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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전도의 주체는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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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신학자 밀러(Miller)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자들은 일생에 평균 6천 번의 설교를 듣고, 8천 번의 기도를 들으며, 2만 번의 찬송을 부르는데, 자기가 그렇게 믿고 있는 예수를 남에게 전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 이 숫자들을 대충 계산해 보니 이들은 초신자는 아닙니다. 이들은 신앙 생활을 꽤 오래 한 사람들입니다.
신앙 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에게는 대단히 죄송스러운 말씀입니다만 거북스럽게 생각하지 마시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믿을만한 조사 자료에 의하면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일수록 더 전도를 안 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교회에 오래 다니면 전도를 더 잘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 전도를 더 잘 합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예수 믿고 3년이 안된 초신자들이 전도를 제일 많이 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들이 전도를 잘하지 어떻게 이제 갓 믿는 사람이 잘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믿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이 전도를 잘하는 이유는 신앙이 순진하기 때문입니다. 초신자들은 기성 교인들에 비해 고정 관념, 전통, 체면 등에 그렇게 깊이 물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에 잘 순종합니다. 이것을 하라면 하고 저것을 하라면 합니다. 전도를 하라면 앞 뒤를 별로 가리지 않고 합니다. 그러다가 한 3년 지나면 좋지 않은 것들에 조금씩 오염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더 지나면 그것들이 굳어져 요지부동이 됩니다. 역사가 오래된 교회가 새로 개척한 교회에 비해 잘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이면 믿음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신앙 생활을 오래 하게 됨에 따라 믿음도 자라고 여호와 하나님도 더 잘 알게 됩니다. 이는 마치 부부가 결혼하여 같이 오래 살면 살수록 서로의 마음과 뜻을 잘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오래된 신자일수록 영혼 구원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더욱 더 잘 이해합니다. 그래서 전도를 더 잘할 것이라고 보통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 생활을 오래 한 만큼, 교회를 오래 다닌 것 만큼 우리의 전도 생활이 비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전도를 했는지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이렇게 된 것은 언제부터 입니까 예수를 믿기 시작한 처음부터입니까 아닐 것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고 나서는 대부분 전도의 열정이 있었습니다. 내가 믿은 예수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겠다는 거룩한 사명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당연한 생각입니다. 정말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거듭나서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믿지 않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거듭난 신자에게 주시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전도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전도가 잘 안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전도를 해 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한, 두 번 시도를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잘 안되었습니다. 또 해 보았습니다. 그래도 결과가 신통치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전도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전도는 전도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나는 전도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합리화 시켰습니다. 이 생각이 세월을 지나면서 고착화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전도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오늘 이런 분들에게 고질병처럼 되어버린 잘못된 생각을 깨어 버리실 것을 권면합니다. 이 고착화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십시오. 그리고 다시 전도에 대한 새로운 사명감을 회복하실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전도는 내가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나의 이 짧은 세치의 혀로 사람의 마음을 변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천하보다도 귀한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는 일을 말입니다. 사단의 종이 되어서 수 십년 간 속박된 삶을 살던 사람을 내가 어떻게 해방시킬 수 있단 말입니까
전도를 정말로 잘 해보겠다고 생각하신다면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아예 버리시기 바랍니다. 전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를 예수 믿게 하고, 어떤 영혼을 회심 시키는 일은 나의 할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고유한 사역입니다. 나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증거하는 데 있습니다. 그 후에 그가 믿고 안 믿고 하는 것은 성령께서 하실 일입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비록 전도에 성공을 하지 못했을지라도 실망하지 않게 됩니다. 낙심이나 좌절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할 일을 다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예수 믿으시오. 안 믿으면 지옥에 갑니다. ”라고 위협적이거나 지나가는 말처럼 던져 버리고 끝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할 일 다 했으니 이제 믿고 안 믿고는 너의 책임이다” 라고 손을 털라는 것도 아닙니다. 전도 하기 전에 준비하여야 합니다. 전략도 세워야 합니다. 공도 드려야 합니다. 전도하는데 이런 것이 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도의 주체가 내가 아니고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성의와 열심을 다해 복음을 전했다면 이제 그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성령께서 할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이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 보면 전도의 주체가 빌립이 아니고 성령님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빌립에게 광야 길로 내려 가라고 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성령님이십니다.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가서 전도하라고 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성령님이십니다. 그리고 빌립의 전해 준 복음을 듣고 그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한 분이 누구입니까 성령님이십니다. 모두 다 성령님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빌립이 한 역할은 단지 심부름 한 것 뿐이었습니다.
