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나가서 데려오라!!
본문
“불교는 불행하고(석가는 자기 혼자 깨닫겠다고 부인과 자식을 버리고 가출하여 가정불화를 조장), 유교는 유감스럽고(부모님 살아 계실 때는 좋은 것 한번 대접안하더니 돌아가시고 나서 맛있는 것 다 차려 놓고 제사 지내고 나서는 지가 다 먹고), 이슬람교는 이상하고(여자는 공부도 안 시키고, 한 남자가 네 여자를 데리고 살고, 더운 나라에서 긴 천으로 온 몸을 치렁치렁 감고, 머리에 항상 수건을 쓰고, 이슬람을 신봉 안하면 무조건 죽이고, 테러하고), 무당은 무식하고,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요 잔치의 종교” 입니다.
성경에는 잔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마지막 날에 있을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나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갑니다. 끝까지 이 믿음으로 살면 주님은 나의 신랑, 나는 주의 신부가 되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 기독교는 잔치 집과 같은 즐거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16절). 여기 큰 잔치는 천국 잔치를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 되도다 하니(15절) 그 다음에 큰 잔치, 즉 천국 잔치 이야기가 나옵니다. 큰 잔치를 베푼 “어떤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 되었나이다(17절). 이 잔치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잔치가 있다고 손님들에게 청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종들을 잔치할 시간에 종을 보내어 참여하라고 말하게 합니다.
또 이 잔치는 모든 것이 준비된 잔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것이 준비된 잔치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죄인들에게 구원의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온 인류의 구원의 길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천국 잔치는 구원의 잔치입니다. 천국 잔치에 참여하면 영원한 축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준비된 잔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누구나 구원의 잔치에 초청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그러나 불행하게도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이 다 일치하게 사양하였습니다(18절). 사양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 사람은 밭을 사서 가보아야겠다고 합니다(18절). 두 번째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사서 시험하려 간다고 합니다(19절). 세 번째 사람은 장가를 들어서 가지 못하겠다고 합니다(20절).
여호와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을 천국의 복락에 동참시키기 위하여 기꺼이 큰 잔치를 마련하시고 초청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대답은 이런 저런 변명을 하며 가지 못하겠노라(20절). 여호와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영양식으로 살이 포동포동 쪄있습니다. 호화로운 연회에도 자주 참석합니다. 너무나 잘 먹어서 비만증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비둔한 현대인들은 육체에 비하여 영혼은 메말라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저희 요구한 것은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시106:15).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잔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하고 사양합니다.
이미 초청하여 놓아서 잔치에 와야 할 사람들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불참한다는 말을 들은 주인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종이 돌아와서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21절). 고대 중동에서 잔치에 초청했는데 핑계를 대며 무례하게 거절하는 것은 도전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잔치에 초청했는데 핑계를 대며 오지 않는 것은 인간관계를 노골적으로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주인은 분노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때로 변명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는 아무런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도 변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모두가 자신의 입장에서 변명하고 핑계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변명이란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해 지어낸 것입니다.
초청한 사람들이 변명하며, 핑계를 대며 초청에 응하지 않자 주인은 어떻게 말합니까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와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21절).
여러분! 복음은 빈부귀천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초청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아무나 오면 됩니다. 우리는 나가서 누구에게나, 아무에게나 천국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초청해야 합니다. 내가 전도하려고 마음먹은 그 사람이 거절하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세요 아무리 초청해도 뺀질뺀질 거리는 사람은 일단 좀 놔두고 다른 사람을 전도하여 천국잔치에 초청해야 합니다.
정말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습니다.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혀 종노릇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알지 못해서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래가 불안해서 고 점 보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평안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 거리나 고통만 당하며 멸망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잔치에 와야 할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인간의 불행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담해 주셨습니다(요1:20). 예수님이 죄로 인한 모든 저주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나타난 이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기필코 전해야 합니다.
종은 시내와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는 명령을 주인의 명령을 따라 열심히 사람들을 초청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빈자리가 있습니다. 종이 가로되 주인이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22절).
