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부모공경
본문
서울의 중앙청 뒤쪽에 효자동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이곳이 효자동이라고 불려지게 된 유래가 있습니다.
어느 집에 시아버지가 그만 실수로 이불 밑에서 잠자고 있던 손자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깔고 앉았는지 아니면 모르고 밟았는지는 몰라도 그만 실수로 손자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며느리가 알게 되었습니다. 어쩔줄을 몰라 순간적으로 죽은 애기를 업고 밭에서 일하고 있는 자기남편에게 냅다 달려갔습니다. 남편에게 상황을 설명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이 남편이 등에 죽어 있는 이 아들에게 "이 불효자식, 지 할아버지 마음을 괴롭힌 이 나쁜자식"하면서 뺨을 한 대 후려쳤는데 그 뺨을 맞고 죽었던 아들이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소문이 퍼져서 그 동네를 효자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연로하신 할아버지가 아무리 손자를 실수로 죽였다고손 치더라도 그 할아버지의 남은 여생은 마음의 멍에와 가족을 향한 면목없는 눈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았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쨋든, 죽은 어린 것을 생각하면 그 애비의 비통한 마음이야 말로다 할 수 없었겠지만 늙으신 아버지를 생각해서 쉬쉬하면서 죽은 자식을 때렸다고 하는 것은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도전이 되고도 충분한 남음이 있습니다.
국어학자로 유명한 이숭녕 박사는 그의 수필 '도봉산 비극'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워낙 유명하신 교수님이자 학자이기 때문에 제자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의 결혼주례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나 젊은이들에게 주례를 승낙하기 전에 당사자들을 불러놓고 꼭 한가지 약속을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젊어서 부모에게 불효한 자는 늙어서 자녀에게 반드시 버림을 받게 된다네. 부모를 내몰라라 내팽개친다면 훗날 자네들은 부모의 경우보다 몇배의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야.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나하고 약속할 수 있겠나"
이 다짐을 받은 뒤에야 결혼주례를 승낙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동물들도 제 새끼는 사랑합니다. 동물의 세계에도 분명 사랑이 있습니다. 이성애도 있고 모성애도 있습니다. 그러나 새끼가 어느정도 성장하면 아무상관이 없는 것처럼 어미는 새끼를 멀리합니다. 그것은 무슨 독립심이나 자림심을 키워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동물의 속성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새끼들도 새끼때에는 줄곧 어미를 잘 따라 다니지만 크면 제 어미도 몰라봅니다.
새끼들이 자라서 저를 낳아준 어미에 대해서 신경쓰고 공경하는 모습을 보았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데는 끝이 없습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부모는 열자식 거들어도 열자식 한부모 못거둔다" 부모사랑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다음으로 위대한 사랑입니다.
성경은 효에 대해서 힘주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십계명 가운데 4계명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나머지 6계명은 사람과의 관계 곧 인간관계에서의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가 누구입니까 부부는 0촌입니다. 촌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까울 때는 가장 가까운 것이 사실이지만 또 등을 돌리면 아무런 관계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 부부인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은 피를 나눈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입니다.
이 피는 뗄래야 뗄 수도 없고 지울래야 지울 수도 없습니다. 1촌관계가 가장 가까운 관계입니다. 이것은 그 누가 뭐라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라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0촌은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0이라고 하는 것은 무를 의미합니다. 가장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현상황으로서는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관계설정이 없습니다.
피가 섞이지 않는 이상 아무리 가까와도 이해타산이 맞지 않으면 등돌리면 끝나는 것이지만 피가 섞여있는 이상, 그것도 1차적으로 피를 나눈 관계야말로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요 그것이 바로 부모와 자식이라고 하는 관계 아니겠습니까 다음이 2차, 3차,4차 곧 형제간의 2촌 3촌, 4촌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인간관계 계명 가운데 제일
첫번째가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계명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를 나타내고 있는 계시이자 명령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공경해야 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6가지 계명은 그 순서가 죄의 비중에 의해 배열되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 사람을 죽이는 이상의 큰 죄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피는 피를 불러 오기 때문에, 생명은 생명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인죄는 최하 무기징역 아니면 사형이지 않습니까
그 다음이 '간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음란과 방탕함은 반드시 또 그 열매가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AIDS가 바로 그러한 열매인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음란한 행위와 행동을 함으로 인류는 스스로 저주를 불러 드린 것입니다.
