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본문
예수님은 당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어두운 밤길을 걸어갈 때 가로등이 얼마나 고맙습니까 우리들이 실족치 않도록 도와줍니다. 값비싼 것은 아니지만 음식 맛을 내는데는 소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불꺼진 등, 맛을 잃은 소금은 쓸데가 없어서 버림을 받습니다. 기독교인이 기독교인다울 때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고, 은혜와 복을 내려주시지만, 기독교인이 본분을 상실하면 아무데도 쓸데가 없어 버림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 천국을 가기 직전 마지막 유언의 말씀은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을 믿고 순종하면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어 기도하면 나으리라. " 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나가서 전도할 때 제자들과 주의 손이 함께 할 때 허다한 무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면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직장 생활을 할 때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직장문화가 술문화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제할 때, 비즈니스를 핑계로 어떤 공식적인 업무에 있어서 거의 술자리로 이어질 경우가 많습니다. 어쩔 때는 강제로 끌려가기도 하고, 2차, 3차, 폭음, 그것이 윤락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술문화속에서 살아가는 남자들의 직장 생활, 참 부담이 큽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76%가 원만한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술을 반드시 마셔야 한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응답자의 81%는 나는 주1회 이상 술을 마신다, 나의 평균 한달 술값은 5만원이상이다,
술로 인해서 건강이 염려된다 48%, 술로 인해서 가정의 문제가 생겼다 21%로 나와있어요. 자 이러한 술문화속에서 살아가는 직장인들은 두가지 성향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현실 도피형, 하나는 타협형, 현실도피형은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술마시지 않습니다. 하고 회사에서 돼지 머리 잘라놓고 제사 지내는 것 나 못합니다. " 그 사람은 회사에서 왕따를 당합니다. 또 현실타협형은 주위 사람에게 자기가 교회 다니는 것을 가능하면 숨깁니다. 그래서 주일에 친목회가 있다 하면 가고, 회식이 있다 하면 술도 한잔씩 나누고, 이 사람은 인간관계는 원만할 지 모르지만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상실한 사람이니, 맛잃은 소금입니다. 여러분은 왕따가 될지라도 믿음을 지키겠습니까, 아니면 원만한 인간관계와 사회성을 위해서 적당히 한잔씩 마셔가면서 주일도 빠져가면서 믿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 자유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로 선택한 그 결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과 심판으로 결정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술문화로 이어지는 직장생활에서 승리할 수 있겠느냐 기독교인으로서의 사명이 있는데 업무능력에 있어서, 업무의욕에 있어서, 업무태도에 있어서 상대방보다 탁월성을 보여야 됩니다. 잠 22:29에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그랬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를 고용해주는 기업체의 고용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과 동료를 압도할 수 있는 당당한 실력과 책임의식이 분명하여 역시 예수 믿는 사람은 다르다, 도덕과 윤리적으로 흠이 없고, 책임감이 투철하며, 회사를 아끼고 사랑함이 뛰어나고, 그 사람이 이 회사에 들어온 이후에 회사가 잘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기독교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가 욕을 먹고, 예수 믿는 사람이 별볼일 없다고 그러고 전도의 문은 막힙니다.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며, 자기가 복되기 위해서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인간의 행복은 사랑의 대상이 있을 때,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 행복해 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전능하신 주님이 날 사랑한다는 이 사랑의 의식이 나의 삶에 윤활유가 되고, 용기가 되고, 기회가 되고, 담력을 얻게 합니다. 또한 우리가 왜 행복합니까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우리는 행복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감정이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부럽지도 않을 것입니다.
누구도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랑 실천하는 사람은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요일 5:18에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사랑실천중에 가장 귀한 것은 영혼구원을 위한 수고입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들 중에 최대의 우선순위, 가장 우선순위 영혼구원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유언이 전도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 다 잘해도 전도 못하면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명심하십시오.
바울이 이 비밀을 깨닫고,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 여호와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일이 영혼구원이라면 나는 이 일을 위해서 목숨을 걸겠다. 그렇게 하고 그는 전도인으로 나섭니다. 그러나 전도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한번은 고린도 지역에 가서 전도를 하는데 예수 믿는 일을 반대하는 유대교도들이 얼마나 핍박을 하고 훼방하고, 방해를 하고, 대적을 하는지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마10장에서 전도방법을 가르쳐 주실 때, 이 세상에서 핍박을 하면 동네 밖에 나와서 먼지를 털어 버리고 이 동네 아니면 전도할 데가 없겠나, 가자 그리고 다른 동네로 가려고 하는데 그날밤 기도중에 주님이 환상중에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이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유는 이 성중에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이 많으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바울이 핍박을 당해도, 고난을 당해도, 참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유는 이 성에 너를 통해서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습니까 그러면 내가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습니다"하고 1년6개월동안 고린도지역에 머물면서 전도해 가지고 고린도교회를 세웁니다.
