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부모님께 효행하는 일은 축복이 있습니다
본문
5월 8일이 되면 우리나라 방방곳곳에 라디오와 T. V를 통하여 울려 퍼지는 노래가 있습니다.
“낳으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닿도록 고생하셨네”
어버이날을 알리고 경효 사상을 홍보하는 노래로서 이 노래는 이 날 하루로 뚝 끝나 버리고 다음 날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공경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땅에 태어나서 한평생을 사는 동안에 ①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②어버이의 은혜와 ③조국의 은혜 이 3대 은혜 속에서 일생을 살다가 마감을 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우리 인생의 삶 속에는 은혜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부모님들 가운데 우리가 언제 자식 덕보고 살았나! 자식도 아무 소용이 없어! 그저 무자식이 상팔자지! 라고 하는 말을 간혹 들어보는데 대단히 가슴아픈 이야기입니다.
아마 자식으로서 부모님의 은혜를 저버렸음에 대한 신세한탄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기독교를 오해하는 사람들 중 특히 소위 유교에 속한 사람들은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독교인들을 부모님께 아주 불효하는 집단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잘못 알고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공경하고 돌아가신 후에 추모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기독교나 유교나 다 일치하나 반면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교에서는 신(神)이 없는 고로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를 구성하는데는 기본적인 3대 요소가 갖추어져야 하는데 ① 신관 ② 내세관 ③ 현실의 고등윤리를 포함하는 교리입니다.
그러나 유교에서는 고등윤리는 있으나 신관 내세관이 없으므로 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라고 하지 않고 유도(儒道)라고 하는데 즉 선비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생들은 종교의 조건을 갖추기 위하여 신을 모시게 되었는데 그 신이 바로 죽은 조상신입니다. 그 조상신이 복도 주고 화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을 위해서도 무덤을 다시 단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합니까
출 20: 04,0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1. 먼저 성경이 말하는 효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불신자들이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동일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때에 따라서는 추도 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은 부모님의 생전에 지극한 정성으로 지키는 효의 예가 따로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효(孝)에 대하여 아주 강하게 말씀하고 있는데 그 예가 바로 십계명 중 둘째 돌 판에 기록된 첫 번째 계명 즉 부모공경에 관한 계명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들께서 다 잘하시겠지만 다시 한번 부모님의 은혜를 회고하고 그에 대한 의무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점검해 본다면 효에 대한 중요성에 대하여 기독교만큼 크고 귀하게 여기는 곳이 없음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효도가 아내 때문에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고, 자식들 때문에 천대를 받고, 핵가족 때문에 걸림돌의 신세가 되고 있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이러한 때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엡 06:01-03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효도사상이나 경로사상은 미풍양속이나 우리의 전통 혹은 동양 도덕의 척도이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말은 인간이 지상생활에서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이 곧 부모님께 효행하는 것임을 알려주는 적극적인 말씀입니다.
우리 신앙인이 만일 불효한다면 이는 부모님께 죄송하고 사회에 지탄을 받아야할 대상이지만 그러나 그 이전에 여호와 하나님 앞에 죄가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잠 23:22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잠 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잠 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이러한 말씀들은 부모님께 효를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적인 입장을 취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반드시 효행을 하여야 함을 전제로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릴 때부터 30세에 이르기까지 목수생활 가운데서 부모님을 잘 모셨습니다.
눅 02: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 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는 물과 피를 다 쏟으신 후 그 아래에서 울고 있는 어머니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여 육신의 남은 여생을 봉양케 하셨습니다.
요 19:27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특히 자녀들은 부모님을 높여야 하고 만일 허물 된 일이 있으면 가리워 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였을 때에 어떠한 결과가 왔는지를 소개해 주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창 09:20-27)
창 09:20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지라 22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창 09: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26 또 가로되 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여호와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 어떻게 효행을 하여야 합니까
①무엇보다도 우선 부모님의 은혜에 감동하여 순종을 하여야 합니다.
