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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오이코스 전도 전략

본문

로이모스의 사람이 예수를 전염시키는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이 되려면 전도 대상을 분명하게 설정해야 합니다.
우선 내가 친분을 맺고 있는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이 우선적입니다.
전도에 있어서 내가 친분을 맺고 있는 사람을 우리는 오이코스라고 합니다. 나의 오이코스가 누구이며, 무엇 하는 사람이며,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인 것을 분명히 알아야 전략을 세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나의 오이코스 전도 전략을 꼭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에 대하여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이유 가운데 한가지가 예수쟁이들은 말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 잘한다는 의미는 말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막상 화제가 기독교인의 사명이라고 하는 전도로 바뀌면
그 청산유수 같은 말이 눈 깜짝할 사이에 메말라 버립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독교인이라고 하지만
전도에 대한 강하고 적극적인 동기부여가 되어있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왜 교회에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가지고 있다할찌라도 잘못된 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전염시키는 전도의 동기가 무엇입니까
왜 전도해야 하고 전도를 하고 있습니까
1. 먼저 우리의 전도의 동기 부여가 무엇입니까
(1) 구원의 감격에 대한 보답입니다. 시116:12-13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로다
전도란 무엇보다도
나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는 다 할렐루야 아멘 잘 하지요
그러나 저 네거리, 시장거리에서, 또는 이웃에게 직장동료에게
나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요
여호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것이 바로 은혜에 대한 보답인 것입니다.
(2) 예수님의 계명과 지상명령입니다. 2
예수님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마22:37-39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존 스탓트 목사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약2:15-16절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라는 말씀 속에 여기에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라는 말은
무슨 믿음이 있다 하겠느냐 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쓸 것을 주는 것이라고 하며
이 쓸 것은 육체를 위해서라기보다 오히려 영혼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전염시킨다는 것은
우리 이웃 사람들의 인생뿐만이 아니라
그의 영원까지 바꾸어 놓는 일이라 는 것을 알 때
진정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답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의 가장 근본적인 동기는 바로 명령에 대한 복종입니다.
마28:19-20에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 아버지의 명령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우리는 이것을 예수님의 지상명령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들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복종한다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혹 복종이라 하니 거부감을 일으킬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이 복종은 영광스러운 특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성경이 제시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입니다.
마6: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호와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사람
1) 부름 받은 사람
2) 성경이 제시한 삶의 목표를 자신의 삶의 목표로 삼은 사람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한 삶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바로 마6:33절 말씀입니다.
먼저 교회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어지는 일이 우선이 되어 있는 사람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통해 역사를 나타내실 줄 믿습니다.
그러니 삶의 초점을 복음전파에 맞추어 놓으면 여호와 하나님이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4) 불신자의 유일한 구원의 길은 전도이기 때문입니다. 3
고전1:21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그런데 25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여호와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꼭 전도의 방법을 통해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5) 전도는 신앙생활의 열매입니다.
요15:8절에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이 과실은 바로 전도를 말합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 충격요법~! 전도 못하는 사람은 교회의 과똑똑이 !
존 스탓트 목사는 전도하지 않는 죄 란 책에서
 전도 없는 종교보다 차라리 종교없는 전도를 우리는 더 좋아해야만 한다 그 만큼 전도를 낳지 못하는 예배는 위선이다 라고 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은 전도에 동기부여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동기부여가 되어 있으면
그 다음은 어떻게 전도할 것인가에 대해 전략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오이코스 전도니 로이모스 사람이니 하는 것은
바로 전도의 전략적인 면을 보여주는 말들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예수님의 전도전략을 통해
오늘 우리 오이코스 전도전략에 적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님이 제자 마태를 부르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 동네를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라 하는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고 합니다.
전도도 이렇게 예수님처럼
헤이! Come on ! 하면 그냥 따라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전도는 이와 같이 오라 하면 따라 오는 것입니다.
단 아무나 따라 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예비한 영혼이 있습니다.
전도는 여호와 하나님의 예비한 영혼을 우리에게 부쳐주는 것입니다..
