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그리스도인 어버이의 바람
본문
모든 어버이들은 자식에 대한 천륜의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고려장이라는 사회적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나이 많고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부모를 산에 갔다 내버리는 일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삶이 힘들어 젊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하여 입을 덜기 위해 그런 것입니다.
한 집에 고령의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어머니를 고려장 하기 위하여 업고 산으로 올라가는데 어머니가 자꾸 허리를 제끼면서 나뭇가지를 꺾어 던지곤 해서 아들이 제대로 업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이 “어머니 내 등에 딱 붙어 있어야지 왜 몸을 들어서 나뭇가지를 꺾어 던집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어머니는 “나를 고려장하고 자네가 집으로 돌아갈 때 혹시 길을 잃어버릴까 싶어서 길을 찾게 하려고 나뭇가지를 꺾어서 던지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말에 아들은 마음에 감동을 느꼈습니다. 자기는 어머니를 고려장 하려고 업고 가는데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아들이 집에 돌아갈 길을 잃어버릴까 싶어서 나뭇가지를 꺾어 던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고려장 하지 못하고 도로 집으로 모시고 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버릴 수 있어도 부모는 자식을 버릴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1. 자녀들이 구원받고 천국 백성 되는 것
자녀들이 구원받고 천국 백성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것이 크리스천 어버이의 소원입니다. 예수 믿는 부모치고 자식들이 예수 믿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살기 원치 않는 부모가 도대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 16장 31절)고 하였는데 온 집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간절히 소원하는 것이 크리스천 어버이의 마음입니다.
크리스천 어버이들은 자녀들이 성수 주일 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세상으로 갈 때 어버이의 마음은 편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 머리숙여 눈물을 흘리며 “여호와 하나님이여, 자녀들이 성수주일하게 해 주옵소서”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크리스천 어버이들은 자녀들이 말씀을 멀리 하지 않고 기도 생활을 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늘 사랑하고 말씀을 가까이 두고 묵상하며 기도생활할 때 부모의 마음은 기쁘게 됩니다.
또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된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와 여호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 때 부모는 그 마음속에 굉장한 기쁨과 감사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자녀를 위한 기도를 쉬지 않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그 자녀를 위한 간절한 기도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위대한 교부요, 성자요, 신학자요, 기독교의 지도자였던 어거스틴의 어머니는 신앙이 굉장히 깊고 경건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방탕하고 이단인 마니교에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이 회개하기 위해서 주야로 여호와 하나님께 머리숙여 눈물을 흘리고 기도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기도가 싫어서 29세에 로마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로마까지 아들을 따라갔습니다. 아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교회에 와서 눈물을 흘리고 간절히 기도하니까 목사님이 “여인이여,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한 그 자녀는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낙심치 말고 계속 기도하시오”라고 후원해 주고 격려했습니다.
어느날 어거스틴이 정원 나무 밑에 앉아서 묵상을 하고 있는데 이웃집에 있는 어린아이들이 놀면서 한 아이가 “집어서 읽어라. 집어서 읽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음성이 마치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 같아서 마침 옆에 있던 신약 성경을 집어서 어거스틴이 펼쳤습니다. 그 말씀은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 13장 13,14절)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두날 가진 금보다 예리하여 그 영혼을 찔렀습니다. 이 말씀이 레마가 되어서 그 심령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32세에 신학을 공부했고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이 회개하고 주의 종이 된 것에 감사하며 감격중에 세상을 작별했습니다. 그는 수도원을 세워서 제자를 양성하고 이단을 물리치고 참회록 등 70권의 책을 저술 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이 결코 저버리지 아니하고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 아들을 위대한 교부요, 철학자요, 신학자요, 초대교회 지도자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이처럼 자녀를 위한 부모의 간절한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2. 자녀들이 성공적이고 행복하게 되는 것
부모치고 자식이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헐벗고 굶주리기를 원하겠습니까 모든 부모는 자기가 못 먹어도 자식은 먹이고 자기는 못 입어도 자식은 입히고 자기는 공부를 못했어도 자식은 최대로 공부를 시키려고 간절히 노력하고 애를 씁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평생동안 목회를 부지런히 하고 70세가 되어서 은퇴를 하게 되었는데 교회 장로님들이 목사님 앞에 나와서 “목사님 이제 은퇴하시니까 우리 교회에서 목사님께 여생을 지내실 집을 하나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집문서를 꼭 쥐고 계세요. 틀림없이 사업하는 자식들이 와서 집문서를 내 놓으라고 할테니까 그 문서를 내 놓으면 목사님 부부는 노년에 길거리에 앉게 됩니다. 그러므로 꼭 집문서만은 내어 주지 마세요. ”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그 교회에서 은퇴하셨습니다. 은퇴하고 교회가 사준 집에 있는데 맏아들이 사업을 하다가 어려움에 처하니까 아버지에게 와서 “아버지 집문서를 좀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장로님들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처지가 너무나 가엾어 집문서를 내놓았습니다.
