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부모사랑
본문
2004년 3월 16일 경기도 시흥에 사는 29세의 이효진 씨가 간 경화로 수술 외에는 살길이 없는 시어머니 이성숙(52세) 씨에게 자기 간 60%를 선뜻 제공하여 살린 흐뭇한 일이 있었습니다. 며느리 이효진 씨는 간을 제공하게 된 이유를 "그분을 너무 사랑합니다"라고 썼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남편(구본식)을 낳아 주신 분이 너무 고마워 지금도 둘째 며느리이지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삽니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건 인간으로서 마땅한 일입니다. 더욱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효를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고 부모를 사랑하며 공경하는 일은 인간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엡6:3에 부모에게 효도를 하면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과 부모를 공경하는 일에 힘쓰지 않고서는 인간의 축복과 행복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기본 도리를 저버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가정에서는 부모 자식간에 원수처럼 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식을 내다버리는 부모, 부모를 학대하는 자식이 많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물론 우리 성도들 중에는 잠23:25의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는 말씀처럼 부모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는 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의 사랑 때문입니다. 나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분이 있습니까 아무리 가난한 부모라도, 별다른 공부를 시키지 못한 부모라도 가진 자보다는 훨씬 큰사랑을 베풀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2004.3. 15-19까지 KBS 2TV를 통해 방영된 인간극장 옥탑방 세 자매란 프로그램을 많이 보신 줄 압니다. 경기도 군포시의 한 옥탑방에 사는 효진(26) 수진(24) 현영(18)이란 세 자매가 위암말기환자로 두 번이나 대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 홀 아버지 김덕일(52)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습니다. 맏딸은 충남 아산의 한 학교의 지리교사인데 아버지를 모시느라고 매일 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통근하면서도 밝게 살고 있고 둘째 수진이는 아버지가 채소 장사하던 트럭을 몰고 콜프장 케디로 힘든 일을, 셋째 현영이는 아버지 병환 때문에 학교 공부를 쉬고 있으면서도 그 아버지를 사랑하며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세 자매는 그냥 누워만 계셔도 아버지가 너무 좋다고 합니다. 세 자매는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은 딸들입니다.
우리의 부모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려면 내가 내 자식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식들을 보고 "아비 어미 마음을 어쩌면 그렇게도 몰라주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부모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을 잘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내가 자식들에게 하는 말은 사랑이고 부모가 내게 하는 말씀은 잔소리로 여기고 있습니다. 젊은 부부들은 '우리는 나중에 늙어서 자식들을 의지하지 않겠노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지금 부모가 왜 자식을 의지하느냐 하면서 부모를 모시는 게 싫다는 말입니다.
모 정치인이 노인비하발언을 한 후 대한 노인회를 찾아가 엎으려 사과할 때 한 노인이 격한 말로 당신은 안 늙을 것 같소 하던 말이 생생합니다. 우리는 모두 한길을 갑니다. 지금 우리의 부모님들이 걸어가고 있는 인생 길을 머지않아 우리도 걸어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부모님들이 겪고 있는 서러움과 고통, 섭섭함과 고독을 우리도 맛보아야 합니다.
3김 시대의 마지막 인물로 정계를 떠난 김종필씨가 쓴 童詩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울리지 말라. 지내 온 길인 걸. 늙은이를 탓하지 말라. 다 가는 길인 걸 자식들을 크게 나무라지 말라. 우리도 그런 때가 있었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버이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조건적인 것이 아닙니다. 무슨 공경할 만한 일이 꼭 있어서가 아니라 부모님이시기 때문에 그냥 무조건 사랑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1. 부모에 대한 공경심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엡6:1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운 질서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이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골고루 그 빛을 비추듯이 부모는 자식을 한결같이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자식은 부모의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엡6:2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계명을 잘 지키지 않습니다. 젊은이는 부모가 공경스럽지 않은데 어떻게 공경하며 살 수 있느냐고 합니다. 노인들은 요즘 젊은이들은 어른도 몰라본다 아비 어미 알기를 우습게 여긴다고 합니다. 우리가 부모를 바로 공경하지 못하는 이유는 부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건 부모의 사랑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태도를 보십시요. 귀신들린 딸을 고치려는 그 사랑이 얼마나 지극합니까 '개만도 못한 여자'라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자기 딸의 병을 고치려는 일념으로 그 모욕을 참아 내고 있습니다.
