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너희는 몸이라
본문
오늘날 우리는 극도로 개인주의적인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가 많이 사용하고 있는 여러가지 물품들이 대부분 다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 졌고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사용하는 휴대폰을 보아도 사람마다 각각 다르게 자기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벨이 울려도 자기 휴대폰의 자기벨이 울리게되여있고 자기벨의 소리가 아니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들고 다니는 노트북도 자기만이 쓸수있게 되여있고 컴퓨터도 개인적으로 자기정보를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 차단을 하고 자기만의 메일과 자기만의 카폐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이 음악 감상을 해도 귀에다 이어폰 을 꽂고 그리고는 자기 혼자서 음악 감상을 합니다.
다른 사람하고는 완전히 단절이 되는 겁니다. 다른 사람 소리는 들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극도로 개인주의적인 사회가 되다보니까 공동체가 붕괴가 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한 마을에서 삶을 살아가면 우선 성이 다같은 씨족사회로 한 집안인 경우도 많이 있고 그 동네에 어느 집에 가면 뭐가있고 어느 집에 가면 뭐가 있고, 내가 없는 것을 어느 집 가면 빌려 쓸 수 있고, 한 집안 식구와 같이 서로 품아시도 하고 상부상조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도시의 삶에서는 그런 아름다운 공동체를 우리가 생각할 수가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정마저도 식구들이 다 모이기는 모이지만 그러나 같은 시간에 같이 모여 앉아서 밥을 먹는다든지 같이 앉아서 서로 대화를 나눈다든지 그런 것들이 점점 희박해지고 그저 한 집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한 가족으로 공동체라기 보다는 마치 하숙집 같이 각각 개인적으로 바쁘게 지내는 가정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같이 살아갈 때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상처도 받고 어려움도 겪고, 문제도 많이 있었지만은 함께 서로 부대끼면서 같이 문제를 풀고 자기 삶을 나누면서 자연적으로 치유가 되고 서로 힘을 얻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삶은 극단적인 개인주의 사회가 되다보니까 내 아픔이나 내 상처를 누구에게 나눌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더 고립되고 더 고독한 삶을 살아가게 되고 그래서 상처는 더욱더 악화되고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래사회에서 가장 많이 증가되고 앓고 있는 것이 정신질환 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극단적 개인주의로 흐르기 때문에 여자들도 자신의 권리가 침해를 받게되면 견디지를 못하고 그래서 가정이 깨어지고 이혼이 급증되는 것이 미래사회의 특성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병리현상들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 우이제일교회에서부터 초대교회같이 공동체를 회복하는 운동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목장에서도 한 가족같이 가정교회를 만들고 모두가 사랑으로 한 몸이 되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살아있는 한 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한 몸이 된 공동체입니다. 오늘 1절 말씀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에크레시아라는 뜻은 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죄악된 세상 가운데에서 부름을 받아서, 같이 모인 거룩한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나 한 공간에 여러 사람이 모인 그러한 단순한 모임이 아니고, 교회는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하나의 몸입니다. 교회 안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까
너무나 다양해서 천차만별입니다. 연세가 많으신분, 어린 아이,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분, 낮은 사람, 남녀노소 굉장히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다양한 개성과 다양한 형태로 신앙생할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다양하고 다르다고 해서 그 가운데에 갈등과 대립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안에서 서로 협력하고 보완하므로 한 몸을 이루는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또한 교회는 그 존재의 성격이 한 몸일 수밖에 없습니다. (5-6)
오늘 본문 말씀, 4절부터 6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하나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이유를 여러 가지 이야기 하는데, 성부 여호와 하나님이 한 분이시고, 성자 예수님이 한 분이시고, 성령님께서 한 분이시고, 그 한 분이신 분을 우리가 믿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한 분을 믿고 한 분에게 다스림을 받고 한 분의 몸이고 한 분에게 인도를 받는 교회, 그것은 필연적으로 본질적으로 한 몸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다양한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만, 한 몸 한공동체로서 성장해 나가게 되는 것이고, 한 공동체로서 죄와 어둠과 사망권세와 싸워서 나가는 것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럼 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 또는 우리의 살아있는 몸으로 말씀을 하셨을까요
몇년전 능동 어린이 대공원과 안국동 어린이 과학관에서 “인체의 신비전”이라는 특별 행사를 하였습니다. 그 곳에 다녀 온 사람들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람의 몸에 관한 놀라운 신비에 대하여 모두가 감탄을 하였습니다.
