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예수 세계화 운동
본문
한 세기의 복음 선교를 빛냈던 리빙스톤(David Levingstone)은 확 실히 위대한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그는 한평생 아프리카 영혼을 위하 여 살다가 거기서 죽었습니다. 숨진 그의 시신은 간신히 아프리카에서 그의 조국인 영국으로 옮겨져 웨스 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때 영국의 수많은 군중들은 그 의 빛난 생애에 경의를 표하기 위하 여 자원해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 니다. 그리고 인파를 이루어 무언의 행진을 하였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혼자서 가슴을 치면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그렇 게도 슬피 울고 있는 그 노인은 누 구였던가 그 슬픔의 눈물이 리빙스 톤을 향한 애도였던가
그 노인은 바로 리빙스톤과 영국 에서 함께 있을 때 가장 절친한 친 구였습니다. 그는 리빙스톤이 아프 리카에 선교하러 가겠다고 나섰을 때, 화를 내면서 리빙스톤에게 미쳤 다고 욕질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동안에 그는 영국에 남아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에 친구 리빙스톤은 아프리카의 구령운 동에 결실이 많아 영의 부자가 되었 습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친구 리빙 스톤은 모든 영국 사람들에게 큰사 랑을 받고 높이, 널리 알려지고 또 그의 활동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부자로 평안하 게 살면서도 아무런 영향력이나 이 름도 없이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아 오던 두 사람 중에서 리빙스톤이 먼 저 죽은 시체가 되어 조국으로 돌아 오던 그날에, 영국의 군중들이 그의 장례행렬 앞으로 운집하는 장면을 보고 그 친구는 크게 슬퍼하며 울었 던 것입니다.
그 울음의 내용은 '나는 정말 소 망없는 세상을 살았구나!' 하는 자 폭감과 좌절감과 허탈감 때문이었습 니다. 자신과 세상의 안일만을 위해 살아왔던 자신의 삶이 얼마나 낭비 적 삶이었던가 내용 없는 삶이었던 가 무의미의 삶이었던가를 자책하 는 울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경향인은 이와 같은 한 노인의 울음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 이유 는 우리에게는 333운동과 777운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받은 메시지의 제목 '333운동과 777운동'은 경향인이 받 은 예수 세계화 운동의 숫자적 표어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21세기를 위 대하신 예수 세기로 만들기 위한 우 리 경향인의 삶의 모토(motto)입니다.
1 333운동은 여호와 하나님이 뜻하시 는 개인 구령운동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3'이라고 하는 수 (數)는 '수' 그 자체가 지닌 의미보 다는 상징적,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예컨대 이사야 6장 3절에 …거룩 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 호와여 하는 경우 '거룩하다'라는 말이 세 번 나오는데, 이는 거룩하 신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3'의 수였습니다.
그것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 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받은 매년 세 번의 절기나, 또 3년 된 희 생제물을 말할 때의 수였습니다(출 23:14-17).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제사장들의 반복되는 3중 축복 의 수와 관계하고 있음을 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여호와는…, …여호와는 원하 노라고 하는 경우입니다(민 6:23-27).
신약에 나타난 이 '3'의 수는 예 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때 나타난 삼위일체의 계 시적 수와 관계되었습니다(마 3:16-17). 그것은 또한 예수께서 3일 만에 다시 사신 승리의 부활과 관계 된 수이기도 합니다(고전 15:4). 더 욱이 그의 위대한 지상(至上) 선교 명령 중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 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신 사실에서 다시 삼위 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계시함에 표현되었습 니다(마 28:19). 마침내 이것은 신약 교회에 허락된 사도적 축도에서 나 타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 혜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 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 다함에서 삼위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표현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3'은 사실상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나타내는 수요,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구원운 동과 관계된 영적 상징의 수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경향의 시대를 맞 이하면서(1994년) 333운동이라고 하 는 숫자적 표기를 사용했습니다. 그 것은 사실상 우리 경향교회가 기도 하고 바라는 개인구령운동의 한 전 략상의 표현이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3년 안에 새 성전 신축을 완료하게 하시고, 하나 님께서 새 성정에 입당한지 3년 안 에 3만명 이상의 그리스도인을 경향 에 축복해 주옵소서!"