명심보감에는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父兮生我(부혜생아)하시고 母兮鞠我(모혜국아)하시니, 哀厓父母(애애부모)여 生我句勞(생애구로)셨다. 欲報深恩(욕보심은)인데, 昊天罔極(호천망극)이로다. 이 말의 뜻은 아버지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가 나를 기르셨다. 슬프고 슬프도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낳으시고 기르시느라 얼마나 애쓰시고 수고하셨던가 그 깊은 은혜를 갚고자 하나 그 은혜가 하늘같이 다함이 없도다는 뜻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부모가 나를 낳고 기르신 공로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안다고 해도 얼마나 지극한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부모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공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집 장가가서 자기 자식 낳아 길러봐야 부모님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알 수가 있다고 합니다.
부모사랑이 부족한 현실은 우리의 잘못된 자녀 사랑 때문입니다. 내 자식만 오냐오냐하면서 자기밖에 모르도록 키웠습니다. 어떻게 하든 공부만 잘 하게 해서 출세시켜야 하겠다는 부모의 지나친 욕심이 자기만 알고 부모와 이웃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부모도 버리고 자기자식까지도 내버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성도는 자녀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교육시켜야 할 것입니다.
2. 부모사랑은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고려장이라는 악습은 인간이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자기는 언제까지나 늙지 않는 줄 알고 늙으신 부모를 업어다 버렸습니다. 지금의 젊은이도 언젠가는 늙어져서 잔소리를 한다고 자식들로부터 구박을 받을 게 틀림없습니다.
지금 생각할 때에는 난 잔소리 안 할 것 같지만 나이가 들면 건망증이 심해져서 조금 전에 한 말도 금방 잊어버리고 또 하게 됩니다. 늙으면 다 그렇게 되는 것을 어떻게 그 길을 피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못된 아이들은 부모가 무엇을 이야기하면 두 손가락으로 귀를 막는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씀이 듣기 싫어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들려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쉐마" 즉 이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면 축복을 받고 오래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부모를 공경할 수 있다면 이미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면서 늙으신 부모님의 형편과 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한 사람입니다. 특히 늙으신 부모님들께 효도하는 것은 상급이 있습니다.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들이 경영하는 것이 잘 됩니까 곧 될 것 같으면서도 잘 안됩니까 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부모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효를 행하고 있습니까 장수를 원합니까 건강하게 살기를 원합니까 부모를 사랑합시다.
혹시 젊음을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 부모를 모시지 않는다면 젊음이 얼마나 오래가겠습니까 물론 부모를 모시고 효도하며 사는 일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부모 섬기는 일이 힘들다고 부모를 업신여기게 되면 우리의 자식 또한 우리를 업신여기게 됩니다. 그래도 좋다는 말입니까
3.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합시다.
우리가 부모에 대해서 불평과 불만을 가지게 되면 우리의 자식들도 분명히 우리에게 불평 불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식들에 대해서 섭섭한 생각을 가지게 되겠지요. 우리가 부모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해 드린 일은 생각하지 않고 말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효자식은 '부모가 내게 해 준 일이 뭐가 있느냐'하면서 왜 나를 낳았느냐 대드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혹시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대(代)에서 그 불행은 끝나야 합니다.
이제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합니다.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찾아보면 부모님께 감사할 일이 있습니다. 생각났으면 마음으로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선 쉬운 대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라는 말부터 해 보세요. 의외로 부모님은 그 말 한마디에 눈물지으며 고마워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실제로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말할 것 없이 인생을 성실하게 사는 일입니다. 무슨 일에든지 열심을 다하고 정성을 다함으로써 사람들에게서나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칭찬 받도록 해야 합니다.
