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복음을 짊어지고 산을 넘는 발
본문
한국교회 초창기에 권서들은 성서공회에 소속되거나 선교사의 지도를 받으면서, 선교사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산간 벽지와 농촌, 섬마을을 다니면서 성경을 반포하며 복음을 전하였다. 권서들은 복음서, 사도행전, 잠언 등을 1백권 내지 1백 50권을 묶어 등에 지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그들은 서너 주에서 몇 달 동안 산을 넘고 들을 건너면서 마을들을 찾아 다녔는데, 맹수의 위험과 폭풍우 그리고 굶주림과 싸워야 했다. 성경 등짐을 지고 다닌 자국으로 등에는 굳은 살이 박혔고, 어깨에는 뱀이 지나간 것 같은 새끼줄 자국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권서들은 부락에 들어가서 첫 집에서부터 마지막 집까지 모든 집을 방문하였다. 어떤 마을에서는 환영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런 일은 매우 드물었고, 대개의 경우에는 모욕과 학대를 받았다.
권서들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돈이 없다” “읽을 줄을 모른다”는 대답을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그래서 권서들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 성경을 보급하기 위해서 인쇄된 한글 자모를 가지고 다녔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방법으로 권서들로부터 한글을 읽는 것을 배웠고, 이렇게 성경을 읽으면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돈이 없을 때에는 성경을 주고 그 값으로 계란, 쌀, 짚신 등의 물건을 받기도 하였다. 권서들의 엄청난 노력으로 한국에는 성경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교도소와 병원, 나환자 수용소, 매춘굴과 도박판, 아편소굴 그리고 궁궐과 가게에까지 들어가 모든 곳에서 ‘중생한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권서들의 엄청난 노력으로 한국에는 성경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교도소와 병원, 나환자 수용소, 매춘굴과 도박판, 아편소굴 그리고 궁궐과 가게에까지 들어가 모든 곳에서 ‘중생한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렇게 성경을 반포한 권서들은, 자신들의 사역에 대해서 이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그릇된 길에서 올바른 길로 변화되는 것을 보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 “예수님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 섬의 사람들이 복음서를 받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기쁘다. ” 그들은 성경을 반포하는 목적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서게 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권서들이 반포하는 성경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한국교회 초창기에 교회가 세워진 것도 권서의 활동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교회가 없는 산간지방이나 외딴 지역에서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게 된 경우에, 권서들은 그 지역에 적당하게 모일 장소를 마련하고 모임을 인도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자라서 교회로 발전했다.
최봉석 같은 능력 있는 목사나 주남선 목사 같은 신사참배 반대투쟁의 선봉자들이 권서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초기 선교 사업의 ‘최전방’에 서 있던 권서들은 한국교회사에서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헌신했던 선구자들이요, 한국교회의 창건자들이었다.
그들은 서너 주에서 몇 달 동안 산을 넘고 들을 건너면서 마을들을 찾아 다녔는데, 맹수의 위험과 폭풍우 그리고 굶주림과 싸워야 했다. 성경 등짐을 지고 다닌 자국으로 등에는 굳은 살이 박혔고, 어깨에는 뱀이 지나간 것 같은 새끼줄 자국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권서들은 부락에 들어가서 첫 집에서부터 마지막 집까지 모든 집을 방문하였다. 어떤 마을에서는 환영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런 일은 매우 드물었고, 대개의 경우에는 모욕과 학대를 받았다.
권서들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돈이 없다” “읽을 줄을 모른다”는 대답을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그래서 권서들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 성경을 보급하기 위해서 인쇄된 한글 자모를 가지고 다녔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방법으로 권서들로부터 한글을 읽는 것을 배웠고, 이렇게 성경을 읽으면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돈이 없을 때에는 성경을 주고 그 값으로 계란, 쌀, 짚신 등의 물건을 받기도 하였다. 권서들의 엄청난 노력으로 한국에는 성경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교도소와 병원, 나환자 수용소, 매춘굴과 도박판, 아편소굴 그리고 궁궐과 가게에까지 들어가 모든 곳에서 ‘중생한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권서들의 엄청난 노력으로 한국에는 성경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교도소와 병원, 나환자 수용소, 매춘굴과 도박판, 아편소굴 그리고 궁궐과 가게에까지 들어가 모든 곳에서 ‘중생한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렇게 성경을 반포한 권서들은, 자신들의 사역에 대해서 이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그릇된 길에서 올바른 길로 변화되는 것을 보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 “예수님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 섬의 사람들이 복음서를 받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기쁘다. ” 그들은 성경을 반포하는 목적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서게 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권서들이 반포하는 성경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한국교회 초창기에 교회가 세워진 것도 권서의 활동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교회가 없는 산간지방이나 외딴 지역에서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게 된 경우에, 권서들은 그 지역에 적당하게 모일 장소를 마련하고 모임을 인도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자라서 교회로 발전했다.
최봉석 같은 능력 있는 목사나 주남선 목사 같은 신사참배 반대투쟁의 선봉자들이 권서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초기 선교 사업의 ‘최전방’에 서 있던 권서들은 한국교회사에서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헌신했던 선구자들이요, 한국교회의 창건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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