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자녀들아,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
본문
오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가정이 잘되는 길에 관한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에베소서 6장 3절은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하고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바울 사도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엡 6:2)
물론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좋은 의복을 사드리고 부모를 즐겁게 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이와 다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부모공경입니까
첫째, 부모가 주 안에 있게 하는 것입니다.
자식은 예수님을 믿어서 천국에 가는데 부모님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지옥에 간다면 그것은 엄청난 불효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이 주 안에서 살게 해드리는 것이 최고의 효도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구원을 받았지만 다른 식구들이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어느 부모가 예수님을 잘 믿어서 남편은 장로가 되고 부인은 권사가 되었습니다. 자녀들을 지식적으로 잘 키워서 박사가 되어 사회적인 지위가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자식에게 전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지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자식을 잘못 기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받은 구원의 감격을 자식에게도 전해서, 자식이 예수님을 잘 믿게 하는 것이 참된 자녀교육입니다.
우리 큰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 서울로 이사를 왔기 때문에 우리가 거처하는 미아동에 있는 미아초등학교에 입학을 시켰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바나나를 사달라고 했습니다. 요즘은 바나나를 쉽게 살 수 있지만 그 때는 바나나 한 송이 값이 한 달 사례비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바나나를 사주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학교에 갔다와서, “아빠, 장로가 높아 목사가 높아”하고 물었습니다. “교회는 높고 낮은 것이 없단다. ”하고 대답하자, “목사가 낮고 장로가 높아. ”하고 말했습니다. “왜 그러냐”하고 묻자 “장로 아들은 벌써 바나나를 먹었는데 목사아들인 나는 지금까지도 바나나를 못 먹었기 때문에 목사가 장로보다 낮아.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우리 금식합시다. ”하고 바나나 한 송이를 사다 주었습니다. 금방 먹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냥 바나나를 들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다시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바나나를 쌀가마 위에 놓았습니다. 닷새동안 바나나를 먹지 않고 들고 나갔다 도로 가져왔습니다.
바나나 껍질이 새까맣게 변했습니다. 그래서 “바나나를 먹어라. 다 썩는다. ”하고 말하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비싼 바나나인데, 어떻게 먹어요. 자랑을 해야지요. ” 바나나를 벗겨보니 전부 상했습니다.
그 때 큰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 아들이 바나나를 갖고서 기뻐하는 감격과 내가 구원받은 감격을 비교해 볼 때 내가 아들만큼 좋아했을까”
아들을 통해 내가 구원받은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된 나는 그 후부터 전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옆집에 사는 분이 서울의 모 대학의 교수였습니다. 하루는 금호동에서 심방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그 집에서 굿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흘 간의 굿이 끝난 후 전도하기 위해서 그 집으로 갔습니다. “나는 옆집에 사는 목사인데, 교수님 집에서 왜 굿을 합니까”하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교수가 복수가 차서 병원에서 고칠 수 없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이 남산에 있는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면 병이 낫는다고 해서 굿을 했습니다. ”
교수가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분은 눈을 하얗게 뜨고 어깨로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찬송가 465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4절을 계속해서 불렀습니다.
/내 몸의 약함을 하시는 주/
/못 고칠 질병이 아주 없네/
찬송을 부른 후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능력을 두었다가 무엇을 합니까 저 사람을 한 번만 고쳐주시면 전도를 얼마나 많이 하겠습니까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그리고 나서 그 분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그 교수 부인이 우리 집을 찾아와서 “목사님! 한 번만 더 와서 지난번에 부른 노래를 불러주세요”하고 부탁하였습니다.