여기 오히려 자리가 있다는 말은 아직도 빈자리가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빈자리가 많은 잔치는 잔치의 기쁨을 반감하고 맙니다. 텅 빈 예식장은 신혼의 기쁨을 앗아가고 맙니다. 빈자리는 사람들을 쓸쓸하게 합니다. 비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을 슬프게 합니다.
아직도 빈자리가 있다는 종의 보고에 주인의 처방은 무엇입니까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23절).
여러분! 우리는 내 집을 채우라는 주님의 말씀에 아멘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잔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 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같이 합시다 주님! 제가 이 빈자리를 채우겠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빈자리를 채우는 사명을 감당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23절).
여기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집을 채우기 위한 세 가지 과정이 제시됩니다. 1)길과 산울가로 나가라고 합니다. 여기 강조점은 나가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길거리로 나가야 합니다. 이웃집으로 가야 합니다. 친구 집으로 친척집으로 찾아나서야 합니다.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벼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말씀대로 나간 자에게 전도할 사람을 주실 줄 믿습니다. 나가면 있고 안 나가면 없다!
우리는 지금껏 찾아오기만 기다리며 가만히 있지는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나가서 데려오라고 말씀합니다. 이제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나가서 데려와야 합니다. 나가야 합니다.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그리고 데려와야 합니다.
어렸을 적 두 다리 뻗고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뭔가 내 요구 사항이 있는데 엄마 아버지가 안 들어주면 두발을 뻗고 웁니다. 지금 제 심정이 그렇습니다. 1월 8일부터 지금까지 계속 베스트를 정하고, 관계 맺기를 강조하고, 전도에 대해서 그렇게 말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여러분들 앞에서 두 다리를 뻗고 정말 울고 싶어라… 이 한 주간 어디에라도 나가서, 누구라도 한 사람씩 데리고 와야 합니다.
2)사람을 강권하여야 합니다. 강권한다는 말은 강제나 폭력으로가 아닙니다. 강한 설득과 눈물겨운 호소와 정성어린 기도를 의미합니다. 강권한다는 것은 강한 의지와 설득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 우리는 내가 본 것과 받은 것과 믿는 것을 가지고 강권하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강권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 한 주간 강한 의지와 설득으로 복음을 전합시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 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복음전해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히야 합니다. 예수 믿고 풍성한 삶을 사는 길을 전해야 합니다.
3)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합니다. 여기 중요한 과정이 나옵니다. 사람을 강한 의지로 설득하여 교회로 데려와야 합니다. “예수 믿읍시다” 로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교회나 나가십시오” 아닙니다. 전도지 한 장 나누어 주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요지는 나가서 강권하여 주님의 집 예찬교회까지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분명한 주님의 음성을 들었으니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비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을 채우기 위하여 일어서십시오. 졸고 있는 자도 일어섭시다.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나갑시다. 주님은 발이 없고, 입이 없고, 손이 없는 자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발이 있으니 일어나라 했습니다. 입이 있으니 강권하라 했습니다. 손이 있으니 데려오라 한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을 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왜 강권하여 데려와야 합니까 1)이 세상에 끄는 대로 따라다니는 부평초 같은 인생이 많기 때문입니다. 2)주저하고 망설이고 있는 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3)더러는 몰라서 방황하고 있는 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4)아직도 빈자리가 많기 때문입니다.
꼭 가야할 길을 가다가 바다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배를 타고라도 가야 합니다. 꼭 가야할 길을 가다 산이 나오면 산을 넘어가야 합니다. 전도는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입니다. 어렵다고 그만 두면 안 됩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해도 전도는 꼭 해야 합니다. 전도하지 않는 것은 영적인 살인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화려합니다. 하지만 성대한 축제 뒤에 예수를 잃어버린 요셉과 마리아처럼 오늘날 교회는 지금 뭔가를 잃고 있습니다. 교회가 잃어버린 것은 영혼에 대한 헝그리 정신 입니다. 우리는 이제 전도하기 위해 아파트를 누벼야 합니다. 부송동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하여 한 사람을 주님께로 데려와 천국잔치에 참여시켜야 합니다.