잠시만 쓰고 돌려 드리겠다는 말에 집문서를 내놓았으나 아들의 사업이 부도나 파산하고 아들 가족은 미국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 노부부는 길거리에 앉았습니다. 아들은 미국으로 도망을 쳤지만 이 노부부는 갈 곳이 없엇습니다. 그래도 노부부는 자식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큰 상처를 입고 가면 마음속으로는 괴로워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자식 욕을 안합니다.
저는 이런 실화를 읽었습니다. 경찰관이 순찰 도중 쓰레기 더미에서 큰 푸대 하나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살펴보니 중풍에 걸린 노인이 푸대속에 버려졌던 것입니다. 자녀들이 중풍걸린 부모를 버린것이었습니다. 그 결찰관이 노인을 경찰서로 데려와 여러 가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나이, 이름, 버려진 날 등은 다 말하였지만 아들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입을 닫고 말았습니다. 혹시 아들에게 해가 될까 두려워서 말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노인은 양로원에서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아들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입니다. 부모가 위대하고 훌륭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천륜의 사랑 때문입니다.
부모의 가장 큰 기쁨은 자녀의 성공과 행복인 것입니다. 자녀가 성공해서 행복하게 잘 살면 그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굉장히 흡족하고 기쁩니다. 때문에 자녀가 성공적이고 행복한 길을가는 것을 원하는 부모의 심정을 자식들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3. 자녀들이 건강하게 사는 것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지만 건강을 잃어버리면 온통 다 잃어버립니다. 건강이 그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때문에 부모들은 주야로 자식들이 건강하기를 원합니다. 제가 평신도 때 부산에 있는 교회에 나갔는데 그 교회에 피난 온 할머니 한 분이 복스럽게 생긴 30대쯤되는 딸을 데리고 교회에 출석을 했습니다. 그 딸은 초등학교 교사였으나 낙심해서 정신 이상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노모가 그 딸의 손을 잡고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어머니가 밥을 떠 먹여야 합니다. 그리고 노모는 그 딸을 살리기 위해서 금식을 하고, 하루종일 딸의 곁에 있었습니다. 딸의 수발을 해 주어야 하고, 화장실로 데려다 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평신도로 별로 신앙도 없는데 저의 손을 잡으며 “형제여, 내 딸을 위해서 기도를 좀 해주십시오. 착하고 좋은 딸이었는데 이렇게 정신을 잃었습니다. 기도를 좀 해 주십시오”라며 매달려 제가 기도해 준 것이 기억이 납니다.
건강한 자식을 가진 것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자식이 신체불구가 되면 그 부모의 마음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간절한 이 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부모는 또 자식을 어찌하든지 건강하게 잘 살게 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어떤 부모님이 아침에 잠을 자고 있던 31세 되는 아들에게 밥을 안 먹고 늦도록 자면 건강에 해로우니 일어나서 밥을먹으라고 깨우니까 이 아들이 일어나 격분하여 다락방에 있는 흉기를 가지고 어머니를 내리치고 아버지를 때려서 중상을 입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병들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고학년 취업난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반면에 일하지 않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20-30대 젊은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녀들이 건강해서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직장에 잘 나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20세 이하의 청소년 80%가 사회 현실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한국청소년개발원에서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불만의 이유는 빈부 격차가 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80%, 집안과 배경이 중심이 되는 분위기 때문이라는 것이 77%, 정의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77%, 계층에 따른 특위가 있어서가 75% 등 굉장히 많이 불만을 가지고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래가 부정확하고 교육 현실이 입시 위주라 학업 부담이 크고 인격 형성과 개발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부모들은 자녀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사회적으로 건강해서 어찌하든지 잘살기를 간절히 간구하고 그것을 소원하는 것입니다.
