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전도자가 된 창녀
본문
중세 수도원에서 수도원 원장이 햇병아리 수도사들에게 설교 실습을 시켰습니다. 하루는 수도사 한 명을 앞자리에 세워 설교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설교를 실습하게 되었는데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오늘 무슨 설교를 할지 여러분들은 아십니까" 동료 수도사들이 대답을 했습니다. "모릅니다. " "여러분들이 모르는데 제가 무엇을 설교하겠습니까"하고 내려와 버렸습니다. 수도원장은 이 수도사를 괘씸하게 생각하였고 다음날 또 설교를 시켰습니다. 이번에도 올라와서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 제가 오늘 어떤 설교를 할는지 아십니까" 이번에는 전날과는 다르게 "안다"고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것을 제가 무엇 때문에 설교하겠습니까" 하고는 또 내려가 버렸습니다. 수도원장은 이 수도사가 천하에 괘씸한 놈이거든요. 다음날 또 설교를 시켰습니다. 오늘은 잘못 설교하면 수도원에서 추방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강단에 서서 어제와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오늘 무슨 설교를 할는지 아십니까" 수도사들이 반절은 안다고 했고 반절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 때 이 수도사가 하는 말이 "아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주십시오. " 하고 강단을 내려가 버렸습니다. 야단을 당하고 추방을 당할 줄 알았더니 수도원 원장이 찬사를 보냈습니다. 훌륭한 설교를 했다는 것입니다.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는 내가 믿은 예수 그리스도,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내가 체험한 체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증거 하는 것입니다.
전도자 가된 창녀
예수를 확실히 아는 사람, 예수님을 확실히 믿는 사람, 예수님을 확실히 만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름난 창녀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전도합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습니다.
먼저 주님을 만나 받은 은혜를 증거 합니다. 주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며 없는 자를 들어 부유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 답니다. 이름난 수가성 여인, 온 마을 사람들에게 왕따 당하여 얼굴을 들고 다닐 수없는 망가진 여인, 도저히 그 생활에서 갱생의 길을 갈 수 없다고 판단된 여인이 거듭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처럼 복음은 능력입니다. 어떠한 죄인도 어떠한 습관도 거듭나게 하십니다. 새사람이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났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전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을 수 있습니까 주님은 창녀를 주님의 복음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요4:28-30)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이 여인은 주님의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고 모든 상한 마음을 치료받고 자신이 사랑 받는 소중한 가치감을 깨닫고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고 그렇게 기다렸던 메시아인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어 삶의 목적을 찾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먼저 주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사마리아 수가성에 친히 주님이 주도적으로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모든 상처를 싸매 주시며 여인의 모든 죄를 사하여 덮어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전이 되고부터 이제는 가장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 일인가를 알게 됩니다. 여인은 물동이를 던져두고 먼저 마을로 들어가 전도를 합니다,. 생명을 얻고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니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가치가 있음을 깨닫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게 하신 주님 자신의 내면에 죄악의 깊이를 아시는 그분을 증거하지 않으면 견딜 수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고 나면 세상일보다 주의 일이 더 중요합니다. 일보다 방법보다 기도가 더 중요합니다. 예배가 더 중요합니다. 주님이 우선입니다.
전도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되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사함받고 은혜 받고 사랑을 받으면 인정을 받으면 인간은 자신의 긍정적인 면을 보게 됩니다. 사랑을 받으면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능력 앞에서는 더 이상 수치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더 이상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아는 분에게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진짜 믿음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내 허물을 감추고 도피한다는 것은 회개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의 실수에서부터 저 밑바닥까지 다아는 사람은 나의 애인이요 믿음이요 진실인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을 아는 주님께 몽땅 자신을 열어 보입니다, 그리고 나서 부끄러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그렇게 만나기 싫은 사람들을 반갑게 만나고 복음을 전합니다. 이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됩니다. 처음에는 예수님께 물 한 그릇 줄 수 없는 자기 콤플렉스 가득찬 여인이었으나 불과 몇 시간만에 전혀 다른 깨끗한 생을 살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부끄러운 과거와 전혀 상관없는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열등의식 혼자라는 소외감 인생의 무의미 도덕적 죄의식 윤리적인 죄책감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됩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피해의식으로부터 이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오히려 다른 사람 앞에 나아가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와보라고 전합니다. (요4:39)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 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 했습니다. 가장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그분은 인간의 중심을 아시며 사람의 과거를 아시는 그분은 그리스도이신 메시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자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됩니다. 사마리아의 부흥운동은 한 창녀가 예수 만나 변화 받으니까 창녀를 변화시킨 분 창녀를 새로운 인생으로 변화시키는 그리스도를 향하여 수가성 사람들이 예수 앞에 나옵니다. 주님은 이렇게 극적인 사람을 거듭나게 하셔서 전도의 도구로 쓰십니다. 얼굴한번 들고 똑바로 사람을 쳐다보지 못하고 사람을 피해서 물을 길러 다니던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전도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생의 의미가 달라진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 전환된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여인의 태도에 수가성 사람들은 놀아와 했습니다.