영혼에 대한 헝그리 정신으로 나가야 합니다. 영혼에 대한 헝그리 정신으로 강권해야 합니다. 영혼에 대한 헝그리 정신으로 사람을 데려와야 합니다. 영혼에 대한 헝그리 정신으로 사람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집으로 데리고 와 천국 잔치에 동참시켜야 합니다. 아멘!
성경에는 잔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마지막 날에 있을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나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갑니다. 끝까지 이 믿음으로 살면 주님은 나의 신랑, 나는 주의 신부가 되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 기독교는 잔치 집과 같은 즐거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16절). 여기 큰 잔치는 천국 잔치를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 되도다 하니(15절) 그 다음에 큰 잔치, 즉 천국 잔치 이야기가 나옵니다. 큰 잔치를 베푼 “어떤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 되었나이다(17절). 이 잔치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잔치가 있다고 손님들에게 청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종들을 잔치할 시간에 종을 보내어 참여하라고 말하게 합니다.
또 이 잔치는 모든 것이 준비된 잔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것이 준비된 잔치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죄인들에게 구원의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온 인류의 구원의 길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천국 잔치는 구원의 잔치입니다. 천국 잔치에 참여하면 영원한 축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준비된 잔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누구나 구원의 잔치에 초청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그러나 불행하게도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이 다 일치하게 사양하였습니다(18절). 사양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 사람은 밭을 사서 가보아야겠다고 합니다(18절). 두 번째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사서 시험하려 간다고 합니다(19절). 세 번째 사람은 장가를 들어서 가지 못하겠다고 합니다(20절).
여호와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을 천국의 복락에 동참시키기 위하여 기꺼이 큰 잔치를 마련하시고 초청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대답은 이런 저런 변명을 하며 가지 못하겠노라(20절). 여호와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영양식으로 살이 포동포동 쪄있습니다. 호화로운 연회에도 자주 참석합니다. 너무나 잘 먹어서 비만증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비둔한 현대인들은 육체에 비하여 영혼은 메말라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저희 요구한 것은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시106:15).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잔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하고 사양합니다.
이미 초청하여 놓아서 잔치에 와야 할 사람들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불참한다는 말을 들은 주인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종이 돌아와서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21절). 고대 중동에서 잔치에 초청했는데 핑계를 대며 무례하게 거절하는 것은 도전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잔치에 초청했는데 핑계를 대며 오지 않는 것은 인간관계를 노골적으로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주인은 분노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때로 변명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는 아무런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도 변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모두가 자신의 입장에서 변명하고 핑계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변명이란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해 지어낸 것입니다.
초청한 사람들이 변명하며, 핑계를 대며 초청에 응하지 않자 주인은 어떻게 말합니까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와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21절).
여러분! 복음은 빈부귀천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초청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아무나 오면 됩니다. 우리는 나가서 누구에게나, 아무에게나 천국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초청해야 합니다. 내가 전도하려고 마음먹은 그 사람이 거절하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세요 아무리 초청해도 뺀질뺀질 거리는 사람은 일단 좀 놔두고 다른 사람을 전도하여 천국잔치에 초청해야 합니다.
정말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습니다.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혀 종노릇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알지 못해서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래가 불안해서 고 점 보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평안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 거리나 고통만 당하며 멸망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잔치에 와야 할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인간의 불행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담해 주셨습니다(요1:20). 예수님이 죄로 인한 모든 저주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나타난 이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기필코 전해야 합니다.
종은 시내와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는 명령을 주인의 명령을 따라 열심히 사람들을 초청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빈자리가 있습니다. 종이 가로되 주인이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22절).
여기 오히려 자리가 있다는 말은 아직도 빈자리가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빈자리가 많은 잔치는 잔치의 기쁨을 반감하고 맙니다. 텅 빈 예식장은 신혼의 기쁨을 앗아가고 맙니다. 빈자리는 사람들을 쓸쓸하게 합니다. 비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을 슬프게 합니다.
아직도 빈자리가 있다는 종의 보고에 주인의 처방은 무엇입니까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23절).