우리 집사람과 함께 그 집으로 가서 지난번에 부른 찬송가를 두 시간 동안 부른 후 교수의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그 집에 심방을 갔더니 교수의 아내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이 오셔서 노래를 부르시고 기도해 주신 후부터 남편이 화장실을 잘 다니게 되었는데 배에서 복수가 빠졌습니다. ”
“예수 믿으세요. ”하고 전도하자 즉시 서점에 가서 찬송가와 성경을 샀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있는 미아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장로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의 말 한 마디가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둘째, 부모가 믿음의 생활을 기쁘게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사실 밤낮 교회가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때는 교회에 가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상하게도 자극을 주어서 교회에 빠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목사까지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기쁨을 잃어버리면 교회에 가기도 싫고 찬송을 부르기도 싫어집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주 안에서 기쁨을 갖고 사는 생활이 믿음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우리를 담당하신 전도사님의 간증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처녀 속장인 그 분은 총각 속장인 분을 만나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부모님은 교회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이 분은 시부모가 좋아하는 것은 해드리고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 번도 시부모에게 전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아버지가 좋아하는 술과 담배를 항상 사다 드렸습니다. 시아버지는 내 며느리 같은 효녀가 없다고 사람들에게 자랑했습니다.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장례를 치른 후, 며느리가 꿈을 꾸었습니다.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곳에서 시아버지가 며느리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버님! 왜 그러세요”하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희는 예수를 믿으면서 어쩌면 한 번도 나에게 전도를 하지 않았느냐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자리이다. 이것은 전부 너희 책임이다. ”
꿈을 깬 후, 시부모에게 불효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 시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던 중 다음과 같은 응답을 받았습니다.
“네 시아버지만 아버지인 줄 아느냐 지금도 네 시아버지처럼 예수를 믿지 않는 노인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그런 사람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해야 될 것이 아니냐”
이 이야기를 한 후, 전도할 때를 놓치면 후회하게 되고 후회를 하더라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은혜가 있는 가정,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는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질서 있는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가정은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간에 뒤죽박죽으로 살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가정에는 뼈대가 있고 정신이 있고 교훈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열 두 살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버님의 얼굴은 희미하게만 떠오릅니다. 그러나 아버님이 하신 말씀은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네 살 때 아버님이 나를 지게에 태우거나 업고 다니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아버님은 나에게 “사람이란 대기만성(大器晩成)해야 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초등학교 5학년때 그것이 큰 인물이 되려면 여러 가지 경험을 한 후 실수함이 없을 때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은 “대아(大我)를 위해서 소아(小我)를 죽여야 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초등학교 한문책에 나왔는데, 대아(大我), 곧 나를 크게 하려면 소아(小我), 곧 시시한 것은 전부 죽여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우리는 조그마한 욕심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이해관계에 너무나 얽혀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전부 버리고 주님을 따라가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큰아버님은 세 자녀가 있는 분과 재혼을 하셨습니다. 삼남매를 잘 양육하시고 자신의 재산을 전부 나누어주었습니다.
신학교 일 학년 때 봄방학이 되어서 집으로 내려가는 배를 탔는데 거기에 큰아버님이 계셨습니다.
“큰아버님, 어디 가세요”
“너희 집에 간다. ”
“왜 우리 집에 오세요”
“아들이 나를 쫓아내서 더 이상 집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조카 집으로 간다. ”
우리 어머니께서 굉장히 걱정을 하셨습니다. “그 많은 재산을 왜 남의 자식에게 다 주고 조카네 집에 오십니까”
그때 우리 큰형님이 하신 말씀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머님, 그냥 계시게 하세요. 우리 큰아버님이 복덩어리입니다. 그러니 박대하지 마세요. ”
큰형님과 형수는 큰아버님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노망이 들어서 이불에 불을 지르고, 변을 벽에 바르기도 했지만 한 번도 짜증을 부리지 않고 큰아버님을 잘 보살폈습니다.
큰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자, 우리 큰형님은 예언자적인 말씀을 했습니다. “큰아버님을 쫓아낸 집은 잘 될 리가 없고 복되신 큰아버님을 모신 우리 집은 잘될 것이다. ”
십년이 못 되어서 큰아버님을 쫓아낸 집은 한 사람이 불가마에 빠져 죽고 한 사람은 그물을 끌어올리다가 바다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살아온 우리 집은 목사가 다섯 명, 장로가 여섯 명이 나오는 복된 가정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집은 주님 뜻대로 사는 가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넷째,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식이 잘되면 “저게 누구 자식이냐”하고 칭찬을 하지만, 자식이 못되면 “저게 누구 자식이기에 저렇게 못되었느냐”하고 경멸을 합니다.
