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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첫 여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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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를 지나시다가 야롭의 우물곁에서쉬게 되었습니다. 그 때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좀 달라고 하시니 사마리아 여인이 대답하기를 "당신은 유대이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네게 물을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명수를 주었으니라. " 여자가 말하기를 "이 우물은 우리 조상 야곱의 것인데 당신이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이 물을 먹는 자마다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말하기를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여기 물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소. " 이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고 했습니다. 이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는 부정한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의대화 속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하고 신앙의 문제에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메시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 때 예쉬께서 비로소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라고 하시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가기다리던 메시야, 그리스도임을 발견했습니다. 그 여인은 너무나 감격하였습니다.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동이를 버려둔 채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인의 말을 듣고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갔습니다. 그리고 많은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요청에 응하여 거기서 이들과 유하면서 전도하여 사마리아 동네가 믿게 되었습니다.
1. 첫 전도자 사마리아 여인 우리는 흔히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도를 맨 먼저 시작한 줄로 압니다. 실은 제자들이 아니라 이방 여인이었던 죄 많고 부정한 사마리아 여인이 첫 전도자였음을 본문에서 발견합니다. 그의 전도로 사마리아 동네에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훈련을 받은 일도 없었습니다. 다만 심층 깊이 메시야를기다리고 있던 작은 신앙심이 일깨움을 받았을 때 그 감격을 억제할수 없어 복음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비록 자기의 생활은 부정하였으나,예수 앞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부끄러움 없이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샘물보다 보이지 아니하는 영생의 물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더 귀하게 여겼고, 그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작은 겨자씨 같은 믿음이 자란 것입니다. 가만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대로 나가 전했습니다. 이것이 신아인이면 갖는 공통된 자세입니다. 내가 깨달은 구원에 대하여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2. 전도는 신앙인의 의무 사마리아 여인처럼 예수를 주로 믿고 신앙을 고백하게 되면 저절로일어나는 것이 전도의 행동입니다. 누가 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예수님을 전하고 싶은 것이 신앙인의 행동입니다. 의무라기보다는 자 연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는 믿는 사람 전체의 것입니다. 신학을 공부하거나 전문적 훈련을 받은 사람이 하는 독점물이 아닙니다. 물론 전문적인 기관을 설립하여 하는 일이 더욱 좋은 효과를 거둘 수있습니다. 그러나 전도는 우리 믿는 신자가 전체의 의무입니다. 이런 의무가 땅끝까지 전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여 온 세계가 주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도가 언제나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의 무서운 박해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 복음이 들어온 사연을 보면 많은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지 아니하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전도이기도합니다. 많은 순교자들의 피의 전도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입니다. 아직도 예수를 생명의 주로 알지 못하는 이웃에게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전도의 사명을 담당하여야 합니다.
3. 전도는 생활이다. 전도가 꼭 입으로 전도해야 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한국 초대교회의 전도를 보면 "예수천당"을 외쳤던 최봉석 목사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직도 예수가 누군지 생전 들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 말이 잘먹혀들게 되어 예수믿어야 천당간다는 이 한마디가 많은 전도의 효과를 거두어들였습니다. 이제와서는 예수 믿으면 구원받고 천국에 간다는 것은 믿지 않는 삼도 다아는 상식이 되어버렸습니다. 메스컴의 발달로 산간벽지까지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이제는 말로 전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좋은방법은 나의 행동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어느날 성 프란시스코는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오늘은 거리에 나가전도하자고 하고는 제자들을 이끌고 거리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성 프란시스코는 온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거닐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되돌아왔습니다. 제자들이 전도하려 거리에 나가자 하고는한 말씀도 하지 않는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때 성 프란시스코가대답하시기를 "우리는 행동으로 전도하였느니라!"하고 대답했습니다. 우리의 눈동자 손놀림, 표정 하나 하나가 모두 남에게 말없는 말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천사와 같은 말을 한다고 할찌라도 행위가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됩니다. 성경을 아무리 유창하게 줄줄이 외고잘 알아 설교를 아무리 잘한다 할찌라도 행위가 따르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공든 탑이 행동하나 때문에 와르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이제는 말보다 실천을 할 때입니다. 행동의 실천이 바로 사랑입니다. 기독교의 덕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그것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세속적인 사랑과 다릅니다. 본능적 사랑과도 다릅니다. 이 사랑의 의미는 십자가에서 발견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원수까지도 용서해 주셨던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도저히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사랑을 향하여노력할 따름입니다. 흉내를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예수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서 생명까지 주신것처럼 우리도 이웃에게 유익한 것을 주는 생활을 합시다.
말로도 주고, 정신적으로도 주고, 물질로도 줍시다. 그래서 같이 사는 것이 바로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리고 용서를 해줍시다. 이해해 줍시다. 미움의두터운 담을 헐어 버립시다. 갈등의 담도 해소해 버립시다. 우리의 마 음 문을 넓게 열어 놓읍시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고 하는 말이 오늘 이 세대를 사는우리들이 더우기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실천해야 할 전도의 방법이며 신자가 행해야 할 전도의 사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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