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전도하러 오신 예수님
본문
유신정권 때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것을 만들어 행사 때마다 낭독하도록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서두에,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 한 평생은 무엇인가를 하고 살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에게 삶의 의미가 될 수 있고 목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살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에 평가와 가치를 부여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땅에 태어났는데 무엇을 위해서 태어났으며 무엇을 목적으로 해서 살아가고 있는가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생명을 주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예수 믿어 구원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오늘까지 살아가도록 한 삶의 목적이 무엇이겠는가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났고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 사명을 다하여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주시는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왜 당신이 오셨는가 무엇 때문에 오셨는가를 분명히 말씀하시고 그 일을 일평생 이루시며 살아가신 것을 보여 주신 말씀입니다 막1:38절로 다시 보시겠습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쫓으시더라. "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었으니 그것은 죄로 말미암아 멸망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구원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전도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일생을 전도하는 사역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죽기까지 그 일을 감당하셨습니다.
본문을 기록한 마가는 열심히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 전도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21절로 보면 가버나움에 가셨던 예수님은 안식일 날 회당에 들어가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가르치심을 받은 사람들은 그 말씀 속에 역사 하시는 은혜와 권세에 놀람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르치심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지금까지 가르침을 주었던 서기관들과 전혀 다른 말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32절 이하로 보면 예수님은 저녁 늦게까지 수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고 계셨을 때 제자들이 찾아와서 수많은 병자들이 몰려와서 예수님을 찾고 기다린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을 내어쫓으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전도는 예수님께서 모범으로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전도는 복음을 가지고 있는 자가 그 복음을 알지도 듣지도 못하는 곳으로 가지고 가는 데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전도 활동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 세상에 오시는 그 순간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고통가운데 죽어가야 할 우리 인간을 구원할 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선교의 파송지인 세상으로 가라 명하시고 예수님은 그 명령에 순응하여 오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로 사마리아로 유대로 때로는 이방인의 도시 두로와 시돈까지 가셔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분의 전도는 행동적인 전도였습니다. 전도에는 장소적 제한이 있을 수 없고 사람에 제한 여부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전도하러 가야 할 장소가 따로 있고 없고 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도할 사람이 따로 있고 전도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무제한적이어야 하고 전도에는 방해를 받아야 할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스스로 전도에 너무나 많은 제약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전도가 원활하게 효과적으로 되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전도는 전도의 대상자를 가리지 않고 찾아갔으며 전도의 지역 역시 가리지 않고 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주신 말씀 38절로,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 라고 하셨으니 전도는 전도자가 피전도자에게로 찾아가는 데서부터 이루어지는 작업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사마리아로 가셔서 생의 참 만족을 느끼지 못한 채 남편을 다섯씩이나 갈아가면서 행복한 삶에 목매달던 수가성 여인을 찾아서 전도하였고 또 여리고로 찾아가셔서 생의 회의를 느끼고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삭개오를 찾아 전도하여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갈릴리 바닷가에서 생존을 위해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지만 소득이 없이 허탈감에 빠져 있던 어부들에게 찾아가셔서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병들어 죽어가던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구원하여 주셨고 귀신들려 영혼의 자유를 잃어버린 자를 찾으셨으며 소외되고 힘없는 자, 억눌려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전도 행적을 보면 모든 지역에서 만나야 할 사람 구원해야 할 사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에게 늘 찾아가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구원해야 할 사람이 어디에 있건 상관하지 않고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대화하시면서 그 사람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결해 주심과 동시에 당신을 믿도록 하셨습니다.
