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생활
본문
천하를 뒤흔드는 자라고 하는 별호(別號)를 받으면서 이르는 곳마다 눈부신 변화를 일으키는 바울 일행이 마게도냐의 주요 도시 데살로니가에서 핍박을 피해서 150리 가량 떨어진 베뢰아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베뢰아는 두 하천이 흘러 물이 풍성하다고 하는 뜻으로 그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나무가 무성합니다.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마게도냐 제 2의 산간 도시입니다. 그 베뢰아에 교회가 있었는데 사도행전 17장 10절 이하를 보면 성경을 날마다 상고하는 교회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후일 바울사 도께서 그가 다녀온 여러 교회에 서신을 내면서 혹은 견책하고 혹은 책망하기도 하고 권면하고 격려하기도 하고 칭찬하고 교훈하 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베뢰아 교회는 서신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 까닭은 당시에 허물 할 것이 없는 가장 훌륭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짐작이 갑니다.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이 바른 신앙입니다. 성경을 생활화할 때에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생활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 서 우리 기독교는 한마디로 성경의 종교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첫째로 베뢰아 교인들은 보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했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읽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나 자신의 죄를 발견하는 동시에 회개하게 되고 사죄와 변화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월레이스(Lew Wallace)는 기독교를 반대하고 부정하는 책을 쓰려고 성경을 샅샅이 읽다가 그리스도를 발견하고는 회개하고 쓴 책이 저 유명한 "벤허(Ben Hur)"라는 소설입니다. 영화로도 제작되어서 우리 나라에서도 상영이 되었는데 세계적으 로 감동을 끼치는 명작이 된 것입니다. 옛날 베뢰아 신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 송이 꿀보다 더 달게 여겼습니다.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또 굶주렸을 때 양식을 그 리워하는 것처럼 영의 양식으로 먹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세계적인 유명한 성경학자 리차드 박스터(Richard Baxter) 목사는 "나는 젊었을 때에는 주로 기적의 그 능력을 느끼기에 힘썼다. 장년기에 이르러서는 성취된 예언에 대한 말씀에 관심을 두 었다. 노경에 들어와서는 내 속에 복음의 말씀이 무르익는 것을 찾아보고 크게 만족함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개 인의 신앙도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였을 때에 무한한 성장이 있게 되고 발전이 있고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교회도 성경 을 중심으로 하여야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루즈벨트(F. Roosevelt)는 어느 때 연설하는 가운데, "….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물론이지만 일반 시 민으로서도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 성경을 읽음으로써 곧 나를 이기고, 크거나 작거나 간에 각자에게 알맞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업 을 할 수가 있고, 이 세계를 보다 선하게 하는 일을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미국 사람들이 한층 더 성경책을 숙독하 기를 바란다….. "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옛날 베뢰아 신자들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그런 생활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둘 째로 베뢰아 교인들은 성경을 날마다 상고(祥考)했다고 했습니다.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이 임종 시에 머리맡에 있는 젊은이에게 "젊은이여 이제 생전에 다소나마 세상에 알려진 사람 의 마지막 말을 귀담아 들어 두기를 바란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다만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으라고 하는 말 뿐일세…. " 그렇게 말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크게 잘못하는 일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중요성은 누구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으면서, 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밖에는 없다고 믿으면서도 그 말씀을 봉독하는 실천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 을 들고만 다닐 뿐, 봉독하지 아니하는 것은 성경을 생활화하지 아니하는 위험한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도리어 무익한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또 간혹 어떤 신자는 성경을 통하지 아니하고 하루 아침에 일생에 미치는 영속적 능력을 얻으려고 하는 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조금 전에 이야기한 박스터 목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급한 사람아, 조용히 앉아서 욥과 교제하라. 완고한 사람아, 베드로와 모세의 기사를 자세히 읽으라. 유약한 사람아, 엘리야를 만나라. 마음의 노래가 없는 사람아, 다윗에게 들으라. 정치가가 된 사람아, 다니엘 서를 읽으라. 실망과 암흑에 빠진 사람아, 이사야서를 읽어 라. 마음이 차가 와진 사람아, 사랑의 사도를 가까이 하라. 신앙이 엷어진 자여, 바울을 주의해서 보라. 안일한 자리에 있는 자 여, 야고보 서를 잊지 말라. 장차 소망을 잃은 자여, 계시록에서 약속의 땅을 받도록 하라 !"고 말합니다. 우리가 역경과 시련을 당하였을 때 성경을 통해서 새로운 희망과 약속을 받게 됩니다. 