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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성경으로 나지 아니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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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신문을 읽다가 아주 재미있는 기사 하나를 발견을 했습니다. 그것은 영국의 유명한 일간지인 'The Times'의 기사를 인용 보도한 그런 내용이었습니다만은…그 제목이 '주일 예배에 안 빠지면 오래 산다. ' 그런 제목이었습니다. 주일 예배 안 빠지면 오래 산다.. 목사인 저로서는 눈이 확 뜨이는 그런 기사였습니다. 제가 그 기사를 자세하게 읽어봤습니다. 아마 저만이 아니라 모든 목사님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 예배 안 빠지면 오래 산다. ' 이이 어떤 목사님들 설교를 이 제목으로 하셨으리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세히 읽어보니까 내용은 이런 겁니다. 1987년에-지금부터 10여 년 전입니다만은-미국에 있는 어느 의료 설문조사 컨설팅 회사에서 2천명의 죽은 사람, 죽은 사람 2천명에 대하여 설문조사를 했는데 최소한 정기적으로 매주일 한번이상 예배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7년을 더 살았다는 것입니다. 평균적으로. 그리고 흑인들의 경우에는 무려 14년을 더 살았다 하는 그런 내용의 설문조사였습니다. 여러분, 혹시 못 믿을 까봐서 제가 신문기사를 가지고 왔습니다. '예배 안 빠지면 오래 산다. '라는 신문기사입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주일 예배 안 빠지면 오래 산다는 이 말이 저 같은 목사들에게 있어서 교인들에게-교인들이 주일 예배 빠지면 목사들이 좀 속상하거든요-거봐라, 성서 주일 하면 복 받지 오래살고. 그렇게 얘기를 할수 있는 것 이상의 큰 의미가, 깊은 의미가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올 이제로부터 시작해서 꼭 160일이 지나면 새로운 천년이 시작이 되는 서기 2천년대의 시대가 열립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지금 한 천년이 지나고 또 다른 한 천년이 시작이 되는 엄청난 역사적인 순간에 살고 있다 그런 말씀입니다. 1999년 12월 31일과 2000년 1월 1일-불과 하루의 차이에 불과하기는 하지만은 이것은 엄청난 사건일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역사가 펼쳐질 것이라는 그런 것입니다. 우리들은 새로운 미래를 이제는 살아갈게 될 것이라는 그런 지적입니다.

대개 역사학자들은 우리 인류역사의 발전을 몇 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첫째로는 농경사회입니다. 우리 인류가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러서 먹고 살던 그런 사회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농경 사회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힘센 사람이 행세를 하던 그런 사회입니다. 농사를 짓는, 노동을 해서 사는 그런 사회임으로 말미암아 힘센 사람이 제일 행세를 하고 힘센 사람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런 사회입니다. 그래서 자연히 힘센 남성 중심의 사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사람들이 기술을 발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손으로 하던 일을 기계가 하게 되었습니다. 손으로 하나씩 둘씩 만들던 것을 기계로 대량 생산 하게 되었습니다. 산업 사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기술사회가 된 것입니다. 이 산업사회, 기술 사회에서는 기술자가 제일입니다.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술자가 제일인 그런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좋은 기술이 많은 사람에게 쓰여지지를 못했어요. 예를 들면 사람의 목소리를 저장을 하는, 기억시키는 기술을 개발하기는 했는데 그것을 여러 사람들이 쉽게 이용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기술 사회의 한계였지요. 그래서 머리에 좋은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그 기술자들이 개발한 기술을 이용을 해서, 응용을 해서 축음기도 만들고 녹음기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팔아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좋은 이 지식인들이 대접을 받는 지식 사회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기술자는 그러므로 지식인 밑에서 기술을 개발하는, 지식인 밑에서 일을 하게 된 그런 세상입니다. 그 다음 역사 발전은 정보통신의 시대로 넘어갑니다만은…이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기술자가 개발하고 지식인이 그 기술을 이용하고 응용해서 만든 상품을 누가 얼마나 더 빠르게 그리고 많이 많은 사람들에게 파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경제라는 것은 그 나라에 얼마나 좋은 길을 닦았느냐.