사실 부모님의 은혜를 안다고 하지만 그러나 제대로 아는 자녀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 희생, 그 사랑, 그 고생, 그 은혜를 안 받은 자녀는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아무리 부모님을 공경한다고 해도 순종하는 마음이 없으면 부모의 마음이 상하지 않겠습니까
일본의 하이다로: 부모에게 순종을 잘하는 이로 소문이 났는데 어느날 아버지가 학교에 가려는 하이다로를 불러 오늘 아무래도 비가 올 것 같으니 게다(나막신)를 신고 가라고 했습니다.
조금 있으니 그의 어머니가 얘야 오늘은 날씨가 좋을 것 같으니 조리(짚신)를 신고 가는 것이 더 좋겠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하이다로는 한쪽에는 게다를 신고 한쪽에는 조리를 신고 학교에 갔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에 탈선치만 않으면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②부모를 물심양면으로 섬겨야 합니다.
섬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물질이 없고 가난해도 얼마든지 섬길 수가 있습니다.
독일속담: “한 아버지는 열 자녀를 기르는데 열 자녀는 한 아버지를 섬기지 못한다” 는 말이 있습니다. 섬긴다는 말은 마음을 편히 해 드린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사람이 늙어지면 아이가 된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어린아이처럼 약해지고 단순해져서 패기 만만한 젊은 시절과는 달리 조그만 일에도 섭섭해하시고 곡해를 잘 하시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옷가지도 우선적으로 해 드리고 필요한 용돈도 드려야 하되 특별히 헌금생활에 어려움 당하지 않도록 해 드려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용돈을 타서 쓰시는 분들의 하소연을 들어보면 젊은것들 저희들밖에 모른다 저것들만 헌금하고.... 고부간의 갈등문제도 여기에서 출발되는 때가 많습니다.
③현재 효도하십시오.
물론 생활이 여의치 못하여 당장 부모님을 기분 좋게 못해 드릴 때도 있지만 효는 뒤로 미루어서는 아니 될 일입니다. 꼭 물질로 효를 한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마음을 편케 해 드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불신자들은 돌아가신 이후에 야단스럽게 장례를 치르고 제사를 지낸다고 법석을 떠나 이는 지극히 무용한 일입니다.
나뭇가지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멎지 않고 부모님께 효성을 다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 주지를 않는다고 하는 말처럼 부모님은 무한정 살아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살아 계실 때 효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朱子十悔: 不孝父母 死後悔)
④불신 부모님께는 전도해야 합니다.
가정이 다 믿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교회로 인도하여 구원받게 함이 가장 큰 효도입니다.
전도는 하지 않고 그저 물질적으로 잘 해 드린다고 남의 이목 때문에 산소를 잘 꾸미고 단장을 한다고 유익하거나 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꼭 전도를 하십시오.
딤전 05:0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3. 부모님을 공경하는 자의 누릴 축복이 무엇입니까
잘 되는 축복 즉 재물의 축복과 함께 생명이 길리라는 약속입니다.
엡 06:02, 03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신 05:16 너는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전략의 영웅 맥아더 장군은 그의 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장을 받아들고 맨 먼저 자기의 아버지에게 감사의 경례부터 드렸다고 전해집니다. 과연 그는 죽지 않고 사라져 갔는데 장수하고 잘 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부모님을 공경하는 기독교의 효를 실천해 보십시다.
독일 시인 헤르만 헷세(1877~1962) 부모님 은혼식에 드린 시(결혼 25주년)
두 분에게 있어 쓰라렸던 세월은 우리들 자식에겐 빛으로 가득한 가장 아름답고 멋진 더없이 즐거운 나날이었지요.
두 분의 수고와 불안을 거쳐 온 길은 우리에겐 행복한 소녀의 길이었지요. 우리에게 향내처럼 사라져 간 것이 두 분에겐 지루한 것이었지요. 젊고 힘찬 손을 가진 우리는 달갑게 그 일을 맡겠습니다. 사랑의 무거운 짐을 우리가 지고 두 분의 남은 길 평안히 쉬십시오.
