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본문
우리 모두는 나이가 어릴 적에는 자녀였지만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면서 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자녀이면서도 부모로서의 위치에 있고, 아직 나아가 어린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부모의 위치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버이 주일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고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매우 의미 깊은 주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이렇게 복되고 귀한 주일에 아버지 어머니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새기며, 주 안에서 더욱 순종하고 공경하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노래 가사에도 있습니다만,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은 그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손 발이 다 닿도록 고생하시므로 우리 우리들을 기르셨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기르는 일은 그 무엇보다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어린아이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노동을 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힘이 들고 어렵습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은 물론, 가슴을 조이고 애가 타는 순간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릅니다. 부모들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과정 과정들을 거쳐서 자녀들을 성인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여기까지 있기까지는 부모님의 희생과 그만한 대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경제적인 면만 해도 그렇습니다. 한 어린이가 성년이 되기까지는 억대가 넘는 돈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아이를 갖기로 결심할 때부터 부모는 이미 자신들의 희생을 각오한 것입니다.
만약 내가 없었더라면 부모님이 그때 그 순간 얼마나 편안하셨겠습니까... 아무런 이유없이 한 밤중에 칭얼거리고 우는 바람에 피곤하고 졸려 죽겠는데, 이웃사람 다 깨울까봐 들춰 업고 어두운 골목길을 서성일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저도 어릴 적에 어지간이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별 이유도 없이 울었어요.... 그때마다 어머니는 포대기로 나를 업으시고 동네 골목길을 서성이셨습니다. 한참을 서성이다가 잠이 들었는가 싶어서 내려 놓으시면 나는 또 울었습니다. 깜짝 놀라 다시 얼른 업고 서성이다가 온 밤을 지새우면... 벌써 아침이 밝아 옵니다. 다리는 아프고 어깨는 쑤시고... 그러고도 아무런 불평도 없이 아침밥을 지으셨습니다.
내 부모님이 아니시면 누가 나를 이렇게 키우겠습니까.... 프랑스에서는 여인들이 아기를 낳지 않으려고 해서 인구가 자꾸만 줄기 때문에 아이를 낳으면 보상금도 준다고 합니다.
왜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합니까... 희생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죠. 그러나 자신만 편히 살려고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또 하나의 죄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출가한 딸이 아이와 함께 정성스레 마련한 선물을 들고 친정엘 갔습니다.
어머니는 손주들과 딸을 끌어 안으시면서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하십니다. 딸은 어머니께 자랑스레 선물을 내어놓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선물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시고 야윈 듯한 딸의 얼굴을 보시며 "아니, 네 얼굴이 왜 이 모양이 되었니 어디 아픈게 아니야 아범하고 사이는 좋으냐" 하면서 계속해서 물으십니다. 요즘에 봄을 타서 그렇다고, 아무 일이 없다고 해도 계속해서 물어보시며 걱정을 하십니다. 바로 이런 것이 부모님의 마음이죠...
그러나 자식들은 부모님의 이런 마음을 알아줄리 없습니다. 나이가 많아 늙어지면 서로 몰라라 하고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저 집에서 이 집으로 자꾸만 밀어냅니다.
혹 할머니는 손주들 봐주고 살림살이 도와주니까 조금은 쓸모가 있을지 모르지만 할아버지는 뫼시기를 꺼려합니다. 게다가 병이라도 들면 자식들에게 버림을 당하기 십상입니다.
서울 강남에 있는 고속버스 터미널에는 하루에도 수 백대의 버스가 지방을 오가기 때문에 대합실이 무척이나 혼잡합니다. 또한 서울역에도 수없이 많은 기차들이 오가면서 대합실은 매우 혼잡합니다. 그런데 이런 대합실에는 종종 나이 많은 어른들이 버려지곤 한다고 합니다.
