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본업, 전도
본문
‘천안함’이 침몰하여 장병들의 생사가 갈리는 침몰 69시간이 지날 무렵 한 편이 해군 홈페이지에 떠올랐습니다.
그 시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저는 바다와 관련된 군 복무를 했기 때문에 그 시가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나중에 이시를 쓴 사람은 군의관으로 복무했던 김덕규라는 사람이었음이 알려졌습니다.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
“772함 수병(水兵)은 귀환(歸還)하라. 772 함(艦) 나와라. 온 국민이 애타게 기다린다.
칠흑(漆黑)의 어두움도/ 서해(西海)의 그 어떤 급류(急流)도/ 당신들의 귀환을 막을 수 없다.
작전지역(作戰地域)에 남아있는 772함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772 함 나와라. 가스터어빈실 서승원 하사 대답하라. 디젤엔진실 장진선 하사 응답하라. 그 대 임무 이미 종료되었으니/ 이 밤이 다가기 전에 귀대(歸隊)하라.
772함 나와라. 유도조정실 안경환 중사 나오라. 보수공작실 박경수 중사 대답하라. 후타실 이용상 병장 응답하라. 거치른 물살 헤치고 바다위로 부상(浮上)하라. 온 힘을 다하며 우리 곁으로 돌아오라.
772함 나와라. 기관조정실 장철희 이병 대답하라. 사병식당 이창기 원사 응답하라. 우리가 내려간다. SSU팀이 내려 갈 때 까지 버티고 견디라. 772함 수병은 응답하라. 호명하는 수병은 즉시 대답하기 바란다.
남기훈 상사, 신선준 중사, 김종헌 중사, 박보람 하사, 이상민 병장, 김선명 상병, 강태민 일병, 심영빈 하사, 조정규 하사, 정태준 이병, 박정훈 상병, 임재엽 하사, 조지훈 일병, 김동진 하사, 정종율 중사, 김태석 중사, 최한권 상사, 박성균 하사, 서대호 하사, 방일민 하사, 박석원 중사, 이상민 병장, 차균석 하사, 정범구 상병, 이상준 하사, 강현구 병장, 이상희 병장, 이재민 병장, 안동엽 상병, 나현민 일병, 조진영 하사, 문영욱 하사, 손수민 하사, 김선호 일병, 민평기 중사, 강준 중사, 최정환 중사, 김경수 중사, 문규석 중사.
호명된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전선(戰線)의 초계(哨戒)는 이제 전우(戰友)들에게 맡기고
오로지 살아서 귀환하라.
대한민국을 보우(保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아직도 작전지역에 남아 있는/ 우리 772함 수병을 구원(救援)하소서.
우리 마흔 여섯 명의 대한(大韓)의 아들들을/ 차가운 해저(海底)에 외롭게 두지 마시고/
온 국민이 기다리는 따뜻한 집으로 생환(生還)시켜 주소서.
부디 그렇게 해 주소서. ”
온 국민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아들들은 싸늘한 주검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다른 데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좋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깊은 뜻 없이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실 리가 만무합니다.
아마 ‘인생에서 죽음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진리를 가르칠 목적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음 시는 크리스천 영문학자였던 흰돌 윤정은의 ‘제 3의 생일’이란 시입니다.
암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시인의 신앙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제 3의 생일’
“기뻐하고 축하해 주십시오.
오늘은 일 년에 한번 돌아오는/ 나의 생일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사랑스런 가족과 친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아름다운 산천과 푸른 하늘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기뻐하고 축하해 주십시오.
오늘은 내가 그리스도를 만나 거듭난 나의 생일입니다.
거듭남으로 모든 속박과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듭남으로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뻐하고 축하해 주십시오.
오늘은 내게 다가올 또 하나의 생일을/ 바라보게 하는 날입니다.
이 세상의 삶이 끝나는 날/ 또 하나의 영광된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늘나라를 약속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생일은 새로운 존재의 출발을 알리는 날입니다.
존재란 모든 기쁨의 초석입니다.
죽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존재해야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생일을 축하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러한 생일이 풍요롭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세 번의 생일이 주어졌습니다.
어머니의 자궁을 통한 육신의 탄생-제1의 생일,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써 새로운 존재로 거듭남-제 2의 생일, 그리고 앞으로 있을 죽음과 부활을 통해 얻게 될 영생-제 3의 생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자궁을 통한 육신의 탄생-제 1의 생일은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제 2의 생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영생하는 제 3의 생일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4월 25일은 총력전도주일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제 2의 생일, 제 3의 생일을 선사하는 날입니다.
축복의 날이지요.
세상에 이런 날이 어디 있겠습니까
귓등으로 그냥 넘겨버려서는 안될 이야기입니다.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에게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 4:1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중요한 것을 말해줍니다.
