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끝날까지 함께 하는 예수님
본문
우리들은 모두 길을 가는 나그네들, 여행객들입니다. 인생의 정한 길을 계속해서 가고 있습니다.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들 모두는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지금도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인생의 길을 끝날까지 예수님이 함께 가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항상 같이 걸어가신다면 지금도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래요. 지금 예수님이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우들에게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신 것을 알지 못하는가고 묻고 있습니다. 모르면 실패자, 실격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성공자는 예수님과 함께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그것을 모르면 그는 인생의 실패자가 됩니다. 미국에서 보았는데 어떤 집에 가 보니 식사하는 테이블에 의자 하나를 비어 놨습니다. 어째서 이 의자를 하나 더 놨냐고 물으니까 그것이 예수님 자리래요. 그 가족들은 늘 예수님이 옆에 같이 계신다는 사실을 너무나 확실히 믿고 예수님을 모시는 의자까지도 장만해 놨던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항상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심의 몇가지 깊은 뜻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은 우리들을 옆에서 도우신다는 뜻입니다. 가까운 길도 친구와 같이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우리의 여행길에 여호와 하나님이 늘 옆에서 동행한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시편 121편의 기자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 우리 옆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분입니다. 지난해 물난리에 함께 자다가 가족을 잃은 사람이 많은데 어떤분은 물살에 안 떠나보내려고 아들의 손을 꼭 잡고있다가 힘이 부쳐서 결국 아들의 손을 놓쳐서 그 아들이 물살에 떠내려간 경우도 있었습니다. 6. 25때 사람들이 곡간차에 올라 타고 피난 갔는데 어떤 엄마가 그 위에서 애기를 안고 졸다가 그만 애기를 떨어뜨려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인간이기에 졸다가 자다가, 아니 눈을 뻔히 뜨고서도 힘이 부쳐서 돕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그런데 가장 강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들을 늘 옆에서 같이 가시니 우리는 든든합니다. 그가 늘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여호와 하나님은 늘 우리 옆에 계셔서 우리들을 돕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늘 우리들을 지켜주시기에 우리들의 여행길이 안전한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았던 종교개혁자 루터는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집에 들어 와서는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 "저 집들의 지붕 기왓장이 나를 덮치지 않아서 오늘 무사히 살아 돌아왔습니다. 감사합니다. "
예수님과 같이 걸어가면 무슨 일에 있어서나 막힘이 없이 난관들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예:미국의 남북전쟁때 이야기입니다. 어떤 집의 아들이 군대에 들어 갔다가 탈영했습니다. 이 아들은 결국 헌병에게 붙잡혔습니다. 그 때는 싸움 중이기에 탈영하면 사형이었어요. 이 아들은 곧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마지막 사형 면죄권을 쥔 대통령을 면담하고 아들을 살려달라고 호소하기 위하여 백악관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한데 문지기가 막는 것입니다. 며칠을 시도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이 노인은 백악관으로 들어 가는 길이 막히자 길 옆에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소년이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노인은 몹시 의아해 하면서 이 소년을 따라 들어 갔습니다. 그는 이번엔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백악관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보초병에게 이 아이는 "나와 같이 동행하는 손님입니다. "라고 한 마디하니 보초병은 차렷 경례를 부치면서 통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노인 아버지는 이렇게 하여 링컨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소년은 바로 링컨 대통령의 아들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같이 가면 어디나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어려운 길도 예수님과 같이 가면 즐겁고 기쁩니다. 아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가는 길은 늘 평탄합니다. 