그 사역이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루어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스스로 감동이 되어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도 있고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손에 이끌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 어느 누군가가 나를 찾아와서 복음을 전함으로 지금 이렇게 구원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역의 주역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시고자 계획하시고 섭리하시되 당신의 사람들을 감동시키시고 명령하게 하셔서 이렇게 우리가 구원을 받은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닌가 말입니다. 너희는 가서 라는 이 말씀을 따라 선교현장에 들어갈 때 거기에는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시 선교의 눈을 뜨고 선교의 현장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탄식소리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소리 들려온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메이며 탕자처럼 기진 하니 믿는 자여 어이할꼬! 여러분들의 눈을 들어보십시오 곳곳에서 구원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보일 것입니다. 귀를 열어 들어보십시오 곳곳에서 탄식하는 영혼들의 부르짖음이 들려 올 것입니다.
행16장9절 이하로 보면 마게도냐에 있는 사람하나가 바울의 환상 속에 나타나 마케도니야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고 간청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눅10장에서는 강도만나 죽어 가는 영혼의 부르짖음이 있으며 귀신들려 고통받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을 누가 구원하겠습니까 주님으로부터 구원함을 받은 우리가 가서 건져내지 않는다면 누가 있어 이일을 하겠는가 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사명을 깨닫고 기도하는 가운데 주여 내가 여기에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응답하여 나아간 것처럼 우리도 자원하여 선교지로 나아가는 전도자들이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전도는 사랑의 발로였습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3:16절로,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죄로 인하여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시기 위한 대상을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알도록 전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그분의 사랑에 최고의 절정은 자신을 십자가에 죄 값으로 내어주시고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고 받아 드리는 자에게 구원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사랑이 아니고는 이룰 수 없는 역사입니다 복음은 생명을 구원하는 일 일진데 그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을 때는 전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희생을 감수합니다. 사랑은 자신의 유익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드립니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전도하실 때 얼마나 많은 핍박과 고난이 있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사랑의 뜨거운 열기는 꺼지지 아니했습니다. 그 사랑이 자기를 배척하고 온갖 모욕을 가하는 사람들까지 가슴에 않고 눈물로 여호와 하나님께 호소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하시면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에 버려진 사람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찾아가셔서 사랑해주시고 복음으로 감싸주셨을 뿐 아니라 사랑에 상처받고 사람을 저주하는 사람까지도 사랑으로 감싸주신 분이십니다.
여러분 요8장에 나오는 간음한 여자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가정을 파괴시킨 참으로 용납할 수 없는 여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저런 여자는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돌로 때려죽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영혼이 불쌍했습니다. 그냥 두면 사람들에게 맞아 죽고 그 영혼은 영원히 지옥으로 떨어져야 할 너무나 비참한 운명이라 그를 구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아무도 나서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사랑하사 나도 너를 정죄 하지 아니하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예수 믿고 구원받아 죄에서 해방을 받으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전도는 이와 같이 죄인을 사랑하시는 사랑의 발로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은 그 만큼 우리 마음속에 영혼을 사랑하는 사랑이 메말라 버렸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복음 증거는 영혼을 사랑하고 그 영혼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는 일 일진데 우리가 다시 주님의 사랑으로 뜨거운 마음으로 복음 전도에 불이 당겨지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복음 전도는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복음 전도는 육신의 구원만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에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전도의 방편으로 많은 병자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수 많은 병자들이 병을 고치려고 몰려들었습니다. 육신적인 궁핍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사람들 아니면 고난에 빠진 사람들이 그 고난에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그렇게 몰려든 사람들을 버리지 아니 하시고 다 치료하시고 궁핍을 채워주시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으니 이는 그분의 긍휼 하심에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긍휼히 여겨야 할 대상에게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면 자신도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바로 주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구원의 종교이며 죽을 사람을 살려내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이 생명은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하고 귀한 것입니다. 이 생명이 파멸하여 영원한 형벌 속으로 떨어져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내버려둔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태도가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지옥 불에 들어가 그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눅16장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사람이 만약 내 남편이요 내 사랑하는 부모 자식이요 가족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바라보아야 할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말입니다. 정말 이러한 사실을 연상해볼 때 내 가족 내 형제 내 친척 내 이웃의 영혼이 불쌍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 생명이 귀한 것처럼 남의 생명도 귀한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남의 생명도 구원해 주어야 하는 것 빼놓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을 깨우친 예레미야는 내가 다시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리라고 하면 내 마음이 불타는 것 같아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구원받지 못하여 방황하는 영혼들을 긍휼히 여기십시다 죄와 사단에게 결박되어 그 영혼이 자유를 잃고 멸망의 길로 끌려가는 영혼들 긍휼히 여기십시다 내 영혼이 주님으로부터 긍휼함을 입어 구원받은 것처럼 우리고 저들의 영혼을 긍휼히 여겨 복음으로 살려내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주님의 복음전도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인 순종이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 그리고 사람을 여호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은 개인적인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전도를 하시면서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명령을 수행하시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까지도 십자가에 아낌없이 내놓지 않았는가 말입니다. 그 전도의 명령은 주님에게 있어서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십자가에 그 모진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고 간구하시고 끝내 자신의 목숨을 전도의 사명을 위해 바치셨던 것입니다.