그러므로 자식이 감옥에 가서 사식을 갖다 주면서 언제 나오느냐 하면서 울고불고 하는 불행한 가정이 아니라 “자식을 참 잘 길렀다. ”하고 칭찬 받는 복 있는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에베소서 6장 3절은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하고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바울 사도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엡 6:2)
물론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좋은 의복을 사드리고 부모를 즐겁게 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이와 다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부모공경입니까
첫째, 부모가 주 안에 있게 하는 것입니다.
자식은 예수님을 믿어서 천국에 가는데 부모님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지옥에 간다면 그것은 엄청난 불효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이 주 안에서 살게 해드리는 것이 최고의 효도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구원을 받았지만 다른 식구들이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어느 부모가 예수님을 잘 믿어서 남편은 장로가 되고 부인은 권사가 되었습니다. 자녀들을 지식적으로 잘 키워서 박사가 되어 사회적인 지위가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자식에게 전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지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자식을 잘못 기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받은 구원의 감격을 자식에게도 전해서, 자식이 예수님을 잘 믿게 하는 것이 참된 자녀교육입니다.
우리 큰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 서울로 이사를 왔기 때문에 우리가 거처하는 미아동에 있는 미아초등학교에 입학을 시켰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바나나를 사달라고 했습니다. 요즘은 바나나를 쉽게 살 수 있지만 그 때는 바나나 한 송이 값이 한 달 사례비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바나나를 사주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학교에 갔다와서, “아빠, 장로가 높아 목사가 높아”하고 물었습니다. “교회는 높고 낮은 것이 없단다. ”하고 대답하자, “목사가 낮고 장로가 높아. ”하고 말했습니다. “왜 그러냐”하고 묻자 “장로 아들은 벌써 바나나를 먹었는데 목사아들인 나는 지금까지도 바나나를 못 먹었기 때문에 목사가 장로보다 낮아.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우리 금식합시다. ”하고 바나나 한 송이를 사다 주었습니다. 금방 먹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냥 바나나를 들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다시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바나나를 쌀가마 위에 놓았습니다. 닷새동안 바나나를 먹지 않고 들고 나갔다 도로 가져왔습니다.
바나나 껍질이 새까맣게 변했습니다. 그래서 “바나나를 먹어라. 다 썩는다. ”하고 말하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비싼 바나나인데, 어떻게 먹어요. 자랑을 해야지요. ” 바나나를 벗겨보니 전부 상했습니다.
그 때 큰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 아들이 바나나를 갖고서 기뻐하는 감격과 내가 구원받은 감격을 비교해 볼 때 내가 아들만큼 좋아했을까”
아들을 통해 내가 구원받은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된 나는 그 후부터 전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옆집에 사는 분이 서울의 모 대학의 교수였습니다. 하루는 금호동에서 심방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그 집에서 굿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흘 간의 굿이 끝난 후 전도하기 위해서 그 집으로 갔습니다. “나는 옆집에 사는 목사인데, 교수님 집에서 왜 굿을 합니까”하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교수가 복수가 차서 병원에서 고칠 수 없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이 남산에 있는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면 병이 낫는다고 해서 굿을 했습니다. ”
교수가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분은 눈을 하얗게 뜨고 어깨로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찬송가 465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4절을 계속해서 불렀습니다.
/내 몸의 약함을 하시는 주/
/못 고칠 질병이 아주 없네/
찬송을 부른 후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능력을 두었다가 무엇을 합니까 저 사람을 한 번만 고쳐주시면 전도를 얼마나 많이 하겠습니까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그리고 나서 그 분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그 교수 부인이 우리 집을 찾아와서 “목사님! 한 번만 더 와서 지난번에 부른 노래를 불러주세요”하고 부탁하였습니다.