몇 가지 놀라운 사실에 대하여 알아보면 피가 온몸을 완전히 한 바퀴 도는 데에는 46초가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몸에 있는 혈관을 한줄로 이으면 모든 혈관의 길이가 112,000km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거리는 지구를 두번반 도는 것과 같다고 하니 우리 몸 안에 피는 46초에 지구를 두번 반 왕복하는 거리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심장은 한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평균 2억8천만번의 박동을 하고 약 2백 2십7만 리터의 피를 퍼내고 있으며 하루에도 주먹만한 심장은 약 300리터의 피를 펌프질을 하고 있다는데 이것은 쉬지도 않고 잠도 안자고 계속 죽을때까지 펌푸질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루 동안에 마시는 공기는 120평방미터가 되고 수분은
1. 3킬로그램을 섭취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몸무게의 2%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뇌가 사용하는 산소의 양은 전체 사용량의 20%이며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의 20%를 소모하고 전체 피의 15%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몸에는 1,000억 개의 신경세포와 10조의 세포 조직이 있고 25조의 적혈구와 250억개의 백혈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만드는 데는 13,000개의 부품이 필요하고, 747제트 여객기를 만드는 데는 3백만 개의 부품이들어가고, 우주 왕복선을 만드는 데는 5백만 개의 부품을 필요로 하지만 우리 인간의 몸에는 100조개의 세포조직이 있고, 25조개의 적혈구와 250억개의 백혈구가 있다고 합니다.
갓난 어린아이가 탄생할 당시는 305개의 서로 다른 빼를 가지고 나오지만 모든 지체들이 연합하고 조화를 이루고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건강한 몸으로 자라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볼 때 다시 한 번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우신 창조의 지혜와 그분의 무한하신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으며 신묘막측하게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솜길에 경외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마지막날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고 감탄하신 이유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의사들은 인간의 몸을 연구하다가 너무 신비해서 인체는 소우주와 같다고 말들을 한다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은 그의 사랑하는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한 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12: 27절에도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왜 바울은 교회를 한 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이는 어떠한 공통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4-6절을 보시겠습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몇가지 진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1) 교회는 한 몸으로 이루어 졌다는 것입니다.
“몸이 하나이요” 교회는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같이 예배를 드립니까 왜 우리는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까 우리는 실제적으로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프면 나도 아픈 것이 교회이며, 다른 사람이 괴로우면 같이 괴로워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한 몸이요 모두가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2) 한 성령 안에 있습니다. “성령이 하나이니” 이는 동일한 능력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능력입니다.
성령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교회가 성령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같은 능력으로 산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능력 즉 한성령 안에 있기때문입니다.
3) 한 소망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 소망을 향하여 나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강림이라는 소망입니다. 교회가 소망을 잃거나 다른 소망으로 채워지면 세속화됩니다. 주님의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교회가 망각하게 되면 변질된 다른 소망으로 교회는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암세포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점점 잠식하여 가듯이 교회는 부패되어 갈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5:14-16에서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소망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잊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습니다.
4) 한 주안에 있습니다.
교회는 한 주인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것을 섬기면 안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루어야 할 것은 바로 우리를 피로 값주고 사셔서 우리의 주인이 되신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피값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고 우리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항상 그리스도께 복종함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빌2:11-12)
5) 한 믿음안에 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입니다.