오늘 우리는 자기 중심으로의 신앙생활 하지 말고, "내가 비록 고달프고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이 원하면 가겠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 가는 것 아닙니다. 십자가의 길,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워도 말씀을 지켜 살아야 여호와 하나님도 그를 지켜 주십니다. 계 3:10에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지켜 살아 여호와 하나님 사랑 받은 사람들은 시121편 말씀을 보니,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나로 실족치 않게 하시되 낮의 해와 밤의 달이 나를 상치 않도록 지키시고 우리가 말씀 지켜 사니 주님이 우리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영혼을 지키시되 지금부터 영원까지 나의 출입을 지킨다"고 시편기자는 노래했습니다.
바울은 전도 명령을 따라서 순종하기 위해 로마를 갑니다. 그런데 로마로 가는 길이 험하고 어려웠습니다. 알렉산드리오라는 배를 타고 276명이 바다를 항해하고 있을 때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출발하면서 바울이 율리오라고 하는 백부장에게 이야기했지요.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적지 않은 큰 어려움이 있을 것같으니 그레데라고 하는 항구에서 과동하고 갑시다. 강행하면 안됩니다. 하자 율리오는 예수장이, 전도인 바울의 말보다는 항해에 도가 터있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강행하다가 광풍을 만납니다. 얼마나 광풍이 거세든지 배가 표류했습니다. 며칠동안 14일동안. 하늘에 해와 달과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고 살 소망이 끊어졌습니다. 음식을 먹지 못한지 열나흘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날 저녁에 바울이 기도하는 데 또 주님이 나타나셔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은 다 네 손에 붙였다. 배는 깨어지되 사람은 하나도 죽지 않을 것이다. " 바울이 얼마나 기뻤든지 실망과 절망감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여러분, 내가 믿는 주님이 어젯밤에 내게 말씀하셨는데 여러분 한 분도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될 줄 믿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전에는 예수한테 미친 사람으로 비웃었던 사람들이 선장과 선주의 말만 들었던 백부장이 바울의 말을 듣기 시작합니다. 살 소망이 있다니까. 그런데 날이 새고 보니 스로디스라고 하는 바다에 있는 모래섬에 배가 걸렸습니다. 눈을 들어보니 그 옆에 조그만 섬이 있는데, 그 섬은 멜리데라고 하는 섬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사공들과 함께 얘기를 해서, 백부장과 함께 합의해서 이 사람들 헤엄치게 합시다. 헤엄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판자와 기구를 타고 건너게 합시다. 그래서 배는 깨어졌지만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때는 겨울인지라 날이 추우니 그 원주민 토인들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나온 사람들을 위해서 모닥불을 피워 주는데 바울이 봉사정신이 뛰어납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나뭇단 하나를 들고 오는데 나뭇단속에서 독사가 나와서 물었습니다. 그 독사에 물린 사람이 거의다 죽었거든요. 사람들이 근심 어린 눈으로 바울을 바라봅니다. "아유, 저 사람이 바다에서는 구원을 받았는데 육지에 나와서 죽구만" 죽을 줄 알고,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독사에 물리면, 몸이 퉁퉁 붓든지 아니면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죽든지 해야 되는데 온 몸이 붓지도 않고 쓰러지지도 않고 생생합니다. 저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신인가봐! 그때에 그 섬에 멜리데 주민의 추장이 있었습니다. 고글리오라고 하는 추장이 있었는데 그의 장인 어른이 열병과 이질병을 함께 앓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찾아가서 붙들고 기도하고 안수하니 나았습니다. 온 성에 소문이 퍼졌습니다. 많은 환자가 몰려들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면 귀신이 떠나가고 병자가 나았습니다. 그러니 "고맙습니다"하고 먹을 양식 가져오지, "고맙습니다"하고 입을 옷 가져오지, 삼개월동안 사역을 했는데 사람들이 도와주어서 부서진 배를 수리했습니다. 그리고 로마까지 가는데 필요한 식량을 사람들이 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에 갑니다. 그리고 전도자가 됩니다.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거역하면 풍랑 만난다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풍랑 만나도 기도하는 사람이 있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있으면 여호와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모든 사람을 맡긴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전도를 위하여 희생을 각오하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켜주는 것이니 환난을 당할 수는 있으나 죽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되심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르치는 교훈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는 대로 살면 여호와 하나님이 책임져 준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 기뻐하는 삶을 살아서 험한 죄악 세상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도우시고 보호하시고 지켜주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문제는 영혼사랑이 우리 가슴속에 불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전도하셨고, 죄인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그 사랑을 내가 경험했다면 그 사랑을 이제는 실천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뜨거운 구령에 대한 열정을 아무도 끊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확신했습니다. "만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주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는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 능히 여호와 하나님이 택하신 이를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기근이나 핍박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죄악을 이깁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환경을 이깁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이 악한 자의 방해를 이길 수 있고, 박해자들을 이길 수 있고, 훼방자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바울은 자기의 경험담을 말하며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의 일 하라고 권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계명이 뭐냐면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사랑해야할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요일 3:16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그랬습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하였습니다.