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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당신의 하프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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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구기 운동 즉 공으로 하는 운동 경기에는 예외 없이 “하프타임”이라고 하는 시간을 준다. 축구도, 농구도, 배구도, 테니스도, 야구도 모두 구기종목에는 그 방법과 시간이 약간씩은 차이가 있지만 반드시 “하프타임”이 있다. 아주 쉬운 예로 축구라는 경기를 보면 축구는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누어진다.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10분 정도의 하프타임을 갖는다.
놀라운 것은 이 하프타임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선 전반전에 소진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쉬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다. 그리고 전반전에 부진했던 것들을 이 하프타임을 통해 감독이나 코치들을 통해 지적받고 새로운 전략을 하달 받고 그리고 후반전을 뛴다. 그래서 하프타임에 선수들이 쉬는 락커룸에 가보면 과간도 아니다.
소리를 지르고 타이르고 물을 마시고 누워있고 다리를 마사지 해 주고 승리하기 위해서 회의 하고 락카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매우 바쁘게 움직인다. 왜냐하면 10분 안에 할 말을 다 해야 하고 후반전을 보다 효율적으로 잘 싸우기 위해서 전략을 다 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반전 보다는 후반전이 훨씬 더 중요하다. 전반전에 아무리 잘 싸웠다 하더라도 후반전에 못 싸우면 역전패하기 때문이다.
전반전에 5:0으로 이겼어도 후반전에 들어와 6골을 먹으면 5:6으로 역전패 하는 것이다. 전반전에 이겼다하여 방심하면 반드시 그 경기는 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하프타임은 너무나 중요하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 인생의 전반전에는 정말 잘 살았는데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와 잘 못 살고 있다면 그런 인생을 일컬어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한다. 주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여러분들이 후반전의 인생을 잘 사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흔히들 사람들은 잘 사는 인생과 부자로 사는 인생을 혼돈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분명한 것은 잘 사는 것과 부자로 사는 것은 확실한 차이가 있다.
부자로 살아도 못사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가난하게 살아도 잘 사는 인생이 있다. 여러분 혼돈하지 마라. 소유물이 많은 사람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이다. 부자로 사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소망이다.
그러나 부자가 되기 위해서 없는 사람들에게 사기나치고 거짓말을 해서 부자가 되었다면 이런 사람들을 잘 사는 사람이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약을 팔아서 큰 부자가 되었다면 그런 사람을 잘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나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여름 시즌에 맞추어 불거진 “바다이야기” 들어 보셨나
수많은 곳에 성인 오락실이나 만들어 수천억의 이익을 벌어 온 나라 안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잘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나 아니 바다이야기는 바닷가라든지 아니면 멋진 카페에서 해야 운치가 있는 것이지 서울이나 부산과 같이 대도시나 중소도시 그것도 어두컴컴하고 담배연기 자욱한 먼지투성이인 지하실이나 밀폐된 장소에서 하면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다. 바다이야기가 결국 철창 속 이야기로 바꾸어지고 말았다. 실패한 인생들이다.
주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들은 보다 낳은 내 인생의 후반전을 뛰기 위해서 하프타임을 갖아야 할 시기에 이르렀다. 나이가 많다 말하지 마라. 때가 늦었다 말하지 마라. 물론 사도 바울은 30세에 그 인생의 하프타임을 가졌지만, 아브라함은 75세에 하프타임을 가졌고, 모세는 80세에 하프타임을 가셨다. 그런가 하면 사도 요한은 90세에 밧모 섬에서 그의 인생의 하프타임을 가졌다. 놀라지 마라 노아는 600세에 그의 인생의 하프타임을 가졌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리들의 아름다운 인생의 후반전을 위해 하프타임을 가져야 한다.
옆 사람과 인사하자. 복된 하프타임을 갖읍시다.
