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한 영혼
본문
다음주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기독교의 절기 중에 중요한 감사절기입니다. 추수감사절에 대서는 다음주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 저는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영혼추수가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 것인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농부가 열매를 보기위해서 많은 수고를 합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의 홍수와 태풍과 가뭄과 싸워야하고 잡초와 병충해와 씨름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수고하고 애를 쓰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풍년을 아무도 확신을 못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도우셔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뿌린 만큼 거두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농부의 땀을 헛되이 돌아가지 않도록 섭리하시고 계시기에 우리가 풍요로운 가을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한 영혼을 추수하는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죄를 깨닫거나 구원의 길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이미 죽은 자요, 심판의 대상자들입니다. 저번 주 수요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초만 가지고 심지에 불을 붙이지 못해서 그 가치를 상실한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죄로 인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치를 잃어버리고 영적인 감각 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자하는 감각이 사라진 방탕에 방임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은 저들을 향해 예수그리스도의 빛 된 복음으로 초의 심지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해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한 1인1명 전도대회를 합니다. 해 마다 추수감사절기에 이런 행사를 하는 것에 대해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전도행사를 통해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또 어떤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지, 그리고 적어도 우리에게 사명과 이 세상을 향한 책임을 해마다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감사를 드립니다.
전도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죽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우리는 그런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하늘과 땅의 권세를 우리에게 주었다는 그 말씀을 복음전도를 통해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가 누군데 사람을 살리고 죽음을 이기며 하늘나라를 소망하고 그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그 일을 감당케 하셨습니다. 적어도 이 땅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을 추수감사 절기를 맞이해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 전도에 대한 귀중함과 가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잠언11:30 ‘의인의 열매를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이 말씀은 구원받은 의인이 맺어야할 열매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생명나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생명나무는 생명을 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지혜로워야하고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영명교회가 이런 생명나무 맺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 일에는 지혜가 필요하고 지혜의 문이 열려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고 또 한 영혼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지를 알아야 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무엇에 따라 마음이 움직이고 행동합니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가치’에 따라 가는 것입니다. 가치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선택의 유무가 결정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옛날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음악이나 연극을 하는 사람은 천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가치가 확 달라져서 지금은 연애인이나 가수들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까 의사도 그렇습니다.
조선시대 그러니까 허준만 하더라고 그 시대에는 양반은 의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직업을 가진 자들을 천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임금님의 수라간의 궁녀보다 의사나 간호사가 사회적인 가치수준이 낮은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의사나 한의사의 가치가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사람들은 가치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는 가치가 영혼에 있다는 것을 아는 지혜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지요. 마태복음13장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은 샀느니라’ 이것은 가치에 대한 말씀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입니다. 이것을 발견하게 되면 가지고 있는 소유보다 더 가치 있는 것임으로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것처럼 한 생명의 소중함과 귀한 가치를 알게 되면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지요. A막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멸망할 이 세상은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한 사람의 영혼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하보다 한 영혼이 가치가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천하를 얻어도 목숨을 잃어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택한 백성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는 것이 예수님자신이 죽으시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어 시다고 생각하시여 그 모진 고난과 고통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있으서는 십가가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저주도 마다하지 않으실 만큼 우리가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오직 한 사람일지라도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기꺼이 죽으셨을 것입니다.
옛날 에디오피아의 왕조인 아비시니아인들이 켐벨이라는 영국인을 옥에 가둔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켐벨을 숲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6개월 동안 지하토굴에 가두었습니다. 대영제국에서는 6개월 후에야 이 사실을 알고 영국은 즉각 석방을 요구했으나 그 아비시니아 왕은 거절했습니다. 그로부터 열흘도 못되어 영국군 만 명이 그를 구출하기 위해 배에 올랐고 마침내 그 나라에 상륙했습니다. 뜨거운 태양, 높은 산지를 1100km나 걸어서 도착하여 전투를 벌였고 그를 구출하여 돌아왔습니다.