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만민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방법,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종노릇하라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주인 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 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무슨 일을 해야 됩니까" "너는 율법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 "네, 여호와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 "네 대답이 옳도다. 가서 네 말대로 하면 된다. " 그러면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할 이웃은 누구입니까 내가 일러주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느니라. 그런데 강도가 귀중품 다 뺏어가고 너무 많이 때려서 거반 죽게 되었는데 마침 제사장이 그 길로 지나가다가 그를 보긴 했지만 모른 체 하고 지나가 버리고 레위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 하나가 그를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천으로 싸매고 그를 짐승에 태워서 주막으로 데려가서 치료해주고, 떠날 때 가지고 있던 돈 다 내놨다. 그리고 주인에게 부탁하기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을 것이니 이 사람 끝까지 돌봐주십시오. 하고 떠났느니라. 네 의견에는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겠느냐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 네 대답이 옳도다. 너도 가서 그와 같이 하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는 것으로 자랑하지 마십시오. 너도 그와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자식은 상전이라는 말이 있지요. 자식을 사랑해서 부모님이 종노릇할 때 쓰는 말입니다. 왜 자식을 위해서 부모가 종처럼 삽니까 사랑하니까요. 사랑하는 내 아들, 고삼인데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에 들어가게 해야지 하고 아들보다 더 먼저 일어나서 조반을 짓습니다. 학교 갔다 돌아와 구린내 나는 양말 벗어 던지면 빨래해줍니다. 종이지요. 그게. 왜 기쁨으로 종노릇합니까 사랑하니까. 사랑하면 종이 되는 거예요. 왜 장로님들이 교회 와서 주차 봉사합니까 왜 권사님들이 식당에 가서 봉사합니까 새가족을 사랑하니까, 사랑하면 수고를 아끼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갈 5:13에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그랬습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사랑하면 강권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내 자식 병들어 누워 있으면 약이 써도 강권해서 먹입니다. 살려야 하니까. 우리 가족 중에 믿지 않는 불신자가 있으면 강권하여 예수 믿게 해야 됩니다. 사랑한다면,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됩니다. 알콜중독자, 담배골초, 마약중독자는 자기 의지로 그걸 끊지 못합니다. 우리가 기도로 도와야 합니다. 사랑으로 도와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사랑의 기도, 믿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완악한 마음, 강팍한 마음도 녹아지게 할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끌어내지 못한 영혼을 여호와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라도 끌어낼 줄 믿습니다. 그게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조카가 죄악의 도시, 쾌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을 붙들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건져냈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영혼구원이 보이지 않는 주님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전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 주고, 벗은 사람에게 입을 옷을 주는 것은 기독교의 목적이 아닙니다. 기독교인 아니라도 그런 일 많이들 합니다. 그것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줌으로 예수에 대하여 마음을 열고 예수를 믿게 하기 위하여 돕는 것입니다. 전도가 제일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의 가치는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최대의 관심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는 세계입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과 삶이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으면 이미 천국을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한 사람도 멸망받지 않기를 원합니다. 모든 사람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육신이 잘 되면, 그 다음에 예수 믿어주겠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사람이 곤고한 가운데 빠질 때 여호와 하나님 찾지, 편안하면 여호와 하나님 안 찾습니다. 어려움 당할 때, 주여! 찾다가 편안하면 나여 하고 다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에 대해서 전도의 대상을 물색할 때 편안한 사람보다 고난당한 사람을 우선순위로 찾아야 됩니다. 고난을 당하면 사람의 마음이 약해지잖아요. 물에 빠져서 떠내려가는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리적 작용이 있어요.
