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TOP
DOWN

[전도] 전도하지 않은 죄

본문

요한 웨슬레는 감리교 후예들에게 이렇게 유언했습니다. “당신은 영혼 구하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이 일로 시간을 보내며, 이 일로 당신이 쓰여지도록 노력하십시오. 당신이 얼마나 많이 설교했느냐 또는 이런 저런 일에 얼마나 관심을 갖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최선을 다해 영혼을 구했느냐 못 구했느냐가 당신의 문제입니다. 할 수 있는대로 많은 죄인을 데려와 회개하여 구원받게 하십시오. “
오늘날 한국 감리교회가 영혼구원의 열정을 상실했습니다. 감리교 신학대학에 박모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는 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존경하고 따라야할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신이 고통을 당할 수 있으며, 사람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느냐 그러므로 예수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 라고 했습니다.
감리교단에서 발행하는 기독교 타임지는 복음주의 신앙노선을 져버리고 사회노선을 가지고 신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번 천안 지방회에서 이에 대한 시정을 촉구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랜드 노조 파업이 진행될 때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기독교 기업을 하지 말고 일반 기업을 하라. 아침에 예배를 드리지 말라. 여름철 3박 4일 신앙훈련 수련회를 하지마라 등등…” 이런 반 기독교적 데모를 하는데, 일방적으로 그들의 주장만 편들고 보도를 했습니다. 기독교 방송 파업 때도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기독교 방송은 일반방송으로 전환해야 한다. 극동방송만 있으면 되지 왜 기독교 방송까지 복음방송을 해야 하느냐 그러므로 사장은 목사가 하면 안된다. 일반 방송인이 와서 사장을 하고, 일반 방송으로 전환해야 한다. ” 이런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는데도 기독교 노조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실었습니다.
예수님 생애는 개인적으로 전도하는 생애였습니다. 어느날 밤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전도하셨고, 수가성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도하셨고, 시몬의 집에서 눈물로 발을 적신 여인을 전도하셨고, 막달라 마리아 혈우병을 앓던 막달라 마리아, 수로보니게 여인 등 수많은 사람을 전도했습니다. 세리장 노릇하던 삭개오도 전도했고, 어린이도 주님 품안에 안아주시고 그들을 전도했습니다. 낮고 천한 자를 구분하지 아니하시고, 남자든 여자든 상관하지 않으시고, 어른이든 어린이든 구별하지 않으시고 사람이면 누구나 전도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는 일, 영혼 구원하는 일은, 우리 기독교인들의 첫 번째 해야 될 의무요, 사명입니다. 영혼 구원하지 않는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고, 성령을 근심하게 하며, 수많은 영혼을 지옥으로 떨어지게 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도하지 않는 것이 왜 죄인가 살펴보겠습니다.
1. 주님의 명령에 불손종하는 죄입니다.
예수님의 최대 지상명령은 바로 마태복음 28잘 18절-20절, 그리고 마가복음 16장15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 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막 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 하라
주님의 간절하신 명령과 당부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크나큰 죄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딤후 2장 3절“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군사입니다. 군인의 가장 큰 죄는 명령 불복종의 죄입니다. 사무엘상에도 보면, 불순종하면서 살찐 소를 잡아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은 가증하게 보신다고 했습니다. 영혼 구원에 불타지 않고 전도하지 않으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만 드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신다는 말씀입니다.
시사 포커스 주간지에서 저희 교회를 특집으로 취재하여 잡지에 실었습니다. 기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교회 부흥의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 있다고 말합니다만은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물론 보탬은 됐습니다. 그러나 저희 교회가 부흥한 본질적인 비결은 해마다 전도운동을 했습니다. 총동원 전도주일, 태신자 전도운동, 아홉찾기 전도운동, 일대일 전도운동 등 안해본 것 없이 다 해봤습니다. 태조산에 올라가서 천안땅을 놓고 통성으로 기도도 하고, 터미널, 역전에 노방전도도 했고, 아파트에 다니면서 가가호호 전도도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부흥된 것입니다.
2.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죄입니다.