세례는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넘으로써 새로운 나라 가나안 땅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시내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제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로 그 법을 따라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부활하여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즉 세례라는 것은 옛사람은 죽고 새로운 생명을 가진 새사람이 시작된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6) 교회는 한 아버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4:6 절에 말하기를 “너희가 아들인 고로 여호와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 우리는 모두가 십자가의 능력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양자의 영을 받은 자들입니다.
당시 로마법에 양자가 되었다는 것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유업으로 받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 분을 아버지로 인정하고 또한 아들로서 인정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유업을 받을 권리까지 당당하게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4:7절에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일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엡 4: 11절을 보면 “각 사람에게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는데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몸이라는 것은 수많은 조직들과 세포로 이루어져 움직이는 하나의 유기체입니다.
그런데 그 조직의 기관들과 세포들이 각자 다른 특성과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하는 일도 각기 기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몸으로 비유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조직이나 기관으로 이루어진 단세포적인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있는 각자의 기능들이 독특한 성격과 각자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다양한 색깔과 모양 또는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로 모여서 이루어진 모자이크와 같은 단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자이크로 된 그림을 보십시오
조각조각 모여져서 하나로 구성될때 아름다운 작품이 되지 않습니까 한조각도 빠져서는 아름다운 그림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가 바로 모자이크와 같은 것입니다. 한사람도 필요치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성격 그리고 능력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각자의 특성들이 충분히 드러나야 하는 곳이 교회라는 곳입니다.
또한 교회안의 다양한 직분은 계급적인 것이거나 신분적인 것이 아니고 일하는 기능적인 면에서 이해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교회 안에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목자, 헬퍼, 교사, 집사, 권찰, 성가대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직분들을 주셨습니다. 각자의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사람은 중요치 않은 일을 감당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가 맡은 직분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교회를 세우는데에는 모두 중요하고 자기의 위치에서 제대로 자기의 기능과 역할이 되지 않으면 교회가 올바르게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쉽게 예를 든다면 시계바늘이 돌아가며 정확하게 시간을 표시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내부에서 많은 부속품들이 끊임없이 제기능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부속품들의 움직임을 우리들은 볼수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봉사와 섬김의 사람들은 드러나지 않으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속품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시계바늘이 멈추듯이 봉사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없는 교회사역은 멈추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교회에서는 모두가 공통적으로 해야 할 사역이 있는데 서로서로를 섬기며 온전케 세워주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직분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맡은 바 자리에서 사람을 온전케 하고 섬길 수 있다면 주의 몸된 교회를 튼튼히 세우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드라마 극이 있었습니다. 무대위에 교회안에서 귀하게 쓰이는 기구들이 등장을 합니다. 피아노가 있고, 강대상 마이크, 장의자, 화분과 조명을 비치는 등불과 작은 나사못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피아노가 이야기를 합니다 교회에서 내가 없으면 성가대에서 아름다운 찬양을 할수도 없고 음이 맞지 않아서 찬송소리가 엉망이 될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강대상의 마이크가 이야기를 합니다. 