여러분, 우리 나라가 그러므로 경제 개발을 시작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것이 무엇입니까? 고속도로였습니다. 얼마나 빨리 물건을 운반할 수 있느냐, 그래서 얼마나 좋은 길을 닦았는가, 얼마나 더 빠른 교통 수단을 가졌느냐, 얼마나 더 빠른 통신 시설을 가졌느냐! 컴퓨터, 인터넷 기술-그것이 그 나라의 경제를 좌우하는 그런 세상입니다. 정보통신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정보통신의 사회이며 그 절정을 지금 넘어가고 있다고 그렇게 역사학자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문제는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정보통신의 시대가 지나면 우리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될 것인가, 어떤 세상이 올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의 우리의 시대는 무엇이 역사를 지배할 것인가, 어떤 사람이 우리의 인류를 사로잡고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질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의견을 같이 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다가오는 우리의 시대는 영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Spiritual era',영성의 시대, 그것이 다음 단계 역사발전에 인류가 경험하게 될 사회라는 것입니다. 힘이 지배하는 노동사회, 그리고 기술 산업 사회, 지식인들이 행세를 했던 지식 사회 그리고 정보통신 사회를 지나서 우리의 인류는 바야흐로 드디어 영성의 시대, 'Spiritual era'에 진입하고 있다는 그런 주장입니다. 사실 여러분, 우리 세상 돌아가는 것을 가만히 보면 아주 흥미로운 일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는 과학적 실증에 의한 의학적 지식과 기술로 사람의 병을 고치려고 했습니다. 그것을 최고의 치료법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런 의학적인 기술과 지식 말고 자연요법이라든지, 무슨 기치료라든지 그런 것들에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흥미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신문에서 보는 대로 지금 중국에서 '파룬궁'이라는 이 기체조요법-지금 이 중국 사람들이 주장하는 대로는-중국에만 1억의 사람들이, 1억이 넘는 사람들이 '파룬궁'이라는 이 기체조에, 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중국 공산당이 지금 아주 심각해졌습니다. 중국 공산당원이 7천만명인데 그 보다도 숫자가 훨씬 많은 1억이라는 사람이 지금 '파룬궁'에 도취되어 있습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그리고 싱가폴, 세계 곳곳에 지금 '파룬궁'이라는 이런 새로운 종교, 신흥 종교가 지금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징조 중에 하나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다.

여러분, 요즈음 아주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각 대학에서-서울 대학이든지, 연대든, 고대든지 뭐 여러 대학에 - 소위 기업체의 고위 간부들을 상대로 하는 최고 경영자 과정, 최고 지도자 과정이라는 그런 특별한 과정이 있습니다. 기업에서 근무를 하는 고위직 기업 간부들, 경영자들을 모아서 교육을 하는 일입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고위 간부로써 시시 때때로 변하는 오늘의 시대에 여러 가지 새로운 정보와 그리고 새로운 지식을 교육하기 위해서 설치한 그런 과정입니다. 아주 각 대학마다 인기가 있는 그런 과정, 과목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이 최고지도자 과정, 우리 나라 기업의 최고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교육하는 이 최고 지도자 과정에 최근 들어서 꼭 들어가는 과목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유명한 목사님들을 강사로 모시고 특강을 듣는 일입니다. 목사님들 들어 보니까 이 각 대학의 경영대학 최고 지도자 과정에 특강으로 출강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는 얘기를 제가 들었습니다. 이제는 앞으로의 기업, 기업을 경영하는 유능한 기업인이 갖추어야 될 소양 가운데 최신 정보와 경영 기법과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 영성이다. 영적인 것이다. 영적인 분야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이 영적인 능력, Spiritual sense가 있는 사람이라야 앞으로는 기업을 유능한 기업인이 될 수가 있고 기업을 잘 경영 할 수 있는, 사업을 잘 성공시킬 수 있는,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하는 그런 인식에서부터입니다. 그래서 기업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을 교육하는 과정 중에 목사님의 말씀을 꼭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대목입니다. 변화입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 보니까 사법고시를 합격을 하고 판검사가 되고 어디 변호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을 훈련하는 사법연수원에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님을 모셔서 말씀을 들었다 그런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대로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이제 사원들을 연수하는 과정 중에서, 심지어는 공무원들을 교육하는 과정 중에서도 이 영성 훈련에 관계된 과목을 꼭 넣으려고 하는 그런 추세가 지금 급작스럽게 번져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들이 사는 이 사회라는 것은 영적인 것을 우습게 여기는 그런 풍조의 사회였습니다. 종교적인 행위라는 것은 미신 비슷하게 취급을 했습니다. 기도라는 것은 무식한 부녀자들이나 하는 것쯤으로 치부를 했습니다. 주일 예배라는 것은 습관적으로, 체면 때문에 억지로 참석을 했습니다. 