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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선포되는 말씀의 능력

본문

어느 날 예수님이 해변에서 말씀을 전하시게 되어 마침 베드로의 배가 물가에 있으므로 예수님은 그의 배를 사용하시기로 하고 뭍에서 조금 띄게 하시고 그곳에서 말씀을 증거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시고는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마침 베드로는 밤새워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돌아온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았습니다. 놀랍게도 밤새 한 마리도 안 잡히던 고기가 얼마나 많은지 그물이 찢어져 동무들을 불러 거두니 두 배가 만선이 되는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베드로는 너무도 놀라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베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부르심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칼 발트라는 신학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세 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1) 기록되어진 말씀입니다. 이것은 즉 성경말씀을 가리킵니다.
2) 선포되어지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종들을 통하여 전하여지는 설교 말씀입니다.
3) 성령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중에 우리는 매주일 선포되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선포되는 예수님의 말씀이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많은 고기를 잡게 하고 또한 어부 베드로를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는 결과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선포되는 말씀을 잘 영접 할 때에 본문의 베드로 같은 놀라운 역사를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선포되는 말씀의 능력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아침에 말씀을 증거 하고자 합니다. 얼마 전에 같은 본문으로 깊은 데로 가는 길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이 시간에는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은혜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 시간 베드로에게 선포된 말씀의 능력이 여러분에게도 똑같이 임하는 복을 받으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선포되는 말씀은 어떤 능력과 열매를 맺게 되겠습니까?
1. 말씀은 우리를 순종하는 성도로 만듭니다.
베드로는 배를 예수님께 빌려 드리고 해변에 앉아서 그분이 선포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하여 베드로의 마음속에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밤새 한 마리도 못 잡는 실패를 경험하고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고기 잡는 일에 전문가입니다. 거기다가 밤새 한 마리도 못 잡는 실패를 지금 경험하고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니 도저히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의 이유를 분명하게 예수님께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눅 5:5)
즉 자신의 경험으로는 도저히 고기가 잡히지 않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이 생겼으니 주님의 능력을 믿고 그물을 내리겠다는 귀한 고백입니다.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리면 도저히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명령이라도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교회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그리고 베드로처럼 믿음이 생기셔서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성임 집사라는 분이 예수 믿기 전에 병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치료를 해도 차도가 없고 원인을 모릅니다. 그래서 무당을 찾아갔더니 무당이 신이 내려서 그러니 신 내림 굿을 하고 무당이 되어야 병이 낫는다는 것입니다. 굿을 약속하고 집에 돌아와서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야 무당이 되면 그만이지만 자식들이 무당자식이 되는 것을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무당이 안 되는 길이 있으면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웃집에 예수 잘 믿는 집사님이 그 이야기를 듣고 찾아와서 교회에 나가면 병도 낫고 무당도 안 될 수 있으니 교회를 나가자고 합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형편에 있던 그녀는 교회에 따라 나갔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집사님과 함께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목사님이 자초지종을 들으시더니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자매님을 사랑하시는군요!” 하고는 “이제부터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면 됩니다” 하십니다. 그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지만 목사님의 말씀이 그렇게 마음에 용기를 주고 위로를 주더랍니다. 그래서 무당 집에 가서 굿을 안 하겠다고 하니까 무당이 그러면 몇 달 내에 귀신이 노하여 당신은 죽게 될 것이라고 협박을 하더랍니다. 죽음과 귀신에 대한 공포에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돌아와서 이웃집 집사님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니까 내일 새벽부터 나가서 기도하고 목사님의 기도를 받으면 된다고 합니다. 밤새 한잠도 못 자고 다음날 새벽기도를 나갔습니다. 그 새벽부터 주님만 의지하고 믿음의 길을 달려가 드디어 병 고침도 받고 무당이 되는 대신 교회의 집사님이 되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되어 지금까지 건강히 충성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교회 성도여러분 !