사마리아의 한 동리가 발칵 뒤집어 지고 있습니다. 보잘것없이 살던 한 여인, 그것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던 죄 많은 여자,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손가락질 당하던 바로 그 한 사람으로 인해서 사마리아 사람들의 가슴에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예수님께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다름 아닌 주님을 먼저 만났던 한 여인으로 말미암게 된 것입니다.
고재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육군 중령 일가족 4명을 도끼로 쳐죽인 사람, 살인자 무서운 사람입니다. 이 고재봉이 교도소에 들어가니까그 옆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합니다. 간수도, 형목도 접근하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죄수들끼리 만나서 "나 고재봉이야" 하면 모든 죄수가 "형님"했습니다. 사람 셋 죽인 사람도 "나 고재봉이야" 그러면 "형님"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소포 하나가 고재봉한테 왔습니다. 열어보니까 성경이 들어 있었습니다. "재수 없다" 하고 성경을 던졌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화장실 휴지로 쓰면 좋겠다. '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뜯어 가지고 화장실에 가서 무슨 내용이 씌여있나 보다가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어느 날 한 감방 안에 있던 사람이(이인수 대령)보니까 눈에 살기가 빠졌는데 하루는 그러더랍니다. "대령님, 나 같은 사람도 여호와 하나님이 받아줄까요" 이 말을 들은 사람이(이인수 대령)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무슨 트집 잡힐까봐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차츰 차츰 태도가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목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 사람 신상에 변화가 온 것 같으니 와서 확인 좀 해주시죠. " 형목이 확인해보니까 달라졌어요. "목사님, 나 예수 믿으면 용서받습니까" - "그렇습니다. " 그래서 그가 예수 믿고 영접해서 그때부터 전도를 하는데 2천명의 죄수 가운데 1800명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가 전도하는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 앞길이 구만리 같은 놈들아 너희가 이렇게 살다가 갈 거냐 이 감방에서 다시 나 같은 사람을 안 만나려면 너희들도 예수를 믿어야 한다. " 수많은 사람들이 고재봉에게 예수 믿겠다고 손들고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다함 얻음은 내 공로 아니라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받았네. " 찬송했습니다. 그가 죽으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좀 더 일찍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았다면 이렇게 악한 자가 되지 않았을 것을... 나에게 일찍 복음을 전해준 사람이 있었다면 이렇게 죽지는 않았을 텐데... " 그는 찬송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갔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던지 주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고 주님은 도전하십니다. 창녀가 한사람 거듭나서 수가성에 들어가 희어져 추수할 생명들을 싹 쓸어 오고 있습니다. 수가성 여인이 심은 게 아닙니다. 뿌린 자는 주님이십니다. 뿌린 자는 선지자요
많은 예언자들입니다. 수가선 여인은 노력하지 않고 노력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는 왜 사마리아 여인처럼 사는 사람이 적습니까 왜 주님께서 필요로 하는 영적 추수꾼이 적은 것일까요 왜 교회가 복음의 나팔을 제대로 불지 못하는 것입니까 왜 죽어 가는 영혼을 살리기는커녕, 스스로 죽어가듯 신음을 토하고 있습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예수를 제대로 만난 사람들이 적기 때문입니다. 죄 문제가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삶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생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다른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하고 기도하고 그들을 위하여 노력하여 애썼습니다. 지금 내가 그 즐거움에 그 노력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와 보라"고 전하여야 합니다.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
(요4:40-41)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41)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사마리아 사람들은 주님과 이틀이나 함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난다는 것은 매우 중합니다. 주님과 함께 거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길 원합니다. 이 때는 부활하시기 전이므로 육신으로 함께 거하십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 우리에게 약속한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계3:20)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지금은 주님이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세상 끝날 까지 항상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을 인격으로 모시지 못하고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전도자의 능력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 으니(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대만의 한 청년이 연애편지를 2년간 매일 써서 700여통을 발송하여 연애편지의 세계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 여인과 결혼을 하지 못했습니다. 정성스럽게 편지는 잘 썼으나 직접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700여통의 편지를 매일 전달해 주던 우편배달 총각은 그 여인의 매일같이 만나서 얼굴을 대하게 되므로 한마디 사랑의 고백도 하지 않았지만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고백을 적은 편지도 중요하지만 결혼을 하지 못했던 안타까운 원인은 직접 만남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수님이 인생의 모든 것에 모든 것이 되십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이 외로움과 고독감을 멀리 떨쳐 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개인적인 신앙을 고백하게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세상의 구주