또 주일날 빠지면 여호와 하나님이 혹시 벌을 주지 않을까 생각을 해서, 꺼림칙해서 교회 나온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내 인생에, 내 삶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부분이다. 기도라는 것이 나의 삶에 꼭 있어야 될, 귀중한 나의 삶의 한 부분이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내 삶에 의미가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있어서 이 영적인 면을, 영성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시대가 바뀌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기술이 제일인 줄로 생각을 했습니다. 지식을 앞세우면서 우리는 살아왔습니다. 컴퓨터, 인터넷 없이는 우리는 살아갈 수 없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마 여러분들 중에 대부분의 많은 분들도 기도는 안하고 살아도 컴퓨터 없이는 살지 못할 분들이 여기 많이 계실 것입니다. 기도는 일주일에 한번도 안 해도 괜찮지만 컴퓨터 없이는 살아 갈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예배라든지, 기도라든지 그런 것은 여건이 되면 하고 시간이 없으면 못해도 되고…우리 삶의 덤으로 생각했습니다. 뒷전에 밀려 있는 분야였습니다. 프라이버티에서 아주 뒤에 쳐저 있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신앙생활을 내 인생에 있어서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가 않았습니다. 특별히 지식이 있는 사람들, 능력이 있는 사람들, 기술이 있는 사람들, 지식 정보 시대의 수제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제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영적인 세상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영성의 시대가 지금 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잘 아시는 대로 서구 사회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건설된 사회이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모든 제도나 그 밑바탕 정신이 기독교 신앙에 근거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서구 사회가 기술 사회와 산업 사회 그리고 정보통신 사회를 거치는 동안에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야, 이제 여호와 하나님이 없이도 우리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실컷 살수 있는 세상이 되었구나. '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인간들이 우리들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이든지 다 만들어 냈습니다. 또 우리가 산업 사회를 이루어서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풍요로움을 구가했습니다.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세상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야, 이제 신나게 놀아보자. 먹고 마시고 즐기자. " 주말이 되면 고리타분한 교회를 찾는 대신 산과 바다로 나갔습니다. 기도하는 대신 과학기술을 신봉했습니다. 교회가 텅텅 비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와 여호와 하나님의 영감보다는 자신의 지식을 위시하며 살았습니다. 신부, 목사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없어졌습니다. 신학교가 다 비었습니다. 여러분들, 옛날 이 서구 사회에서는 신학이라는 것은 아무나 하지를 않았습니다. 제가 한번 스위스를 가보니까 스위스에서 신학을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은 대학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얻은 사람이라야 신학교에 갈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무슨 예비고사 떨어지고 신학교에 가지를 않았습니다. 스위스에서는요. 이렇게 중요했습니다. 그런 신학교가 다 텅텅 비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여러분, 서구 사회에 변화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신학교를 찾는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교인들이 점점 교회에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실컷 놀아보고 마시고 즐겨보고 과학기술로, 자기들의 힘으로 살아보려고 자신 만만했고... 그래서 수 년 동안 그렇게 열심히 살아봤는데, 아니 그렇게 하면 우리 인간이 행복할 줄로 알았고 우리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 없이도 살 줄 알고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수 십 년 동안 그렇게 해본 지금, '아, 인간이 산다는 것이 그것이 아니구나!' 지금에서야 드디어 그것만으로 그것으로써 우리 인간들이 살아갈 수 없게 됨을 깨닫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래서 다시 교회로 돌아옵니다. 여호와 하나님 없이는 살수 없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사람들이 갖게 된 것입니다. 영성의 시대가 열려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3장의 이 니고데모의 이야기-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니고데모라는 사람은 산헤드린의 지도자였습니다. 유대의 지도자였습니다. 지식과 권력과 명예가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한 인간으로써 무엇이든지 다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혼자의 힘으로 넉넉하게 인생을 살고도 남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니고데모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권력도 있었고 지식도 있었고 명예도 있었고... 