첫째,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려면 반드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첫 번째 것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따르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어부’로 번역된 헬라어는 고기잡이를 본업으로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특별한 단어입니다. 어부는 취미나 여가 활동으로 이따금씩 고기를 잡는 사람이 아닙니다.
죽기 살기로 고기 잡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사람을 낚고,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것을 본업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하는 것을 인생의 부업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사람을 낚는 것이 인생의 부업이 아니라 본업이어야 하며, 우리는 바로 이 일을 위해 살며 이 일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목회 현장에 뛰어 들거나, 외국에 선교사로 가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목회를 하는 것보다 세상의 직업에 종사할 때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학교에서 목사가 전도를 더 잘할까요 아니면 교수가 전도를 잘할까요
교수입니다.
목사가 대학에 가서 전도를 하거나 성경공부를 지도하면 학생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참 별난 목사 다 봤네. 학교까지 와서 야단이야. ’
그러나 교수가 강의 중에 ‘자기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라. ’고 한 마디 하면 학생들은 엄청난 도전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군대에서 목사가 전도를 잘 할까요 사단장이 전도를 잘 할까요
사단장입니다.
목사가 군대에 가서 전도를 하면 군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발. 가만히 놔두시지. 왜 와서 우리를 오라 가라 피곤하게 만드실까’
그러나 사단장이 훈시 중에 ‘오늘날 나의 인생을 만드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제군들, 예수 그리스도를 꼭 만나야 합니다. ’고 한마디 하면 군인들은 엄청난 도전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회사에서 목사가 전도를 잘할까요 아니면 사장님이 전도를 잘할까요
사장님입니다.
목사가 회사에 까지 가서 전도하면 회사원들은 짜증냅니다.
그러나 사장님이, ‘내가 부도를 맞아 자살을 결심했을 때 나를 붙들어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오늘 이 회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라고 조용히 한 마디만 하면 비전을 가진 젊은이들은 엄청난 도전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직업을 갖거나 어떤 일을 하던 간에 그 일을 통해 사람을 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본업의식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전도를 본업으로 삼아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전도는 주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8-19).
이 명령은 단지 사도들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가 이 명령을 이렇게 이해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8:4절을 보세요.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
‘그 흩어진 사람들’이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지요.
우리는 여러 가지 교회의 일로 골몰합니다.
예배준비도 해야지요. 가르치기도 해야지요. 봉사도 해야지요…….
그러나 전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5:14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
반대로 말하면 그분의 명령대로 행하지 않으면 그분의 친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신앙을 고백했지만 전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도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2. 전도는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과 똑같은 삶의 목적을 갖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아주 훌륭한 대답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분은 누가복음 19:10절에서 이렇게 자신이 오신 목적을 밝히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
바로 이것이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천사들과 천사장, 그룹들과 스랍들의 찬양을 포기하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들의 멸시와 배척을 받으시고, 조롱과 침 뱉음과 채찍질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달리신 목적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분이 기도하신 목적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분이 고통당하신 목적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분이 죽으신 목적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일은 우리 주님이 온 힘과 정열을 다 쏟으신 열망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열망은 무엇입니까
만일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여러분의 열망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권리로 스스로를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고 부릅니까
3. 전도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이어서 주님께서는 마28:20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 ’는 주님의 약속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다 된 것 아닙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뭘 걱정하겠어요 뭘 걱정하겠어요
그런데 거기에는 조건이 있어요.
그 조건이란 전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이 조건을 충족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약속에 대해 아무런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게 하려면 우리는 전도를 위하여 끈질기게 노력하여야 합니다.
주님과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교제를 원한다면 우리가 전도라는 그분의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4. 우리는 전도를 통해서만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온전히 누리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 데는 구체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증인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면서 증인되기를 외면한다면 이것은 뭔가 번지수가 다른 얘기입니다.
이것은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성령 충만에 관한 책을 읽고, 성령 충만을 위해 집회에 참석하고,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우리가 전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무도 성령의 충만한 능력과 임재, 그로 인한 기쁨과 승리를 누릴 수 없습니다.
5. 전도는 가장 풍성한 상급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 12:3절의 말씀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
많은 사람들이 사업, 정치, 사회, 연예 등에서 스타가 되길 원합니다.
이름을 알리는 것은 인간의 욕망입니다.
인사를 나눌 때 “선생님의 존함을 많이 들어 익히 알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곧 빛을 잃어버립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라는 단어를 붙일 대상은 없습니다.
재산이 영원하겠어요 건강이 영원하겠어요 권력이 영원하겠어요
그러나 영원히 빛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전도함으로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일입니다.
이 다섯 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 모두는 전도를 단순히 부업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인생의 본업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전도를 인생의 본업으로 삼으십시오.
