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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강권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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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힘은 참 놀랍습니다. 놀랍다가 못해 사실은 무서운 것입니다.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사랑 그것은 참으로 숭고한 사랑이고 가정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위기의 순간에서 자식만은 살려야 하겠다는 어머니의 본능적인 행동이 많은 기적을 만들어내었던 것을 봅니다. 그러기에 사랑의 힘은 놀랍기도 하고 때로는 엄청난 힘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사랑을 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흔히 사랑에 한번 빠지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라고 할 정도이지 않습니까. "자기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남들 눈에는 그렇게 밉게 보이는 것도 자기 눈에는 얼마나 귀엽게 보이는지, 또 남들 눈에 그것이 별 것이 아닌 것 같아도 자기 눈에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답고 예쁜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아름다운 사랑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아마 이 시간에 고개를 끄덕 끄덕 하시는 분은 모두 그런 사랑의 경험해 보신 분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자기의 형상대로 자기의 모습대로 인간을 지으시고 축복 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음을 받은 인간과 당신이 지으신 모든 세계를 보시니 얼마나 좋으셨던지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냥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해도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을 보시니 너무 좋아서 "심히" 좋았더라 라고 말씀을 하신 것으로 보아서 얼마나 좋았으면, 얼마나 사랑하였으면 그렇게까지 말씀 하셨을까 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저도 결혼해서 처음 아이를 낳았는데 그 첫 딸이 얼마나 예쁘던지 정말 가슴이 벅찰 정도로 좋더라고요. 우는 것도 예쁘고, 잠자는 것도 예쁘고, 먹는 것도 얼마나 예쁜지 더 기가 막힌 것은 아빠! 아빠! 라고 말을 하기 시작하니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더라 고요…정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 라고 하신 그 감동을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이것이 다 사랑에 눈이 멀면 그렇게 되나봅니다. 사랑에 푹 빠지면 사람이 그렇게 변한다고 합니다. 참 이상한 것은 멀쩡한 사람도 사랑에 빠지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을 봅니다.
1936년 1월 영국의 에드워드8세가 부왕인 조지 5세의 뒤를 이어 영국국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41세의 노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해 12월에 라디오를 통해서 성명을 발표하고 국왕의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영국의 국왕 자리가 좋고 화려하기는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이 없이는 국왕으로서 막중한 임무를 감당 할 수가 없기에 나는 국왕의 자리를 내어놓는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스트리아로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떠나버렸던 것입니다. 그 여인은 심프슨이라는 여인이었습니다. 영국왕실 법에서 볼 때 심프슨 부인은 혼인에 결격사유가 있었기에 결혼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에드워드8세는 사랑을 얻기 위해서 그는 왕위를 버렸습니다. 이것을 가르쳐 사람들은 "세기의 사랑" 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 이것이 보통 정신으로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이것은 사랑하니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맨 정신으로는 참 어렵고 힘든 결정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힘은 놀랍고 정말 위대합니다. 사랑의 힘이라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인간들이 범죄 하여 죄를 짓게 되니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결국 여호와 하나님은 범죄 한 인간들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포기 할 수가 없어서 당신의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고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아무리 다른 아이를 사랑한다고 해도 내 아이를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그 아이를 사랑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참 어렵고 힘든 문제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아들을 죽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정말 대단한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엄청난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입은 우리들입니다. 감격스럽지 않습니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오르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이 엄청난 사랑을 받은 우리들도 뭔가 여호와 하나님께 보답을 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무엇을 해 드려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이 여호와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의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의 소식을 듣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은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랑을 전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다른 사람들도 이것을 듣고 깨달아야 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전파해야 합니다.