간음은 사회윤리기강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맙니다. 가정의 귀함이 사라지고 맙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뭉게버리는 완전한,그야말로 마귀의 역사인 것입니다.
TV에서 조차 소위 인기라는 마귀의 덫에 걸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감히 주제를 삼지 못했던, 가정을 가지고 있는 남녀의 불륜관계를 공중파를 통해서 버젓이 내보내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사람의 심리를 자극해야 히트를 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밑바다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그래서 소위 심리학적인 용어로 '대리만족'을 채움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가정에서 자녀와 무슨 TV드라마 하나 보기가 겁이 납니다. 그런 드라마를 본 자녀의 머리 속에는 어떠한 가치관이 형성 되겠습니까 "아! 저래도 되는가 보구나!"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자란 자녀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이 사회는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뻔한 미래가 아니겠습니까
오늘 이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렇게,저렇게 음으로 양으로 우리 사회의 가치관 형성이 이렇게 흘러왔기 때문에 맺어진 결과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단순한 기우에 불과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오늘 사탄은 문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사람들의 심령 깊숙이 잠재의식 가운데 둥지를 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가정이 깨집니다. 이것은 사람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깨지는 소리인 것입니다. 그 자녀들 역시 상처를 안고 출발하기 때문에 또 그러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점조직처럼 마귀는 자꾸만 여호와 하나님이 축복하여 세우신 가정을 깨버리고 사람을 깨버리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도둑질하지 말라"거짓말하지 말라' 그리고 마지막이 '탐내지 말라'입니다.
죄의 삯에 대한 비중에 따라 배열된 것이 인간계명입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기실 때 가장 무서운 죄가 바로 불효하는 것입니다. 제 나은 부모도 모르는 놈이 생명을 가지고 산들 무슨 인간의 생명이냐하는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죄이면서 가장 큰 축복이 약속되어 있는 유일한 계명이 바로 "부모공경"계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불효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벌을 피할 수 없는, 생명으로도 여기지 않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다면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효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효입니다.
이 말씀은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 효입니다.
부모님께 순종하여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라고 하니까 시어머니가 절에 가서 공야하자고 하니까 가 주는 것이 효가 아닙니다. 사어머니가 점치러 가자하니까 같이 가주는 것이 어머니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는 것이라하여 가주는 것이 효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효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저주를 불러 오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순종한다고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죄되지 않은 것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려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집사님의 시아버지는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살고 계신다고 합니다. 이 시아버지만 교회를 출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전도를 해도 들은 척도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갔다오면서 꼭 할아버지 집에 들려서 인사를 하고 가라고 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얼른 생각하실 때는 그것이 뭐 그리 힘든 것이냐고 하실 지 모르지만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바로 집에 가고 싶은데 그러지를 못합니다. 혹시 예배 드리고 난 다음 무슨 일을 보고 난 다음 아무리 피곤해도 꼭 할아버지 집에 들려서 잠깐 눈도장이라도 찍어야 된다고 합니다. 무슨 일도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사람을 피곤하게 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을 아들들도 싫어한다고 합니다. 같이 있으면 좋은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꼭 부담을 줍니다. 또 다른 자식들과 비교합니다. 감정을 격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잔소리를 많이 하시니 자식들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하고 대화만 나누면 끝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꼭 불편한 마음으로 자리를 일어서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조금은 괴퍅한 성격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도 한 두번이지 매번마다 이런다는 것은 보통 머리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손자 손녀들도 할아버지를 싫어합니다. 할아버지 집에서 나올때는 "이것이 뭐야!꼭 이렇게 해야하나"하는 생각만 난다고 합니다. 그 아들들도 싫어서 어쩔줄을 모릅니다.
어렵습니다.