하는 기도제 목이었습니다.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첫 번 째 단계는 태신자 갖기 운동 곧 전 도대상자를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것, 두 번째 단계는 해산신자 갖기 운동 곧 직접적으로 전도하여 오는 것, 세 번째 단계는 양육신자 갖기 운동 곧 학습인, 세례인을 만드는 것, 네 번째 단계는 제자신자 갖기 운동 곧 그리스도를 따르고 헌신하 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첫 번째 기도는 그대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3년 안에 새 성 전을 완공하고 입당하였습니다. 이 제 입당 원년(1년)을 보내고 2년째 를 맞이하였습니다. 그 다음 기도 응답을 체험하는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2 777운동은 7대 과제 성취운 동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7'의 수는 거룩의 수입니다. 특별히 완전(完全), 총체, 충만, 성취 등을 나타내는 경우들에 쓰였습니다.
예컨대 제7일(안식일), 제7년(안 식년), 희년(7×7년 다음해), 일곱 가지 촛대, 일곱 번 뿌린 피(레 4:6), 번제 양 일곱(민 28:11), 70번씩 7번 (마 18:22), 일곱 교회, 일곱 별(계 1:20) 등입니다. 그리고 애굽에 내려 간 야곱의 자손 70인(출 1:5), 예수 께서 파송하신 70문도(눅 10:1) 등 도 있습니다.
위와 같은 영적 배경에서 우리가 받은 7대 과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개인구령운동입니다. 화 급한 전도운동입니다.
둘째는 개척교회 운동입니다. 경 향 1대 당회 어간에 500곳의 개척 교회를 세우는 운동입니다.
셋째는 신학교 운동입니다. 개혁 주의 세계교회 건설을 위한 고려신 학교 운동입니다. 50명 이상의 교수 를 섬기는 운동입니다.
넷째는 세계선교운동입니다. 원 주민 세계 선교를 위하여 경향 1대 당회 어간에 100명의 선교사를 파송 하는 운동입니다.
다섯째는 학원복음화 운동입니다. 우리가 받은 경향학원의 두 학 교(경복여고, 경복여정)를 기독교 명 문교로 육성하는 운동입니다.
여섯째는 기독교 복지 운동입니다. 우리가 받은 성민종합사회복지 관을 통해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 랑을 나누는 운동입니다.
일곱째는 기독교 문화 운동입니다. 예기되는 21세기 문명권내에 TV, 라디오, 인터넷, 신문, 문서 등 의 문화매체를 선용하여 복음을 전 하는 운동입니다.
이 7대 과제를 실천하기 위하여 우리는 경향인의 9대 생활강령을 세 웠습니다.
경향인은 ① 성경을 열심히 읽는 다. ② 주일을 거룩히 지킨다. ③ 십 일조를 온전히 바친다. ④ 설교말씀 을 생활에서 체험한다. ⑤ 기도와 전도에 힘쓴다. ⑥ 고려신학교 후원 회 회원이 된다. ⑦ 경향선교회 회 원이 된다. ⑧ 찬미와 감사로 기쁘 게 생활한다. ⑨ 새성전 헌당을 위 해 생애 최고의 것을 바친다는 것입 니다.
이것은 이제 시작하는 것이 아닙 니다. 이미 4반세기가 훨씬 넘는 여 정 속에서 수많은 축복을 실제로 체 험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의 중대한 소원은 21세기에 우리가 받은 이 시대적 교회의 사명 이 기어이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입 니다.
그래서 777운동의 또 다른 의미 는, 우리는 성취되기까지 기도하면 서 나아간다, 성취되기까지 낙심하 지 아니한다, 성취되기까지 인내하 고 나아간다, 성취되기까지 믿음에 서 믿음으로 나아간다는 우리 신· 망·애의 고백적 소원의 표시입니다. 그것이 777운동입니다.
성경 중에 777운동의 실례가 있 습니다.
아람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이 이 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 앞에 문둥 병을 고치러 왔을 때의 일입니다. 선지자 엘리사는 그의 사자를 나아 만에게 보내면서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하였습니다(왕하 5:10).
정말 문둥병에서 고침 받는다고 하는 소망의 소식이요, 복음의 소식 이요, 축복의 소식이었습니다. 그러 나 나아만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분 노하면서 물러가려 하였습니다. 그 것은 그가 생각했던 대로 선지자가 자기에게 나와서 예를 행하고, 그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 쳐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결국 그는 그 하인의 권 유를 받고 요단강에 내려가서 하나 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일곱 번 몸을 물에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 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 습니다(왕하 5:14).