전도를 하려고 하다가도 잘 안될 때 쉽게 낙심하거나 포기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와 도우심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도를 내가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오늘 본문이 주시는 교훈을 통해 전도는 내가 아니고 성령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믿으신다면 전도에 대한 새로운 용기와 자신을 갖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빌립이라는 이름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부터 나오기 시작합니다. 사도들과 제자들에 의해 복음이 증거 되면서 교회에는 믿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났습니다. 이 중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도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고 구제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시간과 수고가 뒤따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이 지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전적으로 담당할 일곱 사람들을 정하고 그들에게 일임하였습니다. 그 중 빌립도 끼어 있었습니다. 이 일곱 사람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령의 지혜로 이들은 맡은 일을 잘 해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든든해 지고 믿는 사람의 수가 더해갔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신앙을 지키다 죽는 사람이 생겨 났습니다. 옥에 갇혔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이 때 빌립은 사마리아로 피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귀신들이 쫓겨 나갔습니다. 중풍병자, 앉은뱅이가 낫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온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빌립 한 사람의 전도로 인해 사마리아 성에는 위대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빌립에게 사마리아를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가사 사이에 있는 광야로 내려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말씀대로 그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가니 병거를 타고 가는 한 사람이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책임 맡고 있는 큰 권세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재무부 장관 정도 이상이 될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돈을 맡고 있는 사람은 주인으로부터 신임을 얻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웬만큼 믿지 않고는 남에게 돈을 맡기지 않습니다. 그는 비록 내시였지만 나라의 재산을 관리할 정도로 여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습니다.
내시는 평소에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도 아닌 에디오피아 사람이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오래 전 솔로몬 왕 시절에 이스라엘을 방문하였던 스바 여왕 때문인 것 같습니다. 스바 여왕은 에디오피아 일대를 통치하던 여왕으로서 솔로몬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그를 만나 보려고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이 때 스바 여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게 한 것 같습니다.
조상으로부터 신앙을 물려 받은 경건한 신앙의 사람인 그는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에 경배하러 올라 왔었습니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일년에 세 차례 여호와 하나님 전에 나와 얼굴을 뵈어야 했습니다. 그 중의 한 절기가 유월절이었습니다. 그도 유월절을 맞이 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리고 다 마친 후 이제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는 빌립에게 병거로 가까이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이 때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건성으로 읽고 있었습니다. 빌립은 긔의 요청에 따라 병거에 올라 탔습니다. 그리고 그가 읽던 이사야 선지자가 그리스도에 관해 예언한 부분을 풀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복음을 받아드렸습니다. 그리고 물 있는 곳에 이르러서는 지체하지 않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에디오피아 내시는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한 편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과 준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에디오피아의 내시 를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구원하고자 계획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도 준비시켰습니다. 그래서 빌립을 보내어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준비된 마음에 복음이 전해지니 주저하지 않고 믿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전도도 ‘여호와의 이레’, 즉 여호와 하나님이 준비하셔야 되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전도는 열심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하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준비하신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전도는 나의 일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의 일이고, 영혼의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이 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과 준비에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전도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과 준비에 따라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전도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과 준비를 알려 주십니다. 전도할 사람을 붙여 주십니다. 전도할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 주십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여 복음을 받아 드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먼저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고 내 생각만 가지고 하다가는 실패할 수가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실패를 거듭하면 결국에는 전도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게 되고 결국에 가서는 영영 전도를 못하는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두 번째 사실은 전도하는 사람의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사마리아에서의 빌립의 전도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빌립이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이제 사마리아에서 한창 전도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습니다. 좀더 하면 곧 온 성에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그 곳을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가라는 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광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이성과 경험에서 보면 납득이 가지 않는 명령이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계속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이 전도하여야 했습니다. 이제 전도의 불이 붙어서 많은 열매도 맺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나가면 곧 성 사람들이 다 믿을 수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이제 그만 하고 그 곳을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빌립은 말 없이 성령의 지시에 순종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다 계획하시고 준비해 놓으셨을지라도 정작 복음이 전해지지 않으면 구원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한다는 속담도 있듯이 아무리 복음이 죽을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다고 해도 전하지 않으면 아무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빌립이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여 에디오피아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는 로마서 15장 14절 말씀을 실감하게 됩니다.
