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담대한 전도자
본문
베드로와 요한이 솔로몬의 행각에서 모여든 사람들에게 예수는 우리의 생명의 주가 되심을 증거 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회개하고 믿게 된 사람이 남자만 5천명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고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베드로와 요한의 전도로 기독교로 개종하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5천명이나 되었다는 것은 더욱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대제사장과 성전 맡은 자들과 사두개인들은 두려움과 분노에 치를 떨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정죄하고 공모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버렸던 예수를 베드로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증거 함으로 말미암아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의 가르침과 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거부해버렸기 때문에 분통이 터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과 능력을 보여준 베드로와 요한의 간증으로 예수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야로 전파되고, 부활의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저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싫어했습니다. 미웠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감옥에 감금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저녁이 되면 재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음날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산헤드린 공회원들과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모인 가운데 공개 재판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모든 공회원들이 둘러앉은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을 가운데 세워놓고 심문이 시작되었습니다.
두 사람을 둘러앉은 사람들은 모두 다 베드로와 요한을 시기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금방이라도 쳐죽일 것 같이 험악한 얼굴을 하고 양손을 불끈 쥐고 또는 삿대질을 하면서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책망하듯 물었습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참으로 분위기가 살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저들의 고압적인 자세와 태도 그리고 험상궂은 얼굴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고 목소리만 들어도 주눅이 들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조금도 위축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더욱 확신에 찬 말로 예수의 부활하심을 전했습니다.
더욱 힘있게 저들의 죄를 지적하고 책망했습니다.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질문한다면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여호와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할렐루야!
베드로와 요한은 주저하지도 않고 거침없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거했습니다.
저들은 도저히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병 나은 사람이 이렇게 분명하게 증인으로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있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베드로와 요한을 비난하거나 가로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들은 할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고민하며 의논한 끝에 이제부터 더 이상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옳은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우리가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담대하게 항거했습니다.
마침내 베드로와 요한을 미워하고 시기하여 붙잡아 감금하고 재판을 열었던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하는 수 없이 베드로와 요한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그리고 이 재판을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원수들 앞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어째서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훌륭하게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치 못하고 있습니까
어째서 베드로는 담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는데 우리는 담대한 전도자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까
베드로의 여호와 하나님은 능력이 있는데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까
베드로 시대는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 했지만 지금은 성령이 역사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도대체 베드로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담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오늘은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담대한 전도자란 제목으로 전도자 베드로를 집중적으로 묵상하면서 함께 도전 받고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베드로가 처음부터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 담대한 전도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원래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습니다. 그는 공부도 많이 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 지식도 없고 무식한 어부였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어느 날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과 같이 3년 동안 주님을 따라다니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는 3년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들었으며 많은 이적과 기사와 표적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붙잡히시던 밤에는 어린 계집 종 앞에서도 나는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 볼까봐 두려워한 나머지 세 번씩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맹세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나약하고 겁이 많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뿐입니까 예수님의 부활 후에도 베드로는 문을 걸어 잠그고 출입을 삼갈 정도로 연약한 베드로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담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혹시 알고 계십니까
그것은 첫째로, 그가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본문(행 4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본래 겁이 많고 두려워하던 베드로가 이처럼 담대한 전도자가 된 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살펴본 대로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 그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는 그때부터 담대한 복음 전도자가 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했을 때는 그렇게도 겁이 많고 나약했던 베드로였으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부터는 놀라우리 만큼 담대해졌습니다.
그 누구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저하지도 않고 담대하게 거침없이 예수를 전하는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담대한 전도자가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아무리 예수를 오래 믿었어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담대하게 예수를 전할 수 없는 겁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성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 생활은 그 누구보다도 잘하지만 왠지 전도 문제만 나오면 왜 그렇게 자신이 없어지는지 자신이 생각해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성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면 얼마든지 담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면서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에 전심전력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인격을 가지신 제 3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초청하십시오.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그 성령의 역사를 믿고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성령님께서 나를 주장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다스려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베드로는 오직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담대한 전도자가 된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베드로는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담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본문 (행 4 :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가슴에 있는 확신을 고백한 말입니다.
베드로는 성령으로 충만함과 동시에 오직 예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담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화) 외판원의 담대함 - 사실은 가짜인데도 진짜인 것처럼 확신에 찬 말로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웃기는 일입니까
내가 약을 판매하는 약장사입니다.