영국은 그 한 사람을 구출하기 위하여 그 당시 화폐가치로 2500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242억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가 백성 한 사람을 그토록 귀중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교훈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물며 여호와 하나님나라 백성들이 사탄의 수하에 잡혀 있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늘보좌를 비우고서라도 인간의 몸을 입고서라도 채찍과 조롱과 십자가의 무게가 아무리 무거워도 더럽고 추악한 되가 아무리 무거워도 그것을 마다하지 않으시는 사랑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가치이며 영혼의 가치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나라는 강대국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명을 경시하는 나라는 망합니다. 왜 공산주의가 망했나요 왜 일본이 2차대전에서 망했습니까 한 사람의 영혼의 가치를 경시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가미가제 폭탄투하 같이 사람을 전쟁물자로 생각했기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유물론이 사람의 가치를 물건으로 치기에 망한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유물론이 사람의 가치를 물건으로 치기에 망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나라에서는 한 영혼이 얼마나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아는 지혜를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랬습니다. 영혼을 구원에는 전도에는 복음전하는 내 사명이 내 생명보다 귀하다고 고백한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왜 바울은 자기생명보다 복음전하는 것이 귀하다고 생각했습니까 이 땅의 가치보다 저 하늘의 가치가 더 귀하고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살리려 예수님께서 오신 것 아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는 그 사명과 책임을 다하는 일에 있어서는 내 생명을 바쳐도 가치 있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가 산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하늘나라의 영광인 것처럼 우리가 주를 위해 죽고 사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나라의 영광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복 있는 심령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전도를 위해서는 자신을 성별해야 됩니다. 성별이란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인 것에서 구별하고 선별해서 거룩하게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한 토기장이가 멋있는 도자기 술잔을 두개 만들었습니다. 재료도 똑 같고 모양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왕궁에 왕의 술잔으로 보내어졌고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그것으로 성전에 보내졌습니다. 나중 잔은 분명히 성별된 것입니다. 우리 영명교회 식구들은 구별된 사람으로 사용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여러분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특별히 사용하시도록 구별하고 성별했다는 사실을 절대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고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구별하시고 성별해서 지금 들에 무르익은 곡식을 보고 일꾼으로 나가서 추수하라는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신명기 14:2 ‘너는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요 그의 백성입니다. 믿습니까 여호와의 성민, 여호와의 소유, 그의 백성이란 말이 얼마나 복있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그 분이 나를 책임져 주시고, 나의 삶을 이끄시며 끊임없이 사랑으로 간섭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소유이기에 그 분이 하라는 대로 하면 그것이 행복이고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고 미래를 열어주시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그 분의 것입니다. 그래서 사나 죽으나 그 분을 위해 살고 죽는 것이 영광이요 은혜 아니겠습니까 많은 영혼들을 그 분의 소유로 삼기 위해 지금 우리를 성별해서 그 책임을 맡긴 것입니다.
전도에 가장 중요한 것 중의 또 하나가 있다면 성령의 인도하심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아무리 땀을 흘려도 여호와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시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복음전도에는 성령의 도우심이 꼭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 영혼을 두고 기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왜 전도가 어렵습니까 체험이 없어서 그러니까 경험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체계적으로 교육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그러니까 거절하면 어떻하나 하는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절을 심리적으로 두려워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은 거절을 넘어선 기쁨을 우리에게 허락하신다는 의미도 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지만 자라나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고 우리가 복음의 씨를 뿌리지만 우리가 구원을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한 영혼을 놓고 기도할 때 성령께서 담대함을 주실 것입니다. 그저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감동에 순종하여 전하면 됩니다. 사도행전8;26절에 보면 빌립은 집사입니다.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있었고 그 핍박을 피해 사마리아로 가는 중입니다. 어느 날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남쪽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빌립은 그 명령에 순종하여 급히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내시가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그 나라의 국고를 맡은 재무장관입니다. 29절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나가갔더니 빌립이 재무장관 내시에게 전도할 기회를 얻어 그를 구원시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상상도 못할 곳으로 인도하여 사용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합니다. 분명히 우리가 1인1명 전도를 위해 기도하시고 계시다면 성령의 음성을 반드시 들으실 것입니다. 그 음성이 생각지도 않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내가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생명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저 순종하므로 예비되어 있는 영혼을 추수하는 복된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어느 날 아침 한 남자가 숨을 몰아내시면서 도시 근교에 있는 철도역 안으로 급하게 뛰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매표원에게 물었습니다. ‘8시1분 기차가 언데 떠나지요’ ‘8시 1분요’ ‘그러면 내 시계로 지금 7시 59분이고, 시청 시계로는 7시 57분이고, 그리고 역 시계는 8시4분인데 나는 어떤 시계에 맞추어야합니까’ ‘어떤 시계에 맞추든지 당신 마음대로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8시 1분차를 탈 수없습니다. 