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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전도자의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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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의 중국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했는데 그 나라가 진나라였습니다. 이 진나라도 망했고 로마나 바벨론 등과 같이 세상의 대단한 나라들도 다 망했습니다. 진나라가 망하기 전에 진나라에 돌아다니던 말이 하나 있었습니다. ‘망진자호’ 라는 말입니다. ‘호’가 진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시황제도 이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시황제는 그 말을 듣고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호’란 누구를 말하는가를 생각하다 시황제는 오랑캐 즉 흉노족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시황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국력증강에 엄청난 힘을 기울였습니다. 먼저 어떤 일이 있어도 흉노족인 오랑캐가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리장성을 증축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황제가 엉뚱한 준비를 했다는 것입니다. 말의 뜻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망진자호’ 라고 말할 때 ‘호’는 흉노족 오랑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시황제의 아들 호해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진나라는 ‘망진자호’ 말 그대로 시황제의 아들 호해 때문에 망하게 됩니다. 시황제가 그 ‘망진자호’의 말뜻만 제대로 알았다면 진나라의 운명이 바뀌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일에는 의미 없는 일이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다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일에든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뜻을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른 뜻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써야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그것은 틀림없이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무슨 뜻일까 덜 고민합니다. 그로 인해 세계 역사상 기독교가 얼마나 많은 잘못을 하였으며 교회가 얼마나 많은 잘못을 하였습니까 이러한 일들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있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우연은 없다 필연밖에 없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렇지만 참으로 우리가 신경 쓰고 조심해야할 것은 그 필연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사도바울은 4년 동안이나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감옥생활을 하였습니다. 맨 처음 예루살렘 성전에서 체포되어 큰 봉변을 당할 뻔 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로마군대의 보호를 받으면서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습니다. 암살단이 죽이려고 할 때는 암살단의 위협을 피해 야간에 가이사랴까지 호송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2년간 수감되었지만 가끔 심문만 받았을 뿐 재판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재판을 받기 위해 이번에는 또 로마로 가게 됩니다. 험한 바다에서 죽을 고비를 넘겨 힘들게 힘들게 로마에 도달하지만 참으로 흥미롭게도 2년이 지나도 재판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도바울은 아무런 까닭없이 고생만 한 것 같습니다.
최근 어떤 사람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재판 결과 석방되어야함에도 석방되지 아니하고 31일 정도 억울하게 감옥에서 지내게 되었다는 언론보도를 보았을 것입니다. 법원 관계자들의 실수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여호와 하나님도 이 법원 관계자들처럼 실수했을까 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참으로 귀중한 종을 4년 이상이나 허송세월을 보내도록 실수하셨는가 라는 것을 생각해볼 수는 있지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로 실수하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의미없이 사랑하는 종 사도바울을 고통 받게 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있기만 하면 의미없이 고생시키지 않으십니다. 그냥 손해보게 하지 않으시고 그냥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기만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이든 중요한 의미를 두시고 혹 손해를 보았다면 나중에 큰 것으로 다시 갚아주십니다. 혹 수고를 했다면 그 수고의 열 배, 천 배, 만 배 갚아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도바울로 하여금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것처럼 까닭없이 고생시키지 않으셨을 텐데 어떤 의미를 가지고 계셨을까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잡혔을 때부터 오늘 본문 28장에 이르기까지 큰 것들을 한 번 추려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뜻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맨 처음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을 때 사람들로부터 봉변당할 뻔했지만 로마 군대의 천부장이 빼내주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의 막사로 들어가려했을 때 사도바울은 천부장에게 부탁하여 일장연설을 하였습니다. 당시는 별 흥밋거리가 없었던 터라 예루살렘의 온 시내가 소동이 일어났으므로 사람들이 다 모였을 것입니다. 모인 사람들은 오로지 붙들려온 사도바울만 쳐다보았을 것이고 그의 말에만 귀를 기울였을 것입니다. 그 때 사도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 예수가 나를 찾아왔습니다. 예수를 그렇게 핍박한 나를 찾아온 것입니다. 나를 찾아오신 그 예수는 인간이 아니라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수천 년 기다려왔던 메시야였습니다. ” 얼마나 멋집니까 돈을 주고 그 많은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 수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사도 바울 한 사람만 쳐다보고 있는데 그때 그가 이 연설을 한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억울하고 잘못된 일을 당할 때 여러분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 있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렇게 하십니다.
이번에는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을 받게 됩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재판관들이란 나라의 최고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 사도바울은 자기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때도 자기가 어떻게 예수를 만났는가를 이야기하면서 그 분은 우리 민족이 기다리던 메시야고 그 분을 만나게 되면 여러분들도 행복하게 될 것이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높은 사람들이 모이라면 다 모이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일장연설을 한 것입니다. 재판하기 전 최후 변론이므로 열심히 들어야하는데 이런 연설을 했으니 얼마나 멋진 기회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일을 하십니다.