결론은 그럼에도 성경적인결론은 편안하게 해 드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조금 희생해서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려야 합니다. 노인분이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습니까 할머니로부터 손자손녀에 이르기까지 다 교회를 가버리니 이 노인분이 심심해 버린 것입니다. 소외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귀찮을 정도로 다그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조금만 이해할려고 하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조금만 마음을 열면 더 그럴수록 가까이 가야 합니다. 할어버지의 영혼이 달려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구원받지 못한 영혼! 어린아이와 같은 약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이 부모님의 마음을 그렇게 못읽으면 정말 구원이 필요하신 할아버지의 영혼은 멀어지고 말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가족에게 있습니다.
무엇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할머니는 이런 할아버지와 평생을 살아오셨습니다. 이 할아버지도 할머니 같은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할머니를 칭찬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옛말에 "천하에 자식에게는 옳지않은 부모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도둑도 자기 자식에게는 도둑질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느 심리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가 최고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부모밖에 없는 줄 안다. 그래서 부모를 전폭적으로 신뢰한다.
20대가 되면 부모를 무시한다. 그것은 부모의 지식과 교육을 무시하는 것이다.
30대가 되면 우리 부모님의 생각이 맞는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고
40대가 되면 부모님의 말씀이 틀린 것이 없구나 하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50대가 되면서 부모님의 말씀은 다 맞는구나 하고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부모를 인정하는 순간이 자식에게 무시당하는 시간이다. "
그렇습니다. 비록 학문적인 지식이 좀 부족하고 과학적인 지식이 좀 부족해도 우리 부모님들의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돈으로는 값주고 살 수 없는, 학교에 앉아서는 배울 수 없는 인생경험에서 나온 교육인 것입니다. 그 교육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부모님의 자녀에 대한 교육은 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이 교육은 그 결과가 언제나 좋은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사보다 순종하는 것을 최고로 기뻐하시듯이 우리 부모님들도 자식들이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효도는 순종으로 해야 합니다. 똑똑한 자식, 돈 발버는 자식,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자식은 다른 사람 앞에서는 자랑거리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부모를 무시하고 부모에게 불순종한다면 그 자식을 부모의 마음에는 기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포도원 비유가 있습니다.
과수원지기에게 큰 아들과 둘째아들이 있습니다. 하루는 두 아들을 불러서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시킵니다.
큰 아들은 "예'하고 대답을 하지만 끝내 포도원에 콧배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둘째 아들은 "나는 오늘 선약이 있어서 아버지, 곤란합니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 이 포도원지기가 나가보니 큰소리 친 큰 아들의 모습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데 아 둘째 아들은 비지땀을 흘리면서 가지치기 작업을 열심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포도원지기의 기쁨이 두배가 되었다고 하는 비유입니다. "누가 그 아비의 말을 들었느냐"고 주님께서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부모님 말씀이, 또는 부모님의 요구가 억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죄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순종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효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복이 있습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죠지 워싱톤은 일찌기 해군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해군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당연히 의견충돌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끝내 죠지는 어머니 모르게 해병대에 입대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배를 타기 위해서 집을 나갈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작별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묻습니다. "네가 정말로 꼭 해군이 되기 원하니"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 순간 죠지가 "어머니! 제가 해군이 되는 것이 그렇게도 싫습니까" "나는 네가 해군이 되는 것을 지금 이 순간에도 원치 않는다. "
이때 죠지는 결단을 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포기의 결단'이었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는 죠지를 껴안고 이렇게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에게 복주겠노라 약속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이 아들에게 복을 주시되 머리되는 복을 주옵소서"
죠지는 미국의 초대대통령이 됨으로써 미국의 머리가 된 것입니다.
둘째로, 효도는 물질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들의 마음에는 뭔지 몰라도 허전한 마음이 있습니다. 노인이 되고 나서 지나간 인생을 돌이켜 보고 인생에 대한 허무를 느끼는 가운데 "인생 이렇게 살다가 끝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빈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식낳고 키우고 근근히 살아가는데 세월을 다 보내신 분들이 우리네 부모님이십니다. 자식낳고 키우느라 온통 인생을 다 보내신 분들입니다.
때때로 손자,손녀에게 선심을 쓰고 싶을 때가 있고 옛날에는 보지 못했고 잡수지 못햇던 것들도 이제는 드시고 싶습니다. 밖에 나가 구경하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젊었을 때 자식 키우고 교육시키고 결혼시키고 하다보니 사실 우리 부모님들은 마음도 몸도 텅 비어 있는 것입니다.