4. 자녀들이 부모를 이해해 주는 것
자녀들이 만족할 만큼 잘 해주지 못한 부모의 죄책감을 이해해 달라는 것입니다. 어느 부모는 자식에게 잘해주고 싶지만 만족할 만큼 잘해주지 못합니다. 부모는 자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부모는 마음만 있지 경제적인 사유 때문에 자식을 마음대로 돌봐 줄 수 없습니다. 남처럼 좋은 학교에서 공부 시키고 해외 유학까지 시켜서 훌륭한 자녀로 키우고 싶은 마음 어느 부모가 없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부모가 대다수이므로 거기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장성하여 분가해 나가는 자식들에게 어느 정도 힘이 되어 주고 싶어도 만족스럽게 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부모들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을 자식들이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아무개는 아버지가 몇 억의 상속을 주고, 집을 몇 채를 주고, 사업을 물려주었는데 아버지가 내게 해 준 것이 뭐요 도대체 뭘 해 주었소’라고 묻는다면 아버지의 가슴속에는 피 눈물이 흐릅니다. 어느 집에 자식이 죽었는데 어머니는 통곡을 하고 우는데 아버지가 울지 않으니까 그 부인이 하는 말이 “당신은 자식이 죽어도 그렇게 냉담할 수 있느냐”고 원망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아버지가 탄식을 하고 기침을 하니 입에서 핏덩이가 나왔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말은 안해도 가슴에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 앞에서 부모의 무능력을 통감하고 탄식합니다. 때문에 자식들은 부모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많이 자식들을 도와주고 밀어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못해 주는 부모의 마음이 잘 해 주는 부모의 마음보다 더 고통스럽고 괴롭다는 것을 알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어야 될 것입니다.
5. 자녀들이 부모의 노후를 보살펴 주는 것
자녀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고 여생을 사는 것이 부모들의 소원이지만 어려움에 처할 때 자녀들의 도움을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999년을 기준으로 볼 때 60세 이상 노인 중에 공적 연금을 받는 비율은 5%에 불과합니다. 65세 이상 노인을 모시고 사는 가구 중에 약 10%가 최저 생계이하의 빈궁한 생활을 하고, 특히 노인끼리 사는 가구는 30%가 빈곤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대다수의 가족에서 시부모를 모시거나 돕는 것을 싫어합니다.
미혼 여성의 93%가 ‘시부모를 모시기 싫다’고 응답했습니다. 모 일간지에 게재된 기사는 ‘부모를 모시고 산다’는 아들이 16% 밖에 안됩니다. ‘왜 부모를 원치 않냐’고 물으니 ‘부모를 모시고 있으면 아내가 불편하게 생각하고 아내가 불평을 말하기 때문에 아내와 다투기 싫어서 부모를 모실 수가 없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젊은 여성에게 ‘왜 부모를 모시지 않냐’고 하니까 ‘부모를 모시면 부자연스럽고 심신이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행복과 자유만 누리기를 원하고 부모를 돌보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자녀를 길러서 독립시키고 난 다음 노인들은 오고 갈 때가 없어요.
디모데전서 5장 4절에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녀들이 부모가 베푼 은혜에 보답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가 뭐냐’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낳아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이며 손발이 다 닳도록 수고해서 길러준 것 만도 큰 은혜인 것입니다.