우리 집사람과 함께 그 집으로 가서 지난번에 부른 찬송가를 두 시간 동안 부른 후 교수의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그 집에 심방을 갔더니 교수의 아내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이 오셔서 노래를 부르시고 기도해 주신 후부터 남편이 화장실을 잘 다니게 되었는데 배에서 복수가 빠졌습니다. ”
“예수 믿으세요. ”하고 전도하자 즉시 서점에 가서 찬송가와 성경을 샀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있는 미아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장로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의 말 한 마디가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둘째, 부모가 믿음의 생활을 기쁘게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사실 밤낮 교회가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때는 교회에 가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상하게도 자극을 주어서 교회에 빠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목사까지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기쁨을 잃어버리면 교회에 가기도 싫고 찬송을 부르기도 싫어집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주 안에서 기쁨을 갖고 사는 생활이 믿음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우리를 담당하신 전도사님의 간증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처녀 속장인 그 분은 총각 속장인 분을 만나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부모님은 교회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이 분은 시부모가 좋아하는 것은 해드리고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 번도 시부모에게 전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아버지가 좋아하는 술과 담배를 항상 사다 드렸습니다. 시아버지는 내 며느리 같은 효녀가 없다고 사람들에게 자랑했습니다.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장례를 치른 후, 며느리가 꿈을 꾸었습니다.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곳에서 시아버지가 며느리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버님! 왜 그러세요”하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희는 예수를 믿으면서 어쩌면 한 번도 나에게 전도를 하지 않았느냐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자리이다. 이것은 전부 너희 책임이다. ”
꿈을 깬 후, 시부모에게 불효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 시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던 중 다음과 같은 응답을 받았습니다.
“네 시아버지만 아버지인 줄 아느냐 지금도 네 시아버지처럼 예수를 믿지 않는 노인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그런 사람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해야 될 것이 아니냐”
이 이야기를 한 후, 전도할 때를 놓치면 후회하게 되고 후회를 하더라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은혜가 있는 가정,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는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질서 있는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가정은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간에 뒤죽박죽으로 살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가정에는 뼈대가 있고 정신이 있고 교훈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열 두 살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버님의 얼굴은 희미하게만 떠오릅니다. 그러나 아버님이 하신 말씀은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네 살 때 아버님이 나를 지게에 태우거나 업고 다니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아버님은 나에게 “사람이란 대기만성(大器晩成)해야 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초등학교 5학년때 그것이 큰 인물이 되려면 여러 가지 경험을 한 후 실수함이 없을 때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은 “대아(大我)를 위해서 소아(小我)를 죽여야 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초등학교 한문책에 나왔는데, 대아(大我), 곧 나를 크게 하려면 소아(小我), 곧 시시한 것은 전부 죽여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우리는 조그마한 욕심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이해관계에 너무나 얽혀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전부 버리고 주님을 따라가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큰아버님은 세 자녀가 있는 분과 재혼을 하셨습니다. 삼남매를 잘 양육하시고 자신의 재산을 전부 나누어주었습니다.
신학교 일 학년 때 봄방학이 되어서 집으로 내려가는 배를 탔는데 거기에 큰아버님이 계셨습니다.
“큰아버님, 어디 가세요”
“너희 집에 간다. ”
“왜 우리 집에 오세요”
“아들이 나를 쫓아내서 더 이상 집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조카 집으로 간다. ”
우리 어머니께서 굉장히 걱정을 하셨습니다. “그 많은 재산을 왜 남의 자식에게 다 주고 조카네 집에 오십니까”
그때 우리 큰형님이 하신 말씀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머님, 그냥 계시게 하세요. 우리 큰아버님이 복덩어리입니다. 그러니 박대하지 마세요. ”
큰형님과 형수는 큰아버님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노망이 들어서 이불에 불을 지르고, 변을 벽에 바르기도 했지만 한 번도 짜증을 부리지 않고 큰아버님을 잘 보살폈습니다.
큰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자, 우리 큰형님은 예언자적인 말씀을 했습니다. “큰아버님을 쫓아낸 집은 잘 될 리가 없고 복되신 큰아버님을 모신 우리 집은 잘될 것이다. ”
십년이 못 되어서 큰아버님을 쫓아낸 집은 한 사람이 불가마에 빠져 죽고 한 사람은 그물을 끌어올리다가 바다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살아온 우리 집은 목사가 다섯 명, 장로가 여섯 명이 나오는 복된 가정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집은 주님 뜻대로 사는 가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넷째,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식이 잘되면 “저게 누구 자식이냐”하고 칭찬을 하지만, 자식이 못되면 “저게 누구 자식이기에 저렇게 못되었느냐”하고 경멸을 합니다.
그러므로 자식이 감옥에 가서 사식을 갖다 주면서 언제 나오느냐 하면서 울고불고 하는 불행한 가정이 아니라 “자식을 참 잘 길렀다. ”하고 칭찬 받는 복 있는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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