교회에서 내가 없으면 목사님이 아무리 좋은 설교를 목이 터져라 소리를 쳐도 은혜를 받을수가 없기 때문에 교회에서 마이크가 없으면 알될 것이라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장의자가 하는 말이 교회안에는 내가 있기 때문에 교인들이 편안하게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 있지 내가 없으면 허리가 아프고 불편하기 때문에 예배를 드릴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화분과 조명의 등이 하는말이 교회안에는 모니모니해도 내가있어야 분위기가 살고 꽃과 밝은 조명이 있어야 아름답지 않느냐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다음에는 지붕의 작은 나사못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랬더니 모두들 작은 나사못 주제에 무엇이 자랑할 것이 있느냐고 너는 없어도 괜찮으니 빠지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밤 태풍이 올라오면서 비바람이 불며 장대비가 억수같이 쏫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천정에 나사못이 하나 빠지며 천정에서 비가 세기를 시작했습니다. 피아노는 흠뻑 비를맛고 제소리가 나오지를 않고 장의자도 물에 흠뻑젖어 몸이 뒤틀리고 마이크도 물이 들어가 소리가 안나고 밝은 조명도 전기가 누전되어 불이 들어오지 않고 교회안은 물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는 하는 일들은 모두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지 소중하지 않은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교회안에 모든 직분들은 각기 하는 일들이 서로 다른 기능적일 뿐만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16절에서 이를 의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기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으므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여기서 “연락하고 상합한다”는 말은 온 몸의 기관들이 서로 간에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들이 각 마디를 통하여 흐르는 하나의 힘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의 힘을 통하여 서로 연결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명력이 있고 살아있는 교회는 자라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자라 가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생명으로 연결된 유기체입니다. 유기체라는 의미는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단지 살아 있다는 것으로 유기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유기체가 살아 있다는 것의 증거는 그것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살아 있는 유기체가 될 수가 없습니다. 교회된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교회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다고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활동하고 움직일 때만 살아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환경이나 건물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움직이는 유기체라는 것은 세상을 향하여 주님의 사랑과 복음전파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끈임없이 활동하는 교회가 살아 있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교회는 자라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몸을 잘 움직이고 활동하게 되면 잘 자라나듯이 교회가 복음을 전파하고 또한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힘을쓰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가려고 할때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6절 하반절을 보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하였습니다. 우리교회는 전교인들이 배우든지 가르치든지 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각 지체가 그리스도로 하나가 되어 맡은 바 분량에 따라 말씀을 전파하고 권하고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자라게 되고 결국에 가서는 건강한 믿음을 소유한 성숙한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숙한 교회는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아니하고” 이 시대의 등대가 되어 세상의 소망이 되고 생명의 빛을 비추는 주님이 기뻐하는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한 몸이 된 사람들입니다. 우리 각자가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뜻으로 서로에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모두 함께 협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뜻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가르쳐 사람을 세우는 일인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하여 맡은 바 직분에 최선을 다할 때에 교회는 살아 있게될 것이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이 되는 건강한 교회 좋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들고 다니는 노트북도 자기만이 쓸수있게 되여있고 컴퓨터도 개인적으로 자기정보를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 차단을 하고 자기만의 메일과 자기만의 카폐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이 음악 감상을 해도 귀에다 이어폰 을 꽂고 그리고는 자기 혼자서 음악 감상을 합니다.
