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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부모 공경, 자식 사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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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여형제들과 아들들이 칠순노모의 부양문제를 놓고 집단 난투극을 벌여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관광이라는 미명하에 노부모를 타관 객지에 버리는 자녀들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 옵니다.
요즘 어른들 정말 효를 받아보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어느 사회학자는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옛날에는 모든 지식이 부모로부터 왔다. 삶의 지혜와 기술의 습득도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했다. 그리고 옛날에는 부모로부터 토지를 물려받아야 살 수 있었다. 또한 명예와 신분도 부모의 것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양반 자식은 양반 자식으로, 상인 자식은 상인 자식으로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으니 옛날에는 효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즉, 부모가 절대적인 의존의 대상이었습니다. 부모를 떠나면 당장 생활의 어려움을 느낍니다. 부모에게서 쫓겨나면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며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사회와 학교에서 자신이 노력으로 얻기 때문에 옛날처럼 부모 덕 볼 일이 없고, 그래서 효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이 어떻습니까! 그래서 노인들이 하시는 말씀이 요즘은 늙어도 돈을 가지고 있어야 자식들에게 효도 받을 수 있다"라는 말씀들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슬픈 이야기입니까 그런 효도라면 받지 않느니만 못합니다.
근본적으로 순수한 효의 개념, 그 자체가 타락했습니다.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간혹 모성애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물의 세계에도 모성애는 있습니다. 모든 동물들이 어렸을 때에 그 어미를 따릅니다. 어떤 때는 굉장히 강한 모성애가 동물의 세계에 있는 것을 압니다. 고슴도치도 자기새끼는 사랑하니까 말입니다.
예로부터 까마귀를 효조라 합니다. 까마귀는 어렸을 때에는 어미 새가 그 새끼를 키운답니다. 일반적인 말입니다. 그런데 어미 까마귀가 늙어 기력이 없어지면 그 새끼가 늙은 어미 까마귀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새끼 까마귀들은 자기 어미 까마귀가 앉은 가지 위에 앉는 법이 없답니다.
그래서 자기 부모를 봉양할 줄 모르는 사람은 까마귀 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해지고 축복 받는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비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비결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 "옳다"는 말은 "옳다", "당연하다", 즉 당연한 일, 마땅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효는 선행도, 공로도 아닙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 일뿐입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한 일임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라고 하시는 축복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왜 이 말씀이 축복의 비결이 됩니까 이 명령은 약속 있고, 축복 있는 첫 계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부모의 권위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부모 공경에 대해서 엄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21:17에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신21:18-21에 보면 아비의 말이나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않는 자식이 있거든 "성읍의 모든 사람이 나와서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레24:15,16에 보면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라고 하시면서 여호와 하나님은 이렇게 부모 공경하지 않은 자에게 가하는 형벌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못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벌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부모의 권위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권위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훼방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이요,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요, 부모님께 고의로 불순종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고의로 불순종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성경은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이지만 부모 공경하지 않는 타락된 문화가 있는 곳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는 법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과 부모 공경은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주어진 로마시대에는 아버지는 자기 자식에 대하여 신과 같은 절대권을 가지고 자식을 죽이기도 하고 팔아 넘기기도 했다. 양육권이 어머니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있었고 아버지가 허락하여야 비로소 자식은 그 가정에서 길러 질 수가 있었고 아버지가 허락지 않으면 아무리 아버지의 혈통을 타고난 자식이라 할지라도 밖에 버려 죽게 하거나 노예로 그리고 창녀로 팔리어 갔습니다.