그 사명이 너무나 귀한 것이기에 너무나 큰 것이기에 주님은 하늘에 부르심을 받아 올라가시면서 당신이 세워놓으신 교회와 당신이 구원하신 저와 여러분들에 명하셨습니다. (마28:1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딤후4:1절에도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
그러므로 교회는 이 사명을 받들어 수행해야 할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을 다 하지 못하게 될 때 주님으로부터 엄한 문책이 따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마25장 41절로 너무나 자세히 읽을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을 어떻게 하였느냐 너에게 도움을 구하던 영혼의 탄식소리를 어찌하였느냐 이 질문 앞에 대답할 것이 있게 하기 위하여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의 명령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오셨고 여호와 하나님의 소원 역시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이 땅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니 우리 모두 예수님의 전도사역을 본 받아 영혼을 구원하는데 우리의 생명까지도 내 놓고 사명을 감당하셔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이 일을 이루셨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9-11)"고 말씀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영광과 축복을 주시게 될 줄 믿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에게 삶의 의미가 될 수 있고 목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살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에 평가와 가치를 부여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땅에 태어났는데 무엇을 위해서 태어났으며 무엇을 목적으로 해서 살아가고 있는가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생명을 주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예수 믿어 구원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오늘까지 살아가도록 한 삶의 목적이 무엇이겠는가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났고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 사명을 다하여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주시는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왜 당신이 오셨는가 무엇 때문에 오셨는가를 분명히 말씀하시고 그 일을 일평생 이루시며 살아가신 것을 보여 주신 말씀입니다 막1:38절로 다시 보시겠습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쫓으시더라. "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었으니 그것은 죄로 말미암아 멸망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구원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전도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일생을 전도하는 사역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죽기까지 그 일을 감당하셨습니다.