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와 믿음을 가지시면 무당의 협박과 밤새 잠 못 자게 하는 사탄의 역사도 이기는 순종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귀를 가지셔서 믿음과 순종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많은 이들이 교회를 나오고 설교 말씀을 듣지만 순종할 줄 모르고 살아갑니다. 일마다 불평이고 비방이고 원망만 하면서 살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을 듣는 귀가 없어 그 말씀을 듣고 믿음이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믿음이 생기면 산을 옮기워 바다에 빠트리라는 우리 주님의 말씀에도 서슴없이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고기 잡는 전문가가 밤새 잡아도 실패한 일을, 그것도 오래 전이 아닌 지난밤에 경험한 것인데도 베드로가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고백처럼 말씀에 의지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아침 우리 모두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들을 귀를 가지는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말씀은 풍요로운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듣고 순종하니 상상도 못하는 고기를 잡았습니다. 어부의 평생소원은 만선을 이루도록 고기를 잡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바로 그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렸더니 얼마나 고기가 많이 잡혔던지 그물이 찢어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을 불러서 도움을 받아 고기를 건져보니 한배의 만선이 아니라 두 배가 만선이 되어 배가 고기의 무게로 가라앉아 뱃전에 바다 물이 찰랑거리게 되었습니다. 그 상황이 본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눅 5:6-7)
선포되는 말씀의 능력이 얼마나 우리들에게 풍요로움을 주고 있는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포되는 말씀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홍수가 나면 먹을 물이 가장 귀하듯이 말씀의 홍수 속에서도 우리는 언제나 빈약한 열매를 거두고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 말씀을 들을 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들을 귀를 가지라고 당부하고 계십니다.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고는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마13:9)하셨고 들을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11)하고 권면하고 계십니다.
데이브 비어만의 가정에서는 매주 성경을 한 구절씩 암송하기로 하였습니다. 열 살짜리 카라와 여섯 살짜리 다나, 두 딸이 부모보다 성경 암송을 더 잘했습니다. 어느 날 두 딸이 소리를 지르며 싸움이 붙었습니다. 서로 밉다고 싸우고 울고 있을 때 아버지인 비어만이 큰 딸을 불러 “이번 주 외운 성경구절이 무엇이지”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카라는 요한1서 4장 11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여호와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하고 줄줄 암송하며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방에 들어가 더 심하게 싸우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많은 설교의 말씀을 듣지만 이런 어린아이들 같은 생활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시간 여호와 하나님께 들을 귀를 달라고 기도하시고 그리고 듣고 행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런 우리들에게 베드로 같은 풍요로운 축복을 우리들에게 내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
지난 주간에 미국 해병대 소속 FA-18 호넷 전투기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고의 민가에 추락하여 일가족이 네명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민가가 한인 교포집이어서 우리를 놀라게 하고 슬프게 했습니다. 부인 이영미씨와 18개월 된 하은양 1개월 된 하영양 그리고 딸의 산후조리를 위해 한국에서 건너간 장모 이렇게 네 식구가 참사를 당했습니다. 지난 목요일 국민일보에 혼자 살아남은 남편 윤동윤씨의 기사가 났습니다. 그는 전투기 조종사가 최선을 다했고 나는 그를 용서하며 그는 미국의 보물이고 조종사가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기도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참고로 그 전투기 조종사는 추락직전 비상탈출을 해서 생명을 건졌습니다. 그는 살아남았고 자신의 가족은 몰살을 당했는데 그는 그런 조종사를 용서하고 감쌀 줄 아는 풍성한 사랑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저는 도대체 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풍성한 마음을 가졌는가 하고 놀라서 기사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사고당일 그는 오전 8시 30분 집에서 나올 때 가족들이 마중한 것이 마지막 상면이었다고 흰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분들과 우리 가족의 시신을 찾기 위해 애쓰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라고 감사도 잊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센디에고 한인감리교회에 신실한 일꾼이었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에 의하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는 말씀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는 감사를 잃지 않았고 용서를 잃지 않았으며 가장 어려울 때 가장 풍성한 마음을 가진 사람인 것을 저로 하여금 깨닫게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것만 풍성한 것이 아닙니다. 다 잃은 자리에서도 사랑의 마음, 용서의 마음,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바로 가장 풍성한 복을 받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말씀을 듣고 말씀을 받고 행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듣고 행하여 그 안에 거하십시오!
