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전도자의 확신
본문
생명을 걸고 복음을 증거한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은 우리들에게 큰 감동을 가져다줍니다. 사자굴에서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들의 부족한 충성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로마 황제의 위협 속에서도 담대하게 신앙을 지켜나간 그들의 모습은 참된 전도자가 가져야 할 확신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한 때는 세계의 시선을 끌며 프로 복싱 선수로 활약하다가 복음전도자로 나선 조지 포먼에게서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무엇이 조지 포먼으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영광을 포기하고 복음 증거자로 나서게 만들었을까요
알리와 프레이져를 차례로 눕히며 92. 3%의 KO율을 자랑하던 조지 포먼이 1977년 지미 영에게 판정패한 후 패배의 충격이 아닌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전도자로 변신하였습니다. 죽음앞에서 금고 속의 돈도 모두 한낱 종이로 변할 것임을 깨달았고 영원한 안식이 있음을 깨달은 그는 자신의 재물과 명예를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모든 사람의 유혹과 조롱에도 오직 복음을 전하는 자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던 바울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전도자가 되는 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복음전도자들의 발걸음은 결코 편안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사명자의 길이 고난의 길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여야 할 에스겔에게 그가 만나게 될 사람이 어떠한 이들인가를 알려 주셨습니다.
"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겔 2:3
"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니라" 겔 2:4
"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지니라 겔 2:5
"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겔 2:6
"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 겔 3:7
그러나 그들을 대할 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 말 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지어다 " 겔 2:6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에게 모세를 보내면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대상은 강퍅하고 패역한 사람들이었으나 전하는 자는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도 어떠한 위협 속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한 상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박해하는 사람들은 그 당시에 대단한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위협은 쉽게 지나칠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반대는 노골적이었으며 집단적이었고 계획적이었습니다.
사도들의 사역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명확한 자세로 박해를 가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주님의 복음 전파의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요
산헤드린에 모인 박해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부활의 도를 전함을 싫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 큰 위협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큰 세력을 가지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재판정에 선 사도들은 두려워하지 않았고 도리어 담대함으로 증거하였습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명령에 순종하였다. 철저한 순종에는 두려움이 없다. 그리스도의 군사된 자들은 위협 속에서도 복음 전파의 사명은 계속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전도는 주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마 28:18-20) 바울의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딤후 4:1-2)
성령이 충만하였다. (8)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인하여 담대하였다.
확신이 있었습니다. 확신이 담대함을 주었다.
오늘은 특히 그들을 담대하게 만들었던 확신은 무엇이었는지, 전도자가 가져야 할 확신은 어떤 것인라를 깨닫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제자들이 가졌던 확신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첫째로, 그들이 가진 확신은 주님의 부활과 동행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사도들에게 있었던 최대의 확신은 주님의 부활이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사실은 자신들조차 믿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마 28: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막 16:11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인간의 이성과 자신들의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확신을 갖게 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난 뒤였습니다. 그들의 확신은 체험을 통한 것이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것은 거짓말과 같은 것입니다.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그를 본 사도들에게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이 부활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도마도 처음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40일 동안 부활하신 주님과 더불어 지냈습니다.
(예) 꿩과 닭 사이에 태어난 새: 닭 벼슬은 없고 꿩 꼬리는 없다 울음은 꿩소리:
학자들이 이해할 수는 없으나 사실이다. 모두들 연구의 대상이라고 한마디
주인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다가 잡혔으며 잡혀서도 강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2, 10) 직접 보고 들은 것이므로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사도들이 가진 확신은 체험을 통한 확신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핍박하던 삶에서 증거자로 바뀌게 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강하고 확실한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메섹에서 들은 주님과의 음성은 담대한 증거자로 만든 것입니다.