마치 여리고 성에 기생 라합같이 여호와 하나님이 예비한 영혼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우리와 다른 것은 4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비한 영혼을 아시고 오라 한 것이고
우리는 예비한 영혼인지 아닌지 모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마태는 본래 이름이 알패오의 아들 레위라고 합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 이름이 바뀌어진 것 같습니다.
마태가 세관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세관원으로 그 일에 종사했다는 것을 말하는데 당시 이곳 세관은
유대를 속국으로 하고 있던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곳으로
세금의 부당 징수 등으로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가장 악질적인 인물로 평가했습니다.
이런 세관원 마태에게 나를 좇으라는 말은
당시 유대인의 시각으로는 상당히 충격적인 선포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마태에게 나를 좇으라 하니 일어나 좇으니라는 표현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당장 좇았다는 의미를 가진 말로써
신앙의 결단은 이렇게 긴급성을 요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마태가 얼마나 자신의 삶을 청산하고 예수님을 따랐는지는
눅5:28절에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좇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눅5:29절에 큰 잔치를 베풀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구원의 감격이 넘쳤든지 예수님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 큰 잔치야 말로 오늘 구원받은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감격으로 예배드리고
구원의 감격으로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마태가 예수님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푸니
많은 사람들이 그 잔치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잔치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리와
유대인들의 시각으로는 죄인 취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지배계층에서는
세리뿐만이 아니라 창기 병자 심지어 가난한 자들까지도 죄인 취급을 하였습니다.
즉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들은 다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소외된 계층들 이들은 헬라어로 오클로스라 했는데 예수님은 바로 오클로스의 친구로 오셨던 것입니다.
오늘 마태의 집에 예수님 주변에 왜 세리와 죄인들이 모여들었는가는
눅14:15절 이하의 예수님의 비유에서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눅14:에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해 놓고 5
종들을 보내어 많은 사람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잔치할 시간이 되었는데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사양하기를 1) 나는 밭을 샀으매
2)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3) 나는 장가들었으므로 하고 초청에 거절합니다.
그럴 때 주인이 종에게 하는 말이 눅14:21절에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 오라 고 합니다. 바로 오클로스들을 말합니다. 밭을 샀다는 것은 물질적인 욕망에 붙들린 사람을 말합니다.
소 다섯 겨리를 샀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장가들었다는 말은 가정에 아주 가정적인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잔치에 초청해도 잘 오지 않습니다.
즉 전도해도 잘 받아 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클로스들
즉 당시 지배계층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은
바로 잔치에 초청해야할 대상들인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마음에 품을 오이코스의 일 순위는 바로 세리와 죄인 같은 세상에서 소외를 당한 사람들이라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셨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전도 대상자 제일순위가 누구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를 전염시키는 사람들이란 책에 보면 저자 빌 하우벨스 목사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칠 작정이라면
가장 효과적인 접근법은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의
친교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가장 믿음직하고 인정이 넘치며 희생적인 그리스챤도 실제로 이들과 긴밀히 접촉하지 않으면 아무런 영향력도 줄 수 없다 예수님이 오클로스의 친구였다면
오늘 우리도 소외된 자들이 우리의 오이코스 전도의 일순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광경을 본 바리새인들 저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바리새인이 누구입니까
저들은 율법의 수호자로서 종교적 열정이 남다른 지도자들입니다.
바리새인의 특징은 자기의 의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자들로
자기들이 제일 잘 믿는다는 자부심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당시 바리새인들은 6
세리와 죄인 또는 이방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더럽히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지금 예수님의 행동이 결코 달갑게 여겨질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하는 말이 11절에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고
예수님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패거리들과는
함께 어울리는 사람은 의인이 될 수가 없다는 논리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바리새인과 같이 이런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의 자부심은 대단한데 죄인의 친구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를 믿는 교인들은 없습니까
오늘 교회 안에 나타난 만성 고질병이 한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럭 워렌 목사의 새들백 교회 이야기라는 책 속에 나오는데
바로 Koinonitis 즉 Koinonia(교제)란 말과 tis(염증)이란 말의 합성 조어로서 우리말로 하면 교제염이란 말입니다.