이번에 영산효행상을 시상하는 성도 가운데 한분은 남편과 사별한지 40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면서 자녀를 키우고 50년간 시부모를 모신 분이 있습니다. 또 뇌졸중에 걸린 아내가 10년동안 꼼짝을 못하는데 남편이 대소변을 다 받아 내며 수발하면서도 눈물을 흘리면서 아내에게 잘 못해준 내 마음이 너무나 괴롭다고 하는 그런 좋은 남편도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절로 3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모 섬기는 자에게는 땅에서 잘되게 하고 장수하게 하겠다고 약속을 해 주신 것입니다.
6. 자녀들이 형제간에 서로 우애하는 것
부모에게는 모든 자녀가 다 혈육이기 때문에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근본적인 사랑은 같습니다. 착하게 잘 살면 더 사랑스럽고 못되게 굴면 좀 마음에 밉지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자녀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고 똑같은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들을 키울 때 해야할 것은 자녀의 질서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자가 못났다고 해서 쥐어박고 차자를 높이면 가정의 질서가 엉망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때문에 가정에 질서를 지켜 주어야 그 가정에 화목이 있습니다.
제가 44년동안 목회하면서 보니까 언제나 은혜는 손위에서 밑으로 내려가지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법은 별로 없습니다. 맏이가 언제나 형제들에게 나누어주고 도와주고 돌봐주는 일을 보았지 아래서 위로 맏이를 도와주는 것은 거의 못 보았습니다. 형은 아우를 사랑하고 아우들은 형을 공경하도록 부모가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서 17장 17절에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서로 싸우는 일이 있을지 몰라도 위급한 일을 당하면 그래도 형제는 피를 나누었기 때문에 도움이 될 수가 있습니다. 부모는 형제간의 사랑과 화목이 있을 때에 가장 마음에 안심이 됩니다. 잠언서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라남도 장성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황금제’라는 고개가 있는데 옛날 이 고개에 마음씨 착하고 의좋은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함께 고개길을 가다가 동생이 돌맹이 만한 금덩어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동생이 금덩어리를 들고 너무나 기뻐하니까 형도 같이 기뻐했으나 조금 있다가 서로 보니까 형의 눈길도 달라지고 동생의 눈길도 달라졌습니다. 형이 ‘동생만 없었으면 그 금덩어리가 내 것이 될 것인데’라고 생각했고, 동생은 ‘형만 없었으면 내가 안심하고 이 금을 누릴 것인데’라고 생각했습니다. 둘은 의좋은 형제였지만 욕심이 들어오니까 미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들이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형이 동생에게 “여보게 그 황금 덩어리 강물에 던져 버리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동생이 “형의 말이 옳아요 내가 이 황금 덩어리를 쥐기 전에는 형을 사랑하고 존경했는데 황금 덩어리를 쥐고 보니 형의 눈치도 달라지고 내 마음도 달라져 형이 미워지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황금 덩어리를 물에 던져 버리고 난 다음 그렇게 형과 아우의 마음이 새로워져서 황금보다 더 귀한 우애를 가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 우애는 형제간 만 좋은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것의 조그만 그림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수천배 수만배 수억만배 이상 우리를 사랑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기에 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죄사함을 주시고 믿고 구원을 얻게 하셨을까요
여호와 하나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삼서 1장 2절)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103편 1절로 5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신명기 8장 14절로 16절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 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깨뜨리고 회개시키고 겸비하고 순종하고 복종하게 만든 다음에 복을 주시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소원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잘못되게 해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에 어버이의 자식에 대한 간절한 소원을 자식들이 알고, 어버이를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며 어버이를 잘 모시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길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찌하랴 평생에 고쳐 못 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라는 옛 시인의 말이 있습니다. 세월은 신속히 흘러가고 어버이는 세상 뜨고 또 자기도 백발이 성성하게 되어 세상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버이를 잘 섬기면 내 자식들이 그것을 보고 나를 잘 섬겨 줄 것입니다. 그 후 자손이 또 그를 섬길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현대화되고 삶이 각박해졌다고 할지라도 부모와 자식간의 천륜을 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천륜입니다. 성경에는 ‘부모들이여 자식을 사랑하라’는 말은 한구절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을 보고 ‘네 부모를 사랑하라’는 말은 수없이 많습니다. 