버려진 어느 노인의 말씀이 자식들이 터미널에 모시고 와서는 노인들의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자기들만 얼른 돌아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아마 체면은 있어서 신원이 밝혀지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런데도 그 노인은 자식들에 대해서 질문을 하니까, 緘口無言(함구무언)... 입은 있으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에게 버림을 당하면서도 그 못난 자식들을 감싸는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실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버려진 노인들은 잠실에 있는 롯데 월드에서도 종종 일어난다고 하고, 또 언젠가 TV에서도 방영된 바 있지만 효도관광을 명목으로 노인들을 제주도로 여행을 보내드리고는 그 사이에 자기들은 부모 몰래... 아예 찾을 수 도 없게 미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요즘 어른들은 정말 효를 받아보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시대는 모성애와 부성애를 상실한 시대입니다.
부모인데도 부모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모인데도 도저히 부모같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버리는가 하면 자식을 심하게 구타한 나머지 이웃사람의 신고로 겨우 구조를 받은 아이들을 봅니다. 경찰에 불려와서도 전혀 잘못을 했다는 반성의 기미조차 없습니다.
요즘에는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가정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있어서 얼마전에 TV에서 보도가 되었습니다만,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함 그 자체였습니다. 온 몸에 매를 맞은 흔적으로 시커멓게 멍이 들고, 심지어는 불구가 되고, 사망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습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부모로부터 매를 맞은 아동들은 다음 세대에 또다시 대물림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밝혀져서 앞으로 이 사회에 더 큰 문제로 작용할 우려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아동학대 사례가 증가하면서 해마다 최소한 2천명 이상의 아이들이 사망하고, 14만 2천명이 중상을 입는 등 국민의 보건을 위협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자녀들을 구타하는 부모들의 말을 들어보면, "내 자식 내가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참견이냐"고 말을 합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자녀들을 마치 자신의 소유인 것으로 여기는데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어느 사회학자는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옛날에는 모든 지식이 부모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주로 농경사회가 되다 보니까 살아가는 삶의 지혜와 기술의 습득도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했습니다.
또한 부모로부터 토지를 물려받아야만 살 수 있었습니다. 평생을 머슴살이를 해도 제 힘으로는 논, 밭 몇 뙈기 사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명예와 신분도 부모의 것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양반 자식은 양반으로, 상놈 자식은 상놈으로 살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으니 옛날에는 자연적으로 효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즉, 부모가 절대적인 의존의 대상이었습니다. 부모를 떠나면 당장 생활의 어려움을 느낍니다. 부모에게서 쫓겨나면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는 농경사회가 지나가고, 산업화 사회, 정보화 시대, 디지털 시대로 발전하면서 자식들이 모두들 직장을 따라서 고향을 떠나고 부모를 떠나서 각자 각자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사회와 학교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얻기 때문에 옛날처럼 부모님의 덕을 볼 일이 별로 없고, 그래서 효도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곧잘 하시는 얘기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더라도 돈 좀 가지고 있어야 효도를 받는다!" 그런 말을 합니다.
"자식들에게 받기보다는 조금씩 주면서 살아야 자식도 나를 위한다!" 하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이 얼마나 슬픈 이야기입니까... 근본적으로 순수한 효의 개념, 그 자체가 타락한 시대입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세속적인 개념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 효라고 하는 것이 있을 곳이 없습니다.
여러분,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간혹 모성애를 말하기도 하지만 동물의 세계에도 모성애는 있습니다.
모든 동물들이 어렸을 때에는 그 어미를 따릅니다. 어떤 때는 굉장히 강한 모성애가 동물의 세계에 있는 것을 봅니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사랑하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다른 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동물은 새끼 때 사랑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호랑이도 자기 새끼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조금 크면 물어버립니다. 새끼도 자기가 필요할 때에는 애미를 따르지만 어느 정도 크면 떠나 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동물입니다.