86 12 26 경향신문 서울 강서구 화곡동 산 97-4 천사 양로원에 살고 있는 도수백(85세) 할머니의 사연입니다. 경북 울진군 울진 읍의 대지주의 딸로 태어나 이화학당 2년 때 고향 친구 최모씨와 약혼을 하였으나 항일학생 주모자로 쫓기면서 도피한 약혼자 대신에 일본에 끌려가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엄격한 가풍 때문에 다른 곳에 결혼도 못하고 기약 없는 세월을 소식도 없는 약혼자를 기다리면서 시집살이로 지내왔는데 수산업을 하든 약혼자의 형마저 젊은 나이로 죽고 그 부인은 어린아이를 팽개치고 재가해 갔습니다. 3살 난 어린 조카 아닌 조카를 맡아서 처녀 엄마노릇까지 하는 가운데 혈육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더욱 정이 두터워 조카를 아들로 삼고 결혼을 시켜 세 아들까지 낳았습니다.
그러나 행복해야할 할머니는 나이 들어 밥값을 못한다 라는 며느리의 구박을 받다 결국은 그토록 길러온 조카 부부에게 쫓겨남으로 이웃 사람이 딱한 사정을 알고 양로원에 데리고 왔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눈물겨운 부모님의 은혜를 안다면 어찌 불효를 할 수 있겠습니까
엡 06:0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주안에서 효도하라는 이 말씀의 뜻은 구원받은 자의 인격, 성품, 생활로 효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버이 은혜라는 노래의 가사를 보면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그보다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버이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에.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주안에서 부모님께 효도하여 복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버이께 드리는 헌사
1. 어버이! 오늘의 내가 이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 비록 적기는 하나 나의 생을 이 세상에 있게 하여 주신 이는 나의 어버이였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나일지라도 크게 여김을 받는 때가 있다고 하면 이는 오로지 나를 사랑하시는 어버이의 심정에서였고 곁에 있어 든든하고 멀리 있어 더욱 감격하는 것은 나의 어버이의 사랑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버이를 사랑한다.
2. 나 일찍 요람에서 잠들었을 때 나의 손이요 발이었던 이는 나의 어버이였다.
동서 좌우를 모르는 나를 처음 글방 문으로 이끌어간 손도 따스한 어버이의 손이었고 지성의 발에 지혜의 물을, 감정의 바다에서 사랑의 선풍을, 윤리의 길에서 봉사의 빛을 교훈하여 주신 이도 나의 어버이였다. 그래서 나는 어버이를 존경한다.
3. 내가 병마에 사로잡혀 노예 되었을 적에 나에게 약이 되며 재생의 은혜를 가져다주신 이는 나의 어버이였다.
악몽의 공포에서 떨 때도 곁에 있어 안위의 웃음을 보내주신 이는 어버이였다.
공(空)것이 없는 이 세상일지라도 나의 입맛에 따라 먹을 것과 사() 시절을 따라 나의 살(肉)가리울 것을 그저 베풀어 나를 이해(利害)에서 상관없게 하신 이는 나의 어버이였다. 그래서 나는 어버이를 의지한다.
4. 내가 기쁜 일이 있을 때 날 위에 춤추었고 내가 슬픈 일이 있어 아무리 감추려 할지라도 전광(電光)같이 감촉하시는 이는 나의 어버이였다.
내가 이성(異性)의 사랑에서 끊어져 울었을 때도 내 얼굴에 눈물이 마르기 전 돌아갈 곳이 있었던 것은 오직 따뜻한 어버이의 품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어버이를 그리워한다.
5. 내가 악(惡)의 길에 서고자 할 때도 항상 기억나는 것은 지극하신 어버이의 기도였고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나를 죄에서 멀게 한 것도 어버이께서 심어주신 믿음의 힘이었다.
법이 아무리 차다 할지라도 내가 나의 죄를 보상 없이 용서해 주신 이는 어버이였다.
나와 내 자손이 행복의 걸음이 될 것은 남에게 베푸신 어버이의 적선(積善)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버이를 순종한다.
6. 내가 나를 사랑하기 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사랑하기보다 더 사랑하신 이는 나의 부모님이었다.
나의 효성이 다 가지도 못하고 망극한 감사로도 갚을 수 없는 것은 희생을 희생같이 여기지 아니하시는 부모님의 사랑이었고 미천한 나였을 지라도 왕자가 부럽지 아니한 것은 나의 집이 아버지의 왕국이며 나의 어머니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부모님을 사랑한다.