여러분의 사업과 만남을 전도에 맞추십시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책임져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의 터전을 견고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그 시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저는 바다와 관련된 군 복무를 했기 때문에 그 시가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나중에 이시를 쓴 사람은 군의관으로 복무했던 김덕규라는 사람이었음이 알려졌습니다.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
“772함 수병(水兵)은 귀환(歸還)하라. 772 함(艦) 나와라. 온 국민이 애타게 기다린다.
칠흑(漆黑)의 어두움도/ 서해(西海)의 그 어떤 급류(急流)도/ 당신들의 귀환을 막을 수 없다.
작전지역(作戰地域)에 남아있는 772함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772 함 나와라. 가스터어빈실 서승원 하사 대답하라. 디젤엔진실 장진선 하사 응답하라. 그 대 임무 이미 종료되었으니/ 이 밤이 다가기 전에 귀대(歸隊)하라.
772함 나와라. 유도조정실 안경환 중사 나오라. 보수공작실 박경수 중사 대답하라. 후타실 이용상 병장 응답하라. 거치른 물살 헤치고 바다위로 부상(浮上)하라. 온 힘을 다하며 우리 곁으로 돌아오라.
772함 나와라. 기관조정실 장철희 이병 대답하라. 사병식당 이창기 원사 응답하라. 우리가 내려간다. SSU팀이 내려 갈 때 까지 버티고 견디라. 772함 수병은 응답하라. 호명하는 수병은 즉시 대답하기 바란다.
남기훈 상사, 신선준 중사, 김종헌 중사, 박보람 하사, 이상민 병장, 김선명 상병, 강태민 일병, 심영빈 하사, 조정규 하사, 정태준 이병, 박정훈 상병, 임재엽 하사, 조지훈 일병, 김동진 하사, 정종율 중사, 김태석 중사, 최한권 상사, 박성균 하사, 서대호 하사, 방일민 하사, 박석원 중사, 이상민 병장, 차균석 하사, 정범구 상병, 이상준 하사, 강현구 병장, 이상희 병장, 이재민 병장, 안동엽 상병, 나현민 일병, 조진영 하사, 문영욱 하사, 손수민 하사, 김선호 일병, 민평기 중사, 강준 중사, 최정환 중사, 김경수 중사, 문규석 중사.
호명된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전선(戰線)의 초계(哨戒)는 이제 전우(戰友)들에게 맡기고
오로지 살아서 귀환하라.
대한민국을 보우(保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아직도 작전지역에 남아 있는/ 우리 772함 수병을 구원(救援)하소서.
우리 마흔 여섯 명의 대한(大韓)의 아들들을/ 차가운 해저(海底)에 외롭게 두지 마시고/
온 국민이 기다리는 따뜻한 집으로 생환(生還)시켜 주소서.
부디 그렇게 해 주소서. ”
온 국민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아들들은 싸늘한 주검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다른 데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좋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깊은 뜻 없이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실 리가 만무합니다.
아마 ‘인생에서 죽음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진리를 가르칠 목적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음 시는 크리스천 영문학자였던 흰돌 윤정은의 ‘제 3의 생일’이란 시입니다.
암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시인의 신앙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제 3의 생일’
“기뻐하고 축하해 주십시오.
오늘은 일 년에 한번 돌아오는/ 나의 생일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사랑스런 가족과 친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아름다운 산천과 푸른 하늘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기뻐하고 축하해 주십시오.
오늘은 내가 그리스도를 만나 거듭난 나의 생일입니다.
거듭남으로 모든 속박과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듭남으로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뻐하고 축하해 주십시오.
오늘은 내게 다가올 또 하나의 생일을/ 바라보게 하는 날입니다.
이 세상의 삶이 끝나는 날/ 또 하나의 영광된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늘나라를 약속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생일은 새로운 존재의 출발을 알리는 날입니다.
존재란 모든 기쁨의 초석입니다.
죽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존재해야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생일을 축하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러한 생일이 풍요롭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세 번의 생일이 주어졌습니다.
어머니의 자궁을 통한 육신의 탄생-제1의 생일,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써 새로운 존재로 거듭남-제 2의 생일, 그리고 앞으로 있을 죽음과 부활을 통해 얻게 될 영생-제 3의 생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자궁을 통한 육신의 탄생-제 1의 생일은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제 2의 생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영생하는 제 3의 생일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4월 25일은 총력전도주일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제 2의 생일, 제 3의 생일을 선사하는 날입니다.
축복의 날이지요.
세상에 이런 날이 어디 있겠습니까
귓등으로 그냥 넘겨버려서는 안될 이야기입니다.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에게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 4:1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중요한 것을 말해줍니다.