슬플 때, 건강할 때, 병들었을 때, 가난 할 때, 풍부할 때 모든 경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유명한 인도주의자며 고아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던 죠지 뮬러(George Mueller)의 전기를 읽어보면 3개월마다 한 번씩 성경 전체 를 읽었다는 것이고 일생 동안에 200번이나 성경을 정독했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가 그에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힘이 어째서 이렇게 약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까 ?" 하고 물으니까, 뮬러가 대답하는 말이 "항상 성경을 읽지 아니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날마다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정독해 가면서 성경을 통하여 공급해 주시는 오천 명의 고 아를 길러 내고 교육시키는 그런 위대한 일을 했던 것을 우리는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철학자가 추구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성경은 근본적인 지혜를 주는 책입니다. 교육가의 간절한 소원은 위대한 인격 함양입니다. 성경은 가장 고상한 인격을 키워 내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정치가의 꿈은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세계의 평화입니다. 성경이야말 로 개인과 인간 서로 사이에 참 평안을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각 개 각 층 누구나 날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는 것이 생의 가장 귀중하고 바른 길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베뢰아 교회는 날마다 성경을 상고함으로 큰 은혜를 입은 교회입니다.
그들은 "신사적"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말로 신사적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만 헬라말로는 "유게네스 테로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선량하다, 진실하다, 선한 성질, 고상하다"는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성경 을 날마다 상고하는 데서 이런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상고하는 생활을 하면 우선 기쁨과 평안의 체험이 옵니다. 어떤 이는 조용한 기쁨과 평안으로 착실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어떤 이는 껑충껑충 뛸 정도로 기쁨이 폭발적으로 넘치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빛의 체험이 확실해집니다. 즉 영적인 눈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을 갑자기 모두 보게 됩니다. 바울은 이것을 "빛"이라고도 하고 "불"이라고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육의 일만 보던 눈이 영의 일을 보 게 됩니다. 개인의 일만 보던 사람이 남의 일도 보게 됩니다. 현세(現世)의 일만 보던 눈이 내세(來世)와 영원을 바라보게 됩니다. 물질만 보던 눈이 정신과 인격의 세계를 바라 보게 됩니다. 사람의 뜻만 보던 눈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또 명확하게 깨닫게 됩니다. 말하자면 영적 개안(開眼)이 되는 셈입니다. 동시에 지금까지 보여서 크게 걱정되던 것이 보이지 않게 되는 체험을 겸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간은 언제나 물질만 보았습니다. 삼손은 정욕적인 것만 눈에 보였습니다. 사울은 권세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상고하는 중에 은혜를 입게 되면 이것이 변화되어서 보아야 할 것을 보게 되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빛의 체험입니다. 신령한 영안이 열리는 것입니다. 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체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두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 도입니다. 전에 없었던 새로운 품격이 생겼습니다. 새로운 마음씨가 생겼습니다. 뜨거운 사랑이 생겨났습니다. 강한 책임감이 생 겨났습니다. 그리고 남보다 투철하게 사명 의식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이 폭발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환 경 속에서든지 확신이 넘치게 되고,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것을 "신사적"이라고 표현했는데, 말하자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신사"가 아니라 영적인 방면 에서 갖추어진 그런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온전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뢰아 신자들은 고상한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습 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까 그 신자가 날마다 많아졌습니다. 헬라 사람, 즉 이방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유대인도 많아졌습니다. 귀부인과 흑인까지, 말하자면 연합적인 교회 생활이 점점 이루어졌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된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는 점 점 더 힘을 가지고 더 많이 성장,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성경을 상고한다고 하는 이것은 명사(名詞)가 아니라 동사(動詞)입니다. 실제적으로 움직여 힘써 실천하는 생활에서 바 로 이런 결과가 오는 것입니다. 옛날 사울이 새로운 바울로 된 것처럼 놀라운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 모두가 다 제 2의 베뢰아 교인들이 되기르 바랍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간절히 욕구하고, 날마다 이 말씀을 상 고하는 실천이, 또 이 말씀으로 인해서 오는 축복 큰 변화된 능력의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지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베뢰아 교인들은 보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했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읽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나 자신의 죄를 발견하는 동시에 회개하게 되고 사죄와 변화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월레이스(Lew Wallace)는 기독교를 반대하고 부정하는 책을 쓰려고 성경을 샅샅이 읽다가 그리스도를 발견하고는 회개하고 쓴 책이 저 유명한 "벤허(Ben Hur)"라는 소설입니다. 