요즘 우리 교회에 다는 아니지만 몇몇 사람이 전도의 열을 올리고 있어요. 그런 사람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일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일감을 주시는데 전도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전도의 대상을 만나게 하시는데 어제 그제 금요일 철야 전에 저희교회에 천주교회에 나가는 부부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형은 교회를 정하지 않고 이곳저곳을 다니는 내외분도 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맏형은 우리 교회의 집사님이십니다. 삼형제 부부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왜 온줄 아십니까 그 막내 형제의 아들, 천주교 나가는 그 형제의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인데 풍선을 불다가 어떻게 실수해서 풍선 그 고무가 속으로 들어가서 기도를 막았어요. 그래서 질식을 했어요. 그래서 거의 숨이 끊어진 아이를 데리고 오산당병원의 응급실에 갔는데 심장만 뛰고 이미 뇌는 활동이 그쳤어. 뇌사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의학으로는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고 그의 맏형 되신 분이 관악교회의 최낙중 목사님에게 안수를 받으면 어떻겠느냐 제안을 하니까, 믿음 없는 두 형제가 그러면 가보자! 해서 저를 찾아 왔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저의 안수 기도가 문제가 아니고, 여러분들이 믿음을 바르게 가져야 됩니다. 천주교 나가는 그 분에게 물었습니다. 형제여, 예수님을 만나본 경험이 있습니까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본 경험이 있습니까 아니요. 이번 기회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그러니 삼형제 내외가 이제부터 기도하십시오. 내가 철야기도를 인도하고 새벽1시에 제가 병원에 가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병원에 갔습니다. 가서 먼저 담당의사를 만났습니다. 그랬더니 당직자 의사님이 바로 그 아이가 처음 응급실에 왔을 때 손을 봤던 그 의사선생이예요. 이제 끝났습니다. 이제 산소호흡기만 빼면 그냥 끝납니다. 만일 아이가 소생한다 하더라도 평생 식물인간으로 살아야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상담을 끝내고 누워있는 아이를 붙들고 기도하고 나와서 그 삼형제 부부를 복도에 불러놓고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마지막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금식기도입니다. 믿음이 비록 없지만 죽은 자를 살리신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직장에 나가지도 말고 삼일동안 교회에 머물면서 금식할 수 있겠습니까 목사님이 하라면 해야지요. 아니, 여러분이 믿음을 가지고 하시란 말입니다. 어제 토요일부터 금식에 들어가서 어젯밤에 삼형제 부부가 철야를 하고 아침 7시 1부예배를 드리고 너무 피곤하니까 쉬러 갔습니다. 저녁 예배에 또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천주교 나가는 그 부부, 또 방황하던 그 부부, 두 가족이 오늘 1부 예배에 등록하고 갔습니다. 김원식이라는 아이입니다. 저는 오늘 2부예배때에도 그 아이를 위해서 통성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세 번씩 그 아이를 위해서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한계상황에서 인간의 마지막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새롭게 일하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기적을 믿습니다. 우리는 영혼구원을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압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는 그 사랑을 실천할 때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우는 자,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할 줄 아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울어도 안되고, 참아도 안되고, 죽어도 할 수 없는 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사하시고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권세가 우리와 함께 한다면 불가능은 없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희생양 되기 위해서 오셨고,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죄는 사람들이 지었는데 죄에 대한 형벌은 예수님이 대신 받아 주셨으니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큰 기쁜 소식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보배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 구원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그랬습니다. 복음전도가 무엇입니까 성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이뤄놓은 이 대속의 사건을 만민에게 알려 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예수를 이 시간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당신도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고 구원을 받습니다. 하고 전해 주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들음은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 지구촌에 살고 있는 천하만민 가운데 복음을 듣지 않고도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유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천하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황인종에게도 전도하고, 백인종에게도, 흑인에게도 전도하고 아세아인에게 그리고 유럽인에게 미주지역에, 아프리카의 저 오지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난한 자에게 부자에게, 지식인에게 무식한 사람에게 유명한 사람에게 무명한 사람에게 남자와 여자에게 어른과 아이에게, 노인에게,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모든 사람에게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젯밤 새벽 1시쯤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 미주지역이 지진이 나고 자기가 거처하는 아파트가 창문이 흔들리고 깨졌다고 이런 속보를 듣고 혹시 놀래셨는가 했었는데 이제는 잔잔하니까 안심하시라는 전화를 받았어요. 여러분, 이 지구촌에 지금 마 24장에 예언되어있는 천재지변이, 지진이 계속 납니다. 사람이 아무리 과학을 발달시키고, 인류문화를 발전시켜 나간다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한번 흔들어 버리면 일장의 춘몽이요. 하룻밤에 끝나는 거요.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무릎을 꿇고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여호와 하나님 명령하면 따르겠나이다. 그리고 가치 있고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을 하다가 주님이 오라 한날 가겠나이다 하고 종말론적 신앙관을 가질 때, 우리가 신앙생활 바로 할 수 있습니다. 