첫째,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려면 반드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첫 번째 것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따르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어부’로 번역된 헬라어는 고기잡이를 본업으로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특별한 단어입니다. 어부는 취미나 여가 활동으로 이따금씩 고기를 잡는 사람이 아닙니다.
죽기 살기로 고기 잡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사람을 낚고,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것을 본업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하는 것을 인생의 부업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사람을 낚는 것이 인생의 부업이 아니라 본업이어야 하며, 우리는 바로 이 일을 위해 살며 이 일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목회 현장에 뛰어 들거나, 외국에 선교사로 가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목회를 하는 것보다 세상의 직업에 종사할 때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학교에서 목사가 전도를 더 잘할까요 아니면 교수가 전도를 잘할까요
교수입니다.
목사가 대학에 가서 전도를 하거나 성경공부를 지도하면 학생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참 별난 목사 다 봤네. 학교까지 와서 야단이야. ’
그러나 교수가 강의 중에 ‘자기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라. ’고 한 마디 하면 학생들은 엄청난 도전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군대에서 목사가 전도를 잘 할까요 사단장이 전도를 잘 할까요
사단장입니다.
목사가 군대에 가서 전도를 하면 군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발. 가만히 놔두시지. 왜 와서 우리를 오라 가라 피곤하게 만드실까’
그러나 사단장이 훈시 중에 ‘오늘날 나의 인생을 만드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제군들, 예수 그리스도를 꼭 만나야 합니다. ’고 한마디 하면 군인들은 엄청난 도전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회사에서 목사가 전도를 잘할까요 아니면 사장님이 전도를 잘할까요
사장님입니다.
목사가 회사에 까지 가서 전도하면 회사원들은 짜증냅니다.
그러나 사장님이, ‘내가 부도를 맞아 자살을 결심했을 때 나를 붙들어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오늘 이 회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라고 조용히 한 마디만 하면 비전을 가진 젊은이들은 엄청난 도전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직업을 갖거나 어떤 일을 하던 간에 그 일을 통해 사람을 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본업의식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전도를 본업으로 삼아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전도는 주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8-19).
이 명령은 단지 사도들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가 이 명령을 이렇게 이해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8:4절을 보세요.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
‘그 흩어진 사람들’이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지요.
우리는 여러 가지 교회의 일로 골몰합니다.
예배준비도 해야지요. 가르치기도 해야지요. 봉사도 해야지요…….
그러나 전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5:14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
반대로 말하면 그분의 명령대로 행하지 않으면 그분의 친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신앙을 고백했지만 전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도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2. 전도는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과 똑같은 삶의 목적을 갖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아주 훌륭한 대답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분은 누가복음 19:10절에서 이렇게 자신이 오신 목적을 밝히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
바로 이것이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천사들과 천사장, 그룹들과 스랍들의 찬양을 포기하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들의 멸시와 배척을 받으시고, 조롱과 침 뱉음과 채찍질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달리신 목적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분이 기도하신 목적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분이 고통당하신 목적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분이 죽으신 목적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일은 우리 주님이 온 힘과 정열을 다 쏟으신 열망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열망은 무엇입니까
만일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여러분의 열망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권리로 스스로를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고 부릅니까
3. 전도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이어서 주님께서는 마28:20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 ’는 주님의 약속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다 된 것 아닙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뭘 걱정하겠어요 뭘 걱정하겠어요
그런데 거기에는 조건이 있어요.
그 조건이란 전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이 조건을 충족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약속에 대해 아무런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게 하려면 우리는 전도를 위하여 끈질기게 노력하여야 합니다.
주님과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교제를 원한다면 우리가 전도라는 그분의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4. 우리는 전도를 통해서만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온전히 누리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 데는 구체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증인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면서 증인되기를 외면한다면 이것은 뭔가 번지수가 다른 얘기입니다.
이것은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성령 충만에 관한 책을 읽고, 성령 충만을 위해 집회에 참석하고,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우리가 전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무도 성령의 충만한 능력과 임재, 그로 인한 기쁨과 승리를 누릴 수 없습니다.
5. 전도는 가장 풍성한 상급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 12:3절의 말씀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
많은 사람들이 사업, 정치, 사회, 연예 등에서 스타가 되길 원합니다.
이름을 알리는 것은 인간의 욕망입니다.
인사를 나눌 때 “선생님의 존함을 많이 들어 익히 알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곧 빛을 잃어버립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라는 단어를 붙일 대상은 없습니다.
재산이 영원하겠어요 건강이 영원하겠어요 권력이 영원하겠어요
그러나 영원히 빛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전도함으로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일입니다.
이 다섯 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 모두는 전도를 단순히 부업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인생의 본업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전도를 인생의 본업으로 삼으십시오.
여러분의 사업과 만남을 전도에 맞추십시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책임져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의 터전을 견고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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