믿는 사람 우리끼리는 잘 믿고 좋은데
정작 전도의 대상인 불신자들에게 관심이 없는 우리끼리 신앙
우리끼리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 영적 고질병이라는 것입니다.
왜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비난합니까
그것은 바로 보는 관점차이에서 오는 잘못된 고정관념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전염시키려면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과 접촉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들과 관계를 조성하려는 노력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많이 있습니다.
약4:4절에 세상과 벗 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라는 구절을 듣고 자라온 교인들은 세상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가 말하는 세상은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서 사람들이 범한 죄와 악을 일컫는 말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세상 사람들이 행하는 나쁜 일을 사랑하고
저들이 관여하는 죄에 빠지지 말라는 말이지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도 우리의 삶 가운데 마태의 파티를 열어라 는 것입니다.
그것도 큰잔치를 열었습니다. 7
당시 마태의 파티는 전대미문의 파티였습니다.
잔치의 규묘가 커서가 아니라
마태는 신앙인 친구와 믿지 않는 친구들을 한자리에 초대했습니다.
우리 내일 교회의 예친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친모임이 코이노니티스에 걸리면 시간이 지나면
예친모임이 생명력을 잃고 맙니다.
예친모임이 무엇입니까
 개방적이고 복음전파에 초점을 맞춘 소그룹으로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예수 안에서 형제된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우리끼리만 모이면 살아있는 예친모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친모임 역시 마태의 파티를 여는 모임이 되시기 바랍니다.
왜 우리가 마태의 파티를 열어야 합니까
예수님이 바로 오클로스의 친구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의 비난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 당시 흔히 통용되던 속담을 그들에게 들이대셨는데
12절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있느니라
13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는 것입니다.
의원이 있어야 할 자리는 병자들 곁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에
죄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자신의 의무인 것을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예수님의 초점은 죄인을 구원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바리새인들의 관심은 예수님의 관심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교회 안에 우리의 실정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죄인을 불러 구원하는데 있는데
오늘 우리의 관심이 우리가 얼마나 축복 받아
더 부유해지고 출세하고 더 큰 교회를 짓고 더 큰 사업을 하느냐에 있다면 이것은 분명히 교회의 본질과는 다른 것입니다.
왜 당시 잘 믿는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비난합니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3절에 예수님은 구약 호6:6절을 인용하면서 너희는 가서 배우라고 합니다.
이 구절은 당시 상용어로서 랍비들이 성경을 더 공부해야할 필요성이 있는 사람들을 깨우치고자 썼던 상투어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에 능통하다고 자위하면서도 8
여호와 종교의 핵심인 여호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곡해하고
외식과 형식에만 매달렸던 것입니다.
즉 이들은 모양만 갖추면 종교적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서 배우라
 내가 긍훌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는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이 말은 제사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종교적인 의식보다는
소외된 자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선적으로 여기신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제사의 핵심은 긍휼과 사랑인 것을 말합니다
즉 우리가 교회 와서 예배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예배의 중심이 바로 죄인을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인 것을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오이코스를 전도하는데 관계를 방해하는 요소가 무엇인가를 알고 바리새인과 같은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방해 요소가 무엇입니까
 먼저 관계를 파괴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ㄱ. 말세적 현상(딤후3:1-5)
ㄴ. 비교의식을 가지고 대함
ㄷ. 성급한 지나친 기대
ㄹ. 물질중심 ㅁ. 자존심 ㅂ. 무관심
 관계회복을 위한 제언
ㄱ. 먼저 기도하라. ㄴ. 영혼을 사랑하라.
ㄷ. 관심을 가져라(친구나 돕는 자가 되라)
ㄹ. 착한 행실을 보여주라.
결론
오이코스 전도전략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오이코스의 제일순위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클로스의 친구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도 불신자들을 접촉하되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소외된 자들을 먼저 접촉하고
저들에게 관심과 도움을 주어 예수를 전염시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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