자식이 천륜으로 부모를 사랑할 수도 있겠지만 의지로 마음에 결심하고 사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감정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작정을 하고 의지로 결심하고 사랑하는 것이 참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이 부모 자식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집에 고령의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어머니를 고려장 하기 위하여 업고 산으로 올라가는데 어머니가 자꾸 허리를 제끼면서 나뭇가지를 꺾어 던지곤 해서 아들이 제대로 업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이 “어머니 내 등에 딱 붙어 있어야지 왜 몸을 들어서 나뭇가지를 꺾어 던집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어머니는 “나를 고려장하고 자네가 집으로 돌아갈 때 혹시 길을 잃어버릴까 싶어서 길을 찾게 하려고 나뭇가지를 꺾어서 던지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말에 아들은 마음에 감동을 느꼈습니다. 자기는 어머니를 고려장 하려고 업고 가는데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아들이 집에 돌아갈 길을 잃어버릴까 싶어서 나뭇가지를 꺾어 던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고려장 하지 못하고 도로 집으로 모시고 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버릴 수 있어도 부모는 자식을 버릴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1. 자녀들이 구원받고 천국 백성 되는 것
자녀들이 구원받고 천국 백성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것이 크리스천 어버이의 소원입니다. 예수 믿는 부모치고 자식들이 예수 믿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살기 원치 않는 부모가 도대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 16장 31절)고 하였는데 온 집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간절히 소원하는 것이 크리스천 어버이의 마음입니다.
크리스천 어버이들은 자녀들이 성수 주일 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세상으로 갈 때 어버이의 마음은 편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 머리숙여 눈물을 흘리며 “여호와 하나님이여, 자녀들이 성수주일하게 해 주옵소서”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크리스천 어버이들은 자녀들이 말씀을 멀리 하지 않고 기도 생활을 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늘 사랑하고 말씀을 가까이 두고 묵상하며 기도생활할 때 부모의 마음은 기쁘게 됩니다.
또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된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와 여호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 때 부모는 그 마음속에 굉장한 기쁨과 감사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자녀를 위한 기도를 쉬지 않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그 자녀를 위한 간절한 기도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위대한 교부요, 성자요, 신학자요, 기독교의 지도자였던 어거스틴의 어머니는 신앙이 굉장히 깊고 경건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방탕하고 이단인 마니교에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들이 회개하기 위해서 주야로 여호와 하나님께 머리숙여 눈물을 흘리고 기도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기도가 싫어서 29세에 로마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로마까지 아들을 따라갔습니다. 아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교회에 와서 눈물을 흘리고 간절히 기도하니까 목사님이 “여인이여,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한 그 자녀는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낙심치 말고 계속 기도하시오”라고 후원해 주고 격려했습니다.
어느날 어거스틴이 정원 나무 밑에 앉아서 묵상을 하고 있는데 이웃집에 있는 어린아이들이 놀면서 한 아이가 “집어서 읽어라. 집어서 읽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음성이 마치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 같아서 마침 옆에 있던 신약 성경을 집어서 어거스틴이 펼쳤습니다. 그 말씀은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 13장 13,14절)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두날 가진 금보다 예리하여 그 영혼을 찔렀습니다. 이 말씀이 레마가 되어서 그 심령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32세에 신학을 공부했고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이 회개하고 주의 종이 된 것에 감사하며 감격중에 세상을 작별했습니다. 그는 수도원을 세워서 제자를 양성하고 이단을 물리치고 참회록 등 70권의 책을 저술 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이 결코 저버리지 아니하고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 아들을 위대한 교부요, 철학자요, 신학자요, 초대교회 지도자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이처럼 자녀를 위한 부모의 간절한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2. 자녀들이 성공적이고 행복하게 되는 것
부모치고 자식이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헐벗고 굶주리기를 원하겠습니까 모든 부모는 자기가 못 먹어도 자식은 먹이고 자기는 못 입어도 자식은 입히고 자기는 공부를 못했어도 자식은 최대로 공부를 시키려고 간절히 노력하고 애를 씁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평생동안 목회를 부지런히 하고 70세가 되어서 은퇴를 하게 되었는데 교회 장로님들이 목사님 앞에 나와서 “목사님 이제 은퇴하시니까 우리 교회에서 목사님께 여생을 지내실 집을 하나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집문서를 꼭 쥐고 계세요. 틀림없이 사업하는 자식들이 와서 집문서를 내 놓으라고 할테니까 그 문서를 내 놓으면 목사님 부부는 노년에 길거리에 앉게 됩니다. 그러므로 꼭 집문서만은 내어 주지 마세요. ”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그 교회에서 은퇴하셨습니다. 은퇴하고 교회가 사준 집에 있는데 맏아들이 사업을 하다가 어려움에 처하니까 아버지에게 와서 “아버지 집문서를 좀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장로님들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처지가 너무나 가엾어 집문서를 내놓았습니다.