나중에 또 왕이 또 불렀는데 사도바울은 그 앞에서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왕이 미쳤다고 말할 때 그는 여러분도 나처럼 묶인 것 외 예수께 미친 것이 좋다고 말하면서 이전에 돈과 명예가 있었을 때 세상 사람들이 나를 대단하다고 했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낮아지고 쫒기는 사람이지만 예수를 만났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진정 행복하려면 예수를 만나십시오. 돈으로, 권력으로, 명예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만이 참된 행복을 줄 수 있습니다. ’ 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최고 지도자 중의 최고 지도자 앞에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사실 높은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가장 높은 사람들이 사도바울 앞에서 꼼짝없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멋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냥 어려움을 주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질병 등 어려움을 당하게 할 때 다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대단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모릅니다. 까닭없이 여러분이 병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또는 자녀들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게 하지 않습니다. 다 까닭이 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이것을 제대로 알기만 하면 우리가 얼마나 멋진 삶을 사는지 모릅니다. 바울은 이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는 다마스크스 도상에서 예수를 만났을 때 그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금방 알아챘습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사도바울을, 스데반 집사로 하여금 감동을 주게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다 뜻이 있습니다. 스데반은 그냥 죽어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캄보디아에서 봉사한 일이나 여러분들이 이런 저런 봉사를 한 일 등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냥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아무것 아닌 것 같아도 이런 일에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모릅니다. 캄보디아 의료봉사 때 의사선생님들이 열심히 치료했고 도와주시는 분 또한 열심히 도와주셨는데 이런 일들에 얼마나 귀한 씨가 떨어지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주변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열매가 없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정성스럽게 심어놓기만 하면 물을 주고 키우시는 분은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리하여 사도 바울 당시 얼마 되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오늘날 전세계를 뒤덮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이 몇 사람이 들어왔습니까 그런데 6천만 인구의 1/4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사도바울을 고생시키셨습니다.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도구로 일하기로 작정하기만 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로 헛수고를 시키지 않으십니다.
사도바울이 로마로 가는 뱃길에서 얼마나 큰 고생을 했습니까 그런데 그 또한 그냥 한 고생이 아닙니다. 맨 처음 비전문가인 바울이 날씨를 보고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그들은 그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나중에 큰 고생을 하자 그들은 바울의 말을 듣지 않았음을 후회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일들이 바울이 똑똑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가 믿는 신인 예수야 말로 진짜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바울은 한 사람도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했고 그의 말대로 모두 다 살아났습니다.
나중에 배가 부서지고 멜리데 라는 섬에서 조난을 당하게 되었을 때 불을 피우려고 하던 사도바울이 뱀에 물리게 되었습니다. 뱀이 바울의 손을 물고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은 그 뱀에 물리면 다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힘든 바다에서는 살았지만 뱀에 물려서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살아났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은 바울을 두고 정말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일을 겪을 때 사람들은 누구든지 간에 혹 우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 차에 추장의 아버지가 무서운 열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병에 걸리면 의사의 손길이 닿기 원합니다. 이때도 사도바울의 옆에는 의사인 누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누가가 추장의 아버지를 치료하지 않고 바울이 기도로 치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도바울이 독사에 물려 죽지 않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섬기는 예수라는 신이 뱀에 물린 사람을 아무 탈이 없도록 낫게 해주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추장의 아버지를 살린 것이 아니라 바울이 믿는 신인 예수가 추장의 아버지를 살렸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위해서 사도바울을 예루살렘에서 체포당하여 이리저리 끌려 다니게 하셨고,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받도록 하셨고 왕과 총독 앞에 서게 하셨고 그 험한 뱃길을 달리게 하셨습니다. 로마에 이감되어 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문 16절에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따로’ 라는 말씀을 유심히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시키신 것입니다. 개인 성경 가정교사로 시키신 것입니다. 바울이 그 사람에게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그들을 묶어 가두었습니다. 세 사람이 8시간씩 하루 3교대로 바울과 함께 열심히 성경공부한 것입니다. 로마 군인이 바울에게 성경을 공부하겠습니까 이렇게 공부한 로마 군인들이 전 로마 제국을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까
그리고 17절에는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복음을 전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왜 왔습니까 오라 한다고 그들이 오겠습니까 여기저기에서 소란스럽기 때문에 도대체 바울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궁금하여 온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일하십니다. 이렇게 온 사람들이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하나도 우연히 떨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계획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여러분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저냥 가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주무지시도 아니하시고 졸지도 아니하시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신 끝에 계획을 세우시고 끌고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에 온지 2년 동안 재판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이를 두고 성경은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30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재미있는 표현인지 모릅니다. 셋집이란 토굴같은 감옥이 아니라는 것이므로 바울에게 온 사람을 다 영접한 것입니다. 그냥 면회를 온 것이 아니라 와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까닭 없이 재판이 지연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병이 얼른 낫지 않을 때, 경제적인 어려움이 지속될 때 까닭없이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오로지 그 길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왕에게, 온 예루살렘 시민들에게, 총독에게 그렇게 전하셨고, 바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멜리데 섬에 있는 이방 사람들에게 복음의 씨를 뿌리셨습니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지만 복음의 씨가 얼마나 잘 자라는지 모릅니다. 캄보디아에서, 이디오피아에서, 카자흐스탄에서, 키르기즈스탄에서 중국에서, 티벳에서 여러 군데 복음을 전하면 자동적으로 자랍니다.