모세가 노구를 이끌고 바로에게 나갈 수 있었던 이유도 오직 분명한 체험,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만난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 살아계신 예수님, 함께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담대하게 만들어 주었고 평생 사명을 감당하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세상에서 담대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나의 삶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음성을 듣거나 떨기나무 속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습니까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체험을 통하여 만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음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받음으로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주님의 부활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할 때 그들은 담대한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확실한 증인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살아계신 주님의 역사하심을 맛본 사람들이 담대한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음성을 들은 것도 떨기나무의 불꽃도 본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삶 속에서 도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였습니다.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양을 칠 때에도 골리앗 앞으로 나갈 때에도 함께 하여 승리케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체험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확신한다는 것은 지금도 살아 계신 주님에 대한 확신이며 동행하심과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잠 3:6)입니다.
잠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과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은 체험을 통하여 자신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환란가운데서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 그러한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기에 담대할 수 있었으며 어떠한 어려움에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전적으로 그 분이 이끄시는 길로 가면 우리는 승리하게 됩니다. 우리를 안고 가시는 그분을 신뢰할 때에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전도자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지금 나와 함께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식하며 그 분과 함께 걷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과 동행하며 이끄시는 주님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 사도들의 확신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선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떳떳하게 담대하게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힘있는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옳은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릇된 일을 하는 사람은 힘을 가지고 있어도 떳떳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정치가들이 밀실정치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하면서도 숨어서 합니다. 왜냐하면 떳떳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담대합니다. 소수의 사람일지라도 떳떳하게 행동합니다. 그릇된 일을 하는 사람은 힘을 가지고 있어도 떳떳하지 못합니다. 힘을 가지고 감추려고 합니다.
(예) 지난 해 국회의원 선거 때 낙선운동은 그러한 사실을 증명한 것입니다.
힘없는 백성이지만 옳은 일이었기에 떳떳하게 외칠 수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관원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 앞에서 담대하게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들이 증거하고 있는 예수님은 옳고 유익하고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것은 유익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전하는 것은 참된 길이었습니다. 잘못된 것들로 가득 찬 곳에 유익한 길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길을 걷는 자들에게 길을 알려 주는 것보다 유익한 것이 없습니다. 자신들에게만 유익한 것을 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속에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참 길을 안내하는 것은 떳떳한 일이었습니다. 사도들은 떳떳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옳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전하는 것은 진리였습니다. 거짓된 세상에 참된 것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거짓으로 가득찬 세상에 참된 것을 알리는 것이라면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도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두려워 하는 사람은 핍박받는 사람이 아니라 핍박을 하는 사람입니다. 진실이 알려지기를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전하는 것은 생명이었습니다. 죽은 땅에 아름다운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가는 자들을 건지는 일입니다. 생명보다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필요한 것을 주는 사람은 떳떳합니다.
사도들에게는 자신들이 하는 일이 선한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9)
복음을 전하는 것은 개인을 살리는 일이며 가정을 복되게 만드는 일이며 사회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병든 자를 일으키는 것이며 가난한 자의 굴레를 벗어주는 것이며 죄의 사슬에서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이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이 그들을 담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옳은 일을 옳은일이라는 확신이 들 때에 담대한 사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바른 일입니다. 그러므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이러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증거하는 선한 일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사도들의 확신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증거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구원이 필요함을 확신하였습니다.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관원과 장로들에게 병자가 구원을 얻었다고 증거하였습니다.
자신들이 전하는 복음이 구원을 주는 일이라는 확신을 하였던 것입니다. (9)
모든 굴레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것이 곧 구원이다. 우리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여 주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환자가 병이 낫는 정도가 아니라 병을 가져다주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전도자가 가져야 할 확신은 예수님은 우리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
하기만 하면 과거를 묻지 아니하시고 미래를 밝게 인도하십니다
과거의 죄를 사하십니다.
엡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현재의 우리의 신분을 바꾸어 주십니다.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장래에 우리를 통하여 은혜의 풍성함을 보여 주십니다.