영화로도 제작되어서 우리 나라에서도 상영이 되었는데 세계적으 로 감동을 끼치는 명작이 된 것입니다. 옛날 베뢰아 신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 송이 꿀보다 더 달게 여겼습니다.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또 굶주렸을 때 양식을 그 리워하는 것처럼 영의 양식으로 먹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세계적인 유명한 성경학자 리차드 박스터(Richard Baxter) 목사는 "나는 젊었을 때에는 주로 기적의 그 능력을 느끼기에 힘썼다. 장년기에 이르러서는 성취된 예언에 대한 말씀에 관심을 두 었다. 노경에 들어와서는 내 속에 복음의 말씀이 무르익는 것을 찾아보고 크게 만족함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개 인의 신앙도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였을 때에 무한한 성장이 있게 되고 발전이 있고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교회도 성경 을 중심으로 하여야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루즈벨트(F. Roosevelt)는 어느 때 연설하는 가운데, "….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물론이지만 일반 시 민으로서도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 성경을 읽음으로써 곧 나를 이기고, 크거나 작거나 간에 각자에게 알맞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업 을 할 수가 있고, 이 세계를 보다 선하게 하는 일을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미국 사람들이 한층 더 성경책을 숙독하 기를 바란다….. "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옛날 베뢰아 신자들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그런 생활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둘 째로 베뢰아 교인들은 성경을 날마다 상고(祥考)했다고 했습니다.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이 임종 시에 머리맡에 있는 젊은이에게 "젊은이여 이제 생전에 다소나마 세상에 알려진 사람 의 마지막 말을 귀담아 들어 두기를 바란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다만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으라고 하는 말 뿐일세…. " 그렇게 말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크게 잘못하는 일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중요성은 누구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으면서, 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밖에는 없다고 믿으면서도 그 말씀을 봉독하는 실천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 을 들고만 다닐 뿐, 봉독하지 아니하는 것은 성경을 생활화하지 아니하는 위험한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도리어 무익한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또 간혹 어떤 신자는 성경을 통하지 아니하고 하루 아침에 일생에 미치는 영속적 능력을 얻으려고 하는 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조금 전에 이야기한 박스터 목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급한 사람아, 조용히 앉아서 욥과 교제하라. 완고한 사람아, 베드로와 모세의 기사를 자세히 읽으라. 유약한 사람아, 엘리야를 만나라. 마음의 노래가 없는 사람아, 다윗에게 들으라. 정치가가 된 사람아, 다니엘 서를 읽으라. 실망과 암흑에 빠진 사람아, 이사야서를 읽어 라. 마음이 차가 와진 사람아, 사랑의 사도를 가까이 하라. 신앙이 엷어진 자여, 바울을 주의해서 보라. 안일한 자리에 있는 자 여, 야고보 서를 잊지 말라. 장차 소망을 잃은 자여, 계시록에서 약속의 땅을 받도록 하라 !"고 말합니다. 우리가 역경과 시련을 당하였을 때 성경을 통해서 새로운 희망과 약속을 받게 됩니다. 슬플 때, 건강할 때, 병들었을 때, 가난 할 때, 풍부할 때 모든 경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유명한 인도주의자며 고아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던 죠지 뮬러(George Mueller)의 전기를 읽어보면 3개월마다 한 번씩 성경 전체 를 읽었다는 것이고 일생 동안에 200번이나 성경을 정독했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가 그에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힘이 어째서 이렇게 약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까 ?" 하고 물으니까, 뮬러가 대답하는 말이 "항상 성경을 읽지 아니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날마다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정독해 가면서 성경을 통하여 공급해 주시는 오천 명의 고 아를 길러 내고 교육시키는 그런 위대한 일을 했던 것을 우리는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철학자가 추구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성경은 근본적인 지혜를 주는 책입니다. 교육가의 간절한 소원은 위대한 인격 함양입니다. 성경은 가장 고상한 인격을 키워 내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정치가의 꿈은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세계의 평화입니다. 성경이야말 로 개인과 인간 서로 사이에 참 평안을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각 개 각 층 누구나 날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는 것이 생의 가장 귀중하고 바른 길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베뢰아 교회는 날마다 성경을 상고함으로 큰 은혜를 입은 교회입니다.
