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네 부모를 기쁘게 하라
본문
오늘은 어버이 주일이다. 부모님에 대한 효를 다시 한번 반성하며 신앙 안에서 부모에게 효도 할 때 어떠한 복이 임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겠다.
한가지 먼저 생각할 것은 부모라 할 때 나를 낳아 주신 어버이만이 아니며 또한 내가 낳은 자녀만이 자녀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결혼한 일이 없습니다만 아들들이 많았습니다.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이라고 했으며 그 외에도 여려 사람을 믿음으로 낳았다고 했다. 사도 바울은 영적으로, 복음적으로 볼 때 그처럼 훌륭한 아버지는 없다고 본다. 어버이되는 바울은 아들을 훈계하였고 아들은 아버지의 훈계를 들음으로 영육간 효도의 본을 보여 주었다.
고전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않다. "고 하였다. 스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많으나 진정으로 어른들은 다 내 부모요, 어린 청소년들은 다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ex) 우리교회 어느 집사님은 토요 열림마당에 나오는 재가 장애인을 보고 '내 아들입니다. '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이 땅의 모든 청소년들은 다 내 아들들이라'하는 마음과 '이 땅의 모든 노인은 다 내 부모님이다'라고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부모가 세상을 떠나셨으니 이제 나는 효도 할 길이 없다고 하며 지난날에 불효한 것이나 후회하면서 눈물이나 흘리는 자녀는 효도 할 수 없다. 이제 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으면 내 친구의 어머니도 있고 내 이웃의 어머니도 있으며 또한 이 땅에도 버려진 어머니들이 많이 있다. 내 아버지는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이 땅에 아버지의 연배되시는 분은 얼마든지 있다. 좀 더 넓은 의미에서 효도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시간에는 효도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효는 첫째, 목적이 무었이냐가 중요하다. 누구를 위한 효냐하는 것이다. 정말 부모님을 위함이냐 아니면 나를 위함이냐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떤 선행이라도, 아무리 굉장한 일이라도 그 목적이 나 자신에게 있을 때에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비록 구제를 많이 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내가 칭찬을 받기 위해서, 내가 복 받기 위해서, 내 사업의 번창을 위해서 효도를 한다면 그 효도는 완전히 타락된 효도이다.
둘째로, 효는 그 방법이 문제된다. 어떻게 하는 것이 효도인가 흔히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소홀히 하다가도 돌아가시고 나면 야단스럽게 굴면서 효자인 척 한다. 산 부모는 모셔봐야 이득이 별로 없고 죽어서 귀신이 되어야 복을 준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얼마나 잘못된 방법인가 목적이 그릇되고 방법이 잘못되면 미신적인 데로 빠져든다. 우리는 무엇을 효도하며 왜 효도하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효도를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나이 많은 부모님을 자랑으로 생각해야한다. 사람들의 수명이 점점 길어지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노인들의 수는 점점 늘어난다. 그러나 노인이 대접을 받는 사회가 아니라 소외당하고 외롭게 사는 시대이다. 부모님이 오래 살도록 해 드리는 것과 장수하시는 부모님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 효도이다. 엡6:2-3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다. 장수의 복은 효도하는 가정에 주시는 복이다. 따라서 나이 많은 어른들이 있고 그를 모시고 있다는 것은 가문의 자랑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고 있다는 증거다. 늙으신 부모님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나를 위해 평생을 바치시다가 고생하시는 모습이 아무리 초라해 졌다 할지라도 자랑으로 여겨야 한다. 잠6:23 의인의 아버지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했다. 의로운 자녀가 되어야 한다. 아무개 아들, 아무개 자부가 아니냐고 칭송 듣는 것이 효도이다.