결국 인간의 인간됨이라고 하는 것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부모를 공경하고, 또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높이 더 깊이 사랑하는데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이 시대는 '버리는데'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버립니다. 유명 메이커가 이니라고 멀쩡한 옷을 그냥 버리고, 볼펜이나 노트같은 학용품은 물론이고, 멀쩡한 도시락이나 가방들도 그냥 버립니다. 또 입맛에 안 맞다고 음식도 그냥 내다 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버리는 것을 조사해 보니까, 우리나라가 지난해 소비한 의류 지출은 자그마치 14조 8천억원이었고, 버려진 음식물은 한 해에 15조원이었으며, 버려지는 아이들로 인하여 해외 입양이 급격히 늘어서 93년에 2천 290명이던 것이 98년 부터는 8천명이 넘어 섰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버리고, 물건을 버리고, 양심을 버리고, 신앙을 버립니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버림증'이라는 무슨 중병을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은 음악이나 예술, 문학, 미술... 어느 분야든지 사랑이라는 말과 주제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모두들 자기만을 사랑하며, 물질만을 사랑하고, 쾌락만을 사랑하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본질에서 벗어난 사랑을 하기 때문인데, 진정한 사랑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한 결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말세의 징조라고 하셨습니다. 딤후3:1-5절 말씀에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변질입니다. 사랑의 타락이요, 사랑의 오염이며, 말세에 나타나는 징조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진정한 사랑을 맛보지 못한 인간들이 저지르는... '말세적 사랑'이 반영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 했습니다. 여기서 옳다는 말은 '당연하다'는 뜻입니다. 효는 선행도 공로도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는데, 여기서 공경이라는 말씀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 관계의 사랑은 세 가지의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보다 못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는 긍휼히 여기는 사랑인데,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랑입니다.
또 하나는 친구의 사랑과 같이 나와 같은 위치에서 수평적으로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나보다 상대방을 더 높이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는 관계인데, 이를 '공경한다' '존경한다'고 말합니다.
이 세 가지의 사랑가운데, 부모를 향해서는 공경해야 하는 사랑입니다.
노인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랑한다든지 친구와 같이 수평적인 관계의 사랑은 효도가 아닙니다. 효는 먼저 존경이 앞서야 합니다. 높이는 마음, 존경과 순종을 겸한 사랑이 공경입니다.
'공경하라'는 단어의 히브리어 '카베드'는 '무겁다' '존귀하다' '많다'는 뜻을 지닌 능동형이요,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5계명은 무겁게 취급해야 할 중량급 계명이요, 높고 귀하게 여겨야 할 존귀한 계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계명은 누가 시키기 전에 스스로 지켜야 할 계명이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절대 명령인 것입니다.
잠3:9절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에서의 "공경하라" 는 말씀도 본문과 똑같은 '카베드' 로 되어 있어서 부모의 공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똑같이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루터(M. Luther)는 말하기를,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일4:20절에서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또한 막3:35절에서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고 말씀하시므로 새로운 부모에 대한 정의를 내리셨습니다.
즉 참된 기독교적인 효도는 무엇이냐... 내 육신의 부모를 초월해서 남의 부모도 공경할 수 있어야 참된 효도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이상과 현실은 있지만 과거가 없습니다. 화려한 꽃은 있지만 그것을 지탱할 만한 뿌리가 없습니다. 또한 젊은이들은 지식은 많으나 지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지혜를 존귀히 여기고 존경해야 합니다. 그 지혜를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효도입니다.
그러므로 잠1:8절 말씀에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하고 말씀합니다.
잠13:1절 말씀에서는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했고, 잠15:5절에서도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젊은이들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그것은 나만 가진 고통이요 나만 가진 눈물이라고 울부짖습니다.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이 오는 것일까... "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일찌기 그와 같은 체험을 다 겪어 왔습니다.
왜 젊은이들이 실패의 쓴잔을 마시며 눈물을 흘립니까... 그것은 지혜자의 말을 듣지 아니한 결과입니다. 노인들의 지혜를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부모님은 자녀들을 사랑합니다. 한없이 주고 주고 또 주고... 그러고도 줄 것이 없어서 아쉬워합니다. 이것을 '내리 사랑'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에게는 언제나 자식이 어린아이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육십이 넘은 아들을 출근시키면서도 "길 조심해라!", "사람 조심해라!", "차 조심해라!" 하고 당부하십니다.