요 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 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나를 사랑한다고 매일 고백하는 애인이 있는데, 만약에 그 애인이 내가 기뻐하는 일은 하지 않고 싫어하는 일만 한다면, 그 사람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할까 늘 생각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 라고 말하면서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전도를 하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주간에 전도 대상자를 만나서 중국집에서 맛있는 음식도 사주고,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설교 준비하기 전에 다시 그 사람에게 전화하고, 꼭 이번에 열매 맺으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미나 갔다오자마자 목요일 저녁 푸른의원 의사로 수고하시는 집사님을 만나 저희교회 나오셔서 함께 믿음생활하기를 권면해서 오늘 나오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번 기회에 주님을 사랑하시면, 한사람 이상 다 전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예화) 제가 어렸을 때 주일학교 설교시간에 들은 말씀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식인종에게 복음을 전하러간 선교사가 20년간 열심히 전도를 해도 그들이 영 알아듣지 못해서 선교에 전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을 따를 결심을 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놓고 죽으신 것처럼, 내가 직접 식인종들에게 잡아먹히면서 주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해야 되겠다고 결단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교사는 식인종에게 잡혀 먹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건은 그 이후에 그 종족들이 모두 주님을 영접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인도네시아 선교사를 만나면서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인도 선교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2억 3천만명 가운에 2억명이 모슬렘을 믿는 세계 최대의 회교국가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3백여 종족 가운데 “바딱(batak)"족 350만명이 모두 기독교인입니다. 알고보니 주일학교 때 들은 위의 예화가 바로 아프리카가 아닌, 인도네시아 북부 수마트라 섬에서 사역하신 ”노멘슨“이라는 독인 선교사님의 실화였던 것입니다.
3. 주님을 따르지 않는 죄입니다.
마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이 말씀은 그 당시 주님을 따르는 사도들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예수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분이 걸으신 길을 우리가 걷는 것이고, 그분이 하신 일을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 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요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 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 를 귀히 여기시리라
미국 감리교회가 최근에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다른데 있는게 아닙니다. 전도하지 않기 때문에 교인이 감소하는 것입니다. 미국 교회가 다 감소하는게 아닙니다. 뜨겁게 전도하는 교회들은 성장합니다. 미국의 새들백 교회나 윌로우 크릭처치 같은 교회는 예배를 완전히 바꿨습니다. 주일 낮 예배는 새신자를 위한 예배로 드리고, 주중에는 기존신자를 말씀으로 철저히 훈련하는 교회입니다. 한명의 영혼이라도 구원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요,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예배전통 다 내던지고 새로운 예배로 새신자들을 전도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 교회가 만명, 2만명 모이는 대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원래 미국교회는 메가처치 - 대형교회 개념이 없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메가처치 - 대형교회를 이룬 나라는 한국이요, 그것을 이룬 교회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입니다. 미국 목사님들이 순복음 교회 와서 어떻게 대형교회가 가능한지 연구를 했습니다. 그들이 결론 내린 것은 성령이 뜨겁게 역사하는 교회는 반드시 전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사명도 전도요, 교인의 사명도 전도임을 깨닫고 그들이 돌아가 열심히 전도하여 오늘날의 세계적인 교회를 만든 것입니다.
4. 맡겨진 일에 불충하는 죄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세 개의 비유가 나옵니다.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열 처녀 비유의 결론은 네가 기름을 준비하고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는 네가 받은 것을 얼마나 남겼느냐 입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는 가난한 자를 도와주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들이 다 전도와 연결된 비유들입니다.
달란트 비유는 이렇습니다. 어떤 주인이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종들을 불러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면서 이것가지고 장사해서 돈을 많이 남기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부지런히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열심히 일을 해서 두 달란트를 남겨서 가지고 왔습니다. 그때 주인이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땅에 그대로 묻어두었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한 달란트 그냥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주인은 굳은 사람이요, 심지 않는데서 거두고, 해치치 않는데서 모으는 악한 왕으로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때 주인이 이야기 합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크게 책망을 했습니다. “네가 나를 그런 자로 알았다면 은행에다 맡겨두었다가 이자라도 받아오지! 그걸 땅에 그대로 묻었다가 가져왔느냐” 호통을 치면서 있는 것도 빼앗고,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고 했습니다.
“흙에 묻었다” 는 뜻은 무엇입니까 우리 육신은 다 흙으로 만들어졌고, 흙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살고,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육신의 일 때문에 영적인 일에 무관심하며 살 때에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 무익한 종아” 책망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5.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 죄의 책임을 우리에게 묻는다는 것입 니다.
겔 3: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 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19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 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 명을 보존하리라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경고해도 돌이키지 않으면, 그 책임은 본인에게 있는 것이지 파수꾼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주의 복음을 증거하고 전도하지 않아서 그 영혼이 멸망 받아 지옥에 갔다면, 그 피 값을 우리 손에서 찾겠다는 말씀입니다.
(예화) 2차대전 후에 독일에 큰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기독교의 대표적 지도자인 “마틴 니뮐라”라는 목사님이 “2차대전 책임백서”라는 글을 발표했는데, 그것 때문에 논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의 발발에 대해 그는 히틀러를 비방하기 보다는 독일교회와 독일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로 책임을 물었습니다. 모두가 다 2차 대전의 책임을 히틀러에게 돌리는데 그는 히틀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책임을 묻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그는 다음과 같이 간증을 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일곱 번이나 걸쳐 똑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주님이 묻는 질문에 대답하고 서 있는데, 제 뒤에 서있는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수께서 “너는 왜 나를 믿지 않았느냐”하고 묻자, 그 사람은 “아무도 저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사람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목소리가 너무나도 익숙해서 돌아보니 그는 다름아닌 아돌프 히틀러였습니다.
