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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능력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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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희 교회 교우 중 한 분이 항암 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지난 주간에는 4차 항암치료를 받고자 다시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사실 이분은 아주 실력있는 의학자입니다. 그래서 같은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여러 사람들이 병실에 찾아와 자기들이 걸려 있는 난소암에 대하여 이것저것 물어보았습니다. 바로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강력히 복음을 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분은 자신이 불교 집안인데도 불구하고 퇴원하면 교회에 나가겠다고 결신하였다는 것입니다.
참 대단하십니다.
자신도 암에 걸려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니 얼마나 역동적인 신자인가요!
우리가 성령 충만할수록 전도를 쉽게 합니다. 나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나는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우리 지구촌교회는 계속해서 전도에 불이 붙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전도를 쉽게 생각해야 합니다. 어렵거나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도는 단순한 것입니다. 단순할수록 힘이 있습니다.
1)전도는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한 때 전도를 철학적인 지식주입으로 시도했다가 크게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복잡하게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고백합니다(1절, 4절).
사실 그는 고린도전서를 쓰기 전, 그 당시 최고 지성의 도시였던 아테네에서 지식중심의 전도를 하였다가 별 효과를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사도행전 17장).
바울이 아테네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이 지식인이라는 사실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복음을 너무나 화려한 수사학적 언어로 포장하여 전했던 것입니다. 의외로 이런 철학적인 접근은 전도의 결실을 별로 거두지 못했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변증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씁쓸한 실패를 경험하고 아테네를 떠났습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바울은 전도를 단순하게 해야 한다고 주지시켜주고 있습니다(본문 1절).
형제 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비밀을 전할 때에, 훌륭한 말이나 지혜로 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도는 철학적 달변이나 수사학적 웅변, 그럴싸한 궤변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전도의 능력은 세련된 화술이나 언어구사의 매력에 있지도 않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전도는 지식전달(Information)이 아니라, 변화(Transformation)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복음이 가장 강력한 변화의 결단을 가져다줍니다. 복음만이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궤변과 전도는 다릅니다. 지적 동의와 영적 변화는 근본이 다릅니다.
전도는 상대방의 인생에 영적 변화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열망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2)전도는 가슴으로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지금 고린도교회 교우들을 향하여 뜨거운 가슴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본문 1-3절을 읽어보면 지금도 우리는 그의 불타는 가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도는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는 복음전도에 얼마나 불타는 열정을 품고 있었든지 이렇게 간증합니다(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뜨거운 가슴의 열정이 솟아오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지난 주간에 어떤 글을 읽으며 가슴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떤 젊은 목회자가 한 연세 높으신 선배 목사님을 찾아가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목사님, 설교를 갈수록 잘해야 하는데 잘 안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고 자문을 구했습니다.
"자네, 얼마나 목회를 했나" 하고 그분이 반문하십니다.
"한 10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설교가 더 힘들어지고, 교인들도 점점 은혜를 못 받는 것 같아요.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말, 설교를 잘하고 싶은가" "예, 그렇습니다. "
"그러면 내가 하나 물어보겠네. 자네가 설교할 때에 내심 '설교 잘한다'는 평을 듣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아, 그럼요. " "그렇다면 틀렸네.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노인 목사님의 대답이 제 가슴에 큰 도전을 주었습니다.
"자네가 설교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저들을 구원할까, 어떻게 하면 저들에게 은혜를 줄까, 이 생각만 있어야지, 설교 잘한다 하는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순간 이미 그 설교는 죽 쑨 것이 되네. "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전도는 가슴으로 하는 것입니다. 가슴이 뜨거워야 합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가슴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지금 영혼을 사랑하는 가슴을 분출하고 있습니다. 구령의 열정이 그의 가슴을 더욱 뜨겁게 타오르도록 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디든지 가서,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든지 순수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우리가 전도하지 못하는 이유를 일곱 가지로 분석하여 정의해줍니다.
①무조건 전도하기 싫기 때문이다. 남을 귀찮게 하지 않는 교양있는 신자로 자부하려는 교만 때문이다
②왜 꼭 예수만 믿어야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구원론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③구원에 대한 확실한 경험이나 감격이 없기 때문이다.
④성령을 받지 못해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처럼 영적으로 무기력한 신자가 많다
⑤기독교인답게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없는 것이다
⑥기도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할수록 구원받지 못한 자를 위해 간구하게 된다
⑦영혼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영혼을 사랑하여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뜨거운 가슴이 솟구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도록 자주 자주 눈물로 호소하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20:19,31. 고후 2:4).