벧후 3:9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주님 기뻐하는 영혼구원을 위해서 힘쓰고 애쓰다 보면 주님의 손길이 삶의 현장에 나타나셔서 위태한 데는 면케 하시고 악한 자의 도전이 있을 때는 막아주시고, 인간의 힘으로 부족할 때는 채워주시니 그와 같은 능력과 권세는 주님 말씀 순종할 때 삶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임을 기억하고 저희들이 나가서 복음 전파할 때 주께서 함께 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확실히 증거하시니라고 20절에 말씀하셨으니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도 이와 같은 주님의 능한 손길이 항상 함께 하는 전도적 삶이 이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 천국을 가기 직전 마지막 유언의 말씀은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을 믿고 순종하면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어 기도하면 나으리라. " 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나가서 전도할 때 제자들과 주의 손이 함께 할 때 허다한 무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면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직장 생활을 할 때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직장문화가 술문화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제할 때, 비즈니스를 핑계로 어떤 공식적인 업무에 있어서 거의 술자리로 이어질 경우가 많습니다. 어쩔 때는 강제로 끌려가기도 하고, 2차, 3차, 폭음, 그것이 윤락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술문화속에서 살아가는 남자들의 직장 생활, 참 부담이 큽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76%가 원만한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술을 반드시 마셔야 한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응답자의 81%는 나는 주1회 이상 술을 마신다, 나의 평균 한달 술값은 5만원이상이다,
술로 인해서 건강이 염려된다 48%, 술로 인해서 가정의 문제가 생겼다 21%로 나와있어요. 자 이러한 술문화속에서 살아가는 직장인들은 두가지 성향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현실 도피형, 하나는 타협형, 현실도피형은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술마시지 않습니다. 하고 회사에서 돼지 머리 잘라놓고 제사 지내는 것 나 못합니다. " 그 사람은 회사에서 왕따를 당합니다. 또 현실타협형은 주위 사람에게 자기가 교회 다니는 것을 가능하면 숨깁니다. 그래서 주일에 친목회가 있다 하면 가고, 회식이 있다 하면 술도 한잔씩 나누고, 이 사람은 인간관계는 원만할 지 모르지만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상실한 사람이니, 맛잃은 소금입니다. 여러분은 왕따가 될지라도 믿음을 지키겠습니까, 아니면 원만한 인간관계와 사회성을 위해서 적당히 한잔씩 마셔가면서 주일도 빠져가면서 믿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 자유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로 선택한 그 결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과 심판으로 결정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술문화로 이어지는 직장생활에서 승리할 수 있겠느냐 기독교인으로서의 사명이 있는데 업무능력에 있어서, 업무의욕에 있어서, 업무태도에 있어서 상대방보다 탁월성을 보여야 됩니다. 잠 22:29에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그랬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를 고용해주는 기업체의 고용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과 동료를 압도할 수 있는 당당한 실력과 책임의식이 분명하여 역시 예수 믿는 사람은 다르다, 도덕과 윤리적으로 흠이 없고, 책임감이 투철하며, 회사를 아끼고 사랑함이 뛰어나고, 그 사람이 이 회사에 들어온 이후에 회사가 잘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기독교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가 욕을 먹고, 예수 믿는 사람이 별볼일 없다고 그러고 전도의 문은 막힙니다.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며, 자기가 복되기 위해서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인간의 행복은 사랑의 대상이 있을 때,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 행복해 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전능하신 주님이 날 사랑한다는 이 사랑의 의식이 나의 삶에 윤활유가 되고, 용기가 되고, 기회가 되고, 담력을 얻게 합니다. 또한 우리가 왜 행복합니까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우리는 행복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감정이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부럽지도 않을 것입니다.
누구도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랑 실천하는 사람은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요일 5:18에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사랑실천중에 가장 귀한 것은 영혼구원을 위한 수고입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들 중에 최대의 우선순위, 가장 우선순위 영혼구원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유언이 전도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 다 잘해도 전도 못하면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명심하십시오.
바울이 이 비밀을 깨닫고,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 여호와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일이 영혼구원이라면 나는 이 일을 위해서 목숨을 걸겠다. 그렇게 하고 그는 전도인으로 나섭니다. 그러나 전도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한번은 고린도 지역에 가서 전도를 하는데 예수 믿는 일을 반대하는 유대교도들이 얼마나 핍박을 하고 훼방하고, 방해를 하고, 대적을 하는지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마10장에서 전도방법을 가르쳐 주실 때, 이 세상에서 핍박을 하면 동네 밖에 나와서 먼지를 털어 버리고 이 동네 아니면 전도할 데가 없겠나, 가자 그리고 다른 동네로 가려고 하는데 그날밤 기도중에 주님이 환상중에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이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유는 이 성중에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이 많으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바울이 핍박을 당해도, 고난을 당해도, 참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유는 이 성에 너를 통해서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습니까 그러면 내가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습니다"하고 1년6개월동안 고린도지역에 머물면서 전도해 가지고 고린도교회를 세웁니다.