성경은 아름답도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발은 아름답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서도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준비해 놓고서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기 위해서 종들을 통해서 일일이 초청장을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는 이 부분을 임금이 아들의 혼인잔치를 위하여 종들을 보내 사람들을 초청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잔치 초청은 좀 특이합니다. 우리는 알고 지내는 사람들 앞으로 청첩장을 보내고 잔치에 참석해 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참석할 사람들을 대충 계산해서 음식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잔치를 계획하면 먼저 종들을 통해서 몇 월 몇 일에 우리 집에서 잔치가 있습니다. 참석해 주십시오. 라고 1차 통보를 합니다. 그러면 통보를 받은 사람들이 듣고서 참석여부를 결정해 줍니다. 참석하겠다는 통보를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서 잔치 준비가 완전히 끝이 난 상태에서 다시 종들을 보내서 2차로 통보를 합니다. 이제 잔치준비가 끝이 났으니 참석하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잔치준비는 대부분 1차 통보에서 참석을 하겠다고 동의한 사람들을 보고서 음식을 준비하고 모든 것을 계획하기 때문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준비를 합니다. 그러니 1차 통보에서 참석을 하겠다고 동의한 사람들은 2차 통보를 받고서는 반드시 참석을 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초청에 응한다고 대답을 한 사람이 두 번째 초청에서 참석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을 향한 선전포고를 하는 경우와 다름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사람들은 "다 일치하게" 2차 통보에서 참석을 하지 못하겠다고 대답을 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치하게 라는 말은 "만장일치"로 "한결같이"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이들이 서로 거절하기로 계획을 한 것 같이 모두 거절을 하니 잔치 집에서는 지금 엄청난 사태가 발생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잔치 집에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우리는 그 주인의 행동을 보아서 알 수 가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잔치 집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주인이 준비한 잔치는 천국의 기쁨이 있는 구원의 자리입니다.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의 자리준비하고서 이스라엘백성들을 불러모으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을 초청하였으나 그들은 한결같이 그 은혜를 거부하였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사람은 밭을 샀다는 것입니다. 사실 밭을 살 때는 먼저 내가 밭에 나가보고 밭을 점검한 후에 사는 것이 당연한데 오늘 이 사람은 그런 절차를 하지 않고 밭을 샀는지 아니면 초청을 거절하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밭에 나가보아야 한다고 초청을 거절 한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샀는데 소가 일을 잘 하는지 시험을 해 보아야 하기 때문에 참석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소 다섯 겨리라면 10마리의 소를 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 역시 소를 살 때는 그 소가 일을 잘 하는 소인지 아니면 게으른 소인지를 다 알고서 구입을 할텐데 그것 때문에 결혼식에 참석을 하겠다고 약속을 해 놓고서 이렇게 약속을 파기하는 것은 더더욱 납득이 가지 않는 것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장가를 들었으니 참석을 못 하겠다는 것입니다. 신명기24:5절에서도 결혼한 남자는 1년간 군에 나가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사가 달린 군에는 나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결혼잔치에 참여 하는 것은 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즐거움을 깨뜨릴 수 없다는 것으로 참석을 거부하고 있는데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들이 점점 뻔뻔스러워져 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사람은 참석을 못하는 "나를 용서하라" 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사람도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라고 하였는데 세 번째 사람은 "나는 가지 못하겠노라" 라고 당돌하게 거절하는 것을 봅니다. 내 육신의 즐거움과 쾌락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자리에 가지 못하겠노라 라고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주인이 화가 나서 종들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과 지체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데려와서 자리를 채우라고 하였으나 오히려 자리가 남아있으니 이제는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하는 것을 봅니다.