자식은 돈을 헤프게 써도 부모님들은 돈을 고약처럼 쓰십니다. 상처받은 여인에게는 과거를 묻지말라는 말이 있듯이 부모님께 용돈을 드린 이상에는 어디에 썼느냐고 물어서도 안됩니다. 그냥 드리는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간에 마음은 원이로되 형편이 열악하여 드리지 못하는 성도님들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겠노라 물질축복을 위해서 애통하는 기도를 하는 이상,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분명 빠르게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또한 주의해야 하는 것은 이것이 물질축복을 받기 위한 하나의 주문처럼 도구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속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속여도 여호와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하시면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 분명 물질의 축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런 경우는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이 변하지 않고 순수하게 진실된 마음으로 부모공경의 물질을 구하시면 채우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넘치도록 채워주십니다. 능치못함이 없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만 하십쇼.
작은 용돈이지만 우리 부모님들은 만져만 봐도 기뻐하십니다. 부모사랑의 마음을 담아 드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는 효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효는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효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된 저와 여러분만이 할 수 있는 효입니다.
불신 부모님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가장 큰 효입니다. 세상의 보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드려서 천국 삶을 살게 해 드리는 이상 더 큰 효가 없습니다.
단칸 세방에서 어렵게 사는 부모님을 아파트를 사드려서 부모님들의 자리를 편안하게 살펴드린다고 생각해 보십쇼. 얼마나 효자입니까 소문이 납니다.
그런데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늘나라 맨션을 준비해 드리는 이상에 효가 어디있습니까 불신 부모님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어느날 여호와 하나님이 부르실 때 여호와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는 부모님이 될 수 있도록 믿음으로 기도하고 실제적으로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인만이 할 수 있는 특권적인 효입니다.
이미 고인이 되셔서 복음전도의 기회를 놓친 경우야 어쩔수 없는 것이지만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께서 지옥에서 고통 가운데 허덕이면서 신음가운데 처해 있을 것을 생각만 해도 끔직하지 않습니까
영육간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하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효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장 큰 대인계명이자 여호와 하나님의 복이 약속되어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계명입니다.
순종으로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좀 희생하시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질로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효도하셔서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아래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림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집에 시아버지가 그만 실수로 이불 밑에서 잠자고 있던 손자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깔고 앉았는지 아니면 모르고 밟았는지는 몰라도 그만 실수로 손자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며느리가 알게 되었습니다. 어쩔줄을 몰라 순간적으로 죽은 애기를 업고 밭에서 일하고 있는 자기남편에게 냅다 달려갔습니다. 남편에게 상황을 설명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이 남편이 등에 죽어 있는 이 아들에게 "이 불효자식, 지 할아버지 마음을 괴롭힌 이 나쁜자식"하면서 뺨을 한 대 후려쳤는데 그 뺨을 맞고 죽었던 아들이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소문이 퍼져서 그 동네를 효자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연로하신 할아버지가 아무리 손자를 실수로 죽였다고손 치더라도 그 할아버지의 남은 여생은 마음의 멍에와 가족을 향한 면목없는 눈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았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쨋든, 죽은 어린 것을 생각하면 그 애비의 비통한 마음이야 말로다 할 수 없었겠지만 늙으신 아버지를 생각해서 쉬쉬하면서 죽은 자식을 때렸다고 하는 것은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도전이 되고도 충분한 남음이 있습니다.
국어학자로 유명한 이숭녕 박사는 그의 수필 '도봉산 비극'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워낙 유명하신 교수님이자 학자이기 때문에 제자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의 결혼주례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나 젊은이들에게 주례를 승낙하기 전에 당사자들을 불러놓고 꼭 한가지 약속을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젊어서 부모에게 불효한 자는 늙어서 자녀에게 반드시 버림을 받게 된다네. 부모를 내몰라라 내팽개친다면 훗날 자네들은 부모의 경우보다 몇배의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야.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나하고 약속할 수 있겠나"
이 다짐을 받은 뒤에야 결혼주례를 승낙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동물들도 제 새끼는 사랑합니다. 동물의 세계에도 분명 사랑이 있습니다. 이성애도 있고 모성애도 있습니다. 그러나 새끼가 어느정도 성장하면 아무상관이 없는 것처럼 어미는 새끼를 멀리합니다. 그것은 무슨 독립심이나 자림심을 키워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동물의 속성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새끼들도 새끼때에는 줄곧 어미를 잘 따라 다니지만 크면 제 어미도 몰라봅니다.