자 그러면 우리들이 가져야 할 인생의 하프타임! 전반전을 마치고 이제 후반전에 들어가기 전의 가장 중요한 시간 하프타임에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인생의 어떤 전략을 짜시겠는가 바다이야기에 생을 던져 치욕적인 후반전을 계획하시겠는가
아니면 이 자리에 선 목사와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후반전을 계획하시겠는가 이 선택은 누가 해 주는 선택이 아니라 여러분들 본인이 스스로 하는 선택이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고 어떤 회사가 냉장고를 선전했지만 하지만 지금 이 시간 여러분들의 선택은 영생을 좌우한다. 주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운동하는 사람들의 하프타임에는 반드시 감독과 코치가 함께 해야 한다. 감독과 코치가 빠진 하프타임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 하프타임은 주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든 인생의 코치가 되시고 감독자가 되시는 주님과 함께 인생의 후반전을 설계해야 한다. 여러분들은 오늘 이 자리가 여러분들의 하프타임이다. 오늘 주님과 함께 하라. 오늘 후반전을 계획하라. 주님이 함께 하실 것이다.
자! 그러면 먼저 우리들의 인생의 후반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우리 인생의 후반전에 정해야 할 것의 목적은 날마다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떤 고난과 고통도 감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내 눈으로 보이지는 않아도 여호와 하나님나라에서 영원히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이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 말하고 있다. 자 그러면 날마다 새로운 것. 어떤 고난과 고통도 감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서조차 영원히 인정받을 수 있는 것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내 후반전 인생에 모든 것을 드려 투자해야할 것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여러분들은 뭐라고 생각하시나 영혼을 사랑하는 일이다. 쉬운 말로 전도하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AD33년 그의 나이 30세에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 그리고 그는 다메섹 안에 있는 “직가”라고 하는 거리에 “유다”의 집에 들어가 사흘 동안 소경이 되어 인생의 하프타임을 갖는다. 그가 인생의 하프타임을 갖는 동안 “아나니아”가 찾아와 그에게 안수하므로 보게 된다.
사도 바울은 3일 동안의 하프타임을 갖고 주와 복음을 향한 마음이 180도 바뀌어 진다. 사도 바울의 3일 동안의 하프타임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개념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그렇게 자랑하던 지식도, 명예도, 권세도, 출신도, 심지어 로마의시민권 까지도 모두 배설물처럼 여기게 되었다. 현제 성경에서는 사도 바울이 그때의 심경을 배설물이라고 고상한 단어를 썼지만 1912년에 발행된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똥”처럼 여겼다고 배설물이라는 고상한 단어 대신에 “똥” 이라는 단어를 썼다.
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단어는 그냥 놔두는 것이 훨씬 더 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 보라.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가 돌기둥에 목이 얹혀져 찍혀 순교하기 까지 34년의 인생의 후반전을 오직 주와 복음만을 위해서 살았다. 그래서 그는 롬14:8에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 라고 고백하지 않나
주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의 후반전의 목적을 어디에 두시려나 힘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일에 투자하자. 시간도, 달란트도, 건강도, 물질도 모든 것들을 영혼을 사랑하는 일에 힘쓰시기를 바란다. 우리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후반전의 인생을 투자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리들이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즉 전도할 때
 첫째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복음을 전해야만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생명을 얻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 주변에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으면 아낌없이 복음을 전해야만 한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이었던 디모데에게 강력하게 강조한 말이 하나 있다. 그게 무엇인지 아나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딤후4:2을 보면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고 말했다. 이 말씀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씀이지만 그렇게 성경을 읽으면 성경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오늘을 살고 있는 나에게 직접 하신 말씀으로 받아 들이셔야 한다.
그래서 오늘 인생의 “하프타임”을 맞이하여 후반전 전략을 짜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후반전의 인생을 계획하라고 하신 말씀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래서 복음전함이 내 후반전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살았다. 모세의 후반전도 그렇게 살았다. 그는 그의 후반전 인생을 자기 백성들을 죄악의 소굴에서 생명을 건지는 일에 전념했다.