사41:10 :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여호와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요즈음 많이들 어려우시지요 삶이 힘이 들 때마다 옆에 예수님이 함께 가시고 계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힘있는 오른손이 옆에 있음을 믿고 그 오른손을 꼭 잡으세요. 그러면 용기가 생길 것입니다. 짐이 가벼워질 것입니다. 마음이 담대하게 되어 당당하게 길을 걸어 가시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과 함께 간다는 것은 우리들이 생의 잘못된 길에 빠지지 않는다는 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늘 우리들을 옆에서 가까이 감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우리 곁에 모셨기에 우리가 늘 조심한다는 뜻도 됩니다. 옆에 예수님이 함께 계셔서 보고 계신데 우리들이 나쁜 짓을 할 수 있습니까 못하지요. 그래서 예수님과 같이 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길은 너무나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예:미국의 22 대통령이었던 크리블랜드의 어렸을 때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때 크리블랜드는 자기의 다정한 친구 프랭클린과 함께 늘 신나게 놀았습니다. 그들이 학교를 졸업하던 날 자유롭게 놀고 싶어서 오랜만에 해방감을 가지고 극장에 영화를 보기로 하고 갔습니다. 극장으로 가는 도중에 한 교회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현수막이 걸려있고 부흥회가 진행중이었습니다. 본래 신앙심이 깊었던 크리블랜드는 마음이 동하였습니다. 극장으로 향하던 마음이 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친구 프랭클린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설득했습니다. "먼저 오늘은 예배부터 드리자. 우리가 졸업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했으니 감사하는 마음을 표하자. " 친구는 화를 버럭 내면서 극장으로 혼자 가 버렸습니다. 크리블랜드는 혼자서 교회에 들어가서 그날 밤 큰 감동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진실한 삶을 살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이 분이 나중에 미국의 22대와 24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한편 그날 밤 영화를 보러 갔던 친구는 나쁜 영화에 빠져서 숱한 범죄 행각을 벌이게 되었고 결국은 사형을 받을 정도의 큰 죄를 범했습니다. 참으로 극적인 것은 클리블랜드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선서하는 그 시간에 프랭클린 친구는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걸어간 사람의 길과 예수님의 손을 뿌리치고 저 혼자 막가던 사람의 운명이 이렇게 달라진 것을 봅니다.
예수님이 늘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선한 길을 가게 됩니다. 나쁜 마음이 들어오거든 옆에 예수님이 같이 계심을 잊지 마세요. 예수님이 보고 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옆에서 감시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가면서 나쁜짓을 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상급이 따른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과정을 다 보시고 채점을 하시는 분입니다. 축구나 농구 경기를 보면 심판의 잘못도 종종 있더라구요. 심판자도 사람이기에 자칫 현장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야구의 스트라이크를 판단하는 경우는 자주 시비가 일어납니다. 자칫하면 실수 판정을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늘 옆에 계셔서 우리의 잘한 것을 바로 평가해 주실 것입니다. 정확하게 평가해서 상을 주실 것입니다.
정부나 단체들, 교회에서 주는 상을 보아도 정확한 것이 못됩니다. 이 세상에서 주어지는 갖가지 상들은 공정하지 않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개인적인 주관에 의하여 상을 결정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효자상, 효부상, 애국상, 동백장 등을 보아도 받을만한 사람들이 받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듣고 있습니다. 상을 받지 못했지만 나라에 충성했고 부모님을 잘 모신 분들이 많습니다. 실제 상 받은 사람들 보다도 더 좋은 평점을 받을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시고 계시기에 우리들의 행위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너무나 잘 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들의 마음속까지 보시기에 잘하고 못함을 너무나 분명하게 아십니다. 그에게는 절대로 편견이 없습니다. 마지막 날 반드시 거기에 합당한 상을 주실 것입니다. 기대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여 상을 받지 못한 분들이여! 조금도 섭섭히 생각하지 마세요. 반드시 대가를 받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눈가림만 한 사람은 상이 없을 것이고 진실하게 산 사람은 큰 상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 모두는 마지막 날이 있을 것이고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공적에 따라서 상을 받습니다. 고전3:12-15에도 6가지 차별이 나옵니다. 금,은, 보석, 나무, 풀, 짚등입니다.