새끼들이 자라서 저를 낳아준 어미에 대해서 신경쓰고 공경하는 모습을 보았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데는 끝이 없습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부모는 열자식 거들어도 열자식 한부모 못거둔다" 부모사랑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다음으로 위대한 사랑입니다.
성경은 효에 대해서 힘주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십계명 가운데 4계명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나머지 6계명은 사람과의 관계 곧 인간관계에서의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가 누구입니까 부부는 0촌입니다. 촌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까울 때는 가장 가까운 것이 사실이지만 또 등을 돌리면 아무런 관계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 부부인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은 피를 나눈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입니다.
이 피는 뗄래야 뗄 수도 없고 지울래야 지울 수도 없습니다. 1촌관계가 가장 가까운 관계입니다. 이것은 그 누가 뭐라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라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0촌은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0이라고 하는 것은 무를 의미합니다. 가장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현상황으로서는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관계설정이 없습니다.
피가 섞이지 않는 이상 아무리 가까와도 이해타산이 맞지 않으면 등돌리면 끝나는 것이지만 피가 섞여있는 이상, 그것도 1차적으로 피를 나눈 관계야말로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요 그것이 바로 부모와 자식이라고 하는 관계 아니겠습니까 다음이 2차, 3차,4차 곧 형제간의 2촌 3촌, 4촌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인간관계 계명 가운데 제일
첫번째가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계명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를 나타내고 있는 계시이자 명령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공경해야 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6가지 계명은 그 순서가 죄의 비중에 의해 배열되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 사람을 죽이는 이상의 큰 죄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피는 피를 불러 오기 때문에, 생명은 생명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인죄는 최하 무기징역 아니면 사형이지 않습니까
그 다음이 '간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음란과 방탕함은 반드시 또 그 열매가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AIDS가 바로 그러한 열매인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음란한 행위와 행동을 함으로 인류는 스스로 저주를 불러 드린 것입니다.
간음은 사회윤리기강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맙니다. 가정의 귀함이 사라지고 맙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뭉게버리는 완전한,그야말로 마귀의 역사인 것입니다.
TV에서 조차 소위 인기라는 마귀의 덫에 걸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감히 주제를 삼지 못했던, 가정을 가지고 있는 남녀의 불륜관계를 공중파를 통해서 버젓이 내보내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사람의 심리를 자극해야 히트를 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밑바다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그래서 소위 심리학적인 용어로 '대리만족'을 채움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가정에서 자녀와 무슨 TV드라마 하나 보기가 겁이 납니다. 그런 드라마를 본 자녀의 머리 속에는 어떠한 가치관이 형성 되겠습니까 "아! 저래도 되는가 보구나!"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자란 자녀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이 사회는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뻔한 미래가 아니겠습니까
오늘 이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렇게,저렇게 음으로 양으로 우리 사회의 가치관 형성이 이렇게 흘러왔기 때문에 맺어진 결과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단순한 기우에 불과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오늘 사탄은 문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사람들의 심령 깊숙이 잠재의식 가운데 둥지를 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가정이 깨집니다. 이것은 사람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깨지는 소리인 것입니다. 그 자녀들 역시 상처를 안고 출발하기 때문에 또 그러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점조직처럼 마귀는 자꾸만 여호와 하나님이 축복하여 세우신 가정을 깨버리고 사람을 깨버리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도둑질하지 말라"거짓말하지 말라' 그리고 마지막이 '탐내지 말라'입니다.
죄의 삯에 대한 비중에 따라 배열된 것이 인간계명입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기실 때 가장 무서운 죄가 바로 불효하는 것입니다. 제 나은 부모도 모르는 놈이 생명을 가지고 산들 무슨 인간의 생명이냐하는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죄이면서 가장 큰 축복이 약속되어 있는 유일한 계명이 바로 "부모공경"계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불효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벌을 피할 수 없는, 생명으로도 여기지 않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다면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효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효입니다.