일곱 번이었습니다. 점점 나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곱 번만에 나 았습니다. 그것은 요단강물 자체에 문둥병을 고치는 약효가 없었음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의 사람의 말씀대로 되어짐을(왕 하 5:14)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일곱 번만에 나았습니다. 완전신 종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런 경 우 일곱 번이란 완전성취의 내용을 알려줍니다. 완전응답을 보여 줍니다.
저 유명한 진리의 투사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이 주도하는 바알과의 싸움에서 통쾌하게 승리하였습니다. 하늘의 여호와 하나님이 송아지의 각을 쪼 개어 놓은 엘리야의 제단에 불로써 응답하였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의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심이 입증되었습니다. 엘리야 자신이 참 선지자임도 백성들 앞에서 입증되었습니다. 백 성들의 마음이 바알에게서 여호와 하나님께 로 향하여졌습니다. 그리고 바알의 선지자는 기손시내에서 죽임을 당하 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끝난 전쟁은 아니었 습니다. 그 이유는 전쟁 승리의 결 과 온 천지가 기다리는 비가 와야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이미 엘 리야는 큰비의 소리를 듣고 있었습 니다. 물론 믿음으로 들은 빗소리였 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갈멜산 꼭 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무릎 을 꿇고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 얼 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 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환에게 올라가 바다 편을 보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돌아 온 사환은 바다편 공간에서 아무 것 도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것을 무려 일곱 번이나 반복하였습 니다.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고 하였습니다(왕상 18:41-43).
일곱 번째가 되었을 때 사환은 여태까지 없었던 소식을 가지고 달 려왔습니다.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왕상 18:44). 그 로부터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 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고 큰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왕상 18:45-46). 실로 3년 6개월만에 보는 축복의 단비였습니다(왕상 17:1, 눅 4:25).
이런 경우 일곱 번까지 다시 가 라고 한 사실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 이 올 때까지를 의미합니다. 엘리야 의 마음(심령)에 들려온 큰비의 소 리(왕상 18:41)가 현실로 나타나기 까지 의심이나 낙심이나 좌절을 모 르고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 운동을 가리킵니다. 될 때까지, 성취를 볼 때까지를 '일곱 번'이라는 말로 나타 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777운동은 우리가 받은 복음운동의 사명이 성 취될 때까지 나아가는 신앙운동이 요, 기도운동이요, 실천운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 재미있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 어느 장로님 가정에서 있 었던 일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포만 감을 느끼며 앉아 있는 아버지를 본 아들이
"아버지, 운동 좀 하세요. "라 고 말하였습니다. 그때 그 아버지는
"운동 내 운동 많이 하고 있지. 열 심히, 쉬지 않고 하고 있어. "라고 하 였습니다.
그때 아들은
"아버지, 무슨 운동 을 그렇게 열심히, 많이, 하고 있습 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아 버지의 대답입니다.
"내가 우리 교 회에서 333운동을 하고 있잖아. 그 리고 7대복음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 "라고 하였습니다. 그 소리를 들었던 아들의 마음을 상상해 보십 시오.
참으로 장로다운 아버지의 대답 이었습니다. 333운동, 777운동이 이 미 몸과 마음 아니 삶의 의식 구조 에 인처럼 박혀 있는 일종의 생태적 의식의 발로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 습니까
※ 333운동과 777운동은 예수 세 계화 운동입니다. 이것은 21세기를 받은 우리 경향인들의 삶의 모토 (motto)입니다. 이것은 우리 경향인 의 분명한 자기 존재 의미와 가치와 내용과 목적입니다. 바로 복음 선교 의 목적적 삶입니다.
누가 21세기를 바로 아는 자인 가 누가 21세기를 바로 보는 자인 가 누가 21세기를 받은 자인가
그는 결코 역사의 광장에서 방황 하는 방랑객은 아닙니다. 택자 구원 이라고 하는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 사의 경륜을 받아 일정한 계획과 목 표와 시간을 가지고 움직이는 거룩 한 순례자들이 21세기의 주역입니다.