잠시만 쓰고 돌려 드리겠다는 말에 집문서를 내놓았으나 아들의 사업이 부도나 파산하고 아들 가족은 미국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 노부부는 길거리에 앉았습니다. 아들은 미국으로 도망을 쳤지만 이 노부부는 갈 곳이 없엇습니다. 그래도 노부부는 자식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큰 상처를 입고 가면 마음속으로는 괴로워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자식 욕을 안합니다.
저는 이런 실화를 읽었습니다. 경찰관이 순찰 도중 쓰레기 더미에서 큰 푸대 하나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살펴보니 중풍에 걸린 노인이 푸대속에 버려졌던 것입니다. 자녀들이 중풍걸린 부모를 버린것이었습니다. 그 결찰관이 노인을 경찰서로 데려와 여러 가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나이, 이름, 버려진 날 등은 다 말하였지만 아들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입을 닫고 말았습니다. 혹시 아들에게 해가 될까 두려워서 말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노인은 양로원에서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아들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입니다. 부모가 위대하고 훌륭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천륜의 사랑 때문입니다.
부모의 가장 큰 기쁨은 자녀의 성공과 행복인 것입니다. 자녀가 성공해서 행복하게 잘 살면 그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굉장히 흡족하고 기쁩니다. 때문에 자녀가 성공적이고 행복한 길을가는 것을 원하는 부모의 심정을 자식들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3. 자녀들이 건강하게 사는 것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지만 건강을 잃어버리면 온통 다 잃어버립니다. 건강이 그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때문에 부모들은 주야로 자식들이 건강하기를 원합니다. 제가 평신도 때 부산에 있는 교회에 나갔는데 그 교회에 피난 온 할머니 한 분이 복스럽게 생긴 30대쯤되는 딸을 데리고 교회에 출석을 했습니다. 그 딸은 초등학교 교사였으나 낙심해서 정신 이상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노모가 그 딸의 손을 잡고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어머니가 밥을 떠 먹여야 합니다. 그리고 노모는 그 딸을 살리기 위해서 금식을 하고, 하루종일 딸의 곁에 있었습니다. 딸의 수발을 해 주어야 하고, 화장실로 데려다 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평신도로 별로 신앙도 없는데 저의 손을 잡으며 “형제여, 내 딸을 위해서 기도를 좀 해주십시오. 착하고 좋은 딸이었는데 이렇게 정신을 잃었습니다. 기도를 좀 해 주십시오”라며 매달려 제가 기도해 준 것이 기억이 납니다.
건강한 자식을 가진 것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자식이 신체불구가 되면 그 부모의 마음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간절한 이 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부모는 또 자식을 어찌하든지 건강하게 잘 살게 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어떤 부모님이 아침에 잠을 자고 있던 31세 되는 아들에게 밥을 안 먹고 늦도록 자면 건강에 해로우니 일어나서 밥을먹으라고 깨우니까 이 아들이 일어나 격분하여 다락방에 있는 흉기를 가지고 어머니를 내리치고 아버지를 때려서 중상을 입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병들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고학년 취업난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반면에 일하지 않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20-30대 젊은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녀들이 건강해서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직장에 잘 나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20세 이하의 청소년 80%가 사회 현실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한국청소년개발원에서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불만의 이유는 빈부 격차가 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80%, 집안과 배경이 중심이 되는 분위기 때문이라는 것이 77%, 정의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77%, 계층에 따른 특위가 있어서가 75% 등 굉장히 많이 불만을 가지고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래가 부정확하고 교육 현실이 입시 위주라 학업 부담이 크고 인격 형성과 개발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부모들은 자녀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사회적으로 건강해서 어찌하든지 잘살기를 간절히 간구하고 그것을 소원하는 것입니다.