그런데 그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겉보기에 도무지 무엇하나 아쉬울 것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지만, 그였지만-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우리 교회 교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무엇하나 인생을 혼자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지만은 니고데모 자신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자신에게는 권력도 지식도 재물도 명예도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지만, 스스로 인생을 살아가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진 그였지만 그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지막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인생이라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 그런 것만을 가지고는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뼈져리게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생의 저 밑바닥 깊은 곳으로부터 무엇인가 끝없는 갈증을 느끼고 니고데모는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권력을 휘둘러도 보고 명예를 가져도 보고 재물을 가진 것에서 느끼는 보람과 즐거움과 행복을 추구해 보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인생이 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도대체 내 인생이 왜 이럴까? 내가 도대체 무엇이 부족하다고... 니고데모는 아마 끝없는 번민과 고민 끝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니고데모를 만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아주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돈이 많고 공부를 많이 해서 아는 게 많고 그래서 능력이 있고 권력이 있고 명예가 있고 그래서 혼자의 힘으로 살수 있을 것 같고... 그러나 그런 것들만 가지고는 인생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만 가지고 인생을 살아 갈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에게 있어서 한가지 더 근본적인 것이 필요한데 그것은 무엇인가. 영적인 것이다. 성령으로 다시 거듭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으로 다시 나야 된다. 영적인 삶을 살아야 된다. 인간이라는 것은 세상적인 그런 것들만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다. 그러므로 영적인 생활이 없이는 결코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재미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5절 말씀에 보면 "그래야 네가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 "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야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여호와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근심과 걱정이 없는 나라입니다. 행복이 깃든 나라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인간으로써 참 행복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 그와 같은 인생에 가장 근본적인 행복의 삶이란 어떻게 가능한가?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 다시 말하면 영적인 삶을 살아야 된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이제 저의 말씀을 마치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 기업을 하시는 분이 있는데, 기업인으로써 아주 성공하신 분입니다. 제가 한번 물어 봤습니다. 사장님, 사장님의 기업의 성공 비결은 무엇입니까?" 이 사장님이 주저 없이 대답하십니다. "신앙 생활입니다. " 그래서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참 어떻게 저렇게 상투적으로 그렇게 말을 할까! 더군다나 내가 목사니까 저렇게 얘기했겠지. ' 제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자기는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번 예배에 빠지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배-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듣고-는 자신에게는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 타임이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중에 자기는 과거의 지난날들, 세상에서 어지러워졌던 자신의 마음을 가지런하게 할 수 있고 편안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지러움을, 삶의 어지러움을 기도를 통해서 정리를 한다는 겁니다. 일주일에 한번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 기도하는 중에 새로운 영감을 받게 됩니다. 찬송을 하면서 끝없는 평안을 느끼게 됩니다.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기업의 철학을 계시 받고 새로운 회사의 방침을, 운영받침을 설교의 말씀을 통해서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있어서 죄송한 말씀이지만, 목사님에게 죄송한 말씀이지만 예배는 자신에게 있어서 최고의 비즈니스입니다.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 저는 예배에 참석합니다.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사람들은 자기의 사업 때문에 바빠서 교회를 못 간다고 그럽니다. 