여러분! 만일 빌립이 성공적인 전도의 결과에 집착하여 사마리아를 떠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에디오피아의 내시는 복음을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잃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복음을 듣지 못해서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그러면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을까요 예, 성령의 지시를 거부하고 그에게 전도하지 않았던 빌립에게 있을 것입니다. 빌립의 책임은 전도 안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내시가 구원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도 지게 됩니다.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세 번째 사실은 전도에는 우리가 모르는 여호와 하나님의 깊은 뜻이 숨겨 있다는 것입니다. 당초 내시가 에피오피아에서 예루살렘을 가려고 했던 것은 성지 순례가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기회를 통해 그로 하여금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본인 자신은 미쳐 깨닫지 못했겠지만 이것으로 하여금 에디오피아의 선교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는 고국에 돌아가 자기가 영접한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로 시작된 복음은 에디오피아에 전파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에디오피아가 아프리카에서 최대 기독교 국가로 존재하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보면 똑같습니다. 우리 나라에 최초로 복음이 전해졌을 때는 아주 미미했습니다. 미국 사람 아펜젤라와 언더우드 두 선교사에 의해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적은 사람들이 믿기 시작했습니다. 박해와 핍박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점차로 확산되어 불과 1 백년 만에 세계 기독교 역사상 놀랄만한 기적적인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오래 전에 말씀 드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저는 17살 때부터 그러니까 고등 학교 2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교회를 나가고 싶어서 나간 것은 아닙니다. 한창 놀기 좋아하던 시절이라 교회 가면 좋은 친구들, 특히 여학생들을 사귈 수 있다는 친구의 유혹에 넘어가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재미가 있어서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복음이 조금씩 마음 속에 들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부흥 집회가 열리던 어느날 예수를 나의 구주 영접하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이 지금은 목사가 되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가 이 말씀을 하는 것은 별로 흥미 없는 저의 과거에 대해 말씀 드리자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거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저의 경우나 에디오피아 내시의 경우를 보거나 우리를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부르시어 예수를 믿게 하신 것은 일차적으로 나를 구원하게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신묘한 다른 뜻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나 저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의 사업을 이루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중요한 진리를 깨달으실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만일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것을 깨닫는다면 이제 우리의 신앙관과 인생관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삶의 목표와 목적도 달라질 것입니다. 불신자의 영혼을 보는 안목도 달라질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진실로 깨닫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도에 힘쓰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클립 크네흐틀(Cliff Knechtle)라는 사람이 말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 오는 것은 여러 고리를 가진 쇠고랑과 같다. 쇠고랑은 첫 고리가 있고 중간 고리가 있으며 마지막 고리가 있다. 사람이 회심하여 예수를 믿게 되기까지 많은 영향과 대화의 경로를 거쳐야 한다. 나는 어떤 때는 첫 고리가 되지만 어떤 때에는 중간 고리도 된다. 그리고 또 어떤 때에는 마지막 고리가 되기도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내가 항상 마지막 고리가 되도록 하시지는 않는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 연결하는 많은 고리 중 하나로 사용하실 뿐이다. ”
오늘 우리는 본문은 통해 처음에서 끝을 한 번에 연결했던 빌립의 전도에 대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빌립과 같은 전도를 하기 원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드라마틱한 전도의 한 장면을 보여 준 것입니다. 모든 전도가 이렇게 극적으로 이루어지지 만은 않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과연 전도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구원에 이르는 고리는 수 십 개가 됩니다. 죽음에서 영생으로 이르는 이 긴 고리 중 어느 한 고리만의 역할이라도 감당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나에게 어떤 역할을 맡기시든지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역할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의 성장을 원하십니까 물론 그러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전도하십시오. 교회가 전도하지 않고 어떻게 성장하기를 기대하겠습니까 전도하면 교회가 성장합니다. 