다른 사람하고는 완전히 단절이 되는 겁니다. 다른 사람 소리는 들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극도로 개인주의적인 사회가 되다보니까 공동체가 붕괴가 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한 마을에서 삶을 살아가면 우선 성이 다같은 씨족사회로 한 집안인 경우도 많이 있고 그 동네에 어느 집에 가면 뭐가있고 어느 집에 가면 뭐가 있고, 내가 없는 것을 어느 집 가면 빌려 쓸 수 있고, 한 집안 식구와 같이 서로 품아시도 하고 상부상조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도시의 삶에서는 그런 아름다운 공동체를 우리가 생각할 수가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정마저도 식구들이 다 모이기는 모이지만 그러나 같은 시간에 같이 모여 앉아서 밥을 먹는다든지 같이 앉아서 서로 대화를 나눈다든지 그런 것들이 점점 희박해지고 그저 한 집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한 가족으로 공동체라기 보다는 마치 하숙집 같이 각각 개인적으로 바쁘게 지내는 가정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같이 살아갈 때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상처도 받고 어려움도 겪고, 문제도 많이 있었지만은 함께 서로 부대끼면서 같이 문제를 풀고 자기 삶을 나누면서 자연적으로 치유가 되고 서로 힘을 얻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삶은 극단적인 개인주의 사회가 되다보니까 내 아픔이나 내 상처를 누구에게 나눌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더 고립되고 더 고독한 삶을 살아가게 되고 그래서 상처는 더욱더 악화되고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래사회에서 가장 많이 증가되고 앓고 있는 것이 정신질환 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극단적 개인주의로 흐르기 때문에 여자들도 자신의 권리가 침해를 받게되면 견디지를 못하고 그래서 가정이 깨어지고 이혼이 급증되는 것이 미래사회의 특성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병리현상들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 우이제일교회에서부터 초대교회같이 공동체를 회복하는 운동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목장에서도 한 가족같이 가정교회를 만들고 모두가 사랑으로 한 몸이 되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살아있는 한 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한 몸이 된 공동체입니다. 오늘 1절 말씀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에크레시아라는 뜻은 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죄악된 세상 가운데에서 부름을 받아서, 같이 모인 거룩한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나 한 공간에 여러 사람이 모인 그러한 단순한 모임이 아니고, 교회는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하나의 몸입니다. 교회 안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까
너무나 다양해서 천차만별입니다. 연세가 많으신분, 어린 아이,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분, 낮은 사람, 남녀노소 굉장히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다양한 개성과 다양한 형태로 신앙생할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다양하고 다르다고 해서 그 가운데에 갈등과 대립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안에서 서로 협력하고 보완하므로 한 몸을 이루는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또한 교회는 그 존재의 성격이 한 몸일 수밖에 없습니다. (5-6)
오늘 본문 말씀, 4절부터 6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하나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이유를 여러 가지 이야기 하는데, 성부 여호와 하나님이 한 분이시고, 성자 예수님이 한 분이시고, 성령님께서 한 분이시고, 그 한 분이신 분을 우리가 믿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한 분을 믿고 한 분에게 다스림을 받고 한 분의 몸이고 한 분에게 인도를 받는 교회, 그것은 필연적으로 본질적으로 한 몸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다양한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만, 한 몸 한공동체로서 성장해 나가게 되는 것이고, 한 공동체로서 죄와 어둠과 사망권세와 싸워서 나가는 것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럼 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 또는 우리의 살아있는 몸으로 말씀을 하셨을까요
몇년전 능동 어린이 대공원과 안국동 어린이 과학관에서 “인체의 신비전”이라는 특별 행사를 하였습니다. 그 곳에 다녀 온 사람들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람의 몸에 관한 놀라운 신비에 대하여 모두가 감탄을 하였습니다.
몇 가지 놀라운 사실에 대하여 알아보면 피가 온몸을 완전히 한 바퀴 도는 데에는 46초가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몸에 있는 혈관을 한줄로 이으면 모든 혈관의 길이가 112,000km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거리는 지구를 두번반 도는 것과 같다고 하니 우리 몸 안에 피는 46초에 지구를 두번 반 왕복하는 거리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심장은 한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평균 2억8천만번의 박동을 하고 약 2백 2십7만 리터의 피를 퍼내고 있으며 하루에도 주먹만한 심장은 약 300리터의 피를 펌프질을 하고 있다는데 이것은 쉬지도 않고 잠도 안자고 계속 죽을때까지 펌푸질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루 동안에 마시는 공기는 120평방미터가 되고 수분은
1. 3킬로그램을 섭취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몸무게의 2%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뇌가 사용하는 산소의 양은 전체 사용량의 20%이며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의 20%를 소모하고 전체 피의 15%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몸에는 1,000억 개의 신경세포와 10조의 세포 조직이 있고 25조의 적혈구와 250억개의 백혈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만드는 데는 13,000개의 부품이 필요하고, 747제트 여객기를 만드는 데는 3백만 개의 부품이들어가고, 우주 왕복선을 만드는 데는 5백만 개의 부품을 필요로 하지만 우리 인간의 몸에는 100조개의 세포조직이 있고, 25조개의 적혈구와 250억개의 백혈구가 있다고 합니다.