(요4: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아버지가 전하여준 예수님, 목사님이 전하여준 예수님, 사마리아 여인이 전한 예수님이 아닌 자신 직접 만난 예수 개인적인 신앙을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만나면 개인적인 신앙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틀 간 주님으로부터 생명의 복음을 듣고 친히 주님 안에 거함으로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도되었지만 실제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만나면 확실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막연히 듣던 희미한 진리가 아닙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좀은 야속한 말을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우리가 믿는 것은 네가 말한 것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친히 우리가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인 줄을 깨닫고 알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아직도 수가성 여인을 무시하는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나에게 복음을 전해 준 사람에게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천희석 목사님을 늘 기억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먼저 주는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믿었습니다. 먼저 알고 믿은 사마리아 여인이 수가성 사람들에게 전도하여 친히 주님을 만나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심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주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도대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하나의 관계성입니다. 윌리암 바클레이는 이 문제에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심판자를 이제는 아버지로, 그리고 항상 두려워하던 여호와 하나님을 이제는 사랑하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공포의 대상을 사랑의 대상으로, 그리고 이웃에 대해서는 증오의 대상을 사랑의 대상으로, 이기적인 생각에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질투나 앙심에서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아주 쓸모 없는 존재로 알았으나 예수 안에서 이제는 소중한 존재로, 실패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은 성공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허무한 것이 아니라 여기에 막중한 의미가 있다는 것으로 생각이 바꾸어지는 것, 이것이 예수 믿는 것이다. " 이렇게 예수님을 바로 믿게 되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아와 이 은혜를 전하지 않고는 견디질 못하는 것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외아들을 둔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어느 날 아내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여보, 학교에서 귀가하던 우리 아이가 교통사고로 그만. "
아버지가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아들의 몸은 이미 차갑게 굳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땅에 묻고 돌아와 아들의 방에 있는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책상 위에 놓인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힌 것을 보고 통한의 눈물을 쏟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제 아빠가 예수님을 믿게 해주세요. 아빠가 예수님을 믿을 수만 있다면 제 생명을 드려도 좋아요. "
그는 즉시 아들이 다니던 교회로 달려가 여호와 하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전세계를 다니며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제대학생선교회 부총재 스티븐 더글라스의 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입l니다. 한 어린이가 뿌려놓은 복음의 씨앗이 놀라운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는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참으로 내인생의 구주로 주님으로 믿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신뢰의 대상을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수가성 여인이 어떻게 물동이를 버리고 그의 삶이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까
내생명을 구원해 주신 주님이 나를 만나 주시고 내 마음에 찾아오셔서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오늘 나를 통하여 사마리아와 같은 내 삶의 자리가 부흥되기를 원하십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아시고 내 과거를 아시는 분은 그리스도가 아니냐 와 보라 와서 복음을 듣고 참 구주임을 믿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심는 자의 기쁨 뿌리는 자의 기쁨에 함께 동참하여 즐거움을 누리는 삶인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전도를 받고 거듭난 사람들은 왜 이런 예수님을 진즉 전해 주지 않았을까 조금더 일찍 예수님을 만났으면 더나은 인생을 살 수 있었을 터인데 후회하였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희어져 추수할 영혼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수가성 여인의 심령에 부흥이 있고 사마리아 성에 성령의 부흥의 불길이 솟게 되었습니까 한사람 전도자를 통해서 이루어진 성령의 역사입니다. 지금 우리도 이와 같은 전도자가 되려면
-신뢰의 대상을 주님께 옮기십시오.