미국 훌러 신학교의 교회 성장학 교수인 피터 와그너는 “만일 교회 안에 전도에 열심을 내는 사람이 5%만 있다면 그 교회는 반드시 성장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또 우리나라 교회 성장학 교수인 명성훈 박사는 국내 부흥하는 교회들에 대해 조사한 후 “우리나라의 부흥하는 교회는 한결같이 전도하는 교회이었고, 그리고 전도하는 교회는 반드시 부흥한다. ”라는결론을 내렸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오래 다녔건, 이제 얼마 되지 않았건 우리 모두에게는 전도의 사명과 책임이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신자에게 기도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모든 성도에게 전도할 의무가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전도는 예수 믿고 구원을 얻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거룩한 임무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전도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구원 받은 것은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전도를 위해 먼저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과 준비를 보여 주실 것입니다. 전도의 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전도할 사람을 만나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십시오. 성령이 마음 속에 말씀하시는 것을 거부하지 마십시오. 마지막으로 나를 의지하지 마시고 성령을 의지하십시오. 그래서 나의 전도로 구원 받은 사람들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큰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도록 하십시다. 전도하는 신자, 전도하는 교회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자로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크게 들어 쓰실 것입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 교회와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각성의 시간
이 시간에는 우리 다 눈을 감으시기 바랍니다. 조용한 마음으로 자신의 전도 생활을 한 번 되돌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전도가 이렇게 중차대한 사명인데 지금까지 나는 정말로 신중하게 생각하고 이를 위해 힘썼는가 전도가 천사도 흠모하는 그런 귀한 일인데 나는 정말로 귀하게 생각하고 전도하려고 했는가 지금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나가 복음을 증거할 것을 바라고 계신데 나는 일부러 모른 척 하고 있지는 않은가 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지금까지 온전한 전도 한 번 해 보았나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며 결단하는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한 창 복음의 불꽃이 피어 오르던 사마리아는 빌립이 떠남으로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호와 하나님은 이제 사마리아의 전도는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사마리아에는 빌립의 전도로 이미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제 갓 믿은 초신자들을 통해 사마리아 사람들을 전도하도록 하셨습니다. 빌립이 그곳에 없어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받아드린 다른 사람들을 사용하여 사마리아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전도하는 책임과 동시에 힘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전도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전도하지 못하는 것은 나에게 전도의 은사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전도할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우리의 입과 입을 통해서, 개인과 개인의 만남을 통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전해왔습니다. 그래서 현재 지구상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천주교, 정교회 등을 포함해서 약 20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전해져서 마침내 온 민족에게 그리고 땅 끝까지 전파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심판의 주로 다시 이 땅에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의 원대한 계획은 성취될 것입니다.
빌 하이벨스(Bill Hybels)는 “여호와 하나님께 정직하십니까”라는 그의 책에서 전도에는 다음의 6가지 방법이 있음을 말했습니다.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당신이 그 사람이요. ”라고 하는 대결 전도입니다. 이것은 사도행전2장에서 베드로가 한 전도의 예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 앞에서 “당신들이 메시아인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받아 죽인 사람들”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많은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라고 하는 지성 전도입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17장에서 나오는 전도의 다른 예로서 지성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 아덴에서 지성이라면 둘째 가기를 서러워 하는 철학자들에게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그런 다음 바울은 그들에게 지성을 가지고 복음이 정말 진리인지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호소했습니다.
다음 세 번째는 “그 분이 내 삶을 변화 시켰어요. ”하는 간증 전도입니다. 이 예가 요한 복음 9장에 나옵니다.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평소 예수님을 좋지 않고 생각하고 있던 바리세인들이 소경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네가 어떻게 해서 눈이 뜨이게 되었느냐” 소경이 대답했습니다. “그 분이 내 눈을 뜨게 하였습니다. ” 소경은 삶 속에서 체험한 예수를 증거 했습니다.
네 번째는 복음대로 사는 관계 전도입니다. 예수님이 거라사 지방에서 가셨습니다. 그 때 귀신이 들려서 아무도 제어할 수 없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들어간 귀신을 쫓아 내 주셨습니다. 온전한 정신이 든 이 사람은 예수님을 좇는 제자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쩐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예수님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 너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증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사람들에게 말하니 듣는 사람마다 기이히 여겼습니다. 귀신들렸던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전했습니다.