부모는 적어도 자식에게 향한 마음만은 선한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을 자식들은 높이 존경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 하면서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자에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는 말은 십계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1계명부터 4계명까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계명이요, 두 번째는 5계명에서부터 10계명까지 인간에게 대한 계명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대한 계명중에 첫 번째로 말씀하신 것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즉, 인간에게 말씀하신 계명 중에 첫 번째의 계명이면서... 이 계명을 지키면 이러 이러한 복을 주겠다는 축복을 약속으로 하고 있는 계명입니다.
그래서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특히 모든 계명은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지만, 제 5계명만은 '하라!'는 적극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효도에 대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교훈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잠23:25절에는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나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가르쳤으며, 잠30:17절에는 "아비를 조롱하며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좀 부족해도 효도를 극진히 하면 복을 받습니다.
그 약속의 첫 번째 축복은 장수의 복입니다. 오래 산다고 했습니다.
출20:1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했습니다.
여기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고 말씀했는데, '길리라'는 말씀은 히브리어로 '야아리쿤'이라는 말인데, '길게 하여 주다' '연장시키다' 라는 사역 능동형 동사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무슨 뜻인가 하면, 사람의 '생명'은 자연적으로 길어지거나 인간의 노력에 의하여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생명의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의지로 장수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여호와 하나님이 생명을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생명의 연장 뿐만이 아니라, 그 생명이 다하기까지 그 삶이 복되고 형통할 것이라는 보장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잘되는 복, 형통의 복도 받는다고 했습니다.
신5:16절 말씀에 "너는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했습니다.
또한 성경을 살펴보면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는 지혜와 명철을 얻는다고 했고, 명예와 영광이 주어지며, 그 가정과 자녀에게도 복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성공과 가정의 축복을 원하신다면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효도하는 가정은 형제간에 우애가 있고, 부부간에 사랑이 깊습니다. 또한 자녀 교육을 위해서도 효도를 해야 합니다. 효도하는 가운데 훌륭한 자녀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얼마 전에 TV에서 '이것이 인생이다' 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어느 목사님의 가정에 있었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이 목사님에게 장모님이 계셨는데, 그만 치매에 걸리셔서 모시고 있던 아들네가 너무 힘이 들어서 모시기가 어렵다고 해서 장모님을 모셔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모님이 치매 증세가 너무 심해서 아이들의 책이며 공책들을 다 찢어 놓고, 청소해 놓으면 금새 방을 어질러 놓고, 대소변을 아무렇게나 보고, 음식도 분별없이 드시고... 너무 너무 모시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한 2년 동안은 장모님 때문에 부부간의 사이도 안좋아지고, 아이들도 다 싫어하고, 가정의 분위기가 안좋고... 너무 힘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의 어머니도 내 어머니지... " 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보살피고 최선을 다해서 보살펴 드렸습니다.
나중에는 아이들도 이해가 되어서 할머니를 사랑하고, 모든 가족들이 협력을 해서 정성스럽게 모십니다. 목욕도 자주 씻겨 드리고, 맛있는 것도 사다 드리고, 가끔 외출도 해서 바람도 쐬여 드리고... 얼마나 정성스레 모시는지 장모님 때문에 가족간에 사랑이 더욱 돈독해 졌습니다. 장모님의 곁에 같이 누워서 "어머니 사랑해요!" 하면서 꼭 안아드리기도 합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의 마음과 정성이 너무 고마워서 남편을 더 사랑하게 되고, 아이들도 더 사랑하게 되어서 이 가정은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이 가정의 특징을 보니까, 서로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또 장모님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자주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장모님 때문에 부부간에 사랑이 식어지고 가정의 화목이 깨어 졌는데, 이제는 오히려 장모님 때문에 가정에 행복이 넘치게 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민족은 여러가지 아름다운 문화 유산들 중에서 특별히 효를 강조하고 자랑해 왔습니다. 효가 모든 행위의 기본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이것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사회 법도가 근본적으로 무너지고 가치관의 혼란이 오게 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성서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경건과 부모님께 대한 바른 효도를 실천함으로 우리의 가정과 이 나라와 온 세계 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놀라운 축복을 이어 가실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어버이 주일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고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매우 의미 깊은 주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이렇게 복되고 귀한 주일에 아버지 어머니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새기며, 주 안에서 더욱 순종하고 공경하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노래 가사에도 있습니다만,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은 그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손 발이 다 닿도록 고생하시므로 우리 우리들을 기르셨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기르는 일은 그 무엇보다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어린아이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노동을 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힘이 들고 어렵습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은 물론, 가슴을 조이고 애가 타는 순간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릅니다. 부모들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과정 과정들을 거쳐서 자녀들을 성인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여기까지 있기까지는 부모님의 희생과 그만한 대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경제적인 면만 해도 그렇습니다. 한 어린이가 성년이 되기까지는 억대가 넘는 돈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아이를 갖기로 결심할 때부터 부모는 이미 자신들의 희생을 각오한 것입니다.