엡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마스터키이십니다. 영접하는 순간 우리앞의 모든 문은 열리게 되어있습니다. 땅에 사는 동안 모든 열리는 길을 걸으며 주님이 부르시는 날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요일 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만약에 구원을 받은 사람은 시험을 당하여도 결국 승리를 하게 되어있습니다. 구원은 최후 승리의 보장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여호와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시험이 있을지라도 무너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피할 길을 주시며 감당케하시며 건져 주시며 영광을 돌리게 하십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사자굴과 풀무불 사건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분명하게 보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담대하게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증거하는 자의 삶을 여호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도리어 여호와 하나님의 보장을 받기 위해서라도 담대하게 증거하여야 합니다.
제자들은 최후의 승리를 믿었습니다. 승리에 대한 믿음이담대한 증거자로 만들었습니다.
넷째로, 사도들의 확신은 주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에 대한 확신은 제자들을 담대하게 만들었습니다. (10)
그들이 아는 예수님은 죽음마져 이기시는 분이십니다.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시는 풍성한 분만이 아닙니다. 문둥병자를 고치시는 의사정도가 아닙니다. 물위로 걸으시는 기적의 주인만이 아니십니다. 어느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을 이기신 분이십니다.
죽음을 이기시는 능력으로 병든 자를 치료하시고 우리의 문제를 돌보시는 분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모든 문제의 해결은 예수님께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이신 줄을 바로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무서워 도망하는 자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 죽음마져도 이기시는 능력의 주님을 만난 후 그는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죽음마져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거꾸러 메달려 죽는 것도 두렵지 않고 영광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원한 나라로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음을 알았습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뿐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지 않는 분이었으나 베드로는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머릿돌이 되심을 알았던 것입니다. 머릿돌이신 예수,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았으나 가장 귀하게 쓰임을 받은 분, 바로 그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영생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면 모든 것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예수밖에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사람은 담대합니다.
우리도 담대한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증인에 되기 위해서는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요 3:16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영생을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을 모시고 담대하게 나가 복음을 증거하여야 합니다. 바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영생을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물건이 있으면 서로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바로 복음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담대하게 증거하여야 할 사명이 있는 우리도 사도들의 확신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고재봉이 집행되기까지 1800명을 전도하였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가 얻은 확신만이 그것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여 열매를 맺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 때는 세계의 시선을 끌며 프로 복싱 선수로 활약하다가 복음전도자로 나선 조지 포먼에게서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무엇이 조지 포먼으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영광을 포기하고 복음 증거자로 나서게 만들었을까요
알리와 프레이져를 차례로 눕히며 92. 3%의 KO율을 자랑하던 조지 포먼이 1977년 지미 영에게 판정패한 후 패배의 충격이 아닌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전도자로 변신하였습니다. 죽음앞에서 금고 속의 돈도 모두 한낱 종이로 변할 것임을 깨달았고 영원한 안식이 있음을 깨달은 그는 자신의 재물과 명예를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모든 사람의 유혹과 조롱에도 오직 복음을 전하는 자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던 바울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전도자가 되는 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복음전도자들의 발걸음은 결코 편안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사명자의 길이 고난의 길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여야 할 에스겔에게 그가 만나게 될 사람이 어떠한 이들인가를 알려 주셨습니다.
"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겔 2:3
"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니라" 겔 2:4
"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지니라 겔 2:5
"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겔 2:6
"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 겔 3:7
그러나 그들을 대할 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 말 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지어다 " 겔 2:6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에게 모세를 보내면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대상은 강퍅하고 패역한 사람들이었으나 전하는 자는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도 어떠한 위협 속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한 상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박해하는 사람들은 그 당시에 대단한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위협은 쉽게 지나칠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반대는 노골적이었으며 집단적이었고 계획적이었습니다.
사도들의 사역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명확한 자세로 박해를 가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주님의 복음 전파의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요
산헤드린에 모인 박해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부활의 도를 전함을 싫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 큰 위협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큰 세력을 가지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재판정에 선 사도들은 두려워하지 않았고 도리어 담대함으로 증거하였습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명령에 순종하였다. 철저한 순종에는 두려움이 없다. 그리스도의 군사된 자들은 위협 속에서도 복음 전파의 사명은 계속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전도는 주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마 28:18-20) 바울의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딤후 4:1-2)
성령이 충만하였다. (8)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인하여 담대하였다.