본문을 기록한 마가는 열심히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 전도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21절로 보면 가버나움에 가셨던 예수님은 안식일 날 회당에 들어가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가르치심을 받은 사람들은 그 말씀 속에 역사 하시는 은혜와 권세에 놀람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르치심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지금까지 가르침을 주었던 서기관들과 전혀 다른 말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32절 이하로 보면 예수님은 저녁 늦게까지 수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고 계셨을 때 제자들이 찾아와서 수많은 병자들이 몰려와서 예수님을 찾고 기다린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을 내어쫓으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전도는 예수님께서 모범으로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전도는 복음을 가지고 있는 자가 그 복음을 알지도 듣지도 못하는 곳으로 가지고 가는 데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전도 활동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 세상에 오시는 그 순간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고통가운데 죽어가야 할 우리 인간을 구원할 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선교의 파송지인 세상으로 가라 명하시고 예수님은 그 명령에 순응하여 오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로 사마리아로 유대로 때로는 이방인의 도시 두로와 시돈까지 가셔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분의 전도는 행동적인 전도였습니다. 전도에는 장소적 제한이 있을 수 없고 사람에 제한 여부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전도하러 가야 할 장소가 따로 있고 없고 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도할 사람이 따로 있고 전도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무제한적이어야 하고 전도에는 방해를 받아야 할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스스로 전도에 너무나 많은 제약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전도가 원활하게 효과적으로 되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전도는 전도의 대상자를 가리지 않고 찾아갔으며 전도의 지역 역시 가리지 않고 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주신 말씀 38절로,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 라고 하셨으니 전도는 전도자가 피전도자에게로 찾아가는 데서부터 이루어지는 작업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사마리아로 가셔서 생의 참 만족을 느끼지 못한 채 남편을 다섯씩이나 갈아가면서 행복한 삶에 목매달던 수가성 여인을 찾아서 전도하였고 또 여리고로 찾아가셔서 생의 회의를 느끼고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삭개오를 찾아 전도하여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갈릴리 바닷가에서 생존을 위해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지만 소득이 없이 허탈감에 빠져 있던 어부들에게 찾아가셔서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병들어 죽어가던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구원하여 주셨고 귀신들려 영혼의 자유를 잃어버린 자를 찾으셨으며 소외되고 힘없는 자, 억눌려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전도 행적을 보면 모든 지역에서 만나야 할 사람 구원해야 할 사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에게 늘 찾아가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구원해야 할 사람이 어디에 있건 상관하지 않고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대화하시면서 그 사람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결해 주심과 동시에 당신을 믿도록 하셨습니다.
그 사역이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루어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스스로 감동이 되어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도 있고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손에 이끌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 어느 누군가가 나를 찾아와서 복음을 전함으로 지금 이렇게 구원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역의 주역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시고자 계획하시고 섭리하시되 당신의 사람들을 감동시키시고 명령하게 하셔서 이렇게 우리가 구원을 받은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닌가 말입니다. 너희는 가서 라는 이 말씀을 따라 선교현장에 들어갈 때 거기에는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시 선교의 눈을 뜨고 선교의 현장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탄식소리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소리 들려온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메이며 탕자처럼 기진 하니 믿는 자여 어이할꼬! 여러분들의 눈을 들어보십시오 곳곳에서 구원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보일 것입니다. 귀를 열어 들어보십시오 곳곳에서 탄식하는 영혼들의 부르짖음이 들려 올 것입니다.
행16장9절 이하로 보면 마게도냐에 있는 사람하나가 바울의 환상 속에 나타나 마케도니야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고 간청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눅10장에서는 강도만나 죽어 가는 영혼의 부르짖음이 있으며 귀신들려 고통받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을 누가 구원하겠습니까 주님으로부터 구원함을 받은 우리가 가서 건져내지 않는다면 누가 있어 이일을 하겠는가 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사명을 깨닫고 기도하는 가운데 주여 내가 여기에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응답하여 나아간 것처럼 우리도 자원하여 선교지로 나아가는 전도자들이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전도는 사랑의 발로였습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3:16절로,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죄로 인하여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시기 위한 대상을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알도록 전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그분의 사랑에 최고의 절정은 자신을 십자가에 죄 값으로 내어주시고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고 받아 드리는 자에게 구원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사랑이 아니고는 이룰 수 없는 역사입니다 복음은 생명을 구원하는 일 일진데 그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을 때는 전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희생을 감수합니다. 사랑은 자신의 유익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드립니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전도하실 때 얼마나 많은 핍박과 고난이 있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사랑의 뜨거운 열기는 꺼지지 아니했습니다. 그 사랑이 자기를 배척하고 온갖 모욕을 가하는 사람들까지 가슴에 않고 눈물로 여호와 하나님께 호소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하시면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에 버려진 사람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찾아가셔서 사랑해주시고 복음으로 감싸주셨을 뿐 아니라 사랑에 상처받고 사람을 저주하는 사람까지도 사랑으로 감싸주신 분이십니다.