그래서 베드로 같은 풍족한 축복을 그리고 강동윤씨같은 마음의 풍성함을 소유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말씀은 자신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베드로가 풍족한 고기를 잡자 그는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은 고기 잡는 데는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같은 전문가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고기를 잡고 보니 자기는 너무도 부족했습니다. 너무도 무능한 어부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엎드려 부르짖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눅 5:8)
이제 베드로는 선포되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여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자신의 부족과 무능을 바로 바라보는 그 눈이 어부 베드로를 주님의 위대한 사역을 앞장서서 감당하는 사람을 낚는 으뜸 사도가 되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
선포되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 자신을 바라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의 눈은 남을 잘 바라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남의 얼굴, 외모, 생활 태도는 너무도 잘 볼 수 있지만 반면에 자신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만해지고 자신의 부끄러운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자신의 눈에는 들보가 있는데 형제의 눈의 티를 비방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들의 이 부족함을 아시고 말씀을 우리들에게 거울로 주셨습니다. 그러니 베드로처럼 말씀을 듣다가 자신의 부족을 바라보고 날마다 거듭나서 새롭게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경상도에서 목회할 때 어떤 목사님이 지방 목사님들에게 좋지 않는 평가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공부도 많이 하시고 목회도 열심히 하셔서 좋은 분 같은데 왜 사람들이 그분을 싫어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포항으 지방 교역자들이 여행가게 되었는데 관광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버스기사가 차를 몰고 가는 길이 잘못 됐다고 하면서 다른 길로 가면 더 빨리 가고 막히지도 않는데 이 길로 간다고 잔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한번 하는 게 아니고 도착할 때까지 계속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관광버스는 버스기사에게 운전을 맡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길로 갑니다. 목적지에 도착 못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에게 맡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승객의 마음에 안 맞는다고 한번 얘기 할 수야 있겠지만 이미 지나간 길을 잔소리한다면 피차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잘못 되었다고 한번이 아니고 계속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기사는 차지하고라도 옆에서 듣는 제가 다 짜증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때에야 왜 지방 교역자들이 그분을 별로 좋지 않게 이야기하는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이것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일도 이런 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본인은 자기가 무엇이든지 잘 알기 때문에 모든 일을 똑 부러지게 잘하고 모든 사람이 그런 자기를 존경하고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자신을 바라볼 줄 안다는 것이 참 귀한 축복임을 깨닫고 그분을 보며 삶의 거울로 나를 바라보라고 말씀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어느 날 궁전 옥상을 거닐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큰 바벨론 성은 영광과 위엄을 과시하기 위하여 내가 내 능력과 권세로 건설한 이 나라의 수도가 아닌가?” 바로 그때 하늘에서 이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느부갓네살아 네 교만으로 인해 네 왕권이 네게서 떠났다 너는 인간사회에서 쫓겨나 칠년 동안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다. 그러면 너는 가장 높으신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누구에게든지 그가 원하는 자에게 나라를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 말은 즉시 이루어져 느부갓네살은 정신이 돌아 인간 사회에서 쫓겨나 칠년 동안 짐승처럼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칠년이 되는 해에 그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겸손해 졌을 때 정신이 되돌아왔고 그는 다시 왕위에 앉아 이전보다 더 큰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보는 귀와 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베드로처럼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고 두 배에 만선을 이루는 풍요의 축복을 맛보시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셔서 여호와 하나님께 사랑 받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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