만약 내가 없었더라면 부모님이 그때 그 순간 얼마나 편안하셨겠습니까... 아무런 이유없이 한 밤중에 칭얼거리고 우는 바람에 피곤하고 졸려 죽겠는데, 이웃사람 다 깨울까봐 들춰 업고 어두운 골목길을 서성일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저도 어릴 적에 어지간이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별 이유도 없이 울었어요.... 그때마다 어머니는 포대기로 나를 업으시고 동네 골목길을 서성이셨습니다. 한참을 서성이다가 잠이 들었는가 싶어서 내려 놓으시면 나는 또 울었습니다. 깜짝 놀라 다시 얼른 업고 서성이다가 온 밤을 지새우면... 벌써 아침이 밝아 옵니다. 다리는 아프고 어깨는 쑤시고... 그러고도 아무런 불평도 없이 아침밥을 지으셨습니다.
내 부모님이 아니시면 누가 나를 이렇게 키우겠습니까.... 프랑스에서는 여인들이 아기를 낳지 않으려고 해서 인구가 자꾸만 줄기 때문에 아이를 낳으면 보상금도 준다고 합니다.
왜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합니까... 희생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죠. 그러나 자신만 편히 살려고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또 하나의 죄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출가한 딸이 아이와 함께 정성스레 마련한 선물을 들고 친정엘 갔습니다.
어머니는 손주들과 딸을 끌어 안으시면서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하십니다. 딸은 어머니께 자랑스레 선물을 내어놓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선물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시고 야윈 듯한 딸의 얼굴을 보시며 "아니, 네 얼굴이 왜 이 모양이 되었니 어디 아픈게 아니야 아범하고 사이는 좋으냐" 하면서 계속해서 물으십니다. 요즘에 봄을 타서 그렇다고, 아무 일이 없다고 해도 계속해서 물어보시며 걱정을 하십니다. 바로 이런 것이 부모님의 마음이죠...
그러나 자식들은 부모님의 이런 마음을 알아줄리 없습니다. 나이가 많아 늙어지면 서로 몰라라 하고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저 집에서 이 집으로 자꾸만 밀어냅니다.
혹 할머니는 손주들 봐주고 살림살이 도와주니까 조금은 쓸모가 있을지 모르지만 할아버지는 뫼시기를 꺼려합니다. 게다가 병이라도 들면 자식들에게 버림을 당하기 십상입니다.
서울 강남에 있는 고속버스 터미널에는 하루에도 수 백대의 버스가 지방을 오가기 때문에 대합실이 무척이나 혼잡합니다. 또한 서울역에도 수없이 많은 기차들이 오가면서 대합실은 매우 혼잡합니다. 그런데 이런 대합실에는 종종 나이 많은 어른들이 버려지곤 한다고 합니다.