이렇게 된 사회에 버려진 자식들이 아버지를 공경할 리가 있겠습니까 인간이라면 그렇게 할 수 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버지가 원수인 셈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있었지 효도를 하는 자녀는 찾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러한 부모라 할지라도 순종하고 공경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아무리 악하여도 아버지이고 아무리 나빠도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서의 부모는 미워할 수가 있어도 아버지 어머니로서의 부모는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인간으로 여기기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처럼 알고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여기고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기를 버린 비정한 부모를 공경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부모를 공경하되 주안에서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주님 안에서가 아니면 원수 같은 부모를 공경하지 못 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아니면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자기를 버린 부모를 공경하지 못 합니다. 오직 우리가 주안에 있을 때, 그 주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가장 지킬 수 없는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 5계명이었다고 합니다. 어릴 때 버림을 받아 온갖 고생을 다하고 사업에 성공하여 부자가 되고 유명해 지니까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아버지가 찾아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어찌나 아버지가 염치없는 짓을 하는지 살면 살수록 미움만 더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는 독한 마음을 품고 아버지를 독살시킬 작정으로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면서 아버지에게 라면을 주면서 점심때 끓여 잡수라고 하고 나갔습니다. 그 라면 속에는 독약을 섞어 놓았습니다. 이제 저녁때에 들어오면 죽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되어 들어와 보니 누군가 죽기는 죽었는데 아버지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딸이 죽어 있더라는 겁니다. 아버지 먹으라고 놔둔 라면을 그날 따라 집에 일찍 돌아온 딸이 배가 고프다며 그 라면을 끓여 먹은 것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더욱 아버지가 미워 더 이상 살수가 없더라는 겁니다. 그러던 차에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기 시작했고 교회에서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고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지 한달 만에 꿈을 꾸었는데 아버지가 죽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신 아버지를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얼굴이 아버지의 얼굴이 아니라 예수님의 얼굴이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난 후 꿈을 깨었는데 이상하다 하며 혹시 아버지가 죽지나 않았나 하며
급히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나오기는 나오는데 그 얼굴이 아버지의 얼굴이 아니라 예수님의 얼굴로 변해서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확실한데 그 얼굴이 예수님의 얼굴이더라는 겁니다. 그 순간 깨닫기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응답해 주신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도저히 내가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으니까 아버지의 모습을 아예 예수님의 모습으로 바꾸어 주시는구나 하고 그날부터 극진히 예수를 모시듯 아버지를 섬기었다고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부모님은 나에게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신명기에서는 만일 부모를 욕하고 손찌검을 하기라도 하면 죽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부모 중요성을 알리는 예증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여야 합니다.
2 인간의 도리 상 옳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부모라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인륜입니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그 동기에서 볼 때 부모보다 더 노심초사하는 이는 이 세상 아무도 없습니다. 자식의 성공을 가장 원하는 존재가 바로 부모인 것입니다. 이런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은 인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실천을 많이 한 사람은 사회 생활을 할 때도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합니다. 윗사람에게도 신임 받고 아랫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습니다. 이 사람은 이미 가정에서부터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함으로써 축복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사회에서 살아가는 올바른 삶의 방법을 터득한 것입니다. 사람이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은 인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는 말씀은 부모의 빈부상태를 떠나서, 옳고 그름을 떠나서, 부모 그 자체로서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역설적으로는 주의 뜻에 어긋나는 부모의 강요된 순종이라면 이를테면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말고, 나쁜 짓을 하라"는 식의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과 어긋난 일을 명령한다면 거기에는 순종할 수 없을 것입니다.
런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 저녁에 어떤 사람이 오두막집을 지나가는데 거기에 소녀 하나가 추위에 덜덜 떨며 문 밖에 서 있더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서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어린 소녀 하는 말이 "우리 아버지가 나를 때리며 나가라고 내어쫓아서 지금 문 밖에 서 있습니다"하더랍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아버지께서 잠드신 다음에 들어 가려고 해요. " 그 소녀는 아버지가 잠든 다음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새벽 일찍 일어나 아침상을 준비해 가지고 아버지 방에 들어갔습니다. 술에서 깨어난 아버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때려서 내쫓았는데 너는 왜 오늘 집에 들어 왔으며 또 아침상을 차려서 가지고 오느냐 이 아버지가 밉지도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소녀는 말하기를 "아닙니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어머니가 세상 떠날 때에 내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의 아버지는 술만 마시기만 하면 저 모양이 된다마는 본심은 착한 사람이다. 언젠가는 좋은 아버지가 될 것이다. 나는 너의 아버지를 사랑한다. 그런고로 너도 아버지를 사랑해라. "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 이 말을 듣고 아버지는 회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우리는 더욱 효도해야 합니다. 받고자 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다만 받은 마음에서 감사하는 행위가 효도입니다. 부모가 효도를 받을 만한 분이냐 아니냐를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부모 공경은 조건이 없는 것입니다.