-부활하여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지금의 자리에서 돌아서십시오.. 회개하시십오.
그러면 우리도 수가성 여인처럼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고재봉씨처럼 한 초등학교 학생처럼 전도자로 주님 앞에 쓰임 받게 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아는 자가 모르는 자에게 전하는 것이 전도인 것입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시기 바랍니다. 희어져 추수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일을 위하여 주님이 우리에게 생명 주심을 명심할 것입니다.
전도자 가된 창녀
예수를 확실히 아는 사람, 예수님을 확실히 믿는 사람, 예수님을 확실히 만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름난 창녀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전도합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많습니다.
먼저 주님을 만나 받은 은혜를 증거 합니다. 주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며 없는 자를 들어 부유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 답니다. 이름난 수가성 여인, 온 마을 사람들에게 왕따 당하여 얼굴을 들고 다닐 수없는 망가진 여인, 도저히 그 생활에서 갱생의 길을 갈 수 없다고 판단된 여인이 거듭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처럼 복음은 능력입니다. 어떠한 죄인도 어떠한 습관도 거듭나게 하십니다. 새사람이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났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전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을 수 있습니까 주님은 창녀를 주님의 복음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요4:28-30)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이 여인은 주님의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고 모든 상한 마음을 치료받고 자신이 사랑 받는 소중한 가치감을 깨닫고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고 그렇게 기다렸던 메시아인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어 삶의 목적을 찾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먼저 주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사마리아 수가성에 친히 주님이 주도적으로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모든 상처를 싸매 주시며 여인의 모든 죄를 사하여 덮어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전이 되고부터 이제는 가장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 일인가를 알게 됩니다. 여인은 물동이를 던져두고 먼저 마을로 들어가 전도를 합니다,. 생명을 얻고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니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가치가 있음을 깨닫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게 하신 주님 자신의 내면에 죄악의 깊이를 아시는 그분을 증거하지 않으면 견딜 수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고 나면 세상일보다 주의 일이 더 중요합니다. 일보다 방법보다 기도가 더 중요합니다. 예배가 더 중요합니다. 주님이 우선입니다.
전도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되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사함받고 은혜 받고 사랑을 받으면 인정을 받으면 인간은 자신의 긍정적인 면을 보게 됩니다. 사랑을 받으면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능력 앞에서는 더 이상 수치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더 이상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아는 분에게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진짜 믿음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내 허물을 감추고 도피한다는 것은 회개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의 실수에서부터 저 밑바닥까지 다아는 사람은 나의 애인이요 믿음이요 진실인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을 아는 주님께 몽땅 자신을 열어 보입니다, 그리고 나서 부끄러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그렇게 만나기 싫은 사람들을 반갑게 만나고 복음을 전합니다. 이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됩니다. 처음에는 예수님께 물 한 그릇 줄 수 없는 자기 콤플렉스 가득찬 여인이었으나 불과 몇 시간만에 전혀 다른 깨끗한 생을 살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부끄러운 과거와 전혀 상관없는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열등의식 혼자라는 소외감 인생의 무의미 도덕적 죄의식 윤리적인 죄책감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됩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피해의식으로부터 이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오히려 다른 사람 앞에 나아가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와보라고 전합니다. (요4:39)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 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 했습니다. 가장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그분은 인간의 중심을 아시며 사람의 과거를 아시는 그분은 그리스도이신 메시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자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됩니다. 사마리아의 부흥운동은 한 창녀가 예수 만나 변화 받으니까 창녀를 변화시킨 분 창녀를 새로운 인생으로 변화시키는 그리스도를 향하여 수가성 사람들이 예수 앞에 나옵니다. 주님은 이렇게 극적인 사람을 거듭나게 하셔서 전도의 도구로 쓰십니다. 얼굴한번 들고 똑바로 사람을 쳐다보지 못하고 사람을 피해서 물을 길러 다니던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전도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생의 의미가 달라진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 전환된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여인의 태도에 수가성 사람들은 놀아와 했습니다.