버려진 어느 노인의 말씀이 자식들이 터미널에 모시고 와서는 노인들의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자기들만 얼른 돌아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아마 체면은 있어서 신원이 밝혀지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런데도 그 노인은 자식들에 대해서 질문을 하니까, 緘口無言(함구무언)... 입은 있으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에게 버림을 당하면서도 그 못난 자식들을 감싸는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실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버려진 노인들은 잠실에 있는 롯데 월드에서도 종종 일어난다고 하고, 또 언젠가 TV에서도 방영된 바 있지만 효도관광을 명목으로 노인들을 제주도로 여행을 보내드리고는 그 사이에 자기들은 부모 몰래... 아예 찾을 수 도 없게 미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요즘 어른들은 정말 효를 받아보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시대는 모성애와 부성애를 상실한 시대입니다.
부모인데도 부모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모인데도 도저히 부모같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버리는가 하면 자식을 심하게 구타한 나머지 이웃사람의 신고로 겨우 구조를 받은 아이들을 봅니다. 경찰에 불려와서도 전혀 잘못을 했다는 반성의 기미조차 없습니다.
요즘에는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가정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있어서 얼마전에 TV에서 보도가 되었습니다만,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함 그 자체였습니다. 온 몸에 매를 맞은 흔적으로 시커멓게 멍이 들고, 심지어는 불구가 되고, 사망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습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부모로부터 매를 맞은 아동들은 다음 세대에 또다시 대물림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밝혀져서 앞으로 이 사회에 더 큰 문제로 작용할 우려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아동학대 사례가 증가하면서 해마다 최소한 2천명 이상의 아이들이 사망하고, 14만 2천명이 중상을 입는 등 국민의 보건을 위협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자녀들을 구타하는 부모들의 말을 들어보면, "내 자식 내가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참견이냐"고 말을 합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자녀들을 마치 자신의 소유인 것으로 여기는데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어느 사회학자는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옛날에는 모든 지식이 부모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주로 농경사회가 되다 보니까 살아가는 삶의 지혜와 기술의 습득도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했습니다.
또한 부모로부터 토지를 물려받아야만 살 수 있었습니다. 평생을 머슴살이를 해도 제 힘으로는 논, 밭 몇 뙈기 사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명예와 신분도 부모의 것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양반 자식은 양반으로, 상놈 자식은 상놈으로 살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으니 옛날에는 자연적으로 효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즉, 부모가 절대적인 의존의 대상이었습니다. 부모를 떠나면 당장 생활의 어려움을 느낍니다. 부모에게서 쫓겨나면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는 농경사회가 지나가고, 산업화 사회, 정보화 시대, 디지털 시대로 발전하면서 자식들이 모두들 직장을 따라서 고향을 떠나고 부모를 떠나서 각자 각자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사회와 학교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얻기 때문에 옛날처럼 부모님의 덕을 볼 일이 별로 없고, 그래서 효도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곧잘 하시는 얘기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더라도 돈 좀 가지고 있어야 효도를 받는다!" 그런 말을 합니다.
"자식들에게 받기보다는 조금씩 주면서 살아야 자식도 나를 위한다!" 하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이 얼마나 슬픈 이야기입니까... 근본적으로 순수한 효의 개념, 그 자체가 타락한 시대입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세속적인 개념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 효라고 하는 것이 있을 곳이 없습니다.
여러분,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간혹 모성애를 말하기도 하지만 동물의 세계에도 모성애는 있습니다.
모든 동물들이 어렸을 때에는 그 어미를 따릅니다. 어떤 때는 굉장히 강한 모성애가 동물의 세계에 있는 것을 봅니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사랑하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다른 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동물은 새끼 때 사랑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호랑이도 자기 새끼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조금 크면 물어버립니다. 새끼도 자기가 필요할 때에는 애미를 따르지만 어느 정도 크면 떠나 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동물입니다.