이 말씀은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 효입니다.
부모님께 순종하여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라고 하니까 시어머니가 절에 가서 공야하자고 하니까 가 주는 것이 효가 아닙니다. 사어머니가 점치러 가자하니까 같이 가주는 것이 어머니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는 것이라하여 가주는 것이 효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효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저주를 불러 오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순종한다고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죄되지 않은 것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려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집사님의 시아버지는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살고 계신다고 합니다. 이 시아버지만 교회를 출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전도를 해도 들은 척도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갔다오면서 꼭 할아버지 집에 들려서 인사를 하고 가라고 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얼른 생각하실 때는 그것이 뭐 그리 힘든 것이냐고 하실 지 모르지만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바로 집에 가고 싶은데 그러지를 못합니다. 혹시 예배 드리고 난 다음 무슨 일을 보고 난 다음 아무리 피곤해도 꼭 할아버지 집에 들려서 잠깐 눈도장이라도 찍어야 된다고 합니다. 무슨 일도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사람을 피곤하게 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을 아들들도 싫어한다고 합니다. 같이 있으면 좋은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꼭 부담을 줍니다. 또 다른 자식들과 비교합니다. 감정을 격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잔소리를 많이 하시니 자식들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하고 대화만 나누면 끝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꼭 불편한 마음으로 자리를 일어서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조금은 괴퍅한 성격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도 한 두번이지 매번마다 이런다는 것은 보통 머리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손자 손녀들도 할아버지를 싫어합니다. 할아버지 집에서 나올때는 "이것이 뭐야!꼭 이렇게 해야하나"하는 생각만 난다고 합니다. 그 아들들도 싫어서 어쩔줄을 모릅니다.
어렵습니다.
결론은 그럼에도 성경적인결론은 편안하게 해 드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조금 희생해서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려야 합니다. 노인분이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습니까 할머니로부터 손자손녀에 이르기까지 다 교회를 가버리니 이 노인분이 심심해 버린 것입니다. 소외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귀찮을 정도로 다그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조금만 이해할려고 하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조금만 마음을 열면 더 그럴수록 가까이 가야 합니다. 할어버지의 영혼이 달려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구원받지 못한 영혼! 어린아이와 같은 약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이 부모님의 마음을 그렇게 못읽으면 정말 구원이 필요하신 할아버지의 영혼은 멀어지고 말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가족에게 있습니다.
무엇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할머니는 이런 할아버지와 평생을 살아오셨습니다. 이 할아버지도 할머니 같은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할머니를 칭찬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옛말에 "천하에 자식에게는 옳지않은 부모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도둑도 자기 자식에게는 도둑질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느 심리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가 최고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부모밖에 없는 줄 안다. 그래서 부모를 전폭적으로 신뢰한다.
20대가 되면 부모를 무시한다. 그것은 부모의 지식과 교육을 무시하는 것이다.
30대가 되면 우리 부모님의 생각이 맞는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고
40대가 되면 부모님의 말씀이 틀린 것이 없구나 하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50대가 되면서 부모님의 말씀은 다 맞는구나 하고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부모를 인정하는 순간이 자식에게 무시당하는 시간이다. "
그렇습니다. 비록 학문적인 지식이 좀 부족하고 과학적인 지식이 좀 부족해도 우리 부모님들의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돈으로는 값주고 살 수 없는, 학교에 앉아서는 배울 수 없는 인생경험에서 나온 교육인 것입니다. 그 교육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부모님의 자녀에 대한 교육은 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이 교육은 그 결과가 언제나 좋은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사보다 순종하는 것을 최고로 기뻐하시듯이 우리 부모님들도 자식들이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효도는 순종으로 해야 합니다. 똑똑한 자식, 돈 발버는 자식,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자식은 다른 사람 앞에서는 자랑거리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부모를 무시하고 부모에게 불순종한다면 그 자식을 부모의 마음에는 기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포도원 비유가 있습니다.
과수원지기에게 큰 아들과 둘째아들이 있습니다. 하루는 두 아들을 불러서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시킵니다.