일찍이 송강 정 철 선생은 '어버이가 살아 있을 때에는 그 은혜를 잊고 살다가 그 은혜를 깨닫고 보니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나 듣는 것으로 끝난다면 세상 사람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부모를 모른 체하며 살면 짐승만도 못합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면서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보이는 부모를 잘 섬기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는 없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켜야 합니다.
부모를 사랑하므로 자녀들에게 효행의 본을 보이시기를 바랍니다.
딤전5:4에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잘 섬기는 일은 내 자녀를 진정 아끼고 잘 교육하는 길입니다. 아무리 아는 것이 많고 세상 지위가 높아도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부모를 모르는 사람은 참다운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가정 교육은 학교 교육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말이 아니라 행위를 본받는 실습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 가정입니다. 부모가 하는 대로 자녀들이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며 부모 앞에서는 불효자입니다. 아무쪼록 오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부모를 사랑합시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 실천에 옮김으로써 자식들로부터는 존중을 받고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귀한 상급을 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어버이날은 어버이의 은혜를 헤아리고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 효친의 전통적 미덕을 기리는 날입니다. 산업화, 도시화, 핵가족화로 퇴색하여가는 경로사상을 확산하기 위한 범국민적 기념일입니다. 1956년부터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지키다가 1973년 제정, 공포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해 어버이날로 변경하고 기념일로 정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어버이주일을 지키는 건 사순절의 첫날로부터 넷째 일요일까지 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하여 교회를 찾는 영국, 그리스의 풍습과 1910년 무렵 미국의 한 여성이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흰 카네이션을 나누어 준 일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지난 6일 세상에 이런 일이이란 프로에 경북 봉화 현동리에 사는 최동근씨(51세)는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서지도, 걷지도 못하면서도 중풍병을 앓고 있는 노모 정윤순씨(83세)를 봉양하고 있었습니다. 누워서 어머니를 위해서 식사를 지어 대접을 하고 머리를 감겨드리면서도 잘 못하는 일이 너무 많다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소가 아파 누우면은 소 침쟁이 찾아가고 늙은 부모 병들어도 예사로이 생각하네 열 아들을 기른 부모 하나같이 길렀건만 열 형제가 한 부모를 어이하여 못 섬기나 '하면서 한탄했습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했으며 25절엔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부모를 사랑합시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건 인간으로서 마땅한 일입니다. 더욱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효를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고 부모를 사랑하며 공경하는 일은 인간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엡6:3에 부모에게 효도를 하면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과 부모를 공경하는 일에 힘쓰지 않고서는 인간의 축복과 행복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기본 도리를 저버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가정에서는 부모 자식간에 원수처럼 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식을 내다버리는 부모, 부모를 학대하는 자식이 많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물론 우리 성도들 중에는 잠23:25의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는 말씀처럼 부모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는 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의 사랑 때문입니다. 나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분이 있습니까 아무리 가난한 부모라도, 별다른 공부를 시키지 못한 부모라도 가진 자보다는 훨씬 큰사랑을 베풀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2004.3. 15-19까지 KBS 2TV를 통해 방영된 인간극장 옥탑방 세 자매란 프로그램을 많이 보신 줄 압니다. 경기도 군포시의 한 옥탑방에 사는 효진(26) 수진(24) 현영(18)이란 세 자매가 위암말기환자로 두 번이나 대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 홀 아버지 김덕일(52)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습니다. 맏딸은 충남 아산의 한 학교의 지리교사인데 아버지를 모시느라고 매일 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통근하면서도 밝게 살고 있고 둘째 수진이는 아버지가 채소 장사하던 트럭을 몰고 콜프장 케디로 힘든 일을, 셋째 현영이는 아버지 병환 때문에 학교 공부를 쉬고 있으면서도 그 아버지를 사랑하며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세 자매는 그냥 누워만 계셔도 아버지가 너무 좋다고 합니다. 세 자매는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은 딸들입니다.