여러분 요8장에 나오는 간음한 여자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가정을 파괴시킨 참으로 용납할 수 없는 여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저런 여자는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돌로 때려죽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영혼이 불쌍했습니다. 그냥 두면 사람들에게 맞아 죽고 그 영혼은 영원히 지옥으로 떨어져야 할 너무나 비참한 운명이라 그를 구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아무도 나서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사랑하사 나도 너를 정죄 하지 아니하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예수 믿고 구원받아 죄에서 해방을 받으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전도는 이와 같이 죄인을 사랑하시는 사랑의 발로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은 그 만큼 우리 마음속에 영혼을 사랑하는 사랑이 메말라 버렸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복음 증거는 영혼을 사랑하고 그 영혼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는 일 일진데 우리가 다시 주님의 사랑으로 뜨거운 마음으로 복음 전도에 불이 당겨지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복음 전도는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복음 전도는 육신의 구원만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에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전도의 방편으로 많은 병자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수 많은 병자들이 병을 고치려고 몰려들었습니다. 육신적인 궁핍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사람들 아니면 고난에 빠진 사람들이 그 고난에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그렇게 몰려든 사람들을 버리지 아니 하시고 다 치료하시고 궁핍을 채워주시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으니 이는 그분의 긍휼 하심에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긍휼히 여겨야 할 대상에게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면 자신도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바로 주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구원의 종교이며 죽을 사람을 살려내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이 생명은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하고 귀한 것입니다. 이 생명이 파멸하여 영원한 형벌 속으로 떨어져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내버려둔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태도가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지옥 불에 들어가 그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눅16장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사람이 만약 내 남편이요 내 사랑하는 부모 자식이요 가족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바라보아야 할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말입니다. 정말 이러한 사실을 연상해볼 때 내 가족 내 형제 내 친척 내 이웃의 영혼이 불쌍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 생명이 귀한 것처럼 남의 생명도 귀한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남의 생명도 구원해 주어야 하는 것 빼놓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을 깨우친 예레미야는 내가 다시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리라고 하면 내 마음이 불타는 것 같아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구원받지 못하여 방황하는 영혼들을 긍휼히 여기십시다 죄와 사단에게 결박되어 그 영혼이 자유를 잃고 멸망의 길로 끌려가는 영혼들 긍휼히 여기십시다 내 영혼이 주님으로부터 긍휼함을 입어 구원받은 것처럼 우리고 저들의 영혼을 긍휼히 여겨 복음으로 살려내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주님의 복음전도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인 순종이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 그리고 사람을 여호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은 개인적인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전도를 하시면서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명령을 수행하시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까지도 십자가에 아낌없이 내놓지 않았는가 말입니다. 그 전도의 명령은 주님에게 있어서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십자가에 그 모진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고 간구하시고 끝내 자신의 목숨을 전도의 사명을 위해 바치셨던 것입니다.
그 사명이 너무나 귀한 것이기에 너무나 큰 것이기에 주님은 하늘에 부르심을 받아 올라가시면서 당신이 세워놓으신 교회와 당신이 구원하신 저와 여러분들에 명하셨습니다. (마28:1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딤후4:1절에도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
그러므로 교회는 이 사명을 받들어 수행해야 할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을 다 하지 못하게 될 때 주님으로부터 엄한 문책이 따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마25장 41절로 너무나 자세히 읽을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을 어떻게 하였느냐 너에게 도움을 구하던 영혼의 탄식소리를 어찌하였느냐 이 질문 앞에 대답할 것이 있게 하기 위하여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의 명령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오셨고 여호와 하나님의 소원 역시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이 땅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니 우리 모두 예수님의 전도사역을 본 받아 영혼을 구원하는데 우리의 생명까지도 내 놓고 사명을 감당하셔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이 일을 이루셨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9-11)"고 말씀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영광과 축복을 주시게 될 줄 믿습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