확신이 있었습니다. 확신이 담대함을 주었다.
오늘은 특히 그들을 담대하게 만들었던 확신은 무엇이었는지, 전도자가 가져야 할 확신은 어떤 것인라를 깨닫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제자들이 가졌던 확신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첫째로, 그들이 가진 확신은 주님의 부활과 동행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사도들에게 있었던 최대의 확신은 주님의 부활이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사실은 자신들조차 믿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마 28: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막 16:11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인간의 이성과 자신들의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확신을 갖게 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난 뒤였습니다. 그들의 확신은 체험을 통한 것이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것은 거짓말과 같은 것입니다.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그를 본 사도들에게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이 부활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도마도 처음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40일 동안 부활하신 주님과 더불어 지냈습니다.
(예) 꿩과 닭 사이에 태어난 새: 닭 벼슬은 없고 꿩 꼬리는 없다 울음은 꿩소리:
학자들이 이해할 수는 없으나 사실이다. 모두들 연구의 대상이라고 한마디
주인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다가 잡혔으며 잡혀서도 강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2, 10) 직접 보고 들은 것이므로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사도들이 가진 확신은 체험을 통한 확신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핍박하던 삶에서 증거자로 바뀌게 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강하고 확실한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메섹에서 들은 주님과의 음성은 담대한 증거자로 만든 것입니다.
모세가 노구를 이끌고 바로에게 나갈 수 있었던 이유도 오직 분명한 체험,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만난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 살아계신 예수님, 함께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담대하게 만들어 주었고 평생 사명을 감당하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세상에서 담대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나의 삶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음성을 듣거나 떨기나무 속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습니까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체험을 통하여 만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음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받음으로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주님의 부활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할 때 그들은 담대한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확실한 증인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살아계신 주님의 역사하심을 맛본 사람들이 담대한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음성을 들은 것도 떨기나무의 불꽃도 본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삶 속에서 도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였습니다.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양을 칠 때에도 골리앗 앞으로 나갈 때에도 함께 하여 승리케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체험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확신한다는 것은 지금도 살아 계신 주님에 대한 확신이며 동행하심과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잠 3:6)입니다.
잠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과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은 체험을 통하여 자신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환란가운데서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 그러한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기에 담대할 수 있었으며 어떠한 어려움에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전적으로 그 분이 이끄시는 길로 가면 우리는 승리하게 됩니다. 우리를 안고 가시는 그분을 신뢰할 때에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전도자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지금 나와 함께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식하며 그 분과 함께 걷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과 동행하며 이끄시는 주님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 사도들의 확신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선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떳떳하게 담대하게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힘있는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옳은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릇된 일을 하는 사람은 힘을 가지고 있어도 떳떳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정치가들이 밀실정치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하면서도 숨어서 합니다. 왜냐하면 떳떳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담대합니다. 소수의 사람일지라도 떳떳하게 행동합니다. 그릇된 일을 하는 사람은 힘을 가지고 있어도 떳떳하지 못합니다. 힘을 가지고 감추려고 합니다.
(예) 지난 해 국회의원 선거 때 낙선운동은 그러한 사실을 증명한 것입니다.
힘없는 백성이지만 옳은 일이었기에 떳떳하게 외칠 수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관원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 앞에서 담대하게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들이 증거하고 있는 예수님은 옳고 유익하고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것은 유익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전하는 것은 참된 길이었습니다. 잘못된 것들로 가득 찬 곳에 유익한 길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길을 걷는 자들에게 길을 알려 주는 것보다 유익한 것이 없습니다. 자신들에게만 유익한 것을 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속에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참 길을 안내하는 것은 떳떳한 일이었습니다. 사도들은 떳떳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옳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전하는 것은 진리였습니다. 거짓된 세상에 참된 것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거짓으로 가득찬 세상에 참된 것을 알리는 것이라면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도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두려워 하는 사람은 핍박받는 사람이 아니라 핍박을 하는 사람입니다. 진실이 알려지기를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전하는 것은 생명이었습니다. 죽은 땅에 아름다운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가는 자들을 건지는 일입니다. 생명보다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필요한 것을 주는 사람은 떳떳합니다.
