말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의원님 덕분에 한동안 잊고 있던 내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났습니다. 내 아버지는 신발 제조공으로 완벽한 솜씨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능가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위대함을 따르려고 할 뿐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많은 귀족들의 신발을 만드셨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 모인 분들 가운데 내 아버지가 만든 신발을 신은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만일 신발이 불편하시면 저에게 말씀을 하십시오 아버지의 기술을 옆에서 보고 배웠기 때문에 조금은 손봐 드릴 수가 있을 겁니다. 내 아버지가 만드신 신발을 최선을 다해서 고쳐드리겠습니다. 물론 저의 솜씨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비교 할 수가 없습니다만" 이 말이 끝나자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이토록 의회 앞에서도 아버지를 부끄러워 아니했던 아들인 대통령이 에이브라함 링컨입니다. 성경은 부모를 무시하거나 멸시를 하면 그의 삶을 여호와 하나님이 행복한 삶으로 만들어 주지 아니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대리자이기에 우리는 부모님의 직업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들이 못 배운 일자 무식이라도 힘이 없는 노인이라도 자부심을 가질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게 효도입니다. 잠언에서 말합니다.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 여기에서 늙었다는 표현은 연약하고 힘이 없고 볼품 없는 배움이 없는 그런 뜻을 다 내포하는 의미입니다. 그런 부모를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인 부모를 기쁘시게 해드리라고 합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 23:25) 부모의 가장 즐거움은 어디에 있습니까 자식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큰 부자가 아니더라도 서로 우애 있게 화목하게 사는 것이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출가한 자식이 남편하고 자식과 함께 걱정 없이 잘 사는 게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출가한 가정이 자꾸 다투거나 문제가 있으면 부모의 걱정을 심하게 만듭니다. 또한 건강하게 살아야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관리도 잘하셔야 합니다. 부모님의 살아 생전에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는 것 그게 가장 큰 효도입니다. 부부간의 다투고 싶습니까 늙으신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으로 참으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의 마음은 다 똑같습니다. 자녀들에게 피해를 안끼치고 그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아 주는 것 그게 효도입니다. 그게 부모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서세원의 '좋은세상 만들기'란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였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는 특히 부부의 삶과 부모의 마음을 읽게 됩니다. 그 프로그램을 간혹 보면 한결같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남편이 아내에게 꼼짝을 못합니다. 방송에 나와서 아내가 하라는 대로 합니다. 특히 남편이 한 때 바람을 피웠거나 노름이나 술로써 아내 마음을 아프게 한 자들은 방송에 나와서 아주 꼼짝을 못합니다. 왜 저렇게 꼼짝을 못하나 한 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힘을 다 잃어버립니다. 그저 젊었을 때 돈이나 있고 힘도 있고 겉멋도 있어서 큰소리 치지만 늙으면 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때는 다 아내에게 의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아내가 돌봐 주지 아니 하면 정말 어디 가서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한끼 따스한 식사를 얻어먹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젊었을 때 속 썩인 이야기를 해도 그저 말없이 꿔다놓은 보리자루 마냥 옆에 앉아서 다 당합니다. 과거의 수치를 다 당합니다.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 갈 데가 있어야지요. 그러니 당합니다. 그래서 뭐니 뭐니해도 조강지처밖에 없습니다. 우리 남자분들 힘이 있을 때 아내들에게 잘 해주시기 바랍니다. 딴 생각을 하지 마시고 아내에게 잘 해주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노년이 밝아집니다. 결국은 조강지처입니다.