그들은 "신사적"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말로 신사적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만 헬라말로는 "유게네스 테로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선량하다, 진실하다, 선한 성질, 고상하다"는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성경 을 날마다 상고하는 데서 이런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상고하는 생활을 하면 우선 기쁨과 평안의 체험이 옵니다. 어떤 이는 조용한 기쁨과 평안으로 착실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어떤 이는 껑충껑충 뛸 정도로 기쁨이 폭발적으로 넘치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빛의 체험이 확실해집니다. 즉 영적인 눈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을 갑자기 모두 보게 됩니다. 바울은 이것을 "빛"이라고도 하고 "불"이라고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육의 일만 보던 눈이 영의 일을 보 게 됩니다. 개인의 일만 보던 사람이 남의 일도 보게 됩니다. 현세(現世)의 일만 보던 눈이 내세(來世)와 영원을 바라보게 됩니다. 물질만 보던 눈이 정신과 인격의 세계를 바라 보게 됩니다. 사람의 뜻만 보던 눈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또 명확하게 깨닫게 됩니다. 말하자면 영적 개안(開眼)이 되는 셈입니다. 동시에 지금까지 보여서 크게 걱정되던 것이 보이지 않게 되는 체험을 겸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간은 언제나 물질만 보았습니다. 삼손은 정욕적인 것만 눈에 보였습니다. 사울은 권세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상고하는 중에 은혜를 입게 되면 이것이 변화되어서 보아야 할 것을 보게 되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빛의 체험입니다. 신령한 영안이 열리는 것입니다. 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체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두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 도입니다. 전에 없었던 새로운 품격이 생겼습니다. 새로운 마음씨가 생겼습니다. 뜨거운 사랑이 생겨났습니다. 강한 책임감이 생 겨났습니다. 그리고 남보다 투철하게 사명 의식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이 폭발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환 경 속에서든지 확신이 넘치게 되고,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것을 "신사적"이라고 표현했는데, 말하자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신사"가 아니라 영적인 방면 에서 갖추어진 그런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온전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뢰아 신자들은 고상한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습 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까 그 신자가 날마다 많아졌습니다. 헬라 사람, 즉 이방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유대인도 많아졌습니다. 귀부인과 흑인까지, 말하자면 연합적인 교회 생활이 점점 이루어졌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된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는 점 점 더 힘을 가지고 더 많이 성장,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성경을 상고한다고 하는 이것은 명사(名詞)가 아니라 동사(動詞)입니다. 실제적으로 움직여 힘써 실천하는 생활에서 바 로 이런 결과가 오는 것입니다. 옛날 사울이 새로운 바울로 된 것처럼 놀라운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 모두가 다 제 2의 베뢰아 교인들이 되기르 바랍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간절히 욕구하고, 날마다 이 말씀을 상 고하는 실천이, 또 이 말씀으로 인해서 오는 축복 큰 변화된 능력의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지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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