성경에는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임을 말씀하신다.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축복권이 있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부모가 자녀에게 복을 빌면 자녀가 복을 받는다. 또한 부모에게 효도하는 그 효도가 바로 복을 받는 기준임을 알아야 한다.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선포 할 수 있고 자식은 그 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자녀에게 복을 빌었다. 이삭도 야곱에게 복을 빌었다. 이삭은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큰아들, 작은아들을 구별 할 수 없었지만 그가 빈 복은 그대로 임했다. 그러므로 장수하신 그분의 자녀됨을 자랑 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적인 개념으로 볼 때도 부모의 죽음이 자식들의 책임이며 세상 떠나게 된 부모님을 잘못 모셔서 돌아가신 것으로 생각하며 죄인의 모습으로 옷을 입는 것이 상복이다. 그런데 요즈음 장례식에 가 보면 상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옛날에는 상주가 죄인이기 때문에 수염도 안깍고 세수도 안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빨간 루즈까지 입술에 바르고 희희닥 거리며 웃지를 않나, 농담을 하지 않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완전히 잘못 되었다.
둘째로, 마음 편하게 모셔야 한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ex) 서울 중앙청 뒷 쪽에 효자동 이라는 동네가 있다. 이곳을 효자동 이라고 부르게 된 유래가 있다고 한다. 옛날 어떤 할아버지가 실수하여 자다가 손자를 깔아 죽였다. 그 할아버지는 자기가 실수하여 손자가 죽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어머니는 시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 염려하여 아미를 몰래 안고 나와서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죽은 아이를 보고 "아 불효 자식아, 할아버지의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만들다니. " 하면서 그 죽은 아이의 뺨을 호되게 때렸다. 그랬더니 죽은 아이가 살아났다. 이 일을 임금님이 듣고서 그 동네를 효자동이라 이름했다는 이야기다. 어쨋든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고 편하게 모시려는 것이 진실된 효도이다.
셋째로,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이 효도이다.
요한3:4에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 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라고 했다. 내 아들이 진실하게 살고 내 딸이 아름답게 사는 그것 보다 더 좋은 소식이 없고 더 즐거운 일이 없다는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모의 말씀에 대해서는 절대적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슨 토론을 열심히 하다가도 "이것이 전승이다. " 하면 절대 따르게 된다. 전승, Tradition이 무엇입니까 전승이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부모님들의 교훈들이다. 나이 많은 어른들이나 부모의 말씀을 업수히 여기지 않고 존중한다. 이것이 신앙의 지혜이며 그 신앙적 효도가 복을 받게 하는 것이다.
자식은 부모를 속여도 부모는 자식을 속이지 않는다. 거짓으로 부모를 기쁘게 해서는 않된다. 불의로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이 효도가 아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효도하고 하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하루 한 두번은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어머니, 우리집에 어머니는 꼭 필요한 분이십니다. 어머니는 꼭 계셔야 합니다. "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부모님 하시는 일이 다 옳고, 그 교훈, 그 뜻이 옳았음을 인정해 드리는 것이 효도요 그리고 기쁨으로 그 길을 따를 때에 그것이 바른 효도이다. 부모님의 귀를 즐거워하는 것이 참된 효도이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참되 효도이다. 의인의 후손은 번성하며 은혜를 입는다. 시 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고 했다. 내가 부모님께 효성을 다하는 것이 마땅하며 나 또한 좋은 부모가 되어 후손에게 복된 길을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형통한 복이라도 당대에 끝나 버리면 큰 비극이지 복이 아니다. 그래서 시 128:6에 가정의 복을 말씀하시면서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찌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찌로다고 하였다. 대를 이어 내려가는 축복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좋은 것을 심어야 한다. 믿음의 씨았을 심어야 한다.
ex)곽 선희목사님 책 가운데 이런 간증이 있다. 이북에서 피난 내려올 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손에는 성경책 한 권만이 달랑 들려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재벌도 부자도 아니지만 하고 싶은데로 구제하고 선교를 한다고 했다. 사실상 한국 교회 가운데 가장 큰 교회 중의 하나이며 소망 교회가 하는 일은 대단하다. 그렇게 된 이유를 곽 목사님은 자기가 선해서가 아니라 다 조상 덕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얻어먹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까 밥도 달라고 오고 쌀도 달라고 오면 할머니께서 손에 잡히는 데로 많이 주시곤 했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을 하시기를 '내가 죽거든 일 주일 동안 거지 잔치를 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돌아 가셨을 때 소를 잡아 일 주일 동안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모두 불러 대접을 했다고 한다.