7. 내가 장차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는 외롭지 않고 슬프지도 아니할 것은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께서 가신 길을 찾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부모님을 따라간다.
“낳으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닿도록 고생하셨네”
어버이날을 알리고 경효 사상을 홍보하는 노래로서 이 노래는 이 날 하루로 뚝 끝나 버리고 다음 날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공경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땅에 태어나서 한평생을 사는 동안에 ①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②어버이의 은혜와 ③조국의 은혜 이 3대 은혜 속에서 일생을 살다가 마감을 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우리 인생의 삶 속에는 은혜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부모님들 가운데 우리가 언제 자식 덕보고 살았나! 자식도 아무 소용이 없어! 그저 무자식이 상팔자지! 라고 하는 말을 간혹 들어보는데 대단히 가슴아픈 이야기입니다.
아마 자식으로서 부모님의 은혜를 저버렸음에 대한 신세한탄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기독교를 오해하는 사람들 중 특히 소위 유교에 속한 사람들은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독교인들을 부모님께 아주 불효하는 집단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잘못 알고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공경하고 돌아가신 후에 추모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기독교나 유교나 다 일치하나 반면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교에서는 신(神)이 없는 고로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를 구성하는데는 기본적인 3대 요소가 갖추어져야 하는데 ① 신관 ② 내세관 ③ 현실의 고등윤리를 포함하는 교리입니다.
그러나 유교에서는 고등윤리는 있으나 신관 내세관이 없으므로 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라고 하지 않고 유도(儒道)라고 하는데 즉 선비의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생들은 종교의 조건을 갖추기 위하여 신을 모시게 되었는데 그 신이 바로 죽은 조상신입니다. 그 조상신이 복도 주고 화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을 위해서도 무덤을 다시 단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합니까
출 20: 04,0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1. 먼저 성경이 말하는 효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불신자들이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동일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때에 따라서는 추도 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은 부모님의 생전에 지극한 정성으로 지키는 효의 예가 따로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효(孝)에 대하여 아주 강하게 말씀하고 있는데 그 예가 바로 십계명 중 둘째 돌 판에 기록된 첫 번째 계명 즉 부모공경에 관한 계명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들께서 다 잘하시겠지만 다시 한번 부모님의 은혜를 회고하고 그에 대한 의무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점검해 본다면 효에 대한 중요성에 대하여 기독교만큼 크고 귀하게 여기는 곳이 없음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효도가 아내 때문에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고, 자식들 때문에 천대를 받고, 핵가족 때문에 걸림돌의 신세가 되고 있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이러한 때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엡 06:01-03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효도사상이나 경로사상은 미풍양속이나 우리의 전통 혹은 동양 도덕의 척도이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말은 인간이 지상생활에서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이 곧 부모님께 효행하는 것임을 알려주는 적극적인 말씀입니다.
우리 신앙인이 만일 불효한다면 이는 부모님께 죄송하고 사회에 지탄을 받아야할 대상이지만 그러나 그 이전에 여호와 하나님 앞에 죄가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잠 23:22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잠 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잠 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이러한 말씀들은 부모님께 효를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적인 입장을 취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반드시 효행을 하여야 함을 전제로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릴 때부터 30세에 이르기까지 목수생활 가운데서 부모님을 잘 모셨습니다.
눅 02: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 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는 물과 피를 다 쏟으신 후 그 아래에서 울고 있는 어머니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여 육신의 남은 여생을 봉양케 하셨습니다.
요 19:27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특히 자녀들은 부모님을 높여야 하고 만일 허물 된 일이 있으면 가리워 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였을 때에 어떠한 결과가 왔는지를 소개해 주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창 09:20-27)
창 09:20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지라 22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창 09: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26 또 가로되 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여호와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 어떻게 효행을 하여야 합니까
①무엇보다도 우선 부모님의 은혜에 감동하여 순종을 하여야 합니다.
사실 부모님의 은혜를 안다고 하지만 그러나 제대로 아는 자녀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 희생, 그 사랑, 그 고생, 그 은혜를 안 받은 자녀는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아무리 부모님을 공경한다고 해도 순종하는 마음이 없으면 부모의 마음이 상하지 않겠습니까
일본의 하이다로: 부모에게 순종을 잘하는 이로 소문이 났는데 어느날 아버지가 학교에 가려는 하이다로를 불러 오늘 아무래도 비가 올 것 같으니 게다(나막신)를 신고 가라고 했습니다.