여러분들은 추석 때 복음을 전하셨습니까 믿지 않는다구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복음의 씨가 자라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우리는 던져놓기만 하면 됩니다. 그동안 우리는 해외선교를 많이 하고 있지만 지역선교는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 일에 힘쓸 것입니다. 그럴 때에도 얼른 열매를 보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던져놓기만 하면 됩니다. 정성스럽게 하기만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잘 자라게 하십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것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일을 우리에게 맡기시고 우리는 그 일을 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선교에 여러분이 동참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수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에 캄보디아에 가신 분들 굉장히 힘드셨을 것입니다. 우기인지라 습기가 얼마나 많은지 가만히 있어도 땀이 그냥 줄줄 흘렀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물질로 지원해주시고 기도하신 분들의 수고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냥 넘어가지 않고 하나 하나 다 선하게 기억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과 함께 동역하십니다. 이 일을 위해서 사도바울에게 이렇게 큰 고생을 하게 하셨습니다. 함께 한 사람들이 그 일에 동참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 이 일 후에 바울은 어떻게 되었을까 재판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궁금하실 텐데 성경은 여기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늘 어떻게 되었을까 관심을 가집니다.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이 요한과 베드로와 함께 계셨을 때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 번이나 베드로에게 물었을 때 베드로는 “예, 사랑합니다. ”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예수님 당신처럼 죽을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 때 베드로는 자신의 문제는 받아들이면서도 요한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늘 그렇게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런데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그런 일에 신경 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항상 그런 것은 관심 밖으로 두고 우리 할 일을 하고 실존의 문제에 집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건강, 물질, 지위, 직분 등으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럴 때 우리가 모든 힘을 다해서 내가 해야 할 일,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바라시는 일인 복음을 전하고 선교에 동참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일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전까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런 사람을 베드로처럼 이렇게 귀하게 챙겨주십니다. 엘리야가 그러했고 엘레사가 그러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을 전할 때 그렇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까마귀를 통해서 먹을 것을 주셨고 가난한 과부를 통해서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을 주셨고 권세도 주셨습니다. 당시 세상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이 두 사람이 그것을 열심히 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능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한 베드로였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그 사람이 성령을 받기만 하면 틀림없이 생명을 바쳐서까지 복음을 전할 사람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에게 그 큰 은혜를 내려주셨던 것입니다. 천사를 통해서 감옥에 있는 베드로를 살려주신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바로 복음 때문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필요한 사람, 생명을 바칠 사람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렇게 챙겨주셨습니다. 죽음의 폭풍 속에서 사도바울의 일행 이백 일흔 여섯 명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구원되었습니까 한 사람 바울을 살리기 위해서 이들을 덤으로 살려주셨습니다. 바울은 생명을 바쳐서 복음을 전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 여호와 하나님의 선교 속에 있는 사람, 기꺼이 동참하는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런 은혜를 주십니다. 엘리야에게 주셨던, 엘리사에게 주셨던, 바울, 베드로에게 주셨던 그 권세와 능력과 풍성함을 더해주십니다.
여러분, 힘을 다해서 복음을 전하십시오. 기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들의 복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힘있게 충성스럽게 이 일을 감당하는 사람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좋아하심은 좋아하심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분들에게 주셨던 능력과 권세와 풍성함을 더하여 주실 것이고 이것은 여러분들의 필요함보다 넘쳐서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이 받은 그 선물 그런 복을 함께 넉넉하게 누릴 수 있도록 풍성하게 여러분들을 사랑하시고 챙겨주실 것입니다. 힘써 복음을 전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 선교에 기쁜 마음으로 동참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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