그 프로그램 가운데 늙으신 부부가 자녀에게 보내는 말이 영상으로 보내집니다. 그런데 그 부모들이 하는 말은 다 한결 같습니다. '우린 다 잘 있다. 그러니 아이 엠 에프다 뭐다 해서 힘든가 본데 여기 걱정하지 말고 너희들 행복하게 잘 살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노부부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옆집에는 태양열이라든지 뭘로 해서 보일러 놓고 한다고 하더라마는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뭐 그럴 처지도 없고 그만 고생이고 그러니 그대로 해서 우리 극복하고 살자. 느그들 행복하게 살면 우리는 그만이다"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아주는 것이 우리를 낳아 주고 길러준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잘 봉양해드리는 일이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바로 부모의 마음에 그래도 내가 내 자식을 제대로 키웠구나하는 자부심의 마음을 부모의 마음에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가 부모를 생각하는 그 사랑을 간직하고 싶어합니다. 그게 다 부모의 마음입니다.
신상언 씨가 엮은당신에게 오늘 행복이라는 편지를 씁니다란 책이 있습니다. 교우 한 분이 한 3년 전에 선물을 해 주셔서 읽은 책입니다. 이 책은 인생을 살면서 겪었던 사실을 편지로 쓴 것을 엮은 책입니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책입니다. 그리고 역시 행복은 큰데 있지 않고 지극히 적은 사랑에 있음을 발견케 하는 책입니다. 그 책에 부서진 멜빵이란 글이 있습니다. 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선물한 멜빵에 관한 글입니다. 한 막내아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맞은 아버지의 생일날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고민 합니다. 고민 끝에 멜빵을 선물을 했습니다. 이 아들의 아버지는 목수였습니다. 이 아들은 늘 아버지의 몸에서는 나무냄새가 났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일을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면 늘 나무냄새가 났는데 이 아들은 아버지가 들어오실 때 나는 그 나무냄새를 맡으면서 아버지의 향취를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은 아버지로부터 맡는 나무냄새를 맡아야 오늘도 아버지가 목수일을 하면서 무사고로 일을 하셨다는 안도의 표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목수일을 하다 보면 사고도 많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게 무슨 선물을 할까 고민하던 중 문득 몇 년 전에 군에서 휴가 차 집에 들렸을 때 아버지를 도와서 지붕에 기와를 이는 작업을 도운 적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가 자그마한 망치를 가지고 기와를 두드리면 모서리가 기가 막히게 잘라지면서 아주 질서정연하게 맞추어 지는 것을 아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일을 하면서 허리가 헐렁대는 바지를 자꾸만 끌어올리시는 모습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래서 그 멜빵을 선물로 했습니다. 이제 생일날 가족들이 선물을 하는데 자기 것이 가장 초라했습니다. 그러니 가족들이 웃는데 아버지께서 "웃기는 왜 웃냐 병준이가 가장 좋은 것을 했다 제일 애비를 생각하는 효잔데.. ". 이 아들은 후회도 했습니다. 너무 초라 한 것을 샀나 그래도 이 멜빵을 하면서 일하시면 참 편하실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날은 지나갔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부모님을 뵐 겸 고향을 찾은 이 아들은 아버지를 봅니다. 그런데 자기가 해 드린 멜빵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아주 마음이 뿌듯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멜빵 끈이 옷하고 바느질로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이게 왜 이래요 하고 물으니 아버지께서 하시는 대답이 이러합니다. '자식이 해준 것이 너무 좋아서 그 다음날 그것을 메고 작업을 하다가 피곤해서 옷을 입은 채 잠시 누웠는데 그만 멜빵 끝에 옷을 조이는 부분이 밑에 깔려서 납작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멜빵 끝을 바지하고 바느질로 묶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 얼마 안 되는 것인데 제가 하나 새로 사 드리지요" 하니까 "이게 값으로 계산이 되냐 그리고 이것은 막내 네가 생일 선물로 사 준 것이 아니냐 처음 이것을 매고 나가니 사람들이 손자 것을 빼앗았느냐 놀리기도 했으나 막상 써보니 참 편하더라 사실 오늘 네가 온다기에 네 어머니에게 억지로 꿰매어 달라고 해서 매고 나왔단다" 아들이 자세히 보니 떨어진 멜빵이 바지와 직접 꿰매어져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편지는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나는 올해도 아버지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면서 다른 선물도 샀지만 빠뜨리지 않고 멜빵 파는 가게에도 들렸다 "아가씨 이번에는 아주 튼튼한 걸로 주세요. 누워 뒹굴어도 될 만큼 튼튼한 것으로"
왜 부모를 봉양해서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까 그만큼 부모들은 자녀의 삶을 위해서 희생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희생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느끼게끔 해 드려야 합니다.