※ 마지막 세기의 순례자! 복음 선교의 순례자! 종말 선교의 순례 자! 333운동과 777운동의 깃발을 들 고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자손을 찾 는 사명의 순례자! 그들은 분명히 세계를 받은 21세기의 주역이 될 것 입니다. 21세기를 예수와 함께 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 아 멘 -
그때 영국의 수많은 군중들은 그 의 빛난 생애에 경의를 표하기 위하 여 자원해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 니다. 그리고 인파를 이루어 무언의 행진을 하였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혼자서 가슴을 치면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그렇 게도 슬피 울고 있는 그 노인은 누 구였던가 그 슬픔의 눈물이 리빙스 톤을 향한 애도였던가
그 노인은 바로 리빙스톤과 영국 에서 함께 있을 때 가장 절친한 친 구였습니다. 그는 리빙스톤이 아프 리카에 선교하러 가겠다고 나섰을 때, 화를 내면서 리빙스톤에게 미쳤 다고 욕질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동안에 그는 영국에 남아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에 친구 리빙스톤은 아프리카의 구령운 동에 결실이 많아 영의 부자가 되었 습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친구 리빙 스톤은 모든 영국 사람들에게 큰사 랑을 받고 높이, 널리 알려지고 또 그의 활동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부자로 평안하 게 살면서도 아무런 영향력이나 이 름도 없이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아 오던 두 사람 중에서 리빙스톤이 먼 저 죽은 시체가 되어 조국으로 돌아 오던 그날에, 영국의 군중들이 그의 장례행렬 앞으로 운집하는 장면을 보고 그 친구는 크게 슬퍼하며 울었 던 것입니다.
그 울음의 내용은 '나는 정말 소 망없는 세상을 살았구나!' 하는 자 폭감과 좌절감과 허탈감 때문이었습 니다. 자신과 세상의 안일만을 위해 살아왔던 자신의 삶이 얼마나 낭비 적 삶이었던가 내용 없는 삶이었던 가 무의미의 삶이었던가를 자책하 는 울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경향인은 이와 같은 한 노인의 울음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 이유 는 우리에게는 333운동과 777운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받은 메시지의 제목 '333운동과 777운동'은 경향인이 받 은 예수 세계화 운동의 숫자적 표어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21세기를 위 대하신 예수 세기로 만들기 위한 우 리 경향인의 삶의 모토(motto)입니다.
1 333운동은 여호와 하나님이 뜻하시 는 개인 구령운동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3'이라고 하는 수 (數)는 '수' 그 자체가 지닌 의미보 다는 상징적,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예컨대 이사야 6장 3절에 …거룩 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 호와여 하는 경우 '거룩하다'라는 말이 세 번 나오는데, 이는 거룩하 신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3'의 수였습니다.
그것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 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받은 매년 세 번의 절기나, 또 3년 된 희 생제물을 말할 때의 수였습니다(출 23:14-17).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제사장들의 반복되는 3중 축복 의 수와 관계하고 있음을 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여호와는…, …여호와는 원하 노라고 하는 경우입니다(민 6:23-27).
신약에 나타난 이 '3'의 수는 예 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때 나타난 삼위일체의 계 시적 수와 관계되었습니다(마 3:16-17). 그것은 또한 예수께서 3일 만에 다시 사신 승리의 부활과 관계 된 수이기도 합니다(고전 15:4). 더 욱이 그의 위대한 지상(至上) 선교 명령 중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 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신 사실에서 다시 삼위 일체 여호와 하나님을 계시함에 표현되었습 니다(마 28:19). 마침내 이것은 신약 교회에 허락된 사도적 축도에서 나 타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 혜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 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 다함에서 삼위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표현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3'은 사실상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나타내는 수요,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구원운 동과 관계된 영적 상징의 수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경향의 시대를 맞 이하면서(1994년) 333운동이라고 하 는 숫자적 표기를 사용했습니다. 그 것은 사실상 우리 경향교회가 기도 하고 바라는 개인구령운동의 한 전 략상의 표현이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3년 안에 새 성전 신축을 완료하게 하시고, 하나 님께서 새 성정에 입당한지 3년 안 에 3만명 이상의 그리스도인을 경향 에 축복해 주옵소서!"