다섯 번째는 “와 보라. ”고 하는 초청 전도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이 물을 길러 우물에 나왔을 때 마침 그곳에서 쉬고 계셨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자신을 계시하여 여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메시아인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메시아를 발견한 여인은 물동이를 내버려 두고 동네로 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으니 ‘와 보라’고 말했습니다. 여인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난 그리스도에게로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하는 봉사 전도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룻다라고 하는 곳에 도르가라는 여제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도르가는 평소에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였던 과부였습니다. 그런데 도르가가 병이 들어 죽었습니다. 그러자 도르가를 따르던 많은 여인들이 베드로를 오게 하여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였습니다. 도르가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섬김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상의 여섯 가지 전도 방법 중 어느 것이든지 택하여 전도를 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나는 이런 방법들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예수님과 연결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그 사람이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고 안 받고 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닙니다.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 나는 일차적으로 예수를 증거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 중에서 먼저 영적인 복에 대해 보십시다. 누가복음9장 1절로 2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예수님께서는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능력과 권세를 전도하러 나가는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오늘 날에도 전도하는 사람에게 이런 능력과 권세를 주십니다. 그래서 전도를 하다 보면 기적과 표적과 이사가 일어납니다. 불치의 병이 납니다. 귀신이 나갑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왜 이런 이런 일들이 전도할 때 나타납니까 그것은 불신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믿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아프리카나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서 전도를 할 때 이런 기적들을 경험하는 선교사들이 많이 계십니다.
다음은 인적 권세입니다. 사도행전 16장 14절을 보십시다.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한지라’ 사도 바울이 유럽 전도를 시작할 때 유럽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빌립보에서 처음 시작했습니다. 이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미 루디아라고 하는 여인을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바울은 이 여인의 도움을 받고 유럽 선교에 전초 기지를 놓을 수 있었습니다.
또 로마서 16장 3절, 4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 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바울이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수많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항상 바울 곁을 떠나지 않고 그를 도왔습니다. 이렇게 전도를 하는 사람에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필요한 사람을 붙여 주시어 전도를 잘 할 수 있게 하여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물적 권세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9절부터 30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이것은 복음을 위해 수고한 사람이 이 땅 위에서 받는 물질적인 복입니다.
전도를 하려면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전도를 잘하게 하기 위하여 물질도 주십니다. 빌립보서 4장18절을 보십시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사도 바울은 전도를 할 때 필鄂 물질들을 공급 받았습니다. 전도를 하는 그에게 각 교회들은 물질로 그를 도왔습니다.
두 번째로 하늘 나라에 가서 받는 복입니다. 무엇보다도 복 중의 복이라고 할 수 있는 영생의 복을 받습니다. 가장 큰 복입니다. 좀 전에 보았던 마가복음 10장 30절에 의하면 전도를 하는 사람에게는 영생을 얻지 못할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즉 영생이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또 내가 한 전도의 열매만큼 면류관을 받고 아울러 주님께 칭찬을 받습니다(빌4:9 ; 딤후4:6-8). 그리고 하늘 나라에서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단12:3). 그러나 전도하지 않으면 다른 영혼이 구원 받을 수 없기도 하지만 내 영혼에도 손해가 막심합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첫째, 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신앙이 성숙해지지 않습니다.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전도하게 되면 기도하게 됩니다. 힘과 용기와 능력이 생깁니다. 보람이 있는 일을 하게 되어 마음도 기쁘고 즐겁습니다. 결과적으로 믿음이 자라고 신앙이 성숙해 집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둘째, 상급이 별로 없습니다. 전도의 열매는 전도자의 면류관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별처럼 영광을 얻습니다. 전도를 하지 않았다고 천국에 못 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서도 벌로 받을 것이 없습니다. 전도를 한 사람들은 다 영광스러운 면류관들을 받는데 전도를 하지 않은 사람은 받을 것이 없습니다.
또 전도를 하지 않으면 셋째, 하늘 나라에서도 그렇지만 이 땅에서도 복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10장29절, 3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전도하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책망을 듣습니다. 에스겔 3장에 보면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아서 그 사람의 영혼이 죽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은 그 책임을 나에게 묻겠다고 하십니다. 또 고린도전서9장16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자기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도를 하든지, 안하든지 하는 것은 나의 자유이지만 그것에 따른 심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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