올 초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눈이 많이 내릴 때면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납니다. 어린 시절에 놀이가 없을 때는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는 게 놀이입니다. 개구쟁이 시절에 온 종일 놀다 보면 운동화가 다 젖습니다. 발이 시린 것도 모르고 놉니다. 노는 일이 끝나야 운동화가 다 젖은 것이 생각납니다. 그러면 어머니들이 어떻게 합니까 간혹 아버지들은 혼을 내시기도 합니다. 운동화가 그렇게 젖을 때까지 놀면 어떻게 하느냐 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 번도 혼을 내지 아니하셨습니다. 바로 젖은 운동화를 부뚜막 위에다 얹혀 놓습니다. 빨리 말라서 뜨뜻하게 해서 신기기 위함입니다. 간혹 밤새 눈이 내려서 길이 눈길이면 새벽에 일어나셔서 아침을 준비하는 어머니는 모든 자녀의 신발을 부뚜막에 얹혀 놓습니다. 다 따뜻하게 발 시리지 않게 학교를 보내기 위함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그렇게 우리를 키운 것입니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그런 어머니가 생각이 납니다. 언젠가 눈이 내린 날에 학교를 가는 딸의 신발을 가스 불을 켜서 따뜻하게 하는 제 처를 보면서 역시 당신도 엄마이군요. 어떻게 가스 불을 켜서 딸의 운동화를 따뜻하게 할 생각을 했을까 엄마 화이팅입니다. 아빠인 나보다 훨씬 낫군요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이뿐입니까 지금이야 보온 밥통이 있지만 저희들이 자란 시절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늘 어머니는 안방 아랫목에 밥을 담은 그릇을 넣어서 국방색 담요로 잘 덮어두십니다. 그래서 늘 따뜻한 밥을 먹게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녀를 잘 키울까 건강하게 키울까하는 사랑에서 지혜가 오는 것입니다. 어찌 이런 부모를 봉양하지 아니 할 수가 있습니까 더구나 자식들을 잘 키워 보려고 우리의 아버지들은 얼마나 힘겹게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 오셨습니까 6. 25 4,19 5. 16을 거치면서 얼마나 힘든 세월을 살아 오셨습니까 이런 사랑을 먹고 자란 우리가 자란 우리가 어찌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니 이런 사랑이 아니더라도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십니까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여서 잘 봉양 하셔야합니다.
중국 속담에 비둘기는 3지의 예가 있고 까마귀에는 반포의 효가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둘기는 가지에 앉았을 때 어미새 보다 3단 아래 가지에 앉아서 예를 표하고 까마귀는 늙은 어미를 공양한다는 뜻입니다. 동물도 이러한데 구약에는 이런 부모의 은덕을 모르고 술 취하거나 방탕하거나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패역한 자식은 돌로 쳐죽여서 본보기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 등불이 유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 (잠 20:20) 삶이 완전히 망한다는 말입니다.
공자가 이 나라 저 나라를 유랑할 때의 일입니다. 한 곳에 이르니 몹시 슬피 우는 남자를 보고 왜 그리 슬피 우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남자가 하는 말이 "저는 세 가지 큰 허물을 저질렀습니다. 저는 젊어서 글 배우기를 좋아하여 스승을 찾아 천하를 두루 다니다가 고향에 와보니 이미 양친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었습니다. 이것이 첫째의 죄를 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일자리를 얻어 주인을 위해 정성껏 일을 보려 했으나 주인이 하도 교만해서 저는 거기를 뛰쳐나오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둘째의 실패입니다. 그 다음에는 저에게 아주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마지못할 사정이 있어 그 친구와 절교를 했습니다. 이것이 세 가지 허물입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나무는 고요하려 해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부모를 모시려 해도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아니하니 세월은 가고 못 오는 것 가신 어버이를 다시 뵈올 길이 없습니다. 이제 더 살 생각이 없습니다. 하면서 그 남자는 물 속에 목숨을 던져버렸습니다.