오늘 우리에게 이런 순수한 눈물이 있기를 원합니다. 눈물은 돌 같은 마음도 녹입니다.
전도는 논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가 예수 믿고 변화 받도록 갈망하는 뜨거운 가슴으로 해야 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 내용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바울의 전도는 오직 한가지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밖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바울은 지식이 짧아서 십자가 이야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신앙관입니다. 그는 오직 십자가의 사랑만을 외쳤습니다.
우선 고린도전서 1장 18절만 보더라도 너무나 확연합니다.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십자가의 복음은 놀라운 능력이 있음을 믿습니다. 누구든지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구원받게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또 22절부터 25절을 보십시다.
유대 사람들은 표적을 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하되,
십자가에 달리신 분으로 전합니다. 이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여호와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한꺼번에 수천 명을 변화시켰던 설교의 핵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 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뜨거운 가슴으로 전하기만 하면 놀라운 구원의 열매를 맺게 될 줄 믿습니다.
"빈손 들고 앞에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 샘에 나가니 맘을 씻어주소서"
2. 성령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전도는 참 신비한 것입니다. 말은 우리가 하지만, 역사는 성령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도를 해보면 압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든지 성경공부나 설교를 하면 언제나 신비로운 현상을 체험하게 됩니다.
전혀 들을 것 같지 않던 사람이 귀담아 듣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집이나 입장을 바꿉니다.
우리의 예상 밖으로 놀라운 변화를 나타냅니다. 희한한 일들이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체험이 많았기에 이렇게 힘찬 간증을 합니다(4-5절).
나의 말과 나의 설교는 지혜에서 나온 그럴듯한 말로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보여준 증거로
한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둔 것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장사는 말 가지고 할 수 있으나, 전도는 말만으로는 안됩니다.
교육은 유창한 달변이나 화술의 기교, 수사학적인 미사여구로 청중의 이해를 요구할 수 있으나, 전도는 영혼을 거듭나게 하는 것이요, 심령을 새롭게 하는 것이므로 성령님의 능력이 역사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말로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성령님이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으셔야 합니다.
위대한 설교자 스펄젼 목사님은 이런 말을 합니다.
"복음의 능력은 전도자의 웅변에 달려 있지 않다. 만일 웅변에 있다면 전도는 사람이 믿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복음의 능력은 설교자의 학식에 달려있지 않다. 만일 그렇다면 전도는 인간의 지혜로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의 혀가 녹이 슬 때까지 전하고 허파가 다 소모되어 죽을 때까지 증거한다 할지라도 성령의 능력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여 영혼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 "
그렇습니다.
전도는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은 어느 누구든지 거듭나게 하십니다. 새롭게 하십니다. 술 주정꾼을 성령 충만한 자로, 강도를 정직한 자로, 세속적인 자를 거룩한 자로, 비관적인 자를 행복한 자로, 태만한 자를 근면한 자로, 냉냉한 자를 따뜻한 자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성령님께서 놀라운 능력으로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사도행전의 스토리를 읽어볼수록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것은 신자들이 전도할 때 성령님께서 크게 역사하시는 모습입니다. 복음 전도와 성령의 역사는 병행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가슴으로 전도할 때 성령님의 능력이 강하게 역사할 줄 믿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전도할 때 성령님께서는 기적적인 방법으로도 큰 역사를 일으켜주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아프리카의 정글 선교사 D. Livingstone이 한번은 밀림 지대를 지나다가 큰 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어떤 사자들보다 거구인 그 사자는 리빙스턴을 마주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 생각하여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자기 영혼을 부탁하는 마지막 기도를 드리는데, 그 사자가 앞발로 리빙스턴을 내려치므로 잠깐 혼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정신을 차려서 눈을 떠보니 그 사자가 리빙스턴 자신을 우두커니 쳐다만 보다가 어슬렁어슬렁 그냥 가더래요.
멀리서 손에 땀을 쥐며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원주민들은 갑자기 곁으로 달려오더니, "이 사람은 사자도 힘을 못쓰는 특별한 사람이라"며 당신이 믿고 엎드려 기도하는 그 여호와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여 전도의 큰 역사가 일어났다는 간증을 들려줍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전도할수록 성령님의 큰 역사가 더 많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사도행전은 두 가지 복된 현상을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첫째는 신자들이 전도할수록 더욱 성령 충만해지는 모습이요,
 둘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전도할수록 성령님의 강한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지구촌교회 위에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성령님의 역사가 크게 나타나는 능력전도가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교회 나와 예수 믿고 구원받아 교회가 힘있게 부흥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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