우리의 부모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려면 내가 내 자식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식들을 보고 "아비 어미 마음을 어쩌면 그렇게도 몰라주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부모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을 잘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내가 자식들에게 하는 말은 사랑이고 부모가 내게 하는 말씀은 잔소리로 여기고 있습니다. 젊은 부부들은 '우리는 나중에 늙어서 자식들을 의지하지 않겠노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지금 부모가 왜 자식을 의지하느냐 하면서 부모를 모시는 게 싫다는 말입니다.
모 정치인이 노인비하발언을 한 후 대한 노인회를 찾아가 엎으려 사과할 때 한 노인이 격한 말로 당신은 안 늙을 것 같소 하던 말이 생생합니다. 우리는 모두 한길을 갑니다. 지금 우리의 부모님들이 걸어가고 있는 인생 길을 머지않아 우리도 걸어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부모님들이 겪고 있는 서러움과 고통, 섭섭함과 고독을 우리도 맛보아야 합니다.
3김 시대의 마지막 인물로 정계를 떠난 김종필씨가 쓴 童詩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울리지 말라. 지내 온 길인 걸. 늙은이를 탓하지 말라. 다 가는 길인 걸 자식들을 크게 나무라지 말라. 우리도 그런 때가 있었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버이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조건적인 것이 아닙니다. 무슨 공경할 만한 일이 꼭 있어서가 아니라 부모님이시기 때문에 그냥 무조건 사랑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1. 부모에 대한 공경심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엡6:1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운 질서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이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골고루 그 빛을 비추듯이 부모는 자식을 한결같이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자식은 부모의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엡6:2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계명을 잘 지키지 않습니다. 젊은이는 부모가 공경스럽지 않은데 어떻게 공경하며 살 수 있느냐고 합니다. 노인들은 요즘 젊은이들은 어른도 몰라본다 아비 어미 알기를 우습게 여긴다고 합니다. 우리가 부모를 바로 공경하지 못하는 이유는 부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건 부모의 사랑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태도를 보십시요. 귀신들린 딸을 고치려는 그 사랑이 얼마나 지극합니까 '개만도 못한 여자'라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자기 딸의 병을 고치려는 일념으로 그 모욕을 참아 내고 있습니다.
명심보감에는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父兮生我(부혜생아)하시고 母兮鞠我(모혜국아)하시니, 哀厓父母(애애부모)여 生我句勞(생애구로)셨다. 欲報深恩(욕보심은)인데, 昊天罔極(호천망극)이로다. 이 말의 뜻은 아버지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가 나를 기르셨다. 슬프고 슬프도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낳으시고 기르시느라 얼마나 애쓰시고 수고하셨던가 그 깊은 은혜를 갚고자 하나 그 은혜가 하늘같이 다함이 없도다는 뜻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부모가 나를 낳고 기르신 공로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안다고 해도 얼마나 지극한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부모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공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집 장가가서 자기 자식 낳아 길러봐야 부모님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알 수가 있다고 합니다.
부모사랑이 부족한 현실은 우리의 잘못된 자녀 사랑 때문입니다. 내 자식만 오냐오냐하면서 자기밖에 모르도록 키웠습니다. 어떻게 하든 공부만 잘 하게 해서 출세시켜야 하겠다는 부모의 지나친 욕심이 자기만 알고 부모와 이웃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부모도 버리고 자기자식까지도 내버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성도는 자녀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교육시켜야 할 것입니다.
2. 부모사랑은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고려장이라는 악습은 인간이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자기는 언제까지나 늙지 않는 줄 알고 늙으신 부모를 업어다 버렸습니다. 지금의 젊은이도 언젠가는 늙어져서 잔소리를 한다고 자식들로부터 구박을 받을 게 틀림없습니다.