여러분! 우리는 내 집을 채우라는 주님의 말씀에 아멘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잔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 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같이 합시다 주님! 제가 이 빈자리를 채우겠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빈자리를 채우는 사명을 감당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23절).
여기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집을 채우기 위한 세 가지 과정이 제시됩니다. 1)길과 산울가로 나가라고 합니다. 여기 강조점은 나가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길거리로 나가야 합니다. 이웃집으로 가야 합니다. 친구 집으로 친척집으로 찾아나서야 합니다.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벼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말씀대로 나간 자에게 전도할 사람을 주실 줄 믿습니다. 나가면 있고 안 나가면 없다!
우리는 지금껏 찾아오기만 기다리며 가만히 있지는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나가서 데려오라고 말씀합니다. 이제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나가서 데려와야 합니다. 나가야 합니다.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그리고 데려와야 합니다.
어렸을 적 두 다리 뻗고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뭔가 내 요구 사항이 있는데 엄마 아버지가 안 들어주면 두발을 뻗고 웁니다. 지금 제 심정이 그렇습니다. 1월 8일부터 지금까지 계속 베스트를 정하고, 관계 맺기를 강조하고, 전도에 대해서 그렇게 말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여러분들 앞에서 두 다리를 뻗고 정말 울고 싶어라… 이 한 주간 어디에라도 나가서, 누구라도 한 사람씩 데리고 와야 합니다.
2)사람을 강권하여야 합니다. 강권한다는 말은 강제나 폭력으로가 아닙니다. 강한 설득과 눈물겨운 호소와 정성어린 기도를 의미합니다. 강권한다는 것은 강한 의지와 설득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 우리는 내가 본 것과 받은 것과 믿는 것을 가지고 강권하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강권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 한 주간 강한 의지와 설득으로 복음을 전합시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 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복음전해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히야 합니다. 예수 믿고 풍성한 삶을 사는 길을 전해야 합니다.
3)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합니다. 여기 중요한 과정이 나옵니다. 사람을 강한 의지로 설득하여 교회로 데려와야 합니다. “예수 믿읍시다” 로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교회나 나가십시오” 아닙니다. 전도지 한 장 나누어 주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요지는 나가서 강권하여 주님의 집 예찬교회까지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분명한 주님의 음성을 들었으니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비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을 채우기 위하여 일어서십시오. 졸고 있는 자도 일어섭시다.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나갑시다. 주님은 발이 없고, 입이 없고, 손이 없는 자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발이 있으니 일어나라 했습니다. 입이 있으니 강권하라 했습니다. 손이 있으니 데려오라 한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을 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왜 강권하여 데려와야 합니까 1)이 세상에 끄는 대로 따라다니는 부평초 같은 인생이 많기 때문입니다. 2)주저하고 망설이고 있는 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3)더러는 몰라서 방황하고 있는 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4)아직도 빈자리가 많기 때문입니다.
꼭 가야할 길을 가다가 바다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배를 타고라도 가야 합니다. 꼭 가야할 길을 가다 산이 나오면 산을 넘어가야 합니다. 전도는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입니다. 어렵다고 그만 두면 안 됩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해도 전도는 꼭 해야 합니다. 전도하지 않는 것은 영적인 살인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화려합니다. 하지만 성대한 축제 뒤에 예수를 잃어버린 요셉과 마리아처럼 오늘날 교회는 지금 뭔가를 잃고 있습니다. 교회가 잃어버린 것은 영혼에 대한 헝그리 정신 입니다. 우리는 이제 전도하기 위해 아파트를 누벼야 합니다. 부송동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하여 한 사람을 주님께로 데려와 천국잔치에 참여시켜야 합니다.
영혼에 대한 헝그리 정신으로 나가야 합니다. 영혼에 대한 헝그리 정신으로 강권해야 합니다. 영혼에 대한 헝그리 정신으로 사람을 데려와야 합니다. 영혼에 대한 헝그리 정신으로 사람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집으로 데리고 와 천국 잔치에 동참시켜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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