오늘 우리는 자기 중심으로의 신앙생활 하지 말고, "내가 비록 고달프고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이 원하면 가겠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 가는 것 아닙니다. 십자가의 길,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워도 말씀을 지켜 살아야 여호와 하나님도 그를 지켜 주십니다. 계 3:10에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지켜 살아 여호와 하나님 사랑 받은 사람들은 시121편 말씀을 보니,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나로 실족치 않게 하시되 낮의 해와 밤의 달이 나를 상치 않도록 지키시고 우리가 말씀 지켜 사니 주님이 우리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영혼을 지키시되 지금부터 영원까지 나의 출입을 지킨다"고 시편기자는 노래했습니다.
바울은 전도 명령을 따라서 순종하기 위해 로마를 갑니다. 그런데 로마로 가는 길이 험하고 어려웠습니다. 알렉산드리오라는 배를 타고 276명이 바다를 항해하고 있을 때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출발하면서 바울이 율리오라고 하는 백부장에게 이야기했지요.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적지 않은 큰 어려움이 있을 것같으니 그레데라고 하는 항구에서 과동하고 갑시다. 강행하면 안됩니다. 하자 율리오는 예수장이, 전도인 바울의 말보다는 항해에 도가 터있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강행하다가 광풍을 만납니다. 얼마나 광풍이 거세든지 배가 표류했습니다. 며칠동안 14일동안. 하늘에 해와 달과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고 살 소망이 끊어졌습니다. 음식을 먹지 못한지 열나흘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날 저녁에 바울이 기도하는 데 또 주님이 나타나셔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은 다 네 손에 붙였다. 배는 깨어지되 사람은 하나도 죽지 않을 것이다. " 바울이 얼마나 기뻤든지 실망과 절망감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여러분, 내가 믿는 주님이 어젯밤에 내게 말씀하셨는데 여러분 한 분도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될 줄 믿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전에는 예수한테 미친 사람으로 비웃었던 사람들이 선장과 선주의 말만 들었던 백부장이 바울의 말을 듣기 시작합니다. 살 소망이 있다니까. 그런데 날이 새고 보니 스로디스라고 하는 바다에 있는 모래섬에 배가 걸렸습니다. 눈을 들어보니 그 옆에 조그만 섬이 있는데, 그 섬은 멜리데라고 하는 섬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사공들과 함께 얘기를 해서, 백부장과 함께 합의해서 이 사람들 헤엄치게 합시다. 헤엄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판자와 기구를 타고 건너게 합시다. 그래서 배는 깨어졌지만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때는 겨울인지라 날이 추우니 그 원주민 토인들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나온 사람들을 위해서 모닥불을 피워 주는데 바울이 봉사정신이 뛰어납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나뭇단 하나를 들고 오는데 나뭇단속에서 독사가 나와서 물었습니다. 그 독사에 물린 사람이 거의다 죽었거든요. 사람들이 근심 어린 눈으로 바울을 바라봅니다. "아유, 저 사람이 바다에서는 구원을 받았는데 육지에 나와서 죽구만" 죽을 줄 알고,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독사에 물리면, 몸이 퉁퉁 붓든지 아니면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죽든지 해야 되는데 온 몸이 붓지도 않고 쓰러지지도 않고 생생합니다. 저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신인가봐! 그때에 그 섬에 멜리데 주민의 추장이 있었습니다. 고글리오라고 하는 추장이 있었는데 그의 장인 어른이 열병과 이질병을 함께 앓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찾아가서 붙들고 기도하고 안수하니 나았습니다. 온 성에 소문이 퍼졌습니다. 많은 환자가 몰려들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면 귀신이 떠나가고 병자가 나았습니다. 그러니 "고맙습니다"하고 먹을 양식 가져오지, "고맙습니다"하고 입을 옷 가져오지, 삼개월동안 사역을 했는데 사람들이 도와주어서 부서진 배를 수리했습니다. 그리고 로마까지 가는데 필요한 식량을 사람들이 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에 갑니다. 그리고 전도자가 됩니다.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거역하면 풍랑 만난다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풍랑 만나도 기도하는 사람이 있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있으면 여호와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모든 사람을 맡긴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전도를 위하여 희생을 각오하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켜주는 것이니 환난을 당할 수는 있으나 죽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되심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르치는 교훈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는 대로 살면 여호와 하나님이 책임져 준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 기뻐하는 삶을 살아서 험한 죄악 세상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도우시고 보호하시고 지켜주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문제는 영혼사랑이 우리 가슴속에 불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전도하셨고, 죄인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그 사랑을 내가 경험했다면 그 사랑을 이제는 실천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뜨거운 구령에 대한 열정을 아무도 끊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확신했습니다. "만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주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는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 능히 여호와 하나님이 택하신 이를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기근이나 핍박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죄악을 이깁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환경을 이깁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이 악한 자의 방해를 이길 수 있고, 박해자들을 이길 수 있고, 훼방자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바울은 자기의 경험담을 말하며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의 일 하라고 권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계명이 뭐냐면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사랑해야할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요일 3:16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그랬습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하였습니다.