이 사건이 제 삶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때까지 히틀러가 죽기를 바란적은 수없이 많았지만, 그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저는 회개했습니다. 그제서야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 말을 알아듣고 전도하지 못한 것을 회개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의 김정일이 죽기만 원하면 안됩니다. 그의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중국에 가서 지하교회 신학생들을 보고서 놀랬습니다. 저녁에 산으로 가서 3시간 동안 통성으로 기도하는데, 그들은 중국 공산당 총서기 장택민을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장택민의 영혼을 구원해 주옵소서. 저가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게 해 주옵소서. 그래서 공산당 정책이 기독교 복음을 승인하는 정책으로 바뀔 수 있도록 장택민의 영혼을 구원해 주옵소서. ” 눈물 흘려가며 그들은 기도를 했습니다.
저희교회 장로님 한분이 구인사에 야유회를 갔는데, 보살을 붙들고 전도를 하셨습니다. “예수 믿어야 천국 갑니다.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 ” 그때 목사보다 장로님의 신앙이 낫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에 지방회 ‘행복찾기 가정 세미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백담사에 들렸습니다. 그때 어떤 사모님이 백담사 보살을 붙들고 전도했습니다. “예수 믿고 천국가세요. ” 불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의 얘기는 불교는 구원이 없다고 하는 것을 스님들이 다 안다고 합니다. 다만 절을 나오면 먹고 살데가 없어서 못 나온다는 것입니다. 살길만 해결해 주면 그들이 나오겠다는 얘기입니다. 얼마나 허무맹랑한 종교입니까 우리는 진리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만이 진리가 되심을 확실히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결 론
(예화) 1950년 6. 25 전쟁이 터졌을 때, 김대운 전도사는 평양의 장진교회에서 시무하고 있었습니다. 평양에서는 공산당의 지시로 교회문을 닫게 하고, 기독교인들을 체포하여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김 전도사는 체포 당하여 사리원으로 끌려갔습니다. 악랄한 공산당들이 처음에는 회유를 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한마디만 하시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가 예수 때문에 죽어야 되겠소” 그러나 김대운 전도사는 신앙의 절개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주님을 배반합니까 주님은 나를 위해 피 흘려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믿어야 삽니다. 이것이 생명의 비밀입니다. ” 그때였습니다. 옆에 있던 공산당 간부가 소리를 쳤습니다. “저 새끼! 혀를 잘라 버려. ” 부하들이 달려들어 김대운 전도사님의 혀를 칼로 잘라 버렸습니다. 입에서 피는 폭포처럼 솟구쳤습니다. 말을 할 수 없게 되자 손가락으로 십자를 만들고서 쳐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믿으라고 손짓으로 증거를 했습니다. 그러자 공산당 간부가 또 한번의 명령을 했습니다. “저 자식! 우리말 듣지 않는 저 귀도 잘라 버려. ” 공산당원들이 달려들어 귀까지 잘라버렸습니다. 입에서 피가 폭포처럼 솟아지고, 귀에서 피방울이 뚝뚝 떨어지면서도 손으로 십자가 성호를 그으면서 끝까지 전도했다는 예화가 있습니다.
이 설교가 여러분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기 보다는 부담을 주는 설교인데 맨날 사람 비위나 맞추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 귀에 듣기 좋은 설교만 하면 과연 좋은 목사이겠습니까 기도의 부담감, 영혼구원의 부담감, 전도의 부담감은 줘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신나는 설교가 아니라도 여호와 하나님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이번 전도운동에 열심을 다하시고, 전 성도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도하여 3천성도 이룩하는 복된 교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이스라엘 동족의 전도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땀 흘렸는지 모릅니다. 사도바울이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은 원인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8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어떤 마음으로 전도했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도바울을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넘겨주었어도 사도바울은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배척하거나 그들을 송사하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그들에게 호소를 했습니다. 둘째로,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유대인 증에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숨어 다니며 전도한게 아닙니다. 가이사 앞에서도, 아그립바왕 앞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세주라고 하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담대히 증거를 했습니다. 셋째로, 희생을 각오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바 되었노라” 이스라엘 동족의 구원을 위해서는 내가 쇠사슬에 매어 버린바 되어도, 그것으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받는 것이 이스라엘의 소망이라고 그는 외쳤습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