이 약으로 말할 것 같으면 ............. 확신을 가지고 선전을 해도 살까 말까 하는데 이 약이 그렇게 좋습니까 글쎄요 남들이 좋다니까 그런가보다 하는 거지 뭐 우리가 뭐 압니까 언제 실험해 봤나요 그냥 좋다니까 한 번 먹어나 보세요 믿져 봤지 본전 아닙니까 이렇게 확신이 없이 전하면 누가 그런 약을 사 먹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확실한 구원의 길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외판원들이나 모든 장사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것을 가지고도 담대하게 소개하고 전하는데 우리는 가장 확실하고 가장 좋은 선물인 구원의 복음을 전하면서 왜 자신이 없어하고 왜 확신을 가지고 전하지 못하는 겁니까
또한 베드로는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행 4 :20)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직접 본 것만큼 확실한 것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내가 직접 들은 것만큼 확실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베드로와 요한은 담대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3일만에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이심을 확실히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담대하게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담대한 전도자가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무엇이 옳은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행 4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을 위협하며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악한 사람들에게 스스로 판단하고 깨닫게 하려고 다시 되 묻는 것입니다.
너희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는 사람들임으로 스스로 판단해 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너희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은 것인가 판단해 보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말해보라는 겁니다.
너희가 우리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말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들어야 된다는 사실을 베드로와 요한은 잘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아무리 위협하고 협박을 해도 우리는 너희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겁니다. 너희가 말하는 대로 입다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복음예수을 전하는 것이 옳은 일인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인데 어떻게 ..... )
그러므로 베드로와 요한은 아무리 사람들이 겁을 주고 공갈 협박을 해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분명하게 안다면 담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베드로와 요한은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담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행 4 :20)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보고들은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나만 알고 가만히 침묵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죽어 가는 영혼들을 향하여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심을 증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고 전도하면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 돌아올지 분명히 알았지만 그래도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때부터 예수의 부활과 메시야 되심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바울 사도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부터 예수를 증거하고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전 9:16)에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 이로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에 대한 열정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믿지 않는 불신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런 전도에 대한 열정,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담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불신 영혼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담대한 전도자가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불신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과 전도에 대한 열정이 있습니까 이 시간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주변에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쌍한 영혼이 남아 있지는 않습니까 바로 그 영혼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전해야 하는 사명이 바로 여러분과 나에게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베드로가 믿었던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내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베드로를 사랑하셨던 주님이 여러분도 사랑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에게 함께 하셨던 성령님이 오늘도 여러분과 나에게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베드로와 요한 처럼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언제 어디서든지 복음을 전하는 담대한 전도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고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베드로와 요한의 전도로 기독교로 개종하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5천명이나 되었다는 것은 더욱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대제사장과 성전 맡은 자들과 사두개인들은 두려움과 분노에 치를 떨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정죄하고 공모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버렸던 예수를 베드로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증거 함으로 말미암아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의 가르침과 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거부해버렸기 때문에 분통이 터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과 능력을 보여준 베드로와 요한의 간증으로 예수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야로 전파되고, 부활의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저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싫어했습니다. 미웠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감옥에 감금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저녁이 되면 재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음날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산헤드린 공회원들과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모인 가운데 공개 재판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모든 공회원들이 둘러앉은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을 가운데 세워놓고 심문이 시작되었습니다.
두 사람을 둘러앉은 사람들은 모두 다 베드로와 요한을 시기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금방이라도 쳐죽일 것 같이 험악한 얼굴을 하고 양손을 불끈 쥐고 또는 삿대질을 하면서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책망하듯 물었습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참으로 분위기가 살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저들의 고압적인 자세와 태도 그리고 험상궂은 얼굴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고 목소리만 들어도 주눅이 들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조금도 위축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더욱 확신에 찬 말로 예수의 부활하심을 전했습니다.
더욱 힘있게 저들의 죄를 지적하고 책망했습니다.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질문한다면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여호와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할렐루야!
베드로와 요한은 주저하지도 않고 거침없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거했습니다.
저들은 도저히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병 나은 사람이 이렇게 분명하게 증인으로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있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베드로와 요한을 비난하거나 가로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들은 할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고민하며 의논한 끝에 이제부터 더 이상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옳은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우리가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담대하게 항거했습니다.