그 기차는 이미 떠나 버렸거든요’ 라고 그 매표원이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예정한 시간은 그대로 흘러갑니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들이 선택한 계획표대로 살아갈 수 있고 자신이 선택한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대는 정해져있습니다. 전도서3:1 ‘때의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과 사명, 도시와 국가를 향해 계획 하신 때와 사기에 관해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때를 모르기 때문에 너무 자주 심는 계절에 거두러하고 추수할 시기에 심고 쉬어야 할 때에 달려가고 달려가야 할 때에 쉬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성령의 음성을 듣고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 전도는 철저하게 성령을 의지하셔서 복음을 전하는 심령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이 무슨 때라고 하셨습니까 요한복음 4:35 ‘너희가 넉달이 가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한 영혼을 부르시는데 우리를 사용하여 추수 때에 일꾼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여기에 아멘의 고백이 있기를 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도 이 생명을 살리고 영생을 주시기 위해 오셨고 우리 대신 죄 값을 지불하느라 죽었습니다. 디모데전서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또 누가복음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하리라’하셨습니다. 전도는 천국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일입니다. 여러분 한 영혼이 구원 되면 천국에서는 찬치가 벌어진다는 사실을 실감하십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요. 한 영혼을 위해 예수님께서 그 모진 고난과 수치와 고통을 당하셨는데,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다 쏟으셨는데, 그 십자가의 공로가 구원을 통해 완성되는데, 한 영혼이 주께 돌아오면 천국에서 잔치가 열리지 않겠습니까 그 만큼 귀한 일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전도는 하늘나라의 최고의 상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선택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의무입니다.
중국에서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강에서 배가 뒤집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허우적거리면서 살려달라고 소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강가에서 사람들이 전부 구경만하고 있습니다. 지나가던 선교사 한 사람이 배를 가진 사람에게 왜 저들을 구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은 알바가 아니라고 하고 구경합니다. 선교사가 답답해 막 소리를 칩니다. 그러자 배를 띄우는데 얼마 줄거요 하며 돈을 요구하더랍니다. 중국돈으로 400위안을 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300위안밖에 없다고 하니 마지못해 배를 띄웠는데 때는 이미 늦어 수많은 사람이 죽은 시체만 건졌답니다. 자기 동족이 죽어 가는데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직집 죽이지 않았어도 살릴 수 있는데 살리지 않았다면 살인죄입니다. 그리고 옆에서 그냥 구경하고 아무런 조치를 위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살인방조죄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살릴 수 있는데 살리지 못하는 삶을 살지는 않습니까 옆에서 구경만 하는 삶을 살지는 않느냐는 말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그렇지만 노아는 곧 심판이 온다고 경고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죄에서 벗어날 것을 경고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 말에 비웃음으로 답했지만 노아는 방주 짓는 일에 열심을 다 했습니다. 결국 때가 되어 하늘이 열리고 40주야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마을이 서서히 잠기기지작하니까 산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제 산에서 살 수 있는 길은 방주로 들어가는 길인데 방주는 이미 문이 닫힌 상태였습니다. 밖에서 아우성을 칩니다. 형제의 목소리 친척들의 목소리 낯익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데 통곡과 애원과 저주의 목소리가 섞여서 들립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 고통의 소리를 노아는 참기 힘들어서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나타날 현상입니다. 지금은 구원의 문이 열려있지만 언젠가는 그 문이 닫힐 날이 있습니다. 그 구원의 문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의 절규를 듣게 된다면 우리의 심정을 어떨까요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모진 고난과 수모와 수치를 당하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이유를 우리는 다시 한번 깨달아야 됩니다. 지금도 그 십자가의 구원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십자가의 완성은 구원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를 주신 것은 그 권세로 생명을 살리라는 준엄한 명령임을 깨닫고 오늘도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가 1인1명 전도대회를 하는 것은 그런 차원에서 우리의 사명을 다시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심령들이 되자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한 영혼을 추수하는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죄를 깨닫거나 구원의 길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이미 죽은 자요, 심판의 대상자들입니다. 저번 주 수요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초만 가지고 심지에 불을 붙이지 못해서 그 가치를 상실한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죄로 인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치를 잃어버리고 영적인 감각 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자하는 감각이 사라진 방탕에 방임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은 저들을 향해 예수그리스도의 빛 된 복음으로 초의 심지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해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한 1인1명 전도대회를 합니다. 해 마다 추수감사절기에 이런 행사를 하는 것에 대해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전도행사를 통해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또 어떤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지, 그리고 적어도 우리에게 사명과 이 세상을 향한 책임을 해마다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감사를 드립니다.