사마리아의 한 동리가 발칵 뒤집어 지고 있습니다. 보잘것없이 살던 한 여인, 그것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던 죄 많은 여자,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손가락질 당하던 바로 그 한 사람으로 인해서 사마리아 사람들의 가슴에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예수님께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다름 아닌 주님을 먼저 만났던 한 여인으로 말미암게 된 것입니다.
고재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육군 중령 일가족 4명을 도끼로 쳐죽인 사람, 살인자 무서운 사람입니다. 이 고재봉이 교도소에 들어가니까그 옆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합니다. 간수도, 형목도 접근하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죄수들끼리 만나서 "나 고재봉이야" 하면 모든 죄수가 "형님"했습니다. 사람 셋 죽인 사람도 "나 고재봉이야" 그러면 "형님"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소포 하나가 고재봉한테 왔습니다. 열어보니까 성경이 들어 있었습니다. "재수 없다" 하고 성경을 던졌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화장실 휴지로 쓰면 좋겠다. '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뜯어 가지고 화장실에 가서 무슨 내용이 씌여있나 보다가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어느 날 한 감방 안에 있던 사람이(이인수 대령)보니까 눈에 살기가 빠졌는데 하루는 그러더랍니다. "대령님, 나 같은 사람도 여호와 하나님이 받아줄까요" 이 말을 들은 사람이(이인수 대령)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무슨 트집 잡힐까봐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차츰 차츰 태도가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목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 사람 신상에 변화가 온 것 같으니 와서 확인 좀 해주시죠. " 형목이 확인해보니까 달라졌어요. "목사님, 나 예수 믿으면 용서받습니까" - "그렇습니다. " 그래서 그가 예수 믿고 영접해서 그때부터 전도를 하는데 2천명의 죄수 가운데 1800명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가 전도하는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 앞길이 구만리 같은 놈들아 너희가 이렇게 살다가 갈 거냐 이 감방에서 다시 나 같은 사람을 안 만나려면 너희들도 예수를 믿어야 한다. " 수많은 사람들이 고재봉에게 예수 믿겠다고 손들고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다함 얻음은 내 공로 아니라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받았네. " 찬송했습니다. 그가 죽으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좀 더 일찍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았다면 이렇게 악한 자가 되지 않았을 것을... 나에게 일찍 복음을 전해준 사람이 있었다면 이렇게 죽지는 않았을 텐데... " 그는 찬송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갔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던지 주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고 주님은 도전하십니다. 창녀가 한사람 거듭나서 수가성에 들어가 희어져 추수할 생명들을 싹 쓸어 오고 있습니다. 수가성 여인이 심은 게 아닙니다. 뿌린 자는 주님이십니다. 뿌린 자는 선지자요
많은 예언자들입니다. 수가선 여인은 노력하지 않고 노력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는 왜 사마리아 여인처럼 사는 사람이 적습니까 왜 주님께서 필요로 하는 영적 추수꾼이 적은 것일까요 왜 교회가 복음의 나팔을 제대로 불지 못하는 것입니까 왜 죽어 가는 영혼을 살리기는커녕, 스스로 죽어가듯 신음을 토하고 있습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예수를 제대로 만난 사람들이 적기 때문입니다. 죄 문제가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삶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생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다른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하고 기도하고 그들을 위하여 노력하여 애썼습니다. 지금 내가 그 즐거움에 그 노력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와 보라"고 전하여야 합니다.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
(요4:40-41)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41)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사마리아 사람들은 주님과 이틀이나 함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난다는 것은 매우 중합니다. 주님과 함께 거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길 원합니다. 이 때는 부활하시기 전이므로 육신으로 함께 거하십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 우리에게 약속한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계3:20)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지금은 주님이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세상 끝날 까지 항상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을 인격으로 모시지 못하고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전도자의 능력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 으니(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대만의 한 청년이 연애편지를 2년간 매일 써서 700여통을 발송하여 연애편지의 세계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 여인과 결혼을 하지 못했습니다. 정성스럽게 편지는 잘 썼으나 직접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700여통의 편지를 매일 전달해 주던 우편배달 총각은 그 여인의 매일같이 만나서 얼굴을 대하게 되므로 한마디 사랑의 고백도 하지 않았지만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고백을 적은 편지도 중요하지만 결혼을 하지 못했던 안타까운 원인은 직접 만남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수님이 인생의 모든 것에 모든 것이 되십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이 외로움과 고독감을 멀리 떨쳐 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개인적인 신앙을 고백하게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세상의 구주