그 선조들의 신앙과 심어놓은 의로운 행위가 지금 자기에게서 거두고 있다는 얘기다. 내가 지금 부지른히 심어 놓으면 내 후손이 절대로 걸식하지 않는다. 솔직히 유산은 물려주지 않아도 신앙적 유산을 물려주면 어디를 가든지 귀인을 만날 것이다. 복받지 못할 짓만 하면서 복을 달라고 비는 사람만큼 답답한 사람은 없다.
오늘 우리는 부모상이 좀 달라져야 한다.
1) 훌륭한 아버지는 돈 많고 비싼 외제 장난감이나 뭐든지 사 달라는 대로 척 척 사주는 아버지가 아니다. 2) 훌륭한 아버지는 지위가 높아 교장 선생님도 쩔쩔매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작년에 어느 외국 신문에 나온 기사 가운데 자랑스러운 아버지는 다음의 다섯가지 조건을 충족 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첫째, 때로는 엄마를 몰아내라는 것이다. 하루종일 엄마가 아이를 치마폭 속에 넣고 있으면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이따금 엄마를 빼 돌리고 아이들과 아버지가 집안을 어지럽히기도 하고 자기를 끼리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해야한다.
둘째, 아이들을 자연으로 끌어내라는 것이다. 등산도 좋고 야외 천막 생활도 좋다. 그래야 아이들이 순수하고 강하게 자란다.
셋째, 시선을 아이들과 같은 높이에 두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언제나 서서 말하면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아버지에게 눌리게 된다. 그러면 부모 자식간에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넷째, 아침에 얼굴을 맞대라는 것이다. 퇴근이 늦은 아버지가 아이들과 마주앉는 기회는 이른 아침 이 외는 드물다. 그 기회 마저 놓치면 부자간에는 틈이 생기게 된다.
다섯째. 어린이들에게 꿈을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나름대로의 신조와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라고 말씀 드린다.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자녀가 되어야 하며 또 자녀들에게 기쁨을 받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이다.
땅에서 형통하고 장수하는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자자손손 이어지는 가정되기 위해서 효성을 다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란다.
한가지 먼저 생각할 것은 부모라 할 때 나를 낳아 주신 어버이만이 아니며 또한 내가 낳은 자녀만이 자녀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결혼한 일이 없습니다만 아들들이 많았습니다.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이라고 했으며 그 외에도 여려 사람을 믿음으로 낳았다고 했다. 사도 바울은 영적으로, 복음적으로 볼 때 그처럼 훌륭한 아버지는 없다고 본다. 어버이되는 바울은 아들을 훈계하였고 아들은 아버지의 훈계를 들음으로 영육간 효도의 본을 보여 주었다.
고전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않다. "고 하였다. 스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많으나 진정으로 어른들은 다 내 부모요, 어린 청소년들은 다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ex) 우리교회 어느 집사님은 토요 열림마당에 나오는 재가 장애인을 보고 '내 아들입니다. '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이 땅의 모든 청소년들은 다 내 아들들이라'하는 마음과 '이 땅의 모든 노인은 다 내 부모님이다'라고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부모가 세상을 떠나셨으니 이제 나는 효도 할 길이 없다고 하며 지난날에 불효한 것이나 후회하면서 눈물이나 흘리는 자녀는 효도 할 수 없다. 이제 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으면 내 친구의 어머니도 있고 내 이웃의 어머니도 있으며 또한 이 땅에도 버려진 어머니들이 많이 있다. 내 아버지는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이 땅에 아버지의 연배되시는 분은 얼마든지 있다. 좀 더 넓은 의미에서 효도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시간에는 효도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효는 첫째, 목적이 무었이냐가 중요하다. 누구를 위한 효냐하는 것이다. 정말 부모님을 위함이냐 아니면 나를 위함이냐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떤 선행이라도, 아무리 굉장한 일이라도 그 목적이 나 자신에게 있을 때에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비록 구제를 많이 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내가 칭찬을 받기 위해서, 내가 복 받기 위해서, 내 사업의 번창을 위해서 효도를 한다면 그 효도는 완전히 타락된 효도이다.