3 부모 공경은 신앙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하지 못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에 대해서 불효한 상태로 신앙 생활을 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성령의 충만함도 없을 것이고, 마음에 평안도 없을 것이고, 더욱이 기도의 문도 막힐 것이기 때문에 그의 신앙은 앉은뱅이 신앙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는 가정은 이미 가정 윤리가 깨어진 가정입니다. 이런 가정을 불행한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막12:31)하셨는데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부모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부모를 잘 못 섬긴다면 그 사람은 율법 전체를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4. 은혜가 무엇인가를 알게 해 주는 부모이기 때문에 공경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수십만 마디의 말이 있어도 그 중에 가장 고상하고 좋은 말은 어머니 와 아버지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어머니의 사랑보다 아버지의 사랑보다 더 크고 귀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쥐면 꺼질세라 불면 날세라 금지옥엽 애지중지 하며 겨울이면 추울세라 여름이면 더울세라 염려하시고 행여나 배고파 할까봐, 당신은 못 먹어도 자식들 입에 밥풀 하나라도 더 먹이고자 하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이요, 진자리 마른자리 구별치 않고 진자리에는 당신이 누우시고 마른자리 골라 자식들 뉘어서 키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을 위한 길이라면 천리길이라도 마다 않고 달려가시며, 또 자식들을 위한 일이라면 손발이 갈퀴 손이 되고 손톱 발톱이 다 달아도 당신 몸 아끼지 않는 것이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부모님의 은공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부모님의 은혜는 하늘아래 더 큰 것이 없습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다음으로 부모님의 은혜가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이 불렀던 어머니의 노래가 생각납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에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달토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높다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당신은 못 입어도 철따라 세옷을 입혀주고 수업료 장만해서 공부시키며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시며, 어쩌다 병이라도 나면 밤새워 물수건을 이마에 놓아주시며 간호해 주시던 따뜻한 손! 잘하면 자랑하고 싶어 어쩔 줄 모르시고 잘못하면 분해하시던 어머니의 사랑! 사람되라고 눈물로 가르치며 열 번 잘못해도 다 잊어주시고 용서하시던 어머니의 사랑은 생각할 때마다 가슴 저리며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이처럼 어머니의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다 주시고도 더 못 주어서 아쉬워하는 한없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습니다.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전적인 은혜는 부모님으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아무런 기대와 조건도 없이 자녀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부모님입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버이 은혜, 푸른 하늘 그 보다 더 높은 것 같아"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서 세살 때까지 전혀 아무 것도 모를 때 부모의 최고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내 손으로 밥을 먹고, 걸어다니기 시작한 것은 네살 이후입니다. 사실 우리가 기억에 남아 있는 때는 나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은혜를 안 자만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가 있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모르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모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알아야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허물을 덮는 사랑입니다. 자녀들이 부족하고 실수해도 예쁘게 보아줍니다.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허물을 덮어 주므로 우리는 살아난 것입니다. 허물을 보지 않는 것이 은혜요, 사랑입니다. 부모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부모님에게서 보고 배운 것으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이런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5, 여호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 때문에 공경해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일에 훈련이 된 자녀는 밖에 나가서도 어른을 공경하고 윗사람을 공경할 줄 압니다. 그러한 자녀가 사회에 나가서도 잘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부모에게 효도한 자는 반드시 축복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고 반대로 불효한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엡6:3에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부모의 효 는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의외로 부모 공경을 잘 한사람인데 일찍 세상을 떠나는 분들을 봅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혹시 성경 말씀이 잘 못되었다고 의심이 들지는 않습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칼빈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해서 모순같이 보이지만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올라가면 다 이해하게 된다. 부모 공경을 하지 않았는데도 오래 사는 것은 그 사는 자체가 여호와 하나님의 벌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부모 공경을 안했는데도 장수하는 분이 있다면 그분은 사는 것 자체가 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구체적인 방법이 따라야 합니다. 늘 사랑해 드리시고, 늘 순종해 드리시고, 동시에 부모의 단점은 덮어두고 장점은 드러내어 모방하고 자랑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또 선물을 드려도 보시고 때때마다 방문도 하셔서 위로하시고 전화도 자주 하십시오. 그리고 살아 생전에 잘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거쳐가 불편하지 않은지, 음식에 불편은 없으신지, 용돈을 자주 드려 경제권 상실의 외로움이 없게 해드려야 합니다. 젊어서는 자식 키우고 집안 살림 일으키시느라 너무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이것을 언제나 자녀들은 잊지 말고 이제라도 남은 생애 평안히 모셔야 됩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영혼이 잘 되도록 기도해 드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엡6:1-3을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 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 수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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