조금 있으니 그의 어머니가 얘야 오늘은 날씨가 좋을 것 같으니 조리(짚신)를 신고 가는 것이 더 좋겠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하이다로는 한쪽에는 게다를 신고 한쪽에는 조리를 신고 학교에 갔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에 탈선치만 않으면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②부모를 물심양면으로 섬겨야 합니다.
섬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물질이 없고 가난해도 얼마든지 섬길 수가 있습니다.
독일속담: “한 아버지는 열 자녀를 기르는데 열 자녀는 한 아버지를 섬기지 못한다” 는 말이 있습니다. 섬긴다는 말은 마음을 편히 해 드린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사람이 늙어지면 아이가 된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어린아이처럼 약해지고 단순해져서 패기 만만한 젊은 시절과는 달리 조그만 일에도 섭섭해하시고 곡해를 잘 하시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옷가지도 우선적으로 해 드리고 필요한 용돈도 드려야 하되 특별히 헌금생활에 어려움 당하지 않도록 해 드려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용돈을 타서 쓰시는 분들의 하소연을 들어보면 젊은것들 저희들밖에 모른다 저것들만 헌금하고.... 고부간의 갈등문제도 여기에서 출발되는 때가 많습니다.
③현재 효도하십시오.
물론 생활이 여의치 못하여 당장 부모님을 기분 좋게 못해 드릴 때도 있지만 효는 뒤로 미루어서는 아니 될 일입니다. 꼭 물질로 효를 한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마음을 편케 해 드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불신자들은 돌아가신 이후에 야단스럽게 장례를 치르고 제사를 지낸다고 법석을 떠나 이는 지극히 무용한 일입니다.
나뭇가지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멎지 않고 부모님께 효성을 다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 주지를 않는다고 하는 말처럼 부모님은 무한정 살아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살아 계실 때 효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朱子十悔: 不孝父母 死後悔)
④불신 부모님께는 전도해야 합니다.
가정이 다 믿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교회로 인도하여 구원받게 함이 가장 큰 효도입니다.
전도는 하지 않고 그저 물질적으로 잘 해 드린다고 남의 이목 때문에 산소를 잘 꾸미고 단장을 한다고 유익하거나 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꼭 전도를 하십시오.
딤전 05:0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3. 부모님을 공경하는 자의 누릴 축복이 무엇입니까
잘 되는 축복 즉 재물의 축복과 함께 생명이 길리라는 약속입니다.
엡 06:02, 03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신 05:16 너는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전략의 영웅 맥아더 장군은 그의 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장을 받아들고 맨 먼저 자기의 아버지에게 감사의 경례부터 드렸다고 전해집니다. 과연 그는 죽지 않고 사라져 갔는데 장수하고 잘 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부모님을 공경하는 기독교의 효를 실천해 보십시다.
독일 시인 헤르만 헷세(1877~1962) 부모님 은혼식에 드린 시(결혼 25주년)
두 분에게 있어 쓰라렸던 세월은 우리들 자식에겐 빛으로 가득한 가장 아름답고 멋진 더없이 즐거운 나날이었지요.
두 분의 수고와 불안을 거쳐 온 길은 우리에겐 행복한 소녀의 길이었지요. 우리에게 향내처럼 사라져 간 것이 두 분에겐 지루한 것이었지요. 젊고 힘찬 손을 가진 우리는 달갑게 그 일을 맡겠습니다. 사랑의 무거운 짐을 우리가 지고 두 분의 남은 길 평안히 쉬십시오.