큰 아들은 "예'하고 대답을 하지만 끝내 포도원에 콧배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둘째 아들은 "나는 오늘 선약이 있어서 아버지, 곤란합니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 이 포도원지기가 나가보니 큰소리 친 큰 아들의 모습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데 아 둘째 아들은 비지땀을 흘리면서 가지치기 작업을 열심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포도원지기의 기쁨이 두배가 되었다고 하는 비유입니다. "누가 그 아비의 말을 들었느냐"고 주님께서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부모님 말씀이, 또는 부모님의 요구가 억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죄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순종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효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복이 있습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죠지 워싱톤은 일찌기 해군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해군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당연히 의견충돌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끝내 죠지는 어머니 모르게 해병대에 입대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배를 타기 위해서 집을 나갈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작별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묻습니다. "네가 정말로 꼭 해군이 되기 원하니"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 순간 죠지가 "어머니! 제가 해군이 되는 것이 그렇게도 싫습니까" "나는 네가 해군이 되는 것을 지금 이 순간에도 원치 않는다. "
이때 죠지는 결단을 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포기의 결단'이었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는 죠지를 껴안고 이렇게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에게 복주겠노라 약속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이 아들에게 복을 주시되 머리되는 복을 주옵소서"
죠지는 미국의 초대대통령이 됨으로써 미국의 머리가 된 것입니다.
둘째로, 효도는 물질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들의 마음에는 뭔지 몰라도 허전한 마음이 있습니다. 노인이 되고 나서 지나간 인생을 돌이켜 보고 인생에 대한 허무를 느끼는 가운데 "인생 이렇게 살다가 끝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빈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식낳고 키우고 근근히 살아가는데 세월을 다 보내신 분들이 우리네 부모님이십니다. 자식낳고 키우느라 온통 인생을 다 보내신 분들입니다.
때때로 손자,손녀에게 선심을 쓰고 싶을 때가 있고 옛날에는 보지 못했고 잡수지 못햇던 것들도 이제는 드시고 싶습니다. 밖에 나가 구경하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젊었을 때 자식 키우고 교육시키고 결혼시키고 하다보니 사실 우리 부모님들은 마음도 몸도 텅 비어 있는 것입니다.
자식은 돈을 헤프게 써도 부모님들은 돈을 고약처럼 쓰십니다. 상처받은 여인에게는 과거를 묻지말라는 말이 있듯이 부모님께 용돈을 드린 이상에는 어디에 썼느냐고 물어서도 안됩니다. 그냥 드리는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간에 마음은 원이로되 형편이 열악하여 드리지 못하는 성도님들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겠노라 물질축복을 위해서 애통하는 기도를 하는 이상,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분명 빠르게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또한 주의해야 하는 것은 이것이 물질축복을 받기 위한 하나의 주문처럼 도구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속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속여도 여호와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하시면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 분명 물질의 축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런 경우는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이 변하지 않고 순수하게 진실된 마음으로 부모공경의 물질을 구하시면 채우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넘치도록 채워주십니다. 능치못함이 없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만 하십쇼.
작은 용돈이지만 우리 부모님들은 만져만 봐도 기뻐하십니다. 부모사랑의 마음을 담아 드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는 효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효는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효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된 저와 여러분만이 할 수 있는 효입니다.
불신 부모님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가장 큰 효입니다. 세상의 보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드려서 천국 삶을 살게 해 드리는 이상 더 큰 효가 없습니다.
단칸 세방에서 어렵게 사는 부모님을 아파트를 사드려서 부모님들의 자리를 편안하게 살펴드린다고 생각해 보십쇼. 얼마나 효자입니까 소문이 납니다.
그런데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늘나라 맨션을 준비해 드리는 이상에 효가 어디있습니까 불신 부모님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어느날 여호와 하나님이 부르실 때 여호와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는 부모님이 될 수 있도록 믿음으로 기도하고 실제적으로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인만이 할 수 있는 특권적인 효입니다.
이미 고인이 되셔서 복음전도의 기회를 놓친 경우야 어쩔수 없는 것이지만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께서 지옥에서 고통 가운데 허덕이면서 신음가운데 처해 있을 것을 생각만 해도 끔직하지 않습니까
영육간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하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효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장 큰 대인계명이자 여호와 하나님의 복이 약속되어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계명입니다.
순종으로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좀 희생하시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질로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효도하셔서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아래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림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