(요4: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아버지가 전하여준 예수님, 목사님이 전하여준 예수님, 사마리아 여인이 전한 예수님이 아닌 자신 직접 만난 예수 개인적인 신앙을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만나면 개인적인 신앙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틀 간 주님으로부터 생명의 복음을 듣고 친히 주님 안에 거함으로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도되었지만 실제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만나면 확실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막연히 듣던 희미한 진리가 아닙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좀은 야속한 말을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우리가 믿는 것은 네가 말한 것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친히 우리가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인 줄을 깨닫고 알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아직도 수가성 여인을 무시하는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나에게 복음을 전해 준 사람에게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천희석 목사님을 늘 기억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먼저 주는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믿었습니다. 먼저 알고 믿은 사마리아 여인이 수가성 사람들에게 전도하여 친히 주님을 만나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심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주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도대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하나의 관계성입니다. 윌리암 바클레이는 이 문제에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심판자를 이제는 아버지로, 그리고 항상 두려워하던 여호와 하나님을 이제는 사랑하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공포의 대상을 사랑의 대상으로, 그리고 이웃에 대해서는 증오의 대상을 사랑의 대상으로, 이기적인 생각에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질투나 앙심에서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아주 쓸모 없는 존재로 알았으나 예수 안에서 이제는 소중한 존재로, 실패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은 성공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허무한 것이 아니라 여기에 막중한 의미가 있다는 것으로 생각이 바꾸어지는 것, 이것이 예수 믿는 것이다. " 이렇게 예수님을 바로 믿게 되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아와 이 은혜를 전하지 않고는 견디질 못하는 것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외아들을 둔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어느 날 아내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여보, 학교에서 귀가하던 우리 아이가 교통사고로 그만. "
아버지가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아들의 몸은 이미 차갑게 굳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땅에 묻고 돌아와 아들의 방에 있는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책상 위에 놓인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힌 것을 보고 통한의 눈물을 쏟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제 아빠가 예수님을 믿게 해주세요. 아빠가 예수님을 믿을 수만 있다면 제 생명을 드려도 좋아요. "
그는 즉시 아들이 다니던 교회로 달려가 여호와 하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전세계를 다니며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제대학생선교회 부총재 스티븐 더글라스의 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입l니다. 한 어린이가 뿌려놓은 복음의 씨앗이 놀라운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는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참으로 내인생의 구주로 주님으로 믿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신뢰의 대상을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수가성 여인이 어떻게 물동이를 버리고 그의 삶이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까
내생명을 구원해 주신 주님이 나를 만나 주시고 내 마음에 찾아오셔서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오늘 나를 통하여 사마리아와 같은 내 삶의 자리가 부흥되기를 원하십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아시고 내 과거를 아시는 분은 그리스도가 아니냐 와 보라 와서 복음을 듣고 참 구주임을 믿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심는 자의 기쁨 뿌리는 자의 기쁨에 함께 동참하여 즐거움을 누리는 삶인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전도를 받고 거듭난 사람들은 왜 이런 예수님을 진즉 전해 주지 않았을까 조금더 일찍 예수님을 만났으면 더나은 인생을 살 수 있었을 터인데 후회하였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희어져 추수할 영혼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수가성 여인의 심령에 부흥이 있고 사마리아 성에 성령의 부흥의 불길이 솟게 되었습니까 한사람 전도자를 통해서 이루어진 성령의 역사입니다. 지금 우리도 이와 같은 전도자가 되려면
-신뢰의 대상을 주님께 옮기십시오.
-부활하여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지금의 자리에서 돌아서십시오.. 회개하시십오.
그러면 우리도 수가성 여인처럼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고재봉씨처럼 한 초등학교 학생처럼 전도자로 주님 앞에 쓰임 받게 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아는 자가 모르는 자에게 전하는 것이 전도인 것입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시기 바랍니다. 희어져 추수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일을 위하여 주님이 우리에게 생명 주심을 명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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