하는 기도제 목이었습니다.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첫 번 째 단계는 태신자 갖기 운동 곧 전 도대상자를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것, 두 번째 단계는 해산신자 갖기 운동 곧 직접적으로 전도하여 오는 것, 세 번째 단계는 양육신자 갖기 운동 곧 학습인, 세례인을 만드는 것, 네 번째 단계는 제자신자 갖기 운동 곧 그리스도를 따르고 헌신하 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첫 번째 기도는 그대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3년 안에 새 성 전을 완공하고 입당하였습니다. 이 제 입당 원년(1년)을 보내고 2년째 를 맞이하였습니다. 그 다음 기도 응답을 체험하는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2 777운동은 7대 과제 성취운 동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7'의 수는 거룩의 수입니다. 특별히 완전(完全), 총체, 충만, 성취 등을 나타내는 경우들에 쓰였습니다.
예컨대 제7일(안식일), 제7년(안 식년), 희년(7×7년 다음해), 일곱 가지 촛대, 일곱 번 뿌린 피(레 4:6), 번제 양 일곱(민 28:11), 70번씩 7번 (마 18:22), 일곱 교회, 일곱 별(계 1:20) 등입니다. 그리고 애굽에 내려 간 야곱의 자손 70인(출 1:5), 예수 께서 파송하신 70문도(눅 10:1) 등 도 있습니다.
위와 같은 영적 배경에서 우리가 받은 7대 과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개인구령운동입니다. 화 급한 전도운동입니다.
둘째는 개척교회 운동입니다. 경 향 1대 당회 어간에 500곳의 개척 교회를 세우는 운동입니다.
셋째는 신학교 운동입니다. 개혁 주의 세계교회 건설을 위한 고려신 학교 운동입니다. 50명 이상의 교수 를 섬기는 운동입니다.
넷째는 세계선교운동입니다. 원 주민 세계 선교를 위하여 경향 1대 당회 어간에 100명의 선교사를 파송 하는 운동입니다.
다섯째는 학원복음화 운동입니다. 우리가 받은 경향학원의 두 학 교(경복여고, 경복여정)를 기독교 명 문교로 육성하는 운동입니다.
여섯째는 기독교 복지 운동입니다. 우리가 받은 성민종합사회복지 관을 통해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 랑을 나누는 운동입니다.
일곱째는 기독교 문화 운동입니다. 예기되는 21세기 문명권내에 TV, 라디오, 인터넷, 신문, 문서 등 의 문화매체를 선용하여 복음을 전 하는 운동입니다.
이 7대 과제를 실천하기 위하여 우리는 경향인의 9대 생활강령을 세 웠습니다.
경향인은 ① 성경을 열심히 읽는 다. ② 주일을 거룩히 지킨다. ③ 십 일조를 온전히 바친다. ④ 설교말씀 을 생활에서 체험한다. ⑤ 기도와 전도에 힘쓴다. ⑥ 고려신학교 후원 회 회원이 된다. ⑦ 경향선교회 회 원이 된다. ⑧ 찬미와 감사로 기쁘 게 생활한다. ⑨ 새성전 헌당을 위 해 생애 최고의 것을 바친다는 것입 니다.
이것은 이제 시작하는 것이 아닙 니다. 이미 4반세기가 훨씬 넘는 여 정 속에서 수많은 축복을 실제로 체 험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의 중대한 소원은 21세기에 우리가 받은 이 시대적 교회의 사명 이 기어이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입 니다.
그래서 777운동의 또 다른 의미 는, 우리는 성취되기까지 기도하면 서 나아간다, 성취되기까지 낙심하 지 아니한다, 성취되기까지 인내하 고 나아간다, 성취되기까지 믿음에 서 믿음으로 나아간다는 우리 신· 망·애의 고백적 소원의 표시입니다. 그것이 777운동입니다.
성경 중에 777운동의 실례가 있 습니다.
아람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이 이 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 앞에 문둥 병을 고치러 왔을 때의 일입니다. 선지자 엘리사는 그의 사자를 나아 만에게 보내면서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하였습니다(왕하 5:10).
정말 문둥병에서 고침 받는다고 하는 소망의 소식이요, 복음의 소식 이요, 축복의 소식이었습니다. 그러 나 나아만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분 노하면서 물러가려 하였습니다. 그 것은 그가 생각했던 대로 선지자가 자기에게 나와서 예를 행하고, 그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 쳐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결국 그는 그 하인의 권 유를 받고 요단강에 내려가서 하나 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일곱 번 몸을 물에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 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 습니다(왕하 5:14).
