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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부모님께 마음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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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옛날에 명절 때마다 가장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부모님 살아 생전에 효도할 일은 다 제쳐놓고 있다가
돌아가신 다음에 제사 드리느라 야단을 하는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유교를 잘 믿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20대 중반에 공자의 논어를 읽고
그러한 모습은 공자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논어 선진편 11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어느 날 계로가 제사를 통해 귀신 섬기는 일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러나 공자가 말했습니다.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
그러자 계로가 한번 더 질문을 했습니다.
"감히 묻겠습니다.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그 장면을 보면 공자는 살아 생전에 부모님을 잘 섬길 것을 얘기했지
죽은 다음에 제사를 통해 조상을 섬기는 것은 공자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기독교에도 우리 나라 샤머니즘과 연합된 이상한 기독교가 있듯이
우리 나라 유교도 원래 유교와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특히 제사 문제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세히 보면 아주 계산적입니다.
부모들이 돈이 있으면 자녀들 사이에 충성 경쟁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쯤이면 그 충성경쟁이 가열됩니다.
일전에 있었던 모 재벌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런데 반대로 부모들이 돈이 없으면 정말 찬밥 신세입니다.
게다가 생활력까지 떨어져 귀찮은 존재가 되면 구석방으로 내몹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부모가 죽으면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언제 구석방으로 내몰았느냐는 듯이
다시 죽은 부모에 대해서 열심히 제사를 드립니다.
어렸을 때 큰집에서 그런 모습을 보고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논어를 보고 그 이유를 대략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공자가 제사를 통해 귀신을 섬기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는 것은 유교의 전통이 아니라
무엇인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제사에는 조상의 덕을 기리는 순수한 마음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제사를 드릴 때 내면적인 다른 마음,
특별히 2가지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1) 하나는 죽어 귀신이 된 조상으로부터 은덕을 입고자 하는 마음과
2) 또 하나는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세상에서 부모님 말을 듣지 않고
구석방으로 내몬 것에 대해 벌을 받을 것이라는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자세히 보면 조상 제사까지도
자기의 복을 위한 도구로 삼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자가 "어찌 귀신을 섬길 수가 있느냐"고 반문한 것입니다.
죽기 전에 구석방으로 몰아놓고
죽은 후에는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제사상을 차려 놓은 다음에
제사상 앞의 귀신으로 화려하게 부활시키는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자, 그런 모습과
순수하게 부모의 생전의 삶과 교훈을 기억하고 나누면서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추도예배와 어느 것이 좋다고 여기십니까
우리 말고 돌아가신 부모님 입장에서도 추도예배를 원할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돌아가신 후에 제사를 잘 드리려고 하지 말고
살아생전에 사심 없이 부모님을 기쁘게 하려는 자세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효도를 하는 문제에서 다음 문제를 항상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 첫째는 누구를 위한 효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정말 부모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나를 위한 것인가 하는 문제에 정직해야 합니다.
만약 그 효도의 목적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2) 둘째는 언제 효도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부모님 돌아가신 다음에 본격적으로 효자 노릇 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님이 물려줄 것이 많을 때 효도 경쟁을 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없을 때 효도하는 것이 더욱 뜻깊은 효도가 될 것입니다.
3) 셋째는 어떻게 효도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어떻게 효도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우리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효도를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오늘 말씀의 핵심 포인트는 25절 말씀입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
효도의 기본은 부모님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부모님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부모님을 즐겁게 하는 네 가지 권면을 합니다.
1. 지혜로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15절).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24절 말씀 후반부를 보십시오.
"...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
자식이 지혜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부모가 즐겁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마음이란 무슨 마음일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지혜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19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정로로 인도할지니라. "
바른 길을 가고자 하는 의로운 마음이 바로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24절 말씀도 그런 말씀입니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
이 말씀도 의로움이 지혜임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로운 모습을 보이면 부모들은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부모은 자식이 무엇이 많은 것보다 바른 길을 가는 것을 더 원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바른 길을 가는 것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지혜에 관한 유명한 정의가 나와 있습니다.
시편 90편 12절인데, 그 구절에서 모세가 이런 기도를 합니다. (구약 869쪽)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
이 구절에서는 날을 계수하는 것이 지혜라고 말합니다.
날을 계수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우리 부모님은 우리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원하십니다.
바른 길을 땀흘려 가심으로 부모님을 즐겁게 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2. 정직한 입술을 가져야 합니다(16절).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부모님에게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말을 하지 말고
부모님에게는 오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어떤 불효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왜 저를 낳아서 이렇게 고생시킵니까"
"부모님이 저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이것은 최대의 거짓말이고, 최대의 불효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것을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부모님이 우리를 키워준 것에 대한 최대한의 고마움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부모가 원망스러워도 그것을 잊으면 절대 되지 않습니다.