나는 이해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기 때문에 가야 되고 사업을 잘 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되고 사업을 잘하기 위해서 설교를 한 주일에 한번 적어도 듣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성수주일을 하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그런 유치한 차원이 아닙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이 주일날 꼭 가는 것은 성수주일을 해야 축복을 받는다. 우리 다 그러지 않습니까? 주일날 문닫잖아요. 성수 주일한다. 주일날 사업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다. 하고 다 문닫습니다. 이 사람 그런 의미에서, 그런 차원에서, 여호와 하나님에게 가서 복을 빌고 그런 차원에서 예배당에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위해서, 사업을 하고 큰 회사를 경영하는 그 사람, 그 자신의 경영인으로서의 새로운 에너지와 삶의 그 밑바닥으로부터 나오는 그 힘을 축적하기 위해서 공급하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 겁니다. 저는 이 말을 아주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이 말씀, 여러분들이 무슨 교회에 주일날 빠지고 그래서 성수주일을 강조하기 위해서 목사님 사람으로써 여러분들을 회유하고 또 여러분들을 협박하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 제가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여러분, 저는 그런 유치한 방법으로 여러분들을 향해 목회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영적인 삶이라는 것이 여러분들의 인생에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으로, 병원을 고치는 의사는 의사로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으로서,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 영적인 에너지라는 것은 여러분들의 삶에 근본적인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이런 에너지의 공급 없이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바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요한3서 1장 2절 말씀에 보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 하노라. ' 여러분들의 영혼이 강건해야 그래야 여러분들이 하는 모든 일이 순조로울 수가 있습니다. 강건할 수가 있다. 잘 될 수가 있다. 여러분, 이제 바야흐로 우리는 위대한 새로운 영성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 충만한 영감에 사로잡힌 자들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그런 세상의 문턱에 저희들은 다다라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자녀 교육하는 것을 조금 걱정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도 자식을 잘 기른 사람이 아니니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은 제가 어제 우리 주일학교 여름 성경학교 하는 데를 갔다 왔습니다. 아홉 사람이 갔어요. 교사가 아홉 명입니다. 아주 이상적인 그런 성경학교였습니다. 교사 아홉 명에 학생 아홉 명이니까... 거기다 밥 해주는 사람이 두 사람 있었으니까 교사 11명에 학생이 9명이었습니다. 아주 이상적인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아주 가슴아프게 생각했던 것은 우리 교회에 와야 될 아이들이 많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다 사정이 있었겠습니다만은... 여러분, 여러분 자녀들에게 무엇을 여러분들 가르치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 모두의 생각 속에 컴퓨터 꼭 가르쳐야 된다. 컴퓨터 못하는 아이가 앞으로 살아 갈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컴퓨터 가르칩니다. 전문적인 기술이 없이는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다. 여러분들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자녀에 대해서 전문적인 기술을 가르치려고 할겁니다. 인터넷 가르쳐야 된다. 외국어를 꼭 가르쳐야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금 돈을 들여서 외국에 어학연수도 보내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그것만 가지고 그런 기술과 그런 지식만 가지고 살아 갈 수 없는 세상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자녀에게 이제 가르쳐야 될 것은 컴퓨터뿐만이 아니라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야 된다. 기도할 줄 아는 아이로 가르쳐야 된다. 기도할 줄 아는 방법을 가르쳐야 된다.

여러분들의 아이에게 인터넷만이 아니라 찬송할 줄 아는 법을 가르쳐야 됩니다. 여러분들의 아이에게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상하는 그런 지식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영감을 받고 계시를 받는 그런 방법을 여러분들이 가르쳐야 됩니다. 그런 아이라야, 그런 자녀라야 새롭게 다가오는 이 위대한 영성의 시대에 역사를 이끌어 갈 수 있으며, 적응할 수 있는, 생존할 수 있는 여러분들의 자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위대한 영성의 시대가 지금 열리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21세기, 새 천년을 이끌어갈 주역이 영감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새 시대, 21세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함께 기도하고 우리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영감에 충만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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