결국 인간의 인간됨이라고 하는 것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부모를 공경하고, 또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높이 더 깊이 사랑하는데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이 시대는 '버리는데'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버립니다. 유명 메이커가 이니라고 멀쩡한 옷을 그냥 버리고, 볼펜이나 노트같은 학용품은 물론이고, 멀쩡한 도시락이나 가방들도 그냥 버립니다. 또 입맛에 안 맞다고 음식도 그냥 내다 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버리는 것을 조사해 보니까, 우리나라가 지난해 소비한 의류 지출은 자그마치 14조 8천억원이었고, 버려진 음식물은 한 해에 15조원이었으며, 버려지는 아이들로 인하여 해외 입양이 급격히 늘어서 93년에 2천 290명이던 것이 98년 부터는 8천명이 넘어 섰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버리고, 물건을 버리고, 양심을 버리고, 신앙을 버립니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버림증'이라는 무슨 중병을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은 음악이나 예술, 문학, 미술... 어느 분야든지 사랑이라는 말과 주제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모두들 자기만을 사랑하며, 물질만을 사랑하고, 쾌락만을 사랑하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본질에서 벗어난 사랑을 하기 때문인데, 진정한 사랑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한 결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말세의 징조라고 하셨습니다. 딤후3:1-5절 말씀에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변질입니다. 사랑의 타락이요, 사랑의 오염이며, 말세에 나타나는 징조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진정한 사랑을 맛보지 못한 인간들이 저지르는... '말세적 사랑'이 반영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 했습니다. 여기서 옳다는 말은 '당연하다'는 뜻입니다. 효는 선행도 공로도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는데, 여기서 공경이라는 말씀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 관계의 사랑은 세 가지의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보다 못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는 긍휼히 여기는 사랑인데,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랑입니다.
또 하나는 친구의 사랑과 같이 나와 같은 위치에서 수평적으로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나보다 상대방을 더 높이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는 관계인데, 이를 '공경한다' '존경한다'고 말합니다.
이 세 가지의 사랑가운데, 부모를 향해서는 공경해야 하는 사랑입니다.
노인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랑한다든지 친구와 같이 수평적인 관계의 사랑은 효도가 아닙니다. 효는 먼저 존경이 앞서야 합니다. 높이는 마음, 존경과 순종을 겸한 사랑이 공경입니다.
'공경하라'는 단어의 히브리어 '카베드'는 '무겁다' '존귀하다' '많다'는 뜻을 지닌 능동형이요,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5계명은 무겁게 취급해야 할 중량급 계명이요, 높고 귀하게 여겨야 할 존귀한 계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계명은 누가 시키기 전에 스스로 지켜야 할 계명이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절대 명령인 것입니다.
잠3:9절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에서의 "공경하라" 는 말씀도 본문과 똑같은 '카베드' 로 되어 있어서 부모의 공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똑같이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루터(M. Luther)는 말하기를,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일4:20절에서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또한 막3:35절에서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고 말씀하시므로 새로운 부모에 대한 정의를 내리셨습니다.
즉 참된 기독교적인 효도는 무엇이냐... 내 육신의 부모를 초월해서 남의 부모도 공경할 수 있어야 참된 효도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이상과 현실은 있지만 과거가 없습니다. 화려한 꽃은 있지만 그것을 지탱할 만한 뿌리가 없습니다. 또한 젊은이들은 지식은 많으나 지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지혜를 존귀히 여기고 존경해야 합니다. 그 지혜를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효도입니다.
그러므로 잠1:8절 말씀에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하고 말씀합니다.
잠13:1절 말씀에서는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했고, 잠15:5절에서도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젊은이들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그것은 나만 가진 고통이요 나만 가진 눈물이라고 울부짖습니다.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이 오는 것일까... "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일찌기 그와 같은 체험을 다 겪어 왔습니다.
왜 젊은이들이 실패의 쓴잔을 마시며 눈물을 흘립니까... 그것은 지혜자의 말을 듣지 아니한 결과입니다. 노인들의 지혜를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부모님은 자녀들을 사랑합니다. 한없이 주고 주고 또 주고... 그러고도 줄 것이 없어서 아쉬워합니다. 이것을 '내리 사랑'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에게는 언제나 자식이 어린아이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육십이 넘은 아들을 출근시키면서도 "길 조심해라!", "사람 조심해라!", "차 조심해라!" 하고 당부하십니다.