마침내 베드로와 요한을 미워하고 시기하여 붙잡아 감금하고 재판을 열었던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하는 수 없이 베드로와 요한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그리고 이 재판을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원수들 앞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어째서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훌륭하게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치 못하고 있습니까
어째서 베드로는 담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는데 우리는 담대한 전도자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까
베드로의 여호와 하나님은 능력이 있는데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까
베드로 시대는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 했지만 지금은 성령이 역사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도대체 베드로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담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오늘은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담대한 전도자란 제목으로 전도자 베드로를 집중적으로 묵상하면서 함께 도전 받고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베드로가 처음부터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 담대한 전도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원래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습니다. 그는 공부도 많이 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 지식도 없고 무식한 어부였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어느 날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과 같이 3년 동안 주님을 따라다니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는 3년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들었으며 많은 이적과 기사와 표적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붙잡히시던 밤에는 어린 계집 종 앞에서도 나는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 볼까봐 두려워한 나머지 세 번씩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맹세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나약하고 겁이 많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뿐입니까 예수님의 부활 후에도 베드로는 문을 걸어 잠그고 출입을 삼갈 정도로 연약한 베드로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담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혹시 알고 계십니까
그것은 첫째로, 그가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본문(행 4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본래 겁이 많고 두려워하던 베드로가 이처럼 담대한 전도자가 된 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살펴본 대로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 그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는 그때부터 담대한 복음 전도자가 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했을 때는 그렇게도 겁이 많고 나약했던 베드로였으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부터는 놀라우리 만큼 담대해졌습니다.
그 누구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저하지도 않고 담대하게 거침없이 예수를 전하는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담대한 전도자가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아무리 예수를 오래 믿었어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담대하게 예수를 전할 수 없는 겁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성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 생활은 그 누구보다도 잘하지만 왠지 전도 문제만 나오면 왜 그렇게 자신이 없어지는지 자신이 생각해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성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면 얼마든지 담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면서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에 전심전력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인격을 가지신 제 3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초청하십시오.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그 성령의 역사를 믿고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성령님께서 나를 주장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다스려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베드로는 오직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담대한 전도자가 된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베드로는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담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본문 (행 4 :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가슴에 있는 확신을 고백한 말입니다.
베드로는 성령으로 충만함과 동시에 오직 예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담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화) 외판원의 담대함 - 사실은 가짜인데도 진짜인 것처럼 확신에 찬 말로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웃기는 일입니까
내가 약을 판매하는 약장사입니다.
이 약으로 말할 것 같으면 ............. 확신을 가지고 선전을 해도 살까 말까 하는데 이 약이 그렇게 좋습니까 글쎄요 남들이 좋다니까 그런가보다 하는 거지 뭐 우리가 뭐 압니까 언제 실험해 봤나요 그냥 좋다니까 한 번 먹어나 보세요 믿져 봤지 본전 아닙니까 이렇게 확신이 없이 전하면 누가 그런 약을 사 먹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확실한 구원의 길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외판원들이나 모든 장사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것을 가지고도 담대하게 소개하고 전하는데 우리는 가장 확실하고 가장 좋은 선물인 구원의 복음을 전하면서 왜 자신이 없어하고 왜 확신을 가지고 전하지 못하는 겁니까
또한 베드로는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행 4 :20)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직접 본 것만큼 확실한 것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내가 직접 들은 것만큼 확실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베드로와 요한은 담대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3일만에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이심을 확실히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담대하게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담대한 전도자가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무엇이 옳은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행 4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을 위협하며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악한 사람들에게 스스로 판단하고 깨닫게 하려고 다시 되 묻는 것입니다.
너희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는 사람들임으로 스스로 판단해 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너희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은 것인가 판단해 보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말해보라는 겁니다.
너희가 우리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말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들어야 된다는 사실을 베드로와 요한은 잘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아무리 위협하고 협박을 해도 우리는 너희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겁니다. 너희가 말하는 대로 입다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복음예수을 전하는 것이 옳은 일인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인데 어떻게 ..... )
그러므로 베드로와 요한은 아무리 사람들이 겁을 주고 공갈 협박을 해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분명하게 안다면 담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베드로와 요한은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담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행 4 :20)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보고들은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나만 알고 가만히 침묵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죽어 가는 영혼들을 향하여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심을 증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고 전도하면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 돌아올지 분명히 알았지만 그래도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때부터 예수의 부활과 메시야 되심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바울 사도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부터 예수를 증거하고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전 9:16)에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 이로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에 대한 열정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믿지 않는 불신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런 전도에 대한 열정,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담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불신 영혼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담대한 전도자가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불신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과 전도에 대한 열정이 있습니까 이 시간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주변에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쌍한 영혼이 남아 있지는 않습니까 바로 그 영혼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전해야 하는 사명이 바로 여러분과 나에게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베드로가 믿었던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내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베드로를 사랑하셨던 주님이 여러분도 사랑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에게 함께 하셨던 성령님이 오늘도 여러분과 나에게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베드로와 요한 처럼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언제 어디서든지 복음을 전하는 담대한 전도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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