둘째로, 효는 그 방법이 문제된다. 어떻게 하는 것이 효도인가 흔히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소홀히 하다가도 돌아가시고 나면 야단스럽게 굴면서 효자인 척 한다. 산 부모는 모셔봐야 이득이 별로 없고 죽어서 귀신이 되어야 복을 준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얼마나 잘못된 방법인가 목적이 그릇되고 방법이 잘못되면 미신적인 데로 빠져든다. 우리는 무엇을 효도하며 왜 효도하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효도를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나이 많은 부모님을 자랑으로 생각해야한다. 사람들의 수명이 점점 길어지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노인들의 수는 점점 늘어난다. 그러나 노인이 대접을 받는 사회가 아니라 소외당하고 외롭게 사는 시대이다. 부모님이 오래 살도록 해 드리는 것과 장수하시는 부모님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 효도이다. 엡6:2-3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다. 장수의 복은 효도하는 가정에 주시는 복이다. 따라서 나이 많은 어른들이 있고 그를 모시고 있다는 것은 가문의 자랑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고 있다는 증거다. 늙으신 부모님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나를 위해 평생을 바치시다가 고생하시는 모습이 아무리 초라해 졌다 할지라도 자랑으로 여겨야 한다. 잠6:23 의인의 아버지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했다. 의로운 자녀가 되어야 한다. 아무개 아들, 아무개 자부가 아니냐고 칭송 듣는 것이 효도이다.
성경에는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임을 말씀하신다.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축복권이 있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부모가 자녀에게 복을 빌면 자녀가 복을 받는다. 또한 부모에게 효도하는 그 효도가 바로 복을 받는 기준임을 알아야 한다.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선포 할 수 있고 자식은 그 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자녀에게 복을 빌었다. 이삭도 야곱에게 복을 빌었다. 이삭은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큰아들, 작은아들을 구별 할 수 없었지만 그가 빈 복은 그대로 임했다. 그러므로 장수하신 그분의 자녀됨을 자랑 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적인 개념으로 볼 때도 부모의 죽음이 자식들의 책임이며 세상 떠나게 된 부모님을 잘못 모셔서 돌아가신 것으로 생각하며 죄인의 모습으로 옷을 입는 것이 상복이다. 그런데 요즈음 장례식에 가 보면 상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옛날에는 상주가 죄인이기 때문에 수염도 안깍고 세수도 안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빨간 루즈까지 입술에 바르고 희희닥 거리며 웃지를 않나, 농담을 하지 않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완전히 잘못 되었다.
둘째로, 마음 편하게 모셔야 한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ex) 서울 중앙청 뒷 쪽에 효자동 이라는 동네가 있다. 이곳을 효자동 이라고 부르게 된 유래가 있다고 한다. 옛날 어떤 할아버지가 실수하여 자다가 손자를 깔아 죽였다. 그 할아버지는 자기가 실수하여 손자가 죽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어머니는 시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 염려하여 아미를 몰래 안고 나와서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죽은 아이를 보고 "아 불효 자식아, 할아버지의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만들다니. " 하면서 그 죽은 아이의 뺨을 호되게 때렸다. 그랬더니 죽은 아이가 살아났다. 이 일을 임금님이 듣고서 그 동네를 효자동이라 이름했다는 이야기다. 어쨋든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고 편하게 모시려는 것이 진실된 효도이다.
셋째로,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이 효도이다.
요한3:4에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 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라고 했다. 내 아들이 진실하게 살고 내 딸이 아름답게 사는 그것 보다 더 좋은 소식이 없고 더 즐거운 일이 없다는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모의 말씀에 대해서는 절대적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슨 토론을 열심히 하다가도 "이것이 전승이다. " 하면 절대 따르게 된다. 전승, Tradition이 무엇입니까 전승이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부모님들의 교훈들이다. 나이 많은 어른들이나 부모의 말씀을 업수히 여기지 않고 존중한다. 이것이 신앙의 지혜이며 그 신앙적 효도가 복을 받게 하는 것이다.