전도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죽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우리는 그런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하늘과 땅의 권세를 우리에게 주었다는 그 말씀을 복음전도를 통해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가 누군데 사람을 살리고 죽음을 이기며 하늘나라를 소망하고 그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그 일을 감당케 하셨습니다. 적어도 이 땅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을 추수감사 절기를 맞이해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 전도에 대한 귀중함과 가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잠언11:30 ‘의인의 열매를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이 말씀은 구원받은 의인이 맺어야할 열매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생명나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생명나무는 생명을 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지혜로워야하고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영명교회가 이런 생명나무 맺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 일에는 지혜가 필요하고 지혜의 문이 열려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고 또 한 영혼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지를 알아야 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무엇에 따라 마음이 움직이고 행동합니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가치’에 따라 가는 것입니다. 가치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선택의 유무가 결정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옛날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음악이나 연극을 하는 사람은 천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가치가 확 달라져서 지금은 연애인이나 가수들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까 의사도 그렇습니다.
조선시대 그러니까 허준만 하더라고 그 시대에는 양반은 의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직업을 가진 자들을 천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임금님의 수라간의 궁녀보다 의사나 간호사가 사회적인 가치수준이 낮은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의사나 한의사의 가치가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사람들은 가치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는 가치가 영혼에 있다는 것을 아는 지혜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지요. 마태복음13장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은 샀느니라’ 이것은 가치에 대한 말씀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입니다. 이것을 발견하게 되면 가지고 있는 소유보다 더 가치 있는 것임으로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것처럼 한 생명의 소중함과 귀한 가치를 알게 되면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지요. A막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멸망할 이 세상은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한 사람의 영혼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하보다 한 영혼이 가치가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천하를 얻어도 목숨을 잃어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택한 백성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는 것이 예수님자신이 죽으시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어 시다고 생각하시여 그 모진 고난과 고통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있으서는 십가가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저주도 마다하지 않으실 만큼 우리가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오직 한 사람일지라도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기꺼이 죽으셨을 것입니다.
옛날 에디오피아의 왕조인 아비시니아인들이 켐벨이라는 영국인을 옥에 가둔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켐벨을 숲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6개월 동안 지하토굴에 가두었습니다. 대영제국에서는 6개월 후에야 이 사실을 알고 영국은 즉각 석방을 요구했으나 그 아비시니아 왕은 거절했습니다. 그로부터 열흘도 못되어 영국군 만 명이 그를 구출하기 위해 배에 올랐고 마침내 그 나라에 상륙했습니다. 뜨거운 태양, 높은 산지를 1100km나 걸어서 도착하여 전투를 벌였고 그를 구출하여 돌아왔습니다.