"시내의 거리"라는 말은 다양한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넓은 길을 말합니다. "골목"이라는 말을 원어에는 "뤼메"라고 하였는데 이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은밀하게 다니는 길을 말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종들이 나가서 초청한 사람들은 가난해서 결혼도 하지 못하고, 소도 사지 못하고, 잔치에 초청함도 받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이들을 초청하였으나 그럼에도 자리가 많이 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인이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집을 채워라! 하는 것을 봅니다. 여기서 길이라면 이것은 우리 환경에서는 지방도나 국도 같은 도시밖에 도로를 말하는 것이고 산울가라는 말은 울타리 밖을 말합니다. 성밖에는 먼길을 가기 위해서 길을 떠나는 사람들, 아니면 가난하여 성밖에서 살수밖에 없는 소외된 많은 사람들을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강권하여" 라는 말은 물리적으로, 강압적인 힘을 동원해서하라 것이 아니라 "끝까지 설득하여 인내를 가지고 그를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즉 이들은 생전 남의 집 잔치에 초청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인데 큰 잔치에 초청을 한다고 종들이 달려갔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겁을 집어먹고 두려워하여 잔치에 초청 받은 것을 그들이 거절한다고 해도 끈질기게 그리고 친절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설득하여 초청을 받아들일 때까지 참고 인내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잔치의 자리는 마지막날 열리게 될 구원의 자리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주인에게로부터 보냄을 받아 이리 뛰고 저리 뛴 종들은 누구일까 라고 하는 것입니다. (질문) 우리들입니다. 그 종들이 나가서 무엇이라 외쳤겠습니까 잔치 집에 놀러 오십시오. 맛있는 음식과 즐거움이 있는 잔치 자리에 당신을 초청합니다. 공짜입니다. 무료입니다. 오셔서 마음껏 음식을 드십시오 라고 하였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지금은 구원의 날이요, 은혜 받을 때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할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이 구원받을 때요, 은혜를 받을 때이기 그렇습니다. 저는 지난주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후의 명령"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시는 바로 그 명령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여러분들 마음속에 불현듯 생각나게 하신 그 사람이 있었을 것인데 그이가 바로 나의 전도 대상자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 한 주일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전도할 기회를 엿보셨습니까 성령의 지혜를 구하며 인도함을 받기를 소원하며 여호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 계셨습니까
서두에 말씀을 드렸듯이 사랑에 눈이 한번 멀어 버리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것이 사랑에 빠진 사람의 특징입니다. 삿16장에 보시면 태어나면서부터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은 나실인 삼손이 있습니다.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나귀의 턱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수 천명을 죽일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삼손도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에 약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절대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어서는 안 되는 여호와 하나님의 비밀을 그는 사랑하는 여인 들릴라라 가르쳐 달라고 조르니 가르쳐 주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는 자신의 힘의 원천이 머리에 있음을 가르쳐 준 그런 사람입니다. 사랑에 눈이 멀면 모든 것을 다 하게 되어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전도하는 것 그것, 어려운 것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 그것 어려운 것 아닙니다. 진정 내가 그를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할 것이며 그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쓸개까지라도 빼어 놓은 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이 아닙니까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새로운 삶에 소망을 얻었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한 가지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행4:19절에 보시면 제자들이 대제사장과 관원들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 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가 없노라" 하는 것을 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제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니 그 은혜를 경험하고 나니 겁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남들의 눈을 의식하며 주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담대해 졌는데 그들의 기도가 더욱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우리가 이 성에 모였나이다.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 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이 낫게 되기를 원하는데 그것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하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이 되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이런 전도를 위한 담대한 기도가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것, 어렵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는 반드시 전도하게 되어있습니다. 엄청난 돌발적 상황이 발생하여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하시는 주인의 다급한 음성을 들은 종들은 가만히 집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 길과 산울가로 뛰어나가 잔치자리에 사람을 채워 넣기 위해서 동분서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열심히 뛰어 다녔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런 모습이어야 합니다. 복음을 위해서 우리의 삶이 분주해야 합니다. 왜냐 지금이 마지막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적으로 펼쳐지는 여러 가지 정황들을 살펴보면 주님께서 오실 날이 솔직히 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지금 우리를 강권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파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한 영혼을 찾기 위해서 말씀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바울 사도처럼 복음에 매인 사람들답게 한 생명을 찾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라고 담대히 선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시드니 영락교회를 쓰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보냄을 받은 종들처럼 산울가로 뛰어 다니며 구원의 자리에 잔치의 자리에 사람들을 초청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강권하여" 아시죠 그들이 마음을 돌이킬 때까지 참고 기다리고 인내하며 섬기면서 한 영혼을 찾고자 하는 귀한 마음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좋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함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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