4. 자녀들이 부모를 이해해 주는 것
자녀들이 만족할 만큼 잘 해주지 못한 부모의 죄책감을 이해해 달라는 것입니다. 어느 부모는 자식에게 잘해주고 싶지만 만족할 만큼 잘해주지 못합니다. 부모는 자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부모는 마음만 있지 경제적인 사유 때문에 자식을 마음대로 돌봐 줄 수 없습니다. 남처럼 좋은 학교에서 공부 시키고 해외 유학까지 시켜서 훌륭한 자녀로 키우고 싶은 마음 어느 부모가 없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부모가 대다수이므로 거기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장성하여 분가해 나가는 자식들에게 어느 정도 힘이 되어 주고 싶어도 만족스럽게 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부모들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을 자식들이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아무개는 아버지가 몇 억의 상속을 주고, 집을 몇 채를 주고, 사업을 물려주었는데 아버지가 내게 해 준 것이 뭐요 도대체 뭘 해 주었소’라고 묻는다면 아버지의 가슴속에는 피 눈물이 흐릅니다. 어느 집에 자식이 죽었는데 어머니는 통곡을 하고 우는데 아버지가 울지 않으니까 그 부인이 하는 말이 “당신은 자식이 죽어도 그렇게 냉담할 수 있느냐”고 원망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아버지가 탄식을 하고 기침을 하니 입에서 핏덩이가 나왔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말은 안해도 가슴에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 앞에서 부모의 무능력을 통감하고 탄식합니다. 때문에 자식들은 부모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많이 자식들을 도와주고 밀어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못해 주는 부모의 마음이 잘 해 주는 부모의 마음보다 더 고통스럽고 괴롭다는 것을 알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어야 될 것입니다.
5. 자녀들이 부모의 노후를 보살펴 주는 것
자녀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고 여생을 사는 것이 부모들의 소원이지만 어려움에 처할 때 자녀들의 도움을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999년을 기준으로 볼 때 60세 이상 노인 중에 공적 연금을 받는 비율은 5%에 불과합니다. 65세 이상 노인을 모시고 사는 가구 중에 약 10%가 최저 생계이하의 빈궁한 생활을 하고, 특히 노인끼리 사는 가구는 30%가 빈곤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대다수의 가족에서 시부모를 모시거나 돕는 것을 싫어합니다.
미혼 여성의 93%가 ‘시부모를 모시기 싫다’고 응답했습니다. 모 일간지에 게재된 기사는 ‘부모를 모시고 산다’는 아들이 16% 밖에 안됩니다. ‘왜 부모를 원치 않냐’고 물으니 ‘부모를 모시고 있으면 아내가 불편하게 생각하고 아내가 불평을 말하기 때문에 아내와 다투기 싫어서 부모를 모실 수가 없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젊은 여성에게 ‘왜 부모를 모시지 않냐’고 하니까 ‘부모를 모시면 부자연스럽고 심신이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행복과 자유만 누리기를 원하고 부모를 돌보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자녀를 길러서 독립시키고 난 다음 노인들은 오고 갈 때가 없어요.
디모데전서 5장 4절에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녀들이 부모가 베푼 은혜에 보답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가 뭐냐’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낳아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이며 손발이 다 닳도록 수고해서 길러준 것 만도 큰 은혜인 것입니다.
이번에 영산효행상을 시상하는 성도 가운데 한분은 남편과 사별한지 40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면서 자녀를 키우고 50년간 시부모를 모신 분이 있습니다. 또 뇌졸중에 걸린 아내가 10년동안 꼼짝을 못하는데 남편이 대소변을 다 받아 내며 수발하면서도 눈물을 흘리면서 아내에게 잘 못해준 내 마음이 너무나 괴롭다고 하는 그런 좋은 남편도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절로 3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모 섬기는 자에게는 땅에서 잘되게 하고 장수하게 하겠다고 약속을 해 주신 것입니다.