지금 생각할 때에는 난 잔소리 안 할 것 같지만 나이가 들면 건망증이 심해져서 조금 전에 한 말도 금방 잊어버리고 또 하게 됩니다. 늙으면 다 그렇게 되는 것을 어떻게 그 길을 피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못된 아이들은 부모가 무엇을 이야기하면 두 손가락으로 귀를 막는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씀이 듣기 싫어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들려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쉐마" 즉 이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면 축복을 받고 오래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부모를 공경할 수 있다면 이미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면서 늙으신 부모님의 형편과 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한 사람입니다. 특히 늙으신 부모님들께 효도하는 것은 상급이 있습니다.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들이 경영하는 것이 잘 됩니까 곧 될 것 같으면서도 잘 안됩니까 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부모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효를 행하고 있습니까 장수를 원합니까 건강하게 살기를 원합니까 부모를 사랑합시다.
혹시 젊음을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 부모를 모시지 않는다면 젊음이 얼마나 오래가겠습니까 물론 부모를 모시고 효도하며 사는 일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부모 섬기는 일이 힘들다고 부모를 업신여기게 되면 우리의 자식 또한 우리를 업신여기게 됩니다. 그래도 좋다는 말입니까
3.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합시다.
우리가 부모에 대해서 불평과 불만을 가지게 되면 우리의 자식들도 분명히 우리에게 불평 불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식들에 대해서 섭섭한 생각을 가지게 되겠지요. 우리가 부모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해 드린 일은 생각하지 않고 말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효자식은 '부모가 내게 해 준 일이 뭐가 있느냐'하면서 왜 나를 낳았느냐 대드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혹시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대(代)에서 그 불행은 끝나야 합니다.
이제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합니다.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찾아보면 부모님께 감사할 일이 있습니다. 생각났으면 마음으로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선 쉬운 대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라는 말부터 해 보세요. 의외로 부모님은 그 말 한마디에 눈물지으며 고마워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실제로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말할 것 없이 인생을 성실하게 사는 일입니다. 무슨 일에든지 열심을 다하고 정성을 다함으로써 사람들에게서나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칭찬 받도록 해야 합니다.
일찍이 송강 정 철 선생은 '어버이가 살아 있을 때에는 그 은혜를 잊고 살다가 그 은혜를 깨닫고 보니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나 듣는 것으로 끝난다면 세상 사람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부모를 모른 체하며 살면 짐승만도 못합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면서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보이는 부모를 잘 섬기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는 없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켜야 합니다.
부모를 사랑하므로 자녀들에게 효행의 본을 보이시기를 바랍니다.
딤전5:4에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잘 섬기는 일은 내 자녀를 진정 아끼고 잘 교육하는 길입니다. 아무리 아는 것이 많고 세상 지위가 높아도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부모를 모르는 사람은 참다운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가정 교육은 학교 교육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말이 아니라 행위를 본받는 실습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 가정입니다. 부모가 하는 대로 자녀들이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며 부모 앞에서는 불효자입니다. 아무쪼록 오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부모를 사랑합시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 실천에 옮김으로써 자식들로부터는 존중을 받고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귀한 상급을 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어버이날은 어버이의 은혜를 헤아리고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 효친의 전통적 미덕을 기리는 날입니다. 산업화, 도시화, 핵가족화로 퇴색하여가는 경로사상을 확산하기 위한 범국민적 기념일입니다. 1956년부터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지키다가 1973년 제정, 공포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해 어버이날로 변경하고 기념일로 정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어버이주일을 지키는 건 사순절의 첫날로부터 넷째 일요일까지 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하여 교회를 찾는 영국, 그리스의 풍습과 1910년 무렵 미국의 한 여성이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흰 카네이션을 나누어 준 일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지난 6일 세상에 이런 일이이란 프로에 경북 봉화 현동리에 사는 최동근씨(51세)는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서지도, 걷지도 못하면서도 중풍병을 앓고 있는 노모 정윤순씨(83세)를 봉양하고 있었습니다. 누워서 어머니를 위해서 식사를 지어 대접을 하고 머리를 감겨드리면서도 잘 못하는 일이 너무 많다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소가 아파 누우면은 소 침쟁이 찾아가고 늙은 부모 병들어도 예사로이 생각하네 열 아들을 기른 부모 하나같이 길렀건만 열 형제가 한 부모를 어이하여 못 섬기나 '하면서 한탄했습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했으며 25절엔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부모를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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