영국은 그 한 사람을 구출하기 위하여 그 당시 화폐가치로 2500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242억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가 백성 한 사람을 그토록 귀중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교훈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물며 여호와 하나님나라 백성들이 사탄의 수하에 잡혀 있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늘보좌를 비우고서라도 인간의 몸을 입고서라도 채찍과 조롱과 십자가의 무게가 아무리 무거워도 더럽고 추악한 되가 아무리 무거워도 그것을 마다하지 않으시는 사랑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가치이며 영혼의 가치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나라는 강대국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명을 경시하는 나라는 망합니다. 왜 공산주의가 망했나요 왜 일본이 2차대전에서 망했습니까 한 사람의 영혼의 가치를 경시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가미가제 폭탄투하 같이 사람을 전쟁물자로 생각했기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유물론이 사람의 가치를 물건으로 치기에 망한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유물론이 사람의 가치를 물건으로 치기에 망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나라에서는 한 영혼이 얼마나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아는 지혜를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랬습니다. 영혼을 구원에는 전도에는 복음전하는 내 사명이 내 생명보다 귀하다고 고백한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왜 바울은 자기생명보다 복음전하는 것이 귀하다고 생각했습니까 이 땅의 가치보다 저 하늘의 가치가 더 귀하고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살리려 예수님께서 오신 것 아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는 그 사명과 책임을 다하는 일에 있어서는 내 생명을 바쳐도 가치 있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가 산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하늘나라의 영광인 것처럼 우리가 주를 위해 죽고 사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나라의 영광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복 있는 심령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전도를 위해서는 자신을 성별해야 됩니다. 성별이란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인 것에서 구별하고 선별해서 거룩하게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한 토기장이가 멋있는 도자기 술잔을 두개 만들었습니다. 재료도 똑 같고 모양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왕궁에 왕의 술잔으로 보내어졌고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그것으로 성전에 보내졌습니다. 나중 잔은 분명히 성별된 것입니다. 우리 영명교회 식구들은 구별된 사람으로 사용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나와 여러분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특별히 사용하시도록 구별하고 성별했다는 사실을 절대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고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구별하시고 성별해서 지금 들에 무르익은 곡식을 보고 일꾼으로 나가서 추수하라는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신명기 14:2 ‘너는 너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요 그의 백성입니다. 믿습니까 여호와의 성민, 여호와의 소유, 그의 백성이란 말이 얼마나 복있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그 분이 나를 책임져 주시고, 나의 삶을 이끄시며 끊임없이 사랑으로 간섭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소유이기에 그 분이 하라는 대로 하면 그것이 행복이고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고 미래를 열어주시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그 분의 것입니다. 그래서 사나 죽으나 그 분을 위해 살고 죽는 것이 영광이요 은혜 아니겠습니까 많은 영혼들을 그 분의 소유로 삼기 위해 지금 우리를 성별해서 그 책임을 맡긴 것입니다.
전도에 가장 중요한 것 중의 또 하나가 있다면 성령의 인도하심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아무리 땀을 흘려도 여호와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시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복음전도에는 성령의 도우심이 꼭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 영혼을 두고 기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왜 전도가 어렵습니까 체험이 없어서 그러니까 경험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체계적으로 교육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그러니까 거절하면 어떻하나 하는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절을 심리적으로 두려워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은 거절을 넘어선 기쁨을 우리에게 허락하신다는 의미도 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지만 자라나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고 우리가 복음의 씨를 뿌리지만 우리가 구원을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한 영혼을 놓고 기도할 때 성령께서 담대함을 주실 것입니다. 그저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감동에 순종하여 전하면 됩니다. 사도행전8;26절에 보면 빌립은 집사입니다.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있었고 그 핍박을 피해 사마리아로 가는 중입니다. 어느 날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남쪽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빌립은 그 명령에 순종하여 급히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내시가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그 나라의 국고를 맡은 재무장관입니다. 29절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나가갔더니 빌립이 재무장관 내시에게 전도할 기회를 얻어 그를 구원시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상상도 못할 곳으로 인도하여 사용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합니다. 