네 번째로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경고와 책망이 따름을 의미하고 결국에는 무서운 심판도 반드시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와 함께 가시면서 우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살피시는 분이시며 동시에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우리들이 잘못한 것을 그냥 못본척 지나치지 않는 분입니다. 출33:1-3을 보면 아론이 만든 금우상 사건 이후 여호와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모세 보고만 백성을 데리고 올라가라 하시고는 여호와 하나님은 같이 올라가지 아니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라"(3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벌써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잊고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그것이 자기네들을 애굽에서 구원한 신이요 또 앞으로 가나안으로 인도할 신이라고 여겨 그 앞에 절하였습니다. 실로 큰 죄를 범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대노하셔서 많은 사람들을 처벌했습니다. 계속 저들과 같이 가다가는 또 무슨 죄악을 저들이 저질러서 더 무서운 징계를 내릴지 염려하면서 "더 이상 같이 가지 아니하겠다"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이제까지 여호와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그 무서운 바로의 손아귀에서 해방이 되었고 그리고 광야의 고달픈 길을 걸어 왔는데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는 마지막 단계에 와서 여호와 하나님이 더 이상 같이 아니 가신다니! 모세는 속이 탔습니다.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까지의 모든 수고가 헛것이 됩니다. 그 어려운 고생의 길이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모세는 온 백성들로 하여금 장신구를 몸에서 제거하고 참회기도를 드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세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께 직접 간청하였습니다. 끝까지 동행해 주시기를 여호와 하나님께 간청했습니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은 마음을 돌이키셨습니다. "내가 친히 가리라. "(14절) 이 약속을 결국 받아냈고 모세는 다시 힘을 얻어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악을 행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진멸을 하던가 아니면 떠나 가십니다. 옆에서 현장을 보시면서 그 악을 적당히 봐줄 수 없는 공의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악인을 진멸하는 길밖에 없기에 진멸을 아니 하려고 여호와 하나님이 같이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가끔 어떤 사람이 "난 악을 저질렀는데도 잘 산다"고 배짱 좋게 떠드는 경우를 보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옆에 있으면 죽일까봐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떠나셨기에 그는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의 잘못을 몰라서, 묵인하셔서 가만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정말 사랑하시는 사람은 항상 옆에 같이 가시면서 징계도 하고 책망도 당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것이 난가요 여호와 하나님의 동행 없이 세상에서 적당하게, 그러면서도 벌 안받고 사는 것인가요 아니면 옆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셔서 잔소리를 듣고 경고도 듣고 심하면 책망도 받으면서 사는 경우인가요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시기에 옆에 같이 가시고 사랑하시기에 책망하고 벌하시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경고하는 소리를 겸손히 들어야 합니다.
이 땅의 우리들의 여행길이 언제 끝이 날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느 순간 동료들이 먼저 떠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여러분의 주변에서도 의외의 분이 떠나가는 것을 보시지요 나이에 상관이 없더라구요. 그러나 비록 우리의 여행길이 언제 끝날는지는 모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가시는 분, 예수님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분만 같이 가신다면 이 세상의 여정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용기를, 희망을 줍니다. 그리고 이 땅의 여행이 끝나면 그분의 안내로 그 영원한 천국의 안식의 문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합당한 큰 상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이땅을 떠나가시면서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 :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그 약속대로 그는 지금 여러분들과 함께 계십니다. 확신하시고 늘 그와 소근소근 대화하면서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항상 같이 걸어가신다면 지금도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래요. 지금 예수님이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우들에게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신 것을 알지 못하는가고 묻고 있습니다. 모르면 실패자, 실격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성공자는 예수님과 함께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그것을 모르면 그는 인생의 실패자가 됩니다. 미국에서 보았는데 어떤 집에 가 보니 식사하는 테이블에 의자 하나를 비어 놨습니다. 어째서 이 의자를 하나 더 놨냐고 물으니까 그것이 예수님 자리래요. 그 가족들은 늘 예수님이 옆에 같이 계신다는 사실을 너무나 확실히 믿고 예수님을 모시는 의자까지도 장만해 놨던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항상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심의 몇가지 깊은 뜻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은 우리들을 옆에서 도우신다는 뜻입니다. 가까운 길도 친구와 같이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우리의 여행길에 여호와 하나님이 늘 옆에서 동행한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시편 121편의 기자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 우리 옆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분입니다. 