예))지난 목요일과 금요일(8. 24~25)에 왕성교회 태신자 전도 세미나를 대명콘도에서 했다. 우리 교회에서 17명이 참석했는데 아주 큰 은혜를 경험했다. 참석한 약 20여개 교회 중에서 우리교회가 가장 많이 참석했다하여 앞으로 불려나가 개다리 춤을 추며 찬양을 한곡 불렀다. 둘째 날인 금요일에는 목회자 반과 평신도 반으로 나누어 분반공부를 하게 되었다. 목회자반의 강사로 오신 목사님이 인천 진광 장로교회 목사님이셨는데 그분의 간증이 참으로 은혜가 되었다.
이 목사님이 목회 할 때의 이야기였다. 한 학생을 전도하여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이 학생은 등이 굽은 곱추 장애를 앓고 있는 학생이었다. 평상적으로 곱추 장애는 등이 뒤로 돌출하여 굽혀지는 장애인데 이 학생은 등뼈가 앞으로 돌출하게 되어 폐를 누르고 위를 눌러서 정상적으로 생활하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그의 부모는 IMF때 위기를 맞아 어머니는 도망을 갔고 아버지는 실직을 하여 술로 세월을 보내는 처참한 가정이었다. 수술을 하려해도 2천 만 원이라는 기하급수적인 비용이 들어 어찌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 문제를 알게 된, 그 학생을 전도한 집사님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전도를 계속해야 할지 아니면 슬그머니 모른 척 하고 빠져야 할지 고민하다가 목사님을 찾아와 모든 것을 다 털어 놓았다. 이 목사님은 그 집사님에게 계속 전도할 것을 요구했고 목사님은 교회 성도들에게 알려서 그 학생을 위해서 전 교인들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사님이 이 문제를 놓고 전 교인들에게 광고했다. 2천 만 원이나 되는 수술비를 교회에서 마련해 보자는 의도였다. 그리고 헌금을 했는데 400만 원 가량이 헌금으로 나왔다. 수술비 2천 만 원에 비하면 턱도 없는 금액이다. 이 교회는 그 불쌍한 한 학생과 그의 아버지 이 두 영혼을 놓고 계속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집사님은 때를 놓치지 않고 계속 그 학생을 만나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그 교회에 교인 중에 국민 의료보험 조합에 직장을 둔 교인이 목사님을 찾아와 그 아이의 가정형편을 자세히 듣고 그 정도면 생활보호 대상자가 될 수 있을것 갔다는 희망을 알려 주었다. 생활보호 대상자는 1급과 2급이 있는데 1급은 의료혜택을 100% 받을 수 있고 2급은 80%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목사님과 그 성도 그리고 전도한 집사님의 노력으로 이 학생은 생활보호 대상자 2급의 판정을 받게 되어 수술비의 80%를 감면받게 되었다. 그래서 그 교인들이 헌금한 400만원으로 수술하여 100% 건강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아이는 청년이 되어 교회에 큰 일꾼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학생의 아버지가 교회의 그렇게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모습으로 아들을 돕는 모습에 감동하여 과거의 모든 삶을 청산하고 막 노동판에서 새 삶을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아버지와 아들이 생명을 바쳐 믿음을 지키고 있으며 교회의 모든 일에 최고의 열심을 내고 있다고 한다.
복음을 전하는 일 즉 전도 하는 것은 생명을 얻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한번 외친 복음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인사당신의 한마디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재창조를 이룬다.
전도는 재창조를 이룬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못 쓰는 것을 쓰게 만든다. 안되는 것을 되게 만든다.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전도는 위대한 것이다.