자식은 부모를 속여도 부모는 자식을 속이지 않는다. 거짓으로 부모를 기쁘게 해서는 않된다. 불의로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이 효도가 아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효도하고 하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하루 한 두번은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어머니, 우리집에 어머니는 꼭 필요한 분이십니다. 어머니는 꼭 계셔야 합니다. "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부모님 하시는 일이 다 옳고, 그 교훈, 그 뜻이 옳았음을 인정해 드리는 것이 효도요 그리고 기쁨으로 그 길을 따를 때에 그것이 바른 효도이다. 부모님의 귀를 즐거워하는 것이 참된 효도이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참되 효도이다. 의인의 후손은 번성하며 은혜를 입는다. 시 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고 했다. 내가 부모님께 효성을 다하는 것이 마땅하며 나 또한 좋은 부모가 되어 후손에게 복된 길을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형통한 복이라도 당대에 끝나 버리면 큰 비극이지 복이 아니다. 그래서 시 128:6에 가정의 복을 말씀하시면서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찌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찌로다고 하였다. 대를 이어 내려가는 축복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좋은 것을 심어야 한다. 믿음의 씨았을 심어야 한다.
ex)곽 선희목사님 책 가운데 이런 간증이 있다. 이북에서 피난 내려올 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손에는 성경책 한 권만이 달랑 들려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재벌도 부자도 아니지만 하고 싶은데로 구제하고 선교를 한다고 했다. 사실상 한국 교회 가운데 가장 큰 교회 중의 하나이며 소망 교회가 하는 일은 대단하다. 그렇게 된 이유를 곽 목사님은 자기가 선해서가 아니라 다 조상 덕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얻어먹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까 밥도 달라고 오고 쌀도 달라고 오면 할머니께서 손에 잡히는 데로 많이 주시곤 했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을 하시기를 '내가 죽거든 일 주일 동안 거지 잔치를 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돌아 가셨을 때 소를 잡아 일 주일 동안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모두 불러 대접을 했다고 한다.
그 선조들의 신앙과 심어놓은 의로운 행위가 지금 자기에게서 거두고 있다는 얘기다. 내가 지금 부지른히 심어 놓으면 내 후손이 절대로 걸식하지 않는다. 솔직히 유산은 물려주지 않아도 신앙적 유산을 물려주면 어디를 가든지 귀인을 만날 것이다. 복받지 못할 짓만 하면서 복을 달라고 비는 사람만큼 답답한 사람은 없다.
오늘 우리는 부모상이 좀 달라져야 한다.
1) 훌륭한 아버지는 돈 많고 비싼 외제 장난감이나 뭐든지 사 달라는 대로 척 척 사주는 아버지가 아니다. 2) 훌륭한 아버지는 지위가 높아 교장 선생님도 쩔쩔매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작년에 어느 외국 신문에 나온 기사 가운데 자랑스러운 아버지는 다음의 다섯가지 조건을 충족 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첫째, 때로는 엄마를 몰아내라는 것이다. 하루종일 엄마가 아이를 치마폭 속에 넣고 있으면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이따금 엄마를 빼 돌리고 아이들과 아버지가 집안을 어지럽히기도 하고 자기를 끼리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해야한다.
둘째, 아이들을 자연으로 끌어내라는 것이다. 등산도 좋고 야외 천막 생활도 좋다. 그래야 아이들이 순수하고 강하게 자란다.
셋째, 시선을 아이들과 같은 높이에 두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언제나 서서 말하면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아버지에게 눌리게 된다. 그러면 부모 자식간에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넷째, 아침에 얼굴을 맞대라는 것이다. 퇴근이 늦은 아버지가 아이들과 마주앉는 기회는 이른 아침 이 외는 드물다. 그 기회 마저 놓치면 부자간에는 틈이 생기게 된다.
다섯째. 어린이들에게 꿈을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나름대로의 신조와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라고 말씀 드린다.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자녀가 되어야 하며 또 자녀들에게 기쁨을 받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이다.
땅에서 형통하고 장수하는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자자손손 이어지는 가정되기 위해서 효성을 다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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