지난해 물난리에 함께 자다가 가족을 잃은 사람이 많은데 어떤분은 물살에 안 떠나보내려고 아들의 손을 꼭 잡고있다가 힘이 부쳐서 결국 아들의 손을 놓쳐서 그 아들이 물살에 떠내려간 경우도 있었습니다. 6. 25때 사람들이 곡간차에 올라 타고 피난 갔는데 어떤 엄마가 그 위에서 애기를 안고 졸다가 그만 애기를 떨어뜨려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인간이기에 졸다가 자다가, 아니 눈을 뻔히 뜨고서도 힘이 부쳐서 돕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그런데 가장 강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들을 늘 옆에서 같이 가시니 우리는 든든합니다. 그가 늘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여호와 하나님은 늘 우리 옆에 계셔서 우리들을 돕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늘 우리들을 지켜주시기에 우리들의 여행길이 안전한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았던 종교개혁자 루터는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집에 들어 와서는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 "저 집들의 지붕 기왓장이 나를 덮치지 않아서 오늘 무사히 살아 돌아왔습니다. 감사합니다. "
예수님과 같이 걸어가면 무슨 일에 있어서나 막힘이 없이 난관들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예:미국의 남북전쟁때 이야기입니다. 어떤 집의 아들이 군대에 들어 갔다가 탈영했습니다. 이 아들은 결국 헌병에게 붙잡혔습니다. 그 때는 싸움 중이기에 탈영하면 사형이었어요. 이 아들은 곧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마지막 사형 면죄권을 쥔 대통령을 면담하고 아들을 살려달라고 호소하기 위하여 백악관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한데 문지기가 막는 것입니다. 며칠을 시도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이 노인은 백악관으로 들어 가는 길이 막히자 길 옆에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소년이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노인은 몹시 의아해 하면서 이 소년을 따라 들어 갔습니다. 그는 이번엔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백악관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보초병에게 이 아이는 "나와 같이 동행하는 손님입니다. "라고 한 마디하니 보초병은 차렷 경례를 부치면서 통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노인 아버지는 이렇게 하여 링컨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소년은 바로 링컨 대통령의 아들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같이 가면 어디나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어려운 길도 예수님과 같이 가면 즐겁고 기쁩니다. 아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가는 길은 늘 평탄합니다. 사41:10 :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여호와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요즈음 많이들 어려우시지요 삶이 힘이 들 때마다 옆에 예수님이 함께 가시고 계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힘있는 오른손이 옆에 있음을 믿고 그 오른손을 꼭 잡으세요. 그러면 용기가 생길 것입니다. 짐이 가벼워질 것입니다. 마음이 담대하게 되어 당당하게 길을 걸어 가시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과 함께 간다는 것은 우리들이 생의 잘못된 길에 빠지지 않는다는 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늘 우리들을 옆에서 가까이 감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우리 곁에 모셨기에 우리가 늘 조심한다는 뜻도 됩니다. 옆에 예수님이 함께 계셔서 보고 계신데 우리들이 나쁜 짓을 할 수 있습니까 못하지요. 그래서 예수님과 같이 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길은 너무나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예:미국의 22 대통령이었던 크리블랜드의 어렸을 때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때 크리블랜드는 자기의 다정한 친구 프랭클린과 함께 늘 신나게 놀았습니다. 그들이 학교를 졸업하던 날 자유롭게 놀고 싶어서 오랜만에 해방감을 가지고 극장에 영화를 보기로 하고 갔습니다. 극장으로 가는 도중에 한 교회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현수막이 걸려있고 부흥회가 진행중이었습니다. 본래 신앙심이 깊었던 크리블랜드는 마음이 동하였습니다. 극장으로 향하던 마음이 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친구 프랭클린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설득했습니다. "먼저 오늘은 예배부터 드리자. 우리가 졸업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했으니 감사하는 마음을 표하자. " 친구는 화를 버럭 내면서 극장으로 혼자 가 버렸습니다. 크리블랜드는 혼자서 교회에 들어가서 그날 밤 큰 감동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진실한 삶을 살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이 분이 나중에 미국의 22대와 24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한편 그날 밤 영화를 보러 갔던 친구는 나쁜 영화에 빠져서 숱한 범죄 행각을 벌이게 되었고 결국은 사형을 받을 정도의 큰 죄를 범했습니다. 참으로 극적인 것은 클리블랜드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선서하는 그 시간에 프랭클린 친구는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걸어간 사람의 길과 예수님의 손을 뿌리치고 저 혼자 막가던 사람의 운명이 이렇게 달라진 것을 봅니다.
예수님이 늘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선한 길을 가게 됩니다. 나쁜 마음이 들어오거든 옆에 예수님이 같이 계심을 잊지 마세요. 예수님이 보고 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옆에서 감시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가면서 나쁜짓을 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상급이 따른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과정을 다 보시고 채점을 하시는 분입니다. 축구나 농구 경기를 보면 심판의 잘못도 종종 있더라구요. 심판자도 사람이기에 자칫 현장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야구의 스트라이크를 판단하는 경우는 자주 시비가 일어납니다. 자칫하면 실수 판정을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늘 옆에 계셔서 우리의 잘한 것을 바로 평가해 주실 것입니다. 정확하게 평가해서 상을 주실 것입니다.