행3장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려고 성전으로 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이 미문이라 일컫는 작은 문으로 성전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그 문 앞에 한 거지가 앉아 손을 벌리고 구걸하는 것을 보게 된다. 오직 그는 “한푼 줍쇼” 이것이 그 거지가 외칠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이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한 베드로가 큰 소리로 외친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 하고 외쳤다. 잘 보라. 베드로가 준 것은 동전 한 푼이 아니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였다” 이것은 베드로가 그 거지에게 준 것이 복음이라는 뜻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동전을 구하고 있는 그 거지에게 동전 한 푼 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 모든 삶의 근원이 되시는, 우리들의 영원한 말씀 복음을 전해 준 것이다. 그랬더니 이 거지가 재창조된다. 그가 어떻게 재창조 되었나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니” 라고 말이다. 그 거지는 재창조 되어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성전 안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했다. 그렇게 수많은 세월동안 “한푼줍쇼” 하던 입에서 이제는 “한푼줍쇼”가 아닌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송의 소리가 입가로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 미문에 앉아 있던 거지 입장이 되어보니 그가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이런 찬송을 불렀을 것 같았다.
341장 “너 여호와 하나님께 이끌리어 일평생 주 만 바라면 너 어려울 때 힘주시고 언제나 지켜 주 시리 주 크신 사랑 믿는 자 그 반석위에 서리라” 복음을 전하는 것은 듣는 자로 하여금 재창조 하게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다.
예))11살 때부터 선장인 아버지를 따라 선원 아닌 선원생활을 한 소년이 하나 있었다. 그는 18살에 해군 장교로 입대하여 해군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선원생활에 익숙했던 그 소년은 선원들의 거칠고 부도덕한 생활을 그대로 배웠다. 그랬던 그가 해군의 규칙적인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탈영하고 장교에서 사병으로 강등되고 말았다.
한번 비뚤어진 그의 성격은 걷잡을 수 없이 타락하게 되었고 견디다 못한 함장은 그 병사를 아프리카 노예 선에 팔아 버리고 말았다. 15개월 동안 “시에라레온” 근처의 섬에서 비참한 노예 생활을 하다가 영국 무역선에 의하여 극적으로 구출되어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는 새 삶을 살기 시작했는데 그의 새 삶은 노예를 사고파는 사람 장사꾼이 되었다.
한번은 그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싣고 와 영국에서 판 후 짜투리 시간이 몇 시간 있어서 부하 선원들과 같이 유흥을 즐기기 위하여 뭍으로 나왔다가 그 주변 작은 교회에서 열리는 부흥 집회에 참석하게 됐다. 부흥회를 참석한 이유는 은혜를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부흥집회를 망쳐 놓을 계획에서였다. 부하 선원들과 교회에 들어서니 예배는 시작되었고 부흥 강사 목사님이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선장은 설교도중에 부하 선원들과 함께 야유를 하면서 휘파람을 불고 예배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그렇게 가만 놔 두시지만은 않으셨다. 그런 방해에도 요동하지 않고 설교하시는 목사님의 한마디 한마디는 그 소년의 거친 행동을 스스로 멈추게 했고 그 선원들의 야유하는 입을 막게 했다.
그들이 그렇게 야유를 한지 5분도 체 되지 않아 이 소년을 교회 맨 앞자리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통회고 말았다. 그의 귓전을 울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그를 완전히 변화시켰고 그 후에 그는 목사가 되어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는 시간까지 그는 설교를 한 목사님이 되셨다. 그리고 그는 노예를 팔고 사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그 죄를 뉘우치면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심정으로 이런 찬송시를 지어 오늘날 까지 우리들에게도 불려지고 있다.
1)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405장 2절부터 함께)
2) 큰 죄악 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3)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4)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찬송가 405장의 주인공 죤 뉴톤의 이야기이다. 복음이 들어간 사람마다 모두 예외 없이 재창조 되었다. 사도 바울이 그랬고, 성 “어거스틴”이 그랬다. 전도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어떤 사람이든지 재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옆 사람과 인사당신이 하는 전도가 불신자를 재창조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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