갓난 어린아이가 탄생할 당시는 305개의 서로 다른 빼를 가지고 나오지만 모든 지체들이 연합하고 조화를 이루고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건강한 몸으로 자라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볼 때 다시 한 번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우신 창조의 지혜와 그분의 무한하신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으며 신묘막측하게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솜길에 경외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마지막날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고 감탄하신 이유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의사들은 인간의 몸을 연구하다가 너무 신비해서 인체는 소우주와 같다고 말들을 한다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은 그의 사랑하는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한 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12: 27절에도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왜 바울은 교회를 한 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이는 어떠한 공통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4-6절을 보시겠습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몇가지 진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1) 교회는 한 몸으로 이루어 졌다는 것입니다.
“몸이 하나이요” 교회는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같이 예배를 드립니까 왜 우리는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까 우리는 실제적으로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프면 나도 아픈 것이 교회이며, 다른 사람이 괴로우면 같이 괴로워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한 몸이요 모두가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2) 한 성령 안에 있습니다. “성령이 하나이니” 이는 동일한 능력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능력입니다.
성령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교회가 성령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같은 능력으로 산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능력 즉 한성령 안에 있기때문입니다.
3) 한 소망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 소망을 향하여 나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강림이라는 소망입니다. 교회가 소망을 잃거나 다른 소망으로 채워지면 세속화됩니다. 주님의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교회가 망각하게 되면 변질된 다른 소망으로 교회는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암세포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점점 잠식하여 가듯이 교회는 부패되어 갈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5:14-16에서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소망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잊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습니다.
4) 한 주안에 있습니다.
교회는 한 주인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것을 섬기면 안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루어야 할 것은 바로 우리를 피로 값주고 사셔서 우리의 주인이 되신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피값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고 우리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항상 그리스도께 복종함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빌2:11-12)
5) 한 믿음안에 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입니다.
세례는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넘으로써 새로운 나라 가나안 땅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시내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제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로 그 법을 따라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부활하여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즉 세례라는 것은 옛사람은 죽고 새로운 생명을 가진 새사람이 시작된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6) 교회는 한 아버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4:6 절에 말하기를 “너희가 아들인 고로 여호와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 우리는 모두가 십자가의 능력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양자의 영을 받은 자들입니다.
당시 로마법에 양자가 되었다는 것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유업으로 받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 분을 아버지로 인정하고 또한 아들로서 인정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유업을 받을 권리까지 당당하게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4:7절에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일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엡 4: 11절을 보면 “각 사람에게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는데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몸이라는 것은 수많은 조직들과 세포로 이루어져 움직이는 하나의 유기체입니다.
그런데 그 조직의 기관들과 세포들이 각자 다른 특성과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하는 일도 각기 기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몸으로 비유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조직이나 기관으로 이루어진 단세포적인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있는 각자의 기능들이 독특한 성격과 각자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다양한 색깔과 모양 또는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로 모여서 이루어진 모자이크와 같은 단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자이크로 된 그림을 보십시오
조각조각 모여져서 하나로 구성될때 아름다운 작품이 되지 않습니까 한조각도 빠져서는 아름다운 그림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가 바로 모자이크와 같은 것입니다. 한사람도 필요치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성격 그리고 능력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각자의 특성들이 충분히 드러나야 하는 곳이 교회라는 곳입니다.