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만민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방법,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종노릇하라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주인 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 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무슨 일을 해야 됩니까" "너는 율법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 "네, 여호와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 "네 대답이 옳도다. 가서 네 말대로 하면 된다. " 그러면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할 이웃은 누구입니까 내가 일러주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느니라. 그런데 강도가 귀중품 다 뺏어가고 너무 많이 때려서 거반 죽게 되었는데 마침 제사장이 그 길로 지나가다가 그를 보긴 했지만 모른 체 하고 지나가 버리고 레위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 하나가 그를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천으로 싸매고 그를 짐승에 태워서 주막으로 데려가서 치료해주고, 떠날 때 가지고 있던 돈 다 내놨다. 그리고 주인에게 부탁하기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을 것이니 이 사람 끝까지 돌봐주십시오. 하고 떠났느니라. 네 의견에는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겠느냐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 네 대답이 옳도다. 너도 가서 그와 같이 하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는 것으로 자랑하지 마십시오. 너도 그와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자식은 상전이라는 말이 있지요. 자식을 사랑해서 부모님이 종노릇할 때 쓰는 말입니다. 왜 자식을 위해서 부모가 종처럼 삽니까 사랑하니까요. 사랑하는 내 아들, 고삼인데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에 들어가게 해야지 하고 아들보다 더 먼저 일어나서 조반을 짓습니다. 학교 갔다 돌아와 구린내 나는 양말 벗어 던지면 빨래해줍니다. 종이지요. 그게. 왜 기쁨으로 종노릇합니까 사랑하니까. 사랑하면 종이 되는 거예요. 왜 장로님들이 교회 와서 주차 봉사합니까 왜 권사님들이 식당에 가서 봉사합니까 새가족을 사랑하니까, 사랑하면 수고를 아끼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갈 5:13에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그랬습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사랑하면 강권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내 자식 병들어 누워 있으면 약이 써도 강권해서 먹입니다. 살려야 하니까. 우리 가족 중에 믿지 않는 불신자가 있으면 강권하여 예수 믿게 해야 됩니다. 사랑한다면,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됩니다. 알콜중독자, 담배골초, 마약중독자는 자기 의지로 그걸 끊지 못합니다. 우리가 기도로 도와야 합니다. 사랑으로 도와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사랑의 기도, 믿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완악한 마음, 강팍한 마음도 녹아지게 할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끌어내지 못한 영혼을 여호와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라도 끌어낼 줄 믿습니다. 그게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조카가 죄악의 도시, 쾌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을 붙들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건져냈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영혼구원이 보이지 않는 주님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전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 주고, 벗은 사람에게 입을 옷을 주는 것은 기독교의 목적이 아닙니다. 기독교인 아니라도 그런 일 많이들 합니다. 그것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줌으로 예수에 대하여 마음을 열고 예수를 믿게 하기 위하여 돕는 것입니다. 전도가 제일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의 가치는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최대의 관심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는 세계입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과 삶이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으면 이미 천국을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한 사람도 멸망받지 않기를 원합니다. 모든 사람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육신이 잘 되면, 그 다음에 예수 믿어주겠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사람이 곤고한 가운데 빠질 때 여호와 하나님 찾지, 편안하면 여호와 하나님 안 찾습니다. 어려움 당할 때, 주여! 찾다가 편안하면 나여 하고 다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에 대해서 전도의 대상을 물색할 때 편안한 사람보다 고난당한 사람을 우선순위로 찾아야 됩니다. 고난을 당하면 사람의 마음이 약해지잖아요. 물에 빠져서 떠내려가는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리적 작용이 있어요.