사실상 사람처럼 부모의 신세를 지는 존재가 있습니까
동물들은 낳으면 거의 스스로 자라고 걷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30세까지는 키워야 사람 구실을 할까 말까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원래 신세를 많이 지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네 살 이전은 기억을 못합니다.
그런데 정말 고마운 일은 그때 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머리가 조금 컸다고 그것을 잊으면 되겠습니까
머리가 커서는 안되고 그 머리에 옳은 생각이 들어가야 합니다.
때로 부모의 사랑이 표현이나 방법으로 자녀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부모의 마음 중심은 언제나 선한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입술에서는 항상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뉘앙스, 고마움의 표현이 흘러나와야 합니다.
그처럼 감사가 넘치는 우리의 언어생활은 부모님을 즐겁게 만듭니다.
3.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17절).
17-18절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해야 장래가 있고 소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대로 부모님들은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고 살아 오셨습니다.
그런데결론적으로 사람이 잘되기 위해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부모들은
자녀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볼 때 가장 기뻐하실 것입니다.
진실하게 믿는 부모들이 무엇을 가장 원합니까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 것을 원합니다.
부모의 그러한 소원은 얼마나 훌륭한 소원이지 모르겠습니다.
자녀를 향한 우리의 소원은 바로 이런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이고,
여호와 하나님을 가진 자는 모든 것을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알기에 믿는 부모들이 자녀가 여호와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불 때
가장 기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4. 부모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26절).
부모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말입니까
26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
우리가 부모님께 마음을 드린다는 것은
부모님의 길을 즐거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님의 길을 즐거워한다는 말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말입니다.
요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가 자녀 중심적 사상입니다.
부모의 말이 도대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21장 17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
그리고 신명기 21장 18-21절 말씀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면 성읍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이라. "
성경은 이처럼 효를 무섭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에 효가 없어서 안 믿는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훈보다 무서운 효에 대한 교훈이 있겠습니까
골로새서 3장 20절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
순종을 하는데 모든 일에 순종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순종에도 차원이 있습니다.
1) 첫째 차원의 순종은 노예적 순종습니다. 1차원적 순종입니다.
상대가 무서워서 억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할 수밖에 없어서 순종하는 것이 바로 노예적 순종입니다.
2) 둘째 차원의 순종은 계산적 순종입니다.
순종하면 내게 돌아오는 이득이 있다는 것 때문에 순종합니다.
사회학자들은 우리 나라의 효 사상에 이것이 많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효 자체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군왕에게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서 효도를 가르쳤다는 말도 있습니다.
다른 계산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저의가 있다는 말입니다.
별로 바람직하지 않는 순종의 모습입니다.
3) 셋째, 절대적 순종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이 절대적 순종입니다.
절대적으로 순종하라는 말은 좋은 일에만 순종하지 말고,
어처구니없는 일에도 순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에서 제일 효도한 사람은 이삭입니다.
모리아 산상에서 120세가 넘은 부모 아브라함이
20세가 넘은 아들을 죽이려고 했을 때 그는 충분히 뿌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없이 죽음의 제단 위에 눕습니다. 이것이 절대적 순종입니다.
주님께서도 그렇게 절대적으로 순종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8절 말씀에 주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8장 11절에서 주님은
아버지께서 주는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죽음의 잔 앞에서 주님은 순종합니다. 이것이 절대적 순종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순종은 이런 순종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내리기 전에
여러 가지를 보시지만 부모에게 순종하는가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보십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사람은 큰 축복을 얻습니다.
축복은 어디에서 옵니까
대개 인내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그런데 인내와 가장 밀접한 것이 바로 부모님께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사람을 자세히 보십시오.
인내와 순종을 배웠기 때문에 어느 공동체에 가서도 잘 붙어있습니다.
그리고 순종하고 헌신하니까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공동체에서 가장 축복 받는 사람이 됩니다.
에베소서 6장 2-3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
성경은 복의 원리에 대해서 분명히 말합니다.
보약을 먹어야 잘되고 장수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효자가 되어야 잘되고 건강하고, 장수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효도해야 일이 잘되고 장수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불효하는 가정에는 절대로 참된 의미의 복이 없습니다.
불효하는 사람은 본인도 복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효하면서 만사가 복되기를 바라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복 받기를 원한다면 부모님께 효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축복이 목적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에서
부모님께 마음을 드리고 부모님을 즐겁게 하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큰 일은 못해도 불효자는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효자가 되는 것은 최대의 성공일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성공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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