분명히 우리가 1인1명 전도를 위해 기도하시고 계시다면 성령의 음성을 반드시 들으실 것입니다. 그 음성이 생각지도 않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내가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생명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저 순종하므로 예비되어 있는 영혼을 추수하는 복된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어느 날 아침 한 남자가 숨을 몰아내시면서 도시 근교에 있는 철도역 안으로 급하게 뛰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매표원에게 물었습니다. ‘8시1분 기차가 언데 떠나지요’ ‘8시 1분요’ ‘그러면 내 시계로 지금 7시 59분이고, 시청 시계로는 7시 57분이고, 그리고 역 시계는 8시4분인데 나는 어떤 시계에 맞추어야합니까’ ‘어떤 시계에 맞추든지 당신 마음대로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8시 1분차를 탈 수없습니다. 그 기차는 이미 떠나 버렸거든요’ 라고 그 매표원이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예정한 시간은 그대로 흘러갑니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들이 선택한 계획표대로 살아갈 수 있고 자신이 선택한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대는 정해져있습니다. 전도서3:1 ‘때의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과 사명, 도시와 국가를 향해 계획 하신 때와 사기에 관해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때를 모르기 때문에 너무 자주 심는 계절에 거두러하고 추수할 시기에 심고 쉬어야 할 때에 달려가고 달려가야 할 때에 쉬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성령의 음성을 듣고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 전도는 철저하게 성령을 의지하셔서 복음을 전하는 심령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이 무슨 때라고 하셨습니까 요한복음 4:35 ‘너희가 넉달이 가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한 영혼을 부르시는데 우리를 사용하여 추수 때에 일꾼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여기에 아멘의 고백이 있기를 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도 이 생명을 살리고 영생을 주시기 위해 오셨고 우리 대신 죄 값을 지불하느라 죽었습니다. 디모데전서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또 누가복음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하리라’하셨습니다. 전도는 천국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일입니다. 여러분 한 영혼이 구원 되면 천국에서는 찬치가 벌어진다는 사실을 실감하십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요. 한 영혼을 위해 예수님께서 그 모진 고난과 수치와 고통을 당하셨는데,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다 쏟으셨는데, 그 십자가의 공로가 구원을 통해 완성되는데, 한 영혼이 주께 돌아오면 천국에서 잔치가 열리지 않겠습니까 그 만큼 귀한 일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전도는 하늘나라의 최고의 상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선택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의무입니다.
중국에서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강에서 배가 뒤집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허우적거리면서 살려달라고 소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강가에서 사람들이 전부 구경만하고 있습니다. 지나가던 선교사 한 사람이 배를 가진 사람에게 왜 저들을 구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은 알바가 아니라고 하고 구경합니다. 선교사가 답답해 막 소리를 칩니다. 그러자 배를 띄우는데 얼마 줄거요 하며 돈을 요구하더랍니다. 중국돈으로 400위안을 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300위안밖에 없다고 하니 마지못해 배를 띄웠는데 때는 이미 늦어 수많은 사람이 죽은 시체만 건졌답니다. 자기 동족이 죽어 가는데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직집 죽이지 않았어도 살릴 수 있는데 살리지 않았다면 살인죄입니다. 그리고 옆에서 그냥 구경하고 아무런 조치를 위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살인방조죄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살릴 수 있는데 살리지 못하는 삶을 살지는 않습니까 옆에서 구경만 하는 삶을 살지는 않느냐는 말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그렇지만 노아는 곧 심판이 온다고 경고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죄에서 벗어날 것을 경고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 말에 비웃음으로 답했지만 노아는 방주 짓는 일에 열심을 다 했습니다. 결국 때가 되어 하늘이 열리고 40주야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마을이 서서히 잠기기지작하니까 산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제 산에서 살 수 있는 길은 방주로 들어가는 길인데 방주는 이미 문이 닫힌 상태였습니다. 밖에서 아우성을 칩니다. 형제의 목소리 친척들의 목소리 낯익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데 통곡과 애원과 저주의 목소리가 섞여서 들립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 고통의 소리를 노아는 참기 힘들어서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나타날 현상입니다. 지금은 구원의 문이 열려있지만 언젠가는 그 문이 닫힐 날이 있습니다. 그 구원의 문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의 절규를 듣게 된다면 우리의 심정을 어떨까요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모진 고난과 수모와 수치를 당하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이유를 우리는 다시 한번 깨달아야 됩니다. 지금도 그 십자가의 구원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십자가의 완성은 구원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를 주신 것은 그 권세로 생명을 살리라는 준엄한 명령임을 깨닫고 오늘도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가 1인1명 전도대회를 하는 것은 그런 차원에서 우리의 사명을 다시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심령들이 되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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