요즘 우리 교회에 다는 아니지만 몇몇 사람이 전도의 열을 올리고 있어요. 그런 사람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일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일감을 주시는데 전도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전도의 대상을 만나게 하시는데 어제 그제 금요일 철야 전에 저희교회에 천주교회에 나가는 부부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형은 교회를 정하지 않고 이곳저곳을 다니는 내외분도 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맏형은 우리 교회의 집사님이십니다. 삼형제 부부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왜 온줄 아십니까 그 막내 형제의 아들, 천주교 나가는 그 형제의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인데 풍선을 불다가 어떻게 실수해서 풍선 그 고무가 속으로 들어가서 기도를 막았어요. 그래서 질식을 했어요. 그래서 거의 숨이 끊어진 아이를 데리고 오산당병원의 응급실에 갔는데 심장만 뛰고 이미 뇌는 활동이 그쳤어. 뇌사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의학으로는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고 그의 맏형 되신 분이 관악교회의 최낙중 목사님에게 안수를 받으면 어떻겠느냐 제안을 하니까, 믿음 없는 두 형제가 그러면 가보자! 해서 저를 찾아 왔어요. 제가 말했습니다. 저의 안수 기도가 문제가 아니고, 여러분들이 믿음을 바르게 가져야 됩니다. 천주교 나가는 그 분에게 물었습니다. 형제여, 예수님을 만나본 경험이 있습니까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본 경험이 있습니까 아니요. 이번 기회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그러니 삼형제 내외가 이제부터 기도하십시오. 내가 철야기도를 인도하고 새벽1시에 제가 병원에 가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병원에 갔습니다. 가서 먼저 담당의사를 만났습니다. 그랬더니 당직자 의사님이 바로 그 아이가 처음 응급실에 왔을 때 손을 봤던 그 의사선생이예요. 이제 끝났습니다. 이제 산소호흡기만 빼면 그냥 끝납니다. 만일 아이가 소생한다 하더라도 평생 식물인간으로 살아야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상담을 끝내고 누워있는 아이를 붙들고 기도하고 나와서 그 삼형제 부부를 복도에 불러놓고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마지막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금식기도입니다. 믿음이 비록 없지만 죽은 자를 살리신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직장에 나가지도 말고 삼일동안 교회에 머물면서 금식할 수 있겠습니까 목사님이 하라면 해야지요. 아니, 여러분이 믿음을 가지고 하시란 말입니다. 어제 토요일부터 금식에 들어가서 어젯밤에 삼형제 부부가 철야를 하고 아침 7시 1부예배를 드리고 너무 피곤하니까 쉬러 갔습니다. 저녁 예배에 또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천주교 나가는 그 부부, 또 방황하던 그 부부, 두 가족이 오늘 1부 예배에 등록하고 갔습니다. 김원식이라는 아이입니다. 저는 오늘 2부예배때에도 그 아이를 위해서 통성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세 번씩 그 아이를 위해서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한계상황에서 인간의 마지막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새롭게 일하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기적을 믿습니다. 우리는 영혼구원을 위한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압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는 그 사랑을 실천할 때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우는 자,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할 줄 아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울어도 안되고, 참아도 안되고, 죽어도 할 수 없는 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사하시고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권세가 우리와 함께 한다면 불가능은 없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희생양 되기 위해서 오셨고,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죄는 사람들이 지었는데 죄에 대한 형벌은 예수님이 대신 받아 주셨으니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큰 기쁜 소식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보배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 구원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그랬습니다. 복음전도가 무엇입니까 성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이뤄놓은 이 대속의 사건을 만민에게 알려 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예수를 이 시간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당신도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고 구원을 받습니다. 하고 전해 주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들음은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 지구촌에 살고 있는 천하만민 가운데 복음을 듣지 않고도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유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천하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황인종에게도 전도하고, 백인종에게도, 흑인에게도 전도하고 아세아인에게 그리고 유럽인에게 미주지역에, 아프리카의 저 오지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난한 자에게 부자에게, 지식인에게 무식한 사람에게 유명한 사람에게 무명한 사람에게 남자와 여자에게 어른과 아이에게, 노인에게,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모든 사람에게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젯밤 새벽 1시쯤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 미주지역이 지진이 나고 자기가 거처하는 아파트가 창문이 흔들리고 깨졌다고 이런 속보를 듣고 혹시 놀래셨는가 했었는데 이제는 잔잔하니까 안심하시라는 전화를 받았어요. 여러분, 이 지구촌에 지금 마 24장에 예언되어있는 천재지변이, 지진이 계속 납니다. 사람이 아무리 과학을 발달시키고, 인류문화를 발전시켜 나간다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한번 흔들어 버리면 일장의 춘몽이요. 하룻밤에 끝나는 거요.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무릎을 꿇고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여호와 하나님 명령하면 따르겠나이다. 그리고 가치 있고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을 하다가 주님이 오라 한날 가겠나이다 하고 종말론적 신앙관을 가질 때, 우리가 신앙생활 바로 할 수 있습니다. 벧후 3:9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주님 기뻐하는 영혼구원을 위해서 힘쓰고 애쓰다 보면 주님의 손길이 삶의 현장에 나타나셔서 위태한 데는 면케 하시고 악한 자의 도전이 있을 때는 막아주시고, 인간의 힘으로 부족할 때는 채워주시니 그와 같은 능력과 권세는 주님 말씀 순종할 때 삶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임을 기억하고 저희들이 나가서 복음 전파할 때 주께서 함께 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확실히 증거하시니라고 20절에 말씀하셨으니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도 이와 같은 주님의 능한 손길이 항상 함께 하는 전도적 삶이 이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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