사도들에게는 자신들이 하는 일이 선한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9)
복음을 전하는 것은 개인을 살리는 일이며 가정을 복되게 만드는 일이며 사회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병든 자를 일으키는 것이며 가난한 자의 굴레를 벗어주는 것이며 죄의 사슬에서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이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이 그들을 담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옳은 일을 옳은일이라는 확신이 들 때에 담대한 사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바른 일입니다. 그러므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이러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증거하는 선한 일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사도들의 확신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증거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구원이 필요함을 확신하였습니다.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관원과 장로들에게 병자가 구원을 얻었다고 증거하였습니다.
자신들이 전하는 복음이 구원을 주는 일이라는 확신을 하였던 것입니다. (9)
모든 굴레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것이 곧 구원이다. 우리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여 주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환자가 병이 낫는 정도가 아니라 병을 가져다주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전도자가 가져야 할 확신은 예수님은 우리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
하기만 하면 과거를 묻지 아니하시고 미래를 밝게 인도하십니다
과거의 죄를 사하십니다.
엡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현재의 우리의 신분을 바꾸어 주십니다.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장래에 우리를 통하여 은혜의 풍성함을 보여 주십니다.
엡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마스터키이십니다. 영접하는 순간 우리앞의 모든 문은 열리게 되어있습니다. 땅에 사는 동안 모든 열리는 길을 걸으며 주님이 부르시는 날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요일 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만약에 구원을 받은 사람은 시험을 당하여도 결국 승리를 하게 되어있습니다. 구원은 최후 승리의 보장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여호와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시험이 있을지라도 무너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피할 길을 주시며 감당케하시며 건져 주시며 영광을 돌리게 하십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사자굴과 풀무불 사건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분명하게 보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담대하게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증거하는 자의 삶을 여호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도리어 여호와 하나님의 보장을 받기 위해서라도 담대하게 증거하여야 합니다.
제자들은 최후의 승리를 믿었습니다. 승리에 대한 믿음이담대한 증거자로 만들었습니다.
넷째로, 사도들의 확신은 주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에 대한 확신은 제자들을 담대하게 만들었습니다. (10)
그들이 아는 예수님은 죽음마져 이기시는 분이십니다.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시는 풍성한 분만이 아닙니다. 문둥병자를 고치시는 의사정도가 아닙니다. 물위로 걸으시는 기적의 주인만이 아니십니다. 어느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을 이기신 분이십니다.
죽음을 이기시는 능력으로 병든 자를 치료하시고 우리의 문제를 돌보시는 분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모든 문제의 해결은 예수님께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이신 줄을 바로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무서워 도망하는 자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 죽음마져도 이기시는 능력의 주님을 만난 후 그는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죽음마져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거꾸러 메달려 죽는 것도 두렵지 않고 영광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원한 나라로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음을 알았습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뿐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지 않는 분이었으나 베드로는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머릿돌이 되심을 알았던 것입니다. 머릿돌이신 예수,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았으나 가장 귀하게 쓰임을 받은 분, 바로 그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영생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면 모든 것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예수밖에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사람은 담대합니다.
우리도 담대한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증인에 되기 위해서는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요 3:16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영생을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을 모시고 담대하게 나가 복음을 증거하여야 합니다. 바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영생을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물건이 있으면 서로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바로 복음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담대하게 증거하여야 할 사명이 있는 우리도 사도들의 확신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고재봉이 집행되기까지 1800명을 전도하였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가 얻은 확신만이 그것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여 열매를 맺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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