공자는 마음에서 깊이 느낀 바가 있어서 제자들에게 일렀습니다. "이 일을 적어 두어라. 계명으로 삼을만 하니라"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제자 중 열 세 명이 그 당장에서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어디로 갔습니까 부모에게 효도하러 간 것입니다. 인생은 좀처럼 인간의 생각대로 되지가 않고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돌아가시어서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럼으로 생전에 봉양하기를 힘써야지 돌아가신 후에는 후회하며 탄식 할 뿐이다 . 이 글에서 '풍수지탄 풍목지비' 란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봉양을 하여서 부모를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세월이 그리고 부모가 우리의 효도를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부모를 기다려 주지 아니합니다.
한 3주전에 양가 부모님의 산소를 다녀왔습니다. 한식에 찾아뵙지 못하고 마음에 아픔이 있어서 정말 부모님을 보고 싶었습니다. 산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그 앞에서 들면서 속으로 '아버지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뵈면 제 마음을 이야기하고 한 수 지혜도 얻고 어리광도 피우고 싶었습니다. 문득 살아 생전에 찾아간다면 오지 말라 하시면서도 도착할 시간이 되면 집 앞에 나와 계시던 모습이 생각이 났습니다. 살아 계시면 품에 안겨서 어리광을 피고 싶은데 세월이 효도를 기다려 주지 아니합니다.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하여 돌보고 키우라고 보내 주신 분입니다. 그래서 이 선물은 필연적인 선물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런 섭리를 알면서 부모님께 대한 태도를 잘 하셔야 합니다. 부모님을 주신 것을 늘 감사하길 원하십니다. 나의 부모는 나의 형편에 잘 맞는 분을 보내 주셨는가 하고 고백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늘 지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부모를 부끄러워하거나 업신여겨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을 늘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잘 봉양하셔서 그들이 자녀를 키운 데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특히 부모님이 살아 생전에 잘 공경을 하시기 바랍니다. 효도는 세월을 기다려 주지 아니합니다.
요즈음 교육방송에서 유태영 박사의 이스라엘 교육법을 통해서 다시 한번 우리의 교육을 생각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저는 두 번을 들었는데 참 유익했습니다. 그 분이 지은 책이 아주 최근에 국민일보사에서 천재를 만드는 유태인의 가정교육법 유태영 박사의 현지 체험이란 부제가 달린 책입니다. 저희 교회 청년인 백남승 군이 이 책을 편집에 관여를 했습니다. 제가 한 권을 선물로 받아서 읽고 있는데 내용이 쉽고 아주 좋습니다. 한번 구해서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특히 젊은 부부들은 꼭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이 분이 한번은 이스라엘 한 아이에게 "너는 왜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거니" 하고 물어 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 아이의 대답이 "예, 저를 위해서 효도합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부모를 위해서 합니다" 라고 할 것 같은데 자기 자신을 위해서 효도를 한다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아니해서 다시 물었다고 합니다. "너를 위해서 효도를 한다니 그게 무슨 뜻이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효도를 하면 큰 축복을 내린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잖아요 그리고 사람과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효도라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를 제대로 공경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에 대한 대답을 통해서 유박사는 어떻게 보면 지나치다 할 정도로 현실 적인 면을 강하게 나타나 보이기는 한 것 같지만 행여라도 그릇된 관념에 빠져서 막연히 생각하는 것을 봉쇄하고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자신과 자녀를 위해서라도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잘 사는 게 효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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