일곱 번이었습니다. 점점 나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곱 번만에 나 았습니다. 그것은 요단강물 자체에 문둥병을 고치는 약효가 없었음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의 사람의 말씀대로 되어짐을(왕 하 5:14)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일곱 번만에 나았습니다. 완전신 종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런 경 우 일곱 번이란 완전성취의 내용을 알려줍니다. 완전응답을 보여 줍니다.
저 유명한 진리의 투사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이 주도하는 바알과의 싸움에서 통쾌하게 승리하였습니다. 하늘의 여호와 하나님이 송아지의 각을 쪼 개어 놓은 엘리야의 제단에 불로써 응답하였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의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심이 입증되었습니다. 엘리야 자신이 참 선지자임도 백성들 앞에서 입증되었습니다. 백 성들의 마음이 바알에게서 여호와 하나님께 로 향하여졌습니다. 그리고 바알의 선지자는 기손시내에서 죽임을 당하 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끝난 전쟁은 아니었 습니다. 그 이유는 전쟁 승리의 결 과 온 천지가 기다리는 비가 와야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이미 엘 리야는 큰비의 소리를 듣고 있었습 니다. 물론 믿음으로 들은 빗소리였 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갈멜산 꼭 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무릎 을 꿇고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 얼 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 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환에게 올라가 바다 편을 보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돌아 온 사환은 바다편 공간에서 아무 것 도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것을 무려 일곱 번이나 반복하였습 니다.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고 하였습니다(왕상 18:41-43).
일곱 번째가 되었을 때 사환은 여태까지 없었던 소식을 가지고 달 려왔습니다.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왕상 18:44). 그 로부터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 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고 큰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왕상 18:45-46). 실로 3년 6개월만에 보는 축복의 단비였습니다(왕상 17:1, 눅 4:25).
이런 경우 일곱 번까지 다시 가 라고 한 사실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 이 올 때까지를 의미합니다. 엘리야 의 마음(심령)에 들려온 큰비의 소 리(왕상 18:41)가 현실로 나타나기 까지 의심이나 낙심이나 좌절을 모 르고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 운동을 가리킵니다. 될 때까지, 성취를 볼 때까지를 '일곱 번'이라는 말로 나타 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777운동은 우리가 받은 복음운동의 사명이 성 취될 때까지 나아가는 신앙운동이 요, 기도운동이요, 실천운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 재미있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 어느 장로님 가정에서 있 었던 일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포만 감을 느끼며 앉아 있는 아버지를 본 아들이
"아버지, 운동 좀 하세요. "라 고 말하였습니다. 그때 그 아버지는
"운동 내 운동 많이 하고 있지. 열 심히, 쉬지 않고 하고 있어. "라고 하 였습니다.
그때 아들은
"아버지, 무슨 운동 을 그렇게 열심히, 많이, 하고 있습 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아 버지의 대답입니다.
"내가 우리 교 회에서 333운동을 하고 있잖아. 그 리고 7대복음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 "라고 하였습니다. 그 소리를 들었던 아들의 마음을 상상해 보십 시오.
참으로 장로다운 아버지의 대답 이었습니다. 333운동, 777운동이 이 미 몸과 마음 아니 삶의 의식 구조 에 인처럼 박혀 있는 일종의 생태적 의식의 발로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 습니까
※ 333운동과 777운동은 예수 세 계화 운동입니다. 이것은 21세기를 받은 우리 경향인들의 삶의 모토 (motto)입니다. 이것은 우리 경향인 의 분명한 자기 존재 의미와 가치와 내용과 목적입니다. 바로 복음 선교 의 목적적 삶입니다.
누가 21세기를 바로 아는 자인 가 누가 21세기를 바로 보는 자인 가 누가 21세기를 받은 자인가
그는 결코 역사의 광장에서 방황 하는 방랑객은 아닙니다. 택자 구원 이라고 하는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 사의 경륜을 받아 일정한 계획과 목 표와 시간을 가지고 움직이는 거룩 한 순례자들이 21세기의 주역입니다.
※ 마지막 세기의 순례자! 복음 선교의 순례자! 종말 선교의 순례 자! 333운동과 777운동의 깃발을 들 고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자손을 찾 는 사명의 순례자! 그들은 분명히 세계를 받은 21세기의 주역이 될 것 입니다. 21세기를 예수와 함께 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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