86 12 26 경향신문 서울 강서구 화곡동 산 97-4 천사 양로원에 살고 있는 도수백(85세) 할머니의 사연입니다. 경북 울진군 울진 읍의 대지주의 딸로 태어나 이화학당 2년 때 고향 친구 최모씨와 약혼을 하였으나 항일학생 주모자로 쫓기면서 도피한 약혼자 대신에 일본에 끌려가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엄격한 가풍 때문에 다른 곳에 결혼도 못하고 기약 없는 세월을 소식도 없는 약혼자를 기다리면서 시집살이로 지내왔는데 수산업을 하든 약혼자의 형마저 젊은 나이로 죽고 그 부인은 어린아이를 팽개치고 재가해 갔습니다. 3살 난 어린 조카 아닌 조카를 맡아서 처녀 엄마노릇까지 하는 가운데 혈육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더욱 정이 두터워 조카를 아들로 삼고 결혼을 시켜 세 아들까지 낳았습니다.
그러나 행복해야할 할머니는 나이 들어 밥값을 못한다 라는 며느리의 구박을 받다 결국은 그토록 길러온 조카 부부에게 쫓겨남으로 이웃 사람이 딱한 사정을 알고 양로원에 데리고 왔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눈물겨운 부모님의 은혜를 안다면 어찌 불효를 할 수 있겠습니까
엡 06:0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주안에서 효도하라는 이 말씀의 뜻은 구원받은 자의 인격, 성품, 생활로 효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버이 은혜라는 노래의 가사를 보면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그보다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버이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에.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주안에서 부모님께 효도하여 복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버이께 드리는 헌사
1. 어버이! 오늘의 내가 이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 비록 적기는 하나 나의 생을 이 세상에 있게 하여 주신 이는 나의 어버이였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나일지라도 크게 여김을 받는 때가 있다고 하면 이는 오로지 나를 사랑하시는 어버이의 심정에서였고 곁에 있어 든든하고 멀리 있어 더욱 감격하는 것은 나의 어버이의 사랑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버이를 사랑한다.
2. 나 일찍 요람에서 잠들었을 때 나의 손이요 발이었던 이는 나의 어버이였다.
동서 좌우를 모르는 나를 처음 글방 문으로 이끌어간 손도 따스한 어버이의 손이었고 지성의 발에 지혜의 물을, 감정의 바다에서 사랑의 선풍을, 윤리의 길에서 봉사의 빛을 교훈하여 주신 이도 나의 어버이였다. 그래서 나는 어버이를 존경한다.
3. 내가 병마에 사로잡혀 노예 되었을 적에 나에게 약이 되며 재생의 은혜를 가져다주신 이는 나의 어버이였다.
악몽의 공포에서 떨 때도 곁에 있어 안위의 웃음을 보내주신 이는 어버이였다.
공(空)것이 없는 이 세상일지라도 나의 입맛에 따라 먹을 것과 사() 시절을 따라 나의 살(肉)가리울 것을 그저 베풀어 나를 이해(利害)에서 상관없게 하신 이는 나의 어버이였다. 그래서 나는 어버이를 의지한다.
4. 내가 기쁜 일이 있을 때 날 위에 춤추었고 내가 슬픈 일이 있어 아무리 감추려 할지라도 전광(電光)같이 감촉하시는 이는 나의 어버이였다.
내가 이성(異性)의 사랑에서 끊어져 울었을 때도 내 얼굴에 눈물이 마르기 전 돌아갈 곳이 있었던 것은 오직 따뜻한 어버이의 품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어버이를 그리워한다.
5. 내가 악(惡)의 길에 서고자 할 때도 항상 기억나는 것은 지극하신 어버이의 기도였고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나를 죄에서 멀게 한 것도 어버이께서 심어주신 믿음의 힘이었다.
법이 아무리 차다 할지라도 내가 나의 죄를 보상 없이 용서해 주신 이는 어버이였다.
나와 내 자손이 행복의 걸음이 될 것은 남에게 베푸신 어버이의 적선(積善)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버이를 순종한다.
6. 내가 나를 사랑하기 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사랑하기보다 더 사랑하신 이는 나의 부모님이었다.
나의 효성이 다 가지도 못하고 망극한 감사로도 갚을 수 없는 것은 희생을 희생같이 여기지 아니하시는 부모님의 사랑이었고 미천한 나였을 지라도 왕자가 부럽지 아니한 것은 나의 집이 아버지의 왕국이며 나의 어머니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부모님을 사랑한다.
7. 내가 장차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는 외롭지 않고 슬프지도 아니할 것은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께서 가신 길을 찾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부모님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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