또한 교회안의 다양한 직분은 계급적인 것이거나 신분적인 것이 아니고 일하는 기능적인 면에서 이해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교회 안에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목자, 헬퍼, 교사, 집사, 권찰, 성가대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직분들을 주셨습니다. 각자의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사람은 중요치 않은 일을 감당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가 맡은 직분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교회를 세우는데에는 모두 중요하고 자기의 위치에서 제대로 자기의 기능과 역할이 되지 않으면 교회가 올바르게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쉽게 예를 든다면 시계바늘이 돌아가며 정확하게 시간을 표시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내부에서 많은 부속품들이 끊임없이 제기능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부속품들의 움직임을 우리들은 볼수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봉사와 섬김의 사람들은 드러나지 않으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속품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시계바늘이 멈추듯이 봉사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없는 교회사역은 멈추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교회에서는 모두가 공통적으로 해야 할 사역이 있는데 서로서로를 섬기며 온전케 세워주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직분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맡은 바 자리에서 사람을 온전케 하고 섬길 수 있다면 주의 몸된 교회를 튼튼히 세우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드라마 극이 있었습니다. 무대위에 교회안에서 귀하게 쓰이는 기구들이 등장을 합니다. 피아노가 있고, 강대상 마이크, 장의자, 화분과 조명을 비치는 등불과 작은 나사못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피아노가 이야기를 합니다 교회에서 내가 없으면 성가대에서 아름다운 찬양을 할수도 없고 음이 맞지 않아서 찬송소리가 엉망이 될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강대상의 마이크가 이야기를 합니다. 교회에서 내가 없으면 목사님이 아무리 좋은 설교를 목이 터져라 소리를 쳐도 은혜를 받을수가 없기 때문에 교회에서 마이크가 없으면 알될 것이라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장의자가 하는 말이 교회안에는 내가 있기 때문에 교인들이 편안하게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 있지 내가 없으면 허리가 아프고 불편하기 때문에 예배를 드릴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화분과 조명의 등이 하는말이 교회안에는 모니모니해도 내가있어야 분위기가 살고 꽃과 밝은 조명이 있어야 아름답지 않느냐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다음에는 지붕의 작은 나사못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랬더니 모두들 작은 나사못 주제에 무엇이 자랑할 것이 있느냐고 너는 없어도 괜찮으니 빠지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밤 태풍이 올라오면서 비바람이 불며 장대비가 억수같이 쏫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천정에 나사못이 하나 빠지며 천정에서 비가 세기를 시작했습니다. 피아노는 흠뻑 비를맛고 제소리가 나오지를 않고 장의자도 물에 흠뻑젖어 몸이 뒤틀리고 마이크도 물이 들어가 소리가 안나고 밝은 조명도 전기가 누전되어 불이 들어오지 않고 교회안은 물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는 하는 일들은 모두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지 소중하지 않은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교회안에 모든 직분들은 각기 하는 일들이 서로 다른 기능적일 뿐만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16절에서 이를 의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기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으므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여기서 “연락하고 상합한다”는 말은 온 몸의 기관들이 서로 간에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들이 각 마디를 통하여 흐르는 하나의 힘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의 힘을 통하여 서로 연결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명력이 있고 살아있는 교회는 자라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자라 가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생명으로 연결된 유기체입니다. 유기체라는 의미는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단지 살아 있다는 것으로 유기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유기체가 살아 있다는 것의 증거는 그것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살아 있는 유기체가 될 수가 없습니다. 교회된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교회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다고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활동하고 움직일 때만 살아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환경이나 건물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움직이는 유기체라는 것은 세상을 향하여 주님의 사랑과 복음전파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끈임없이 활동하는 교회가 살아 있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교회는 자라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몸을 잘 움직이고 활동하게 되면 잘 자라나듯이 교회가 복음을 전파하고 또한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힘을쓰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가려고 할때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6절 하반절을 보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하였습니다. 우리교회는 전교인들이 배우든지 가르치든지 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각 지체가 그리스도로 하나가 되어 맡은 바 분량에 따라 말씀을 전파하고 권하고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자라게 되고 결국에 가서는 건강한 믿음을 소유한 성숙한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숙한 교회는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아니하고” 이 시대의 등대가 되어 세상의 소망이 되고 생명의 빛을 비추는 주님이 기뻐하는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한 몸이 된 사람들입니다. 우리 각자가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뜻으로 서로에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모두 함께 협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뜻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가르쳐 사람을 세우는 일인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하여 맡은 바 직분에 최선을 다할 때에 교회는 살아 있게될 것이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이 되는 건강한 교회 좋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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