정부나 단체들, 교회에서 주는 상을 보아도 정확한 것이 못됩니다. 이 세상에서 주어지는 갖가지 상들은 공정하지 않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개인적인 주관에 의하여 상을 결정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효자상, 효부상, 애국상, 동백장 등을 보아도 받을만한 사람들이 받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듣고 있습니다. 상을 받지 못했지만 나라에 충성했고 부모님을 잘 모신 분들이 많습니다. 실제 상 받은 사람들 보다도 더 좋은 평점을 받을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시고 계시기에 우리들의 행위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너무나 잘 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들의 마음속까지 보시기에 잘하고 못함을 너무나 분명하게 아십니다. 그에게는 절대로 편견이 없습니다. 마지막 날 반드시 거기에 합당한 상을 주실 것입니다. 기대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여 상을 받지 못한 분들이여! 조금도 섭섭히 생각하지 마세요. 반드시 대가를 받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눈가림만 한 사람은 상이 없을 것이고 진실하게 산 사람은 큰 상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 모두는 마지막 날이 있을 것이고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공적에 따라서 상을 받습니다. 고전3:12-15에도 6가지 차별이 나옵니다. 금,은, 보석, 나무, 풀, 짚등입니다.
네 번째로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경고와 책망이 따름을 의미하고 결국에는 무서운 심판도 반드시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와 함께 가시면서 우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살피시는 분이시며 동시에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우리들이 잘못한 것을 그냥 못본척 지나치지 않는 분입니다. 출33:1-3을 보면 아론이 만든 금우상 사건 이후 여호와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모세 보고만 백성을 데리고 올라가라 하시고는 여호와 하나님은 같이 올라가지 아니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라"(3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벌써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잊고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그것이 자기네들을 애굽에서 구원한 신이요 또 앞으로 가나안으로 인도할 신이라고 여겨 그 앞에 절하였습니다. 실로 큰 죄를 범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대노하셔서 많은 사람들을 처벌했습니다. 계속 저들과 같이 가다가는 또 무슨 죄악을 저들이 저질러서 더 무서운 징계를 내릴지 염려하면서 "더 이상 같이 가지 아니하겠다"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이제까지 여호와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그 무서운 바로의 손아귀에서 해방이 되었고 그리고 광야의 고달픈 길을 걸어 왔는데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는 마지막 단계에 와서 여호와 하나님이 더 이상 같이 아니 가신다니! 모세는 속이 탔습니다.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까지의 모든 수고가 헛것이 됩니다. 그 어려운 고생의 길이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모세는 온 백성들로 하여금 장신구를 몸에서 제거하고 참회기도를 드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세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께 직접 간청하였습니다. 끝까지 동행해 주시기를 여호와 하나님께 간청했습니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은 마음을 돌이키셨습니다. "내가 친히 가리라. "(14절) 이 약속을 결국 받아냈고 모세는 다시 힘을 얻어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악을 행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진멸을 하던가 아니면 떠나 가십니다. 옆에서 현장을 보시면서 그 악을 적당히 봐줄 수 없는 공의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악인을 진멸하는 길밖에 없기에 진멸을 아니 하려고 여호와 하나님이 같이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가끔 어떤 사람이 "난 악을 저질렀는데도 잘 산다"고 배짱 좋게 떠드는 경우를 보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옆에 있으면 죽일까봐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떠나셨기에 그는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의 잘못을 몰라서, 묵인하셔서 가만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정말 사랑하시는 사람은 항상 옆에 같이 가시면서 징계도 하고 책망도 당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것이 난가요 여호와 하나님의 동행 없이 세상에서 적당하게, 그러면서도 벌 안받고 사는 것인가요 아니면 옆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셔서 잔소리를 듣고 경고도 듣고 심하면 책망도 받으면서 사는 경우인가요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시기에 옆에 같이 가시고 사랑하시기에 책망하고 벌하시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경고하는 소리를 겸손히 들어야 합니다.
이 땅의 우리들의 여행길이 언제 끝이 날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느 순간 동료들이 먼저 떠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여러분의 주변에서도 의외의 분이 떠나가는 것을 보시지요 나이에 상관이 없더라구요. 그러나 비록 우리의 여행길이 언제 끝날는지는 모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가시는 분, 예수님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분만 같이 가신다면 이 세상의 여정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용기를, 희망을 줍니다. 그리고 이 땅의 여행이 끝나면 그분의 안내로 그 영원한 천국의 안식의 문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합당한 큰 상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이땅을 떠나가시면서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 :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그 약속대로 그는 지금 여러분들과 함께 계십니다. 확신하시고 늘 그와 소근소근 대화하면서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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