부모는 적어도 자식에게 향한 마음만은 선한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을 자식들은 높이 존경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 하면서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자에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는 말은 십계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1계명부터 4계명까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계명이요, 두 번째는 5계명에서부터 10계명까지 인간에게 대한 계명입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대한 계명중에 첫 번째로 말씀하신 것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즉, 인간에게 말씀하신 계명 중에 첫 번째의 계명이면서... 이 계명을 지키면 이러 이러한 복을 주겠다는 축복을 약속으로 하고 있는 계명입니다.
그래서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특히 모든 계명은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지만, 제 5계명만은 '하라!'는 적극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효도에 대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교훈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잠23:25절에는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나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가르쳤으며, 잠30:17절에는 "아비를 조롱하며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좀 부족해도 효도를 극진히 하면 복을 받습니다.
그 약속의 첫 번째 축복은 장수의 복입니다. 오래 산다고 했습니다.
출20:1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했습니다.
여기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고 말씀했는데, '길리라'는 말씀은 히브리어로 '야아리쿤'이라는 말인데, '길게 하여 주다' '연장시키다' 라는 사역 능동형 동사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무슨 뜻인가 하면, 사람의 '생명'은 자연적으로 길어지거나 인간의 노력에 의하여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생명의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의지로 장수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여호와 하나님이 생명을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생명의 연장 뿐만이 아니라, 그 생명이 다하기까지 그 삶이 복되고 형통할 것이라는 보장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잘되는 복, 형통의 복도 받는다고 했습니다.
신5:16절 말씀에 "너는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했습니다.
또한 성경을 살펴보면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는 지혜와 명철을 얻는다고 했고, 명예와 영광이 주어지며, 그 가정과 자녀에게도 복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성공과 가정의 축복을 원하신다면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효도하는 가정은 형제간에 우애가 있고, 부부간에 사랑이 깊습니다. 또한 자녀 교육을 위해서도 효도를 해야 합니다. 효도하는 가운데 훌륭한 자녀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얼마 전에 TV에서 '이것이 인생이다' 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어느 목사님의 가정에 있었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이 목사님에게 장모님이 계셨는데, 그만 치매에 걸리셔서 모시고 있던 아들네가 너무 힘이 들어서 모시기가 어렵다고 해서 장모님을 모셔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모님이 치매 증세가 너무 심해서 아이들의 책이며 공책들을 다 찢어 놓고, 청소해 놓으면 금새 방을 어질러 놓고, 대소변을 아무렇게나 보고, 음식도 분별없이 드시고... 너무 너무 모시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한 2년 동안은 장모님 때문에 부부간의 사이도 안좋아지고, 아이들도 다 싫어하고, 가정의 분위기가 안좋고... 너무 힘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의 어머니도 내 어머니지... " 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보살피고 최선을 다해서 보살펴 드렸습니다.
나중에는 아이들도 이해가 되어서 할머니를 사랑하고, 모든 가족들이 협력을 해서 정성스럽게 모십니다. 목욕도 자주 씻겨 드리고, 맛있는 것도 사다 드리고, 가끔 외출도 해서 바람도 쐬여 드리고... 얼마나 정성스레 모시는지 장모님 때문에 가족간에 사랑이 더욱 돈독해 졌습니다. 장모님의 곁에 같이 누워서 "어머니 사랑해요!" 하면서 꼭 안아드리기도 합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의 마음과 정성이 너무 고마워서 남편을 더 사랑하게 되고, 아이들도 더 사랑하게 되어서 이 가정은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이 가정의 특징을 보니까, 서로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또 장모님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자주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장모님 때문에 부부간에 사랑이 식어지고 가정의 화목이 깨어 졌는데, 이제는 오히려 장모님 때문에 가정에 행복이 넘치게 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민족은 여러가지 아름다운 문화 유산들 중에서 특별히 효를 강조하고 자랑해 왔습니다. 효가 모든 행위의 기본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이것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사회 법도가 근본적으로 무너지고 가치관의 혼란이 오게 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성서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경건과 부모님께 대한 바른 효도를 실천함으로 우리의 가정과 이 나라와 온 세계 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놀라운 축복을 이어 가실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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