6. 자녀들이 형제간에 서로 우애하는 것
부모에게는 모든 자녀가 다 혈육이기 때문에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근본적인 사랑은 같습니다. 착하게 잘 살면 더 사랑스럽고 못되게 굴면 좀 마음에 밉지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자녀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고 똑같은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들을 키울 때 해야할 것은 자녀의 질서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자가 못났다고 해서 쥐어박고 차자를 높이면 가정의 질서가 엉망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때문에 가정에 질서를 지켜 주어야 그 가정에 화목이 있습니다.
제가 44년동안 목회하면서 보니까 언제나 은혜는 손위에서 밑으로 내려가지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법은 별로 없습니다. 맏이가 언제나 형제들에게 나누어주고 도와주고 돌봐주는 일을 보았지 아래서 위로 맏이를 도와주는 것은 거의 못 보았습니다. 형은 아우를 사랑하고 아우들은 형을 공경하도록 부모가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서 17장 17절에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서로 싸우는 일이 있을지 몰라도 위급한 일을 당하면 그래도 형제는 피를 나누었기 때문에 도움이 될 수가 있습니다. 부모는 형제간의 사랑과 화목이 있을 때에 가장 마음에 안심이 됩니다. 잠언서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라남도 장성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황금제’라는 고개가 있는데 옛날 이 고개에 마음씨 착하고 의좋은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함께 고개길을 가다가 동생이 돌맹이 만한 금덩어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동생이 금덩어리를 들고 너무나 기뻐하니까 형도 같이 기뻐했으나 조금 있다가 서로 보니까 형의 눈길도 달라지고 동생의 눈길도 달라졌습니다. 형이 ‘동생만 없었으면 그 금덩어리가 내 것이 될 것인데’라고 생각했고, 동생은 ‘형만 없었으면 내가 안심하고 이 금을 누릴 것인데’라고 생각했습니다. 둘은 의좋은 형제였지만 욕심이 들어오니까 미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들이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형이 동생에게 “여보게 그 황금 덩어리 강물에 던져 버리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동생이 “형의 말이 옳아요 내가 이 황금 덩어리를 쥐기 전에는 형을 사랑하고 존경했는데 황금 덩어리를 쥐고 보니 형의 눈치도 달라지고 내 마음도 달라져 형이 미워지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황금 덩어리를 물에 던져 버리고 난 다음 그렇게 형과 아우의 마음이 새로워져서 황금보다 더 귀한 우애를 가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 우애는 형제간 만 좋은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것의 조그만 그림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수천배 수만배 수억만배 이상 우리를 사랑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기에 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죄사함을 주시고 믿고 구원을 얻게 하셨을까요
여호와 하나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삼서 1장 2절)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103편 1절로 5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신명기 8장 14절로 16절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 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깨뜨리고 회개시키고 겸비하고 순종하고 복종하게 만든 다음에 복을 주시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소원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잘못되게 해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에 어버이의 자식에 대한 간절한 소원을 자식들이 알고, 어버이를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며 어버이를 잘 모시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길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찌하랴 평생에 고쳐 못 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라는 옛 시인의 말이 있습니다. 세월은 신속히 흘러가고 어버이는 세상 뜨고 또 자기도 백발이 성성하게 되어 세상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버이를 잘 섬기면 내 자식들이 그것을 보고 나를 잘 섬겨 줄 것입니다. 그 후 자손이 또 그를 섬길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현대화되고 삶이 각박해졌다고 할지라도 부모와 자식간의 천륜을 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천륜입니다. 성경에는 ‘부모들이여 자식을 사랑하라’는 말은 한구절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을 보고 ‘네 부모를 사랑하라’는 말은 수없이 많습니다. 자식이 천륜으로 부모를 사랑할 수도 있겠지만 의지로 마음에 결심하고 사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감정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작정을 하고 의지로 결심하고 사랑하는 것이 참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이 부모 자식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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